끓어오르는 죄악에 반응하는 환희야 말로 나를 경악케 하는 것은 없다. 분명히 이것은 모순이다. 모순이어야 한다. 

얼마전의 일이었다. 늦은 저녁에 혼자 술병 몇 개와 함께 철썩거리는 파도를 듣고 있을 때였다. 마음 속으로 무척이나 힘든 고난이 내 삶에 어느 순간 자연스레 들어왔을 때, 죽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죽기 전에 정신은 나가고 죽는게 훨신 편할 것이라 생각했고, 그렇게 술병 몇 개가 굴러 조용한 모래 속에 떨어질 때, 한 가지 생각을 하였다.
사랑하는 이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피폐해진 마음이 사랑은 원한다는 그 본능은 나를 눈물 흘리게 만들기 충분했다. 어쩌면 그때가 조금이나마 살려고 발악하는 내 속삭임이었을까 생각했다. 난 휴대전화기를 들어 즉시 하림이에게 전화했다. 작게 훌쩍이는 소리 너머로, 그녀는 전화를 받고 밝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여보세요?“
”어디야.“
”나 집이지.“
”야. 거기 기억나냐.“
”어디?“
”우리. 처음. 키스 하던 곳. 붉게 빛나던. 태양이. 소리치던….“
”무슨 소리야?“
”바닷가.“
“바닷가?”
“응.”
그녀는 도통 알 수 없다는 말투로 내 주정을 받아쳤다. 하지만 난 아랑곳 하지 않고 내가 위태로운 곳을 알 수 없게 지껄이고 있었다.
“바닷가 어디?”
“아름다운 곳.”
“바닷가야 다 아름답지.”
“아니. 아니. 더 아름다워. 뭔가 더… 특별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거야?”
“넌 아냐.”
“나야 모르지 거기가 어딘지.”
“어떻게 모를 수가 있냐.”
“어떻게 모를 수가 있긴, 우리가 사랑 남긴 장소가 얼마나 많은데.”
그녀의 말에 난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몇 방울이 아니라 길고 진한 한 줄기가 내 뺨을 스쳐 지나가고 있었다. 곧 이어 한 줄기가 또 새어 나오자, 난 울음 소리를 감출 수 없었다. 마음은 애써 계속 발악하고 있었다. 손으로 입을 가리고 내 어리석음의 후회를 겨우 억누르고 말했다.
“그래. 그래. 맞아.“
“너 울어?”
“응.”
“왜 우는데, 거기 어디야?
”바. 바닷가.“
”무슨 바닷가?“
”특별한… 슬프고…”
”어딘데? 어디 말하는거야?
“병원 앞……”
점점 언성이 높아지는 그녀였지만, 병원 앞이란 소리에 그녀는 잠시 정적을 갖추고, 이내 말을 다시 꺼냈다.
“좋아. 어딘지 알겠어. 조금만 기다려.”
나는 아무말 하지 않았다. 그녀가 전화를 끊은 소리가 들리자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다시 한 번 거센 파도 소리와 함께, 바람은 파도와 맞다투며 강도를 좀 더 높이고 있었다. 내팽게쳐진 술병은 굴러가 대부분이 모래 속으로 떨어졌다. 난 그것도 모르고 멍하니 파도를 보고 있었다.
사실 파도는 보이지 않았다. 파도 소리가 들리는 공허를 난 뚫어지게 보고 있었다. 아무 것도, 마치 낭떠러지 앞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침 모래 사장 앞의 돌담에 앉아 있는 참이라, 그리고 술에 의해서 내 시야는 점점 파도와 가까워지고 있었고.
난, 내가 느낀 건 내가 겁도 없이 절벽 끝 마디에서 그 깊은 낭떠러지를 발로 느끼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금이 저려와 금방이라도 뒤로 물러갔다. 그리고, 술병이 다시 굴러가 마지막 남은 술병이 모래 속으로 떨어졌다. 난 편히 손을 다듬어 내가 편한 자세로 앉기 시작했다.
이유 모를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여전히 마음은 살려 발악했다. 뭉게진 음정 사이로 코를 찌르는 듯한 그 역겨운 냄새가 내 주위를 맴돌았다. 금방이라도 구역질을 할 것 같았지만, 아무렴 그런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생각하니 웃음이 나와 끔찍한 악취도 모두 잊어버린 듯 했다.
살기 위한 마음이란.

이윽고 한 사람의 발걸음이 점점 내 귓가에 커져갔다. 그리곤 외쳤다.
“바보야!”
그녀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내게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리곤 날 빤히 쳐다보기 시작했다. 난 초점도 잘 맟추지 못한 채 게슴츠레한 눈으로 그녀를 응시했다. 그녀의 눈엔 빛이 맴돌았다. 병원 빛인가 싶어 옆을 돌아보았다. 하지만 병원도 빛났고, 그녀의 눈도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손으로 자신의 눈을 쓱 닦고는 조심스레 내 옆으로 앉기 시작했다. 난 여전히 초점 없는 눈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내 시선을 피하고 파도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시선들 돌리다, 이내 다시 나를 보더니 내 어깨를 때리기 시작했다.
“정신차려!”
“그럴 순 없어.”
“대체 왜그러는데?”
“죽을 거야.”
”대체 왜?“
”알거 없어.“
”왜 죽을려 하는지 이유는 알아야 될거 아니야.“
”알거 없대두.“
”정말 왜그래?”
난 답 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런 내가 답답한지 신음 섞인 큰 한숨을 내 뱉고 다시 파도 소리가 나는 곳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그녀를 따라 같은 곳을 응시했다.
“좋아.”
“……“
”너가 죽을 거라면. 나도 같이 죽겠어.“
”어딜!“
난 순간 소리치기 시작했다. 그녀는 놀랐다. 그 소리를 듣고 내 눈은 다시 초점이 맟춰지기 시작했는데, 그녀의 눈가에 붉게 물든 것 같은 상쳐 같은 자국들이 있었다. 그녀는 입을 살짝 벌리며 날 노려보고 있었다. 증오인지, 아님 걱정하는 건지 몰랐다.
”그건 안돼.“
”왜?“
”넌 살아야해.“
”내가 죽든 살든 그건 내 마음이야.“
”그럼 나도….“
”그건 내가 안돼.”
”뭐하자는 거야.“
“널 살릴려는 거야.”
“난 이미 죽기 위해 준비를 다 끝냈어. 술도 마시고….. 널 보고….. 다 끝났다고.”
그 말에 그녀는 주변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곤 말했다. ”병이 없는데?“
”모두 떨어졌어. 저 밑으로.“
난 흐느적거리는 움직임에 끝만 힘을 주어 돌담 아래의 모래 바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그러자 그녀는 바닥을 보다가 이내 모래 사장에 내려가 허리를 과하게 굽이곤 그 병을 줍기 시작했다.
“뭐하는 거야?”
“여기 더럽히지마.”
“내 알 바야?”
“당연하지. 너가 그런 건데.”
“어짜피 죽을거…”
그러자 그녀는 주운 병들 중 하나를 돌담 너머로 던지기 시작했다. 병은 아스팔트에 닿자 쨍그랑 거리는 소리가 울러퍼졌다. 난 그 소리에 꺼져가던 정신을 다시 붙잡았다. 뒤를 돌아보았다.
병은 형태도 못알아볼 정도로 산산히 부서져 있었고, 파편들이 병원 빛에 부딫쳐 스스로 발광하고 있었다. 난 다시 그녀를 보았다. 그녀는 울고 있었다. 그리곤 울먹이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니가 말했지. 여기 우리가 첫 키스한 곳이라고.“
”……“
”왜, 왜 내가 그 때 너랑 키스했는 줄 알아?“
이유를 기억할 틈도 없었다. 난 갑작스런 그녀의 행동에 뇌 속은 백지장에 의도를 모를 수많은 낙서들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머리가 깨질 듯이 어지러웠다.
”나 그때…. 엄마 돌아가시고…. 나 혼자서, 여기 혼자서 울고 있었을 때, 너가…. 나한테 왔잖아. 그리고 말했잖아. 사랑하는 사람을 남기고 죽은 사람은 그냥 죽지 않는다고, 무엇이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무엇이든 남기고 간다고. 그때 그 소리 듣고, 이제 너를 내 미래로 생각하며 지냈단 말이야.“
쌔한 바람이 불어온다. 난 몸을 으슬으슬 떨기 시작했다. 이 서럽고 차가운 분위기에 바람 조차 너무 잔인했다. 하지만, 따스한 눈물이 또다시 물줄기를 이루어 내 뺨에 스치었다. 내 숨은 어느새 거칠게 변하고 있었고, 중간중간엔 신음 조차 생겨나기 시작했다.
”너 죽으면…. 난 어떻게 살라고…. 난, 난 그냥 행복해지고 싶은거…. 그거 뿐이야… 그거 뿐이라고. 근데, 근데 왜 너는….“
그녀는 갑자기 주저앉기 시작했다. 그리곤 큰 소리로 울기 시작했다. 무언가, 마음 속에 담기 어려울 정도로 거대하고 무모한 것을 내 앞에서 끝내 보여준 느낌이었다. 그 거대함은 내 마음에도 전염된거 마냥 고통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너무 많은 감정이 내 마음에 들어온다.
어서 짜내고 싶다. 그 축축한 감정 덩어리들을 어서 짜내고 싶었다. 갑작스레 커진 마음이 아프다며 그 얇은 껍질을 들어냈다. 나도 그녀를 따라 울기 시작했다. 내 마음을 쿵쿵 쳐내며, 갓 태어난 아기 마냥 오열하기 시작했다. 어서, 어서 아픔이 사라졌으면 했다. 한 없이 눈물이 폭포 처럼 흘려내리면 싶었다.

어서, 어서 내 피폐한 마음을 더 아프게 하지 말고, 날, 다시 살려주라. 내 마음은 처음 부터 죽음을 생각하지 않았으니, 죄 없는 생명을 괴롭히지 말고, 어서, 너는, 너 눈물을 짜내라. 너가 살면서 흘린 눈물 보다 더 많은 양을 짜내라. 너의 지금 마음은 그 각오를 이행해도 충분히 고인 물이 남으리라.

파도 소리가 몇 번 스치고 나서야 그녀가 입을 열었다.
“지금도 죽고 싶어?”
난 대답하지 않았다. 처음에 느꼈던 그 마음의 작열통은 사라지고 이제 축축하게 남은 마음 뿐이었다. 걸레짝 같이 헐어있었다. 그렇다고 슬프다고, 기쁘지도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는 그 모든 감정들이 무더지고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느낄 수 없었다. 술기운이 아직 덜 깬 이유이기도 하겠다.
다시 파도 소리가 들리는 어둠을 보면서 넋을 잃은 채 있었다. 그때 그녀가 내 차가운 손을 잡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들어온 촉감에 옆을 돌아보았다. 그녀는 날 보며 말했다.
“좋아. 죽기 전에, 소원 한가지만 들어줘.”
그녀의 목소리엔 이제 더이상 날 마다하지 않겠다는 소리 같았다. 하지만 내가 바라본 그녀의 눈은 포기의 눈이 아니였다. ‘좋아’라고 말했지만 눈은 절대코 날 놓아주지 않았고, 더욱 강렬하게 날 응시하고 있었다. 내 손을 잡은 강도도 그 말 이후로 조금씩 강해지고 있었다.
무언가 인상을 받은 나는 그녀의 말을 수락했다.
“소원이 뭔데.“
”오늘 저녁만, 나랑 같이 있어줘.“
”오늘. 오늘 저녁만.“
”응.“
내 대답이 끊어지자 그녀는 더욱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기 시작했다. 그녀는 눈빛으로 나의 생명에게 나의 삶을 구애하고 있었다. 몸짓 하나 없이 나를 긴장하게 만든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파도 소리는 이제 들리지 않았다. 어느새 부턴가 난 그녀의 눈빛에 같이 집중하기 시작했다.
눈을 찡그리고, 우린 서로를 보고 있었다. 서로 총 소리도, 칼 소리도 없이 치열한 전투를 치르는 듯 했다. 하지만 난 그 전투에서 밀리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의 보이지 않는 수많은 공격을 난 느끼지 못하고 맞고 있었다. 느낄 수 없었다. 그녀의 집착을.
하지만 눈동자 속의 그녀의 역동은 볼 수 있었다. 눈동자의 역동을 볼 때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치명상을 느낄 때 마다, 난 그녀의 손을 더 꽉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리고 더 가까이, 그녀의 눈동자와 더 가까워져 갔다. 눈동자의 역동에 홀린 듯 난 그녀의 눈을 향해 가까이 다가가기 시작했다.
일정한 거리가 되었을 때, 현란한 몸짓들이 내 머릿 속에 깊숙히 박히게 되었을 때, 우리 서로는 눈을 감기 시작했다. 작은 열기가 내 뺨에 닿기 시작했을 때, 난 갑자기 뒤로 물러났다. 내 손으로 이마를 이루어 만지고, 눈을 감기 시작했다. 머릿 속이 갑자기 핑 돌기 시작했다.
”왜그래?“
그녀가 걱정하는 듯 물었다. 난 아무것도 아니라고 손을 흔들었다.
”그래서, 내 소원은-”
그녀가 다급하게 물었다. 난 고개를 들어 파도 소리의 공허를 마지막으로 내 눈에 새겨두며 말했다.
”그래. 지금 가자.“
그녀가 내민 손을 잡고 난 그녀를 따라 일어나 같이 길을 걷었다. 그리고 몰고온 차에 타서 빠르게 지나가 길게 늘어지는 건물들과 빛들을 바라보았다. 정신을 조금만 놓고 눈을 감은 채 조금의 시간이 흐르자 벌써 그녀의 집이었다.
그녀는 여전히 초조했는지 벌써 차에 내리곤 내가 내리는 것을 부축해주기 시작했다. 난 필요 없다 생각했지만 마냥 나쁘지는 않아 그녀의 부축에 호응했다. 그녀는 내 손을 잡고 날 끄는 듯 내 앞을 걸어갔다.

그녀의 집은 작은 아파트에 4층인 408호였다. 열쇠가 문을 연 소리가 들리자 난 그녀의 집 안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녀의 집은 좁았으나 한 사람이 살기엔 넉넉한 공간이었다. 허나 절대로 두 사람이 살기에는 너무나 좁은 집이었다.
거실에 이불이 내팽게져 있었고, 문 바로 옆 가스레인지 위에 물을 채워놓은 냄비가 있었다. 그녀는 나를 갑자기 잡아 당기더니, 날 한 번 안고는 벽에 앉혀 두었다. 위엔 기다란 창문이 있었다. 열려 있어서 바람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몸이 떨리면서도, 갑자기 경직되었다. 내가 너무 오바하나 싶었을 때 내 몸은 굳어버린 것이다. 그녀는 언제부터 채워졌는지 모를 냄비 속 물을 끓이고 있었고, 냉장고를 열어 꿀 한병을 가져 그것을 숟가락으로 펃다.
어느새 그녀는 가만히 앉아있는 나에게 꿀물 하나를 주었다. 거실 불은 꺼져 있었지만, 옅게 켜져있는 부엌의 불이 그녀의 얼굴을 보게 해주었다. 나에게 다가갈 수록 서서히 어두워지는 그녀의 얼굴이지만, 그녀가 나에게 다가와도 표정 하나 바뀌지 않았다는 것은 확실했다.
단호함, 내가 느낀 건 그것 뿐이었다. 그녀는 손수건을 잡고 나의 두손을 잡아 그 사이에 끼어 넣어 나에게 꿀물을 쥐어주었다. 연기가 내 턱을 부드럽게 쓰다듬고 있었다.
“어서 마셔. 너무 달면 말해주고.“
그리곤 그녀는 내 옆에 앉았다. 난 꿀물를 향해 고개를 내렸다. 뜨거움이 생각나 손을 조금 떨면서 내 입술에 조심스럽게 가까이 움직였다. 잠깐의 시간에 소량을 마시고, 그 따스함을 짐작했다.
“어때?”
그녀가 물었다.
“좋아.”
그녀는 작게 미소지었다. 다시 꿀물을 마실려는데, 그녀가 말했다.
“우리.”
”응.“
”어디까지 나갔더라.“
”뭔 소리야.“
”키스 이후로 우린 뭔가.“
그녀는 말을 말고 앞을 응시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눈을 질근 감고 고개를 숙여 흔들었다. 그리곤 다시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있잖아.“
”응.“
”내 소원이라는거.“
”응-“
얼마 남지 않은 꿀물로 시선을 돌릴 때, 그녀가 말했다.
”날 봐봐.“
한껏 분위기가 내려간 음성이었다. 쌔함에 그녀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녀는 얼굴이 붉어져 있었다. 그리곤, 손을 바닥에 내리고 성큼성큼 내딛어 나에게 다가왔다. 그리고 내 얼굴을 붙잡은 채 키스하기 시작했다.
난 놀라 다 마시지도 못한 꿀물 잔을 떨어트렸다. 당황스러워 그녀의 어깨를 잡아 떨어트리려 했지만, 그녀는 내가 생각했던 것 보다 더 진한 애정을 쏟고 있었다. 순식간에 입 안은 서로의 분비물로 가득 차고, 서로가 그것을 삼키고 있었다.
그녀도 충분했다 생각했는지 드디어 입을 때었다. 침이 얇은 줄기로 그녀와 나의 사이에 이어져 있었다. 그녀는 갑작스레 거친 숨소리를 내더니 거의 공기가 대부분인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소원이라는 거.”
“어, 어.”
“키스, 이후로… 좀 더.”
“뭐, 뭐?”
”날 범해줘.“
그녀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녀는 옷에 있는 단추를 거의 찟듯이 벗기 시작하였다. 내 얼굴도 분명 붉어지고 있었지만, 평소에 보지 못했던 그녀의 과격한 모습에 되려 난 뒤로 물러가 있었다. 그녀는 무언가를 갈망하고 있는 짐승처럼 날뛰기 일보 직전이었고, 난 그걸 피하는 포수에 불과했다.
먹잇감을 노리는 짐승을 무기 하나 없는 어린 포수가 막을 바는 없었다. 허나, 이 심장이 미칠 듯이 뛰는 짜릿함을 느낄만도 했다. 어느새 윗옷과 속옷까지 벗은 그녀는 내가 움직인 만큼의 거리를 네 발로 걸어 나에게 다가왔다. 어두워도 그녀의 젖가슴 만큼은 또렷하게 잘 보였다.
눈을 질근 감았다. 그녀의 손이 움직이는 촉감이 느껴졌다. 마침내 내 아랫도리까지 내려가고, 난 피가 솟은 음경에 난처함을 느끼며, 그대로 그녀의 밀처냄에 쓰러졌다. 그리고 마침내, 내 위로 올라탄 그녀가 말했다.
“해보자. 이게 내 소원이야.“
그리고, 그리고 내가 그녀의 생명 안을 느꼈을 때, 서로의 생명이 서로의 속으로 섞여들자, 서로는 어쩔 줄 몰라하며 몸을 오들오들 떨기 시작하였다. 치열한 싸움이었다. 신음이 그치지 않고, 시간이 지날 수록 아드레날린이 몸을 적신 것 마냥 더 행동은 더 격해지기 시작했다.
쿵, 쿵. 살이 부딫치는 소리는 더 빠르게 들리기 시작하고, 숨은 몸에 상처라도 입을 것 처럼 더 거칠어지고 있었다. 금방이라도 정신이 나갈 것 같은 이 상황에서 결국 내 생명이 마지막 타격을 행했다. 그 결과 나와 그녀는 마지막 외침 하나로 그 불타는 싸움은 멈춰졌다.
축축해진 내 몸으로 그녀는 쓰러졌다. 하지만 아직까지 서로의 생명은 온기가 남아있었다. 서로가 한숨을 돌릴 때, 그녀는 몸을 이르키더니 내 앞으로 몸을 굽이기 시작했다. 책상 처럼 두 발과 손을 굽어 선 그녀는, 내게 말했다.
”이젠 너가… 직접 해봐.”
난 그럴 용기가 없었다. 하지만 심장은 금방이라도 내 살을 뚫어 그녀에게 갈 정도로 막을 수 없었다. 결국 난 일어났다. 굴복한 짐승에게, 이젠 포수가 짐승이 될 차례였다. 그가 그녀를 움켜 잡고 나서 부터, 이제 사람은 없었다.
사랑을 기리는, 두 마리의 처절한 짐승이, 애틋한 싸움을 펼쳤다. 서로가 표정을 찡그려도, 그 싸움을 피하지도, 멈출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이 싸움을 진정으로 즐기고, 또 사랑하고 있었다. 불그스름한 그들의 몸이 더이상 인간의 피부가 아니였다.
몸이 축축해 지고 그 수분 마저 안 쪽에도 스며들고 있을 때, 마침내 내가 최후의 일격을 내쏟았고, 그녀는 그 공격을 미련없이 받아주었다. 서로가 상처 입으며 그 강렬한 고통을 느끼며 쓰러졌다.
거친 숨소리가 안개를 이룰 정도로 그들은 정신도 못차리고 숨만 쉬어댔다. 끈적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녀의 신음도 이어졌다. 하지만 이내 난 다시 정신을 차리고 이불을 가져가 나에게 씌우기 시작했다. 그걸 본 그녀는 이불을 잡더니, 나에게 말했다.
“부끄러워 할 필요 없어.”
“하지만.”
“괜찮아. 우린 이제 벗어난거야.”
“뭐를?”
“서로의 시선을, 이때까진 경험하지 못했던 그 진심을, 우린 느낀거야.”
그녀는 서서히 이불을 벗기기 시작했다. 나도 그녀의 말에 그녀의 행동에 동조했다. 그리곤, 우리는 나체의 처지로 서로를 껴안기 시작했다. 온 촉감이 그녀의 젖가슴과 아랫 부분에 쏠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침내 난 나의 진심을 받아드리기 시작했다.
그 이후로 싸움은 계속되었다.

빛이 새어나왔다. 아침이 밝아왔다. 바닥에 피어난 달콤한 향기에 난 눈을 겨우 떠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녀는 이불을 덮은 채 곤히 잠들어 있었다. 난 몸을 이르키고 창문 너머를 살펴 보았다. 도로 위 차들이 바삐 움직이는게 8시 쯤 된 모양이었다.
이불을 지켜올려, 내 몸 상태를 보았다. 어제 새벽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알지만, 자꾸만 기억이 끊켜지고 있었다. 이마를 집고 고개를 흔들고 있을 때, 그녀가 일어났다.
“잘 잤어?”
“응.”
그녀는 작은 미소를 보이고, 몸을 이르키더니 문을 닫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난 밝아온 태양에 나체로 있는게 불편해 옷을 입기 시작했다. 윗 옷을 입을 때 그녀가 나오고, 갑자기 경직된 움직임을 보이곤 말했다.
”뭐해?“
”옷 입어.“
”왜?“
”그냥, 좀 그래서.“
”뭐가.“
”그냥…. 그래서.“
”어디 갈려고?“
”아니. 아직은.“
”그래.“
그녀는 여전히 나체의 모습이었다. 그 몸뚱아리로 그녀는 가스레인지가 있는 곳으로 갔다. 난 창문 너머를 구경했다. 그녀의 건물은 꽤나 높았다. 작은 아스팔트와 차들 사이에 하늘은 거대하게 넓은 형체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곤, 발걸음이 들려왔다.
“저기.”
그녀의 목소리였다. 난 여전히 창문 너머를 보며 말했다. “왜?“
”날 사랑해?“
”그럼.“
”그럼 왜.”
“응-”
이내 뒷통수에 둔탁한 무언가가 내 머리를 타격했다. 난 깨질 듯한 고통에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이내 정신을 차리자, 그녀는 눈물이 고인 눈으로 내 뺨을 쓰다듬고 있었다. 여전히 나체의 모습이었다. 내가 서서히 눈을 뜬걸 본 그녀는 소리쳤다.
“나쁜놈.”
난 아무말 하지 못했다. 여전히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말도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내 상태는 생각하지 않는 듯 내 뺨을 후려갈겼다. ‘짝’하는 소리가 울리면서 날 더 혼란스럽게 했다.
”나쁜놈. 나쁜놈.“
”대, 대채 뭐가.“
”날, 날 사랑하지 않는거야?“
”그, 그게. 무슨.“
”넌 여전히 그대로야. 넌 아직 변하지 않았다고.“
난 말을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의미심장한 말을 계속 뱉었다. 그녀의 강도 높은 외침은 내 귀를 울려 더 나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그래서 난 겨우 귀를 막고 외쳤다.
“제발 그만.”
“그만? 그럼 너도 지금 옷을 벗어.”
“대채 왜?“
”그야 넌 피할려고만 하니까! 맞써 싸우는 것도, 그 용맹하고 역겨웠던 어제도 다 한순간 이니까! 그리고 우리의 사랑도 너에겐 한 순간에 불과했으니까!”
“뭐가 문제야?”
“그냥, 그냥 날 사랑해줘. 그게 전부야!”
“난 계속 널 사랑했어.”
“거짓말, 거짓말이야. 어제도, 어제도 결국 가짜였던거야….”
그녀는 바닥에 주저앉고 울부짖기 시작했다. 그리곤 다시 외쳤다.
“아냐, 아냐, 아무래든 좋아. 날 다시 사랑하게 만들 수 있어.”
그리곤 그녀는 다시 나체의 몸으로 걸어가 식칼을 들기 시작했다. 그리곤 나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좋아. 좋아…“
그녀의 숨이 다시 거칠어졌다. 내 시야는 여젼히 희미했어도 그녀의 손은 덜덜 떨고 있었다. 하지만 칼이라는 공포가 나에게 다가오면서, 난 뒤로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제발, 살려줘.”
“죽일려는게 아니야… 그냥, 그냥 날 사랑해줘.“
”난 널 사랑한다고.“
”아냐, 진심으로, 진심으로 내 말을 들어줘. 너가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했는지 잘 알아. 엄마 암이 악화되었을 때도, 넌 호전되고 있다면서 나에게 거짓말을 했잖아.“
”그건 너도 알잖아.“
”날 위해서라도 난 항상 진심을 원했어!“
”제, 제발 이러지마.“
그녀는 눈물을 흘리며 내게 다가갔다. 그녀와의 거리가 한 걸음 정도로 가까워졌을 때, 난 이제 끝났다 생각해 눈을 감기 시작했다. 허나,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와 함께, 다시 주저앉는 소리가 들렸다. 눈을 떠보니 그녀는 나를 보며 울고 있었다.
”아냐, 아냐 미안해. 내가 어떻게 너를.“
그녀는 애처롭게 나를 보며, 이내 눈을 가리며 울기 시작했다. 떨군 고개를 보고 그녀를 달래기 보다는, 어서 여기를 빠져나가야겠다 생각했다. 손을 서서히 바닥에 붙이고, 짧은 신음과 함께 난 튀어올라 현관문을 향해 뛰어갔다.
급하게 문을 열고 아파트의 계단으로 달려갔을 때, 그녀의 비명이 들리고, 곧 이어 발걸음이 울리며 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난 서둘러 계단을 건너고 있었다. 다급하게 겹치며 들리는 발걸음의 소리가 울리자, 내 심장은 다시 격렬하게 뛰고 있었다.
이것 역시 싸움이라면, 난 이 싸움을 피하고 싶었다.
어느새 난 밖으로 빠저나오고, 숨을 돌렸다는 생각도 못하고 쫓아오는 발걸음이 더 크게 들려올 때, 난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여전히 나체의 모습으로 밖에 나와 날 쫓고 있었다.
난 비명을 지르며 그녀를 뿌리치기 위해 계속 달려갔다. 그녀는 나를 향해 달려오며 외쳤다. “도망가지마! 날 막대하든 부려먹든 좋으니까 나에게 오란 말이야! 제발, 제발!“
하지만 난 그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사람들이 지나가는 길목에서도 그녀는 흔들리는 젖가슴이 부딫치는 고통도 모르고, 그리고 사람들의 충격의 시선도 모른 채 오직 나에게 시선을 고정되어 있었다. 눈동자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그 눈동자를 보고, 난 멈추지 않으면 죽는다 판단했다. 때문에 난 그녀의 처절한 외침에도 계속 달려갔다. 갈망하는 짐승과, 먹히지 않으려는 서투른 짐승이 쏘아붓는 사람들은 모르고 달리고 있었다. 바람이 분다. 달려야 한다.

어느새 내가 한숨을 돌리고, 주변을 보았을 때는, 어제 저녁에 내가 있었던 바닷가에 도착해 있었다. 그녀는 사람들의 인파에 쓸려 날 끝내 못 찾은 듯 했다. 난 한숨을 돌려 돌담에 앉았다. 그리고 이제는 또렷하게 보이는 파도를 보며, 무언가를 생각했다.
”한 순간…“
난 혼자 중얼거렸다. 파도는 모래를 쓸고, 금새 하얀 거품을 남기고 사라졌다. 난 그 광경을 보고 다시 중얼거렸다. ”한 순간이야. 사랑도.“
그러자 난 어제의 일들을 회상했다. 서로가 아파하며 즐긴 싸움을 생각하니, 더이상 죽을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마음 같아서는 저 바다로 돌진해 익사를 충분히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뭔가가 이상했다. 내 마음은 이미 예전으로 되돌아가 있던 것이었다.
”파도는 누가 만드는 걸까.“ 다시 중얼거렸다. ”그 거친 소리는 누가 만드는 걸까.“
“바다야. 바다가 만들어.”
그 순간, 난 바다를 보았다. 태양이 만든 윤슬이 밝게 빛나고 있었다. 바다는 저리도 아름다운데, 만드는 건 금새 사라지는 파도라니, 허나, 바다는 파도를 계속 만들고 없어지는 꼴을 보기만 하고 있었다. 이유가 무엇일까.
그러니, 내 마음은, 내 마음은 무엇일까? 상처가 그 하룻밤으로 다 아물고, 그녀가 남긴 의미심장한 말…. “서로의 시선을, 이때까진 경험하지 못했던 그 진심을, 우린 느낀거야.” “우리의 사랑도 너에겐 한 순간에 불과했으니까!“
그녀의 마음은 바다였고, 나도 그 바다중 하나였다. 그리고, 그녀가 내 상처를 파도로 만들었다. 거친 신음과 함께 상처는 쓸려 내려갔다. 그녀의 진심으로, 그녀의 아름답게 발광하는 윤슬로….
허나 내 마음마저, 그녀는 실수로 나만의 그녀를 파도로 만들었다. 때문에 그녀는 내 마음속으로 쓸려 사라졌다. 사랑하지만, 사랑하지만.

핸드폰도 돈도 없었던 나는 이내 발바닥이 터져라 걸어가 마침내 내 집으로 도착하게 되었다. 그리고 난 집에 들어서자 마자 바로 뻣어 잠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위험한 하루를 허무하게 마쳤다.
몇 주일이 지났다. 그녀가 날 쫓아오지 않을까 라는 생각에 잠을 새기도 했지만, 마음이 점점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고인물이 다 사라졌나. 솔직히 말하자면 그녀가 보고 싶어졌다. 난 그녀가 있는 집까지 걸어갔다. 그리곤 그녀가 머무는 방에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너무나 많은 일들과, 그 일들에 관해 또 떨리는 공포감이 있었지만, 위협을 무릅쓰고 사과 하나는 전달해야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문을 몇 번이고 두드리고, 그리고 ”나야.“ 하며 내 목소리를 들려줘도, 그녀는 문을 열지 않았다.
거북하기도 했지만 되려 어디선가 모르게 안심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난 두드리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좀 지나자, 옆에 지나가던 한 아주머니가 내게 말을 걸었다.
”거기 집 문은 왜 두드려요?“
”아, 여기에 제 여자친구가 살거든요.“
아주머니는 잠시 놀란 듯 멍해지더니, 이내 말을 다시 꺼냈다.
“어머. 이거, 이거 어떡한데.”
“왜그러세요?”
“그니까… 이게…. 저, 저 방 주인은 저번에 창문으로 떨어져 죽었어요. 이런.”
그 말을 듣자, 난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렇다고 울거나, 체념하지 않았다. 그저 애도를 표할 가벼운 슬픔만 내게 남아있었다. 하지만, 분명 이건 뭔가 이상했다. 뭔가 맞지 않았다.
난 아파트를 빠져 나왔다. 그리고 난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는게 아니라, 되려 해방감을 맞이했다는 마음이 나를 감쌓다. 순간 소름이 끼쳤다. 분명 그녀는 나의 매정함, 나의 어리석은 공포로 인해 죽었다. 그녀는 적어도 그랬을 것이다.

아니 그렇다. 그럴 수밖에 없다. 그녀는 날 사랑했으니까. 나도 그녀를 사랑하는데, 난, 나는 왜.

끓어오르는 죄악에 반응하는 환희야 말로 나를 경악케 하는 것은 없다. 분명히 이것은 모순이다. 모순이어야 한다. 

지금의 내 마음은 아직 그녀의 사랑으로 가득 찼으나, 그녀의 사랑은, 바다는, 파도를 몰고 올 것이다. 그 거대한 파도가, 거친 신음과 비명을 몰고오는 파도가 오고 있다. 내게 오고 있다. 죽지도 않고, 애증의 눈물을 가득 머금고 나에게 달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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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