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만약 오늘이 내 마지막 날이라면, 난 괜찮을 수 있을까? 오늘이 만약 내 생의 최후의 날이라면, 정말로 내가 세상에서 사라진다면 그때에 이르러서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나는 가만히 누워서 생각을 갈무리했다. 어지러웠던 정신도, 마치 몸이 타는 것처럼 느껴지는 아픔도 조금 가시는 느낌이었다.


가로등이 깜빡거리다 점점 색을 잃어갔다. 그 모습이 지금의 내 모습과 닮아서 목구멍 깊숙이 솟구치는 감각을 무시하고 웃어버렸다. 덕분에 내 입 안은 비릿한 쇠 맛만 가득했다. 


그래도 나는 이 모든 것이 우스웠다. 기껏 삶의 끝에서 한다는 생각이 고작 가로등 불빛이라니, 역시 알다가도 모를 인생이었다.  


배에서 나왔던 피가 점차 식어갔다. 피가 굳은 탓인지 모든 것을 쏟아낼 정도였던 피는 이제 졸졸거리기만 했다. 


'죽는구나.'


죽음을 준비하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픔이 가시는 게 아니라 그저 죽어가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눈을 감고 마지막을 준비했다. 다만, 이대로 불쑥 가버리는 것은 조금 무서웠다. 삶의 미련이 있는 건 아니지만, 무서운 건 무서운 것이다. 


그래서 나는 꿈을 꾸기로 했다. 지금 나는 잠을 자는 것이다. 이대로 길바닥을 요 삼고, 밤 하늘을 이불로 삼으며 팔을 베고 저 꿈 속으로 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나는 숨을 고르고 긴 꿈을 꿀 준비를 했다. 점점 몸이 가라앉는다. 그리고 꿈의 문턱 앞에서 나는 익숙한 모습을 마주했다. 


그래, 그녀를 잊을 수 없다. 그녀의 일부분이 나를 바라보고 있다. 그녀는 어떤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을까, 궁금하지만 뒤돌지는 않았다.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그녀는 내가 어쩔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이미 멀리 가 버린 그녀다. 


"먼저 잘게. 넌 조금 늦게 자라."


내가 건네줄 수 있는 말은 그게 다였다. 좋은 것만 들고 가기로 했다. 이 정도는 그녀도 용서해주리라 생각한다. 마치 아이가 제 품에 인형을 꼭 껴안듯, 나는 그녀와의 추억을 안고서 꿈에 빠졌다. 그래도 인생의 끝에서 마주한 게 귀신도, 저승사자도 아닌 그녀여서 조금 다행이었다. 


2.

그녀가 달리는 것이 좋았다. 단지 그 뿐이었다. 직접 달리지 않더라도 그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다. 그 누구보다 빠르게 달려서 가장 먼저 결승선에 들어올 때면, 북받치는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그게 내가 트레이너가 된 이유였다. 


처음 중앙으로 들어온 뒤, 아무것도 모르던 신출내기인 내게 선뜻 다가와준 그녀를 그런 기분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 가문의 비원을 짊어진 그녀에게 내 모든 것을 바치노라 마음을 먹고 의기투합했다.


그녀에게 달리는 법을 알려주고, 때때로 다른 이들과 연습도 잡았다. 밤이 지나 동이 틀 때까지 책에 파묻혀 그녀에게 맞는 주법과 각질을 연구했다. 그래도 피곤하지 않았다. 


그런 노력과 의지 덕분에 그녀는 점점 성적을 냈다. 한참 뒤에서 달리던 그녀는 어느덧 중간을 지나 선두에서 달리고 있었다. 꽤 많은 대회에서 승리도 했다. 


그리고 마침내 모두가 바라던 곳에서 승리를 거두고 그녀가 감격에 젖었을 때는 나도 모든 것을 이룬 것처럼 행복했다. 나와 그녀는 서로를 껴안은 채 한참을 기뻐했다.


나는 그 뒤로 몇 명의 담당을 더 들였다. 그녀는 더 높은 곳을 향해서 질주하기 시작했다. 행복한 순간이었다. 이 순간이 계속되길 바랐다. 하지만 영광의 빛 주위에는 항상 그것을 빨아먹고 기생하는 어둠이 있다는 것을 나는 알지 못했다.


3.

"승부조작입니다."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조금 날이 서 있는 말투였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태도가 당연하다고 느낄 정도로 나는 내 앞에 있는 사람에게 화가 나 있었다.


그는 내 말을 듣고 능청스럽게 웃었다. 그는 한쪽 다리를 꼬고 소파 위에 두 팔을 걸치며 내 대답에 불만족스러움을 표현하고 있었다.


"승부조작이라니 그게 무슨 승부조작입니까? 단순히 말딸들이 달리는 것에 '조금의 재미'를 더하는 것이죠."


그는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입은 웃고 있었지만, 눈은 그렇지 않았다. 표독스럽게 나를 내려다보는 눈빛이 자신감을 더하고 있었다.


'너는 반드시 이걸 승낙하고 말겠지. 다 알고 있어.' 그는 그런 은은한 자신감을 내비치고 있었다.       


"어차피 이기는 년들만 이기는 뜀박질인데 그건 재미가 없잖습니까? 가끔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년들이 이기는 게 대회의 흥행에도 도움이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URA의 의의에 어긋납니다. 이사장님은 그런 의도로 대회를 창설한 것이 아닙니다. 노력과 의지로…"


"아, 그놈의 의지. 의지가 밥 먹여줍니까?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노력해서 무엇을 하겠습니까?"


그는 내 말을 자르며 달려들 듯 이야기했다. 나는 그를 노려보았다. 우악스럽게 큰 덩치를 가진 그는 나를 보며 낄낄거렸다.


"요즘은 재미가 있어야 합니다. 그 뭐냐… '엔터테이먼트'가 뒷바침이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못 들은 것으로 하겠습니다."


나는 일어서면서 말했다. 기껏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고 해서 만났건만, 일언반구의 가치도 없는 대화였다.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순간이었다.


"요즘 연예인도 그렇게 밥 벌어서 먹고 사는데 말딸년이라고 뭔들 못하겠냐? 아, 스폰서가 없어서 그렇구나? 걱정하지 마. 그깟 스폰서는 말만 번지르르하게 해 주면 알아서 기어온다고! 뭣하면 메지로나 사토노 가문에 스폰서 물어올게. 혹시 알아? 그 심볼리에서 데뷔시켜 달라고 예쁘장한 년들 몇 명 줄 지 누가…"


"야 이 쓰레기 새끼야."


나는 참지 못하고 그의 멱살을 잡았다. 머리가 분노로 들끓었다. 도저히 그가 내뱉는 말을 들어줄 수 없었다.


"너 지금 선 넘었어. 너 내가 누구 담당인지 알고 떠들고 있는거야?"


그는 히죽거리며 웃었다. 마치 예상했다는 듯 나를 바라보았다.


"너 후회할텐데?"


"집어치워."


나는 그를 집어 던지고 자리를 벗어났다. 여기서 더 시간을 지체했다가는 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더는 듣기 싫었다. 


"아 씨발. 이게 얼마짜리 옷인데 구기기나 하고 있어. 저 개새끼."


등 뒤에서 그의 말이 들렸지만 무시했다. 나와 상관 없는 이야기였다. 다행히 그 뒤에는 그녀들의 훈련을 도우며 시간을 보냈다. 이전까지 올라왔던 역겨움이 조금 가시는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새벽이 다 되어서야 정리를 하고 나올 수 있었다. 힘든 일이지만 보람이 넘쳤다.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며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 나는 승부조작범이 되어 있었다.  


4.

'충격! 중앙 트레센의 유명 트레이너 승부조작을 건의하다.'


'연예계 인물 A씨에 따르면 B 트레이너가 자신을 만나 승부조작을 건의했다고 밝혔다. A씨는 거절했으나, B씨는 협박으로 대응. 물리적인 충돌이 있었다. 그 결과 A씨는 전치 10주의 진단을 받았다.'


'해당 트레이너는 메지로 가문과 사토노 가문, 심볼리 가문, 그리고 여러 우마무스메의 담당인 것으로 밝혀져 충격…'


이른 아침부터 떠들어대는 뉴스에 귀가 얼얼할 지경이었다. 뉴스에는 상황이 뒤바뀐 가십거리를 내내 떠들어대고 있었고 그가 말했던 말이 내가 한 말이 되어있었다.


전화는 쉴 새 없이 울려댔다. 피 냄새를 맡은 피라냐 떼가 나를 쉴 새 없이 물어뜯고 있었고 내 평판은 바닥으로 떨어져 있었다. 급하게 기자회견을 잡으려 전화를 돌렸지만, 다들 합을 맞춘 듯 나를 피해다녔다. 


하루가 지나자 주변 지인들이 내게 등을 돌렸다.


이틀이 지나자 담당의 가문들이 등을 돌렸다.


사흘이 지나자 카시모토 트레이너와 키류인 트레이너가 내게 악담을 퍼붓기 시작했다. 


나흘이 지나자 주변의 우마무스메들이 나를 보고 욕을 하기 시작했다. 가끔씩 내게 날계란을 던지거나 발로 차기도 했다.


닷새째와 엿새째는 하야카와 , 아키카와 이사장님이 내게 해고 통보를 내렸다. 


그리고 일주일이 지나자 내 담당들이 나를 떠나갔다.


"제가 저런 사람을 두고 일심동체라고 생각했다니 너무 바보 같았아와요."


가문의 비원을 이루고 같이 나아가기로 했던 담당이 나를 매도했다.


"제발 저리 가 주세요. 더는 꼴도 보기 싫으니까요."


항상 내게 친절했던 담당이 나를 보고 역겨워했다.


"인심난측. 당신이 이런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 계약은 해지할테니 알아서 나가줘."


모든 우마무스메의 행복을 원했던 담당이 그 행복에서 나를 지우고자 했다. 


라이스 샤워도 키타산 블랙도 스페셜 위크도 에이신 플래시도 파인 모션도… 모두들 나를 떠나갔다. 결국 내 주위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나는 억울함을 뒤로 한 채 모두의 원망을 받으며 중앙을 나와야 했다.


5.

나는 담배를 꼬나물었다. 되는 일이 없었다. 가는 곳마다 승부조작범에 우마무스메의 몸을 노리는 무뢰한이 되어 있었다. 직장을 구할 수 없었고 일용직을 전전해야 했다. 


피해자로 나왔던 그는 연예계와 트레이너를 겸임하며 무마무스메를 긁어 모으고 있었다. 나는 텔레비전에 나와서 잘난듯 떠들어대는 그의 모습을 처량하게 볼 수 밖에 없었다. 어느덧 그는 내 담당들과 가까워져 가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참 원망스러웠다. 모두가 미웠다. 인연은 소용이 없었다. 얄팍한 말 한마디와 조잡한 증거에 이전의 추억은 헌신짝 버리듯 버려버리는 주위의 모습이 바보같았다. 


담배 한 개비가 다 타들어 갔다. 나는 담배 한 개비를 더 물고 라이터의 부싯돌을 돌렸다. 라이터는 칙칙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 불이 붙여지지 않았다. 꼭 지금의 내 모습 같았다. 입에 힘이 들어갔다. 담배가 끊어져 끝이 떨어졌다. 담뱃잎은 텁텁한 맛이 났다. 아니, 어쩌면 눈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방송에서 희희덕거리며 웃고 있는 담당을 보며 소리죽여 울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이제는 달리는 모습이 보기 싫었다. 


6.

바닷바람이 꽤 차갑게 느껴졌다. 밀려드는 파도가 시리다. 나는 그 가운데서 무엇을 하고 있나 생각했다. 솔직히 별 의미는 없었다. 이대로 저 바다 안으로 밀려들어가며 좋을 것 같았다. 


한 발씩 내딛는 걸음이 무겁지만 멈추지 않았다. 이제야 편해질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바다가 허리까지 잠기는 그 순간 무엇인가 나를 붙잡고 놓아주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니 쫑긋거리는 귀가 보였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자살은 안돼요!"


마냥 어린 모습이었지만 우마무스메는 우마무스메였다. 힘이 상당했다. 덕분에 그녀에게 이끌려 버둥거리면서 바다에 나와야만 했다. 


그녀는 앳된 소녀였다. 아직까지 본격화도 채 되지 않은 미성숙한 우마무스메였다. 그녀는 내게 살아가야 하는 의미를 마구잡이로 설명하기 시작했다. 먹을 게 많다는 둥, 아직까지 못 본 영화가 많다는 둥 사소하고 우스운 것들 뿐이었다. 


나는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밤 바다에 비추인 별이 보였다. 나는 웃었다. 미친 듯 웃었다. 숨을 정리할 틈도 없이 켁켁거리며 웃기만 했다. 그리고는 울었다. 바다를 채울 정도로 많은 눈물을 쏟았다.


내 웃음에 나를 어이 없이 쳐다보던 그녀도 내 눈물에는 당황이 묻어나왔다. 나는 알지도 못하는 그녀를 붙잡고 꾹꾹 눌러담았던 감정들을 토했다. 토할 정도로 쏟아져 나오는 내 비참한 외침을 바다가 묻어주었다. 오직 그녀만이 외침을 듣고 꼭 안아주며 위로할 뿐이었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7. 

그는 불만이었다. 쉬운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한대로 잘 되지 않았다. 그 짜증나는 트레이너를 추락시킬 때까지만 하더라도 온 세상이 자신을 도와주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거꾸로 내게 전부 억까하는 것 같았다.


"씨발… 제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네."


이름도 모르는 아무 말딸년을 꼬드겨 승부를 조작하는 일은 아주 쉬웠다. 실제로 몇몇 년들은 잘 따라주고 있었고 불만이 있어도 힘으로 누르면 군 말 없이 해댔으니까. 하지만, 그러고서 남는 것은 아주 적었다.


규모가 작은 대회는 상금이 적었다. 희희낙낙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액수였다. 그렇다고 큰 대회에서 그런 짓을 하자니 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만큼 까다로웠다. 


육욕을 채울 수도 없었다. 스폰서를 물어왔지만 그것도 하찮은 소규모 가문에서 이름이 없는 년들 뿐이었다. 그녀들을 따먹는 것도 하루 이틀이지, 점점 물리고 있었다. 


그는 많은 돈과 예쁜 여자를 원했다. 하다못해 예쁜 여자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를테면 심볼리 루돌프나, 메지로 멕퀸, 사토노 다이아몬드와 같은 그런 여자.


"콧대만 높아서는… 말딸이면 말딸답게 아래에서 앙앙거리기나 할 것이지…"


몇 번 치근덕대곤 있었으나 영 성과는 없던 그는 입맛을 다시며 아쉬운대로 그녀들을 대신할 한입거리를 찾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 그녀를 보았다. 잘 빠진 몸매에 튼실한 엉덩이, 흔들거리는 가슴의 신입생이었다.


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재빨리 그녀에게 다가가 이야기를 건넸다. 그녀는 사근거리며 그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었다. 얼굴도 반반히 생긴 게 써먹기 딱 좋은 년이었다.


"그러고 보니 달리는 솜씨가 좋던데 어디서 배우셨어요?"


그는 말을 건넸다. 이대로 적당히 구슬리다가 자신의 팀에 넣으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이 생각해도 완벽한 계획이었다. 그녀의 입에서 익숙한 이름이 나오기 전까지는 그렇게 생각했다.


8.

"씨발… 씨발…!"


그는 다른 사람이 보던 말던 신경쓰지 않고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세상에 다시는 들을 일 없다고 생각했던 이름이 그년의 입에서 나왔다. 그는 사라지지 않고 바득바득 기어오르려고 하고 있었다.


"얌전히 어디 조용한 곳에서 뒤질 것이지 왜 굳이 기어와서는…!"


그는 애꿏은 흙바닥을 찼다. 점점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의 이름이 왜 들렸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내 것이 빼앗으려고 하나? 아니면 내가 조작했다는 증거물이라도 가지고 있나? 이제까지 잘 있다가 왜 지금 나타나는 거지? 짜증이 났다. 


"그…그래! 다시 한번 더 나락으로 보내면 돼!"


그는 자신의 머리로 생각한 것을 기특하게 생각했다. 그리고는 능숙히 전화를 걸어 업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어 난데? 한번 더 일을 해 줘야겠어."


업자는 완곡히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더는 엮이기 싫다고도 했다.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씨발! 뭐 그렇게 착한 척이야? 이미 너 손 더러워진 거 한번 더 더러워지는 거 뭐 어때? 돈은 알아서 줄 테니까 까라면 까!"


그는 업자에게 윽박질렀다. 가만히 듣던 업자도 점점 목소리가 높아지더니 이제는 비아냥이다. 결국 전화를 내던지고 씩씩거렸다. 


"개새끼가… 지는 뭐 그렇게 착하다고…"


한참을 화를 냈다. 마땅히 방법이 생각나지 않는 게 더 화가 났다. 이대로라면 그에게 기껏 이뤄놓은 것을 다시 토해내야 할 판이다. 그는 궁지에 몰린 쥐처럼 안절부절거렸다. 그러다가 비릿하게 웃었다. 이거라면 그를 다시 못 올라오게 짓밟을 수 있다. 그는 그렇게 생각했다.


액정이 부숴진 전화를 들고 그는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


9.

나는 저녁 찬 거리를 사고 집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나름 더웠던 여름도 지나가버려 이제는 겨울이 다 왔다. 해가 지는 게 워낙 빠르다고 생각했다. 


"이전 주말에 내려온다고 했지?"


주말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녀가 내려오면 이번에는 전골이 좋을 것 같다. 갑작스러운 일교차에 춥다고 하소연했으니 내려오면 좋다고 먹을 것이다. 웃고 있는 그녀를 상상하니 죽은 얼굴에도 미소가 지어지는 것 같다. 


비록 전전하는 삶이지만 가치가 있는 삶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도 이대로 중앙에 가서 뛰어난 트레이너를 만나 성공하리라.


아직까지는 중앙이 너무 밉지만 사적인 감정과 그녀의 행복은 별개다. 지금은 그것을 구별하지 못할 정도로 망가지진 않았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별안간 누군가가 나를 치고 지나갔다. 사과도 없이 가는 모습에 화가 나 소리를 지르려고 했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아래를 내려다보니 쇠 조각이 복부에서 반짝이고 있었다. 


몸에 힘이 빠진다. 균형을 잡을 수 없다. 엎어지듯 쓰러진다. 배에는 불을 붙인 듯 뜨겁다.


"으아아… 으으…"


틈을 주지 않고 누군가가 다가와 날붙이를 빼고 다시 찔렀다. 피가 분수처럼 튄다.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린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아프다.


다시 한번 찔린다. 눈이 뒤집히는 고통이 들었다. 피 튀기는 소리가 들렸다. 뜨거운 피가 계속 흐른다. 나는 참지 못하고 구역질을 했다. 아프다.


균형을 잃었다. 어디가 위고 어디가 아래인지 분간할 수 없다. 


10.

"됐다! 씨발 됐어!"


그는 쾌재를 불렀다. 성공했다는 연락이 왔다. 이제 자신을 막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괜히 여기까지 기어나와서는…"


하지만 이제 별 상관 없는 이야기였다. 이제 더 이상은 그를 막을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콧노래를 부르며 담당 말딸년들이 모여 있는 회의실에 들어갔다. 기분이 좋으니 오늘은 인사나 할까. 


"얘들아 안…녕…"


맙소사 죽였다고 생각했는데 왜 그 자식 얼굴이 또 보이는 걸까. 그것도 텔레비전에 얼굴이 대문짝만하게 나와있다. 


'중앙 트레센에서 추방된 B 트레이너 사실은 오해였다. 피해자인 A의 자작극.'


'충격 고백! 자신이 증거를 조작했다. 설마했던 양심선언!'


익숙한 목소리였다. 이전에 그에게 거절의 의사를 밝힌 그 목소리였다. 


"그가 제게 거액을 주며 사주를 했습니다. 절대로 용서받지 못할 짓임을 알지만 용기내서 이 자리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가 빼앗았던 담당이 놀란 듯 텔레비전을 빤히 보고 있었다. 몇몇은 덜덜 떨고 있는 것 같았다. 


'해당 트레이너는 트레이너 직을 박탈 후 행적이 묘연하다가 방금 전 신원 미상의 인물에 의해 사망했다는 소식을…'


기나긴 고해성사가 끝나고 앵커의 얼굴로 전환이 되자 그년들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씨발… 좆됐네…"


그는 좋은 사람 연기를 위해 숨겨두었던 거친 육두문자를 내뱉었다. 



***

메이플 엔버 후회물 생각하다가 갑자기 생각난 소재

프롤로그 끝. 후회 파트는 시간되면 쓸게

피드백이나 맞춤법 지적 환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