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느 때와 같을 엘리아스의 화창한 어느 날.

그런 나날을 만끽하는 데에는 이상적인 짓을 하고 있는, 한 업무태만자에게서 이 이야기는 시작된다.


"쿠울... 음냐... 음... 어, 으앗!? 지, 지금 몇 시지?"


잠을 자라고 있는 게 아닌 가구 위로 퍼질러져 있다가, 교주는 조건반사적으로 시계를 찾으며 허둥댈 뿐.

하지만 시계가 말하는 것은 낮밤의 어느 한 쪽일 뿐.

어느 쪽인가 하고 있자면 햇빛이 선명하게 교주를 비추고, 안도의 한숨이 흘러나온다.


"휴우... 다행이다. 또 업무가 밀렸다간 네르한테 한 소리... 어?"


교주가 책상을 둘러보자, 산더미만큼은 아니어도 나름 수북했을 서류더미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뭐야, 이게 다 어디 간 거지? 분명 잠들기 전에 반도 못 끝냈는데..."


아직 손도 다 못 댄 서류들이 어디로 사라졌을까? 바람이 불거나 발이 달려서 도망갔을까?

그보다는 누군가 장난이랍시고 훔쳐갔다고 생각하는 게 빠를 것이고, 그 생각은 순식간에 확신이 되었다.

그로 인해 그 누군가가 벌을 받거나, 다른 누군가의 민원 처리가 늦어지는 일보다도,

책임자인 자신이 네르한테 혼나는 것이야말로 교주에게 심각한 사안이었다.


"으... 이런 짓을 할 만한 녀석이 한둘이 아니긴 하지만... 일단은 무작정 찾아보는 수 밖에 없어!"


그렇게 말하며 교주는 나름 비장하게 문을 나섰다.




그러고서 그리 오래 지나지 않은 잠시 후.


"...좋아, 우선은 용의자 하나 발견. 야! 에르피...이?"


교주는 당연한 일처럼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요정을 여느 때처럼 불렀다. 부르려 했다.

그러나, 무언가가 이상했다. 그렇다기보다 잘못됨에 가까운 듯 했다.

그 광경에, 교주는 미처 그 요정의 이름을 다 부르지도 못했다.


"응? 교주, 갑자기 무슨 일이지?"

"어...어어?"


그 모습과 목소리는 교주가 지긋하리만큼 잘 아는 그 요정의 것이었으나,

그 이외의 언동은 가장 사소한 것부터의 하나하나가 그 사실을 집요하게도 부정했다.

교주 딴에는 급한 사안이니 일단 부르고 봤지만, 불러세우기 전의 걸음걸이부터 고개를 돌아보는 동작까지도,

교주가 알던 그 요정에게서는 밀가루 한 알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지성과 기품이 밀물처럼 넘쳐났다.


"에, 에르핀? 에르핀 맞지? 혹시 뭐 잘못 먹기라도 한 거야? 아니, 너 에르핀 맞아?"
"허어? 해가 중천인데 잠이 덜 깼나? 엘리아스의 수호자, 요정 여왕 에르핀인 게 당연하지 않느냐."

"어, 어어? 응?"


기존의 이해를 완전히 벗어난 상황 앞에서, 교주는 잠깐동안 깨어있는 채로 정신을 잃는 기이한 경험에 빠졌다.


"후우... 교주, 아까부터 상태가 말이 아니구나. 그대야말로 뭔가 잘못..."

"아, 아아! 그보다도! 에르핀, 혹시 내 책상에 있던 서류들 가져갔어? 이번에도 밀리면 네르한테 혼날텐데!"

"...뭣이? 교주, 지금 뭐라고..."

"아, 아니라는 거지? 그렇지? 그럼 내가 좀 바빠서. 나중에 보자!"

"자, 잠깐! 교주!"


당장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봐야겠다는 생각에 반쯤 좀먹힌 채로, 교주는 에르핀을 지나쳐서 저 멀리 달려갔다.




"허억... 허억... 윽, 켈록켈록..."


평소보다 숨이 족히 두 배는 찬 것조차 자각하지도 않고 뛰다 지쳐 교주는 멈춰섰다.


"켁켁... 으... 여기는... 에슈르네 빵집? 아니, 그런데..."


교주가 멈춰선 앞에 있는 것은 요정 왕국 최고의 빵집.

그리고 그곳에 이르러서야, 교주는 어떠한 위화감을 이윽고 깨닫는다.

개운하다. 폐가 타버릴 것처럼 뛰어서는 아니었고, 그보다도 오래된 감각이다.

공기가 맑았다. 코로 음식을 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리만큼, 빵과 설탕의 냄새로 가득하던 그 공기가.

심지어는 빵 먹는 하마가 살다시피 하던 그 빵집으로 이목구비가 향하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교주님, 괜찮으세요? 대낮부터 얼굴이 시뻘개져서는..."


바깥이 소란스럽다 싶었는지, 빵집 문을 열고 에슈르가 교주와 마주쳤다.


"아, 에슈르. 아니, 그러니까... 후, 그래. 일단 좀 쉬고 얘기하자..."


그렇게 잠시 한숨을 돌리고 앞으로 몇 숨은 더 돌릴 겸, 교주는 빵집 안으로 자리를 옮겼다.




어찌저찌 숨을 고르고, 교주는 에슈르에게 직전까지 있었던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그렇게 됐다니까. 가뜩이나 급한데 에르핀까지 저러니까 도대체가..."

"...교주님."


그러나, 에슈르의 반응은 감히 교주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진짜, 더위라도 먹었어요? 아까부터 무슨 말을 하는 건지 하나도 못 알아먹겠다구요!"

"어, 뭐, 어? 무슨 소리야?"

"아니, 사제장님은 교단에서 종일 안수 기도 중이고, 왕국 민원은 여왕님이 재깍재깍 처리하시고 다니시잖아요? 애초에 밀린 민원 서류가 교주님한테 쌓인다는 것도 말이 안 되고."

"...뭐?"

"그리고 뭐? 지성? 기품? 새삼스레 여왕님한테 반하기라도 했어요? 원체 완벽하신 분이니까 이해를 못할 바는 아니긴 한 것 같아도..."

"자, 잠깐, 잠깐! 에슈르 너까지 왜 이래? 에르핀한테 빵 갈취당하다가 기어이 정신이 나간 거야?"

"하아? 여왕님이 무슨 갈취를 해요? 별 이상한 소리를 다 듣겠네."


교주는 도통 혼란을 헤어나올 수 없었고, 에슈르 또한 어떤 의미로는 마찬가지로 그러했다.

그리고 미약하게나마, 교주를 향한 선명한 경멸감이 에슈르의 표정에 배어들고 있었다.


"아무튼간에, 저 이제 수업 준비해야 하니까 슬슬 나가주세요. 하는 김에 교단에 가서, 한동안 나오지 말고 잠이나 푹 자시구요!"

"자, 잠깐! 에슈르!"


교주는 진상짓이라도 저지른 것처럼 밀려나 문 밖으로 쫓겨났고, 빵집 문은 다시는 열리지 않을 것처럼 쾅 하고 닫혔다.


"대체 이게 다 뭐야... 정말로 내가 이상해진건가?"


서둘러야 할 이유조차 이젠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는 채로, 교주는 힘 없이 교단 본부로 돌아갔다.

그리고 달리 쌓아올려진 것도 없는 책상을 지나쳐, 침대에 쓰러진 채 시간을 흘려보냈다.




"...주! 교주! 어서 일어나보거라!"

"음... 또 누구...? 에? 에, 에르핀!?"


시간이 지나 해가 저물어 가던 무렵. 잠자던 교주를 깨운 것은 요정 여왕이었다.

여전히 교주가 알던 모습과는 딴판으로, 있을 수 없는 분위기를 풍기는 모습이었다.

지적이고 고결한 품격과, 심각하고 절박한 다급함.

이미 맨정신이기나 한 지 모르겠는 교주는 손으로 발버둥을 치려다 문득 깨닫는다.

까닭 모를 절박함을 담아, 에르핀이 옷자락을 매달리듯 움켜쥐고 있었다.

억지로 벗어나려고 한다면, 옷자락은 반드시 찢어지겠지만 벗어날 수는 있었을지도.

하지만 그래서는 안된다. 실낱같은 이성으로부터 교주는 그렇게 느꼈다.


"무, 무슨 일인데? 갑자기... 그보다도, 오늘 너네들 다 왜 이래? 나만 다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잖아!"

"...교주. 중요한 얘기가 있다. 부탁이니... 잠시만 내 말을 들어다오."


냉철한 이성과도, 냉혹한 회한과도, 하지만 냉정한 매도와는 다른 차가운 감각.

그 애절한 청에 따라, 교주는 이성을 바로잡으려 애썼다.


"묻고 싶은 게 너무나도 많다. 그대도 같은 심정이겠지만, 내가 먼저 한 가지를 묻겠다."


숙연히 숙여져 있던 에르핀의 시선이 교주와 마주쳤다.


"교주, 그대는 내가 에르핀이 아니라면... 달리 누구로 보이는가? 이와 같이 행동하는 자가, 달리 누구였어야 한다는 말인가?"

"어... 굳이 말하자면, 그런데 이걸 굳이라고 말해야 하나...?"


답을 내어놓는 것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오히려 근래의 혼란을 아직도 갈무리하는 것이 여전히 일이었겠지.


"...벨리타?"

"...!"


아직 옷자락을 단호히도 움켜잡고 있던 에르핀의 손이 떨리고 풀리며, 기품 있는 채로 요동치기 시작했다.

이내 손아귀에서 옷자락이 떨어져 나갔을 즈음, 그 떨림은 애써 멈추었다.


"그런가. 그대는, 그대에게는 그러한가..."

"...에르핀?"

"...교주, 그대가 그렇게 말한다면 어쩌면... 아니, 필히 함께 가야만 할 곳이 있다."

"간다니... 어디로?"

"가는 길에 모두 얘기해주마. 그리고, 그대도 얘기해줬으면 한다."


에르핀은 교주의 손을 잡아채고는 교주를 자리에서 끌어낸다.


"...그대가 알던 세상의 이야기를."




에르핀의 손에 이끌려 급히 향한 곳은 요정 왕국 어딘가의, 지하로 향하는 큰 계단이었다.


"요정 왕국에 이런 계단이 있었나? 내가 요정 왕국을 다 아는 건 아니긴 한데..."

"짐작컨대, 그대 세상에서는 이게 있어야 할 이유가 없었을지도 모르겠구나."

"내 세상? 지구에도 계단 정도는..."

"미안하다. 어폐가 있었구나. 그대가 있던 엘리아스에서는 말이다."

"어?"


멈칫, 교주가 그리 멈춰서고, 곧이어 에르핀이 다시 손을 잡아끈다.

그리고 이야기를 다시 이어나갔다.


"분명 그대는 이곳과는 닮아 있으면서도, 결정적인 무언가가 다른 세계의 엘리아스에서 온 것이겠지. 사제장에게서 떠맡아진 일처리에 시달리기도 하고, 다른 이들의 장난에 어울려주기도 하는 세상에서 말이다."

"어, 으응. 그러고보니 에슈르가 말했어. 네르는 종일 기도 중에, 웬만한 일은 에르핀 네가 맡아서 하고 있다고."

"그래. 나도 에슈르에게서 그대와 만난 일을 들었다. 서로 자기 세상의 맞는 말을 했을 뿐일텐데, 안타까운 일이구나."

"어, 그래서 그게 다 정말이라고?"

"그렇다. 일단 이 세상에서는 말이다. 그리고 그게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차이였던게지."


잠깐의 침묵을 지키며, 둘은 깊은 지하로 이어진 나선 계단을 돌아 내려가고 있었다.

몇 단이나 되는지 모를 계단은 그 끝을 모를 것 같으면서도,

저 너머에서 묵직한 채로 일렁거리는 기운은 그 끝이라는 것이 분명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벨리타... 언니에 대해 이야기했지. 그쪽 세상의 언니는 어떤 인물이었나? 그대가 말하는 걸 봐서는 분명 총명한 여왕이었을테지."

"응. 자기 왕국과 세상을, 그리고 동생을 무척이나 아끼는 성실한 여왕이었어."

"...그렇구나."


에르핀은 미세하게 고개를 떨구어 아래를 보았다.


"이 세상에서는, 우리의 입장이 그대 세상과는 반대였던 것이다. 나는 그대 세상의 언니와 같이 총명했고, 언니는..."


기어이 에르핀의 눈에는 눈물이 맺히고, 다섯 걸음을 채 옮기기도 전에 떨어졌다.


"...그대 세상의 나와 같이, 순수하고, 무구하고도... 무지했지."




"힘과 야망이 다스리는 뿌리의 세상은 그런 언니를 다듬어줄 수 없었다. 우리 자매에게는 방대한 힘이 깃들어 있었고, 언니가 여왕의 자리를 공고히 하는 것은 조금도 어려운 일이 아니었지. 하지만... 그래서는 아니되었던 거다. 더욱이 뿌리의 세상에서는 말이야."

"확실히... 내가 있던 세상에서는 네르가 많이 힘쓰고 있었지. 지하에도 네르 같은 마녀가 있었을지는..."
"적어도 이 세상에서는 없었던 것 같구나. 마녀들의 근본은 야심가였으니. 총명한 누군가가 병든 이를 몰아낼 수는 있어도, 몰아낼 수도 없는 것을 가꿔내기는 어려웠을테지."

"그러면... 마녀 왕국은 통제가 안 되는 구제불능의 난장판이 되어 돌아가는 거야?"

"...왕국이라."


걸음을 옮기고, 말을 옮길 때마다, 에르핀의 걸음에는 아직 교주가 모를 회한이 덩이지고 있었다.


"언니는... 자유로웠다. 그리고, 나를 무척이나 아껴주었지. 모든 것을 내치고, 내던지면서까지."


어느 순간, 계단 끝에서 느껴지는 기운은 더욱 짙어졌고,

눈에 보이는 것은 아니어도, 명백히 에르핀을 휘감고 있음이 느껴졌다.


"그런 언니를 앞세운 무리들이 종종 요정 왕국을 찾아오기도 했었다. 어떤 날에는 왕국의 길이란 길을 가득 메우기도 했고, 또 어떤 날에는..."


에르핀은 잠시 멈춰서서, 처음으로 계단의 윗편을 올려다보았다.

나선 계단을 빙빙 돌았으면서도, 그 시선이 어느 방향을 향하는지는 명확했다.

미처 말을 이어가지 못한 채, 에르핀은 한숨을 토해내고는 계단에 걸터앉았다.


"...에르핀?"

"내 말만 무례하게 길어졌던 것 같구나, 교주."


갑작스럽게도 줄어든 그 말은 매정하고 무책임한 명령과도 닮았다.

그렇지 않은 그것은, 단지 더는 애써 말하지 못하겠다는 애원하는 호소이기도 했다.

교주는 아직 이 세상을 명백히 알지는 못하나, 에르핀이 이어 말하고 싶었던 것은 알 듯도 싶었다.

이내 교주도 계단에 걸터앉아, 자신이 있던 엘리아스의 이야기를 풀어놓기 시작했다.


몇 차례인가 웃고, 진지함과 장난기를 곁들인 문답이 오가기도 하였다.

지금의 자신에게는 대개 있을 수 없었던 행복한 나날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며 에르핀은 크게는 되지 못한 웃음을 짓곤 하였다.




이윽고 다시 걸어내려가자 머잖아 바닥에 닿았다.

그곳에는 검은 철로 지어진 암자와도 같은, 창문 없는 철옥이 하나.


"...이렇게 해야만 한다고, 분명 그렇게 생각했건만."

"......"


가까이 가자 시야를 검붉게 흐트려놓는 그 기운은,

누구의 것인지, 누구를 부르는 것인지가 너무나도 자명했다.


"교주."


비틀린 시야에서 홀로 선명하게, 교주는 자신을 바라보는 에르핀을 보았다.


"이쪽 세상에도 그대가 있었다. 세계수에게 선택받은 교주로서의 그대가. 그리고... 단지 그뿐이었다. 누구도 그대가 찾아온 의미를 짐작조차 하지 못했지. 아무 의혹도 없이 그대는 세계수의 부름을 받은 귀빈으로서 대접받았다."


뜻밖이라는 반응은 보이지만, 감히 말을 끊어 맞출 분위기가 아니었다.


"지금이라면 나는 그 의미를 얼추 알 것도 같구나. 그리고... 언니 또한 알았던 것이겠지. 그렇기에, 세상을 살짝 찢어서라도 그대를 불러들였던 것이야. 그럴싸하기만 한 이 세상을 개탄하고... 하여금 우리가 행복했을 세상을 살아왔을 그대를."


그런 날을 마음에 그리며 웃어보이지만, 눈가에서 조용히 흐르는 눈물방울.

그것을 애써 고개를 휘둘러 털어내며, 에르핀은 다시 말을 붙였다.


"교주. 그대가 이쪽 세계로 넘어온 틈새는 이곳에서 비롯되었을 터. 그러니, 이곳에서라면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에르핀, 너는..."

"...오랜 선약이 있었으니 말이다."


무심코 교주가 손을 뻗지만, 에르핀은 제지하듯 돌아서 지팡이를 땅에 짚어 두드린다.


"그대에게는 아직 그대 몫의 할 일이 있지 않은가. 늑장부리는 건 좋지 않은 법이다."

"하지만..."

"이건... 이곳에는, 이제 내가 마주해야 할 일밖에 없다."


각오에 호응하듯 철옥이 갈라지고, 비틀어지며, 틈새로 광기 어린 마력이 몰아친다.


"에르핀!"

"...그 나날들을 보여주어 고마웠다, 교주."


현실을 찣는 광풍은 이내 교주가 땅에 발을 딛는 것조차 허하지 않았다.

교주는 격류에 휩쓸려 벽조차 없는 저 편으로 날려갔다.


그리고 이내, 요동 속에서 익숙한 흐름이 교주를 잡아끌었다.






머리가 얼얼하다. 교주는 그리 생각하며 햇살 아래를 걷고 있었다.

기어이 몽둥이가 업무태만자에게 날아들어서는 한 번의 쓰임에 대신하여 목이 날아갔으니까.


"너무한 거 아니야? 아니, 그 많은 서류를 어떻게 혼자 다 처리하고 있으라는 건지..."


머리를 부여잡고 툴툴거리며, 별 이유 없이 거리를 걸어가며 기분을 돌려댄다.

그러다 문득, 귀를 기울이면 어느 쪽은 소란스럽고, 또 어느 쪽은 곱절로 소란스럽다.

코끝부터 뱃속까지를 짓누르는 느끼하리만큼 진한 단내.

지긋하리만큼 익숙한, 여느 때와 같은 일상.

어떤 날에는 무심코 헛구역질이 돌기도 했지만, 어째선가 교주는 기이하리만큼 평온했다.


"..."


어째서인지는 스스로도 알지 못했다. 어째서였을까, 왜냐는 질문은 적절치 않았다.

단지 여느 때처럼 교주는 이 자욱한 냄새에서 속을 헹구던 셈 치며 어둑한 길로 발을 옮긴다.

언제였던가, 어느 날로 정했던 일을 지키는 것도 나쁘지 않겠거니 하면서.

애초에 그런 날은 없고, 있지도 않은 이상한 날이었음에도 말이다.






- 필자 후기

초안에서는 모든 엘프와 마녀의 특정 성향이 반전되어, 네르가 벨벳이 되는 세상도 생각.

이내 대가리가 반파되어 에르핀과 벨리타로 반전을 한정함.

둘 다 이상적인 여왕인 세상은 볼따구 맛이 나지 않으리라 강조.

참고로 멸망 엔딩이 아니라, 단지 덴져러스 베이비 하나를 출소시켰을 뿐.

직전작보다 희망을 쬐금 더 첨가.

그리고 오늘도 부족하다.


- 추가 후기

'엘리아스의 수호자, 요정 여왕 에르핀 등장'.

이거 진중하게 들어보고 싶어졌다.

물론 반대쪽의 반대 경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