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유달리 날씨가 이상한 날이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맑고 화창했던 하늘에 난데없이 소나기 구름이 몰려왔다. 

   어두운 구름으로 우중충해지며 점점 잿빛으로 변해가는 하늘에 괜히 마음이 무거워졌다.

   이윽고 거리 위론 빗줄기가 사정 없이 쏟아져 내렸다. 살결에 닿으면 따갑게 느껴질 정도로 세차게 내리는 비는, 마치 먹구름이 바늘을 한가득 집어삼켰다가 땅으로 토해내는 모습처럼 보였다.

   버스와 지하철은 한동안 마비되었고, 2교시를 끝마치고 찾아온 짧은 쉬는 시간, 학교에서는 특별 휴교령이 내려졌다.

   학생들은 저마다 환호성을 내지르며 빠르게 가방을 정리했다. 그리곤 교사들의 지도에 따라 순차적으로 한 반씩 교사 건물을 나섰다.

   복도의 가장 마지막 반. 가장 마지막 순번으로, 나는 가방을 챙겨 중앙 입구에서 신발을 갈아신었다.

   교문 바깥으로 아이들을 데리러 온 학부모들의 모습이 모였다. 많은 수의 아이들이 부모님의 손을 잡거나 차를 타고 교문에서 점점 하나 둘씩 사라졌다.

   부모님이 바쁜 일로 오지 못한 그런 아이들은 서로 친구와 손을 맞잡고 같은 방향으로 걸어갔다. 또다시 상당 수의 많은 아이들이 교문을 빠져나갔다.

   멍하니 사람들이 오가는 교문을 바라보는 동안, 정신을 차렸을 땐 나 혼자만이 빈 운동장 계단에 남아있었다.

   양철로 된 계단 지붕을 빗방울이 계속해서 두들겼다. 계속 듣고 있자니, 마음이 꽤 고요하고 차분해지는 소리였다.

   '난 나를 데리러 와줄 바쁘지 않은 부모님도, 함께 손을 잡고 같이 걸어갈 친구도 없어.'

   "학생. 거기서 뭐하니?"

   흠칫 놀라 고개를 돌리자 수위 아저씨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이쪽을 바라봤다.

   "학생. 휴교령인데 왜 아직도 안가고 있어? 부모님한테 연락해줄까?"

   "아, 아니에요. 금방 가려고 했어요."

   도망치듯 나 자신도 모르게 계단 지붕을 빠져나와 그대로 운동장을 가로질러 교문까지 뛰어갔다.

   차갑고 무거운 빗줄기가 사정 없이 몸을 짓누른다. 제법 먼 거리까지 뛰어갔을 땐, 양말 안쪽까지 빗물이 가득 들어차 걷는 내내 불쾌함이 몰려왔다.

   "나한테도 마음을 나눠줄 상대가 있었다면, 그랬다면 이 축축하고 답답한 마음도 조금은 괜찮아지지 않았을까?"

   혼자서 아쉬움을 달래며 걸아가다 미처 보지 못한 물웅덩이에 발이 그대로 미끄러졌다.

   "아야…!"

   그대로 뒤로 넘어져 물웅덩이가 가득한 축축한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으으으……오늘 하루는 진짜 최악이야!"

   집에 도착하면 바로 옷을 갈아입고 따듯한 코코아를 마시며 지친 마음을 녹이는 거야.

   그런 식으로 스스로의 마음을 위로하며 앞을 보았을 땐 어느새 강변 앞에 도착해있었다.

   도시 중심을 가로지르는 하천은 금세 불어나 빗물로 강물이 범람하기 시작했다.

   경사면으로 지어진 도랑의 절반까지 물이 가득 차오르려 하고 있었다.

   매섭게 요동치는 물결은 마음의 두려움을 더욱 크게 만들었다.

   한순간 매년 이맘때쯤 뉴스에서 반복되는 홍수 사고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대로 여기에 있으면 안 돼. 뒤도 돌아보지 말고 도망치는거야.

   그렇게 서둘러 걸음을 옮기려 했을 때, 쏟아지는 빗줄기 사이로 무언가 소리를 들었다.

   처음엔 착각이라 생각했지만,

   "냐아아―!"

   다음번엔 확실하게 들렸다.

   잘못 들은 게 아니었다.

   고개를 내려 살펴보자, 도랑 밑에서 왠 검은 고양이가 구슬프게 울고 있었다. 그리고 검은 고양이가 바라보고 있는 쪽,

   강변 가장자리에 이질적인 검은 형체가 눈에 띄었다.

   계단을 따라 조심히 내려가 살펴보자 검은색 털을 가진 새끼 고양이였다.

   새끼 고양이 한 마리가 강변에 자란 풀잎을 붙잡은 채 간신히 몸을 매달리고 있었다.

   힘이 부친 모양인지, 붙잡은 손을 금방이라도 놓을 것 같이 한시가 위태로워 보이는 상태였다.

   "냐아아……"

   마치 구해달라는 듯 어미 고양이가 내 발 밑으로 다가와 불쌍한 표정으로 울었다.

   그 모습이 어쩐지 지금의 나와 비슷해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다.

   그게 비록 말 하나 통하지 않는 검은 고양이의 것일지라도.

   외로움의 끝에 다다른 상태에서도 나는 나 자신을 내버려둘 수 없었다.

   순간적으로 기지를 발휘해 제법 길고 단단해 보이는 나뭇가지를 찾았다.

   그리고 물살에 휩쓸리는 걸 주의하며 발목 아래까지 강물에 발을 담갔다.

   뼈가 시릴듯 차가웠고, 휩쓸리는건 아닐까 무척이나 두려웠다.

   그럼에도 손은 나뭇가지를 길게 뻗어 아기고양이가 있는 곳까지 닿았다.

   공포와 긴장감이 계속해서 반복적으로 교차되었다.

   빗물인지 식은땀인지 알 수 없는 물방울이 피부를 타고 흘러 내려왔다.

   "제발... 제발... 고양아. 좀만 더 힘을 내...!!"

   "냐아아―!!"

   어미도 옆에서 힘을 내라는 듯 긴장된 울음소리로 새끼를 부추겼다.

   어미의 울음소리에 반응한 새끼 고양이는 나뭇가지의 넓은 부분으로 손을 뻗었다.

   꼭 끌어안았을 때, 나는 틈을 놓칠세라 뻗은 나뭇가지를 확 잡아 끌어당겼다.

   그리고 아기 고양이와 손이 닿았을 때, 떨어지지 않도록 품 안에 꽉 붙잡았다.

   "하... 구할 수 있어서 정말로 다행이야....."

   그렇게 두 고양이를 구해 가족으로 받아들인 지가 벌써 반 년도 훨씬 지난 여름의 일이었다.

   지금은 어미 쪽도 새끼 고양이도 무럭무럭 자라나 안락한 삶을 이어가고 있다.

   구한 직후 동물 병원에 데려간 것부터, 주인이 없는 걸 알고 부모님을 진중하게 설득하며 두 녀석을 키우게 된 순간까지.

   그때동안 나는 내 안에서 무언가 자신이 변화해가는 걸 느꼈다. 

   처음 무언가를 하고 싶다고 목소리를 내어 말을 꺼냈을 때, 부모님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처음으로 반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눴을 때, 그 때는 하루가 이렇게나 빠르게 흘러갈 수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지금은 제법 바라는 걸 솔직하게, 하고 싶은 걸 용기 내어 말할 수 있다.

   만약 그 날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홍수에 휘말린 너희들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마치 겁쟁이처럼 내가 그 자리를 피해버렸다면,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내가 될 수 있었을까.

   아무리 생각해봐도 역시 머릿속에 떠오르는 대답은 "아니." 뿐이다.

   게으르지만 상냥한 이 두 마리의 검은 고양이가, 줄곧 우중충한 먹구름으로 가득했던 내 마음에 화창한 나날들을 가져다주었다.

   검은 고양이가 불운의 상징이라는 것도 이제 다 옛말이라니까?


   여느 때처럼 또다시 비가 내리는 날, 한 이야기가 시작된다.

   비가 세차게 내리던 날, 홍수가 범람한 강변 아래에서, 우리들은 기적처럼 서로를 만나게 되었다.

   이것은 비를 무서워하는 두 검은 고양이와, 화창한 날씨를 기대하는 한 소녀의 작은 일상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