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야가 군단으로 다시 돌아온 날, 그녀는 피골이 상접한 군단의 단원들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필시 조야가 사라지며 일거리가 줄어 제대로 끼니도 때우지 못했음이라. 이에 그녀는 이상함을 느꼈다.


아무리 자기가 오랫동안 자리를 비웠기로서니 히로처럼 든든한 딜탱이 취직을 못 할 정도라고?


조야는 잔뜩 풀이 죽은 히로의 머리칼을 손가락으로 헝클어뜨리며 믿음직스레 웃음을 지었다.

"걱정 마. 내가 왔으니 이제 매일 실컷 먹고 마셔도 남을 거다."


그러나 조야는 대장이 돌아와 기쁜 얼굴을 한 단원들 뒤에 감춰진 그늘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mbcc의 사무원 무무는 군단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에 들어올린 수화기를 제대로 귀에 가져다 대기도 전부터 입을 열었다.


"히로. 사정은 이해하지만 파견 순번이 아직-"


"그러면 방어선으로 하지. 오늘이 월요일이었지?"


"죄송하지만 지금 전화 거시는 분이-"


"조야. 군단장이지. 오랜만이야."


"아아..."


부서진 방어선의 브랜드라면 조야 본인의 주무대가 아니던가?


국장이 그동안 방어선에서 그녀 없이 얼마나 고생을 했을까. 조야가 돌아왔다는 말을 들으면 기뻐서 그 허약한 몸으로 방방 뛰어다닐 게 뻔했다.


"브랜드라면 내 전문이지. 오늘의 파트너는 누구지? 녹스? 플로라?"


"음... 어..."


한참이나 망설이던 무무는 직접 MBCC로 와주실 수 있겠냐는 말과 함께 전화를 끊어버리고 말았다.


조야는 이상함에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이내 털어내고 MBCC로 향하기 위해 옷장을 열어젖혔다.


"이봐. 망자의 포옹은?"


문 밖에서 대기하던 군단의 멤버에게 조야가 묻자 그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조그만한 목소리로 답하기를-


"저, 그게... 관리국에서 회수해간 지 1년 가까이 됐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 조야의 모터케이트는 불안감을 떨쳐내려는 듯 빠른 속도로 도로를 질주하고 있었다.


그녀는 바람에 휘날리는 옷자락을 바라보았다. 조율과 신의 가호. 국장이 리세마라로 그녀를 영입한 뒤 가장 먼저 달아준 낙인이었다.


브랜드, 회색머리 소녀, 나인티나인, 스켈레톤, 화염 오크, 탐식자...


국장이 마주치는 가장 커다란 위협에 그녀가 함께했고 그 역경들을 이겨낼 때마다 국장은 병아리처럼 아장아장 다가와 그녀에게 "네가 최고야"라고 말해주곤 했었다.


옛 기억에 웃음을 짓던 조야는 이윽고 비쩍마른 단원들의 몰골이 문득 떠오르자 표정을 굳히며 다짐했다.


"국장에게 이 일에 대한 대답을 들어야겠어."


--


"안됩니다."


MBCC의 가드들은 길길이 뛰는 조야를 진정시키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언제부터 자기가 국장과 면담하는 데 허락이니 절차니 하는 걸 따졌냐는 말이었다.


조야도 당혹스럽긴 마찬가지였다. 이전엔 제지고 뭐고 눈을 한 번 부릅뜨고 쳐다보기만 하면 알아서 길을 트던 가드들이 언제 이렇게 완고하게 변했단 말인가?


소란에 수감자들이 주위로 몰리며 수군대는 소리도 들렸다.


'조야? 아, 그 조야 말하는 거야?'


'햐. 퇴물이 된 게 언젠데 아직도 저러고 다닌담.'


민망함에 얼굴이 붉어진 조야는 눈을 굴리다 익숙한 얼굴을 찾고는 달려가 목에 팔을 감았다.


"녹스? 녹스구나! 반갑다, 반가워."


녹스는 예전의 모습 그대로였다. 무표정한 얼굴로 눈을 끔벅거리며 자신을 쳐다보는 녹스를 보며 조야는 옛날의 이야기를 꺼내 늘어놓았다.


"그때 꼭두각시를 잡느라 정말 힘들었지. 요즘 방어선은 어때? 플로라랑 평캔하니 죽을 맛이지? 같이 국장실에서 차나 마실까?"


조야가 녹스까지 데려오니 가드들은 못이기는 척 길을 열 수밖에 없었다. 곧 국장실의 문이 벌컥 열리며 조야가 소파에 당당히 앉으며 입을 열었다.


"반가워, 국장. 내가 보고싶진 않았나?"


국장은 냉랭한 얼굴로 조야를 흘깃 쳐다보았다. 자신이 돌아왔다는 것을 알면 뛸듯이 기뻐할 줄 알았던 국장에게서 아무 반응이 없자 조야는 점차 초조해져갔다.


지금껏 애써 외면하고 있던 의문들이 하나씩 고개를 들었다. 조야는 무거운 침묵속에서 숨을 고르다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방어선을 도와주러-"


"조야. 시간이 많이 지났어."


국장이 말을 끊었다. 조야는 국장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녹스를 쳐다보았으나 녹스는 다른 곳을 쳐다보았다. 그럴 리 없겠지만, 녹스가 자신의 눈을 피하는 것만 같았다.


"이제 브랜드는 없어. 네가 고민의 코어와 싸울 수 있겠어?"


그 말과 함께 탁자 위에 서류가 올라왔다. 방어력 300, 체력 88만... 조야는 입을 뜨억 벌리며 몇 번의 평캔이 필요할지 머릿속으로 계산해 보았다.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았다. 국장이 함께 보여준 영상엔 검은 드레스를 입은 커다란 가슴의 여자가 필살기 한 번에 수십만의 데미지를 꽂아넣는 모습이 보였다.


"그러면 우물이라도..."


국장이 그말에 다른 영상을 틀었다. 영상 속에선 코트를 어깨에 걸친 묘령의 여인이 팔을 휘두르니 적들이 한번에 서넛씩 쓰러지고 있었다.


"유랑민 촌락에서 해결할 문제가 있다던데..."


국장은 한숨을 쉬며 질린다는 듯 마우스 위에 올린 손가락을 과장스레 들었다 떨어뜨렸다.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화면이 전환됐다.


스크린에선 그 튼튼하던 데몰리아가 사냥개들에게 몇 번 물리자 피투성이가 되어 도망치고 있었다. 이내 화면이 검게 암전하며 치지직-하는 소리를 내다 영상이 끊어졌다.


"조야. 네 노고는 충분히 인정하고 있어. 네 레벨과 스킬, 전용낙인도 모두 그에 대한 나 나름의 보답이었고."


조야는 고개를 떨구어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5족쇄, 90레벨, 3단계 전용낙인, 4개의 석판까지- 그녀는 분명 국장의 자랑거리였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 시간이 지났어, 조야. 정말로 많이."


조야는 그제서야 자신을 쳐다보던 단원들의 미소에 섞여있던 그늘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이제 쓸모가 없어졌구나.


하지만 오늘 빈 손으로 돌아가면 필시 단원들은 오늘 하루를 굶을 터였다. 그녀는 다급한 목소리로 국장에게 애원했다.


"국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거야. 하물며 소탕 작전의 멤버로라도..."


국장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소탕작전의 멤버들을 살폈다. 아직 복종도 100을 채우지 못한 수감자들이 많았다.


"미안해."


고개를 저으며 사과하는 국장의 말에 조야는 체념하고 자리를 떠날 수 밖에 없었다. 국장이 얼마나 단호한 사람인지는 그녀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


앞날을 걱정하며 무거운 발걸음으로 MBCC를 떠나는 길에 조야는 B급 수감자 레버린스를 마주쳤다. 무표정한 그녀의 표정이 괜히 쓸쓸해 보였다.


"반가워, 로봇 메이드. 너도 나와 같은 신세가 된거니?"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레버린스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 MBCC의 직원이 달려와 레버린스를 붙들었다.


"레버린스! 한참 찾았어. 따라와, 이번 우물에선 네가 꼭 필요해."


조야는 그밖에도 옛 동료들을 많이 마주칠 수 있었다. 이리나, 데이먼, 랭글리, 여름... 모두가 각각의 일로 바빠보여 인사도 제대로 나누기 힘들었다.


차고로 도착해 모터케이트 위에 올라타 시동을 걸자 엔진이 요란하게 울리며 몸을 흔들었다. 착잡한 마음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신디케이트에 학교와 병원을 짓는다던데 사람을 구하려나. 상념에 빠진 채 길을 떠나려던 찰나 먼 발치에서 무무의 외침이 들려왔다.


"ㅈ-, ㅈ-야, 조야!"


감출 수 없는 기대감과 함께 모터케이트의 시동을 서둘러 꺼트렸다. 조야는 군단장으로서의 체면도 잊고 환하게 미소지으며 무무를 마중나갔다.


"국장님이 조야님께 드릴 일거리가 떠올랐다고 급하게 찾으시더라구요. 여기 설명서를-"


무무의 손에서 거의 빼앗다시피 임무 의뢰서를 받아들인 조야는 흘깃 종이에 적힌 주소를 확인하고 다시 모터케이트에 올라탔다.


"후회 안 할거야. 곧 돌아오지."


모터케이트가 굉음을 내며 거리를 내달렸다. 조야의 연보랏빛 머리칼이 바람을 맞으며 햇살과 함께 눈부시게 빛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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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저 사람 보여? 문신 한 사람."


"어? 어디서 많이 봤던 것 같은데?"


"조야 아니야? 그 군단의... 앗, 눈 마주쳤다!"


멀찍이 조야를 흘깃 쳐다보며 수군거리던 이들이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번잡하고 소란스러운 장소였으나 군단장 조야의 예민한 감각을 피할 수는 없었다.


곧 조야는 그들의 앞에 서서 의기양양한 미소를 띄우며 입을 열었다.


"그래, 나한테 볼일이 있나?"


일행들은 한참이나 서로를 쳐다보다 결국 하나가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여기, 물 좀 더 가져다 주시구요. 혹시 군단의 조야 맞으세요?"


조야가 나직히 눈을 감으며 고개를 떨구었다. 하지만 곧 볼이 움푹 패인 히로의 얼굴이 아른거렸다.


마음을 다잡은 그녀는 자신만만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래, 내가 바로 군단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