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장은 2시간 반만에 조야와의 면담을 마지막 일과로서 끝냈다. 시설 내 샤워실에서 미리 샤워를 마쳤고, 이제 퇴근할 차례다.


국장은 매일 퇴근할 때면 나이팅게일이 운전해주는 차를 타고 집으로 들어간다. 국장은 MBCC내 시설에서 숙박해도 상관없지만 휴식 또한 중요하다는 비서의 잔소리에 못이겨, 퇴근 후의 시간은 시에서 내어준 집에서 보내기로 했다. 국장은 면허가 없기 때문에 차를 불러서 퇴근해도 되었지만 나이팅게일은 굳이 운전수를 자처했다. 



"국장님, 월간 S급 수감자 정기심문은 어떠셨습니까. 일단은 매번 경비인력을 권고사항 이상으로 배치하고 있습니다만.. 국자.."



"아..국장님이라 부르는 것은 근무 중에서만.. 약속했죠.."


나이팅게일은 마치 문서에 기술된 규칙을 따라읽는 것처럼 읊조렸다.


며칠간 같이 퇴근을 하면서 나이팅게일과 더 친밀해졌다. 정신없이 바쁜 일상을 보내고있지만 퇴근 시간만큼은 상관과 부하가 아닌 관계로 지내자고, 한 달전부터 그런 약속을 했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하고 말이다. 모범생 나이팅게일은 아직 익숙하지 않은 듯, 국장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는 못하고 다나까에서 -요 체를 쓰기만 했다. 어색하긴 하지만, 둘은 차가운 사무관계에서 약간의 봄에 부는 꽃바람처럼 간질간질한 이 시간이 영 나쁘지만은 않았다.



"최근 향수를 사용하기 시작하셨습니까? 



-응? 아니, 사실 향수는 잘 몰라서.





나이팅게일을 전방을 주시하면서도 곁눈질로 국장의 얼굴을 살피려 애썼다. 그렇지만 국장은 창밖 다리 너머 디스시티의 야경을 바라보느라 고개를 돌리고 있었고, 나이팅게일의 곁눈질을 알아차리지도 못하였다.



"최근 고위험 수감자들과의 접촉이 많네요. 유대관계 형성도 좋지만 아무래도 위험한 게 아닌지 항상 걱정됩니..되어요."



-그건 걱정할 필요없어. 저번에 조야랑은 어쩌다가 당구도 하게 되었지 뭐야.


그 말을 듣자 곁눈질 하던 나이팅게일의 바빴던 눈동자는 멈추었다.


"그런가요."



-조야말이야.. 손이 예쁘더라고... 진짜 의외지 않아? 군단장의 주먹이 사실은 평범한 여자의 손이라는 거. 그 구경만 하느라 완전히 게임에서 져 버렸네. 애초에 당구를 잘 치는 것도 아니지만..


국장의 시선은 야경 너머의 어떤 경치를 보고있었던 것 같다. 그때를 회상하며 그 장면들을 다시 천천히 곱씹는 느낌이었다.





"저번주에는 조야와 3번이나 면담을 직접 신청하셨죠. 각.. 2시간 정도. cctv조차 없는 밀실에서요."


-.. 맞아 주변에 모두들 걱정하는 표정으로 반대하는 분위기였지. 모두에게 민폐를 끼쳤을지 몰라. 그렇지만 이런 형식 덕분에 이전보다 수감자들의 태도가 많이 누그러진 것 같아. 



차가 중간쯤 왔을 때, 국장이 문득 떠올렸다.



-맞아, 향수하니까 생각났는데, 저번에는 첼시가 향수를 잔뜩 주문해서는 막상 종류가 너무 많아서 고민된다고 주위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더라고.


"아, 그래서 저번에 엘라한테 향수 냄새가 지독하게 났군요. 받았긴 했지만 정작 적정 사용은 듣지 못했나보군요."



-나인티나인은 진정이 될 만한 시나몬향이었고, 엘라가 장미향, 그리고..또 기억이 잘 안나네. 브랜드도 다 처음 들어보는 고급이었어.  루비아는 탑노트 라스트노트가 어쩌구 하면서 하나를 집어갔고..아 조야는 라벤더였네."


빨간불. 나이팅게일은 숨을 죽이는 듯이 부드럽게 브레이크를 밟았다.


"...라벤더."


-응?



"지금 당신에게 나는 향이에요."


-...   아, 방금 조야와 심문을 끝마친 참이었지. 뿌리고 온 걸지도 모르겠네. 난 잘 몰랐는데.


"잠깐 이야기를 한 걸로는 이렇게 진하게 나지 않아요

.

국장은 나이팅게일이 이런 반응을 하는 의도를 어렴풋이 짐작했다. 묘한 긴장을 띠는 10초간의 침묵이 이어졌다.


"..."


-가자.


"네?"


-파란불이야.


다른 생각을 하고있었는지, 나이팅게일은 신호가 바뀐 것을 한참 늦게 알아차리고 엑셀을 밟았다. 당황했음에도 VIP를 태운 운전수처럼 부드럽게 차를 다시 움직였다.


-나이팅게일.. 내가 관리자로서의 선을 넘었다고 생각하는거야?


"그건..[다른] 문제에요."


어느샌가 차 안의 공기는 무겁게 가라앉았다.


타이어만이 막힘 없이 국장의 자택으로 향했다.


머지않아 국장이 쭈뼛거리면서 천천히 변명같은 말을 시작했다.


-..조야와 한 일들은 잠깐 사고였어. 처음에는 그냥 사고였고..조금씩.. 늘었지.. 그래, 내가 잠시 이성을 잃었나봐. 조야와는 조금씩 거리를 두도록 할게.


그러자 나온 나이팅게일 반응은 예상 외었다.


"그런게 아니라고요...!"


나이팅게일은 차마 큰소리는 내지 못했지만 이전에 볼 수 없던 분노와 설움이 찬 표정, 듣지 못한 반항적인 말투였다.


"당신은 제를 국가기관으로 보나요..? 국장을 감시하고..시말서와 보고서만 쓰게 하는 지루한 공무원인가요..? 저는 퇴근 후에는 줄곧 당신 이야기만 했는데, 당신은 제가 아무것도 못느끼는 바보 비서로 느껴지나 보군요..


퇴근 후에는 상관, 부하가 아니라 편하게 있자고 한 말을 진짜라고 생각한 나만 바보였어요."


나이팅게일 눈에는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감히, 감히 떨어지는 못했다.


국장은 이제서야 이해했다. 나이팅게일이 지금 느끼는 감정은 상관의 일탈을 알아챈 당황스러움이 아니었다. 좋아하는 사람으로 인한 순수한 질투와 슬픔이었다.


차내에서는 격정적인 감정이 휘몰아쳤지만 운전은 안정적이었다. 이내 곧 국정의 집에 도착했고 차는 그 앞에 우두커니 멈춰섰다. 둘은 그 안에 앉은 채로 굳어있었다.


-.. 내가 눈치가 없었네. 앞으로 참고할게. 시간이 늦었으니 돌아가. 매일 바래다주느라 고생이 많네.


국장도 복잡한 심경이었다. 이 마음에 어떻게 답을 할 지에 대해, 앞으로 직장에서 비서를 어떻게 마주쳐야 할 지에 대해 등에 대해 생각을 정리할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도망치는 듯한 심정으로 차 문고리에 손을 옮겼으나, 허벅지에 묘한 온기가 느껴져 고개를 돌렸다.


나이팅게일이 손을 국장의 허벅지에 조용히 올렸다.


"..오늘은 피곤해서 혼자 돌아가기 무리일 것 같습니다. 죄송하지만 하룻밤만 재워주실 수 있으십니까."


그 순간 국장의 머리 속에는 엄청난 자극의 회오리가 몰아쳤다. 조야가 처음 유혹해왔을 때와 비슷한 그 느낌이었다. 방금전까지만 해도 고민거리였던 국장으로서의 입장, 정조 관념따위는 아무래도 좋을 정도의 강렬한 자극, 순식간에 이성은 동물적인 본능에 지배당했다.


-오늘은 피곤하다니..거짓말도 할줄 알았네.


"거짓말이 아니에요."


-침실이 하나임을 알면서도 하는 말이지?


"알면서 하는 말이에요."


-씻을건가?


"오늘은 미리하고 왔어요."


-우연이네. 나도야.


나이팅게일은 옆의 핸드백에서 무언가 조그만 걸 꺼내서 칙칙 목덜미에 뿌렸다 


"아카시아 향수에요. 제가 쓰는 거."


나이팅게일은 직접 향수를 뿌려보이며 자신의 확고한 의지를 보였다.


나이팅게일과 얽혀 아카시아 향으로 뒤덮인다고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맡아버리는 순간 절정에 다다를 아찔하고 음란한 향이었다.


두사람은 차를 나왔다. 옷을 한꺼풀 벗으면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듯한 두 짐승은, 이제 참기 힘들다는 것처럼, 집 문앞에 섰을 때는 벌써 이미 웃옷을 벗고 셔츠의 단추를 하나 둘씩 푼 채였다.


문앞에서, 두 짐승은 서로의 눈동자를 바주보는 것으로 최종확인을 마쳤다. 눈동자에 비친 것은 국장과 비서는 없었다. 서로의 육체, 동물적인, 서로를 끝없이 탐하고 먹어치워버릴 듯한 욕망.


곧 두 사람은 집 안으로 들어갔다. 바로 침실의 불이 켜졌다.


"처음엔 사고였고 조금씩 늘었다고 했죠.."



'당신도 이런 방법을 써왔다고 생각하니 정말 역겨워요.. 그리고 질투가 나서 참을 수가 없어요.. 조야.'


다음 날 두명은 출근 시간에 25분 정도 늦었다.


유능한 비서는 지각 전 연락을 통해서 먼저 당직체계에 보고했다.


사유는 컨디션 난조.


그리고 조야는 아카시아 향을 맡았다.


"국장, 향수를 바꿨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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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교시 강의를 하는 교수가 나쁜거야. 내가 이딴 글을 쓰게 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