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벤트에 대한 스포일러 있음.
보려면 이벤트 다 밀고 보셈.
1일째.
파도 소리.
여러번 겹쳐지며 와르르 무너져 발 밑을 간지럽히는 파도.
딸아이가 너무나 듣고싶어하던, 여행의 소리였다.
"크.. 큼, 크흠."
막 잠에서 깬 탓에 잠긴 목을 풀고, 침대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향했다.
가볍게 손을 씻고, 세수를 했다. 그리고 앞을 보자 익숙한 중년의 네잎사귀가 보였다.
간만에 일에서 벗어나 휴가를 온 덕일까. 피부가 좋아졌는지 잎사귀는 물방울을 튕겨내며 생기를 자랑하고 있었다.
"아."
그러고보니 아침에 비치발리볼을 하기로 했었지.
거실로 나가자 탁자 위에 삐뚤빼뚤한 로레카의 필체가 쓰여진 쪽지가 보였다.
"세상에서 제일 멋지고 똑똑한 우리 아빠... 비치발리볼 안 잊었죠.... 기다릴게요....."
나는 피식, 웃고 그 쪽지를 곱게 접어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자기 전에 다시 보고 잘 생각으로.
딸아이의 쪽지라니, 이처럼 귀한 것도 또 없으리라.
바깥으로 나가자, 로레카는 루시에게 들러붙어 응석을 부리고 있었다.
"아아아~ 왜 아빠는 이렇게 늦게 일어나는거야. 놀고싶다구."
루시는 계속해서 날 찾고있었는지 내가 숙소 문턱을 넘자마자 날 발견하고는, 로레카에게 무어라고 속삭였다.
그러자 로레카도 이쪽으로 고개를 향하더니, 모래를 흩날리며 내게 달려와 깡총 뛰어 안겼다.
덕분에 모래를 잔뜩 뒤집어 쓴 루시의 잎사귀가 축 늘어진다. 잠깐 루시와 눈인사를 하며 고개를 끄덕여주자 루시도 괜찮다는듯 손을 설레설레 흔들며 공을 가지러 갔다.
"아빠아~ 비치발리볼! 비치발리볼!"
꼭 종달새가 안겨든 것만 같다.
가볍기는 새처럼 가볍고, 지저귀기는 명랑하고 당차다.
간지럽히는 손발은 깃털처럼 부드럽게 와닿는다.
맞다은 심장 고동이 영혼마저도 간지럽히는 느낌.
이 자그마한 날갯짓은 나의 안면근육을 강제로 끌어당겼다.
나의 아이.
내 딸.
내가 이토록 사랑스러운 딸의 아버지라니.
새삼스럽게도, 나는 로레카를 꼬옥 안아주었다.
하지만 '아버지로서' 해야 할 일은 포옹만이 아니다.
"로레카, 루시가 모래를 뒤집어썼잖니."
"헉. 몰랐어... 사과하고 올게!"
어느 새가 그렇듯 훌쩍 떠나간다. 로레카는 왔던 것처럼 빠르게 달려가서는, 루시와 몇 마디를 나누고 포옹했다. 그리고 루시에게 공을 받아들고는 나를 향해 서브를 날렸다.
"엇차!"
"이렇게 경기장까지 가는거야!!"
리시브하면서 방향을 조정해, 로레카가 달려가 받을 수 있을만한 곳으로 공을 날리자 꺄르륵하는 웃음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으으응... 아빠... 모두들..... 더 놀자아..."
노을이 수평선에 반신욕을 할 때 쯤에서야 졸린 눈을 비비며 앵기는 로레카를 보고 모두가 웃는다.
완벽한 휴가 첫날이었다.
5일째.
수영 시합으로 신나게 놀아주고, 내일은 물고기 잡기 시합이라고 약속한 저녁.
나는 침대에 누워있다가 문득 생각이 나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쪽지를 꺼내 펼쳤다.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똑똑한....
글쓰기가 익숙하지 않아 여기저기로 엇나가는 글짜를 손으로 따라가기를 잠시, 머리가 깨질듯 아파왔다.
하지만 이제는 익숙해진 고통이었다.
"윽...!"
쪽지를 꺼낼 때마다 엄습하는 두통.
익숙해졌음에도 머리를 쪼개는 것 같은 아픔이지만, 도저히 포기할 수가 없었다.
뭔가를 놓치고 있었다.
딸아이의 앞에서 가장 멋지고, 가장 똑똑해야할 내가 터무니없이 기본적인 오답을 정답이라고 철썩같이 믿고 있었다.
완벽하고 즐겁게 그지없는 이 휴양지에 커다랗고 불길한 구멍이 뻥 뚫려 점점 그 위화감을 키워가고 있었다.
딸아이의 쪽지를 펼쳐볼 때마다 닥치는 두통이 꼭 나를 재촉하는 것 같다.
아빠라면 '뭐든지' 알 수 있을거라고.
뭐지?
뭘 틀린거야?
현기증이 피어오른다. 동시에, 과거의 기억도 떠오른다.
그랬지. 로레카와 놀아주고 난 뒤엔 항상 몸이 축축 늘어질만큼 힘들었다.
그런데 지금, 몸만은 날듯 가볍다.
전혀 지치지 않았다.
아무리 휴가에 나와서 푹 자고 일어난다지만, 조직원 모두가 번갈아가며 놀아주어야 할만큼 기운 넘치는 딸아이와 4일 넘게 뛰어놀았는데.
어째서.
"....."
알아내야만 한다.
알고있어야 한다.
무언가 어긋난게 있다면 되돌리고.
고집을 부린다면 타이르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눈물을 머금고서라도 깨닫게 해야한다.
아버지로서.
세상에서 가장 멋지고, 똑똑한.
딸아이를 사랑하는 아버지로서.
".....아."
방 안이 답답해 나온 거실.
창문을 넘어 내리는 달빛을 맞으며 고민하고 추론하다, 마침내.
네잎 클로버가 된 나의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나는 그저, 로레카가 그리워하는 '아빠'의 환영.
슬픔과 고통을 밀어내기 위해 증폭된 행복의 기억.
거짓조차 될 수 없는 어중간한 존재라는 것을.
"하...."
눈물은 흘릴 수 없었다.
로레카에게 아빠란 울지 않는, 철인같은 존재였을테니까.
그러나 절망스럽고, 또 고통스럽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로레카가 그리워하는 아빠는 정말로, 정말로 로레카를 사랑하니까.
세상이 무너질 것처럼 진실이 닥쳤다.
"아빠...?"
아빠.
그 단어 하나에 속이 썩어들어갔지만 나는 안아달라며 양 팔을 펼치고 다가온 로레카를 끌어안았다.
배시시 웃는 자그마한 온기가 그 무엇보다 아팠다.
떠나보내야 하기에.
6일째.
나는 두 번째로 절망했다.
꿈의 ㄲ만 입에 담아도 입이 썩어들어간다.
그리고 내가 썩을 때마다, 로레카가 고통스러워한다.
"아악...!"
"로레카..."
입에서 새까만 색의 네잎클로버를 흘리며, 고통에 몸부린친다.
나는 서둘러 로레카를 품에 안았다.
"아빠... 하지마... 응? 아프단 말이야... 흐윽."
아프다.
정말로, 아프다.
내것이 아닌, 로레카의 기억 속 '아빠'의 마음일진데.
절규가 나올 정도로 심장이 뻐근했다.
하지만 멈출 수 없었다.
부딪히고 부딪혀 가루가 되더라도 나는 이 아이를 깨워야 한다.
어떤 개자식이 언제까지고 로레카의 감정을 멋대로 가지고 놀게끔 내버려 둘 수 없으니까.
로레카, 로레카.
일어나야지.
7일째.
로레카는 어제 일을 완전히 잊어버렸다.
심지어 오늘이 휴가의 첫날이니, 신나게 놀자고 나를 재촉했다.
실패는 반복되었고.
고통은 쌓여갔으며.
나는 계속 도전했다.
8일째.
실패했다.
로레카는 비명을 지르며 고통스러워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10일째.
실패했다.
과거를 떠올리기 직전까지 갔다가 다시 되돌아왔다.
로레카는 울다 지쳐 잠들었다.
"나쁜 아빠... 아빠도 아냐..... 흐으윽...."
잠결에 나왔을 잠꼬대.
발에 못을 박은듯, 훌쩍이는 로레카에게 다가가 안아줄 수도, 잘 자라고 쓰다듬을 수도 없었다.
이토록 벌벌 떨리는 손으로 쓰다듬었다간 깨고 말 것이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15일째.
실패하지 않았다.
도전하지 않았으니까.
로레카는 너무도 즐겁게 웃으며 비치발리볼을 했다.
어제의 고통은 어디론가 보내버린 것처럼, 걱정근심 하나 없이 행복해보였다.
나는 작은 손에 이끌려나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17일째.
"거짓말... 아빠는 거짓말쟁이야!!"
로레카가 울면서 뛰쳐나갔다.
이제서야 깨닫는다.
나로선 끝까지 갈 수 없다는 걸.
20일째.
한 남자가 파도에 밀려 이곳에 당도했다.
지친 나의 머릿 속에 내가 모든 것을 알고 있길 바라는 로레카의 잠재의식이 그에 대한 지식을 밀어넣었다.
그렇구나, 결국.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나는 얼떨떨해보이는 그에게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미노스의 국장님. 전 로레카의 '아빠'입니다."
"여기 오실거란건 예상하지 못했지만, 제게는 꼭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절 따라오시죠. 이 꿈에서 나갈 수 있게 도와드리겠습니다."
나는 그가 이 허상 뿐인 세계에서 로레카를 데리고 나갈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로레카의 '아빠'는.
딸을 사랑하니까.
기억에서 투영된 허상조차, 로레카를 사랑할 정도로.
==================
왜 내가 하는 게임들 이벤트는 죄다 눈물 뽑는 스토리인거임...?
보면서 계속 짱구 로봇 아빠의 습격 그거 생각나더라...
ㅅㅂ 진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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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주년 태양의 시 이벤트// 야오, 두약 픽업 진행중(~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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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레카의 '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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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c1031
쏜별
Sandalphon
쏜별
나만여친없어
쏜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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