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악스러운 비명소리가 콜로서스의 복도에 울러 퍼진다. 다름 아닌 이브의 비명 소리가 말이다. 행여 다른 사람이 올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재빨리 손으로 입을 막아보지만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다만, 이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자신의 등 뒤에 자리 잡은 커다란 방은 조종사가 지내는 개인 방이었고, 그런 곳을 노크도 없이 들어가 버린 이브의 눈앞에 발가벗은 조종사가 빳빳하게 솟아오른 무언가를 손으로 흔들고 있었으니 말이다.


이브는 자신을 멍하니 바라보는 조종사의 얼굴이 좀처럼 잊혀지지 않았다. 그리고 당연한 말이지만, 여태껏 제대로 된 일상생활을 하지 못해 성 지식이 부족한 이브라 할지라도 자신이 목격한 것이 무슨 상황인지는 제대로 알고 있었다. 이는 건전하고 올바른 성관계란 무엇인지 배워야 한다는 오디의 교육과 자신의 경험담을 전쟁에서 전공을 쌓은 기사처럼 떠벌리고 다니는 요나 덕분이었다.


“침착해야 돼.”


이브는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듯 중얼거렸다. 지금 필요한 것은 침착함과 자신이 보았던 상황에 납득할만한 이유를 찾는 것이었다.


“그건… 그저 소시지였을 거야. 배고픈 조종사가 먹으려고 했던 소시지…”


현재의 상황을 부정하기 위해 생각해낸 것은 아무도 믿지 않을 핑계였다. 그리고 이어지는 현실에 대한 수긍까지.


“조, 조종사는 자기 위로가 필요했을 뿐이야. 그건 결코 이상하거나 나쁜 행동이 아니야!”

이제는 누가 듣건 말건 신경 쓰지도 않는지 이브는 하소연하듯 외쳤다.  그렇게 깊은 고뇌에 빠진 채로 얼마나 문 앞에 쭈구려 앉아 있었던 걸까. 어디선가 들려오는 누군가의 부름에 또다시 괴상한 비명소리가 콜로서스의 복도에 울러 퍼졌다.


“어이, 이브! 갑자기 왜 소리를 지르고 그래!”


목소리가 들려온 곳에는 렉커가 한 쪽 귀를 틀어막으며 서있었다.


“레, 렉커?!”

“뭘 그렇게 놀라고 있어. 조종사 방 앞에서 쭈구려 앉아 뭐 하는 거야.”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최대한 평소처럼 보이기 위해 노력했지만 눈치 없는 렉커가 의문을 품을 만큼 이브의 말투나 행동은 부자연스럽기 그지없었다. 


“뭐냐고, 숨기는 거라도 있는 사람 마냥.”

“아무것도 아니라니까! 그것보다 여, 여긴 웬일이야?”

“조종사의 방에 찾아왔다는 건 조종사를 보러 온 게 당연하잖냐.”

“뭐? 아니, 안돼! 지금은… 조종사가 많이 바빠.”


막아야 했다. 이브의 머릿속은 오직 그 생각뿐이었다. 충격에 빠진 조종사가 어떤 상태로 방 안에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기에, 렉커가 조종사의 방으로 들어가는 건 무조건 막아야 했다. 


“잠깐이면 된다니까. 빌려준 물건만 받고 바로 갈 거야. 이 몸도 바쁘다고.” 

“다음에 받아. 오늘은 안돼.”

“나참...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한숨을 내쉬며 기어이 다가오는 렉커의 모습에 이브는 어쩔 수 없이 손을 내밀어 작은 스파크를 만들어냈다. 전투용으로 쓰던 기계 팔이 없어 평소보다 위력이 크게 줄어든 상태지만 위협을 주기에는 충분했다. 


“이, 이브? 갑자기 왜 그래.”

“오지 마, 렉커. 오면 용서 안 할 거야. 조종사는 지금 바쁘단 말이야!”

“진정하라니까. 그냥 물건만 받고 바로 갈 꺼야. 10초도 안 걸려. … 아앗, 따가! 진짜로 공격할 셈이냐!”

“더 이상 다가오면 따가운 정도로 안 끝나.”

“아, 알았어. 갈게, 갈 테니까 그 손 좀 내리라고!”


렉커는 자신에게 선택지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발걸음을 돌려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이후로도 이브는 한참 동안이나 복도를 서성이며 상황을 살폈고, 황혼이 지고 밤이 깊어서야 자신의 방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쓰러지듯 침대에 드러누워 눈을 감아보지만 여전히 머릿속은 복잡했다. 다음날 어떤 얼굴로 조종사를 봐야 할지, 어떤 이야기를 나눠야 할지 걱정뿐이었다.


그러다 문득, 그때 그 상황 속의 한 장면이 돌연 듯 머릿속에 떠올랐다. 열심히 움직이고 있던 손이 아닌, 조종사가 또 다른 손으로 들고 있었던 물건에 대한 기억이 말이다. 그건 분명…


“팬티… 였지.”


강렬한 기억이었기에 틀림없었다. 조종사가 들고 있던, 정확히는 코에 갖다 대고 있던 그것은 분명 팬티였다. 외설스러운 디자인의 팬티 말이다. 바바라의 표현대로 말하자면… 그건 이성을 유혹하기 위해 입는 승부 팬티였다. 그렇다면… 대체 누구의 팬티란 말인가.


의문은 곧바로 집착으로 바뀌었다. 누구일까. 도대체 누구일까. 조종사는 누구의 팬티로 그런 행위를 하고 있던 걸까. 좋아하는 상대일지, 아니면 단순히 욕구를 해소하기 위해 아무나 상관없던 건지, 이브의 생각은 더욱 깊어져만 갔다. 동시에 조종사가 그런 행위를 했다는 사실이 새삼 온몸을 달아오르게 만들었다.


이브는 천천히 상체를 일으키고는 자신의 치맛자락을 위로 들어 올렸다. 새하얀 다리에 이어 부드러운 허벅지가, 그리고 이내 자신의 팬티가 드러날 때까지. 조종사가 들고 있던 것과 비교하면 볼품없는 새하얀 팬티가 어느새 조금 젖어있었다. 


“누구일까… 누구일까… 누구일까…”


이윽고 이브의 손은 자연스레 사타구니 쪽으로 향했다. 머리는 온통 짐작 가는 인물들의 얼굴을 떠올리고 있으면서도, 손가락은 마치 또 다른 자아를 가진 것처럼 자연스레 움직이고 있었다. 단지 천천히 문지르는 것만으로도 몸은 뜨거워져 갔다. 손가락이 움직이는 속도는 점점 빨라져 갔고, 가쁜 호흡 또한 마찬가지였다.


무어라 표현할 수 없는 감각이 온몸을 지배하는 듯한 느낌. 뻣뻣하게 쭈욱 내민 발가락부터 끈적거리는 팬티와 허벅지를 타고 조금씩 흘러내리는 투명한 액체, 그리고 야릇하게 새어 나오는 신음 소리까지. 하지만 부족했다. 이걸로는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 이브는 그토록 잊으려고 했던 조종사의 모습을 이번에는 필사적으로 떠올렸다. 


이브의 머릿속에서 조종사는 처음 봤을 때처럼  빠르게 손을 위아래로 흔들고 있었다. 그러나 들고 있던 것은 외설스러운 팬티가 아니었다. 그건 분명 새하얀 팬티였다. 아무런 특징도 없이 보급용으로 나눠주는 새하얀 팬티 말이다. 


어느새 쑤셔 넣어가며 움직이고 있던 손가락은 한참 동안이나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그러나 처음 느꼈던 알 수 없는 감각은 갈수록 약해져만 갔고, 머릿속으로 떠올리는 조종사의 형체마저도 희미해져 갔다. 이내 어두운 방안은 이브의 작은 숨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축축하게 젖어버린 침대 위에서 이브는 다리를 가슴까지 끌어안은 채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왜인지 비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멋대로인 생각이지만 조종사가 자신이 아닌 다른 누군가를 좋아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배신감이 몰려왔다. 


“조종사는 나를 좋아하지 않아.”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이다. 이곳 콜로서스에는 자신보다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오로리안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최소한 이브는 그렇게 생각했다. 자신의 빈약한 가슴을 내려다보며 말이다. 


그러다 문득, 이브는 중요한 사실을 깨달았다. 어쩌면 조종사가 누구의 팬티를 들고 있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방금 전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조종사는 외로웠을 뿐일지도 모른다. 단지 자신의 욕망을 풀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홀로 풀고 있었던 이유는 아직 함께할 상대가 없어서 일지도 모른다. 그런 행위를 하면서 문을 잠그지 않은 이유 또한 누군가 알아주길 바랐던 것이 아닐까?


극단적인 억측이었지만 지금의 이브는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없었다. 오직 조종사를 먼저 쟁취해야 한다는 비틀어진 애정만이 있을 뿐.


이브는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나 입고 있던 팬티를 벗어 손에 쥔 채로 방을 나섰다. 만약 누가 본다면 한바탕 소동이 일어날 모습이었지만 딱히 신경 쓰지 않았다. 꼬옥 쥔 손 아래로 무언가 바닥에 뚝 뚝 떨어졌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차가운 밤공기가 주는 시원한 개방감이 썩 나쁘지 않다고 생각할 뿐이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커다란 문 앞에 도착한 이브의 얼굴에는 미소가 피어올랐다. 이 문을 열면 자신이 조종사의 외로움을 없앨 줄 수 있었기에, 자신 또한 조종사에게 사랑받을 수 있었기에.


이내 익숙한 그립감을 느끼며, 전과는 달리 천천히 문을 연 이브의 눈앞에 익숙한 가구가, 매번 올 때마다 눈여겨보았던 물건들이, 그리고 침대 위에서 잠을 자고 있는 사랑스러운 얼굴이 보였다. 


“조종사, 내가 왔어.”


그대로 앞으로 걸어간다. 책이나 경험담을 들을 때보다, 그리고 홀로 했을 때와는 비교도 안되는 황홀감이 몰려오는 것만 같았다. 기분 좋은 간지러움에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빨리 아래쪽에 자극을 주고 싶었다. 무엇보다, 자신의 손가락이 아닌 조종사의 커다란 그것으로 말이다. 


침대에 다다르고 이불을 걷어 낼 때까지 조종사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다. 곧바로 이브는 자고 있던 조종사의 몸 위로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올라탔고, 조종사 또한 느껴지는 무게감에 천천히 잠에서 깨어났다.


“으.. 음… 뭐야..”


조종사는 몽롱한 정신 속에서 제대로 된 상황 파악을 하지 못한 듯 몸을 뒤척이려 할 뿐 별다른 반항은 하지 않았다. 물론, 반항한다 해도 연약하기 그지없는 아이테르의 힘으로는 이브의 힘을 이길 수 있을 리는 만무했지만.


그리고 결국, 조종사의 눈은 점점 커져 갔고 입에서는 비명 소리가 튀어나왔다. 아니, 정확히는 비명 소리가 튀어 나올 뻔했다. 이브는 줄곧 들고 있던 자신의 팬티를 조종사의 입안에 쑤셔 넣었고, 손으로 조종사의 입을 틀어막았다. 정체 모를 액체로 흠뻑 젖은 팬티가 입안으로 들어오자 비릿함에 헛구역질과 함께 발버둥을 쳐보지만 가련하고도 연약해 보이는 이브의 작디작은 손은 조금의 움직임도 없었다.


앞서 말했듯 연약한 아이테르는 오로리안의 힘을 절대로 당해낼 수 없다. 가령 지금처럼, 소름끼치는 미소로 자신을 바라보며 옷을 벗는 오로리안을 눈 앞에 두고도 말이다.


“걱정 마, 조종사. 네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나는 다 알고 있으니까.”




























...현타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