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 끝난다길래 스모키X제네비브 후다닥 써옴


‘불타오르는 이 느낌은 술 때문일까, 아니면 너를 만났기 때문일까.’

 

소녀라기엔 성숙하고, 여인이라기엔 앳된 금발의 그녀는 이른 저녁부터 취해 있었다. 무언가 거슬리는 일이 있는 건지, 보는 사람이 걱정될 정도로 빠른 속도로 진을 들이키고 있었다.

“마스터, 한 잔 더. “

“이미 많이 마셨어요. 제네비브 아가씨.”

“난 괜찮다니까.”

제네비브가 이렇게 술을 마시고 있는 이유는,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아침부터 그 사람과 마주했기 때문이었다. 

천적, 숙적, 앙숙, 다양한 말이 있지만 제네비브는 어떤 것도 그녀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어떤 말로도 그녀에 대한 제네비브의 정확한 감정을 표현할 수 없었다. 제네비브는 그녀를 생각하며 다시 한 번 독한 술을 들이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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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부터 스모키는 항상 그렇듯이 움브라톤의 뒷골목에서 양아치와 싸우고 있었다. 싸우고 있었다기 보다는 일방적으로 쥐어패고 있었다는 말이 더 어울리겠지만. 

그녀의 마음 속에서는 항상 불꽃이 타오르고 있었고, 그 열기를 해소하기에는 싸움이 제격이었다.

이렇게 제멋대로인 스모키에게도 왠지 껄끄러운 상대는 있었다. 자신을 보기만 하면 잔소리를 늘어놓는 질기고도 오랜 인연을 이어가는 사람이었다. 

“스모키 너는 변하지를 않네. 아침부터 기운이 넘쳐.”

“가던 길 가지, 제니?”

“제니가 아니라 제네비브!”

평소와 다를 것 없는 하루가 시작되었다,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날은 뭔가 달랐다. 방해꾼 때문에 싸움을 시원하게 끝내지 못해서일까 아니면 제네비브를 지나칠 때 맡았던, 자신의 연기 냄새와는 다른 깔끔한 향수의 냄새 때문일까. 하루 종일 기분이 이상했다.

이제 막 해가 지고 있었지만 스모키는 술집으로 들어갔다. 술이라도 들이키면서 난동을 부려야 타오르는 불꽃을 잊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것이 더 큰 화염의 시작이 될 것을 스모키는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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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브라톤의 골목길에 자리한 수많은 술집 중에서도 스모키가 하필 그 술집을 택한 것은 어쩌면 우연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술집에 들어가자마자 스모키가 본 것은, 바에 머리를 박고 쓰러져 있는 찬란한 금빛이었다. 스모키는 홀린 듯 그녀에게로 다가가 머리카락을 만지작댔다.

“어이, 제니.”

“…응?”

“뭐하냐?”

평소라면 그녀를 신경쓰지도 않았을 스모키였지만, 그 날 따라 스모키의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뜨거움은 만티코어의 불길과는 다른 열기를 띠고 있었다.

얼마나 마셨는지 입을 열지 않아도 진동하는 알코올의 냄새와, 하루 종일 스모키를 따라다녔던 깔끔한 냄새가 뒤섞여 독특한 향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총명하게 빛나던 붉은 두 눈은 반쯤 감겨 있었고, 그녀 앞에 있는 자신이 누구인지조차 파악하지 못하는 듯 했다. 스모키는 차라리 잘 된 일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기억하지도 못할 사람에게는 일부러 까칠하게 대할 필요가 없었다. 스모키는 오랜만에 예전처럼 말을 걸었다.

“집에 가자, 제네비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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뱅뱅 돌아가는 바닥, 녹아내리는 조명, 두 개로 보이는 달, 더운 피부를 식혀주는 시원한 바람과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따뜻한 누군가의 손길까지, 제네비브는 환상적인 꿈이라고 생각했다.

술에 취해 눈 앞이 잘 보이진 않았지만 제네비브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는 그 사람에게서는 익숙한 연기의 냄새가 났다.

“모르겠다.”

그녀가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건 꿈 속이 아니라면 일어나지 않는 일이겠지. 라고 제네비브는 생각했다.

“어차피 꿈이니까.”

제네비브는 머리를 쓰다듬는 손을 가슴께로 끌어들였고 목덜미에 팔을 둘러 가까워진 머리에 입을 맞췄다. 

누군가의 입술은 부드러웠고, 달콤했고, 약간 탄맛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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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아무 여관에나 던져두고 올 생각이었다. 그냥 눕혀두고 왔으면 되는데, 오늘따라 감정이 뒤숭숭했기 때문일까,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금발이 아름다웠기 때문일까, 아니면 깔끔한 그 향기 때문일까. 스모키는 한참 제네비브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제네비브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깨닫자마자 부드럽고 말캉한 무언가가 입술에 닿았다 떨어졌다. 마치 항상 그랬다는 듯 물처럼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그녀가 파악했을 때 이미 제네비브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스모키는 그녀가 깨지 않도록 천천히 방에서 빠져나왔다.

스모키는 새벽별이 지는 움브라톤의 밤거리를 걸었다. 차가운 밤공기와는 다르게 스모키의 볼은 약간 달아올라 있었다. 항상 뜨겁게 끓어오르는 스모키지만 이번의 열기는 조금 달랐다. 정의할 수 없는 기묘한 온도가 스모키를 감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