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이에 따라 다소 불쾌할 수 있음)







 1번째 기록.


 조종사가 혼수상태에 빠진 지 나흘이 지났다.


 의사의 말로는 과로가 원인이라고 했다. 요즘 들어 피곤하단 말을 입에 달고 살더니, 정말 쓰러져 버렸다.


 그땐 조종사만큼이나 나도 바빴다. 그래서 조종사가 힘들다고 말해도 조치를 취할 생각을 못 했나 보다. 우린 힘든 게 너무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었다. 다른 불행이 그렇듯, 이번 일 역시 익숙함 속에서 벌어졌다.


 카렌은 자신을 탓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콜로서스에 업무가 많은 게 어떻게 네 탓이냐고, 자책하지 말라고 말해줬다. 머리론 이해해도 마음이 따라가질 못했다. 그 타는듯한 죄책감이 날 조종사의 병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나는 매일같이 조종사의 간호를 하고 있다. 물론 나만 하는 건 아니다. 콜로서스의 오로리안이 계속 방문하며 수시로 조종사의 상태를 확인하고 있다. 치유능력을 지닌 오로리안들 역시 노력 중이다. 그들이 왔다 가면 조종사의 혈색도 꽤 좋아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다들 자신 없는 목소리로 어째서 안 깨어나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건 좋은 의미 아니야? 나는 의아했다.


 간호라고 해봤자 조종사가 발작 같은 증세를 보이는 것도 아니고 해서, 나는 멀거니 앉아 조종사의 감은 눈을 바라보거나 물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는 것에 주로 시간을 소비했다. 그래, 이건 조종사와 내게 주어진 휴가 같은 걸지도 몰라. 난 조용히 마음을 가라앉혔다.


 하지만 좋게 생각하고 싶어도 조종사가 이렇게 죽은 듯 누워있으니 그럴 수가 없었다. 그저 이번 조종사의 혼수상태라는 악몽 같은 일을 기록하여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 쯤 되는 시시콜콜한 생각이나 떠올릴 뿐이었다.


 물론 조종사가 일어나지 않으리라곤 생각되지 않는다. 그냥 이건 짧은 악몽일 뿐이니까. 곧 아무렇지도 않게 눈뜨곤 농담이나 걸어올 게 눈에 선하다. 바보 조종사. 일어나면 맛있는 요리라도 해줘야겠다.






 9번째 기록.


 조종사가 혼수상태에 빠진 지 보름이 되어간다.


 오로리안 몇 명이 콜로서스에서 나갔다. 물론 평소에도 이런 일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번엔 조종사의 부재가 그 이유라는 점에서 달랐다. 나는 그 수속을 처리하기 위해 바빴다. 매번 나는 그들을 잡아야 하는지 오랜 시간 고민해야 했다. 결과는 항상 같았다. 나는 군말 없이 그들을 콜로서스에서 내보냈다. 기다림은 선택이니까.


 콜로서스 내부의 분위기도 나빠졌다. 며칠 전만 해도 다들 웃으며 병실을 찾았지만, 지금은 표정이 굳은 채 들어오는 경우가 많다. 대화도 그만큼 적어졌다. 그들은 보통 조종사의 상태가 어떠냐고 물었고, 나는 평소 같다고 답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간혹 날 위로했다. 그럴 때면 쓴웃음으로 답해 보였다.


 카렌은 자신을 탓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카렌은 늘 그렇듯 무표정했다. 난 그 언뜻 보면 차가워 보이는 얼굴에서 희망이 반짝이고 있단 걸 알았다.


 나라고 희망을 잃지는 않았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희망까지 운운할 일일까 싶기도 하다. 지금껏 일어나리라 믿어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믿을 것이다. 그거면 됐다. 당장 내일, 아니면 오늘 저녁에 조종사가 벌떡 일어날 수도 있는 일 아닌가.


 그럼에도 그저 난, 나는 작게 괴로운 것이다. 아프고, 우울하고, 조종사가 보고 싶다. 다시 깨어나서 내게, 곁에 있어 줘서 고맙다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나는 아직 감겨있는 조종사의 눈을 보며 생각했다. 이 기다림의 끝에서 기다리고 있겠다고. 나는 어느새 울고 있었다.






 145번째 기록.


 조종사가 혼수상태에 빠진 지 5개월이 넘었다.


 오늘은 수소문한 의사가 콜로서스에 방문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말했다. 왜 안 깨어나는지 모르겠는데요?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의사는 그 후에도 한참이나 조종사의 상태를 이리저리 확인하더니 조심스레 말했다.


 의사는 조종사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는 걸 원하지 않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조종사 자신의 의지로 이 긴 수면을 지속하고 있다고, 그렇게 말했다.


 난 그 의미를 깨닫기 위해 오랜 시간 생각해야 했다. 그리고 그 후에는 의사를 죽이고 싶다고 생각했다. 곧 나는 이 단순하고 잔인한 파괴욕에 움찔했다. 내가 이런 생각을 했다고? 아니, 하지만 다시 생각해도 나는 의사를 죽이고 싶었다. 의사는 내가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도 모른 채 자리에서 일어섰다. 난 그 뒷모습을 멍하니 노려보았다.


 이 조용한 분노에 나는 어쩔 줄 몰랐다. 나는 의사가 병실에서 떠날 때까지 아무 말도 못 하고 가만히 있었다. 내 분노는 어딜 향하고 있었던 걸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늘어놓는 의사? 미동도 없는 조종사? 아니면 의사의 말이 진짜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머저리 같은 나 자신?


 콜로서스의 인원이 눈에 띄게 줄었다. 남아있는 건 콜로서스 내부의 풍족한 생활에 취한 이들과 몇 안 되는, 나처럼 조종사를 기다리고 있는 이들뿐이다. 난 조종사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고마웠다. 몇 달 전에는 없었던 감정이다. 왤까. 조종사를 기다리는 행위가 자신을 잠식한다는 사실을 인지했기 때문일까. 나는 별 의미 없는 자문자답에 힘이 빠졌다.


 카렌은 자신을 탓하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때 나는 의사의 말이 맴돌았다. 저기, 카렌. 그럼 난 조종사 탓을 해도 괜찮을까? 이 지독한, 죽도록 괴로운 기다림이란 형벌을 준 조종사를 미워해도 괜찮을까? 카렌은 더 말이 없었다. 그녀는 더 이상 무표정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제 동정하고 있었다. 날 안쓰럽다는 듯 바라보았다.


 날 그런 눈으로 보지 마. 속으로 되뇌였다. 난 신경질 낼 여유도 없었다.


 라인하르트 대원수님도 방문했다. 대원수님은 조종사가 아닌 날 보러 오셨다고 했다. 그녀는 내가 아이테르 조종사를 포기하고 복귀할 것을 권했다. 나는 거절했고, 대원수님은 그런 날 한참 설득하셨다. 죄송스럽게도 내용의 대부분을 나는기억하지 못했다. 어쩌면 설득당하지 않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귀를 닫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어찌 됐건 대원수님은 한숨을 쉬고 돌아가셨다. 대원수님은 다시 방문하겠다 말하셨다.


 나는 조종사가 누운 병실 침대에 조심스럽게 엎드렸다. 침대를 더듬대니 곧 그의 손이 만져졌다. 나는 꼼지락대며 그 손을 만졌다. 차가웠다.


 조종사.


 일어날 거지?


 제발.






 610번째 기록.


 "바이스. 뭐 하는 거야?"


 딸깍.


 "뭐? 녹음? 내 목소린 녹음해서 뭐 하게?"


 딸깍.


 "하하하, 그럼 콜로서스의 지휘자, 바이스의 파트너로서 덕담 한마디 안 할 수가 없겠네."


 딸깍.


 "사랑과 우정의 이름으로……, 요새 살쪘어? 아! 미안. 아악!"


 딸깍.


 "잠시만. 생각해보니 이것도 조무같은 녀석한테 팔아치우려는 거 아냐? 아니지, 바이스?"


 딸깍.


 "바이스, 뭐 하는 거야?"


 딸깍.


 "뭐? 녹음? 내 목소린 녹…"


 딸깍. 딸깍. 딸깍.






 1802번째 기록.


 ……


 …………


 …….


 조종사는 깨어나질 않는다.


 콜로서스엔 아무도 없다.


 체내의 루미나는 망가질 대로 망가졌다. 왼팔은 이미 움직이질 않는다. 화분에 물 줄 때 지장 없는 건 참 다행인 일이다. 아직 오른팔이 있으니까. 그래도 다시 활을 쥘 순 없게 되었다.


 의존하던 녹음기도 망가졌다. 수리할 방법을 찾아봤지만 아마 안될 거 같다.


 조종사는 그냥 그대로다. 어제와 같고, 1주 전과 같고, 1년 전과 같다. 그냥 그대로다.


 대체 시간이 얼마나 흐른걸까. 이곳은 이제 온통 망가진 것 투성이다. 망가진 콜로서스, 망가진 나, 망가진 녹음기, 망가진 조종사. 멀쩡한 건 크게 자란 화분의 식물 뿐이다.


 나는 미쳐가고 있다. 달라진 건 없다. 아니, 달라진 게 없다는 점이 날 미치게 한다. 똑같은 빵. 똑같은 병실. 똑같은 조종사. 오직 나만이 달라지고 있다. 나만이 괴로워하고 나만이 고통받고 있다. 나만이, 오직 나만이 애쓰고 있다.


 무엇을 위해?


 나는 사과를 깎으려고 낑낑댔다. 과도를 쥐고, 그 빨간 껍질을 도려낸다. 탁. 사과는 껍질이 벗겨지는 대신 두동강났다.


 나는 그 의미도 잊은 채 입술을 달싹인다.


 "조종사. 바깥 날씨가 괜찮은 것 같아."


 의사는 말했다. 조종사는 깨어나고 싶지 않아 한다고.


 그럼 내 기다림은 뭐가 되는걸까. 조종사에게 내 기다림이란 뭘까. 조종사에게 깨어난다는 것은 뭘까.


 "방금 함교에 있는 화분에……, 물을 주러 갔는데 벌써 키가, 나만큼, 자랐더라고."


 조종사가 바라는게 내가 이렇게 고통받는 것이었다면? 이 악몽을 조종사가 원한 것이었다면?


 "파이어, 플라, 플라이한테 좀 잘라달라고 할까 했는데, 혹시라도 네가, 반대할까 싶어서……."


 조종사가 내가 미워서 이런 일을 벌인거라면? 내가 조종사 맘에 들지 못해서 이런 일이 생긴거라면? 조종사가 날 증오하고, 난 조종사 맘에 들지 못하고, 조종사는 내게 벌을 내리고, 나는 몸부림치고.


 "그래서 일단 놔뒀어. 근데, 천장, 까지 자라면 어쩌지."


 나는 아마도 기다림의 끝에 서있다. 난 그 종결을 이뤄내지는 못한다. 그저 내게 남은 결말들을 가만히 들여다 볼 뿐이다.


 끝에는…… 차가운 진실만이 기다리고 있다. 난 버려졌고, 받아들이지 못해 내 남은 조각들 마저 내 손으로 파괴해버렸다. 그뿐이다. 아무것도 남지 않은 텅 빈 인형. 바느질 할 엄두도 나지 않는 넝마.


 조종사의 파트너로 남고 싶었기에 몇 년간 꾸준히 나 자신을 부숴왔지만, 그 마지막은 까마득한 무의 세계다.


 무. 그것만큼 이 세계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얼마나 있을까.


 그래, 아무것도 없다. 깨어나지 않는 조종사는 없다. 그리고 만신창이가 된 나도 없다.


 "누가 나한테 그랬어. 깨어날지 알 수도 없는 사람 옆에서 언제까지 기다리고 있을거냐고."


 기다림은 선택이랬다. 그리고 조종사는 내가 자기를 기다릴 것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조종사는 누구보다 우릴 잘 이해했지. 그래서 나도 조종사를 이해하고 있다고 착각했던거야.


 "하지만 난 알고 있어. 너라면..., 너라면..."


 나는 말을 끝마치지 못했다. 앞에서 느껴진 작은 기척 때문이었다.


 문득 기적처럼 조종사가 일어났다.


 그 몸을 천천히 일으키고, 눈을 비비고, 머리를 좀 부여잡은 다음 의자에 형편없이 널브러져 있는 날 바라본다. 난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뜰 수 있다는 것을 상기한다.


 아, 아. 아아. 말이 나오질 않는다. 갑작스레 찾아온 한줄기 빛이 난 눈부시다고 생각했다.


 우린 한참이나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재회다. 몇 년만의. 조종사는 멋쩍게 웃으며 말했다.


 "미안. 혼잣말 들어버렸네. 내가 많이 기다리게 했지?"


 "정말……, 조종사야?"


 "응. 오랜만이야."


 조종사는 아무렇지 않게 인사했다. 마치 별 볼일 없는 아침에 나누는 일상적인 인사같다.


 나는 밝게 미소지었다. 머릿속이 맑아지는 기분이었다. 조종사도 덩달아 미소지었다. 알겠다. 난 이 순간만을 위해서 그 긴 시간을 기다려 왔던 것이다. 아니, 마치 이 순간을 위해 태어난 기분이다. 턱이 조금 떨려온다.


 조종사, 너는 지금 기분이 어때? 날 바라보는 그 눈에는 무엇이 담겨있을까?


 난 네가 기뻤으면 좋겠어. 내가 기뻐하고 있는 것처럼.


 조종사는 두 팔을 펼쳤다. 그 두 팔은 마치 천사의 날개처럼 포근해 보여서 나는 망설임없이 내 몸을 마지막 의지에 맡겼다.



 나는 조종사의 목에 과도를 쑤셔넣었다.


 조종사의 몸이 짧게 경련한 다음 굳었다. 손을 목으로 가져가고 싶은듯 했는데, 잘 안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무언가 말하려 했지만 입에선 피거품만 끓었다. 그르륵대는 소리가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작게 났다.


 "어, 허억. 끄으, 끄륵."


 조종사는 다시 자신이 누워있던 그대로 쓰러졌다. 난 그걸 보고 다행이라 생각했다. 무엇이 다행인진 떠오르지 않았다.


 시트가 붉은색으로 물들어갔다. 나는 옷이 더러워지는걸 개의치 않고 조종사의 옆에 엎드렸다.


 나는 잠시 그 고요를 즐겼다. 조종사가 작은 소음을 만들어 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 고요했다. 아무 소리도 없다면 조용한지 안 조용한지 어떻게 알까. 나는 웃었다.


 "같이 쉴 수 있어서 기뻐."


 조종사는 날 바라보며 쓰러졌기에 우리는 눈을 맞출 수 있었다. 조종사의 눈에는 익숙한 감정들 뿐이었다. 경악, 절망. 그리고 의문. 나는 가슴이 얌전히 타오르는 것을 느낀다.


 아, 내가  정말 좋아하는 나의 조종사.


 내가 가장 사랑했고, 동시에 가장 증오한 사람.


 이 증오와 사랑을 동시에 표현할 방법이 있다는건 신께서 가엾은 내게 내려주신 한 모금의 희망이겠지. 또 내가 못움직이기 전에 네가 돌아온 것 역시 만상이 날 동정하여 비추어진 행운이겠지.


 이걸로 된거다. 이건 틀림없이 제일 걸맞는 결말일테니까.


 "이번엔 아무도, 영원히 깨지 말자……."


 나는 그렇게 속삭인다.


 "……안녕. 조종사."


 그저 그런 작별인사. 혹은 나 자신의 확인.


 이곳은…… 기다림의 끝. 미치게하는 적색 적막. 아무것도 남지 않을…… 무의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