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 : 악천후를 뚫고 나는 단골 식당에 도착했다. 낡고 허름한 집. 오늘은 주인장도 잠시 자리를 비웠는지, 카운터엔 사람이 없다. 고개를 돌려 주방을 바라보니,

셀 : 셀프입니다. 라고 적혀있는 문구와 그 옆엔 테이프로 수정된 가격표가 걸려있다. 이젠 장사도 제대로 안하는 건가? 그래도 자주 찾아왔던 식당인데. 다른 반겨주는 손님도 없고, 주문 받는 서빙도 없다. 괜히 서글픔이 몰려온다. 난 옷에 묻은 빗물을 탈탈 털고 주방으로 걸어갔다. 안에는 다행히 손님이 알아서 조리해먹을 수 있게 준비가 돼 있었다. 식당은 곧 나 혼자 요리하는 소음으로 가득찼다. 이내 자리에 앉아 첫 술을 뜨는 순간, 주인장이 서둘러 가게 안으로 들어와 허둥지둥 옷을 털어댄다.

리 : 이제야 오셨구만. 내가 조용히 읊조리자, 주인장이 화들짝 놀라며 말한다.

아 : 아니 아직도 와? 독하다 독해. 난 주인장이 늦게 왔으니 사과 한마디라도 내뱉을 줄 알았는데, 의외의 말이 튀어나오자 버럭 화를 냈다. "그게 손님에게 할 말이요?" 주인장은 별다른 반응 없이 나를 지나쳐 주방으로 들어가며 중얼거린다. "미안.." 저게 사람한테 사과하는 자세인가 싶다가도, 이내 한숨을 쉬고 나는 먹던 음식을 마저 먹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님이 나가도 끝끝내 나와보지 않는 주인장. 나는 또다시 한숨을 내쉬고 돈을 카운터에 올려놨다. 가게문을 박차고 나가려던 순간, 주인장이 뒤에서 나를 부른다. " 저기..." 나는 고개를 돌려 뒤를 돌아봤다. 주인장은 소심하게 부른 것 치고는 무덤덤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 가격 인상됐으니 돈 더내야 돼." "...." 나는 지갑을 열어 돈을 더 꺼냈다. 그리고 가게 밖으로 나와 가게 간판을 올려다봤다.
'백야극광' , 다 떨어져 나가려고 하는 문에는 '정상영업합니다' 라는 푯말이 간당간당하게 걸려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