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 다 썼다....

 내용이 조금 길어져서 기한을 못 맞추는 줄 알고 무서웠음

 하지만 어떻게든 다 썼으니 재밋게 봐주라


 그리고 케붕이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이 부분은 부디 너그럽게 넘어가 주면 감사할 것 같음

 또 얼른 자야해서 검수도 못함.

 이상한거 알려주면 감사합니다.


 암튼 재밋어 보이는 대회라서 열심히 해봤음

덕분에 1.5주년이 아이돌 이벤트라 아쉬웠던거 좀 가신 것 같기도 한 것 같기도 한 것 같기도 하고?






 -이브 시점-



 레디젤 랜치의 어느날 아주르 언니와 플뢰르 오빠가 리미티드 아이돌 밴드로 스카웃 되었다.

 플뢰르 오빠는 사람들 관심을 끄는 일이 영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으나 아주르언니가 재밋을 것 같다면서 플뢰르 오빠를 데리고 움브라톤으로 떠나버렸다.

 소식이 제대로 퍼지기도 전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기에 사메야마 오빠가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면 배웅해 주지도 못 했을 것이다.

 당시 이른 아침부터 출발할 준비를 하는 아주르 언니를 만나(플뢰르 오빠는 아주르 언니의 자동차 뒷자석에 묶여있었다) 아이돌 힘내라고 응원도 해줬다. 날 따라나온 도엔도 같이 화이팅을 외쳤지만 아이돌에 대해 잘 모르는 눈치였다. 아무래도 내가 응원하니까 뭔지 몰라도 따라하는 것 같았다.

 아주르 언니는 눈웃음 지으며 우리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기념품을 사주겠다는 말을 남기고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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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로부터 얼마 후.

 사메야마 오빠에게 아주르 언니가 보낸 편지가 있다며 나를 불렀다. 편지에는 우리에 대한 안부인사와 '더 스타라이츠'라고 하는 밴드의 공연일정과 입장 티켓이 들어있었다.

 와! 아주르 언니가 정말로 아이돌을 하나봐! 아이돌이니까 분명 예쁜 옷도 입는 거겠지? 그런데 플뢰르 오빠는 이런거 싫어하는 것 같던데 괜찮은 걸까?

 편지를 읽고 신이 난게 너무 티가 났는지 사메야마 오빠가 공연을 보러 가자고 먼저 권했다. 내게는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었다. 그렇게 우리도 움브라톤으로 여행을 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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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움브라톤은 레디젤 사막과 너무 다른 곳이었다.

 포장된 도로도 그렇고, 조금 답답할 정도로 많은 건물과 사람들. 험상궂은 얼굴의 부랑자와 말끔한 신사가 공존하는 거리.

 내가 살던 사막은 다들 비슷하게 허름한 옷을 입고 있어서 느껴본 적 없는 사람간의 괴리감이 존재했다.

 호회요 호회 하고 소리치고 다니는 아이에게 받은 신문에 적힌 내용에도 여러 자극적인 내용이 들어있었지만 정확한 의미는 알 수 없었다.

 음... 보기에는 조용한 곳인가 싶었지만 사실은 매일매일 시끌벅적한 일이 생기는 곳인지도 모른다. 그런 점은 우리 사막과 비슷 한 것 같았다.

 나의 혼잣말에 도엔은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한 면이 있다며 맞장구 쳐줬다.

 사메야마 오빠는 움브라톤이라는 지역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었는지 다른 곳에 들르지 않고 바로 공연장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공연장은 이제까지 본 움브라톤에 대한 인상을 완전히 바꿔버릴 정도로 대단했다. 정말 거대한 건물에 고풍스러운 장식이 밖에도 안에도 정말정말 가득했다. 이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어딘가 맞춰 입은 것 같은 사람들 밖에 없었기에 조금 주눅이 들기도 했다. 혹시 드레스 코드가 맞지 않다며 시비 걸리면 어쩌나 싶었지만 곁에 있는 사메야마 오빠가 워낙 사나운 분위기라 그런지 접근하는 사람은 없었다.

 사메야마 오빠가 나와 도엔의 것까지 티켓을 교환해 공연장의 관객석에 도착했다. 혹시나 시작 전에 아주르 언니와 플뢰르 오빠를 만날 수 있을까 했지만 검은 양복을 입은 아저씨가 방해해서 찾아갈 순 없었다.

 거대한 돔으로 형성된 공연장과 그 중앙의 무대. 바글바글 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의 인파. 어슴푸레한 조명때문에 어두웠지만 사람들의 묘한 열기 때문에 무섭지는 않았다.

 한 손은 사메야마 오빠의 손을, 다른 한 손은 도엔의 손을 꼭 쥐고 길을 잃지 않으려 애쓰며 우리는 최대한 무대에 가까운 곳으로 이동했다. 하지만 사람이 많아 앞으로 가기 힘들었기에 도중에 이동을 멈추는 대신 사메야마 오빠의 양 팔에 안겨 무대를 보기로 했다.

 웅성웅성대는 소리. 도엔도 이런 분위기는 처음이라 그런지 흠칫거리고 있었다.

 곧 무대를 향하는 조명이 켜지면서 공연의 시작을 알리는 목소리가 크게 울려퍼졌다. 동시에 무대 아래의 모든 사람의 우렁찬 환호가 터져나왔다. 도엔은 깜짝 놀란 듯 보였다. 나도 조금 놀라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드디어 시작이구나 하고 기대감이 부풀었다.

 무대에 나타난 사람은 골디라고 하는 귀여운 옷을 입은 여자아이였다. 객석에서의 환호가 엄청난 것을 보면 그녀도 아이돌인 것 같았다.

 골디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전부 모르는 이야기였으나 딱 하나 아는 이야기가 있었다.

 더 스타라이츠

 분명 아주르 언니와 플뢰르 오빠가 속한 밴드의 이름이었다. 그 밴드는 이벤트성으로 기획된 팀이었던 모양이다.

 골디의 간단한 설명이 있고서 본격적으로 무대가 시작되었다.

 무대를 비추는 화려한 조명 아래에서 예쁘고 잘생긴 사람들이 춤과 노래를 선보였다. 무대에서 연주된 음악은 심장에 대고 직접 울리는 것 같았다. 무대에 관객들이 시끄럽게 환호하는데도 음악은 몸 안에 선명히 울려서 너무나 신비로운 느낌이었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는 다른 관객과 다를바 없이 환호하고 열광했다. 아는 노래라곤 하나도 없었는데도 너무나 즐거웠다. 객석의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응원하고 기쁨을 공유한다는 것은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 한 충만한 느낌이었다.

 어느덧 몇 번의 공연이 지났다. 몇 번인가 공연을 했던 골디가 다시 무대 뒤에서 나와 진행했다. 그녀는 마지막 클라이맥스로 '더 스타라이츠'의 무대가 최초공개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고조시켰다.

 드디어 아주르 언니랑 플뢰르 오빠 차례다!

 신이 난 나는 고개를 돌려 도엔과 사메야마 오빠에게 아주르 언니네 차례임을 알렸다. 시끄러운 와중이었기에 사메야마 오빠는 내 목소리를 듣지 못 했는지 무대에 집중하고 있었다. 도엔은 마침 나와 눈이 마주쳤다. 내 목소리가 전해진 것인지 도엔도 나와 마주 웃었다.

 곧 '더 스타라이츠'의 무대가 시작되었다. 첫 무대라 그런지 노래를 시작하기 전에 간단한 자기소개가 이어졌다. 아주르 언니와 플뢰르 오빠, 그리고 조금전에 공연했던 골디라는 아이 빼고 다른 셋은 처음보았다. 모르는 사람은 상대적으로 눈이 가질 않았다. 내 눈에는 아주르 언니와 플뢰르 오빠를 중점적으로 살폈다.

 원래도 멋쟁이였지만, 새삼 아주르 언니도 플뢰르 오빠도 무대인 만큼 옷에 힘이 들어갔구나 싶었다. 특히 플뢰르 오빠는 몸 드러내는걸 좋아하지 않는데 가슴팍을 드러내고 있어서 조금 놀랐다. 하지만 곧 다른 남자는 명치까지 까고 있는 것을 보고서 저게 플뢰르 오빠 나름의 최선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저들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지 왠지 모르게 상상이 가는 와중에 간주와 함께 무대는 시작되었다.

 'believe in the light'

 내가 아는 사람의 무대였지만 익숙한 느낌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주르 언니와 플뢰르 오빠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너무 멋져!

 원래도 멋진 사람들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이제까지의 감상과는 어딘가 달랐다.

 오히려 앞서 경험했던 무대에서 느꼈던 열광과 닮아있었다. 하지만 또 어딘가 달랐다. 그게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나는 몸을 지배하는 흐름에 올라탔다.

 머릿속을 헤집어 놓는 듯 한 음악과 광기의 영역에 닿을 듯 한 열광. 객석 뿐만 아니라 무대 위의 아이돌과도 하나가 된 것 만 같은 느낌은 이제까지 느꼈던 일체감과는 또 달랐다.

 어렴풋이 깨달았다. 이제까지와 지금의 차이점. 무대를 즐기는 마음은 같았으나 근본적으로 내가 무대 위의 아이돌을 진심으로 응원한 것은 아주르 언니와 플뢰르 오빠가 있는 '더 스타라이츠' 뿐이었다.

 나는 나의 진심을 무대를 향해 목이 쉬도록 전했고 무대위의 아이돌은 이에 호응하듯 노래와 춤을 선보였다. 머리를 울리는 음악은 정신을 뒤흔들어 어느 순간 부터인가 나의 경계가 사라지는 듯 했다. 이윽고 객석과 무대의 구분이 사라졌다. 이곳의 모두가 한 마음이 되었음을 느꼈다.

 무대를 비추는 눈부신 조명. 빛무리 속에서 요정같은 춤사위를 보이는 '더 스타라이츠'. 어둠이 깔린 객석에서도 한 몸처럼 움직이는 형광빛 응원봉. 그 모든 것 하나하나에는 감동이 있었고 마음이 담겨있었다.

 혼란 속 환희가 고개를 치켜든다. 우리는 무대를 우러러 본다. 이성이 증발한 듯 한 공간은 이곳의 모두를 열락으로 이끌었다. 머리가 뜨겁다. 호흡이 어지럽다. 하지만 멈출 수 없다.멈출수없다멈추지않아이곳에나의몸과마음이떠나가라외칠게아주르언니플뢰르오빠노래와내목소리가하나가된것만같아아니이미하나인걸까

 아 내일 목 다 쉬겠네.

 그게 내가 마지막으로 한 멀쩡한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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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던 무대는 어느덧 끝이났다. 더 이상 정신을 흔드는 음악도 없고 눈을 환상속에 빠뜨리는 조명도 없다. 처음 공연장에 들어왔을 당시의 어슴푸레한 조명과 웅성웅성대는 소리.

 뭔가 굉장히 환상적인 경험을 한 것만 같아.

 현실이 더 현실감 없는 느낌은 상실감과 묘하게 닮아있었다. 하지만 슬프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여전히 가슴 한켠에는 그 순간의 충만함이 남아있었다.

 내가 한동안 멍하니 있어서 그런지 사메야마 오빠가 걱정스러워했다. 방금까지 대단한 경험을 하고서 괜히 걱정끼치고 싶지는 않았다.

 "오빠! 아이돌이란거 대단하네!"

 "응? 아, 그래. 바바라나 레지나의 공연은 자주 봤지만 이건 궤가 다르더라."

 "확실히 무대도 대단했고, 객석의 환호성도 엄청났어! 뭔가... 정말 꿈만 같은 시간이었어!"

 사메야마 오빠는 내 말에 동의하면서도 나 만큼 공연을 즐기지 못 한듯 공감하지 못 하는 것 같았다. 오히려 너무 흥분한 나를 달래듯 대했다.

 아, 정말! 사메야마 오빠는 다 좋은데 나를 너무 애처럼 대한다. 아팠던 기간이 길었다 뿐이지 나는 진작 다 컸는데!

 "도에에에에에엔! 사메 오빠는 안 되겠어! 도무지 말이 안 통한다니까!"

 내가 갑작스럽게 끌어안았지만 도엔은 예상이라도 했다는듯 동시에 나를 안아줬다. 어쩐지 사메야마 오빠가 상처받은 표정을 지었다.

 "이번 공연은 그냥 좋았다고 할 정도가 아니었는데. 정말..."

 "이브는 즐거운 시간을 보냈구나."

 "응?"

 도엔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어딘가 이상한 소리를 했다. 도엔에게 고개를 돌리자 도엔은 나를 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예전에 비해 확연히 부드러워진 미소. 도엔이 웃는게 흔하진 않지만 드물지도 않아 새삼 이상할 것은 없었지만 어딘가 기시감이 들었다.

 아마 그리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았을 익숙한 표정.

 "음... 이브가 행복하면 나도 좋아."

 "으응...?"

 그리 말하며 포근하게 웃는 도엔. 동시에 이 기시감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바로 조금 전 공연장에서 잠깐 눈이 마주쳤던 순간. 도엔은 나를 보며 웃고 있었다.

 그러고 보면 도엔은 어떻게 그 시끄러운 와중에 내가 하는 말에 반응했지? 애초에 공연중에 시선을 돌린 타이밍에 마침 눈이 마주친 것은 우연이었나? 어쩐치 처음부터 도엔은 나를 바라보고 있었던 것 같은...

 "헉!"

 나는 깨달아버렸다.

 너무도 충격적이고 끔찍한 진실을.

 사실 도엔은 사메야마 오빠의 반 만큼도 공연을 즐기지 못했다는 것을.

 아니, 심지어는 공연이고 뭐고 애초에 관심 조차 없었다는 사실을!

 "세상에..."

 어쩜 이리도 비극적인 일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살아가며 느껴보기 힘든 그 환상적인 감각은 느껴보지 못했다니...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내 소중한 친구 도엔만큼은 내가 느낀 감각을 공유하고 싶었다.

 하지만 이미 공연은 끝났고 이후 또 다른 공연을 본다고 해서 이번 같은 충실한 감각을 느낄 수 있을까. '더 스타라이츠'는 이벤트성 그룹이었기에 이후 활동은 없을 것으로 보였다. 아마 아주르 언니네도 짐 싸서 레디젤 사막으로 돌아올 것이다.

 사실상 이번이 일생에 한 번 뿐인 기회였다는 건데...

 "으음..."

 "이브...? 괜찮은거 맞니?" 

 "이브?"

 주변에서 걱정스러운 기색이 느껴졌지만 나는 고민을 멈출 수 없었다. 사메야마 오빠는 둘째 친다 하더라도 도엔에게 만큼은 재대로된 즐거움을 선사해주고 싶었으니까.

 그러다 문득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어차피 아주르 언니랑 플뢰르 오빠는 레디젤에 돌아오니까 와서 다시 한번 콘서트를 열면 되는게 아닌가?

 아마 규모가 어느정도 있는 공연이라면 바바라와 레지나도 동참하려 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다시한번 공연을 열어도 도엔에게 있어서 크게 달라질 것도 없기에 여전히 관심을 끌 수 없을 것이다.

 도엔이 진정으로 응원하고 싶어지는 사람이 공연을 해야한다.

 그리고 마침 나는 그런 사람을 하나 알고 있다.

 "오빠!"

 "오, 오... 왜 그러냐. 지금 너 좀 이상하다."

 사메야마 오빠의 얼굴에서 걱정이 가시질 않는다. 하지만 깨달음을 얻은 현자의 눈을 한 나와 시선을 맞춘다면 곧 걱정이 가실 것이다.

 "아직 후유증이 남았나... 완치 되기 전에 멀리 나온건 실수였군."

 "아 진짜 그런거 아니니까!"

 정말 이 인간은 언제까지 나를 꼬마로 보려는건지. 하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게 아니다.

 "나 아이돌 할래."

 "뭐, 라고?"

 "아이돌 한다고."

 사메야마 오빠는 내 말에 곰곰히 생각하는 듯 하더니, 무언가를 이해한 듯 싶다가도 고개를 갸우뚱 하다가 곧 이마를 탁 치며 한숨을 내쉬었다.

 "내가 애한테 이상한 바람을 불어 넣었구나."

 왠지 사메야마 오빠는 회한에 젖어들기 시작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사메야마 오빠는 내가 아이돌이 되는 것에 부정적인 입장인 모양이었다.

 곤란하다. 도엔에게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려면 내가 아이돌을 하는 수 밖에 없는데.

 내가 쩔쩔매고 있자 도엔이 내손을 꼬옥 잡았다. 시선을 돌려보자 도엔은 자상한 미소를 지어보이더니 믿음직스러운 얼굴로 사메야마 오빠를 불렀다.

 "사메야마. 나도 이브랑 같이 아이돌 할게."

 "... 뭐시라?"

 "나도 같이 한다고. 그러니까 걱정하지 말고, 방해도 하지마."

 사메야마는 뒷목 잡고 쓰러지기라도 할 듯 했다.

 그래도 어떻게 둘이 이야기를 하다보니 레디젤 사막에 가면 이번 공연만큼이나 성대한 축제를 열자는 식으로 이야기가 되었다. 나와 도엔은 '더 스타라이츠'같이 일회성 그룹으로서 참가한다는 것이었다.

 문득 일이 이상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느꼈지만 일은 이미 내 손을 벗어나 이상하리만치 잘 굴러가고 있었다.

 "걱정마 이브. 내가 도와줄게. 이브 하고 싶은거 다 해."

 도엔이 세상 자상한 미소를 지었다.

 뭔가 이건 내 의도와 전혀 방향이 다른데...

 "뭐 상관 없나! 열심히 해보자 도엔!"

 "응!"

 그렇게 우리의 아이돌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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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의 레디젤 랜치는 정말이지 떠들썩해졌다. 사실 원래도 시끌벅적한 동네였지만 어떨결에 열리게 된 축제 덕에 그 열기가 심했다.

 공방에서 잘 나오지 않는 오디와 타이니마저도 거리를 바쁘게 돌아다니는 것을 보면 레디젤의 모두가 축제를 위해 바쁘긴 한 것 같았다.

 남일 처럼 말하고는 있지만 사실은 나도 상당히 바빴다. 다른 이들은 여러 장치가 들어간 무대를 만들거나 자원을 모으기 위해 동분서주 한다면 나는 당일에 무대위에서 선보일 공연을 준비해야했다.

 이는 나 이외에도 공연을 준비해야하는 모두가 그러했다. 그나마 바바라와 레지나는 공연에 익숙해서 그런지 한가한 듯 했다.

 "자~! 이런 포즈는 어때? 자고로 아이돌이라면 각자 어필 할 수 있는 매력이 있어야 하는 법이야~. 이브랑 도엔은 기본적으로 귀여우니까 느낌만 익히면 금방 바바라 만큼 매력적인 아이돌이 될 거라구!"

 "무슨 솜사탕 녹아 내리는 소리를 하는 거냐? 자고로 무대에서 중요한 것은 관객을 사로잡는 강렬한 카리스마! 영혼을 울릴 수 있는 메탈이다! 이브가 가진 폭력적인 울림의 천둥과 도엔의 태풍의 눈 같은 분위기는 틀림없이 록의 영혼이 있다는 증거. 우선은 악기부터 연습하는게 맞아!"

 "야! 이브와 도엔은 나한테 조언을 듣고 있었어! 이 애들은 레디젤 랜치 아이돌의 미래니까 이상한 참견 하지 마!"

 "아앙? 되다만 딴따라는 낄 곳은 좀 가려서 끼시지 그래? 실력으로 승부할 배짱이 없어서 잡스런 방법으로 바보들 속여서 인기를 누리는 녀석에게 배울게 뭐가 있다고 그러는 거지?"

 "너...! 내 실력을 의심하는 것도 못 참겠지만 지금 내 팬까지 모욕하는 거야? 내 전기톱의 이슬이 되고 싶다는 소리지?"

 "하! 해보자는 거지? 좋다! 기존 무대는 개조중이니 공터에서 붙어 보자고!"

 "누구의 공연이 사람을 열광 시키는지 승부야!"

 바바라는 마이크가 연결된 체인소를 작동시켰다. 페인트로 귀엽게 꾸며놓은 체인소가 사나운 울음을 토한다. 레지나는 재미있다는 듯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기타를 거칠게 퉁겼다. 일렁이던 그녀의 머리칼이 보다 거칠게 요동쳤다. 둘은 당장이라도 서로를 잡아먹을듯 노려보더니 곧 나와 도엔을 두고 연습실을 떠났다.

 "한가하네, 저 둘은."

 "프로는 역시 다른 가봐."

 "음... 그건 좀 다르다고 생각해."

 아무튼 곤란하게 되었다. 일단 무작정 아이돌 하겠다고 나서긴 했지만 나도, 도엔도 무얼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알지 못 했다. 그래서 바바라에게 상담을 받기도 했던게 바로 조금전 가지의 상황.

 "이래서야 우리 공연을 잘 해낼 수 있을까?"

 암만 형편없이 공연을 망쳐도 레디젤의 모두는 우리를 탓하지 않을 것이라 알고는 있지만, 그렇다고 대충 할 순 없는 노릇이다. 애초에 도엔에게 내가 느꼈던 아이돌 공연의 흥분을 공유하고 싶다는게 이유였으니까.

 내가 많이 걱정스러워 하자 도엔이 내 곁에 다가와 손을 꼭 쥐어주었다. 별다른 말을 해주지 않았지만 왠지 힘이 나는 것 같았다.

 "아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일단 이런저런 춤이라도 춰볼까?"

 "이브와 함께라면 다 좋아."

 그날 나와 도엔은 연습실에서 손뼉을 치면서, 노래를 부르며, 빙글빙글 돌아가며 춤을 추었다. 눈이 보이지 않는 도엔의 어색한 손짓 발짓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귀여웠다.

 그렇게 우리는 하루를 즐겁게 보냈다. 그리고 그날 저녁, 아주르 언니와 플뢰르 오빠가 움브라톤에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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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귀한 아주르 언니네 일행은 우선 사메야마 오빠에게 와서 보고했다. 마침 우리는 저녁을 먹던 중이었기에 경과 보고는 같이 식사를 하면서 가벼운 분위기에서 진행되었다.

 아주르 언니네는 더 스타라이츠의 공연 이후, 후속 처리를 할 것이 있어서 복귀가 늦어졌다고 한다. 주로 보수에 관한 것과 재계약에 대한 논의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더 스타라이츠'가 정식 데뷔하는 것인가 싶었지만 당시 모여있던 이들이 정기적으로 모이기 힘든 신분의 사람도 있었고, 돈만 받았으면 이제 귀찮으니 싫다는 사람도 있고 해서 결국 해산하게 되었다고 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구성원의 과반수가 하기 싫다고 했으나 스폰서 측에서 다시한번 생각해 달라면서 질척거리는 바람에 오래 붙잡혀 있었다고 한다.

 확실히, '더 스타라이츠'는 대단한 스타성이 있는 그룹이었으리라. 레디젤 렌치에서는 별로 와닿지는 않지만 공연 이후 아스트라 대륙에 '더 스타라이츠'열풍이 몰아쳤다고 한다. 아주르 언니는 움브라톤의 호텔에서 나가면 사람이 몰려서 플뢰르가 힘들어하는게 참 재밋었다며 웃었다.

 "아무튼 괜찮은 기분 전환이었어. 역시 한 번씩 나가서 신선한 바람 좀 쐬야 한다니까. 사막의 바람은 아무래도 모래 때문에 기분 좋지는 않거든."

 "그래. 아무튼 잘 돌아왔다. 당분간은 대대적인 작전 활동은 없으니까 쉬라고."

 "어머. 그래도 나랑 플뢰르가 한동안 자리를 비웠는데 오자마자 쉬어도 될까?"

 "아아 괜찮다. 정 좀이 쑤시면 다른 사람들 도와줘. 다들 축제 준비한다고 고생하고 있으니까."

 "축제? 그러고 보면 기지가 어수선한 분위기였지."

 사메야마 오빠는 대략적으로 준비중인 축제에 대한 설명을 해줬다.

 "후훗. 뭐야. 여기도 '더 스타라이츠'의 열풍이 미치고 있었네."

 "그렇게 됐다."

 사메야마 오빠가 머리를 짚으며 나를 힐긋거렸다. 마치 내가 만악의 근원이라는 듯 한 태도여서 좀 어이가 없어서 나는 삐진 티를 냈다. 요즘 비슷한 상황이 많았어서 그런지 사메야마 오빠는 날 달래지 않았다.

 흥이다! 앞으로 다시는 먼저 안 안아 줄테다.

 아주르 언니는 나와 사메야마 오빠를 보며 즐겁다는 듯 쿡쿡 웃더니 내 쪽으로 의자를 가까이 당겨 앉았다. 압도적인 질량이 나의 시야를 완전히 차단했다.

 "우리 아가씨는 언니의 공연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네?"

 "응! 누나 너무 멋졌어! 반 할 것 같아!"

 "후후후, 움브라톤에서 그런 칭찬은 이제 지겹다고 생각햇는데. 이브가 하는 말은 왜 이리 기쁠까? 응? 요게, 요게!"

 "에헤헤..."

 아주르 언니가 나를 끌어안고 인정사정없이 뺨을 비볐다. 아주르 언니의 품은 따뜻하고 부드럽고 또 말랑말랑했다. 또 아주르 언니의 피부에서는 달콤한 술 냄새가 나서 토라졌던 기분도 순식간에 풀렸다.

 ... 술 냄새? 이상하다, 식탁엔 술이 올려져 있지 않은데 왜 아주르 언니에게서 술 냄새가 나지? 분명 조금 전까지 운전하다 왔는데... 뭐, 좋은게 좋은거지!

 "언니네 공연이 너무 멋져서 나랑 도엔도 이번 축제에서 공연하기로 했어!"

 "어머어머! 벌써부터 언니는 그 날이 기대되는걸?"

 "그런데 나도, 도엔도 아이돌 같은거 잘 몰라. 그래서 어떻게 준비 해야 할지 많이 난감해..."

 "응? 바바라랑 레지나는? 아, 걔들도 준비한다고 많이 바쁘니?"

 "아니? 둘은 디게 한가해. 그래서 오늘 상담도 했는데, 금방 티격태격 하다가 둘이 어디 가버렸어."

 하긴, 그 둘은 그런 느낌이긴 했지. 아주르 언니가 쿡쿡 대며 중얼거렸다. 그러고 보면 바바라와 레지나의 관계는 레디젤 렌치에서 아주 유명하다. 심심찮게 둘이 으르렁 거리면서 말다툼 하는 꼴을 볼 수 있는데, 이상하리만치 둘은 붙어 다니는 경향이 있었다. 사실 세상에서 제일 사이가 좋은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래서 언니. 부탁이 있어."

 "흐응... 공연 준비를 도와달라는 부탁이구나?"

 "언니, 천재야?"

 "내가 좀 똑똑하단다."

 아주르 언니가 우쭐대면서 웃었다. 이런 시덥잖은 이야기를 하면서 헤프게 웃는걸 보니 아주르 언니는 취한게 맞는 것 같았다. 마침 잘 되었다. 원래 취한 사람은 약속도 가볍게 하고는 한다. 사메야마 오빠가 자주 그래서 이럴때 어떻게 하면 되는지 나는 잘 안다.

 "언니이~ 나, 언니 노래랑 춤을 보고 너무 감동했어! 그래서 이제 나도 언니처럼 굉장한 공연을 하는게 꿈이야! 그러니까, 언니? 나랑 도엔 좀 도와줄 수 이또요?"

 "후훗. 꼬마야. 속이 너무 뻔히 보이잖니. 사람을 무슨 바보로 아는 거니?"

 "우웅... 안 도와줄꼬에요?"

 "정말, 귀여우니까 봐주는 거야."

 "앗싸!"

 아주르 언니의 승낙에 나는 신이나서 괴성을 지르며 방방 뛰어다녔다. 사메야마 오빠가 밥 먹다 말고 어디가냐며 나를 쫓아 와서 금방 잡혀버렸다.

 아주르 언니는 연습은 내일부터 하자고 약속하고 식사 하다 잠이 든 플뢰르 오빠를 질질 끌고 떠나버렸다.

 나와 도엔은 아주르 언니를 배웅하고 나서 집에 들어갔다. 분명 처음에 저녁먹는 시간이었는데 이야기가 길어져서 그런지 벌써 한 밤중이었다.

 "도엔 내가 해냈어!"

 "축하해."

 "고마워! 이제 내일부터 제대로 연습 할 수 있겠다!"

 "그러게. 정말 다행이야."

 나는 도엔의 손을 잡고 방으로 이끌었다. 처음에는 앞으로 어쩌면 좋나 싶었지만 결국 어떻게든 될 것 같았다.

 "좋아! 오늘을 축하하는 의미로 오늘 밤에 몰래 간식 꺼내 먹자!"

 "내일 제대로 연습 하려면 일찍 자는게 좋아."

 "뭐, 라? 도....에에에에에엔! 대체 무슨 소리야 그게! 모름지기 기쁜 일이 있을 때는 축하가 따라와야 하는 거라구!"

 "응... 그런 걸까?"

 "그래! 그런 의미로 오늘 밤을 불태워 보자구!"

 "이브가 원한다면, 나도 좋아."

 "좋았어! 당장 방에 들어가서 작전을 세우자구! 사메 오빠한테 들키면 또 혼날거야!"

 "응!"

 그렇게 우리는 기세좋게 숨겨진 간식을 빼먹으러 향했다. 분명 사메야마 오빠가 잠들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왠지 바로 걸려버렸다.

 한동안 외부 작전이 없어서 기호 물자는 아껴야 한다며 잔소리하는 사메야마 오빠가 조금 미웠지만, 그래도 마지막에 달콤한 간식을 조금씩 꺼내줘서 용서해주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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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르 언니와 플뢰르 오빠의 지도 아래에 나와 도엔의 공연 준비는 순조로웠다. 특히나 도엔은 눈이 보이지 않는데도 안무를 완벽하게 소화 해 낼 수 있게 되었다. 함께 맞춰야 하는 부분도 도엔은 알맞는 거리감을 유지하며 스텝을 밟을 수 있게 되었다.

 대체 어떻게 가능한건지 신기해서 물어보자 도엔은 내가 움직이는 발소리와 냄새로 거리를 어느정도 알 수 있다고 설명해 주었다. 과연, 눈이 보이지 않으니 다른 감각이 예민한 모양이었다.

 우리의 무대 의상은 로이 삼촌이 만들어주기로 했다. 시안으로 보여준 그림은 팔랑팔랑 하고 귀여운 느낌이었다. 색은 나와 도엔이 좋아하는 새벽꽃 같은 새하얀 색이었다.

 축제의 중심이 될 무대는 어느덧 거의 완공되어 가고 있었다. 나와 도엔은 기본적으로 매일 연습하느라 건설현장을 도울 수 없었지만 집에 가는 길에 고생하는 사람들에게 음료수를 챙겨주곤 했다.

 그들도 우리가 공연 준비를 열심히 한다는 것을 아는지 기대한다며 응원해줬다. 사실상 내 고집으로 시작된 축제인데도 저런식으로 말해주니 없던 기운도 나는 것 같았다. 더 열심히 해서 멋진 무대를 보여줘야지.

 "도엔도엔도엔! 모두가 우리에게 기대하고 있어!"

 "그런가?"

 "당연하지! 물론 우리 말고도 다른 사람들도 공연하게 되겠지만, 그걸 포함해서도! 우리는 기대를 받고 있고, 응원 받고 있어! 모두의 마음이 우리에게 모여들고 있는 거야! 그리고 축제 날에 우리가 레디젤의 모두를 행복하게 해주는 거야!"

 "이브가 그렇다면, 그런거겠지."

 "응!"

 도엔은 아리송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조금전 우리를 응원하고 다시 일하러 간 사람들이 있는 방향을 응시했다.

 눈이 보이지 않는 도엔에게는 어떤 느낌인걸까. 도엔은 직접 닿는 사람이 아니면 별로 관심을 주지 않는다. 대화를 해도 닿지 않으면 별로 실감되지 않는 것 같았다.

 어쩌면 우리를 응원해주는 사람들의 말이, 마음이 아직 닿지 않는 건지도 모르겠다. 이런 상태로 우리가 무대에 오른다면 어떻게 될까.

 분명 열심히 연습했으니까 무대는 성공적일 것이다. 레디젤의 모두에게 환호성을 받을 것이고, 그 날은 내게 잊을 수 없는 하루가 되겠지.

 하지만 도엔은? 와닿지 않는 함성은 단순한 소음에 그치지 않을까?

 애초에 도엔이 열심히 춤과 노래를 연습하는 것은 전부 나를 위해서다. 곁에서 함께 연습하는 나는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도엔. 이번에 하게될 '우리의 무대'는 절대 잊을 수 없는 '우리의 추억'으로 만들거야."

 분명 이대로 간다면 축제는 나의 추억이 되고 끝이다. 나는 그 사실이 너무나 싫었다.

 "아직 방법은 남았을거야."

 도엔은 나의 말이 잘 이해가 가질 않는 듯 했다. 하지만 괜찮다. 원래 선물은 서프라즈가 더 기쁜 법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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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종사 시점-


 어느날 쿠리어 길드의 에호에게 편지를 받았다. 늘 고생하고 있는 것 같아 취하지 않을 법한 음료수를 대접하고 돌려보냈다.

 "어디서 온 편지야?"

 "글쎄? 발신인은 없는데, 레디젤에서 온거라고만 되어있는데."

 "흐응."

 어느새 뒤로 다가온 바이스가 내 어께에 턱을 얹고 콧소리를 냈다. 귀가 간지러워서 그만 하라고 하려는데 꼬리가 내 뒷통수를 쿡쿡 찔렀다. 잔말 말고 편지나 열어보라는 재촉이었다.

 찍소리도 못하고 얌전히 편지를 열었다. 거기엔 곧 레디젤 랜치에서 열리는 축제에 초대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레디젤 문나잇 콘서트라는데?"

 "음... 바바라랑 레지나가 나와서 노래부르는 걸까?"

 "글쎄."

 자세한 내용을 읽어보니 해가 지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길거리 음식을 먹으면서 무대에서 진행되는 여러 레크레이션으로 시간을 보낸다고 한다. 그리고 달이 뜨면 그때부터 여러 공연이 진행되는 순서이고, 모든 공연이 끝나면 새벽이 되어 있다는 모양이다.

 "요즘 뭔가 이런 행사가 많아진 것 같네. 골디도 그렇고, '더 스타라이츠'도 그렇고."

 "그러게? 그러고 보면 우리는 '더 스타라이츠'는 보러 못 갔네. 기껏 골디한테 초대장도 받았잖아. 듣기로는 다들 굉장했다던데 아깝게 됐어."

 "어쩔 수 없었지. 히이로님 자리가 비어서 일루미나도 정신 없었다면서. 네가 바쁜데 나 혼자 가기도 좀 그랬고..."

 "조종사~? 그렇게 까지 날 신경써줄 필요는 없는데... 헤헤."

 "뭐... 움브라톤은 혼자 가면 불량배한테 납치당할 것 같기도 하고."

 "아 진짜. 끝까지 솔직해지면 좀 어디 덧나?"

 "이게 제 진심입니다."

 "흐응... 조종사아?"

 내가 계속 장난치자 바이스가 내 목을 조르듯 끌어안았다. 살짝 죽을 것 같아서 열심히 항복을 외쳤지만 조금 토라진 바이스는 바로 놓아주지 않았다. 어라, 왠지 목에 딱 적당한 곳이 절묘하게 눌리고 있는 것 같은데.

 응? 아, 스카이워커. 뭐야, 거기 있어? 한참 찾았잖아. 드디어 만났

 "으허억! 허억... 허억... 스으으읍... 콜록, 콜록."

 "앗! 미안 조종사! 내가 너무 심하게 했네. 미안..."

 내가 헐떡이며 숨을 몰아쉬자 바이스 어쩔줄 몰라하며 내 등을 두드렸다. 숨이 빨리 회복되지 않진 했지만 어떻게든 진정한 나는 혼란스러워 하는 바이스의 손을 잡고 눈을 마주했다.

 "나는 괜찮아. 애초에 내 장난이 지나쳤지? 그러니까 너무 미안해 하지마."

 "아니, 그으... 응."

 바이스는 뭔가 더 할 말이 있는 듯 싶었지만 눈을 내리깔며 입을 다물었다.

 당연히 나는 바이스가 나를 해칠 생각이 없었음을 알고 있었다. 단순한 실수인걸 아니까 저렇게 의기소침하지 말았으면 좋겠는데.

 "일단 이야기를 돌리자. 레디젤의 축제. 보니까 날짜도 가까워서 가려면 슬슬 준비해야 할 것 같은데. 어때?"

 "음... 히이로님이 없을때 고생한 병사들은 한동안 돌아가면서 휴무를 갖고 있어. 뭐, 나는 애초에 콜로서스에 파견나온 느낌이라 상관 없는 느낌이지만."

 "갑자기 호출당하진 않겠지?"

 "아마도? 한동안은 엄청 급한 일 아니면 소환당하지 않을거야."

 바이스의 대답으로 결정났다. 우리의 다음 행선지는 사막. 레디젤 랜치.

 조금 전까지 어색해하던 바이스는 레디젤의 축제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하며 본래 밝은 분위기를 되찾았다. 한동안 바빴으니 이런 즐거워 보이는 행사에 가고 싶기야 할 것이다.

 그러고 보면 카렌은 어쩌고 있을까. 가는 길에 연락해서 같이갈 수 있다면 데려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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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디젤 렌치에 도착했다.

 카렌에게도 연락은 해보았지만 일이 바빠서 함께 할 수 없다고 한다. 대충 듣자하니 백야성의 귀족 사이에 문제소지가 있는 책이 유행하고 있어서 이래저래 정신이 없다는 모양이다.

 아쉬운 일이지만 다음에 기회에 함께 하기로 했다.

 콜로서스에서 내려 북적북적한 거리를 걸었다. 원래도 시끌시끌한 곳이었지만 축제라 그런지 기억 속의 모습보다 활력이 넘치고 있었다.

 의외인 점은 도적놈들의 축제인데도 외부인사가 생각보다 많았다는 점이었다. 나야 이곳의 수장인 사메야마와 친분이 있어서 그러려니 했는데 척 보기에도 레디젤 사람이 아닌 이들이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일단 도적 소굴인 것은 맞아서 그런지 호위를 데리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 아니면 본인이 충분히 강하던가.

 "뭔가 기묘하네. 혹시 휴가나온 일루미나 병사도 있는거 아니야?"

 "그러게. 아는 사람 만나면 반갑겠다."

 혹시나 싶어 사람의 면면을 확인했다. 얼굴로 어디 사람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복장을 보면 얼추 예상은 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외부인의 대부분은 움브라톤에서 온 사람인 것 같았다.

 아이돌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곳도 움브라톤이었는데, 혹시 이번 축제와 뭔가 관계가 있는 걸까.

 나와 바이스는 신기한 노점을 둘러보며 일단은 사메야마를 찾아갔다. 사메야마는 어께에 완장을 차고 있는 무리를 이끌고 있었다.

 "사메야마! 오랜만이야!"

 "조종사냐? 그래. 반갑다."

 나를 발견한 사메야마가 가볍게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그러고는 그를 뒤따르던 무리에게 무어라 지시를 해서 무리를 해산시키고 내게 다가왔다.

 "일찍 왔군. 본격적인 행사가 시작하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다. 그래도 즐길거리는 충분할테니 적당히 노점이라도 돌아다녀라."

 "바쁜 모양이네. 안내 받을 수 있으려나 했는데."

 "쯧. 뭐 그렇지. 조무 그녀석이 갑자기 사업확장이니 뭐니 하면서 우리 축제에 움브라톤을 끌어들였거든. 내가 허락하긴 했지만, 일이 좀 급박하게 돌아가서 운영 쪽 인력이 딸리더라고. 그래서 난 오늘도 고생하고 있다."

 그리 설명한 사메야마의 얼굴에는 귀찮은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래도 막상 당사자가 축제를 즐기지 못하니 불만인 것 같았다.

 "아무튼 손님을 초대해놓고 방치하는 것 같아서 미안하긴 한데, 우리도 열심히 이거저거 준비했으니까 재밋게 즐기고 가라."

 "그래. 너도 수고하고."

 "오냐."

 사메야마는 내 등을 두들기더니 곧 인파를 뚫고 사라졌다. 뒷모습이 어쩐지 조금 짠했다.

 "남들 다 쉴때 일하는 것 만큼 끔찍한게 없지..."

 바이스는 사메야마의 마음에 공감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마음은 나도 이해했지만,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내가 일 하는 것도 아닌데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아무튼 저녁까지는 여기저기 돌아다녀보자. 사메야마 말대로 레크레이션 시작 전까지는 시간이 남긴 하니까."

 내가 먼저 발걸음을 옮기자 바이스내 내 곁에 나란히 서서 팔장을 꼈다. 몸이 밀착하니 조금 부끄러웠지만 어차피 사람이 많아서 떨어져서 걸을 수 도 없겠다 싶어서 도망가지 않았다.

 나와 바이스는 여러 노점을 돌았다. 레디젤 렌치에서 파는 이런저런 골동품도 있었고, 이번 축제에 대한 여러 굿즈 같은 것도 팔았다. 개중에는 경품을 걸고 게임을 하는 곳도 있었다.

 기념품 중에 카렌에게 선물 할 만한 것이 뭐가 있을까 싶어 고민하면서 걷다보니 조금 배고파져서 중간중간 간식도 사먹었다. 별로 비싸보이지 않는 음식이었으나 축제라 그런지 지갑을 열기 두려운 가격이었지만 배가 고파서 결국 사버렸다.

 "어때? 먹을 만하니?"

 "응. 불 조절이 절묘하네. 겉은 크리스피한데 속은 또 촉촉하고 탱클탱글해. 너도 한 입 먹어볼래? 아~."

 "으응...? 아, 아~.."

 바이스가 내가 먹던 꼬치구이를 한입 빼먹었다. 맛있는지 바이스의 눈이 땡그래졌다.

 "정말이다! 변변한 양념도 없이 냅다 구워버린 것 처럼 생겼는데 이렇게 맛이 있을 수 있다니...! 역시 요리의 세계는 심오하구나... 나도 이거저거 굽다보면 이렇게 할 수 있을까? 응?"

 "아니."

 "...."

 고민도 없이 부정하자 바이스가 나를 무섭게 째려봤다. 하지만 나는 조금 억울했다. 내 말 뜻은 바이스가 요리를 못 하기 때문에 한 말이 아니라, 이 요리는 사람이 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우리가 먹은 이 꼬치구이의 이름은 만티코어 구이로, 스모키가 팔고 있던 것이었다.

 이름만 보면 스모키가 소환한 만티코어를 도축해버린 것 같은 느낌이지만, 사실 소환된 만티코어가 구워주기 때문에 만티코어 구이였다.

 아무튼 나의 본래 의도는 불의 화신이나 다름없는 만티코어나 할 수 있는 불조절 기술이기 때문에 우리같은 사람들은 무리라는 뜻이었는데... 이걸 일일이 설명하는건 너무 구차하다 느낀 나는 웃으면서 바이스에게 만티코어 구이를 한입 더 물려주었다. 바이스는 분해하면서도 맛있게 받아먹었다.

 대충 그렇게 시간을 때우다 보니 슬슬 해가 조금 기울었다. 더위가 조금 가시나 하는데 거리 곳곳에 있는 스피커에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아아. 마이크테스트! 들리시나요 여러분! 아, 잘 들리시는 모양이네요! 자자, 그럼... 안녕하세요! 오늘 제 1회 레디젤 문나잇 콘서트에 찾아오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저는 오늘 하루 무대 진행을 맡게 된 레인보우라고 해요~! 지금부터 30분 이후, 멋진 공연을 시작하기에 앞서 몸풀기 레크레이션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여러 상품도 준비되어 있으니 많은 관심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럼 조금 이따가 뵐게요~!"

 익숙한 목소리구나 싶었었는데 이번 축제에 레인보우도 섭외된 모양이다. 원래도 행사mc 유명하다고 했으니 이상할 일은 아닌 것 같았다. 다만, 콘서트 전의 '몸풀기'라니. 에너지 넘치는 레디젤 랜치 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말 이거저거 많이 준비한 모양이네. 사메야마네가 이정도로 할 줄은 몰랐는데."

 "그러게. 즐겁게 노는걸 좋아하는 사람들이니까 축제도 잘 하나봐."

 우리는 조금만 더 둘러보다가 슬금슬금 메인 무대가 있는 곳으로 가기로 했다. 그 길에도 노점이 다양하게 있어서 지루할 틈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뭔가 허전하다.

 이런 말 하면 좀 그렇지만 언제나 어디 여행할때 뭣좀 한다 싶으면 언제나 암귀가 튀어나오곤 했다. 정말로, 뜬금없이 뜬금없는 장소에서 튀어나온다.

 이상한 것에 너무 익숙해져버린 자신이 우스워 나도 모르게 피식 웃어버렸다.

 암만 그래도 레디젤 랜치 내부에서 암귀가 나온다니. 들어온 암귀가 털릴 것이니 절대 그럴 일은 없을 것이다.

 "으아아악! 암귀다!"

 하지만, 짜쟌. 세상에 절대란 없더군요?

 바로 근처 노점에서 들린 비명이었기에 나와 바이스가 즉시 달려갔다. 감응해보니 정말 암귀가 있었다. 우리는 인파를 뚫고 소란의 한 가운데에 끼어들었다.

 거기에는 작고, 귀여운. 너무나 익숙하게 생긴 암귀가 노점 주인에게 복날 개 패듯 맞고 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보, 복슬아...!"

 세상에! 암귀라던게 복슬이었단 말인가!

 일단 나와 바이스는 노점 주인을 말리며 설명했다. 암귀를 키운다고 하니 노점주인은 깜작 놀랐지만 곧 내가 아이테르라는 것을 알고는 납득했다.

 "과연, 아이테르는 암귀를 조종하는 능력도 있는가. 청년은 대단하군!"

 뭔가 이상한 오해를 당하는 기분이었지만 좋게 넘어가는 분위기라 아무말 하지 않았다. 돌아보니 복슬이는 바이스에게 안겨 위로받고 있었다.

 이런 일이 있을까 싶어 일부러 콜로서스에 두고 나왔던 건데, 아무래도 외로워서 우리를 따라온 모양이었다. 동선이 조금 꼬이겠지만 복슬이를 다시 콜로서스에 데려다 주고 다시 나와야겠다.

 복슬이가 낑낑 대는게 안쓰러워서 가는 길에 만티코어 구이를 두 손에 쥐어주었다. 복슬이 혼자 콜로서스에 두고가기 조금 걱정되었으나, 똑똑한 복슬이는 콜로서스 밖으로 나오면 개고생인걸 알았으니 나오지는 않겠지 싶었다.

 그래도 혹시 몰라서 우리가 오기 전까지 나오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말을 알아듣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분위기를 알았는지 복슬이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모습이 기특해서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나와 바이스는 다시 콜로서스를 떠났다.

 어느새 쉬는시간이 지나고 레크레이션이 시작했다. 우리는 조금 늦게 와서 객석에서도 외곽에 자리를 잡았다. 아쉽게 됐지만, 우리는 레크레이션 시간은 한발짝 떨어져서 즐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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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크레이션 시간은 상상 이상으로 혼란스러웠다. 얼마나 혼란스러웠느냐 하면 배테랑 mc인 레인보우가 몇 번이나 얼어붙었을 정도였다.

 레크레이션 시간에 준비된 것은 여러 단체 게임과 지원자에 한해 무대 위에서 진행된 게임, 콘서트와 별개로 일종의 장기자랑을 준비해온 사람들의 무대 등등. 구성만 평범했다면 무난했을 텐데 문제는 이곳이 레디젤 랜치였다는 것이었다.

 단체 게임을 하면 대부분이 규칙을 이해하지 못 했고(그중 절반은 이해해 놓고서 청개구리 심보로 장난 친 것이리라), 무대 위로 올라올 지원자를 뽑으려 하면 객석의 모두가 무대로 난입하려 들고(사메야마를 포함한 운영요원이 진압했다), 장기자랑 시간에는 무대를 폭파시키려는 미치광이의 테러까지(분명 거대한 폭발이 일었는데 무대는 멀쩡했다). 발음을 절면서 진행하는 레인보우의 안색이 창백했다.

 힘내라 레인보우. 굳세어라 레인보우.

 원래 무지개도 비가 온 뒤에 나타나는 법이니 그저 이름값 하는 것 뿐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조종사. 결국 상품은 뭐였을까?"

 "글쎄...? 레크레이션 중에 멀쩡하게 진행된게 없어서 받아간 사람도 없고... 알 길이 없네."

 어쩌면 상품은 맥거핀이 아니었을까? 축제가 끝날 때 까지 그 누구도 알수 없는 수수깨끼로 남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러 소란은 있었으나, 결국 레디젤 기준으로 문제 없이 레크레이션이 종료되었다. 진행하던 레인보우가 쓰러질 것 처럼 비틀거리면서 쉬는 시간을 공지했다.

 "한 시간 정도 남네. 끄으으응... 푸하아! 우리 어디 가서 좀 쉴까?"

 "그러게. 우린 뭐 한 것도 없는데 왜이렇게 지칠까? 조종사는 괜찮아?"

 "뭐, 우린 달리 한 것도 없긴 하니까. 그래도 좀 배고프니까 뭐라도 먹을까?"

 "좋아! 아까 오는 길에 좋은 냄새가 나는 노점이 있었어. 그땐 배가 안 고파서 지나쳤는데 거기로 가자."

 바이스의 안내에 따라 간 노점에서는 라면을 팔고 있었다. 어딘가 냄새가 익숙하다 싶었는데, 그래. 헤가 라면과 비슷한 냄새였다. 하지만 운영한는 사람은 모모 안즈가 아닌 미노스와 사나에였다.

 "엥? 미노스? 사나에? 둘이 왜 여기 있어요?"

 "안녕하십니까. 오랜만에 뵙겠습니다 조종사님."

 "이, 이랏샤이 마세에...!"

 "사나에. 지금은 평범하게 인사해도 됩니다."

 "안녕하세요..."

 서로 반갑게 인사하고 미노스로부터 대략적인 자초지종을 들었다.

 니나는 여기저기 직접 발로 뛰어 사업아이템을 찾아다니다가 우연찮게 헤가 라면을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헤가 라면은 레시피가 특별할 뿐 조리 자체는 아주 간단했고, 재료자체도 압축과 장기 보관할 수 있게 가공하기 용이하다는 점에서 착안해 모모, 안즈를 설득해 간편식품 사업에 끌어들였다는 모양이다.

 그런 와중에 조무와 접촉하게 되었고, 레디젤 문나잇 콘서트에 대해 알게 되었다고 한다. 마침 시제품이 나온 상태였기에 테스트 해 볼 겸 스폰서로서 이번 축제에 참가했다는 듯 했다.

 "어쩐지 움브라톤 느낌의 사람이 많다 싶었는데 이유가 있었군요."

 "예. 외부인의 대부분은 저희를 통해 이 축제를 알았을 겁니다."

 "그렇다 해도 놀랐네요. 암만 홍보를 잘 했어도 거리가 먼데..."

 "저희가 판매하는 관광 패키지에는 움브라톤부터 레디젤까지 왕복하는 케러반도 들어있었으니까요."

 "아하. 것 참 굉장하네요."

 "우수한 아가씨를 모시는 입장으로 자랑스러울 따름입니다."

 사업적인 이야기를 들으면 머리가 안 돌아간다. 대체 니나와 레디젤 사이에 어떤 계약이 있었는지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니나는 여전히 바쁘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러고 보면 니나는요?"

 "아가씨는 움브라톤에서 직접 총괄해야 하는 일정이 있어서 움직이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와 사나에만 이곳으로 파견했지요."

 "저런, 얼굴 못 봐서 아쉽네요."

 "조종사님이 보고싶어 하신다는 것을 알면 분명 아가씨도 기뻐할 것입니다."

 미노스와 담소를 나누는 사이 사나에가 라면을 내왔다. 기억속 헤가 라면과 비슷했지만 어딘지 조금 아쉬운 느낌도 있었다. 하지만 이것도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돈을 계산했다. 그리고 자리를 뜨려는데 문득 궁금한게 생겼다.

 "그러고 보면 니나네 쪽에서 이번 행사의 스폰서가 되었다고 했었죠? 그럼 레크레이션 중에 나눠주기로 한 상품이 뭐였는지 아시나요?"

 "모릅니다. 레크레이션의 상품은 온전히 레디젤 측에서 준비한 것이기 때문에 내용물에 대해 전달받지 못 했습니다."

 "앗... 아아..."

 어쩌면 누구도 상품을 받지 못 한게 차라리 나았던 건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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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평선에 땅거미지고 하늘은 어두워진다. 구름 뒤로 달도 빼꼼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별 중에서도 크고 밝은 녀석은 벌써부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고, 옅은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한 지상은 여러 조명이 켜지며 무대를 비췄다.

 쉬는 시간이 끝났다. 이제 본격적으로 공연이 시작될 것임을 알리듯 무대에 설치된 폭죽이 터지며 완전 회복한 레인보우가 튀어나왔다.

 "신사 숙녀 여러분~! 이 시간 부로 레디젤 문나잇 콘서트의 메인이벤트를 시작하겠습니다!"

 어둠이 깔린 무대 아래에서 형형색색의 응원봉이 흔들리며 함성이 튀어나왔다. 레크레이션에 보았던 광기와는 결이 조금 다른 대단히 뜨거운 열기였다.

 생각보다 정상적인 반응에 레인보우는 울컥한듯 눈을 글썽였다. 하지만 레크레이션 때와 달리 버벅임 없이 무대를 진행했다.

 성장했구나, 레인보우. 지금쯤 거기는 무지개가 떴을까?

 각성한 레인보우는 매끄럽게 무대를 진행했다. 공연을 하는 개인 혹은 팀이 올라오면 소개를 하고 잠깐 이야기를 하면서 분위기를 예열하는 실력이 뛰어났다.

 어느새 나도 가슴이 뜨거워져서 무대에 호응하며 여느 관객처럼 응원봉을 흔들며 신나게 즐겼다.

 정신차렸을때는 이미 달빛이 아름다운 완전한 밤이 되어있었다. 너무 신나게 즐겼는지 나는 상당히 피곤한 상태가 되어있었다. 마침 타이밍 좋게도 레인보우는 잠깐의 휴식시간을 알렸다.

 열기가 답답했던 나는 바이스에게 화장실을 다녀오겠다 하고 잠깐 공연장을 떠났다.

 공연장에서 멀어지자 뜨거웠던 열기가 식는게 느껴졌다. 새삼 내가 땀을 많이 흘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조금 걸을까 싶어서 사람이 적은 쪽으로 발을 옮겼다.

 슬슬 떠들썩한 사람이 적어진다 싶더니 한 노점에 도착했다. 구성이 독특한 노점이었다. 카운터가 있는 기다란 테이블과 진열장만으로 구성된 간단한 주점이라는 느낌으로, 축제 스러웠던 다른 노점과는 달리 많이 진정되는 분위기였다.

 "어머, 아이테르 꼬마잖아? 꼬마는 이런데 오면 안되는데. 나쁜 아이네."

 의자 하나를 차지하고 있던 아주르가 나를 보며 인사했다. 이미 술이 상당히 들어갔는지 얼굴이 조금 빨개져 있었다.

 주정뱅이를 상대하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반가운 얼굴이기도 해서 가까이 다가갔다.

 "안녕하세요 아주르씨. 오랜만이에요."

 "후훗. 그래. 그러고 있지 말고 옆에 와서 앉지그래?"

 "방금은 이런데 오면 안된다고 했잖아요."

 "아이테르 꼬마는 나쁜 아이니까 괜찮아."

 "저 만큼 착한 사람도 없을텐데..."

 "어머... 그럼 아이테르 꼬마는 누나랑 단 둘이 '나쁜 짓' 할 생각이 없는 거니?"

 아주르가 요사스럽게 눈웃음을 지으며 손짓했다. 아차 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아주르 옆에 앉아버렸다.

 "후후후. 적극적이네. 그렇게 누나랑 나쁜 짓이 하고 싶었니?"

 "저, 저에게 대체 무슨 짓을 할 생각이에요!?"

 "뭘 그렇게 무서운척 하는지. 걱정하지 마렴. 아무렴 누나가 아이테르 꼬마를 잡아먹기야 하겠니?"

 싱글벙글한 아주르의 얼굴이 가까워졌다. 훅 하고 달콤한 냄새가 풍겼다. 아주르의 입술이 귓가에 스치며 열기를 띤 목소리가 들린다.

 "아니면, 사실은 잡아먹히고 싶은 걸까?"

 부정해야 하는데 나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거리를 벌려야 하는데 몸이 움직이질 않는다. 긴장과 기대감이 뒤섞인 기묘한 기분속에서 나는 마른 침을 삼킨다.

 아주르는 지금 상황이 너무나 즐거운지 소리내어 웃었다. 가까이 밀착했던 몸이 멀어졌다. 아주르는 내 한심한 꼴을 보며 술을 홀짝였다.

 "흐응... 역시 아이테르 꼬마에겐 조금 이르려나?"

 아주르가 즐겁게 웃으며 나를 놀리는 모습을 보고서야 겨우 참았던 숨을 쉴 수 있었다. 부끄러움에 얼굴이 화끈해진게 느껴진다.

 뭔가 수치스럽기도 하고, 안타깝기도 한 이상한 기분이다. 아주르와 있으면 늘 이런 느낌이라 나름 적응했지만 역시 분했다.

 "제에엔장... 언젠가 한방 먹여줄테니까요."

 결의에 찬 눈으로 노려봤지만 아주르는 싱긋 웃을 뿐 이었다. 여기서 이 주제로 더 이야기 해봤자 손해 보는 것은 나다. 일단 주제를 돌리기로 했다.

 "그러고 보면 아주르씨는 '더 스타라이츠' 소속이였죠?"

 "그랬지. 지금은 해산했지만."

 "저런... 그럼 이번 콘서트에는 무대에 안 서시나요?"

 "아무래도 피곤한 일이니까. 춤추고 노래하는 것도 나름 즐겁긴 한데 그럼 술을 못 마시잖니. 술을 못 마시는 축제라니, 그게 대체 뭐니?"

 "그런가... 조금 아쉽네요. 저는 '더 스타라이츠' 공연을 못 봤어서 혹시 이번에 아주르씨의 볼 수 있을까 기대했거든요."

 "어머. 그건 미안하게 됐네. 으음... 그래. 대신 다음에 단 둘이 있을때, 아이테르 꼬마만을 위한 단독공연을 열어줄게. 대신 '다른 여자'한테는 비밀로 해야한다?"

 "그런 말 귀에 대고 하는 것좀 자제해 주실래요!? 뭔가 뭔가라고요 이거!"

 "싫어?"

 "너무 좋아요! 단독 공연 꼭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도 모르게 튀어나온 본심에 놀라 내 입을 막았다. 아주르는 당장이라도 나를 잡아먹을 것 같은 눈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직감적으로 나의 무언가는 끝났음을 깨달았다. 이제 이 뒤로 있을 일은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이벤트겠지.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평정을 유지 할 수 있도록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겠다.

 혼자 머릿속에서 북치고 장구치는 와중에 날 응시하던 아주르는 문득 탄성을 내뱉더니 눈빛에서 잠깐 취가가 가셨다.

 "아, 그러고 보니 순서상으론 아직 안 했겠네."

 "무슨 소리죠?"

 "이번에 나는 공연하지 않지만, 이브랑 도엔에게 이거저거 가르쳤거든. 그 둘은 나한테 배운거로 공연할테니까 그거라도 보겠니? 그 둘은 거의 마지막 차례였을거야."

 "그 둘도 뭔가 준비했군요. 어쩐지 하루종일 안 보인다 싶더니."

 뭔가 신기한 기분이라 아주르에게 춤과 노래를 배우는 이브와 도엔을 떠올려봤다. 하지만 이들의 분위기가 너무 딴판이라 상상하기 힘들었다.

 "안 그래도 이브가 널 찾았던 것 같은데... 끝나고 한번 찾아가 보렴."

 "네. 그럴게요."

 내 대답에 잔을 만지작 거리던 아주르는 문득 어딘가를 잠깐 바라보더니 피식 웃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고 보니 요나랑 같이 대작하기로 했었지. 미안해? 아이테르 꼬마. 끝까지 놀아주지 못 해서."

 "네? 아, 알겠습니다. 그럼 저도 가봐야겠네요."

 "응. 그래. 다음에 또 보자."

 가방을 챙긴 아주르는 입술을 가리더니 쪽 소리를 내며 키스를 날렸다. 나는 멍하니 아주르가 사라지는 것을 응시하다가 차가운 밤 바람이 불어오고 나서야 정신이 들었다.

 참 이상한 마력이 있는 사람이다. 아주르와 있으면 거의 무조건 그녀의 페이스에 말리는 느낌이다. 내가 여성에 면역이 아예 없는 그런 사람도 아닌데 말이다.

 뭔가 이상함을 느끼면서 돌아섰다. 아주르와 이야기하느라 시간이 많이 지나서 바이스가 걱정할 것 같았다.

 하지만 곧 나의 발걸음은 어둠속에서 튀어나온 사람에 의해 붙들렸다.

 "조종사! 다행이다! 찾고 있었어!"

 그녀는 오른쪽 눈에 안대를 하고 기계팔을 하고 있었다. 하얀 꽃이 피어나는 것 같은 드레스와 양갈래로 묶인 긴 투톤 머릿칼은 어딘가 요정같은 느낌도 들었다.

 그런 비일상적인 분위기때문에 순간 알아보지 못 했지만 곧 이 사람은 이브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이브가 갑자기 왜? 아주르가 말하기로 분명 이브는 후반에 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하지 않았던가. 이런 곳에 있을게 아니라 무대 뒤에서 준비하고 있어야 하지 않나?

 상황이 이해가 가지 않아서 벙쪄있는 와중에 이브는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덥석 내 손을 잡았다.

 "도와줘! 네 도움이 필요해!"

 이브는 내 대답도 듣지 않고 그대로 기계팔로 날 끌어안더니 그대로 날 납치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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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브가 나를 데려간 곳은 무대의 뒤편이었다. 가는 길에 이브는 나에게 대략적인 사정을 설명했다. 그리고 나는 충격에 빠졌다.

 이 거대한 행사가 사실은 이브가 도엔에게 추억을 선물하고 싶어서 벌인 일이었다니, 스케일이 달라도 너무 다르지 않은가!

 어이가 없어서 말이 나오질 않았다. 그 와중에 이브의 진심은 감동적인 면이 있어서 감화된 나는 할 수 있는데 까지 돕기로 했다.

 이브의 안내에 따라 나는 관계자 외 출입금지 그러운 곳에 도착했다. 이미 무대에서 공연중인 사람이 있어서 그런지 공기가 음악에 맞춰 둥 둥 하고 울리는게 느껴졌다.

 도엔은 이브와 비슷한 복장이었다. 꽃의 요정같은 모습이었지만 우두커니 서서 미동도 없이 가만히 있는 모습은 어딘가 기묘한 느낌이었다.

 주변에 다른 사람은 없었다. 아무래도 공연을 준비한 사람들은 각자 따로따로 모여있는 모양이었다. 우리가 가까이 다가가자 도엔은 우리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브? 볼 일은 다 본거야?"

 "응! 혼자 두고 가서 미안."

 "괜찮아. 옆에 사람은?"

 "이히히. 그러게? 대체 누굴까?"

 이브가 장난스럽게 말하자 도엔이 소리없이 내게 걸어왔다. 아무말 없이 무표정한 상태로 다가오는 도엔은 어딘가 사람을 압도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내 앞에 서게된 도엔은 내 얼굴 쪽으로 손을 뻗었다. 이게 무슨 의미인가 이해할 수 없었지만 곧 예전에 처음 만났을 당시가 떠올라 허리를 숙였다. 얼굴이 가까워지자 도엔은 내 얼굴을 열심히 조물조물 만지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오랜만이야 조종사." 

 "으응... 반가워 도엔. 너는 매번 이렇게 얼굴을 만져서 사람을 구분하는 거야?"

 "무슨 바보같은 소리야? 조종사인건 근처에 오자 마자 알았어. 다른 사람에게선 안 나는 하늘의 냄새가 나는걸."

 "... 그럼 왜 얼굴을?"

 "잘 생긴 얼굴은 오랜만이라. 싫었어?"

 그리 말하면 장난스럽게 웃는 도엔은 정말로 반가워 하는 것 같아서 뭐라 할 수 없었다.

 확실히 도엔은 옛날에 비해 성격이 많이 밝아진 것 같았다. 감정적으로도 훨신 풍부해졌고. 분명 이브와 모두가 친절하게 대해준 덕분이겠지.

 "그런데 조종사? 곧 나랑 이브의 차례야. 여기 있으면 우리 공연을 볼 수 없어."

 "응. 알고 있어. 난 그것 때문에 온거니까."

 나는 도엔에게 감응을 통해 무대 위에서 빛을 감지 할 수 있게 해주겠고 설명했다. 내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 보던 도엔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무슨 소리인지 알겠어. 그런데 이런게 필요할까? 나는 이미 보지 않고 춤과 노래를 완벽히 해낼 수 있어."

 어딘가 자부심까지 느껴지는 듯 한 태도로 내 말을 필요없는 도움이라 일축했다.

 여기에 대고 내가 계속 강요 할 순 없는 노릇이라 곤란한 차에 옆에서 이브가 끼어들었다.

 "절대절대로 빛을 볼 수 있어야 즐거워!"

 "난 딱히 즐겁지 않아도 괜찮은걸?"

 "안돼에에에! 그런건 내가 절대 용납 못 하니까 말이야!"

 이브가 목놓아 소리치자 도엔은 곤란한 기색이었다. 이에 나도 빛을 볼 수 있으나 없으나 상관 없다면 볼 수 있어도 상관 없지 않느냐고 부추겼다.

 양 옆에서 계속 츄라이츄라이 해대니 도엔은 아리송한 듯 했지만 결국 우리 요청에 응했다. 어딘가 미심쩍어 하는 기색이 보이길래 나는 얼버부르며 도엔의 머리를 꾹꾹 눌러 쓰다듬었다.

 내가 도엔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종종 느끼는게 있다. 도엔은 참 스킨십을 하거나 당하는걸 좋아하는 것 같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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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엔 시점-


 공기를 울리던 음악의 고동이 잠잠해졌다. 조종사랑 이브와 실랑이를 하는 사이에 앞 무대의 공연이 끝난 모양이다. 곧이어 레인보우라는 진행자가 나와 이브를 호명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 드디어 차례구나. 오래도 기다렸다.

 "이제 차례구나. 화이팅이야! 감응은 무대에 올라가고 나서 해줄테니까 그 전까지는 꼭 눈 감아야해?"

 "... 일단 알았어."

 내 머리를 쓰다듬던 조종사가 어께를 두드려 주며 말했다. 보이지는 않지만 어쩐지 그가 상쾌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을 것만 같았다.

 곧 이브가 내 손을 잡아 이끌기 시작했다. 안무는 완벽히 외웠지만 무대의 길은 아직 못 외웠기 때문에 이브가 앞장서야했다.

 나를 이끌던 이브가 문득 내게 말을 걸었다.

 "도엔! 조종사가 한 말 못 들었어? 눈 감으라니까?"

 "난 어차피 안 보이는걸? 그런데 눈을 감는데 무슨 의미가 있어?"

 "정말 답답하네 진짜!"

 보이진 않지만 이브가 볼을 부풀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저런 반응은 사메야마에게나 했는데, 뭔가 신선한 느낌이다.

 하지만 이브를 저대로 두면 뒤끝이 엄청나다는 것을 아는 나는 일단 이브의 말대로 눈을 감았다.

 "좋아. 내가 신호할 때 까지 눈 뜨면 안 되는거야. 알았지?"

 "응. 이브가 원한다면."

 내 대답에 이브는 만족스러운듯 작게 웃음소리를 흘렸다. 그 모습이 퍽 귀여워서 마음속 어딘가가 포근해지는 것 같았다.

 오늘따라 이브가 좀 극성이긴 한데, 그래도 이브는 이브다.

 아마 큰 공연을 앞두고 있으니 긴장한건지도 모르지. 하지만 괜찮다. 나는 언제나 이브를 최선을 다해 도왔고, 이번에도 그러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기위한 결실이 여기에 있다. 어느새 나와 이브의 발소리는 계단을 넘어 평지에 이르렀다. 아주 넓어서 울림조차 느껴지지 않는 무대위. 바로 근처는 조용한데 조금 먼 곳에서는 웅성대는 기척이 가득하다.

 언젠가 한번 겪었던 느낌의 공간. 이브가 아이돌에 꽂혀버렸던 '더 스타라이츠'의 무대와 닮았다.

 지금 이브는 그때 보았던 것과 같은 광경을 보고 있는 것일까. 객석과 무대인 만큼 완전히 같을 순 없겠지만, 비슷한 느낌이겠지. 잘 모르겠지만.

 레인보우와 이브가 잠깐 대화하는 소리가 들렸다. 노래 제목이라던가 포부라던가 하는 이야기가 들렸다. 나는 눈을 감은 채로 귀에 집중했다.

 나는 눈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포즈를 취하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집중력이 필요하다.

 보이지 않은 이브와 합을 맞추기 위해서는 두배 이상의 집중력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안무를 시작하기 전에 반드시 정신통일을 이루는게 습관이 되었다. 이브도 이를 알기에 나에게 말을 시키지 않기로 미리 이야기가 되어있었다.

 레인보우가 객석에 호응을 유도하며 멀어졌다. 발소리가 작아졌다. 철컹철컹 하고 조명이 꺼지는 소리가 들리며 웅성대던 객석도 고요해졌다. 이것은 음악이 시작한다는 전조. 여기부터가 중요하다. 첫 곡은 갑자기 들어가는 스타일이라 타이밍을 맞춰 동작을 시작하지 않으면 이제까지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수 있었다.

 잔잔하게 깔리기 시작한 음악소리. 나도 거기에 맟줘 천천히, 천천히고개를 들어올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나의 머릿속을 뒤흔드는 어떤 감각을 느꼈다. 아주 짧은 순간 정신을 차린 나는 보이지 않는 눈이 어둠을 보고 있었다.

 바로 이해했다.

 조종사가 감응했구나. 그러고보니 그런 이야기를 하긴 했었지.

 깜짝 놀란 마음을 어떻게든 추스르려 했다. 하지만 그때 옆에서 탁탁 하는 발소리가 들렸다.

 어라? 지금 이브는 저런 스텝을 밟는 구간이 아닌데?

 이브의 발소리가 가까워졌다. 그리고 내 곁에 이르렀을때 이브가 활기찬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이야! 눈을 떠 도엔!"

 이브의 말에 반사적으로 눈을 떴다.

 어둠이 걷히고 보이는 것은 창백한 빛을 흘리는 달이었다. 모든 조명이 꺼진 무대는 오직 저 달에서 흘러나온 빛만이 비추고 있었다.

 탁탁. 스텝을 밟는 소리가 들렸다. 소리를 따라 시선이 내려갔다. 어느새 내 앞에 선 이브가 제자리에서 빙글 돌았다.

 이브는 이렇게 생겼구나. 대충 예상은 했는데, 동화 속 요정같아.

 달빛에 휩싸인 이브와 그 너머로 보이는 어둠속에 흔들리는 형형색색의 빛. 흔들리는 이브의 머릿카락이 지나간 자리엔 스파크가 별빛처럼 소리없이 점멸한다.

 은하수 같은 궤적을 남기던 이브가 멈춰 선다. 그리고 싱긋 웃으며 내게 소리없이 입모양만으로 말을 전했다.

 '즐기자, 도엔.'

 왠지 그런 말 같았다.

 내가 그 뜻을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잔잔하게 흐르던 멜로디의 분위기가 반전했다.

 환하게 웃고 있던 이브가 다시 빙글 돌아 객석을 향하며 포즈를 취했다. 그제야 나도 정신이 들어 급히 포즈를 잡았다.

 하지만 처음 타이밍을 놓친 나는 이제까지 별로 하지 않았던 실수를 연발했다.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을 느꼈다. 그럴 때 마다 이브는 내 마음을 들여다 보기라도 하는듯 옆으로 다가와 어딘가 엉성해진 내 안무에 맞추듯 즉흥적인 움직임을 만들었다.

 아니, 이러면 내가 더 못 따라가잖아 이브! 안무를 바꿔버리면 이 다음은 어떡해!

 마음속으로 비명을 지르면서도 진짜 입은 노래 부르기를 멈출 수 없었다. 이미 어딘가 많이 바뀌어버린 안무는 이제까지의 연습을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렸다.

 뇌가 새하얗게 표백되는 것 처럼, 점점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알 수 없어졌다.

 어느 순간부터인가 내가 느끼는 것은 나를 이끄는 이브와 우리의 춤과 노래에 요동치는 객석의 응원 뿐이란 것을 알아차렸다.

 어째서일까. 지금 무대는 분명 엉망진창에, 이제까지 부른 그 어떤 노래보다 형편없는데.

 객석의 모두는 이런 무대에 호응하고 격려해준다.

 곁의 이브는 세상을 다 가진 사람처럼 환하게 웃으며 나를 이끌어준다.

 모두의 가운데 내가 있음을 느꼈다. 즐거움과 열락으로 가득찬 이 혼란스러운 밤공기 속에. 기묘하리 만치 이 안에서는 한 마음 한 뜻이 되는 것만 같았다.

 이게 이브가 말했던 '즐거움'인 걸까.

 아니면 이 아름답고도 환상적인 공간에 미쳐버린 걸까.

 아무렴, 쓸모없는 고민이었다. 지금은 순수하게 즐기면 될 것이다. 응원봉을 흔드는 관객처럼, 요정같이 춤추는 이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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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종사 시점-



 어찌저찌 레디젤 문나잇 콘서트의 막이 내렸다. 정말 이름 그대로 밤새 할 작정이었는지 지평선 끄트머리는 슬금슬금 여명의 빛이 올라오려 하고 있었다.

 축제가 끝난 다음의 레디젤은 쥐죽은듯 고요했다. 다들 에너지를 전부 써버려서인지 나돌아다니는 사람 없이 전부 집에 들어가 잠이 든 모양이었다.

 나로 말 할 것 같으면 무대 뒤에서 도엔과 감응한 상태로 모든 무대가 끝날 때 까지 자리를 지켰다. 이브와 도엔의 무대는 한번만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축제가 끝나고 바이스를 만나러 갔을때 엄청나게 혼났다. 나도 걱정을 끼쳤다는 자각이 있어서 말대꾸 한번 못 했다. 그래도 사정을 설명하니 바이스는 날 이해해 주었다.

 "조종사가 날 바람맞혔으니 조종사도 하루쯤 바람 맞는게 어때?"

 "그게 무슨 말이야?"

 "오늘은 노숙 하라고."

 이해... 해준거 맞지?

 하여튼 그런 연유로 나는 지금 이 새벽에 밖을 거닐고 있다.

 그래도 감기는 걸리지 말라는 건지 바이스에게 담요를 건네 받았다. 하지만 바이스. 사막의 새벽은 고작 담요로 어떻게 할 수 있는게 아닌 것 같아.

 쌀쌀함에 투덜거리며 걷다보니 사람이 없는 공연장에 도착했다. 바로 조금 전까지만 해도 활력 넘치던 공간이었다는게 믿기지 않을 만큼 고요했다.

 적당히 앉을 곳이라도 찾을까 해서 주위를 둘러보다가 문득 새하얀 덩어리가 보였다. 뭔가 하고 다가가니 흰 덩어리가 도엔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도엔은 무대 의상을 갈아입지 않은 상태였다. 흰 피부에 흰 눈동자, 흰 머리카락, 흰 의상까지 합쳐지니 멀리서 보면 귀신처럼 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조종사? 여기는 어쩐일이야?"

 "냄새로 알 수 있다더니 진짜였구나. 나 목소리도 안 냈는데."

 "나 거짓말 안 해."

 내가 말 걸기 전에 먼저 도엔이 내게 인사했다. 그럼 내 얼굴 만진건 정말 순수하게 잘생긴 얼굴을 만지고 싶었던 걸까. 기분이 복잡해졌다.

 "그래서 어쩐일이야? 조종사 허약해서 피곤할텐데."

 "팩트라 반박할 수 없네. 하지만 그냥 잠이 안 와서 잠깐 나온거야."

 "일단. 믿어 줄게."

 "그냥 좀 믿어."

 내가 불퉁하게 대답하자 도엔이 슬며시 웃었다. 어쩐지 내 주변 사람들은 날 놀리는걸 좋아하는 것 같았다.

 "난 그렇다 치고. 도엔은 여기서 뭐해?"

 "나도 잠이 안 와서."

 "그게 뭐야."

 도엔은 이런 대화가 재미있는지 쿡쿡 웃었다. 그러곤 내게 손짓해서 옆에 앉기를 권했다. 거절할 이유도 없어서 도엔 옆에 털썩 앉았다. 그러자 도엔이 내옆으로 다가와 착 달라붙었다.

 "뭐해?"

 "새벽공기는 추워."

 "그럼 내 담요 줄테니까 떨어져. 불편하잖아."

 "허약한 아이테르. 네가 남 걱정 할 때야?"

 "이게 할 말 없게 만드네."

 어째 오늘따라 말싸움에서 지기만 하는 것 같다.

 자신이 이겼음을 인지한 도엔은 거리낄 것 없다는 듯 아예 내 다리 위로 올라와 내 몸에 기대고 앉았다.

 뻔뻔한 행태가 어이없었지만 뭐라 해봤자 또 말에서 밀릴 것 같아서 내친김에 담요까지 덮어뒀다. 담요가 부들부들해서 마음에 드는지 도엔은 담요에 얼굴을 파묻었다. 확실히 이 담요의 감촉은 상당한 중독성이 있었다.

 "그래서 실제론 뭐하고 있었어?"

 "뭐가?"

 "잠이 안 오면 집에서 따뜻한 우유라도 마시면 되지, 이런 곳에 나와있을 이유가 없잖아."

 내 물음에 도엔이 잠깐 고민하듯 콧소리를 흘렸다. 스스로도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걸까. 적어도 대답하기 싫은 기색은 아니었다.

 "뭔가... 아쉬운 것 같아."

 도엔은 스스로도 자신없는 기색으로 말했다.

 "아쉬워? 뭐가?"

 "이것저것. 전부 다. 안무나 노래. 정말 연습 많이 했는데, 오늘은 실수를 너무 많이 했어."

 "하긴, 무대 뒤에서 봤지. 노래 부르다 혀 깨물고, 바닥에서 불꽃이 올라오니까 흠칫흠칫 거리기도 했지."

 "... 응. 이제까지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 것 같아서, 많이 아쉬워."

 내 지적에 도엔이 시무룩해졌다. 이런걸 의도한 바는 아니었기에 열심히 도엔을 달랬다. 머리도 쓰다듬어주고, 공연의 좋았던 점도 열심히 설명했다.

 그러다 문득 도엔의 옆얼굴을 보고서야 깨달았다. 이녀석은 그냥 시무룩해진 척 하고 있었던 것 뿐이라는 것을!

 순간 열이 뻗쳐서 덮어줬던 담요를 도로 뺐었다. 하지만 도엔은 이를 예상하기라도 했는지 요리조리 움직이며 내 손을 피했다.

 어떻게든 이녀석을 잡아야겠다 싶어서 벌떡 일어났다. 도엔도 나를 따라 일어나 순식간에 거리를 벌렸다.

 순식간에 추격전이 벌어졌다. 분명 도엔은 눈이 보이지 않을 텐데, 도저히 도엔을 잡을 수 없었다. 결국 체력이 딸리는 내가 헥헥대면서 추격전은 막을 내렸다.

 오늘따라 뭔가 잘 안풀리기만 하네. 조금 우울해졌다. 내 기색을 읽기라도 했을까, 도엔이 다가와 내 머리에 담요를 덮어줬다.

 "기분 좋아서 장난쳐 버렸어. 괜찮아?"

 "... 그래. 나도 너때문에 그런거 아니니까 신경쓰지마."

 "응. 신경 안 쓸게."

 도엔은 또 신경 긁는 소리를 하며 몸을 돌렸다. 두걸음 정도 나에게서 멀어지면서 후 하고 입김을 내뱉었다.

 "그런데 아쉽다는건 거짓말 아니야. 정말로 연습 많이했는걸. 아무리 모두가 우리 무대를 즐겨주었다 해도, 노력의 산물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 했다는 사실 자체는 변하지 않아."

 "그러냐."

 "응. 그러니까 네가 봐주지 않을래?"

 내가 시큰둥하게 대답하는데 도엔이 다시 빙글 돌아 나를 바라본다. 아까까지의 장난스럽던 분위기가 사라지고 어딘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네가 봐줬으면 해. 오늘의 무대를 위해 내가 연습해온 춤. 노래. 그리고 또 즐겨줬으면해."

 "아아, 그건 어렵지 않지. 당장이라도 시작하자고."

 내 대답에 도엔은 천천히 시작 포즈를 취했다. 그리고 적막속에서 도엔의 안무와 노래가 이어졌다.

 분명 도엔의 춤과 노래는 훌륭했다. 하지만 배경음악 없이 이어지는 노래와 안무는 어딘가 부족한 느낌이었다. 확실히 공연중의 몰입감 생기지 않았다. 도엔도 같은 느낌을 받았는지 중간에 공연을 멈추더니 잠깐 고민하는 듯 했다.

 그러다 무언가를 깨닫기라도 한 듯 성큼 다가와 내 손을 잡고 이끌었다.

 "어, 어?"

 "아무래도 이대로는 제대로 못 즐길 것 같으니까. 다른 방법을 쓰자."

 "무슨 방법인데?"

 "너도 같이 춤 추고 노래하는거야."

 "뭐? 난 춤도 노래도 전혀 몰라!"

 "괜찮아. 내가 맞춰줄게. 오늘 이브가 하는거 보고 배웠어."

 도엔은 싱긋 웃더니 내 팔을 잡고 이리저리 잡아당겼다. 힘이 부족한 나는 그 힘 그대로 이리저리 휘둘러지며 스텝이 어지러워졌다. 도엔은 그런 나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아가며 춤을 주었다.

 "좋아. 그거야. 더 현란하게 춤 추는거야."

 "이, 이게 너는 춤으로 보여!?"

 "아니. 난 애초에 눈이 안 보이는걸."

 "말이 안 통하네 진짜!"

 어이없어서 말문이 막혔지만, 동시에 어쩐지 막연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부족했던 멜로디는 우리의 대화소리와 뒤얽힌 발 소리가 채워주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조금 익숙해진 나는 열심히 그럴듯하게 발을 놀렸다. 도엔처럼 빙글 돌아보기도 하고, 손뼉을 치면서, 도엔의 노래에 추임세를 넣었다.

 나는 도엔에 맞추려 했다. 동시에 도엔이 내게 맞추고 있음을 깨달았다. 이를 인지하자 지금 이 순간이 참 즐겁다고 느껴졌다.

 아마 이게 오늘 이브가 도엔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즐거움'의 일부겠지.

 새삼 내 주위를 맴도는 도엔을 보았다. 흰 피부, 흰 눈동자, 흰 머릿카락, 흰 드레스. 온통 새하얀 그 춤사위는 피어나는 꽃을 닮아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