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인 마지막 아이테르]

 [북방과 콜로서스의 정기 우편에 별첨포장된 음식물과 함께 조종사에게 개인적으로 전해 다오.]

 

 여왕으로서 공식적으로 콜로서스에 전하는 사항은 모두 앞서 다루었다.

 이 편지는 지극히 사사로운 내용이다사담을 전하고자 네 시간을 빼앗게 되었구나용서하거라.

 그냥 어째선지 네 얼굴이 떠올라서 말이다저번에는 네게 너무 모질게 굴었던 것 같아 사과하고도 싶었단다.

 하지만 그 이야기부터 시작하면 너도 부담스러울 테니더 예전 이야기부터 해볼까.

 

 네가 나를 처음 찾아왔을 때를 기억하느냐? 얼마 전부터 너의 그 표정이 자꾸 머릿속에서 가시지 않더구나. 너희는 내 모습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지.

 꾸짖으려는 것은 아니야. 그야 놀라웠을 게다. 아무리 보아도 너희만 한 소녀가 여왕을 자칭하니, 어쩌면 너희에겐 연극처럼 보였겠지. 신기하기도 했을 거다.

 

 하지만 아느냐영원한 젊음을 받은 자도 젊음을 그리워한다는 걸.

 나는 먼 길을 돌아 이날까지 왔지만, 여전히 어린 시절을 기억한단다.

 그때에는 어린아이의 응석을 받아줄 사람들, 푹신한 인형이나 우유에 녹은 초콜릿을 좋아하는 나도 있었지.

 영원한 겨울이 다스리는 북방은 그때도 사무치게 추웠지만, 그런 추억들이 나를 견디게 해주었단다.

 눈 깜짝할 새에 끝나버린 그 기억들이 말이다.

 나는 시간을 견뎠지만, 시간은 나를 견디지 못했던 거야.

 내 곁을 지키겠다고 맹세했던 모든 사람이 나를 떠났다내 어린 시절을 기억하는 사람은 이제 나뿐이 됐지그리고 그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았단다.

 

 내가 바로 북방의 영원한 겨울이었으니까모두가 휘몰아치는 내게서 살을 에이고 스러져 갔던 거야.

 그걸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지.

 어린 시절이 지난 이후론 항상 굳은 초콜릿이 우유 위를 떠다녔거든.

 내가 다시 단 것을 입에 대는 날은 없었어정적인 나날들만 계속됐지마치 시간이 내 탓에 얼어붙기라도 한 것처럼.

 

 그에 비해 요즘은 여러가지 일들이 많아서 즐거웠단다.

 세상의 위기 아래 즐거움을 찾다니 부끄러워할 일이지만내게는 정말이지 모든 게 새로웠어매년 같은 물이 흐르던 이 강에 너희가 찾아오고 일어난 변화들이 말이다.

 너희 모두를 지키는 것사명을 수호하는 것내가 했던 일이 과거와 별반 다르지 않은데어째서 그런 감정이 들었던 걸까.

 그건 아마도 너 때문이 아니었을까그렇게 생각하곤 한단다.

 

 극광 아래에 있는 모든 백성은 내게 꽃과 같은 존재란다계절이 순환함과 함께 덧없이 사라져 가고 그 자리엔 새로운 꽃이 피지.

 나는 그들을 꽃의 이름으로만 기억할 뿐과거에 피었던 누군가에게 이름을 붙이고 그들 하나하나를 마음에 남겨둘 수가 없어.

 너희는 아름답고 강인하지만시간만큼은 어떻게 해도 견디지 못하지그래서 나는 누구에게도 정을 주지 못했단다어린 시절의 카렌에게도단지 그게 미안할 뿐이야.

 

 하지만 너는,

 너는 영원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건 어째서일까. 나는 지금도 알 수가 없다.

 마지막 아이테르에 대한 경외감 때문인지, 아니면 모든 꽃이 지고서도 영원토록 이 하늘을 주유할 콜로서스와 널 겹쳐서 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인지.

 이렇게 오래 살아왔는데 나는 이다지도 사람의 감정에 무지하구나.

 

 나는 내 자신의 감정조차도 알지 못하는데. 나는 네게 실수를 범하고 말았어.

 네가 용기를 내어 내게 전한 마음이 너의 착각일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단다. 내겐 그럴 권리가 없었는데도.

 

 그래도 여전히 내 답은 거절이란다그건 내가 여왕이기 때문도 아니고짊어진 사명 때문도 아니야.

 그때 너는 내게 수수께끼를 던졌지그래서 나는 지금도 이 낯선 감정을 해명하려고 해.

 그러니까 너의 수수께끼를 다 풀 때까지 나는 그 해답이 자리해야 할 곳을 비워둘 거야.

 만약 내가 늦지 않게 정답을 발견한다면 그날엔 나를 찾아와다오콜로서스의 날개로 이곳의 차디찬 햇살을 가리면서.

 말하지 않아도 너라면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어왠지 모르게.

 

 그때까지 건강하거라.

 영원한 겨울도 견딜 수 있을만큼.

 

 

[추신 조금 이르지만 동봉한 초콜릿이 있다바깥세상에는 이런 걸 주고받는 문화가 있다더구나입에 맞거든 녹여서 먹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