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아버지랑 나눈 이야기.



통념과 다르게 맛의 70~80% 가량은 후각 즉 향에서 비롯된다.

그래서 술들의 다채로운 맛은 각자의 향에서 기인하는 것이고 각 잔은 그 향을 제대로 음미시킬 목적을 가지고 있다.


아무튼 고도수의 증류주는 그 특성상 증발이 빠른 편이고 이 말은 향 역시 증발이 빠르다.

그래서 글렌캐런을 비롯한 증류주 잔들은 향을 가둬주면서, 산소접촉을 최소화해서 향이 천천히 풀어지도록 만들어진 설계.


상대적으로 향이나 맛이 다양한 양조주의 경우는 이걸로 마시면 특정하게 지배적인 향과 맛만을 느낄 가능성이 있다.


반대로 와인잔과 같은 특정 양조주용 잔에다 증류주를 따르지 않는것도 같은 이치.

향을 모으는건 마찬가지지만 다양한 향을 맡을 수 있도록 넓은 구조로 되어있고, 동시에 적정한 산소접촉을 통해 맛과 향을 풍성해지는 목적을 가진 설계.


만약 증류주를 여기다 따라마시면 처음엔 엄청 강한 향과 맛에 곤혹스럽다가,

얼마 안가서 맛과 향이 다 달아나서 오히려 맛을 못느끼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럼 양조주를 글렌캐런에 마시는건 잘못되었는가?는 아니요. 


본격적인 시음이나 평가가 목적이면 모르겠지만... 

너(글쓴이)처럼 향이나 맛을 찾는것에 곤혹스러운 사람에겐 향을 집중적으로 모아주는 글렌캐런이 더 좋은 경우가 꽤 있다.


그리고 정말 전문 시음을 해야하는데 잔이 그것 밖에 없다면 양조주를 더 적게 따르면 될 것이고, 

어차피 잘 평가하는 사람은 글렌캐런에 마셔도 다 평가하고 반대도 마찬가지다.


시음과 평가도 좋지만 마시는 사람이 편하고 즐거워야 한다.

만약 네가 즐겁게 마셧다면 그것에 네게 정답에 가까운 잔이다. 


그래서 경험상 시음은 첫 잔~두잔째에서 평가를 끝내는게 좋다. 그 다음부터는 너무 피곤해진다.

시음 결과 맛있으면 그냥 편하게 마시는거고 맛없으면 봉인하거나, 요리에 넣거나, 변기에 부으러 가야지.




물론 그렇다고 발렌타인 30이나 샤토 무통 로칠트 2014 같은 것들을 저그(맥주잔)에 마시면 높은 확률로 선물해준 놈이 니 머가리를 그걸로 내려칠테니까 주의하고 ㅇ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