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류주 입문은 주로 위스키, 특히 저렴하고 접근성 좋은 버번이나 블렌디드 스카치로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갈수록 여러 술에 손대는 것 같음.


불과 5년 전만 해도 꼬냑은 언급조차 드물었고 그만큼 가격도 훨씬 저렴했다. 지금은 국내에 정식수입도 어느정도 되는 편이지만 코로나를 거치며 프랑스의 급격한 물가와 인건비 상승으로 인해 출고가 자체도 올라가는 추세.


저렴이 엔트리도 먹을게 많은 위스키와 달리 꼬냑은 이 구간을 최대한 빨리 벗어나야 하는 주종임. 다만 숙성년수가 많다고 무조건 좋다는 것은 절대 아님. 대체로 일정 수준 위로는 상향평준화가 되기 때문에 2~30년짜리 맛있는거 냅두고 백년짜리 찾아먹을 필요가 없다.


또한 블렌디드가 천대받는 경향이 있는데 위스키에서 싱몰이나 싱글배럴, 스몰배치에 가치부여하던 문화가 넘어온 것으로 원래 꼬냑은 블렌딩의 미학임. 


빈티지보다 브솝 xo같은 애매모호한 등급제가 있는 것부터 이를 대변해주는데 요즘은 위스키먹다 외도하러 온 소비자들을 위해서 이런 싱글배럴, 스몰배치같은 것들을 내놓고 있음. 단점은 팍 쏘거나 매운맛이 나는 등 맛의 밸런스가 무너지기 쉽다는 것. 애초에 이걸 방지하기 위해서 다양한 원액을 블렌딩하는 거니깐.


예외로 싱글 떼루아는 그 지역만의 특색을 살리는 것이라 단순히 '맛있음' 에 초점을 두는 블렌디드와 지역색을 살리는 싱글 떼루아 간은 방향성이 다르다 할 수 있다.


물론 브솝 이하 중에서도 맛있는 제품은 있지만 이걸 찾아먹을 수준이면 절대 뉴비가 아니니 뒤로 가시오.



챈이던 갤이던 많이 언급되는 페이로 셀렉션이나 5대브솝 정도가 있는데 얘네를 가지고 맛이 어떻네 향이 어떻네 하는게 아님. 나한테 꼬냑이 맛있는 술인가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삼고 먹어봤을때 단순히 맛있다고 느끼거나 호기심이 생겨 다른거도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당신은 디오니소스와 헤파이스토스의 선택을 받은 양반이 되겠다. 축하합니다!


이제 다른걸 마셔보고 싶다면 바로 xo로 넘어가면 된다. 나폴은 이미 브솝으로 시작했다면 굳이 사먹을 필요는 없음.



5대xo가 제일 접근하기 쉽고 가격도 저렴함. 그러나 풍물 등지의 2차유통품 기준이지 정식수입된 제품이나 면세점 등지에서는 20만원 혹은 300$ 이상의 가격을 자랑하니 특히 면세점이라고 싸다는 생각을 버려야 함.



이제 5대xo까지 먹어봤다면 대충 미묘한 단맛과 포도향, 나무향, 꽃향, 과일향 정도는 구분이 될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5대 엑스트라로 넘어갈까? 아니다.


대기업 엑스트라부터는 가격은 확 뛰지만 퀄리티가 그만큼 상승하지는 않는다. 물론 간지도 나고 술술 마시기 좋아서 선물용으론 좋다. 위스키로 치면 대충 조니블루 정도의 포지션.



이제부터는 각각의 떼루아를 파는 것이 좋다.


떼루아로는 그랑, 쁘띠, 보더리, 팡부아, 봉부아, 부아 오르디네르가 있다. 핀상파뉴라는 것도 있는데 그랑 51% 이상+쁘띠로 블렌딩한 것이다.


각각의 특징이 있다고들 하지만 제일 중요한 건 떼루아보다 메이커의 특성이다보니 한 지역을 정하고 여러 생산자의 제품을 마시면서 향미의 공통된 교집합을 찾는다. 그것을 찾아야 기준점으로 삼고 다른 지역과 비교하거나, 같은 지역 제품이라도 혼자 특이한 걸 추구하는 별종이 있기 마련이기에 색다른 꼬냑을 찾는 재미도 있다. 여기서 별종은 굵은 글씨로 따로 표기했다.


그랑 상파뉴는 1급지로 분류되는 주제에 땅이 은근히 넓어서 수많은 메이커가 난립하고 있다. 그래도 일단 픽했을때 평타는 치는 곳으로 과일과 민트, 허브를 꼽는다.


메이커로는 장퓨Jean Fillioux, 프라팡Frapin, 페이로 Francois Peyrot, 바셰 가브리엘센Bache Gabrielsen, 라뇨Ragnaud Saborin, 테세롱Tesseron, 폴 지로Paul Giraud, 다니엘 부쥬Daniel Bouju* 등이 있다.


*진한 허브와 탄닌감이 있고 드라이한 편이라 여타 달달했던 꼬냑과는 궤를 달리한다. 호불호가 갈리지만 고평가를 받는 곳.



쁘띠 상파뉴는 2급지이나 하술할 핀상파뉴에 대부분 원액이 빨려들어간다. 쁘띠 단독도 충분히 맛있지만 메이커가 적은 편. 노트 또한 그랑과 유사하다.


주요 메이커로는 베르트랑Bertrand,  레로Lheraud* 가 있다.


* 흑설탕의 농밀한 향과 묵직한 바디감, 적당한 당도가 있어 팬층이 두터움.



핀상파뉴는 그랑과 쁘띠의 혼합이다. 알차게 내놓는 곳도 있지만 블렌딩이 다 그렇듯이 싱글로는 내놓기 어려운 원액들을 스까서 밸런스를 잡아 출시한다. 그나마 그랑과 쁘띠는 급을 쳐주는지라 이러한 특수 떼루아를 사용 가능하다. 대체로 가성비가 좋은 편. 얘네처럼 팡부아와 봉부아를 섞는다고 핀부아라고 하지 않음에 유의.


주요 메이커로는 레미 마틴Remy Martin이 있고 다른 메이커에서도 많이 출시한다.



보더리는 가장 면적이 작지만 앞서 소개한 상파뉴들과 달리 부케를 연상케 하는 풍부한 꽃향기가 돋보인다. 제비꽃을 위시로 하는 바이올렛 계열. 뒤따라 과일과 바닐라, 허브가 있다.


주요 메이커로는 카뮤Camus, 마르텔Martell, 오르도뉴Ordonneau, 지보앵Giboin 등이 있다.



팡부아는 그랑 외곽 지역인데 면적이 넓어서 편차가 크다. 그랑과 인접한 곳은 그랑의 향미가 나기도 한다. 상대적으로 하급지이다 보니 저렴한 편이고 가성비가 뛰어난 제품들이 있다. 여기서부터는 단독 제품도 보이지만 주로 블렌딩용으로 쓰인다.



주요 메이커는 보동Vaudon, 지보앵Giboin 등이 있다.



봉부아와 부아 오르디네르 역시 블렌딩용으로 주로 나온다.



발레앙 테르시니에Vallein Tercinier, 그로페랑Grosperrin처럼 다양한 떼루아 제품을 내놓는 곳들도 많으니 여기에 한정되지 말고 스스로 찾아보며 마시자.



이렇게 떼루아마다 감을 잡았다면 이제서야 꼬냑 입문이 끝났다고 할 수 있다. 그랑/쁘띠/핀상/보더리(+팡부아)까지만 정립하더라도 99%의 꼬냑은 여기서 나오기 때문에 파는데 걸림돌이 될 일은 적다.



이제 첨가물이나 빈티지, 밀레짐, 포도 품종처럼 더 파고들거나 고숙성 제품들을 flex하며 주지육림을 즐기면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