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관적이고 직접적인 스토리를 선호하는 사람이라면 귀찮겠지만 설정 관련 문서를 곳곳에 뿌려두고 하나씩 찾아가면서 전체 서사를 채워나가게끔 하는 방식은, 오히려 저걸 전부 메인 스토리에 편입시켰으면 내러티브 분량 때문에 플탐이 엄청 늘어졌을 거란 점에서 번거롭긴 해도 나름의 재미는 있었음. 아는 만큼, 시간 들인 만큼 재화든 스토리든 더 챙길 수 있는 게 이 겜 특이자 장점이니까.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해서 5화가 어땠느냐고 묻는다면 호불호의 영역이라기보단 아마도 본인에게 스토리적 허용과 납득이 되고 지나가느냐 안 돼서 ㅈ망 소리 나오느냐 하는 선에서 갈리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외사 5화에 대한 거부감은 무엇보다도 '식인'이라는 소재 활용 방식의 문제라고 봄. 사실 식량 부족 문제는 마리의 낙원에서 매우 심각한 문제였고, 따라서 스스로의 낙원을 침범하려는 주인공 일행을 처리할 겸 식량 문제도 해결하려 드는 건 사실 '사이코패스' 입장에서는 결과적으로 생각해봄직한 계획이다.


 그런데 문제는 마리의 뒤틀린 사고관과 낙원의 비극을 손쉽게 강조하려 든 나머지 너무 노골적으로 '부드러운 고기' 운운하는 과정에서 소재 자체 & 마리의 ㅈ간스러움에 대한 역겨움의 수위를 잘 통제하지 못했다는 점임. 해물 요리로 치면 비린 맛을 못 잡았다. 아무리 설정과 서사가 좋아도 뭣만 하면 슥 칼 빼들고 고기 운운하는 캐릭터에게 과연 공감이 쉬울까? 더욱이 자기를 부드러운 고기로 만들어서 애들에게 맛있게 먹이겠다는 상대를 두고 '일단 아이들을 구하러 가자' 면서 이 악물고 별 일 아니란 듯 넘어가는 주인공 일행의 반응은? 그런 알도를 보면서 '못 말린다'며 칼을 거두는 마리의 멘트가 압권이다. 마 식인이 ㅈ으로 보이나


 설정 문서를 뒤져서 마리가 추방된 광신도 집단에 의해 어렸을 때부터 학대를 받아 사이코패스처럼 뒤틀렸다는 걸 알고 보더라도, 실제로 마리의 대사 하나 하나를 보면 마치 '잭 더 리퍼'나 '한니발 렉터'처럼 유희를 위해 살인과 식인을 하는 '천연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오히려 유저 입장에서 마리가 어떤 경위로 이런 생각을 하게 됐는가 등등 마리라는 핵심 캐릭터를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비극성을 희미하게 만들어버림. 가뜩이나 왜 마리가 성격이 뒤틀렸는지 정확히 모르는 사람 입장에선 푹찍부터 시작해서 팬텀과의 사랑, 아이들에 대한 도구적 관점, 전혀 거리낌 없는 사람 사냥, 최후에 가서 흡사 역전재판 하듯이 논파 싸움 몇 번에 흑화가 풀려버리는 것까지도 포함해서 일련의 행동들이 모두 급발진의 연속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는 이유.


 가령 추방자 광신도 집단이라는 설정을 갖고 있다면,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학대한 광신도들을 혐오하면서도 지금 당장 자신의 낙원을 지키기 위해 모순적인 고민 속에서 주인공 일행을 제물로 바치기 위해 죽인다든가 하는 식으로 우회하거나 혹은 원피스의 빅맘 식인처럼 간접적인 묘사를 얼마든지 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적으로 예상하기엔 아예 처음부터 작가가 임팩트를 위해 '식인'이라는 자극적인 소재를 전면 활용하기로 마음 먹은 상태에서 스토리를 구상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이 식인 부분이 스토리 전체적인 서사를 볼 때 불필요하게 과장돼 있음. 그런 점에서 본다면 비린 맛을 못 잡은 게 아니라 일부러 안 잡은 거라고도 볼 수 있겠다.


 마리엘 역시 성녀라는 소재 때문에 엮인 것이지 엄밀히 따지면 다른 외사와 달리 다른 시층의 플레이어블 마리엘이였던 것도 아니고, 게다가 유저든 작가든 명확하게 결론내기 어려운 '구원'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에 대해서 중구난방으로 고민만 했을 뿐 실상 '교리적 정의'와 '마리에 대한 동정심' 사이에서 표류하며 캐릭터 성격에 맞게끔 '착한 모습'만 보여준 게 전부다. 



 어쨌거나 난 사이러스 해후나 음악의 힘 같은 뇌절이 아닌 바에야 스토리에 상당히 관대한 편이고 실제로 외사 5화도 불호였다고 까진 생각하지 않지만, 전체적인 스토리를 볼 때 굳이? 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꽤 있었음. TV 프로그램에서 자연스러운 PPL이 미덕이듯이, 앞서 말한대로 식인 요소처럼 흥미나 자극성을 위해 사용된 소재, 답을 얻을 수 없는 맥거핀, 그리고 이것들을 나열하는 미장센의 관점에서 오히려 소재가 주제를 잡아먹은 느낌. 결국 외사 5화에서는 아무리 인간적인 비극이 컸던들 나를 잡아서 맛있게 요리해 먹으려던 상대를 감정적인 설득 몇 번으로 단념하게 만드는 게 해피엔딩을 위한 전부이고, 실제로 배드 엔딩으로 인한 반복 순환 분기점도 그런 식으로 잡혀있다.


 게다가 소재 면에서도 성녀 마리아 오마주, 종교적 광신도, 추방자들의 섬, 황금향, 자의식과 이름을 갖고 군체 의식에서 벗어난 이레귤러 팬텀, 뜬금없는 팬텀과 인간의 사랑, 하이브리드 생명체 등등 너무 많은 떡밥이나 소재들을 담아내려다 보니, 오히려 유저 입장에서 각 캐릭터의 정당성이나 전개의 방향을 힘겹게 납득해야만 이해가 가고 완결이 나는 상당히 실험적인 스토리의 5화였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