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원래 별 생각이 없었는데 꾸준히 5화 떡밥이 챈에 도는거 보고 결국 불이 붙어버렸다


글쓰다보니 어느새 방송 거의 다 놓친거같긴한데 뭐 어때






5화의 주제와 구성은 여러모로 에덴에서 단골로 다뤄지는 테마인 "구원"의 비틀기


+ 특히 이 주제를 가장 오랫동안, 깊이 다룬 스토리인 서방외경과는 안티테제인듯 아닌 불완전한 대칭을 이룸


+ 가장 큰 차이는 서방외경이 일종의 운명공동체인 제르베리야 대륙의 인물들 및 그들이 받아들인 인물들  (서로 근본적인 공감대를 이루고 있거나 이룰 수 있는 내부인들) 사이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5화에서 마리엘/알도/노나는 마리 입장에서는 온전한 외부인 (상호간의 온전한 이해가 아직 결여된 인물들)이라는 점. 그래서 마리는 마리엘 일행을 일종의 침입자로서 경계하는데 비해, 주인공팟은 이를 전혀 인지하고 있지 못하기에 갈등이 보이지 않는데서 급속도로 커져나감


+ 또 서방의 갈등이 "구원을 갈구하는 땅에 구원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형태라면, 복음섬의 갈등은 "구원을 인정할 수 없는 사람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밀려는 이들이 나타났다"는 형태. 즉, 키워드는 동일하지만 갈등의 근본적 방향이 정 반대임. 장르적으로도 서방은 일종의 모험활극 겸 영웅서사/신화고, 5화는 그런 서사에 대한 해체에 가까운 인물분석극 쪽.


+ 반면 프라이의 4성 캐퀘 - 서방 5화 - 해후로 이어지는 "단순한 진심만으로는 부족할 때" 에 대한 고찰과는 여러모로 비슷하다고 여겨짐. 편견이나 반감을 다 내버리고 날것 그대로의 진심을 맞선 뒤에야 마침내 갈등이 해소된다는 점에서도 비슷하고.



마리엘과 마리의 관계는 동상이몽


+ 마리엘은 마리의 뒤틀림이나 자기모순 뒤에 숨은 진의를 진엔딩 루트 전까지는 이해하지 못하고, 마찬가지로 마리는 그렇게 "비틀린 자신을 이해도 용납도 못 할" 순수한 존재인 마리엘을 인정할 수가 없음


+ 다시한번 서방과 비교하자면 이는 4화 시점의 세제 - 미스트레아의 관계와 비슷함. 차이가 있다면, 앞서 언급했든 미스트레아와 세제는 근본적으로는 놓인 처지가 동일했기에 적어도 미스트레아는 세제를 처음부터 거의 온전히 이해하고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어서 둘은 마리엘과 마리만큼 엇갈리지는 않았다는 거 정도


+ 한편 마리엘이 사람의 악의와 복잡성에 대해서는 무지에 가까울 정도로  것도 둘 사이 간극이 커지는 큰 이유. 죄를 저질러서라도 지키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의 심정을 이해하냐 이해하지 못하냐는 서방팟과 마리엘의 큰 차이점이기도 함.




히라타니는 작품을 쓸때 "정답"은 제시하지 않으려 노력한다 언급한적 있음


+ 사실 5화도 식물인간의 처우에 대해 답정너라는 식의 평가가 많지만, 단지 등장인물들이 그런 선택을 하는 놈들이었던거라 그렇게 흘러간거지 스토리 전체를 뜯어보면 그걸 살려놓는게 정답이라고까지 제시하지는 않음. 정확히는, 그 식물인간을 죽이기로 결정했던 마리의 양부 선택 또한 부정하지 않음. 마지막에도 마리가 살리기로 결정한건 단지 마리 본인의 선택이었고, 그거에 대한 가치판단/평가를 마리엘과 알도는 하지 않기로 결정함


+ 이건 히라타니가 등장인물들이 스토리 상 내리는 선택이나 판단에 있어 등장인물의 성격적, 가치관적 특징을 그 개별 선택지의 합리성이나 올바름보다 거의 언제나 우선시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임. 용2 극후반부의 백화계획 부분이 대표적. 이건 히라타니의 가장 큰 장점이자 호불호의 가장 큰 원인이기도 하다고 생각함. 캐릭터 분석과 해석에 만큼은 진심이지만 거기에 개연성조차 희생시킬 때가 있다는 의미라.




+ 다만 히라타니도 확실한 오답은 분명 지적하는 편임. 용2에서 어인 소녀로 의태한 촉수일족이 맞이한 결말 같은걸 보면, "무엇이 정답인지는 독자의 해석에 맡기더라도 저건 분명 잘못되었다"고 주장하는 것들은 분명 있고, 히라타니는 이러한 잘못이 해소되지 못한 인물들에게 대개 극단적/필연적인, 일종의 그리스 비극적인 파멸을 맞이하게 만듬. 5화에서는 초회차 루프나 배드엔딩 루트가 이에 해당. 


+ 그래서 오히려 그런 배드루트에서 파탄으로 나아가는 개별적 단계의 개연성은 그렇게 중요하게 그려지지 않는다고 봄. 이미 배드루트까지 간 (마리의 근원적 비틀림이 해소되지 못한) 상태의 등장인물들은 마리가 되었든 아이들이 되었든 이미, 혹은 처음부터 정상이 아닌 상태 인거고, 그 뒤에 일어나는 일들은 단지 그게 밖으로 표출된 것 뿐이기 때문에 그 형태는 큰 상관이 없기 때문.






마리의 비틀림은 결국 "자신의 진짜 소망을 마주보려 하지 않는다"는 것


+ 이런 의미에서는 마검2의 기사단장과 유사함. 진정 바라는 구원이나 행복은 따로 있지만, 그걸 인정하는 순간 본인이 지금까지 이룩한 것, 이룩해오려 한 것, 나아가 지금의 자신을 형성하고 있는 근본적 가치관을 버려야 하기 때문에 방어기제가 날뛰는 상태인 거. 설령 그런 "지금의 자신"이 위태롭기 그지없는 자기모순 덩어리더라도.


+ 아무튼 그래서 마리는 일반적인 논리로는 상대할 수 없음. 실제로 마리가 마리엘과 언쟁하는 파트에서 마리는 아주 적극적이고 능숙하게 각종 논리적 오류(특히 허수아비 공격)를 사용해 마리엘을 공격하고, 그나마 대화가 통하던 알도조차 문답무용으로 제거하려 함. 결국 마리에게 마리엘 일행은 당시 자신의 존재방식 그 자체에 대한 위협이기 때문.


+ 그런 마리의 마음을 돌리는 건 결국 마리엘도 알도도 아니라 자신이 키운 아이들의 비정상성을 목격하는 거였는데, 이건 결국 파멸에서 마리를 근본적으로 끌어낼수 있던 인물은 결국 자기 자신뿐이었다는 것. 이는 마리엘이 5화에서, 그리고 본인 ES퀘에서 얻는 깨달음과 궤를 같이함.



사실 외사는 단편완결이라는 특성상 문체나 서사구조분석할것도 크게 없고, 내용도 왕도적이거나 거부감 없이 흐르는 내용이 대부분이라 인상적이거나 잘썼다고 느낀건 많았지만 딱히 분석까지 해보고싶은건 별로 없었는데 5화는 역시 파격적인 주제에 캐릭터다보니 써놓고보니 꽤 글 분량이 되긴 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