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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듀서 세션 -WE DISCUSS VANA’DIEL- 제8회 카토 마사토

마츠이 프로듀서가 파이널 판타지XI(이하 파판11)와 연이 있는 어느 인물과 대담을 하는 "프로듀서 세션 -WE DISCUSS VANA’DIEL-".

제8회의 대담 상대는 파판11부터 지라트의 환영까지의 스토리를 작성한 카토 마사토 씨.

파판11의 큰 매력인 "MMORPG에 본격적인 스토리를 쌓아올린다" 라는 요소는 어떻게 구축됐을까?

그 흐름 속에서 중요한 열쇠를 쥔 것이 카토 씨다.

대담 파트1이 되는 본고에서는 카토 씨에게 "게임 속에 스토리를 도입하는 것"의 원점과 스퀘어(현 스퀘어 에닉스)에 입사하기까지의 경위를 물어보기로 한다.



카토 마사토

많은 게임에서 기획/세계 설정/시나리오/연출 등을 담당한 크리에이터.

스퀘어 재직 시에는 크로노 트리거, 제노기아스, 크로노 크로스 등을 담당하고 파판11에서 스토리 전반을 담당.

파판11의 첫 확장 데이터 디스크인 지라트의 환영까지의 플롯을 작성했다.

또 스퀘어 퇴사 후에도 2009년에 추가 시나리오 3부작 돌이 보는 꿈, 전율! 모그리 축제의 밤, 샨토토 제국의 음모의 시나리오를 담당.

현재는 GREE에 소속되어 시나리오/연출을 담당한 싱글 플레이 전용 RPG 어나더 에덴 시공을 넘는 고양이가 호평을 받고 있다.





게임에 "이야기"를 쌓아올리는 것에 흥미를 가지고 게임 업계로


마츠이

오랜만이네요. 

프로듀서 세션에서 지금까지 많은 분과 대담을 나눴는데 개발 초기의 이야기가 나오니 카토 씨의 이름이 무조건 나올 수밖에 없을 정도였죠.

오늘 마침내 "본인 등장!" 이라는 느낌이네요.

다시 한 번 잘 부탁드립니다.


카토

그런가요(웃음).

저야말로 잘 부탁드립니다.


-우선 카토 씨가 게임 업계에 들어가기까지의 이야기를 다시 듣고 싶은데요. 애당초에 이야기라는 것에 흥미를 가진 게 언제였죠?


카토

전 어릴 때부터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는 걸 무척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장래에 그림이나 문학 쪽에서 "창작"을 하고 싶어했어요.

그래서 대학은 미술 대학을 지망했는데 시험에 불합격해서 마음을 바꿔 문학부가 있는 대학으로 진학했죠.


마츠이

미술과 문학,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는 게 대단하군요.


카토

그 후로 대학을 무사히 졸업했는데 어째선지 일정한 직업을 가질 엄두가 안 나길래 애니메이터 하청 알바를 시작했어요.

이 알바는 그리는 만큼만 버는 알바였고 원화를 한 장 그리면 몇 십 엔 받는 바닥이었죠.

아무리 열심히 해도 월 6~7만엔 정도가 고작이었어요.

그래서 당시에 같이 살던 여동생한테 아파트 집세를 대신 받는 식으로 돼서.....(쓴웃음).

이런 생활을 오래 해선 안 되겠다고 생각했죠.


-그건 오빠로서 위신이 안 사니까요(쓴웃음).


카토

그런 때에 난데없이 드래곤 퀘스트2(이하 드퀘2)를 해 보고 큰 충격을 받았죠.

게임 속에서 내가 이야기의 주인공이 돼서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하고, 그에 따라 이야기의 전개도 변하는 거.

영화나 소설과는 다르게 자신이 주체가 되어 현실 세계와는 다른 인생을 체험할 수 있다는 말이죠.

지금 시대에 RPG는 당연한 것처럼 알려져 있지만 당시의 저는 드퀘2가 첫 RPG였으니 진짜 충격먹었어요.


마츠이 

카토 씨의 RPG 첫 체험이 드퀘2였군요.


카토

그래요.

이 만남으로 "이야기를 쓰는 걸로도 게임 개발을 할 수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테크모(당시)가 인재 모집 광고를 내놓을 걸 보고 바로 응모했죠.




액션 게임에 스토리를 쌓아올린다는 도전


마츠이

테크모에서는 어떤 일을 했나요?


카토

처음에 한 건 만화 원작인 축구 게임(*캡틴 츠바사)이었네요.

그 게임은 시합 중에 드리블과 슛 등의 각 장면을 애니메이션으로 짧게 표현하는데요, 그 그림을 그릴 사람이 당시 테크모에 없었거든요.

전 애니메이터 알바를 한 적도 있으니 이 작업에 그야말로 안성맞춤이었죠.


마츠이

처음엔 디자이너로서 일했군요.

그 게임의 애니메이션은 짧으면서도 인상이 깊더군요.


카토

만화가 원작이기도 해서 드리블의 오버스러운 동작 등은 지금 생각해도 재밌네요(웃음).

그리고 그 축구 게임 개발이 무사히 끝나고 미국에서 닌자가 유행하기 시작하길래 그 다음에는 "닌자 액션 게임(*닌자 가이덴)" 개발 프로젝트가 시작됐죠.

당시 테크모에 재직 중이던 요시자와 히데오 씨(※)라는 분이 디렉터였고 저는 그래픽 담당으로 참가했어요.

※요시자와 히데오 씨는 테크모와 남코(당시)에서 많은 게임의 디렉션, 프로듀스를 담당한 크리에이터.


마츠이

그 게임도 떠오르네요.

일본 고유의 "닌자"라기보다는 해외에서 바라보는 "Ninja"라는 이미지가 알맞게 들어갔었죠.


카토

그건 요시자와 씨가 「단순히 닌자가 나오기만 하는 평범한 액션 게임은 안돼!」라고 크게 강조한 부분이었거든요.

그래서 현대를 무대로 하는 게임인데 주인공인 청년이 「사귀왕 네 이놈!」 이라고 말해야 해서(웃음).

그리고 실제로 발매되니까 그 스테레오타입의 닌자가 크게 흥행했죠.

반대로 평범한 닌자가 주인공인 게임이었다면 여기까지 이야기가 이어질 만한 작품이 되진 않았을 걸요.


-그 시리즈는 지금도 3D 액션 게임으로서 그 정신적인 부분이 계승됐는데, 인기가 이어져 오는 건 제1작의 임팩트가 강해서 그런 거라고 생각해요.


카토

그 닌자 액션 게임을 개발하던 중에 제게 정말 큰 영향을 준 사건이 있었죠.

요시자와 씨가 액션 게임에 "스토리"를 쌓아올린 거였어요.

요시자와 씨 본인도 원래 영화 업계를 지망한 적이 있어서 게임에서는 스토리 텔링 방법을 모색했거든요.

그래서 그 닌자 액션 게임에서는 한 스테이지를 클리어하면 컷 인으로 스토리를 보여줬어요.


-전직 애니메이터 카토 씨에겐 흥미가 솟구치는 아이디어였나 보네요.


카토

그건 당연히 흥미가 솟을 수밖에요.

그래서 처음에는 그래픽 부분만 담당할 예정이었는데 최종적으로는 컷 인 콘티도 포함해서 상당히 폭넓게 담당했어요.

그 경험으로 "스토리성이 있는 드라마를 게임으로 쌓아올리는 건 가치가 있구나" 라고 확신했죠.


마츠이

거기다 카토 씨가 어릴 때부터 흥미를 가졌던 "그림"과 "스토리" 양쪽에 관련된 일을 할 수 있었던 거죠.


카토

네.

그래서 속편에서는 스토리 원안도 쓰게 됐어요.

동시에 그래픽도 담당해서 너무 바빴는데, 참 충실한 날들이었네요.

게임의 가능성이 점점 넓어지는 걸 실감했어요.


마츠이

그 후에는 테크모에서 가이낙스로 이직했죠?


카토

테크모에서 3년 정도 일했는데 점점 업무가 막히기 시작했죠.

그러던 중에 개인적으로 어떤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프린세스 메이커1)을 플레이하고 이건 굉장하다고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개발사인 가이낙스로 달려가 면접을 보고 입사를 희망했습니다.


-당시에는 그 게임을 시작으로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 붐이 일어났죠.


카토

입사한 후에 그 작품의 속편(*프린세스 메이커2)에 관여하게 됐습니다.

제가 전작을 플레이했을 때 엔딩의 바리에이션이 부족하다고 느껴서 속편에서는 그 부분을 강화하고 싶다고 생각했죠.

그래서 캐릭터의 파라미터에 따라 플래그를 세우고 거기서 여러 전개를 준비하는 등, 각 방면으로 대폭 강화했씁니다.

그 외의 각종 이벤트와 맵 디자인 등도 제가 담당했습니다.


-그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은 가정용 게임기로도 이식돼서 오랫동안 인기를 끌었죠.


카토

하지만 아쉽게도 당시 가이낙스의 게임 부문은 규모가 작아서 개발 라인이 1, 2개밖에 없었어요.

게다가 이미 이름있는 크리에이터 분들이 재직 중이라 저같은 신참이 애써봐야 두각을 보이기 어려웠죠.

그래서 더 큰 게임 메이커에서 일하고 싶어졌고 그 다음엔 스퀘어(현 스퀘어 에닉스)를 노리기로 했죠.





대담 기사의 파트2에서는 카토 씨가 스퀘어(현 스퀘어 에닉스)에 입사 후, 크로노 트리거 등의 개발을 거쳐 마침내 파판11 개발 팀에 들어간 경위를 중심으로 이야기한다.


동경하던 호리이 유지 씨와의 공동 작업


마츠이

스퀘어 입사 후에 카토 씨가 처음으로 담당한 게 크로노 트리거(※) 였던가?

※1995년에 슈퍼 패미컴 용으로 발매된, 여러 시대를 오가며 모험하는 RPG. 사카구치 히로노부 씨, 호리이 유지 씨, 토리야마 아키라 씨가 태그를 맺은 "드림 프로젝트"는 당시 큰 화제가 됐다.


카토

그래요.

제가 스퀘어에 입사했을 때는 마침 크로노 트리거 개발 프로젝트가 시작됐었고, 중도 채용 스탭을 모으고 있었어요.

그런데 모인 멤버들은 각자 게임 개발 경력이 있어도 스퀘어에서 일을 진행하는 법을 몰랐으니 좀 불안한 상태로 시작한 게 기억나네요.


-마츠이 씨는 막 입사했을 때의 카토 씨와 면식이 있었나요?


마츠이

그 때는 아직 없었죠.

카토 씨가 말했듯이 당시에는 크로노 트리거를 개발하기 위해 각 방면에서 대대적으로 스탭을 스카우트하고 많은 사람들이 계속 입사했으니까요.

그런 초기의 개발 팀은 사내에서도 독립적인 느낌이었네요.


-카토 씨는 크로노 트리거에서 어떤 부분을 담당했나요?


카토

주로 시나리오 담당으로 배속되고 스토리의 원안을 담당하는 호리이 씨(호리이 유지 씨.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의 아버지)에게 매주 출장을 가 미팅을 했네요.

그리고 다음 미팅까지 게임의 사양에 맞추고 그걸 호리이 씨가 감수하는 작업을 1년 정도 계속했어요.


-카토 씨는 드래곤 퀘스트2를 계기로 게임 업계에 들어왔다고 했는데, 호리이 씨와의 공동 작업이 기쁘지 않았나요?


카토

진짜 기뻤죠(웃음).

그런데 그 한편으로 다른 스탭을 보면 작업이 진행되는 건지 진행되지 않는 건지 잘 모르는 상태였어요.

그 때 파판6의 개발을 마친 사카구치 씨(사카구치 히로노부. 파판 시리즈의 어버이 중 하나)가 크로노 트리거 개발 현장을 보러 왔거든요.

그리고는 「1년이나 지났는데 하나도 진행이 안 됐잖냐!」 라고 일갈했죠.

그 때부터 팀 편성에 큰 변동이 일어났고 개발 페이스가 단번에 올라갔네요.


마츠이

그 때 저는 로맨싱 사가2 개발을 마치고 크로노 트리거 개발 팀에 조력자로 들어왔는데 그 상황에 놀랐어요.

게임의 내용물을 보니 시대를 오가는 시스템이 있고, 연계기가 있는 등 슈퍼 패미컴으로 상당한 도전을 하고 있었으니까요.

확실히 "이거 하나도 진척이 안 되겠네 싶다" 했죠.


카토 

연계기 시스템은 개발 초기에 제가 아이디어를 내서 채용된 거에요.

하지만 이 게임은 플레이어블 캐릭터가 7면이라 페어 기술과 셋이서 쓰는 기술의 바리에이션을 단순히 계산해도 상당한 수가 나오죠.

그래서 오랫동안 머리를 감싸매고 있었는데 사카구치 씨가 「연계기가 가능한 캐릭터의 조합을 엄선하면 돼」라고 조언을 해 줘서 그때부터 개발 작업에 박차를 가했습니다.


마츠이

그 밖에도 당시에 크로노 트리거를 보고 놀란 건데, 적과 접촉하면 심리스로 캐릭터가 전개되어 전투가 시작되는 시스템이었거든요.

그 진형은 하나하나 수작업으로 레이아웃을 설정한 거래요.

그래서 연출을 보는 맛이 있길래 「잘 만들어졌잖아」 라고 놀랐어요.


카토

그것도 제가 아이디어를 낸 거고, 시범을 보여주면서 다른 스탭에게 작업을 요청했어요.

플레이어의 시점에서는 매 번 유니크한 진형이 펼쳐지니 신선하겠지만 실제로는 그 장면이 전부 패턴화되어 있습니다.


마츠이

만약 제가 처음부터 크로노 트리거 개발 팀에 참가했다면 「그런 방식은 스마트하지 않으니 자동화하는 시스템을 조직해 볼래요?」 라고 했을 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수작업으로 만들어진 크로노 트리거의 전투는 실제로 호평이 아주 많았죠.

결과가 좋으니 그만이지만 그런 개발 방법을 밀고 나간 건 "근성 넘치는 스탭"이 많아서 가능했던 건가 보네요.


카토

근성이라고 할까, 저는 여차하면 노가다(*力技)로 이겨내려고 하는 나쁜 버릇이 있어서요.

마츠이 씨가 담당한 로맨싱 사가2는 전투의 사양이 굉장히 세련되어 있잖아요.

그런 시스템에 "아름다움"이 보이게 하는 스타일인 마츠이 씨가 보면 「크로노 트리거 개발 팀은 진짜 미련하게 하는구나......」라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죠(쓴웃음).


마츠이

아니요, 그건 개발자로서의 근본의 차이가 아닐까 싶네요.

크로노 트리거 개발 스탭은 PC게임 개발을 경험한 스탭이 많았죠.

PC게임은 가정용과 비교하면 사양이 더 높은 경우가 많으니 그걸 기준으로 하면 슈퍼 패미컴은 출력이 부족해지는 경우가 종종 생기지 않았을까 해요.


카토

마츠이 씨가 그런 말을 하니 어쩐지 도움이 크게 느껴지네요(웃음).


마츠이

크로노 트리거의 전투도 만약 PC용으로 만들어졌다면 그 연출 부분도 자동화가 가능했을 지도 모르겠네요.

반대로 저는 PC게임 개발을 경험하지 않고 가정용만 해 왔으니 "한정된 기기 출력과 리소스로 뭘 할 수 있을까"를 근본삼는 타입이니까요.

그 차이죠.


카토

크로노 트리거 개발 팀에서는 그런 노가다를 마지막까지 해 준 스탭이 많아서 저도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방법으로 고평가를 받았으니 모두가 「그게 당연한 거야」 라고 받아들이고 말았죠.

그래서 그 이후의 프로젝트에서도 누구 한 명이 노가다로 해결하려고 하면 저를 포함한 주변 스탭들도 따르게 되는, 대항 의식같은 게 생겨버렸네요.


마츠이

그러면 다들 물러서지 않을 테니 피폐해질 텐데......


카토

원래라면 그렇게 되기 전에 프로듀서나 디렉터가 말려야 해요.

저는 그런 쓰디 쓴 경험이 있었으니 크로노 크로스에서 디렉터를 담당했을 때는 파티의 메시지 자동 생성은 시스템화했죠.

그 개발 프로젝트를 통해 마침내 스퀘어에서 만족스럽게 일했다는 걸 실감했습니다.




MMORPG에 스토리는 필요 없다?


-크로노 크로스가 끝나니 마침내 파판11 개발이 시작되는데......그 전에 하나 확인할 게 있습니다. 웹 상의 정보에 의하면 파판11 개발 전에 머나먼 시공 속에서2의 시나리오를 담당했다는 기록이 있는데요.


카토

아 그건 성이랑 이름이 같은 다른 각본가 분이에요.

가끔 헷갈리시는 분들이 있는데 주의해야 합니다(웃음).


-그런 정정으로 괜찮겠습니까(웃음). 본론으로 돌아가서 크로노 크로스 프로젝트가 끝난 후에 어떤 경위를 거쳐 파판11에 관여하게 된 건가요.


카토

크로노 크로스 개발 팀을 감독하던 타나카 씨(타나카 히로미치 씨. 파판11 초대 프로듀서)가 파판 11을 만들게 되고, 그 밑에 있던 저희도 자연스럽게 참가하는 흐름이 됐습니다.

당시에는 「스퀘어의 첫 MMORPG를 성공시키자!」라고 힘이 빠싹 들어가서 투입할 수 있는 인재를 각 방면에서 모집했죠.


마츠이

저도 당시에는 성검전설 시리즈 신작을 위해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사카구치 씨한테 「MMORPG 개발 프로젝트를 시작할 테니까 이 참에 온라인 게임을 해 둬!」라고 들었거든요.

저희 성검 팀과 크로노 크로스 팀, 그리고 사카구지의 패러사이트 이브2와 브레이브 펜서 무사시전 팀이 합류해 파판11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까지 저는 일단 에버퀘스트(이하 에버퀘※)를 플레이 했습니다.

※에버퀘스트는 1999년 미국에서 서비스를 시작한 해외산 MMORPG.


-카토 씨에게 플레이어로서의 MMORPG의 첫 인상은 어땠나요.


카토

개인적으로는 게임은 플레이하는 것도 만드는 것도 기본적으로 외로운 늑대 스타일이니, 플레이어로서는 그 정도로 푹 빠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때부터 스퀘어가 만들 MMORPG, 바로 파판11에는 굉장한 흥미를 느꼈죠.


-어떤 부분에 흥미를 가졌죠?


카토

당시 주류였던 MMORPG인 에버퀘와 울티마 온라인(※)은 게임 내의 설정과 세계관, 그리고 모형 정원이라고 할 수 있는 에리어를 준비하면, 그 다음은 플레이어 각자가 플레이하는 걸 바라본다는 풍조였죠.

즉, 스토리가 없는 것이 당연한 거였습니다.

게다가 스퀘어 사내에서도 그때부터 만들 파판11을 향해 「스토리가 왜 필요해?」라는 흐름이 있었거든요.

전 크게 불복해서 무심코 「게임에 스토리는 필요하고, 그건 MMORPG도 마찬가지야!」 라고 대들었죠.

※울티마 온라인은 1997년에 서비스를 시작한 MMORPG의 선구자와도 같은 타이틀이다.


-카토 씨의 지금까지의 게임 제작을 돌이켜보면 「MMORPG에 스토리는 필요 없어」라고 들어도 가만히 있지 못했겠지요.


카토

그 말을 한 위세는 좋았는데 여럿이서 플레이하는 MMORPG에 어떻게 스토리를 쌓아올려야 할 지 몰랐죠.

그래서 고민한 끝에 유원지의 어트랙션처럼 "동료와 함께 스토리에 참가하는 형식"으로 하는 건 어떨까 생각했어요.

그러면 동료와 감동을 공유하고 감상을 나눌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게 파판11의 스토리, 즉 "미션"의 컨셉이 정해졌습니다.



시작 지점을 세 나라로 나눈 이유


-카토 씨는 파판11의 스토리 전반을 담당했죠. 한편으로 바나 디르의 세계관은 이시이 씨(이시이 코이치. 파판11 초대 디렉터)가 구축했다는 이미지가 있죠. 실제 분업은 어떤 느낌으로 진행됐나요?


카토

처음에는 이시이 씨가 지금까지 담당한 파판 시리즈와 성검전설 시리즈를 답습해 바나 디르의 세계관과 신들을 설계했습니다.

그 후에 제가 파판11 개발 팀에 참가했을 때 이시이 씨가 「스토리는 전부 네게 맡길 테니까」라고 했죠.

그 후로는 바나 디르 세계 지도를 만들고 각지에 이름을 붙여 이 세계의 역사를 고안했습니다.



※이 지도는 이시이 씨가 작성한 초기 지도를 베이스로 시나리오 작성을 위해 버전 업한 것이다. 이시이 씨가 작성한 지도는 아마노 씨의 월드 맵 화면의 원형이 됐고, 전체적인 실루엣은 이시이 씨가 고안했다. 또한 지명 등의 초기 네이밍도 이시이 씨가 했으며 반드르와 바스투크는 성검 시리즈에서 인용했다.


-이건 바나 디르의 청사진인데요. 이걸 만든 시점에서 이미 산도리아(초기 명칭은 산도리노), 바스투크, 윈더스(초기 명칭은 윈덤)이라는 세 나라가 존재했죠. 애초에 어떤 의도로 초기 소속국을 세 개로 나눈 건가요?


카토

스퀘어에게 MMORPG는 처음 도전하는 장르라 모르는 것 투성이였죠.

예를 들면 당시 인터넷 인프라는 협대역이 당연했고, 실제로 서비스를 시작하면 에리어 내에 몇 명이 모일 지도 감이 안 잡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능한 한 리스크를 피하기 위해서 극초반에는 플레이어를 분산시켜야 겠다고 생각했죠.

그 결과 게임의 시작 지점을 세 가지를 준비해 각 나라마다 다른 전개로 모험을 시작하게 된 거에요.





파트3이 되는 본고에서는 산도리아, 바스투크, 윈더스, 그리고 지라트의 환영 미션의 개발 경위를 중심으로 풀어간다.


각국의 미션과 퀘스트는 플래너에게 일임


-파판11의 극초반은 세 나라가 각각 미션을 전개하는데요, 마침내 거점은 쥬노로 옮겨가고, 거기서 큰 스토리로 흘러가게 됩니다. 이 스토리의 제작 작업은 어떻게 분담했나요.


카토

저는 지라트의 환영까지의 메인 스토리와 바나 디르의 장대한 역사를 생각하는 것에 전념했죠.

그리고 세 나라는 미션과 시나리오, 그리고 작은 퀘스트까지 나라 단위로 플래너에게 맡기는 체제였습니다.

최종적으로 산도리아는 키고시 씨, 바스투크는 카와모토 씨, 윈더스는 사토 씨(※)가 담당했습니다.

※각각 키고시 유스케 씨, 카와모토 노부아키 씨, 사토 야에코 씨. 키고시 씨, 카와모토 씨는 당시 파판11의 플래너였다.


-각 플래너가 만든 것을 카토 씨가 검토하는 게 아니라 완전히 맡겼다는 건가요?


카토

맞아요.

처음에는 대략적인 방향성만 전달했죠.

예를 들면 「가르카와 흄은 이런 섬세한 관계성이 있으니 점차 대립이 발생할 것이다」, 「산도리아는 드라기유 왕가의 지배 체제가 오래 이어졌지만 현재의 제1왕자와 제2왕자는 일장일단이 있으니 후계자 문제가 일어날 것이다」라는 이야기로 말이죠.

그 정도만 전달하고 나머지는 플래너에게 맡기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당시를 떠올리면서 힘들었던 점과 인상에 남은 점 등을 말해 주세요.


카토

세 나라 중에서 제일 어려웠던 게 산도리아였네요.

사실 개발 초기의 엘반은 지금보다 더 귀족적이고 다른 종족을 항상 깔보는 고압적인 태도가 눈에 띄었죠.

저는 "첫 인상은 짜증나는 종족이지만 스토리를 진행하면 그들의 신뢰를 받는 형태"를 그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주변에서는 「이러면 너무 빡센데!」 라고 평가해서 도중에 방향 전환을 크게 했습니다.

지금의 엘반은 개발 초기보다 상당히 마일드한 종족이 됐죠.


마츠이

엘반은 플레이어 캐릭터이기도 하니까 "고압적인 종족"이라는 이미지를 심으면 기피할 지도 모르니까요.

지금의 산도리아는 트리온과 피에제 등의 왕가는 물론, 할바 등과의 협력도 포함해 고결함과 인간미가 양립하는 좋은 느낌으로 밸런스가 잡혔다고 봅니다.


카토

산도리아에도 어려웠던 게 하나 있는데, 당시에 있던 고참 플래너가 파판11을 정식 발표하기 직전에 스퀘어를 퇴사했거든요.

방법이 없으니 제가 산도리아 플롯을 급히 써서 그 후로는 당시 쥬노를 담당한 키고시 씨에게 넘겼습니다.

그가 울면서 산도리아 퀘스트를 만들었던 게 선명히 떠올라요.


마츠이

그 때만큼은 신뢰하는 플래너에게 한 나라를 맡긴다는 방침이 조금 뒤집혔다는 느낌이군요.


카토

그러고 보니 바스투크도 꽤 힘들었거든요.

광산과 갈카의 존재를 감안하면 아무래도 지저분한 이야기가 되니까요.

그리고 흄은 흄대로 현실 사회의 정치적인 이야기 등, 의외로 무거운 이야기가 됐네요.


-카르스트 대통령은 처음에는 짜증나는 녀석이라는 인상이었는데 미션을 진행하면 그의 입장과 나름의 생각을 이해할 수 있어 상당히 심오하죠.


카토 

그래서 윈더스는 하기 쉬웠다고 할까, 어떤 의미로는 "반칙 수준"이었죠.

타르타르같이 작고 귀여운 캐릭터였다면 어떤 무리한 전개를 이벤트로 내도 용서되니까요.

파판11 서비스 시작 후에도 윈더스는 인기가 많았고, 당시의 사토 씨는 "좋은 것만 쏙쏙 가져가는" 상황이 됐나 싶네요(웃음).


-그나저나 각 나라를 플래너에게 맡기면서도 파판11 전체의 세계관과 스토리의 적합도가 제대로 맞물리는 게 대단하네요.


카토

그건 플래너끼리 미팅을 자주 했으니까요.

가끔은 저도 거기 껴서 「그 설정은 이렇게 할 테니 그쪽 퀘스트는 이렇게 하죠」, 「미스라는 그런 표현을 안 하니 이렇게 바꿉시다」 등, 확실하게 커뮤니케이션을 했어요.

그래서 그들을 총괄하는 저로서는 세세하게 참견할 필요가 없어서 안심하고 맡길 수 있었네요.


마츠이

파판11 개발 팀은 스탭이 자주 들어왔다 나갔는데, 스토리 방면은 카토 씨가 제대로 규합해 줬죠.

제가 소속했던 성검전설 팀과 오사카 팀은 스탭 반 정도가 도중에 다른 프로젝트로 이동했어요.

하지만 카토 씨가 이끌었던 크로노 크로스 팀은 마지막까지 많은 멤버가 남았었네요.


카토

오사카 팀이라 들으니 떠오르는 게 있는데, 플래너 중에 이와오 군(이와오 켄이치 씨. 파판11의 세계 설정 등을 담당한 전 플래너)이 있었거든요.

굉장한 설정 오타쿠라서 저는 시나리오에 필요한 것 말고는 세세하게 관여하지 않았는데, 알고 보니 그가 나라와 종족, 식물, 생태계 등을 깊게 파고들어 줬더라고요.

제가 「바나 디르가 이렇게나 깊은 세계였다니!」라고 놀랄 정도였으니, 상당했죠(웃음).


마츠이

이와오 군은 개발 팀 내에서도 유명했죠.

이와오 군이 설정을 너무 진지하게 만들길래 나중에 새로운 에리어에 몬스터를 등장시킬 때 "설정상의 모순이 생기니 무리"라고 한 적도 있어요(웃음).


카토

그도 그렇지만 파판11에는 개성적인 스탭이 많이 모였죠.


마츠이

정말 그래요.

파판11은 스탭 총 인원 수가 많고 프로젝트를 바꾸는 사람도 꽤 있었지만, 그래도 계속 남아 준 사람들은 진심으로 MMORPG의 가능성을 믿고 「스퀘어의 첫 MMORPG를 성공시키고 싶다」는 마음도 강했을 거에요.

역시 그런 사람이 모이면 "농후한" 것이 나오기 마련이죠.





더 힘들었던 건 초기 스토리와 지라트의 환영 분할


-"MMORPG에서 스토리를 즐기게 한다" 라는, 지금까지 전례가 없던 시도에 도전한 경험은 어땠나요.


카토

아무튼 힘들었죠.

플레이어 한 명 한 명의 진척이 달라서, 예를 들면 스토리 상에서 누가 죽거나 건물이 파괴되는 이벤트 전개는 꽤 트리키한 기술을 쓰지 않는 한 불가능했습니다.

또, 누가 언제든지 찾아올 수 있는 도시 등에 한 번 등장한 NPC는 무슨 일이 있어도 퇴장해선 안 됐죠.


-그 부분을 듣기만 해도 스토리 제작에 상당한 제약이 있었다는 게 느껴지네요.


카토

게다가 파판11 발매 당시에는 협대역 회선이 당연했으니 플레이어에 따라 통신 환경도 크게 달랐거든요.

그런 사람들이 같이 파티를 짜서 같은 타이밍에 이벤트를 시작해도, 각자 끝나는 타이밍이 다릅니다.

그런 차이가 있는 것을 전제로 한 이벤트 제작은 지금까지의 온라인 RPG에선 생각할 필요가 없었기에 여러 허들이 있었죠.


마츠이

6인 풀 멤버로 장시간 이벤트가 발생하면 먼저 끝나는 사람이 기다리는 일도 있었습니다.

특히 이벤트 전투가 시작되기 직전에 컷 씬이 진행중일 때는 파티 멤버끼리 맞춰서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전투 담당으로서도 세심해야 했죠.


카토

그런 힘들었던 일 중에서도 제일 힘들었던 게 개발 작업 도중에 스토리를 분할시켜야 하는 상황이 온 건데요(쓴웃음).


-꽤 많이 알려진 에피소드네요. 파판11의 초기 구상은 지라트의 환영까지의 스토리고, 서비스 시작 시점에서 거기까지 업데이트할 예정이었다고.


카토

개발 도중에 타나카 씨가 「정식 서비스 시작할 때 지금까지의 스토리를 전부 업데이트하기엔 에리어랑 몬스터 등의 개발 작업이 전혀 안 맞아」라고 했어요.

그래서 「어떻게든 스토리를 단축해」라고 했는데, 그렇게 쉽게 되겠냐고요(쓴웃음).

고민한 끝에 어쩔 수 없이 즈바르 성의 "어둠의 왕"을 일단 최종 보스라는 형태로, 중간에 억지로 미션을 끝낸 거죠.


-당시에 플레이한 저희들 중에선 억지로 끝났다고 느낀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말이죠. 오히려 어둠의 왕이 최종 보스로 불릴 만한 품격이 있고, 그 전투가 상당히 치열했던 게 떠오릅니다.


카토

어쨌든 그 다음이 제일 큰 문제였죠.

확장 데이터 디스크가 발매되고 노그로 가서 지라트의 환영 미션을 시작하면, 사실 즈바르 성에서 있었던 사건은 백일몽처럼 기억이 들어온 걸 깨닫게 되니까요.

당시에는 그런 억지 전개에 플레이어의 비난을 받을까 식은땀을 흘렸습니다.


-확실히 미션 5-2에서는 어둠의 왕과의 싸움이 끝나면 갑자기 알현실에서 탈출하는 씬으로 전환되죠. 하지만 「이건 뭔가 있다」라는 "냄새"가 느껴졌어요.


마츠이

꽤 아크로바틱한 전개였지만 지라트의 환영은 파판11의 첫 확장 데이터 디스크라서 축제인 상태였고, 그 스토리의 막간이라는 걸로 용납해 준 분들이 많았던 것 같네요.

그리고 파판11 출시 시점에서 지라트의 환영까지를 포함해, 제가 담당한 전투 팀도 상당히 빡빡했습니다.

타나카 씨가 분할을 판단한 것이 크게 도움이 됐죠.


-말하자면 "지라트 에리어"의 필드, 던전, 그리고 몬스터도 처음부터 포함되어 있었다는 거네요.


카토

전 스토리만 봤지만 다른 팀은 전체적으로 빡빡했던 것 같네요.

제 팀에선 가능한 한 빠른 단계부터 젊은 애들한테 맡겨서 분업하는 체제를 갖췄는데, 마츠이 씨의 전투 팀은 당시에 어떤 느낌이었죠?


마츠이

전투 시스템이라는 건 대체로 만들면 무결성에 문제가 생기거든요.

그래서 절 포함한 세 명이라는 적은 인원수의 체제로 진행했는데, 지라트의 환영이 발매될 때까지는 항상 일이 가득한 상태였네요.


-덧붙여서 카토 씨는 발매 후의 파판11을 개인 플레이로 즐겼나요?


카토 

네.

종족은 흄, 메인 직업은 전사로 플레이 했네요.

제가 쓴 시나리오지만 "지라트 미션"의 전개에 감동했습니다.

하지만 그 때의 미션은 난이도가 높아서 반 쯤은 울면서 플레이했죠(쓴웃음).


마츠이

지라트의 환영 당시의 파판11은 컨텐츠가 너무 부족해서 "어떻게 플레이어들이 질리지 않고 오래 플레이할 수 있을까"에 무게를 뒀고, 그러다 보니 밸런스를 맞추지 못했습니다.

카토 씨의 말대로 당시의 미션은 난이도가 너무 높았는데, 저희 개발 측은 상황을 알면서도...죄송할 뿐입니다.


-파판11의 초기 스토리는 무지, 교만, 겁약, 질투, 증오같이 각 종족이 가진 "업"이 짙게 반영됐죠. 이건 뭔가 특별한 의도가 담긴 걸까요.


카토

역시 20년이나 지난 일이라 잘 안 떠오르는데......

파판11의 각 종족은 원초의 세계에 존재했다는 완전한 "시드 크리스탈"이 5개로 나뉘어 탄생했죠.

즉, 원래는 하나의 완성된 존재가 나뉜 것으로, 각 종족은 완전체가 되지 못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다시 통일되는 세계가 되살아나는 이야기를 크리스탈을 통해 그리고 싶었던 기억이 나네요.


-파판11에 등장하는 "돌의 기억"이라는 노래가 떠오르네요. "모든 시초는 「돌」이었다, 라고".


마츠이

"돌의 기억"이라고 하면 파판11의 오프닝곡인 『Memoro de la Ŝtono(돌의 기억)』의 가사도 카토 씨가 썼죠.

언어를 에스페란토로 한 점도 인상적입니다.


카토

제가 작사를 했을 때는 처음에 일본어로 쓰고 그걸 필요에 따라 여러 언어로 번역했어요.

제노기아스 때는 영어, 크로노 크로스 때는 일본어였고 파판11에서는 어떻게 해야 고민했죠.

당초에는 라틴어로 하려 했는데 음악 담당인 우에마츠 씨(우에마츠 노부오 씨. 파판 시리즈 전반에서 악곡을 담당한 컴포저)가 「에스페란토는 어때?」라고 조언을 했어요.


마츠이

저희 세대에서 에스페란토는 꽤 메이저하고, 「전 세계의 사람들이 이 언어를 쓰면 전쟁도 안 일어나지 않을까」라는 로망같은 게 담겨 있죠.

그런 이미지도 있어서 정말 좋은 곡입니다.


●당시 카토 씨의 이미지 스케치





최종화인 파트4에서는 카토 씨가 파판11 개발을 회상하고 다시 느낀 점과 20년의 시간에 걸쳐 이어진 MMORPG의 무게에 대해 담론한다.


추가 시나리오 3부작을 받아들인 이유


-카토 씨는 지라트의 환영이 발매되기 전인 2002년에 개발 팀을 나갔는데, 그 7년 후인 2009년에 추가 시나리오 3부작 돌이 보는 꿈, 전율! 모그리 축제의 밤, 샨토토 제국의 음모의 스토리를 담당했죠. 그 때는 어떤 일이 있었나요?


카토

타나카 씨의 의뢰였네요.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프로젝트 그만둔 지 6년이나 지났으니 이제 아무것도 안 쓸 겁니다」 하고 부정적으로 나왔는데, 타나카 씨가 「파판11은 이제 끝나가니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써 보자」라고 해서......

그래서 개발 팀에서 나갔다고 해도 파판11에는 감사하고 있었으니 마지막으로 은혜를 갚을 생각으로 받아들였죠.


마츠이

어!? 그 때 타나카 씨가 파판11을 끝내려고 했다고.....?


카토

전 그렇게 들었는데요?

아무튼 「지금까지의 파판11의 총결산 같은 스토리면 됩니까?」라고 제가 물으니 타나카 씨는 「아니, 오리지널 에리어만으로 즐길 수 있는 가벼운 걸로」라고 해서, 종잡을 수 없었죠.

더 물어보니 「지금까지 플레이 해 온 플레이어에 대한 팬 서비스로, 최근에 시작한 사람들도 가볍게 플레이할 수 있는 세 가지 단편 시나리오」라는 대답이 왔죠.

처음 스토리랑 전혀 다르지 않나요(웃음).


마츠이

그 말은 지금 처음 듣는데(웃음).


카토

그래서 제가 개발 당시에 구상한 "파판11의 끝맺음"을 재해석한 돌이 보는 꿈과, 호러 테이스트인 전율! 모그리 축제으 밤, 그리고 모두가 좋아하는 타르타르의 웃음이 담긴 이야기로 샨토토 제국의 음모, 이 세 가지 시나리오를 쓰고 그 다음은 사토 씨와 사이토 씨(사이토 요시츠구 씨. 파판11 플래너)에게 전달했습니다.

그리고 사이토 씨는 파판11 개발 초기에는 신입 플래너였는데 이 추가 시나리오를 쓸 때는 프로젝트를 주도하는 존재가 돼서, 멋지게 마무리를 해 줬습니다.

「성장했구나, 사이토!」라면서 기뻐했죠.



20년의 역사를 쌓은 MMORPG


-그런 파판11이지만 올해(2022년)에 드디어 20주년을 맞이하네요. 카토 씨의 솔직한 감상은 어떤가요?


카토

전 지라트의 환영 이후로 추가 시나리오 이외에는 파판11을 하지 않았고, 애초에 평소에 게임 관련 동향도 그다지 안 찾아 봤거든요.

그래서 이번 대담의 성사 자체도 놀랍고, 20년이라는 시간도 다시금 느껴지고요.

파판11 개발 중 마츠이 씨의 부인께서 막 태어난 아이를 회사에 대리고 온 게 떠오르네요.

그 때의 아이가 벌써 스무 살이나 된 거죠.


마츠이

마침 올해에 성인이 됩니다(웃음).


카토

그런데 지금의 파판11은 어떤 식으로 서비스가 이어지고 있나요?


마츠이

역시 개발 팀이 축소됐지만 지금까지 만든 리소스가 방대하니 그것들을 활용해 잘 하고 있다는 느낌이네요.

또 현재의 플레이어는 세계 구석까지 숙지하고 있으니 그걸 전제로 시나리오를 만들 수 있는 건 다른 RPG에는 없는 강점이죠.

스토리에 관해서는 윈더스 미션과 프로마시아의 주박을 담당한 사토가 중심이 돼서 새 시나리오인 식세의 엠브리오를 전개하고 있어요.


카토

스토리도 현재 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군. 굉장해!


마츠이

MMORPG는 한때 "프리 투 플레이(F2P) " 즉 "기본적으로 플레이는 무료+아이템은 과금"의 파도가 밀려왔었는데, 그 중 파판11이 정액제(월별 과금) 비즈니스 모델을 관철한 것도 좋았죠.

만약 F2P였다면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일으키는 재화를 계속 생각해야 했을 거고, 그건 파판11과 상성이 안 맞았을 거에요.


-아이템 과금이 도입된 파판11은 그다지 보고 싶지 않군요.


마츠이

그리고 현재의 파판11의 스피드감이 좋은 분도 있으니까요.

다른 최신 게임도 같이 플레이하면서 "시간이 느긋하게 흐르는 MMORPG도 좋겠는데" 라고 생각해서 지금 타이밍에 파판11로 복귀하는 분들도 많아요.


카토

그럼 지금 새로 파판11을 시작한다는 선택지도 있을까요?


마츠이

베이스가 되는 프로그램이 20년 전이니 아무래도 와닿지 않는 부분이 많이 있겠지만, 관점을 바꾸면 20년을 쌓아 올린 겁니다.

그걸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분이라면 새로 시작해도 즐거울 테지요.

파판11의 게임 밸런스도 20년 전과는 달라서 지금은 레벨 업도 쉽고, 페이스라는 NPC가 같이 싸워주고, 솔로 플레이 범위도 넓어요.


-당시에 완수하지 못 한 미션을 혼자서 진행할 수 있다는 거네요.


마츠이

하지만 MMORPG로서의 형태가 20년 전부터 크게 변한 건 사실이죠.

그래서 "현재의 파판11의 매력"을 제대로 어필하는 것이 최근의 과제입니다.



지금도 바나 디르를 상징하는 "돌의 기억"


-지금까지의 파판11의 이벤트와 미디어 취재 등에서는 카토 씨가 나오는 경우가 거의 없었죠. 주요 스탭인데도 좀 의외였는데......


카토

지금이니까 할 수 있는 이야기인데, 저는 파판11의 스토리 원안을 생각했을 때부터 곧 스퀘어를 퇴사하기로 정했거든요.

아까 말한 세 나라의 제작을 각 플래너에게 맡긴 것도 그렇고, 이건 앞날을 생각해 "내가 없어도 지체 없이 진행되는 체제를 갖추고 싶다"라는 이유도 있었습니다.


-그렇군요. 그런 이유가 있었다니.


카토

각 플래너는 확실한 실력을 갖고 있고, 실제로 완성한 걸 보고 이러면 안심하고 맡길 수 있겠다 생각했죠.

그래도 갑자기 팀을 떠나는 저를 원망하게 된다면 어쩔 수 없죠.


마츠이

그렇게 카토 씨가 파판11의 미래를 맡긴 한 명인 사토는 지금 식세의 엠브리오의 스토리를 담당했습니다.

이미 개발 팀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멤버니까, 카토 씨의 마음은 결실을 맺었다고 봐요.


카토

사토 씨도 그렇고 키고시 씨와 카와모토 씨도 우수한 플래너였죠.

제가 제노기아스 개발 팀에 참가했을 때 그 둘이 신입으로 제 밑에 있었거든요.

처음에는 이벤트를 만들기는 켜녕 개발 툴을 다루지도 못 했는데, 점점 성장해서 든든한 동료가 됐네요.

돌이켜 보면 저는 부하 복 많이 받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파판11의 스토리를 만든다는 난제를 무사히 이겨낸 것 같네요.


-그러면 슬슬 시간도 다 됐으니 카토 씨에게 파판11이 어떤 작품인지, 다시 한 번 말해 주실 수 있을까요.


카토

이번 대담에 참가해서 다시 느낀 건데, 자랑스러운 마음이 한가득이네요.

일본에서 MMORPG의 전례가 거의 없는 와중, 엄청난 규모의 개발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그 한가운데에서 관여한 거란 말이죠.

또 저로서는 이전과는 다른 게임을 만드는 법을 공부할 수 있었고, 그 서비스가 20년이 지나서도 이어져 오고 있다는 게 감개무량합니다.

그리고 현재의 파판11을 총괄하는 마츠이 씨에게도 감사하고 있습니다.


마츠이

저로서는 20년도 전에 시작된 파판11의 서비스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는 건, 제일 처음 카토 씨가 스토리와 세계관을 제대로 만들어준 덕택이라 생각해요.

원래 파판 시리즈는 성인향으로 만들어졌다는 의식이 강한데, 그 중에서도 파판11은 한 층 더 스토리가 제대로 만들어져서 어른의 엔터테인먼트로서도 견딜 수 있도록 만들어졌죠.

적어도 저는 성인향이라고 생각하는데, 카토 씨도 분명 그렇겠죠?


카토 

그 말대로네요.

파판11에는 나라와 종족의 관계성 증, 진지한 부분도 많았지만 그런 요소를 쌓아올린 스토리도 「플레이어에게 전해질 거다」라고 믿고 만들었죠.

그게 맞았다는 것을 지금의 마츠이 씨의 말을 듣고 절실히 실감하고 있어요.


마츠이 

파판11이 등장했을 때의 일본에는 MMORPG 자체가 생소한 것이었는데, 점점 다른 회사도 따르기 시작하더니 "많은 MMORPG 중 하나" 로서 점점 묻힐 가능성도 있었어요.

그렇게 되지 않은 건 역시 "이야기"의 힘이 컸다고 생각하고요, 파판11은 이야기가 뿌리에 있어서 여기까지 온 거죠.


카토

마음이 움직이는 순간이 많으면 그만큼 플레이어의 기억에 남기 쉽죠.

전투도 재밌고 게임으로서도 즐거운 부분도 물론 있지만, 거기에 스토리로서의 감동이 더해지면 기억에 제일 남을 걸요.

그리고 스토리에는 "플레이어의 희노애락을 움직이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 의미에서는 게임만으로도, 이야기만으로도 채울 수 없어요.

"스스로 체험하고 제대로 이야기 속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더더욱 「아, 재밌었다. 즐거웠다.」 라고 느낄 수 있게 하는 점이 되겠죠.


마츠이

이게 바로 카토 씨의 크리에이터로서의 자세 그 자체군요.


카토

그리고 파판11 개발 때는 정말 많은 경험을 했어요.

그 타이밍에 관여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었어......


-다행이었다, 라는 과거형에 머물지 말고 다음엔 마츠이 씨한테 추가 시나리오 받아 주시죠(웃음).


카토

아니 이제 안 속아(웃음).


마츠이

카토 씨한테 부탁한다면 추가 시나리오가 아니라 전혀 새로운 파판11의 뭔가를 만들어 달라고 하고 싶네요(웃음).


-기대가 되네요. 정말로 마지막이지만 카토 씨의 근황도 들려 주세요.


카토

마침 작년 말부터 제가 지금 시나리오를 담당 중인 어나더 에덴과 크로노 크로스가 콜라보레이션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기쁜 일이고, 콜라보의 평가가 꽤 좋아요.

크로노 크로스의 플레이어 분이고 흥미가 있다면 꼭 특설 사이트를 확인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럼 대담을 마치며 파판11의 플레이어 분들께 메시지 부탁드립니다.


카토

제 안에서 파판11을 돌이켜 봤을 때, "돌의 기억"이라는 노래가 가슴 속에 퍼졌습니다.

그 가사에는 제가 바나 디르에서 만들고자 한 세계가 상징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 세계가 노래에도 있듯이 "짐승의 울부짖음에도 사라지지 않는" 존재로 남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바나 디르가 많은 분들께 사랑받고 있습니다.

이런 것을 실감할 수 있는 건 한 명의 크리에이터로서 정말 행복한 일입니다.

지금도 파판11을 플레이 해 주시는 모든 분들께 정말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마음껏 즐겨 주시길 바랍니다.




돌의 기억

전설은, 이렇게 시작된다.

모든 것의 시작은 「돌」이었다, 라고.


아주 먼 옛날,

크고 아름다운 살아있는 돌은

일곱 색의 빛으로 어둠을 몰아내고,


세계를 생명으로 채워,

위대한 신들을 낳았다.


빛에 감싸인 행복한 시대가 이어지고,

마침내 신들은 잠들었다......


세계의 이름은, 바나 디르.



아아, 하지만 언제부턴가

거대한 재앙이 가득 판다,

축복받은 바나 디르의 땅에.


몇 만 년의 세월에 거쳐

암흑을 몰아낸 고대의 봉인이 풀리고

끝없는 악몽들이 지금 깨어난다.


어둠으로 뒤덮힌 비극의 시대가 막을 올린다.

하지만 신들의 잠은 깨지 않는다......


세계의 이름은, 바나 디르.



지금, 죄 없는 피가 흐른다

바나 디르의 대지에

전 세계가 전율하는 재앙에, 절망에 삼켜진다


막을 방도가 없다, 어떤 운명에도

막을 수가 없다, 어떤 힘이 있어도


하지만 폭풍의 밤을 꿰뚫고 영광의 별이 비친다

짐승의 울부짖음에 맞서 노래의 울림이 솟구친다


빛나는 별, 울리는 노래 우리의 꿈과 기도여



그 별은 당신의 별, 그 노래는 당신의 노래.


그리고 어느 날 그것은,

우리들 모두의 꿈이 돼서,

기도가 되겠지..... 언젠가, 분명.


오오, 빛나라, 별아! 울려라, 노래야!


영원을 넘어 뻗은 손과 손은

이제 놓치지 않을 것이다

이제 풀리지 않을 것이다



전설은, 이렇게 끝난다.

모든 것의 시작은 돌이었다, 라고.


아주 먼 옛날, 여신 아르타나는,

신의 죽음을 거부하고 크리스탈의 생명의 빛을

신에게 선사했다.


크리스탈은 산산조각나

신은 무수한 「인간」으로서 생을 이어간다.


세계의 중심에서 빛은 사라지고,

신의 낙원은 인간의 세계로 모습을 바꾼다.


세계의 이름은, 바나 디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