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옛날 옛적에



며칠이나 계속되던 가랑비는 날이 어두워지기 전에 멈췄다.

말발굽이 젖은 흙과 무성한 이끼 위를 밟으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무성한 너도밤나무가 하늘을 가리고, 이따금 꿩과 산비둘기의 소리가 산맥을 타고 들려오는 이 곳의 이름은——
빵뽕 숲이였다.

* 포헤 드 빵뽕, 프랑스의 숲

이 곳에 도착했다는 것은, 이 여정도 드디어 막바지에 다다랐다는 것을 의미했다.


가늘롱
"모두 정지, 오늘은 이 곳에 주둔한다."

"규정상 오늘은 금식일이 아니다. 이전에 기사 롤랑이 잡은 그 사슴을 꺼내서 구워 먹을 수 있다."


사방에서 환호의 소리가 울려퍼졌지만, 한 곳에서는 어두운 정적만이 흐르고 있었다.

그는 행렬의 리더이자, 샤를마뉴 왕의 가장 큰 신임을 받는 수호기사, 그리고 브르타뉴 요새의 사령관이 될 기사 롤랑이였다.


가늘롱
"롤랑 각하, 내일 쯤에는 요새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만, 기습이 염려되신다면 밤에도 행군하여 도착 시간을 더욱 앞당길 수도 있습니다."

"아시다시피, 브르타뉴의 사람들에게는 금은보화보다 당신의 머리가 더욱 소중합니다."


롤랑
"아니, 가늘롱, 한 가지 오해를 하고 있군."

"내 하나 묻지——"

"눈이 없는 사슴을 본 적이 있나?"


익숙한 물음에 가늘롱은 고개를 저었다.


롤랑
"노 아이디어라네."


가늘롱
"..."

"각하, 제발 그런 썰렁한 농담은 멈춰 주십시오."

"기억나십니까? 며칠 전에 사냥하셨던 그 사슴."

"흰 빵이랑 완두콩이나 먹고 싶은 게 아니시라면 여기 와서 같이 드시죠."





어둠이 내려앉았다.

기사들은 삼나무를 베어내 도끼로 장작을 패고 있었다.
습한 날씨에는 나무 심지의 목재가 건조하고 기름기가 많아 불을 피우기 딱 좋았다.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하자, 주황색 불빛이 비쳤다.
한 수습기사가 손질된 사슴고기를 내밀었다.


기사 I
"나는 고기를 구울 때는 소금에 절이고, 회향과 카다멈을 뿌려서 먹는다네. 구우면 풍미가 환상적이지."

"물론, 가장 좋은 향신료는 흑고추와 커민이지만..."

"그건 너무 사치스러우니 말일세... ...아마 샤를마뉴 폐하께서 우리의 공을 치하해 주실 때에나 그 향신료들의 맛을 느껴볼 수 있겠지."


기사들은 불더미 옆 땅에 비스듬하게 세워 고기 꼬치를 꽂았다.

두꺼운 고기 속의 육즙이 풍성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익어가며 맛있는 향을 풍겼다.

"꼬르륵——"


기사 I
"오 주여, 이 고기 육즙 좀 보게나."


기사 II
"마지막으로 고기를 먹은 게 언제였는 지도 기억이 안 나는군."


롤랑
"오늘 아침이지."


기사 II
"아침이요?"


롤랑
"주께서는 '이것은 나의 피다.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가 흘리는 계약의 피다.' 라고 하셨지."

"그게 성만찬은 아니였다만, 우리가 빵과 맛짜를 먹은 건 맞으니."


짧은 침묵이 흘렀다.


기사 II
"당신의 유머 감각은 정말 어렵군요, 혹시 지금 웃어야 하는 타이밍인 겁니까?"


롤랑
"미안하네."

"하지만 궁금한 점이 하나 있네."


기사 II
"말씀해보세요, 롤랑 각하."


롤랑
"오늘만 무려 열셋의 농담을 들려주었는데, 그 중에서 재미있는 농담이 적지는 않았지."

"어째서 아무도 웃지 않는 겐가?"


기사 I
"롤랑 각하, 제가 감히 맹세컨데, 그게 제가 요 며칠 간 들은 말 중 가장 재미있는 말이였습니다!"

"그, 방금의 맛짜에 대한 농담, 설명 좀 해주시겠습니까?"


롤랑
"음... 성만찬에서 맛짜는 고기를 의미하지. 아침에 이미 고기를 먹었다는 농담은—— 사소한 비유일 뿐이네."


기사 I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기사 II
"..."


가늘롱
"정말 돌아버리겠군, 이런 게 무슨 농담이야! 그만! 웃어!"

"거짓말은 천 번을 반복해도 진실이 될 수 없습니다, 각하의 농담은 하나도 웃기지 않다구요!"


롤랑
"가늘롱, 보아하니 그대는 '노력' 이라는 말을 잘 모르나 보군."

" '숙능생교' 라는 사자성어가 있듯, 뭐든지 하면 느는 법이라네."


가늘롱
"노력의 의미에 대해 얘기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일부터 멈춰주셨으면 합니다만..."

" '흐르는 물이 모여 강물이 만들어진다' 지, 기사들, 롤랑 각하께 평범한 농담을 들려줄 사람 아무나 없나?"


기사 II
"제가 하겠습니다!"


...

'기사 농담 축제'는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것은 8세기의 한 밤에, 한 무리의 기사들로 인해 탄생했다.

기사들의 출신도, 직급도 모두 제각각이였지만, 모두 훌륭한 심사위원들이었다.

결국 유머라는 건 배울 필요가 있는 것도 아니였고, 모두 자기만의 유머에 대한 기준이 있었으니까.

기사 하나의 농담이 끝났다.

또다른 기사 하나가 농담을 시작했다.

감귤과 송진이 섞인 냄새가 나던 때, 누군가 고기에 회향을 한 움큼 뿌렸다.


기사 I
"슬슬 먹어도 되겠어."


고기의 가장자리는 이미 갈색으로 구워져 기름이 주륵주륵 새어 나오고 있었다.

견습 기사는 신선한 야생 꿀을 고기에 발랐다.


기사 I
"내가 말할 차례인가."

"음, 로크포르 치즈 1 파운드가 있으면 좋겠는데..."


고기의 불향은 사람들을 편안하게 만든다. 그는 입안의 고기를 삼켜 목으로 넘겼다.


기사 I
"음, 가설과 분장과 관련한 농담 하나를 해 보지."

"비록 조금 실례되는 농담일 수 있겠지만, 이를 통해 영웅적 인물에 대한 나의 찬미를 표현하고 싶네."


곧이어 그는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큰 소리로 농담을 시작했다.


기사 I
"셀 수 없이 많은 공적을 올리면서도, 동료와 거리감 없이 잘 지내는 기사 하나가 있네."

"그건 바로 나, 브르타뉴로 향하는 기사, 롤랑이지!"

"오늘, 나는..."


"휙——"


롤랑
"...!"


——화살이였다.


기사 I
"아——"



목에 화살을 맞은 수습기사의 눈은 사슴 고기의 굳어가는 기름처럼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가늘롱
"...적습이다!"


롤랑
"기사들, 검을 들어라! 동료의 복수를 한다!"


...


02. 닉시관



• 기울임꼴로 작성된 부분은 스토리 중간에 포함된 내레이션을 의미함.

• 오역이 있을 수 있고, 지적을 받으면 판단 후 수정할 것임.
잘못된 지적을 받았다고 화 안내니까 제발 그냥 이거 아니다 싶으면 혹시 모르니까 지적 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