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어... 혹시 카카니아씨가 묻히신거 아니었나요?"
재단의 직원은 영문을 모르겠다는듯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럴리가... 제 거울은 깨져있긴 하지만. 분명 깨끗했단말이에요."
카카니아는 피부에 닭살이 슬금슬금 오르는것을 느꼈다.
분명 수감실 복도에 놓아져 있었을텐데.
이 거울에 손을 댈 수 있는 사람은 없었을텐데...?
카카니아는 깨진 거울에 묻혀진 립스틱 자국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 립스틱의 색상. 뭔가 익숙한데...'
그때, 카카니아의 머릿속에 한가지 기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그것은 빈의 작은 진료실에서 오페라 가수와 초록 앵무가 사담을 나누고 있었던 시절의 기억이었다.
* * *
"카카니아 선생님... 오늘 제 화장은 마음에 드시나요?"
"화장... 그러고 보니 입술 화장이 바뀐것같네요. 심경에 변화가 있으셨나요?"
"아뇨. 선생님. 그런건 아니지만..."
이졸데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시선을 돌렸다.
카카니아는 그런 이졸데의 입술을 가만히 들여다 보았다.
평소에는 살짝 창백한 분홍색 입술이었는데.
오늘은 전보다 조금 혈색이 도는 화장을 하고 온 듯 했다.
어째서일까. 어느새 직업병 때문인지 환자의 상태를 유추하는 버릇이 생긴 그녀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이졸데는 그야말로 아름다웠다.
진료를 시작하고 나서, 수많은 여인을 봐왔지만.
이토록 아름다운 사람은 없었다.
그녀라면, 화장따위 하지 않아도 누구보다 돋보이리라.
'혹시, 이졸데씨...연애라도 시작한 걸까.
예전에 봤던 서적에서 스치듯 봤던 문장이 떠올랐다.
여성의 생김새가 바뀔때는 사랑을 시작했을 때와 사랑이 끝났을때 뿐이다. 라는... 고리타분한 가설.
'...그럴리는 없겠지.'
이졸데씨는 타인과 연애를 할 만한 성격은 아니니까.
만약 그녀가 사랑을 시작했다 할 지라도, 그러한 고민은 내게 털어놓을 것이다.
그렇다면.. 음...
고민이 깊게 파고들려고 할 때, 가녀린 목소리가 의문을 표했다.
"선생님..? 혹시 색이 조금 안어울릴까요?"
"네? 아. 아니요! 그럴리가 없죠! 잘 어울려요! 이졸데씨는 언제나 그렇지만 항상 아름답다고 생각해요."
"후훗...다행이에요."
왜인지 잔뜩 긴장해있던 이졸데는 안심한듯 미소지었다.
그 음울한 눈매도 이런 순간만큼은 호선을 그린다.
카카니아는 이졸데의 미소가 차오른 입술을 바라봤다.
왜인지, 이 환자의 입술색깔만큼은 평생을 기억할 수 있을것만 같았다.
체리보단 밝고, 우유를 섞은 딸기음료보다는 어둡다.
감촉이 환상적일것만 같은 입술의 번들거림.
카카니아는 그 색상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
.
.
그녀의 심상은 빈의 진료실에서 재단의 복도로 돌아왔다.
"...똑같아."
"..네?"
"아무것도 아니에요. 용무는 더 없으시죠? 네. 그럼 제 숙소로 돌아가보겠습니다."
터벅터벅.
어느순간보다 더 빠른 발걸음은 그녀의 방 안에 도착하자 멎었다.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감정이 소용돌이쳤다.
거울 속에 담긴 애정을, 카카니아는 알고있었다.
영문 모를 방법으로 칠해진 이 입술자국에 담긴 것은.
어쩌면.
이유 모를 충동에 잠긴 카카니아는 무심코 깨진 거울에 입술을 가져다댔다.
쪽.
쪽.
쪽.
어느새 거울에 맺혀있던 립스틱 자국은 사라져있었다.
마치 환상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