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 새어 나오는 햇빛

02 | 찬미가

03 | 고해성사 후유증

04 | 주은의 술잔

05 | 움직이는 교수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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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역병 기념비 
 
어느 누구도 텅 비어버린 묘를 신경 쓰지 않았고, 그 고독한 기념비에도 관심을 두지 않았다.


수도원에는 모처럼 사람들로 북적였는데, 그들은 디케의 주변에 둘러 서서 황공함에 가득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디케 : 정숙하시오. 그대들은 어찌 된 연유로 이곳에 방문하였는지 고하시오. 
 
웅성이던 군중은 마침내 조용해졌고, 그들의 눈빛을 서로 맞물리어 저도 모르게 뒤로 움츠러들었다.
  
평민 1 : 나리… 우리는 당신께서 도시에서 오신 대영주시라고 들었습니다.
 
평민 2 : 정의의 사도이자, 위대한 주술사... 대마법사시여!
 
디케 : ……. 
 
평민 1 : 당신께선 저희를 보호해 주실 겁니다, 그렇죠?
 
디케 : 진정하시오ㅡㅡ! 내가 이곳에 있으니 그대들은 그 무엇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소.
 
평민 1 : 저희는 이승을 떠나지 않는 죽은 자의 망령을 보았습니다!
 
평민 2 : 그는 저희를 증오하고 있어요!
 
평민 1 : 그, 그는… 분명 저희를 죽이려고 들 겁니다. 그것은 아주 확실합니다!
 
디케 : 나는 이곳의 지난 수십 년간의 문헌들을 쭉 살 보았지만,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소.
 
평민 1 : 아닙니다, 어르신, 저희의 말을 믿어 주십시오. 
 
디케 : 여러분, 내게는 증거가 필요하오.
 
여러 쌍의 눈이 서로를 몇 번이고 바라보더니 부들부들 떨리는 목소리로 그 이름을 입 밖으로 내었다.
 
평민 1 : 그 유령은 바로 체세나 수도사입니다! 그는 주술사이자, 시체를 먹는 구울! 

설령 죽었다 하더라도 마을을 평화롭게 두고 떠나지는 않을 겁니다!
 
디케 : 내가 알기로는, 체세나는 그저 평범한 수도사일 뿐이오.
만약 그가 구울이라면, 살아있는 사람에게는 별 관심이 없을 테지.
 
평민 2 : 그렇지 않습니다, 나리……. 
 
그들은 있는 힘껏 머리를 흔들었다. 
 
평민 1 : 그는 우리와 갈등을 빚은 적이 있습니다!
 
디케 : 그러면, 이것은 그에게 하는 복수인가?
 
평민 2 : 나리, 오, 오해하시는 겁니다! 저희는 그와 갈등 빚은 적이 없습니다. 

다만, 그의 이상한 행동에 대하여 조사를 하고 있었을 뿐입니다….
 
평민 1 : 마, 맞습니다. 우리는 그저 그가 구울이라는 증거를 찾고 싶을 뿐입니다!
조금만 있으면 곧 찾게 될 테지만… 그는 이미 죽었습니다….
 
디케 : 문제 없소. 그대들은 내게 증거를 제시했으니.
 
군중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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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정뱅이는 숨을 헐떡이며 태번의 부서진 문을 열고 목청을 돋우어 안을 향해 소리쳤다.
 
조지 : 이봐, 다들 들었어?! "그거" 말이야!
 
평민 1 : 무슨 소리야, 슬금슬금 간 보지 말고 빨리 말해! 
 
조지 : 체세나가 다시 부활하고 말았대…!
 
평민 1 : 그 구울 말이야? 너 또 취했냐?
그는 높은 탑에서 떨어지는 바람에 온몸의 뼈는 다 부서진 상태로 피범벅이 됐는데….
이건 내가 두 눈으로 똑똑히 본 거라고.
 
조지 : 노형, 나도 내 눈으로 직접 본 거라고!
나는 그때 배가 무척 아파서 나무를 찾고 있었는데…, 맞아, 바로 교외의 그 죽은 숲에 있었어!
그리고 나는 시체를 끌고 어딘가로 향하는 그림자를 보았지. 삽까지 들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그 수도사와 꼭 닮아있었다고!
 
평민 2 : ……틀림없이 네가 취해서 헛것을 본 거겠지! 
 
조지 : 너희들도 내 상황을 알고 있듯이, 나는 맹세컨대, 술 한 방울도 입에 대지 않았어!
 
그는 자신의 텅 비어버린 바지 주머니를 흔들어 보였다. 
 
조지 : 정 믿지 못하겠다면, 너희들도 그의 무덤에 한 번 가봐. 글쎄 위의 십자가가 전부 사라져 있더라니까….
아니면 어떤 담이 큰 놈이 그 무덤을 파헤쳐 보겠어!
 
그러자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가 목을 움츠렸다.
 
평민 2 : ……. 
 
조지 : 그리고 이것을 보라고ㅡㅡ!
 
그는 의기양양하게 손에 들린 부적을 흔들었다. 
 
조지 : 이것을 얻기 위해 내가 많은 공을 들였는데, 주술사들은 모두 이것을 두려워 한다고….
 
평민 1 : 대체 어디서 그 물건을 얻은 거야-?!
 
조지 : 당연히 이곳을 조사하러 오신 법관님께 받았지, 이곳의 수도원엔 그런 게 없다고~
 
여기저기서 나는 발자국 소리가 갑자기 멀어졌다.
 
조지 : 이봐! 너희들 어딜 가는거야? 
 
평민 2 : 그 법관 나리가 수도원에 계신다고?
 
조지 : 틀림없이. 
 
민중 : 딱 기다리라고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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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 누구를 위하여 울어야 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