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편에서는 메인 스토리의 등장 인물이자 지능 속성 캐릭터 메스머 주니어,

그리고 그녀가 사용하는 치료법이자 게임의 컨텐츠 이름인 가상 몽유에 얽힌 내용들에 대해 알아보려 한다.




 프란츠 안톤 메스머 Franz Anton Mesmer 

메스머 주니어 Mesmer Jr. 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그녀의 이름은 선대에게 물려 받은 것이다.

메인 스토리 3챕터에서 콘스탄틴의 대사를 통해 메스머 가문과 재단이 오랜 협력 관계였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메스머라는 이름은 18세기 독일의 의사였던 프란츠 안톤 메스머에서 따온 것이 거의 확실하다.


프란츠 안톤 메스머 (1734-1815)


메스머 주니어 또한 독일 태생이다


메스머의 이름은 최면과 관련된 영단어에서 쉽게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mesmerism - 최면술, 최면 (상태)

mesmerize - 최면을 걸듯 마음을 사로잡다, 완전 넋을 빼놓다

mesmerist - 최면술사


그 밖에 대충 mesmer가 들어간 단어는 최면과 관련이 있다고 보면 된다.

이렇듯 이름 자체가 최면의 대명사가 됐을 정도로 메스머는 최면과 관계가 깊다.

하지만 실제로 메스머는 최면 치료의 가능성을 열었을 뿐, 그가 본격적으로 최면술사였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조(師祖)인 메스머보다 그의 제자와, 제자의 제자들이 훨씬 더 본격적으로 최면을 연구하고 최면술을 애용했다.

지금부터 어쩌다 프란츠 메스머가 최면의 대명사가 됐는지, 어떤 인물이었는지 알아보자.


아, 그리고 혹시나 최면이라고 해서



이런 이미지를 떠올리면 곤란하다. 앞으로 이 글에서 최면이라고 하면


이런 치료 목적의 최면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사이비, 사기꾼? // 과학적인 의사? 

당대에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이후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메스머는 상반된 평가를 받고 있다.

한쪽에서는 메스머가 비과학적인 이론을 들고 나와 사람들을 현혹시킨 돌팔이, 사기꾼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한쪽에서는 그를 사기꾼으로만 보는 건 시대상을 고려하지 않은 편협한 해석이며,

메스머는 그 나름대로 과학적 사고를 바탕으로 연구를 진행했다고 말한다.


근현대에 이르러 메스머에 대한 재평가가 이루어졌고, 그 결과 메스머는 심리 치료 분야의 선구자로 여겨지고 있지만

비판적인 평가 역시 여전히 존재한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나도 평가가 극명하게 갈리는 이유는 그의 연구가, 그의 치료법이

당시 기준으로 보나 현대의 기준으로 보나 허무맹랑하고 말도 안되는 사기극처럼 보이기 때문인 것 같다.

이 글을 준비하면서 메스머에 대해 호의적인 시각으로 쓴 책을 메인으로 참고했음에도 '아, 이건 좀...' 하는 부분들이 분명 있었다.

어떤 부분에서 그랬는지는 이어지는 그의 이론과 치료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의사가 되기까지 

9살부터 신학교에 다니며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란 메스머는 18세가 되어 천문학, 물리학, 수학 등을 탐욕스럽게 익혔다.

공부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대인 관계는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래도 그를 가르친 교수들은 그의 근면함과 똑똑함을 칭찬했다고.


대학을 다니며 진로를 고민하던 메스머는 변호사가 전망이 좋아 보여 법학을 공부했지만,

결국 의학에 뜻을 두고 유명한 의사들 밑에서 배우며 의사로써의 길을 걷게 된다.

그러는 중에도 천문학에 대한 관심을 잃지 않았던 메스머.

지구가 태양과 달 같은 다른 천체에 영향을 받고 있고, 인간은 지구에 속한 존재이니 인간도 천체의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했다.

예를 들면 달의 중력이 지구의 바다에 영향을 주어 조수간만의 차가 발생하는 것처럼 말이다.

메스머는 지구의 대기나 바다에 흐름이 있는 것처럼, 사람의 몸에도 눈에 보이지 않는 일종의 '유체 fluid' 가 있어서

이것 역시 다른 천체의 영향을 받을 것이고, '유체' 의 변화가 건강의 변화를 일으킨다는 가설을 세웠다.

황당한 소리처럼 들리지만 어쨌든 메스머는 이 내용으로 박사 논문을 발표했다.


이후 독일에서 오스트리아의 빈으로 건너간 메스머는 본격적으로 의사로 활동하기 시작한다.

그는 환자를 가리지 않았으며, 돈 없는 가난한 환자들은 무료로 치료해주기도 했다.

참 훌륭한 행동이었지만, 이런 선행 때문에 그는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렸다.


다행히 고위 관료의 미망인이라는 좋은 혼처가 들어왔고, 메스머는 10살 연상의 아내인

프라우 마리 안나 폰 보쉬 Frau Marie Anna von Bosch와 결혼을 하며 금전적인 문제를 단번에 해결했다.

아내와의 사이는 그다지 좋지 않았다. 그래도 대학생 시절 보여줬던 근면성실함은 어디 가지 않아서

결혼 생활에 충실했고 의붓 아들에게도 좋은 아버지가 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이 결혼 때문? 덕분?에 메스머는 그의 인생을 바꾸게 될 문제의 이론을 정립하게 된다.




 동물 자성 Animal Magnetism 

1774년. 메스머는 자석 치료로 명성을 쌓고 있던 막시밀리안 헬 신부를 알게 된다.

자석으로 병을 치료한다니, 그의 치료법을 두고 여러 논란이 있었지만,

과학과 의학을 공부했고 비슷한 주제로 논문까지 냈던 메스머의 눈에 헬 신부의 치료법은 비과학이 아니었다.

또한 막시밀리안 헬은 종교인인 동시에 천문학자이기도 했다.


막시밀리안 헬 Maximilian Hell (1720-1792) 사제 이름이 어떻게 지옥...


헬 신부는 자신의 자석 치료에 굉장한 자부심을 가졌다.

그래서 메스머가 이미 2세기 전에 파라켈수스가 비슷한 방법을 사용했다고 말해주자 대단히 분개했다.


16세기의 독일의 유명한 연금술사였던 파라켈수스는 메스머보다 앞서 별, 물체, 특히 자석이 인체에 영향을 미치는 무언가를

발산하고 있으며, 인간도 자석처럼 좋거나 나쁜 특성을 지닌 물질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

자석을 환부의 중심에 놓으면 질병의 원인이 되는 물질을 끌어낼 수 있다고 믿었다.


하여튼 이 일로 헬 신부는 메스머와 공동 연구를 진행했을 때 그를 보잘것없는 조수라고 깎아내렸다.

그러다 의료계에서 비과학적인 의료 행위를 하는 비전문가들을 더는 좌시하지 않겠다고 하자

은근슬쩍 태도를 바꾸어 자신은 의사 행세를 한 적 없고 그저 메스머의 지시에 따라 일하는 단순 기술자라고 주장했다.


그래도 메스머는 헬 신부의 언행을 탓하지 않고 협업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마침내 자석 치료를 직접 써볼 기회가 왔다.


아내의 친구(혹은 사촌)인 프란치스카는 심한 히스테리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녀는 열, 경련, 구토, 장염, 치통, 우울증, 환각, 기절, 일시적 실명, 호흡 곤란, 마비 등의 증상을 보였다.


여러 방법으로 프란치스카를 치료했지만 효과가 없자, 메스머는 마지막으로 헬 신부의 자석 치료법을 시도했다. 

메스머는 자석을 이용해 마치 달이 조석력으로 지구의 바다에 변화를 주는 것처럼

프란치스카의 몸에 흐르는 '유체'에 조류를 만들어내고자 했다. 

수 차례 자석 치료를 시행한 끝에, 메스머는 프란치스카를 치료했다.


이후에도 여러 차례 자석 치료를 시도하며 그는 자석에 만족하지 않고 여러 임상을 통해

건강한 자신의 기운이 담긴 '유체'가 병약한 환자에게 전달되어 치료된다고 생각하게 됐고, 

나아가 자신이 만지는 온갖 물건들이 자석처럼 자성을 띄며 환자에게 영향을 준다고 생각했다.


메스머는 자신이 인간 자화기가 됐다고 믿은 것 같다


메스머는 스스로가 자성을 띄고 있다고 믿자 굳이 치료에 자석을 고집하지 않게 됐다. 

대신 환자에게 자성을 띄게 만든 물을 마시게 했고, 자성이 깃든 접시에 음식을 담아 먹게 했고, 

환자가 입는 옷과 환자가 읽는 책까지 자성을 띄게 만들었다. 

현대의 기준으로 보면 이런 일련의 사고 과정과 행동들은 사이비 종교를 떠올리게 만들 것이다.

당시의 사람들 역시 메스머의 이런 미신적인 치료법을 보며 그를 사기꾼 취급하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메스머의 이런 만물 자화(magnetization, 磁化)가 항상 효과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메스머는 경험을 통해 환자가 자신의 치료법을 신뢰하지 못하고 협조해주지 않으면 

아무리 자신의 손으로 '유체'를 전달해봤자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즉, 메스머는 환자와의 관계를 어떻게 맺느냐가 치료에 굉장히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했고,

이는 현대 심리학에서 말하는 상담사 혹은 의사와 환자와의 상호신뢰관계를 뜻하는 프랑스어 라뽀 (rapport)와

맞닿아 있는 결론이라는 점이 의미가 있다. 라뽀의 유용성이 인정받고 정신 치료의 장이 열리는 것이

한 세기 뒤의 일이라는 걸 생각하면 메스머는 이 분야의 선구자라고 볼 수 있다.


메스머는 이때부터 자신의 이론을 공식화 해서 처음으로 동물 자성 Animal Magnetism 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된다.


사람이나 물건을 자화시켜 치료한다는 건 언뜻 보면 이상하기는 하다.

그러나 당시의 몇 가지 과학적 사건들을 보면 메스머가 아주 비과학적인 헛소리를 하는 건 아니었다.


1729년. 스티븐 그레이 Stephen Grey (1666-1736)는 정전기 유도 실험을 했고, 이를 통해 전기의 전도성을 증명했다.

일명 플라잉 보이 Flying boy 실험은 그림에서 보여지듯 소년을 실크로 된 줄에 매달아 공중에 띄운 후, 

가장 오른쪽에 있는 장치로 정전기를 일으킨 후에 소년의 발을 가져다 댄다.

그리고 왼쪽에 있는 소녀와 손을 닿게 하면, 장치에서 발생한 전기가 소년과 소녀를 타고 흘러가 

가장 끝에 있는 그릇에 담긴 종이 조각들을 끌어당겨 공중에 띄우는 것이다.


1745년. 일명 라이덴 병 Leyden jar 의 개발로 정전기를 축적할 수 있게 됐다. 이로써 전자기학의 기초적인 발견이 시작됐다.


1750년. 존 캔턴 John Canton이 인공적으로 자석을 만드는 방법을 발견하면서 자석을 쉽게 구할 수 있게 됐다.


이와 같은 사례들에 비추어봤을 때, 메스머도 자신의 '유체'가 환자에게 전달될 수 있다고 생각할만 했고

자석도 인공적으로 만들 수 있듯 자신도 자성을 띄고 있고 다른 물체를 자화시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을 수 있었을 것이다.




 올라가는 명성만큼 많아지는 적 

환자와의 관계성에 주목한 메스머는 진료소의 환경을 바꾼다.

그는 빛이 환자의 집중을 방해한다는 것을 알고는 실내를 되도록 어둡게 했다.

그리고 환자와 대화할 때는 차분한 어조로 말했고, 환자의 안정을 도울 수 있는 조용한 음악을 들려주기도 했다.


그의 치료 방법이 사이비 종교에서 하는 수법과 비슷해 보이긴 했지만, 그는 분명히 사기꾼들과는 달랐다.

그는 자신이 모든 질병을 치료할 수는 없으며 신경 질환으로 고통 받는 사람만 도울 수 있다고 솔직하게 선언했다.

또 자성으로 치료가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면 다른 동료 의사들처럼 보통의 약을 처방하길 주저하지 않았다.


자성 치료의 과정은 생각보다 괴로울 때가 많았다. 메스머가 자석이나 자화된 물건, 혹은 이미 자성을 띄고 있다고 생각한

자신의 손을 가져다 대면 어째선지 환자들이 경련을 일으키거나 고통을 느끼며 괴로워하는 것이었다.

이런 모습은 메인 스토리 챕터3의 오솔길 "오픈 샌드위치" 에서도 묘사되고 있다.

잘 읽어야 한다. 쇠몽둥이로 때려서 기절시키는게 아니다. 쇠사슬로 묶어서 통증을 느끼게 하는 것도 아니다.


메스머는 새로운 치료 기구도 만들었다. 일명 메스머의 나무통이라 불리는 것이다.

이 나무통 바닥에는 메스머가 자화시킨 유리가루나 철가루를 뿌려 놓는다. 그리고 자화된 물을 채운다. 

마지막으로 쇠 막대를 세우고 뚜껑을 덮으면 준비는 끝이다. 환자들은 쇠막대를 쥐어 자신의 몸을 자화시킨다.

이 기구의 발명으로 메스머는 동시에 여러 환자를 치료할 수 있게 됐다.


처음보는 신기한 치료법, 병이 완치됐다는 입소문이 퍼져나가며 메스머의 진료소를 찾는 사람들이 점점 불어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유명세를 타고 있었지만, 메스머는 돈 많은 환자만 보기를 거부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무료로 진료하는 걸 이어나갔다.

메스머는 찾아오는 환자들이 아무리 많아도, 늦은 시간까지 지치지 않고 열정을 다해 치료를 해주었고 

이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감명을 주었다. 이런 모습도 "오픈 샌드위치" 에서 언급된다.


이런 진심어린 태도 때문에 메스머의 치료법이 과학적인지 비과학적인지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음에도 

환자들은 점점 그를 신앙의 대상처럼 여기기 시작했다.

또한 메스머의 동물 자성 이론에 관심을 보이며 그의 제자가 되려는 사람들도 계속해서 찾아왔다.


메스머가 유명해질수록 학계와 의료계에서는 그의 동물 자성 이론을 광기에 차있고 

사람들을 속이는 나쁜 것이라 생각하는 학자들도 늘어갔다.

메스머는 자신의 치료법은 결코 어떤 초자연적인 힘과 연관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주변 상황은 그를 난처하게 만들기만 했다. 그의 제자들은 메스머를 사이비 교주 대하듯 했고, 

환자들은 메스머를 기적의 의사로 대했으니 과학자와 의사들로 하여금 메스머에 대한 의구심을 풀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메스머를 찾는 환자가 많아질수록 다른 의사들을 찾는 환자는 줄어드는 것이 당연했다. 

더구나 메스머는 환자의 사례가 연구할만 하다고 생각하거나 환자가 가난하다면 매우 적은 비용을 청구하거나 

아예 돈을 받지 않았다. 그러니 환자들은 메스머에게 진료 받는 걸 더 선호할 수 밖에 없었다.

때문에 다른 의사들은 메스머가 엉터리 치료법을 사용하는 것도 모자라 싼 진료비로 환자들을 현혹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메스머에 대한 과학계, 의학계의 적대감은 커져만 갔다.


[다음 글로 가기]


오랜만에 글 쓰러 왔는데 내용이 너무 많아서 쳐낼 거 쳐내고 했는데도 분량이 많아서 한 번 끊고 가겠음...

최대한 빨리 이어지는 다음 글도 올리겠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