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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면 

메스머에 대한 반감, 적대감이 커져가던 와중에 이런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메스머에게 치료를 받는 환자가 자아를 잃고 오직 메스머의 의지만 남아 그의 지시만 따른다는 것이었다.

그 모습은 마치 몽유병 환자와 같아서, 환자들이 그렇게 변한 건 메스머가 악마의 힘을 빌려 마법을 부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는 메스머가 환자와 라뽀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환자가 최면 상태에 빠지며 

겉으론 눈을 감고 자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묻는 말에 대답하는 모습이 와전된 것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메스머가 아니꼬왔던 이들에겐 좋은 공격거리가 생긴 셈. 그들은 소문을 더욱 부풀리며 퍼트렸다.

이런 상황에 대한 메스머의 대응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그에겐 그들을 설득하는 것보다 환자가 더 중요했다.


한편 메스머는 환자의 최면 상태, 몽유병 환자와 같은 상태를 보며 수면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됐다.

그는 수면이 단순하게 휴식 중인 상태가 아니라 깨어있을 때처럼 여러가지 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추론했다.

지금이야 렘 수면이니 비렘 수면이니 하는 것들이 알려져 있지만 당시로썬 꽤나 통찰력 있는 추론이었다.


*이전 글에서부터 최면이라고 표현하긴 했지만 실제 최면 hypnosis 이라는 용어는 메스머 사후에 처음 쓰였다.

스위스의 최면술사 샤를 라퐁텐 Charles Lafontaine 으로부터 메스머의 동물 자성 이론을 배운 

영국의 외과의 제임스 브라이드 James Braid 가 처음 최면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메스머의 몰락 

지속되는 비난과 공격에 메스머는 더 이상 오스트리아에서 활동하는 것은 어렵겠다고 생각해 프랑스로 건너간다.

이미 프랑스에서도 메스머의 명성은 자자했기에 프랑스 대중은 온갖 수식어를 붙여주며 환영했다.


메스머는 프랑스의 학회에 동물 자성 이론을 발표할 기회를 얻지만, 환자들을 치료하며 쌓은 임상 결과는 많이 있었어도 

정작 자신의 이론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명확하게 설명해내지는 못했고 이를 글로 표현하는 것에도 서툴렀다.

결국 오스트리아에서 그랬던 것처럼 프랑스에서도 메스머는 가짜, 돌팔이 취급을 받아야 했다.


그 당시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는 계몽주의유물론이 확산 중이었고, 이성과 합리가 종교를 밀어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사람들은 종교의 빈자리를 대신해 무언가 믿을 것을 찾고 있었다. 

그런 이들에게 자신에겐 초자연적인 힘이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손을 뻗쳤다.

그래서 메스머가 프랑스로 건너오기 이전부터 이미 프랑스에는 메스머의 치료법과 유사해보이는 사기꾼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메스머는 싸잡혀 욕을 먹게 된 것이다.


하지만 마냥 비관적인 상황은 아니었다. 프랑스에서 좀 배웠다하는 지식인들도 동물 자성 이론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샤를 니콜라 데슬론 Charles Nicolas Deslon은 훗날 메스머와 그의 이론의 열렬한 지지자가 되어 독자적인 진료소를 세우기도 한다.

변호사 베르가스 Bergasse 는 메스머가 프랑스 학회와의 갈등으로 잠시 프랑스를 떠나있는 사이 

그의 복귀 운동을 벌이며 아예 메스머의 이론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학회를 설립했다.

학회 설립 이후로 더 많은 메스머 지지자와 제자가 되길 희망하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그렇게 메스머의 권위와 위상은 점점 더 커져갔으나...


메스머가 일반에 공개한 자성 치료 모습은 오히려 메스머를 과학에서 멀리 떨어뜨리고 그를 컬트 집단의 수장처럼 보이게 했다.

자화된 환자들은 경련, 울부짖음, 딸꾹질, 통제할 수 없는 웃음 등의 증상을 보여 무척 기괴해 보였기 때문이다.


메스머의 진료소 환경도 문제가 됐다. 앞서 말했듯이 그의 진료소는 효율을 위해 빛이 잘 들지 않는 어두운 상태가 기본이었다. 

또 메스머의 제자들은 '유체' 전달과 자화를 이유로 환자와 신체적 접촉을 중요하게 여겼는데 이것이 남들이 보기엔 

다소 성적이고 문란해 보였다. 실제로 여자 환자들 중에는 그런 목적으로 메스머를 찾는 이들도 있었고,

아예 어두컴컴한 진료소 환경을 이용해 불건전한 만남을 목적으로 찾는 이들도 많았다.


자성 치료를 받는 장면을 묘사한 그림들을 보면 귀부인들의 몸에 손을 대거나 밀착하는 모습들이 나온다.



높아진 명성도 독이 되었다. 

메스머의 이론에 대해 회의적인 비평가들의 목소리는 메스머의 추종자들에 의해 수면 아래로 가라앉기 일쑤였다. 

자성 치료를 받아봤는데 별 효과를 못봤다는 의견들 역시 뭉개버리거나 무관심으로 대응했다. 


메스머를 찾아오는 이들이 전부 환자인 것도 아니었다. 그저 메스머의 명성에 호기심을 느껴서 아픈 곳도 없는데

자성 치료를 체험해보고 싶다고 오는 사람이 많았고, 이때문에 메스머의 치료법이 정말 효과가 있는지 아닌지 불분명해져버렸다.

결국 메스머와 그의 집단은 악마의 사술을 부리며 사람들을 현혹하는 불측한 무리라는 평이 늘어만 갔다.


메스머와 그의 제자들을 조롱하는 그림. 악마의 하수인들인 메스머의 제자들이 본 모습을 숨기지 못하고

허겁지겁 달아나고 있다. 가운데 상반신 노출을 하고 있는 여성은 그들의 치료 행위가 사실은 음란 행위였다는 뜻.

좌측에 있는 무리들의 선두에서 과학과 이성을 상징하는 두루마리를 펼치고 있는 건 벤저민 프랭클린이다. 



사회적으로 논란이 커지자 프랑스의 국왕, 루이 16세는 조사위원회를 꾸려 동물 자성에 대한 검증을 하라고 명령했다.

조사위원회는 파리 과학 아카데미 소속이자 근대화학의 아버지로 알려진 라부아지에를 시작으로 

파리 시장, 의사, 식물학자, 화학자등을 구성원으로 했으며 대표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 중 한 명이자 

발명가, 그리고 당시 주불 미국 대사였던 벤저민 프랭클린이 맡았다.


동물 자성을 검증하는 방법은 전적으로 물리학에 기초했다. 

물리학을 통해 메스머가 주장하는 동물 자성, 유체가 정말 존재하는지 증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위원회는 위에서 언급한 메스머의 제자 데슬론의 진료소에서 관찰을 이어나가며 메스머의 치료법에 대해 파악을 한 후,

프랭클린의 집에서 조사 위원들이 직접 환자들에게 치료법을 실시하는 것으로 검증을 하고자 했다.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위원회의 치료법은 환자들에게 효과를 보이지 않았다.

(후대의 해석으로는, 메스머의 치료에서 가장 중요했던 암시와 라뽀 형성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치료에 실패했다고 한다)


결국 위원회는 보고서를 통해 자성에 대한 믿음이 있는 사람은 치료 중 경련을 일으키는 반응을 보이지만, 

반대로 믿지 않는 사람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걸로 봐서 동물자성 혹은 "유체"는 그저 믿음, 상상력에 기인하는 것일 뿐

존재와 효과를 증명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이제 프랑스 과학계는 메스머의 이론을 완전히 불신하게 됐다. 

메스머는 조롱의 대상이 됐으며 파리 대학에서는 메스머의 연구와 조금이라도 연관된 사람은 제명을 시키기까지 했다.

이에 겁을 먹은 의사들은 다시는 환자를 자화시키지 않겠다 맹세하기도 했다.


이후 메스머는 프랑스 혁명 때 프랑스에서 쌓은 기반을 모두 잃고 

오스트리아, 스위스를 거쳐 고향 독일로 돌아와 노년까지 살다 죽는다.




 푸이세귀르 후작과 가상 몽유 

노년의 메스머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지내고 있었지만, 

그의 학파와 제자들은 여전히 열성적으로 동물 자성 이론에 대한 연구를 이어나갔다.


그중에는 프랑스의 귀족이자 군 장교였던 

아망-마리-자크 드 샤스트네 Amand-Marie-Jacques de Chastenet, 푸이세귀르 후작 Marquis of Puységur 이 있었다.


그도 베르가스가 설립했던 학회에 소속되어 형제들과 함께 메스머의 이론을 연구하던 사람이었다.

푸이세귀르 후작은 영지민들의 건강과 복지를 염려하고 있었고, 자신이 배운 것을 이용해 영지민들을 도울 방법을 고심했다.


그는 메스머의 진료소와는 다른 환경을 구축하는 것부터 시작했다. 

그의 영지민들은 파리 시민들과는 다르게 평범한 서민들, 소작농들이었기에 

오히려 메스머의 진료소처럼 어둡고 엄숙하고 부드러운 음악이 흐르는 환경은 오히려 불편했을 것이다. 

그래서 후작과 그의 형제들은 그들이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영지 중앙의 커다란 나무 밑에서 환자를 맞이했다.

그 나무는 예전부터 영지민들이 크고 작은 행사를 치루었기에 친근함을 느꼈다. 

그곳에서 환자들은 나무 주위에 원을 그리며 앉아 서로의 엄지 손가락을 만지고 자성 유체를 자유롭게 순환하게 했다.



푸이세귀르 후작은 가문 내 소작농인  빅토르 라스 Victor Race 를 치료하며 최면 상태에 대한 영감을 얻을 기회가 있었다.

폐에 염증이 있던 23세의 젊은 청년은 메스머에게 치료 받은 환자들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메스머의 환자들이 최면 상태에서 경련, 발작, 기절 등의 증상을 보인 것과 달리, 빅토르는 치료 시작 몇 분 후 평화롭게 잠이 들었다. 

그런데 분명 잠이 든 것처럼 보이던 빅토르는 의식이 있었다. 그는 자신의 영주가 묻는 말에 대답도 할 수 있었다.


후작은 직감적으로 빅토르에게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만들어야한다는 것을 깨달았고, 

그에게 파티에서 춤을 추는 등 기분 좋은 일들을 떠올리라고 주문했다. 

그러자 빅토르는 의자에 앉은 상태로 마치 곡에 맞춰 춤추고 노래하는 듯 행동하려 했다. 

후작은 이를 계속 반복하게 했고 빅토르는 땀을 많이 흘릴 정도가 됐다. 

다음 날 빅토르는 치료받은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 채 상태가 한결 나아졌다고 말했다.


빅토르의 치료 과정을 지켜본 다른 환자들은 지금껏 알려진 자기 치료법에서 필수 불가결한 것으로 여겨진 

경련이 없이 치료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이 믿음이 추후 이루어질 몽유 치료법에서 가장 중요한 요인이 됐다. 

잠든 것과 비슷한 상태에 환자들이 빠져있는 동안, 후작은 그들을 관찰하며 놀라운 결과를 얻었다. 

그는 환자들이 잠들어 있는 동안 만지지 않도록 해야 함을 알게 됐다. 이는 그동안 자화시키기 위해 환자들의 몸에 손을 

접촉해야 했던 메스머의 치료법(물론 메스머는 접촉이 없어도 치료할 수 있다 생각했지만)과는 반대되는 것이었다.

이는 현대의 최면 치료에서도 섣불리 환자를 건드려선 안되는 것과 동일하다.


이후 빅토르와 몇 차례 더 실험을 거듭한 후작은 자화된 빅토르를 통해 다른 환자도 자화시킬 수 있다는 걸 발견했다. 

그리고 최면 상태에서는 기존과는 다른 인격이 발현되며 스스로의 질병을 진단하고 

자신들에게 필요한 치료법을 말할 수도 있었고 심지어는 타인에게 손을 갖다 대는 것으로 

그 사람의 질병까지도 진단해내는 진기한 상황을 보게 됐다.


후작은 메스머의 치료법과 구분짓기 위해서 이를 "가상 몽유 Artificial Somnambulism" 라고 명명했다. 

환자를 인위적으로 몽유병 환자와 같은 상태로 만들 수 있다는 의미를 담은 듯 하다.

Somnambulism은 라틴어의 '잠자다' 라는 뜻 somnus + '걷다' 라는 뜻 ambulō + ism 의 합성어다.




또한 몽유 상태에서 발현되는 다른 인격을 '대체 인격'이라 불렀는데, 

이 두 번째 인격은 훗날 지그문트 프로이트에 의해 '무의식' 이라는 용어로 묘사되었다.


*후작이 말한 Artifical Somnambulism 에서 Artificial은 '가상의' 라는 의미보단 

'인공적인' 이라는 의미에 더 가깝지만 게임에서 가상 몽유라 표현했기에 이를 따른다.




 최면과 암시의 발전 

메스머가 노년에 접어들면서부터는 그의 동물 자성 이론은 거의 그의 손을 떠나있는 상태였다.

학문적으로 손자, 증손자뻘 되는 제자들 중에는 메스머가 그토록 피하고 싶어했던 

초자연적이고, 미신적인 방향으로 이론을 끌고간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푸이세귀르 후작이 발견한 가상 몽유 상태에서의 신비한 능력을 이용해 눈을 가리고 카드를 맞추게 하는 쇼나 벌였다.


반면에 착실하게 메스머의 이론과 정신을 계승한 이들은 환자와의 라뽀 형성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달았고, 

가상 몽유 상태에서 환자에게 암시를 주는 것이 일상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발견했다.


파리아 신부, 알렉상드르 뒤마의 소설 몽테크리스토 백작에서 나오는 파리아 신부의 실제 모델이었던 그는 

메스머가 동물 자성의 핵심인 유체가 환자의 치료와 최면 상태를 불러일으킨다 생각한 것과는 달리, 

그것은 순전히 암시에 의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암시는 환자가 얼마나 의사의 치료법을 수용하느냐에 따라 

성공 여부가 갈린다고 봤다. 파리아 신부의 이런 견해는 다른 메스머주의자들에게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메스머의 초기 추종자 중 하나였던 알렉상드르 베르트랑은 파리아 신부의 가설을 근거로 많은 추론을 해나갔다. 

그는 환자의 '잠재 의식' 을 더 깊이 연구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몽유 상태에 대한 연구를 위해서는 

정상적인 상태의 사람에 대한 연구도 병행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야만 정확한 비교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1821년, 프랑스의 외과의사 조제프 레카미에가 처음으로 수술 환자에게 마취 수단으로 최면술을 사용했다. 

이는 클로로포름이 발견되고 마취제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도입되기 여러 해 전에 일어난 일이다.




 메스머 주니어 

메스머와 동물 자성 이론, 그의 이론이 어떻게 가상 몽유로 발전했는지 알아봤으니 

게임으로 돌아와 메스머 주니어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자.


3챕터의 오솔길 "오픈 샌드위치" 에는 메스머 주니어에 대한 이런 묘사가 나온다.


이 내용은 최면에 빠져 가상 몽유 상태에 들어가는 것과, '제대로' 환자를 최면에 빠트리고 암시를 거는 건 어려운데 

메스머 주니어는 그게 가능하다는 내용인 듯 하다.


메스머 주니어가 사용하는 가상 몽유 치료법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프란츠 메스머의 동물 자성 이론, 

그 이전에는 자석 치료가 있었음을 생각해보면 그녀가 자기장을 감지하는 능력이 있다 해도 이상하지 않다.

또 동물 자기 이론에 의하면 건강하지 않은 사람의 유체 흐름이 어긋나 있다고 했으니

자기장이 회전초처럼 엉망이었다는 표현도 실제 이론에 부합하는 묘사라고 볼 수 있다.



메스머 주니어가 손에 들고 있는 기계는 아마도 자기장을 측정할 수 있는 휴대용 기기인 걸로 추측된다.


메스머 주니어의 대사를 보면 그녀가 마도학자에 대한 혐오, 경멸 같은 감정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콘스탄틴 때문에 어린 나이부터 정신질환 환자를 치료해와서 자연스럽게 생긴 감정으로 볼 수 있지만, 

자신을 초자연적이고 비과학적인 사람으로 보는 시선을 거부하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사람으로 비춰지길 바랐던 

프란츠 메스머의 정신을 이어받아 비과학적이고 비이성적으로 보이는 마도학자를 태생적으로 싫어하는 것이라고 

해석해 볼 수도 있겠다.


마지막으로 푸이세귀르 후작이나 파리아 신부의 주장처럼 가상 몽유 치료법에서 환자와의 라뽀, 유대감과 친밀감 형성이 

치료 성공을 좌우한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Z의 이 발언은 문자 그대로의 의미 말고도 다른 의미로 해석해 볼 수 있겠다.

버틴의 입장에선 과거 사건에서 배신을 한 메스머 주니어와 라뽀 형성을 할 수가 없어서 

가상 몽유 치료법이 제 효과를 내지 못하는 것일지도...


그러니 버틴과 달리 그 당시의 전말을 알고 있는 Z가 보기에 메스머 주니어의 실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가상 몽유 치료법으론 버틴의 트라우마 치료가 불가능해 보인다는 의미 아닐까?


[참고자료 출처]


지금까지 썼던 정보글 중에서 이번이 자료 조사 시간도 가장 오래 걸렸고 번역기 돌리긴 했지만 300페이지 짜리 책을 다 본 것도 처음이었다. 전에는 참고 서적에서 필요한 부분만 발췌했는데 이번에는 프란츠 메스머의 일생을 알아야 뭐라도 적을 수 있겠다 싶었고, 읽다보니 이 양반 삶이 우여곡절도 많고 역사적 사건이나 여러 유명 인사들도 등장하니 나름 재미있어서 끝까지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내용을 통으로 옮기면 너무 글만 많고 노잼이 될 것 같아서 최대한 덜어내고 압축하려고 했는데 잘 안된 것 같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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