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크 오더 발진 당일-


타이거팩스 항구.


아크 9 썬더윙 호 바깥.


아크 9의 의학 장교로 승선할 예정인 미네르바는 자신의 조수 터바인과 함께 함선에 필요한 각종 의료 기구와 메드베이의 시설들을 알트 모드인 응급차 형태로 옮기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아카데미 전공을 살려 메딕으로서 면접에 통과한 것에 엄청난 성취감을 느꼈지만, 열악한 지원과 인력 부족에 기대와는 먼 괴리감과 스트레스를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최선을 다할 뿐이었다. 


"장비를 전부 우리가 옮겨야 하는 건 너무한거 아닙니까, 미네르바?" 터바인이 짐을 힘겹게 옮기며 물었다. 


"주어진 환경 속에서 최선을 다하는게 우리 메딕이 할 일이야." 미네르바가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녀의 양쪽에도 짐이 한가득 실린 상자들이 달려있었다. 


미네르바와 터바인이 짐을 들고 발진대로 올라 선 순간, 뒤에서 메크 여럿의 발소리가 급격히 커져왔다. 미네르바는 로봇 모드로 변신해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환자입니다 환자! 길을 비켜주세요!" 스카이퀘이크가 온 몸에 녹이 슨 드롭킥을 부축한 상태로 미네르바와 터바인 옆을 슈웅- 하고 달려 지나갔다. 드롭킥은 반쯤 기절해있었고 마치 옵틱이 4개는 되는 듯 모든 것이 겹쳐보이기 시작했다. 주변에서 하는 말들이 그에게는 괴성어로 들렸다. 섀터는 스카이퀘이크의 옆에서 드롭킥을 함께 부축하고 있었으며 드레드윙이 그 뒤를 따라가고 있었다.


"저, 저기. 제가 메딕입니다. 멈추세요!" 


미네르바가 미친듯이 질주하는 스카이퀘이크를 향해 소리쳤다. 스카이퀘이크는 몸이 얼어붙은 듯 그 자리에 멈췄다. 드레드윙과 섀터 또한 그 자리에서 뒤를 돌아보았다. 


"이것도 네 계획의 일부야?" 섀터가 스카이퀘이크와 드레드윙의 등을 툭툭 때리며 소리지르듯이 속삭였다. 엔지니어 형제는 당황한 듯 서로를 쳐다볼 뿐이었다. 드롭킥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신음하고 있었다. 미네르바가 그들에게 다가갔다. 


"세상에, 러스트잖아. 터바인! 이쪽으로 와 봐." 미네르바가 드롭킥의 상태를 보며 말했다. 멀리서 지켜보던 터바인은 상황을 파악하고는 재빨리 달려와 드롭킥의 몸을 대신 부축했다. 미네르바가 옵틱에 불을 켜 드롭킥의 옵틱을 보았다. 드롭킥의 옵틱은 초점이 없었으며 눈동자는 수축과 이완을 반복하고 있었다. 


스카이퀘이크와 드레드윙, 섀터는 발을 동동 구르며 드롭킥을 진찰하는 메딕 둘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진짜 메딕이 나타나버렸네." 스카이퀘이크가 머리를 긁적이며 속삭였다. 


"그러게. 발진하기 직전에 메드베이 들어가는게 목표였는-" 드레드윙이 조용히 말했다.


"이게 무슨 일이지?" 누군가의 뒷모습이 나타났다. 덩치가 스카이퀘이크와 드레드윙 형제의 1.5 배 정도 되는 아크 9의 조타수 하울러가 팔짱을 끼며 문 앞에 우뚝 섰다. 그는 통역가 카운트다운의 짐을 이제 막 옮겨다주고 자리에 돌아온 참이었다. 


"아, 안녕하십니까. 아크 9 기관실에서 엔지니어로 근무할 예정인 폴리헥스의 스카이퀘이크라고 합니다." 스카이퀘이크가 하울러의 시선을 가리며 그에게 악수를 건넸다. 


"의학 장교 미네르바, 맞나?" 하울러가 스카이퀘이크의 악수를 무시한 채 미네르바에게 다가가며 말했다. 스카이퀘이크와 드레드윙은 자신들을 무시하며 앞으로 걸어가는 하울러를 보며 그저 허공만 바라볼 뿐이었다. 그리곤 둘을 강렬하게 째려보는 섀터의 눈치를 보았다. 


"맞습니다. 당신이 조타수 하울러겠군요." 미네르바가 하울러의 거대한 덩치를 보며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설명이 좀 필요하겠는데." 하울러가 드롭킥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노사이트 감염자입니다. 상황이 좀 심각하네요. 선실 내 메드베이로 어서 옮겨야 해요." 터바인이 드롭킥의 진찰을 마치고는 그를 부축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깐." 하울러가 멈추라는 손짓을 하더니 팔에서 홀로그램 문서를 꺼내 이 자리에 있는 미네르바, 터바인, 스카이퀘이크, 드레드윙, 섀터, 그리고 드롭킥의 얼굴을 스캔했다. 그리고 드롭킥을 보며 말했다, "저 자는 선원이 아니야." 


"답답하네 정말, 내가 해결할거야.”  섀터가 분노에 찬 걸음걸이로 하울러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스카이퀘이크와 드레드윙이 그녀를 말리려 했지만 이미 늦었다. 섀터는 하울러를 올려다보며 입을 열었다, "지금 눈앞에서 메크가 쓰러져가는데 선원이고 아니고를 따질-" 


"쓰러져가는 정도가 아닙니다. 이대로면 죽어요." 미네르바가 섀터의 말을 잘라 말했다.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하울러는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으며 이는 스카이퀘이크와 드레드윙 형제도 마찬가지였다. 


"자유제국 법조에 따르면 3급 이상 질병에 걸린 메크는 어떠한 인근 메드베이든 즉각 이송이 원칙입니다. 이 상황도 예외는 아니에요. 터바인, 환자 이송해." 미네르바가 말을 이었고, 그녀가 손짓하자 터바인이 드롭킥을 업고 문 너머로 뛰어들어갔다. 나머지 메크들도 얼떨결에 미네르바를 따라 들어갔다.


하울러는 별다른 말을 못한채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 들어가는 메크들을 붙잡을 틈도 없이 다른 선원들이 승선을 승인받기 위해 탑승대 위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나도 말할 시간은 줘야 할 거 아니야!" 그가 억울하다는 듯 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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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사이클(2시간) 후.


아크 9 썬더윙 호 함교. 


선원들이 분주히 발진 준비에 힘쓰고 있었다. 위화감. 그리고 설렘. 서치라이트의 온 몸의 회로가 그의 스파크에게 복합적인 감정을 전달하고 있었다. 불과 1년도 채 되지 않은 아카데미 시절 훈련을 받을때 시뮬레이션에서밖에 앉아보지 못한 함장의 의자. 그리고 그를 따르는 선원과 간부들. 그의 발 아래에 있는 거대한 함선. 그것들에서 나오는 위화감은 이내 앞으로의 여정에서 그가 만날 수많은 미지의 존재들, 새롭게 피어날 관계와 사건 사고들에 대한 설렘으로 바뀌어갔다. 서치라이트는 의자에 털썩 앉아 활짝 웃었다. 


"모든 선원 탑승 완료했습니다. 함장님. 엔진 상태 양호하고, 통신도 안정합니다." 아트파이어가 창문 쪽 의자에서 서치라이트를 향해 고개를 돌려 말했다.


"항로 섹타-7-83-히페리온으로 좌표 고정, 워프 엔진 가동 준비한다." 하울러가 아트파이어 옆에 앉은 상태로 모니터를 조작하며 말했다.


"모든 준비 끝났어, 함장. 네 지시만 있으면 돼." 부함장 나이트라가 그에게 다가와 말했다. 


"좋아, 모두들. 시작하기 전에 간단하게 몇 마디 하고 가자고. 텔레트랜 X ! 모든 선실에 방송 연결해줘." 서치라이트가 외쳤다. 


나이트라가 옵틱을 굴리곤 혼잣말했다, "시작됐네, 시작됐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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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 9 전투부 선실.


"아, 아. 다들 안녕하신가? 난 이 함선의 함장, 비탈리스의 서치라이트라고 한다." 


선실 내에 서치라이트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전투 사령관 터모일이 선실에 들어오는 선원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었다. 


"내 병영에 들어온 것을 환영한다 제군들. 내 이름은 터모일. 난 내 팀이 약한 것은 봐줄 지언정, 강해지고자 하는 의지가 없는 자는 용서하지 못한다. 그 모습을 내게 증명해주었으면 한다." 


들어오면서도 서로의 몸을 밀치며 티격태격대는 신입 둘은 컵과 블랙잭이었다. 


"야, 내가 아까 말했잖아. 여기 맞다고!" 블랙잭이 컵에게 성질내며 넘어지듯이 선실로 들어왔다.


"너 때문에 한 바퀴 돌아온 거 아냐 이 무식한-" 컵도 짜증내며 그에게 대답했다. 


둘은 터모일의 거대한 몸집과 따가운 시선을 보더니 급격히 조용해졌다.


"반갑습니다. 메데리1)의 코그맨이라고 합니다." 앞의 둘과는 달리 정중한 말투로 인사를 건네며 입장하는 코그맨. 고풍스러운 은빛 외부 장갑을 두른 신사적인 메크였다. 


그의 뒤를 이어서 선실에 들어온 것은 천으로 꽁꽁 싸맨 거대한 검을 등에 메고 있는 블러전이었다. 그는 전투 부원들을 한번씩 쳐다보고는 코웃음을 치더니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자리에 가 앉았다. 컵은 그의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는지 그를 잠시 째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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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 9 기관실. 


"우리 함선은 노바 프라임의 확장 계획의 일부로서 트로니아 구역 행성정부 중 최초로 외우주의 비문명 지대를 탐험하는 임무를 맡게 된다."


"으아아 왜 발진 직전인데 냉각 장치가 먹통인 거야 이런 일은 있을 수가 없어!!" 


기관실장 더트백이 머리를 쥐어뜯으며 기관실 내부를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엔진 곳곳에서 뜨거운 증기가 뿜어져나왔다. 온갖 경고음이 그의 오디오 입력 장치를 때려박고 있었다. 


"엔진 온도 안정화. 정상 작동 상태로 돌아갑니다." 갑자기 경고음이 멈추고 차분한 안내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어, 뭐지?" 더트백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고맙다는 말은 됐습니다, 하하." 밖에서 들려오는 쾌활한 목소리.


기관실에 들어오는 목소리의 주인공, 스카이퀘이크와 드레드윙 형제. 둘은 드롭킥과 섀터를 메드베이에 데려다주고 오는 길에 딱 봐도 고장나보이는 냉각 장치를 고치고 온 참이었다.


"너희가 내 조수들이구나!!" 더트백이 활짝 웃으며 둘을 맞이했다.


"함께 선원으로 지낼 동료들 중에는 아는 사이도, 모르는 사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중요한가? 중요한건 우리 모두 이 앞날 모르는 여행에 '함께'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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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크 9 메드베이. 


"이 세상은 보이는 게 다가 아니야. 너희 스스로가 어떤 과거를 가졌든, 이 배에 탄 순간부터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아. 앞으로가 중요하지." 


CR 체임버2)에 누워있는 드롭킥. 미네르바가 투여한 치료제 덕에 그의 몸에 퍼진 녹이 점차 사라지고 있었다. 섀터가 그의 옆에서 팔짱을 끼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드롭킥이 눈을 뜨자 섀터가 그의 손을 덥썩 잡았다. 


"드롭킥, 괜찮아? 그 망할 괴짜 놈들 때문에 널 잃는 줄-" 섀터가 외쳤다.


"하하하하하. 걱정한거야? 넌 전투부 선실로 가야지 왜 여깄어. " 


드롭킥이 섀터를 보며 한참 웃었다. 힘겨운 숨소리가 섞여있었지만 드롭킥은 분명 섀터를 놀리듯이 웃었다. 


섀터는 기분 나쁜 듯 드롭킥의 어깨를 퍽 때렸다, "2 솔라 사이클 동안 코마 상태였던 게 그런 말이 나오냐?!" 


"살았잖아. 그럼 된 거지." 드롭킥이 섀터의 눈을 똑바로 마주치며 미소짓고 말했다. 섀터는 아무 말 없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드롭킥은 섀터의 손을 잡은 채로 창 밖을 가리켰다. 


아크 1부터 시작해 2,3,4,5... 양 옆에 배치된 함선들이 하나 하나 거대한 굉음과 진동을 자랑하며 사이버트론의 지표면에서 벗어나 대기권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두 메크는 고개를 기울여 함께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 모습을 멀리서 지켜보던 미네르바가 작은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저 위로 올라가네 우리." 섀터가 말했다. 



"다들 각자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것이라 믿는다.



...썬더윙에 탄 걸 축하한다." 



서치라이트의 방송이 끝나자 하울러가 조작을 멈추고 작동기를 손으로 꽉 쥐었다. 그리고 외쳤다, "카운트다운 실시!"


5...


4...


3...


2..


1..


"발진!" 



썬더윙 호의 표면이 빛나기 시작하더니 형태가 점점 길어지기 시작했다. 고무줄의 끝자락과도 같은 형태로 변한 함선은 점점 규칙적인 높은 톤의 소음을 내더니 찰나의 속도로 있던 자리에서 사라졌다. 



수천, 수만 개의 빛줄기에 둘러싸인채 썬더윙 호는 4차원의 공간을 넘어 외우주를 향해 도약했다. 



앞을 알 수 없고, 그렇기에 더욱 빛나는 여정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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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메데리 / Mederi] 사이버트론의 도시 중 하나로 의원을 가장 많이 배출한 곳이다. 이곳 출신의 메크는 고풍스러운 억양을 사용하며 신사적이며, 때로는 보수적이라는 인식이 깔려있다.


2) [CR 체임버 / CR Chamber] 나노 기술을 사용해서 사이버트로니안의 금속 신체를 회복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포드 형태의 치료 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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