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즈키록라 끝나고 사미록라 들어오니까 스포탭 안담



미즈키록라의 테마는 광기

 

얘만 미친 게 아님




광기에 대해서는 일찍이 프랑스의 저명한 심리학자 미셸 푸코 선생이 자세히 정리한 바 있음

미셸 푸코는 '광인'의 개념을 통해 광기에 접근함 


그리스-로마 시대 이전에는 광인이 배척의 대상이 아니라 신들린 자, 무당, 제사장 등으로 간주되었음


광기가 본격적으로 경멸과 배척의 대상이 된 건 그리스 철학과 이성 중심의 세계가 자리잡은 후임 

이런 배척은 현대적인 정신의학이 발전하기 전까지 차츰 심화됨 



이성 시대의 초기에는 광인들을 사회의 구석에 격리하는 걸로 끝났음

방에 가두고, 격리구역을 만들어 거기 몰아넣는 등


이후에는 광인들을 사회 바깥으로 내모는 방법이 개발됨 

배에 태워서 바다로 내보내는 거임 



그 배의 이름이 바로 바보들의 배, 스툴티페라 나비스


물론 스툴티페라 나비스는 네덜란드에서 시작된 창작물의 일종임

그러나 미셸 푸코에 따르면 저 시대에는 실제로 바보들을 '화물'로 취급하는, 어디에도 입항할 수 없는 선박에 대한 기록이 존재한다고 함 



주목해야 할 건 그 '광기'라는 게 순전히 사회적인 합의에 근거한다는 점임


단적인 예시로, 로마가 크리스트교를 공인하기 전까지는 그걸 믿는 놈들이 광인 취급을 받았음

그러나 500년쯤 지난 후대에는 그걸 믿지 않는 놈들이 광인 취급을 받게 됨 

정신이상이나 광기와는 하등 관련이 없는 나병(한센병) 환자들도 한때는 광인 취급을 받기도 했고




이걸 바탕으로 이제 명일방주의 이베리아와 에기르에 대해 생각해 보겠음


우인호 스토리에서 잘 드러나는데 이베리아는 아주 꽉 막힌 동네임

대표적인 예시가 브레오간 사건

얘네는 바닷속 에기르 사람들에 대해 무지막지한 거부감을 갖고 있음 

주된 이유는 에기르가 시테러랑 관련이 있다는 거




심리학에서 바다와 관련된 유명한 비유로는 프로이트의 빙산 모델이 있음 

인간의 자아는 빙산과 같아서, 의식은 그 중 물 위로 드러난 일부에 불과하며 거대한 무의식이 수면하에 잠겨 있다는 거 

초자아 Superego는 통제와 질서, 원초아 Id는 무질서와 광기를 관장함

인간의 자아 Ego는 그 둘을 조화시키는 역할을 하고 


프로이트의 심리분석학은 사실 과학이라기보단 철학적인 성격이 강하지만, 심리학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음은 부정할 수 없음


이베리아와 에기르, 시테러의 관계를 저 빙산에 빗대어 표현하자면

이베리아의 재판소를 비롯한 통치집단은 초자아, 에기르인들은 원초아가 가져오는 이로운 것, 시테러는 원초아의 해로운 면이라고 볼 수 있겠음 


재판소 측에서 에기르인은 죄다 고까워하는 것도 대충 이해할 수 있음

초자아는 원초아를 억제하는 게 역할이지, 달면 삼키고 쓰면 뱉는 역할이 아니기 때문


원초아에서 좋은 부분을 건져올리는 건 본디 자아가 해야 할 역할임

이베리아 공민들이 재판소 앞에서 다 쭈구리가 되는 건 초자아에 압도된 자아라고 볼 수 있겠음


이베리아는 그렇게 굴러가다가 고요함을 한 번 맞고 빌빌거리게 되었음

이샤믈라가 깨어난 if를 바탕으로 이베리아가 고요함 시즌2를 쳐맞는 전후가 미즈키 록라의 주요 시점인데 



다시 앞에서 언급했던 미셸 푸코와 광기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겠음

광기는 사회적인 산물임

광기를 규정하는 것도, 배척하는 것도 사회의 권력이기 때문


'사회의 권력'이라는 건 다시 말하면 '사회 주류의 권력'임

현실에서도 그레 그렇듯, 이베리아에서도 브리오간이 축출되는 동안 대부분의 인물은 그걸 주동하거나, 동조하거나, 방관했음


미즈키록라 시점에서, 그 '주류'의 기준은 뒤바뀜

수적으로도, 힘으로도 믈라와 친구들이 이베리아인들을 압도하게 됨 


이제 이베리아인들은 축출하는 쪽에서 축출당하는 쪽이 되어 사냥당하는 거임




광기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또 믈라와 시테러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시테러 군집은 개인이 말살된 사회를 의미함



위매니는 사회고, 시테러는 사회를 위한 부속품임

자의식도 사고도 없이 제 목숨조차도 사회를 위해 내어 바치는 부속품


인간 욕망의 대부분, 돈, 명예, 권력 같은 건 사회의 산물임

인간의 의식이 위매니의 본능에 정복되어 시테러가 된다는 건 이런 사회적 유인에 사로잡히는 개인을 의미함 

불완전한 시본이 되어 바다에 들어간다는 건 그 사회에서 한자리쯤 차지하기를 바란다는 건가

이쪽은 정확하지 않음 


다만 확실한 건 위매니가 벌이는 패악질에서 이샤믈라는 얼굴마담이긴 하지만 주동자는 아니라는 거임

믈라 또한 위매니의 도구임


그리고 미즈키록라에서 보스로 튀어나오는 믈라는 보카디와는 또 분명히 다름

이 부분은 확실히 해 둘 필요가 있음


보카디 시점의 믈라는 세상 다 말아먹어도 박사 좋아하는 건 못참는 바보병신임

노래를 부르는 것 또한 믈라가 되면서 갑자기 터득한 게 아니라 그냥 스카디가 좋아하고 잘하는 거임

스카디가 언더타이즈 시점에서 잠입하겠답시고 괜히 음유시인 옷을 차려입고 나온 게 아님 



믈라가 되어서 세상 다 개박살내고 뒤늦게 정신 돌아온 스카디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거 = 노래하기

이정도



그런 스카디한테서 노래를 빼앗아간 게 바로 위매니, 즉 사회임

사회는 어떤 강대한 개인, 혹은 구성요소도 결국에는 무너뜨릴 수 있음을 함의하는 부분




개인이 시테러로 변하는 과정에서 명일방주만의 맥락을 쏙 빼고 말하자면, 이건 개인이 사회화되는 과정임

혼자 사는 것보다는 같이 사는 게 낫고, 단순히 개인을 모아 놓은 것보다는 개인들이 조직한 사회가 더 효율적임

그런 이유로 개인은 사회에 편입됨

말린 시테러 텍스트에도 나오는 '생존에 대한 욕구' 때문에



물론 모든 개인이 사회에 달갑게 편입되는 건 아님

저마다의 목적이 있고, 때로는 꿍꿍이속도 있음

이걸 잘 드러내는 게 미즈키록라 추억투영, 특히 쏜즈 파트 



그러나 사회는 원한다면 개인의 계획이나 꿍꿍이속 따위는 손쉽게 망가뜨릴 수 있음

이건 특정한 사회만 가능한 게 아니고 모든 사회가 그럴 수 있는 힘은 가지고 있음


실제 사회에서 그런 사례가 드문 이유는 여러 의견이 대립하기 때문임

그러나 시테러처럼 군체의식 사회거나, 현실에서 한쪽 의견이 다른 쪽을 다 묵살할 수 있을 만큼 강하다면 일어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음


임계점을 넘은 사회는 그 이전으로 되돌아가기가 극히 어려움

바다에 강물 한 방울 떨어진다고 바다가 민물이 되는 게 아니듯, 사회가 극도로 동질적이면 거기 새로 들어오는 개인은 거기 동화되는 수밖에 없음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는 격언의 극단적 사례라고 할 수 있겠음

이게 사회가 내재하고 있는 광기임



시테러의 사례는 생존의 의미라는 것에 대해 질문을 던짐

자아도 생각도 없는 부속품으로 산다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그렇다고 알량한 자아 때문에 제멋대로 뻗대다가 이베리아처럼 개박살나면 또 그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해묘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미즈키한테 있음

시본의 일원으로서 그 사회의 힘을 활용할 수 있지만, 거기 잡아먹히지는 않은 인물


그 동력은, 단순하게도 스스로가 진정 원하는 것, 바라는 것을 제대로 알고 있는 것임

미즈키는 기사엔딩 후일담에서 인간 사회가 이미 다 아작나고 박사를 살려 봤자 시간의 문제일 뿐 무의미한 상황에 처함

또 믈라엔딩에서는 박사를 위해 스스로가 사라져야 할 상황에도 처하고

이즈믹엔딩에서는 '위험한 프로세스'에 손을 댐


그때마다 미즈키는 박사를 위한 선택을 했음

그게 미즈키가 바라던 것이고, 로도스 본함에 체류하는 것만으로도 의료부가 기겁을 하는 시본 미즈키가 인간으로 남을 수 있는 이유임

인간답다는 건 무언가를 바란다는 것



이즈믹 보스전 스테이지 이름이 '인간의 영광'인 데에는 이런 이유가 있다고 봄



사실 미즈키의 행동도 일반적인 '상식'과는 거리가 좀 있음

놈ㅋㅋ성애자의 이슈를 이야기하는 게 아니고, 이베리아 재판소 꼰대들이나 시테러와 마찬가지로 좀 맹목적이지 않은가 하는 느낌이 있다는 거지


이건 해묘가 유저에게 던지는 의견이라고 봄

개인은 사회에 매몰되거나 휩쓸리지 말고, 진정으로 자기가 원하는 걸 위해 굳세게 밀고 나가는 것이 미덕이다

그런 의견 아닐까



다음 달이나 5월쯤에는 사미록라와 '인지'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함 

그러려면 비트겐슈타인에 대해 공부해야 할 거 같아서 늦어질 수도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