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 및 오류 지적, 피드백 환영

오리지널 설정도 있을 수 있음.


모음집 링크


-----


※ 


승선 인원 여러분.

금일부로 생활부에 배속된 수지 글리터 씨가 내일부터 선내 미용사로서 근무하게 됩니다.

이발을 희망하는 인원은 수지 글리터 씨와 상의하여 스케쥴을 조정하시길 바랍니다. 


향후 미용실을 운용할 계획이며, 자세한 문의사항은 생활부나 박사님에게 부탁드립니다. 


아미야. 


※ 


"....박사? 나 찾았다고 하던데." 


밤 10시. 선내 곳곳에 붙여놓았다며 아미야가 나에게도 한 장 준 공지서를 읽던 차였다. 비서 오퍼레이터는 퇴근하고, 내일부터는 정식으로 이발사로서 일하게 된 수지 씨를 불렀더니 이제야 사무실에 온 것이다. 


로도스 아일랜드 정식 승선 수속을 하느라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아츠 제어 교육도 받아야 했으니 바빴겠지. 오늘 하루 종일 시달린 탓인지 엄청나게 피곤해 보였지만 그럼에도 늦게나마 와 주었으니 고마운 일이다. 


"어서 오세요, 수지 씨." 


"밖에 저 공지사항은 뭐야? 뭔데 저렇게 동네방네 알리는 건데? 미용실 이야기까지." 


"많이 알려야죠. 그래야 필요한 사람들이 수지 씨가 여기서 미용사가 되었다는 걸 알죠. 그래서 말인데요...." 


어제 오후부터 백방으로 알아본 끝에 오늘 점심때쯤 펭귄 로지스틱스를 통해 도착한 상자를 책상 서랍에서 꺼내 수지 씨에게 건넸다. 


"이게 뭐야?" 


"장사 밑천....이라고 할까요. 일단 도구가 있어야 일을 하실 거니까요." 


"뭘 이렇게까지...." 


상자를 열어 내용물을 확인한 수지 씨가 눈을 크게 떴다. 


"이렇게까지라고 말하실 거 없습니다. 일하시는 데 필요한 물건들이니 부담없이 받으시면 됩니다." 


"....아니, 그래도 이거...." 


불포족 생활부 직원에게 필요한 것들을 물어물어 준비한 것들이다.

일단은 가위가 두 종류에 빗이 네 종류, 그리고 머리를 고정시켜 들어올리는 용도의 집게가 다섯 개, 면도칼. 손거울, 이발천. 그리고 수건 몇 장. 


나름대로 로도스에서의 새출발 같은 걸 축하하고 응원하는 의미에서 준비해본 것들이다. 


"정말 부담 가지실 필요 없으십니다. 그 왜, 오퍼레이터 분들 중에서 로도스 제식 무기를 받아들고 나가는 분들이 있는 것처럼, 수지 씨에게 그 이발용 도구 세트를 찾아 드린 겁니다. 수지 씨도 공장에서 일해보셨다 하셨으니 작업도구 정도는 직장에서 받으셨을 거구요." 


물론 이발도구에 제식 같은 게 있을 리 없지만. 


"뭐 공짜일 리는 없고, 도구값의 몇 배는 받아낼 테니 열심히 해 주셨으면 합니다....이렇게 말하면 조금 마음이 편하시려나요." 


"당신 그런 말 잘 안 하지?" 


"굳이 할 필요가 없지 않겠습니까. 도구는 어쨌든 망가지지만 않으면 계속 쓸 수 있는 건데요." 


그 말에 수지 씨가 처음으로 잔잔하게 웃었다. 이리저리 뻗친 꼬리가 쭉 뻗어 세워지고, 상자를 닫으며 미소짓는 모습이 굉장히 낯설면서도, 웃으니까 꽤나 소박하고 마음이 놓이는 것 같다. 


"오늘 부른 이유는 그 상자 때문입니다. 그걸로 내일부터 일해주시면 됩니다. 미용실을 원하는 승무인원이 많거든요." 


"그래...? 다시 보니 당신도 이발할 때가 된 것 같네." 


"아....그러네요." 


수지 씨의 지적에 무심결에 머리를 만져보니 제법 길렀다. 두 달 전에 자르고선 바빠서 시간을 못 냈다 보니. 


"모처럼 이발도구도 받았으니, 연습 겸 잘라줄까?" 


선뜻 제안하는 수지 씨였다. 마침 머리 자르려면 또 한 달을 기다려야 된다는 말을 그 생활부 직원에게서 들었던 차고, 그냥 어디 정박하면 시내 이발소에 가서 자를까 싶었다. 다만 지금 시간이 문제다. 


"이 시간인데도요? 10시가 넘었습니다. 오늘 하루종일 바쁘셨어서 고단하실 텐데요." 


"이 정도는 괜찮아. 그리고 가위 안 든지 조금 지나서 잘 안 될 수도 있거든. 일 시작하기 전에 연습해 보면 좋겠지." 


하긴 이렇다하게 기량도 안 보고 사정상 덜컥 채용한 것에 가까우니 말이지. 그렇다고 일 첫날부터 머리 잘라주다 잘 안 되어서 고민하는 것도 보기 안 좋다. 이러나저러나 정식 미용사인 사람이고, 한 번 맡겨볼까. 일은 조금 남았지만. 


"그럼 염치불구하고 부탁드리겠습니다." 


수지 씨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필요한 도구를 찾아 포장을 뜯기 시작했다. 그 사이 나는 스툴을 끌고 사무실 한가운데로 왔다. 


"근데 이거, 잘못하면 나 큰일나는 거야?" 


"뭐, 잘못되면 싹 밀어주시면 되죠. 머리야 또 자랄거고, 딱히 어디 나가는 일이 많진 않으니까요. 마음 편히 해 주시면 됩니다." 


뭐야, 그게, 하면서 이발천이 몸에 둘러졌다. 빗으로 머리가 두어 번 쓸어내려진 그때. 


"빗자루랑 쓰레받이는 어디 있어? 머리 자르고 나면 치워야 될 건데." 


"어....괜찮을 겁니다. 아침에 출근하기 전에 생활부 직원이 청소해 주거든요. 퇴근할 참이었으니 그대로 두고 나가면 될 겁니다." 


"아니, 그렇다쳐도 그럼 안 되지. 머리 자른 거 치우는 것까지 미용사가 할 일이니까. 어디 있어? 안 알려주면 머리 안 잘라줄 거야." 


사무실에 비치해 둔 청소도구의 위치를 알려주고서야 그제야 머리를 빗으로 쓸어내리며 정돈하기 시작하는 수지 씨였다. 


"원하는 스타일 같은 거 있어?" 


"그냥 단정하게만 잘라주시면 됩니다. 머리 스타일을 잘 알고 있는 건 아니라서요." 


"그럼 다행이네. 나도 딱히 지금 와선 알고 있던 게 아니었으니까. 일하려면 이제 슬슬 알아야겠지만." 


수지 씨가 쓸어내려진 머리카락을 다시 들어올리며 빗으로 고르더니, 집게로 하나하나 집어 고정시킨다. 거울이 없는 이발이야 평소에도 그래왔으니 낯설지 않지만, 처음 맡기는 사람이다 보니 괜히 긴장되어서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이발은 아버지한테 배우신 건가요?" 


"배운 건 아니고 아버지가 동생이랑 언니 오빠들 머리 잘라주시던 게 떠올라서 흉내만 내 본 거야. 처음에 오빠 머리를 잘라봤을 땐 어머니한테 혼나기도 했어. 일하러 다니는 오빠 머리를 왜 쥐파먹은 듯 해놨냐던가. 짧은 머리라서 정돈하는 정도면 쉬울 줄 알았는데." 


"동생이랑 언니 오빠들까지...가족이 많았나 보네요." 


"내가 여섯째였지. 남매는....다 해서 아홉 명 있었고. 그 중에 감염자가 넷이 있고. 아무튼." 


조금 불안한 듯, 그래서인지 신중하게 사각사각 소리가 들린다. 이야기하면서도 가위질을 쉬지 않는 걸 보니 익숙한 모양이다. 


"그랬더니 수지가 머리 자를 줄 알게 되면 우리 가족 이발 걱정은 안 해도 되지 않겠냐고 언니가 감싸줬어. 잘 할 때까지 믿고 맡기고, 기다리자고. 그게 가족이니까....라고." 


"그럼 미용사였던 아버지 말고는 집안에 아무도 이발이 되는 사람이 없었나 보네요." 


"어머니....정도였을까. 그나마도 원래는 광산의 인부로 일했었고. 일하는 데 쓰는 오리지늄등을 동생이 깨먹어서 엉덩이를 때린 적도 있었지. 그게 어머니 한 달 봉급 값이라고 했었지. 벌써 그것도 10년 전 일이네." 


내용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았지만, 마치 그런 일도 있었지, 하며 그리워하는 말투였다. 새삼 온몸이 저릿할 정도로 분노하던 모습 뒤의 인간적인 면모구나 싶었다. 가족이 있고, 가정이 있던. 


"우리 가족 중에 나를 빼면 누구도 딱히 미용사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사람은 없었어. 그냥 나는....칼라돈 시골에서 막연히 꿈을 안고 런디니움으로 상경한 거야. 그 많은 남매들 중 고향을 떠나오고 싶은 사람이 없었으니까 내가 특이했던 거겠지. 그게 아니라면, 감염자라 해도 나름 젊은 날의 꿈 같은 거였을지도 몰라." 


왜 새로 연 미용실이 불타고 나서 가족들을 찾아가지 않았을까, 혹시 리유니온에 가입하지 않았다면 지금 수지 씨의 모습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는 당신은? 여기 오기 전에는 어떤 사람이었어? 뭐 하는 사람이었고?" 


"저 말입니까...." 


이야기할 만한 화제인가 싶었지만 수지 씨의 과거 이야기를 어느 정도 들었으니, 내가 이야기하지 않는 것도 불공평하겠지. 유쾌하지도 않을 뿐더러 재미도 의미도 없겠지만. 


"기억나지 않습니다. 체르노보그의 어딘가 관 같은 데에서 눈을 떴고, 아미야 손에 이끌려서 로도스 아일랜드에 왔거든요. 여기 오기 전 기억이 하나도 없습니다." 


"뭐야, 그거? 기억상실증 같은 거야?" 


"그런 걸지도 모르겠네요. 아미야 말로는 그 전에, 자기가 아주 어렸을 때도 제가 로도스 아일랜드에 있었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인지 얼핏 이야기도 들었지만, 굳이 이야기할 정도로 가벼운 사안도 아니다. 그 와중에 호기심 내지는 당혹감을 보이면서도 가위질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자기 스스로를 모른다면 가족 기억도 없는 거야?" 


"좀 그렇게 됐네요. 그 대신일지, 로도스 아일랜드에 오른 모든 사람들이 가족 같지만요. 로도스 아일랜드를 제가 만든 건 아니지만, 수뇌부로서 여기 있는 사람들이 만족스럽게 살았으면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되도록....작전 중에 크게 다치거나 죽지 않았으면 싶구요." 


"당신이 전술지휘관이란 말은 들었지만....그런 거구나. 그래, 기억났어. 우리는 당신 지휘 때문에 잡힌 거였지." 


"어지간하면 죽지 않도록 한다지만, 그래도 제 지휘 때문에 제 사람이 죽을 수도 있으니 조심스럽죠. 이러나저러나 좋은 인연으로 로도스 아일랜드의 구성원이 된 사람들이니까요." 


"....그거 나나 그 사람도 포함인 거야?" 


"네. 아무리 싸웠다지만 결국 로도스 아일랜드에 들어오셨으니까요." 


"....역시 이상해. 우리 그렇게 잡으려고....당신 사람들을 그렇게 고생시켰으면서." 


그게 로도스 아일랜드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리유니온에 있던 에단이나 머드락이 있고, 절도범이었던 헤이즈도 있고, 전문 킬러인 라플란드도 있으니 말이다. 


"똑같습니다. 여기 온 리유니온 분들이 저희 작전 중에 죽지 않았으면 하는 것도요....그렇네요. 수지 씨도 레드 씨도 마찬가지입니다." 


"싫어하지 않을까 생각하는데....다 됐어." 


"벌써요?" 


"처음 자르는 것도 아니고, 다듬는 정도야 금방 끝나지." 


손에 쥐여진 거울로 확인해 보니 제법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다. 이야기하면서도 손이 쉬지 않는다 싶었는데, 이 정도까지면 당장 미용실 맡겨도 되겠다. 


"수고 많았습니다. 잘 잘라주셨네요. 앞으로도 부탁드릴 수 있겠습니다." 


"잘 됐다니 다행이네. 나야 믿고 맡겨준다면 고맙지. 그리고 당신 정도나 되는 사람이 보장한다면 로도스에 다른 사람들도 와줄거고." 


"미용실 열면 잘 됐으면 좋겠네요. 고맙습니다." 


"....나도 고마워....이발도구, 감사히 잘 쓸게." 


늦게나마 감사인사를 한다고 생각한 탓인지 살짝 긴장하면서 이야기하는 수지 씨였다. 


수지 씨가 이발천을 걷어주고, 바닥을 쓸어 정리하는 걸로 그날 일과가 끝이 났다. 내내 적대적이고, 앞에서 울분을 토해내던 사람의 밝은 면을 본 것 같아 괜히 나도 기분이 좋았던 것 같다.



그 다음 날은 유독 바빴던 날이었다.

일의 난이도가 높다기보단 뭔가 이리저리 불려다니고 뛰어다니는 일이 많았기에 더 바빴던 것 같다. 그 사이에도 일은 계속 들어오고, 정신없던 게 좀 잦아드니 또 어제 그 시간대가 되었다.


일이 좀 남았지만 일찍 들어갈까 싶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어제 미용도구를 받아간 수지 씨가 첫날인데 일이 어땠으려나 하는 걱정도 살짝 든다. 물론 일부러 찾아가보자니 시간이 늦어진 데다 이제 선실을 배정받았을 테니 실례일 거고.


"음? 박사 아니야?"


근황은 내일 틈 내서 확인하고 오늘은 무거워진 몸을 이끌고 방에 들어가려던 차,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 고개를 돌려보았다.

처음에는 누구인가, 싶었지만 이내 입에 물린 담배, 그리고 많이 부드러워졌다지만 핏발 선 눈 때문에 누구인지 깨달았다. 지저분하던 첫인상과는 다르게 깔끔하게 정리된 머리를 보니 수지 씨가 이발을 해 준 모양이다.


"....레드 씨? 웬일로 이 시간에 밖에 계신 거죠?"


"뭐, 별일은 아니고 혼자 한잔 하다가 잠깐 산책 나온 거라. 넌 이제 들어가는 거냐?"


"네, 뭐 그렇죠. 실내에서 담배는 안 됩니다."


"알아. 아직 불 안 붙였잖아."


신경 쓰지 말라는 듯 말하면서 내 앞으로 지나가는 레드 씨를 따라 갑판으로 나왔다. 5월. 슬슬 빅토리아는 여름비가 내리기 시작할 시기이다. 농사는 지금부터가 가장 중요한데 말이지, 하면서 바쁜 와중에 일장연설을 하던 오늘의 와이번족 비서가 떠오른다. 밤공기에 조금씩 습기가 끼기 시작하는 모양인지 약간 끈적거리는 것도 같다.


"일은 좀 어떠세요? 할만하십니까?"


"뭐, 먹고 사는 게 다 그렇지. 나는 몸 갈아넣고 너는 정신 갈아넣고. 그래도 끝나고 맥주나 위스키 한 잔 하면 또 다음 날 일할 수 있고."


그래서 왠지 모르게 들떠 있었던 건가. 희미하게 술 냄새가 나긴 한다. 


손가락을 튕겨 담배에 불을 붙이는 저 모습은 세 번째 보는 건데도 신기하다. 

그러고 보니 화염 아츠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이었던가.


"수지 씨가 머리 잘라주던가요?"


"뭐, 그래. 결국 미용사가 됐나....뭐, 우리 중에 그 녀석만 머리 자를 줄 아는 녀석이었으니 그럴 법도 하겠지."


"손님은 좀 있었어요?"


"손님인지는 모르겠고, 그냥 시간 정해서 안 쓰는 방에 가면 잘라주는 거지. 옆에 그 불포족 여자는 네다섯 정도가 줄을 서 있던데, 그 녀석은 나 포함해서 두엇밖에 없는 것 같았지만."


"뭐 아무래도 오랫동안 여기서 머리 잘라주셨던 분이니까요, 그 분은."


대충 얼버무렸지만 애초에 줄을 서 있을 시스템이 아니다. 그러라고 시간 약속을 잡는 거고. 그 사람 수수하면서도 꽤 미인이고, 성격도 모난 데 없는데다 이야기하면 잘 들어주니 인기가 있는 거겠지. 어떤 분위기인지 대충 알 것 같긴 하다.


담배를 한 모금 크게 빨아당긴 레드 씨가 고개를 돌리고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바람이 이쪽으로 안 부는데도 희미하게 매캐한 냄새가 코를 간질인다.


"뭐, 수지 씨도 아마 조금 지나면 고정 손님이 생길지도 모르죠."


"음. 실력은 꽤나 괜찮았으니 말이지. 가족들 머리를 잘라주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고 했었던가. 다만 이발도구가 그렇게 좋은 것들은 아니었긴 했지. 어떻게 어떻게 모은 것들도 난리나면 버리고 도망가고, 겨우 찾으러 오면 없어져 있거나 그나마도 망가져 있고 했었고."


아무래도 방랑하던 생활이었으면 어쩔 수 없었을 것이다. 오히려 그런 와중에도 위생을 위해서 이발을 도맡아온 수지 씨가 대단하다 싶다. 아니면 습관인가, 그것도 아니면 예전에 그렇게 살아왔듯 가족에게 해주고 있다는 감각이었을까.


"어떻게 어떻게 이발도구를 찾았나 보네요."


"방랑하는 사람들이 다 그렇지, 뭐. 집단지성으로 어디 근처에 가면 쓸만한 뭐가 정기적으로 버려져 있더라, 이거 이렇게 이렇게 만들면 꽤 튼튼한 지붕이 되어서 눈비 맞을 걱정이 없어진다더라 하는 거. 그 녀석이랑 친하게 지내던 한 녀석은 옷 수선을 그렇게 잘했었는데."


그 분도 여기 와 계신가요, 하고 물어볼까 싶었지만 이상하게 과거형으로 이야기하기에 혹시 모르니 가만히 있기로 했다. 방랑 중인 감염자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객사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니, 그런 사람일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었다.


"그러고 보니 너 술 좋아하냐?"


"술 좋아하긴 하는데, 많이는 못 마십니다."


"술은 마시다 보면 늘어."


"다음날 일을 못하게 되니까요."


"재미없게."


물론 재미도 좋지만 너무 사람이 재미만 추구하면 더 이상 재밌게 살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길게 가려면 적당한 게 좋긴 하다. 물론 이쪽도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굳이 고르자면 맥주랑 위스키려나요. 가볍게 마시던지, 다음 날이 좀 깔끔하던지."


"오, 뭘 알긴 아는구만. 나중에 같이 한 잔 하자고. 그 녀석도 불러서."


"수지 씨요?"


생각해보니 어제 머리 자르면서 술 이야기는 안 나왔었지. 굳이 말 꺼낼 필요 없는 화제였기도 하고.

다만 감정이 고조되면 정전기를 베이스로 한 아츠가 통제를 잃고 날뛰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 분 아츠 제어는 괜찮은 겁니까?"


"그러려니 하는 거지. 술 약하다고 많이 마시지도 않고. 찌릿하는 정도는 귀여울 수준이니까."


"뭐....수지 씨는 좀 더 아츠 통제가 되고서부터요."


사고낸 적도 있고 하니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아츠 통제가 안 되어서 술은커녕 일상을 구가할 수 없는 감염자도 더러 있으니 말이다.


"그런 거 다 몸으로 부딪히면서 배우는 거지."


"뭐 아주 틀린 말은 아니긴 한데요."


아무리 간단한 일이라도 백 날 설명 듣는 것보다 직접 해 봐야 뭔지 알게 되니 부정할 수는 없다.

지휘도 그런 게 없잖아 있고. 뭔가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는 것 같다 해야 하나.


"생각해 보면 너 얼굴 볼 일이 그닥 많지 않던 것 같은데. 바쁘긴 바쁜가 보네."


"어휴, 말도 마십시오. 오늘도...."


말이 나온 김에 오늘 무엇 때문에, 얼마나 바빴는지 떠들기 시작했다. 레드 씨도 생각보다 사람 말을 잘 들어주어서인지, 아니면 이 사람도 나름 직장 생활을 해 봐서인지 곧잘 이야기를 들어주어서 쌓인 이야기들이 팍팍 나오는 것 같다. 


레드 씨도 일 시작한지 얼마 안 됐는데 일 이상하게 하는 사람이 너무 눈에 보인다던가 하는 이야기를 했다. 아무래도 나는 제조소 일을 깊게까지 알지는 못하니 신기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멀쩡하게 돌아가고는 있지만 파보면 생각보다 관리가 부실하게 흘러간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사람 사는 것 다 비슷하구만, 싶었던 하루였다.



-----


오타 및 오류 지적, 피드백 환영

오리지널 설정도 있을 수 있음.



아침에 출근하면 아 그래 어제 어디까지 했으니까 오늘은 뭐 해야지

어림도 없지 라인에서 불량 터지면 내려가서 원인이랑 수량파악하고 해결하는 하루하루가 계속되고 있다

일본에서 일하던 거랑은 감이 달라서 적응하려면 시간이 좀 더 걸릴듯



아무튼 연휴라 오랜만에 글쓸 여유가 생겼어서 올려놓고 출근하러감




월요일이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