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어느 날. 


 쌀쌀함을 느끼며 천천히 눈을 뜨자, 평소와 다름없는 광경이 눈에 비쳤다. 뭐, 평소와 다른 광경이 비쳤다면 그게 더 놀랍겠지만. 그런 시시한 생각을 하면서 내 체온으로 덥혀진 시트에서 몸을 일으키고, 방에 달린 작은 창문으로 바깥을 보았다. 



"하핫, 어쩐지 춥더라니." 



 쉐라그로 이동하고 있다는 로도스 함선은 드디어 거의 도착했는지 창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아무리 함내 기온 조절 시스템이 있다고는 하지만 이런 옷차림을 하고 있었으니 과연 추울 만하다. 평소 있는 것보다 좀 더 따뜻하게 입으며 준비를 하고 있자니 단말기의 알람이 울렸다. 

 나갈 시간으로 맞춰둔 알람을 끄고, 평소대로 집무실로 향한다. 지나가며 보이는 로도스 직원들도 평소보다 한 겹 더 껴입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내가 이런 옷차림을 하고 있는 것은 드물기 때문인지 평소보다 좀 더 많은 시선을 느꼈다. 


 카드 키로 인증을 한 후 집무실에 들어서자, 웬일인지 항상 먼저 나와있는 녀석이 없었다. 드문 일이군. 딱히 내가 지각을 한 것도 아닌데, 평소 일에 파묻혀 사는 그는 업무 시간보다도 일찍 여기에 앉아있을 터였다. 최근에는 조금 줄었을지언정, 여기에서 그대로 잠들어있던 날도 종종 있었다. 늦잠이라도 자고 있나? 

 비서석에 앉아 단말기를 꺼내자 새벽에 그에게서 메시지가 와 있었다. 박사는 심야 긴급작전에 투입되어 그대로 아침 무렵까지 일처리를 했다고 한다. 때문에 오늘은 오후에야 들어올 거라고 적혀있다. 



"이러면 일찍 온 보람이 없는데." 



 특별히 할 일은 없었다. 그가 올 때까지 소일거리로 서랍에 넣어놓은 책을 꺼냈다. 비서 일을 해도 좋지만, 그도 곯아떨어진 상황에서 나만 일하는 것도 왠지 납득이 가지 않는다. 오히려 그가 집무실에 돌아오고 절망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 


 책을 읽다 보니 어느새 정오가 가까워졌다. 드디어 출근하신 박사는 아무것도 처리되지 않은, 오히려 늘어난 서류들로 장식된 책상을 보고서 그대로 굳어버렸다. 



"...라플란드, 오전에 대체 뭐 하고 있었어?" 


"여어 늦잠꾸러기. 오늘은 쌀쌀하고 눈도 오는 데다 바깥 경치가 좋아. 독서하기엔 딱 제격인 날씨지." 



 그는 작게 한숨을 쉰 뒤 머리를 싸매고 그자리에 쪼그려 앉았다. 모습이 아주 볼 만한데. 작전에 나를 안 데려간 벌이야. 



"하하핫, 빨리 시작하지 않으면 오늘 밤도 새게 될 걸?" 


"...혹시 어제 일 때문이야? 워낙 늦은 밤이라 깨우기도 뭣해서 부르지 않은 거였는데." 


"글쎄? 하지만 나는 네 이번 주 비서 겸 호위니까 말야. 나한테 말도 없이 멋대로 나가는 건... 어떨까 싶네?" 



 그렇게 말하자 언짢은 기색을 한 박사는 잠시 조용히 있더니 내 곁으로 다가왔다. 조금 납득이 가지 않는 듯, 바이저 너머로 그가 정색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알았어, 전투가 일어나면 반드시 네게 먼저 말할게. 게다가 불필요한 행동도 하지 않겠다고 하면 대장으로 텍사스도 붙여줄테니까, 그러니 일 좀 도와줄래?" 


"호오? 역시 박사, 협상할 줄 안다니까? 후훗, 교섭 성립!" 



 책상 위에 걸쳐놓은 발을 내리고 책을 덮어 제자리에 집어넣는다. 텍사스와 놀 수 있다면 오늘은 진지하게 거들어 주지. 

 박사의 책상 위에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를 집어 분류를 시작한다. 내가 진지하게 하려는 것을 느꼈는지 박사도 조금 안도한 듯하다. 그 이전에 진지하게 일처리를 도울 수 있는 오퍼레이터라면 좀 더 적역이 있겠지만. 


 그리하여 둘은 묵묵히 일을 처리해나갔고, 거의 자정이 될 무렵에 드디어 작업은 끝났다. 역시 나라도 조금 피곤하고, 작은 글씨들만 계속 봐와서인지 눈도 피로함을 느꼈다. 역시 나는 사무직보다는 마음대로 날뛸 수 있는 전투 쪽이 훨씬 맞아. 



"라플란드, 조금 시간 괜찮을까?" 


"어라, 이렇게 늦은 밤에 추가 근무야? 잠을 못 자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이상한 소리 하지 마. 자, 약소하지만 생일 축하해." 



 평소처럼 블랙 유머를 던지며 낄낄대자니 예상 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확실히 오늘은 내 생일이지만, 축하해줄만한 이가 로도스에 있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 

 예쁘게 포장된 상자를 받아든 채 아무 반응 없이 서있으니, 박사가 조금 걱정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오늘 맞지? 귀찮으니까 대충 11월 11일이라고 휘갈겨적은 거 아니지?" 


"실례네, 오늘이 내 생일 맞아. 감사히 받을게. 뭐가 들었을까나?" 



 내 대답에 한시름 놓았는지 박사는 작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냥 그랬다고 할 걸 그랬나. 재미있을 것 같은데. 



"네가 애용하는 브랜드의 검 손질 세트야. 클로저에게 물어보니 틀림없다고 하던데..." 


"그녀도 입이 가볍구만... 맞아, 박사. 흡혈귀는 불로불사란 이야기가 있던데, 확인해보고 싶지 않아?" 


"불쾌했다면 내가 사과할테니 용서해줘. 아니면 다른 걸 준비할까?" 


"그렇다면 추가로 네가 추천하는 책으로 한 권 부탁할게. 가능하면 지루하지 않은 걸로." 



 뭐, 이걸로도 아무 불만 없지만, 기왕이면 너다운 것을 갖고 싶달까. 딱히 여자로 보이고 싶은 건 아니지만, 이성에게 주는 선물로는 낙제점이란 것도 재밌어. 전혀 여자로 보지 않는다면 그건 그거대로 왠지 열받고. 

 박사는 조금 고민한 뒤, 책장에서 한 권을 뽑아들어 내게 건네주었다. 그것은 꽤나 해지고 변색되어있었고, 장식이나 종이 재질 등을 통해 꽤 오래된 책임을 알 수 있었다. 



"조금 낡았지만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이야. 겉모습이 아니라 내용으로 평가해주길 바래." 


"꽤 소중해보이는 책인데, 괜찮겠어? 반쯤은 농담이었는데." 


"그럼 반쯤은 진심이었겠네? 너라면 괜찮아. 다시 한 번 생일 축하해. 네 덕분에 오늘 내로 일이 끝날 수 있었어. 이제 돌아가도 돼." 



 그에게 감사 인사를 한 뒤 방으로 돌아와 받은 책을 훑어본다. 그가 논문이나 전문서 이외의 것을 읽다니 조금 놀랍군. 최근에는 꽤나 인간다워졌지만, 예전에는 낭만의 파편조차 없는 기계같은 이였다고 한다. 

 감정 기복이 적다는 것보다는 감정을 모르는 것 같은... 그런 그가 골라준 책은 '종족을 넘어서'... 라는 꽤나 로맨틱한 내용이었다. 그가 이런 걸 좋아한다는 사실을 안 것만으로 한동안 웃음이 나올 정도로 재미있었다. 

 침대에 옆으로 누워 가볍게 읽다가 잠들 생각이었지만 상상 이상으로 마음에 들었다. 결국 그 날 새벽까지 책을 다 읽고야 말았다. 


 다음 날 아침, 집무실 문을 열자 오늘은 제대로 그가 먼저 와 앉아있었다. 생긋 웃으며 아침 인사를 하는 그의 앞으로 다가가, 그대로 그의 책상을 쾅 걷어찼다. 



"우왓! 무슨 짓이야 라플란드!" 


"너 말야, W에게 은근 성격 나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은 있지만... 정말로 그런 모양이네! 대체 뭐야, 그 결말은?" 


"나도 계속 궁금해서 시간 날 때마다 찾아다니긴 했지만 워낙 오래돼서 그런지 정보가 별로 없어. 하지만 그것도 그거대로 여러 상상을 할 수 있어서 좋다고 생각했었는데..." 



 박사에게 받았던 그 책은 마지막 몇 페이지가 빠져있는 것이었다. 그것도 하필이면 마지막 결말 부분이. 작가가 정식으로 쓴 결말이라면 설령 기분나쁜 배드엔딩이라도 상관없다. 하지만 제3자 때문에 이렇게 어물쩡 대충 끝나는 걸 보게 되다니 불쾌하기 짝이 없다. 



"결국 그건 네가 마음대로 상상한 거잖아. 그것도 너같은 벽창호가 상상한 결말이니 시시하기 짝이 없겠지."


"그렇게 심한 말 하지 마... 으음... 네가 그렇게까지 마음에 들어할 줄은 몰랐는걸. 좀 더 찾아볼 필요가 있겠어." 



 후드 위로 머리를 긁는 박사는 정말로 곤란한 것 같았다. 비서석에 앉아 있으니 계속 그 어정쩡한 뒷부분이 생각나 답답한 마음에 책상에 다리를 올리고 의자를 뒤로 젖혀 기댄다. 땡땡이나 치고 훈련소로 가서 분풀이나 할까, 그렇게라도 해야겠어. 



"라플란드, 언제가 될 지 모르지만 반드시 완성본을 네게 선물해줄게. 그러니 기분 좀 풀어주지 않을래? 오늘도 네 도움이 필요해." 


"...알았어." 



 오늘도 내 업무는 비서로서 박사를 서포트하는 것이다. 그가 어째서 나를 선택한 건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임무이니만큼 함께해주지. 텍사스에게 접근할 기회가 늘어날 지도 모르고 말야. 



"그래서? 난 뭘 하면 되지?" 




*** 




 눈을 뜨니 평소보다 조금 어두웠다. 침대에서 일어나 창문 밖을 보니 잔뜩 낀 눈구름이 햇빛을 가리고 있었다. 이대로면 눈이 꽤나 쌓일 것 같다고 생각하며 옷을 입고, 간략하게 준비를 마친 뒤 집무실로 향한다. 

 우르수스 영토에 들어온 지 벌써 며칠이나 지났을까. 질주하는 로도스 함선도 곧 극한의 우르수스의 겨울로 돌입할 것이다. 쉐라그에서도 혹한은 경험하긴 했지만, 역시 너무 추운 것도 너무 더운 것도 피하고 싶다. 


 집무실에 들어서자 어둑한 가운데 사람의 기척이 있어 불을 켜려던 손이 멈춘다. 좀더 자세히 보니 바깥 풍경과 겹쳐 눈치채지 못했지만, 창 밖에서 비치는 은은한 아침 햇빛에 그녀의 아름다운 은발이 반사되어 살랑이며 흔들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녀는 자연광만으로 독서를 즐기고 있었던 것 같다. 

 그 모습이 꽤나 신비로웠기에 스위치를 향해 뻗었던 손을 거두고 그녀 쪽으로 걸어갔다. 의자에 걸터앉은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그를 보며 키득 웃었다. 



"여어, 박사. 오늘은 평소보다 빠르네?" 


"안녕, 랩(Lap). 너도 평소보다 빠르잖아. 불도 안 켜고 웬일이야?" 


"후훗, 이 정도로 밝으면 충분하잖아. 밖에 눈 오는 걸 보고 있자니 문득 네가 책을 줬던 일이 떠올라서 말야. 오랜만에 읽어보고 싶어졌어." 



 다시 시선을 책으로 돌려 페이지를 넘기며 읽어간다. 시계를 보니 아직 업무 시작 시간까지는 1시간 이상 남았다. 

보통은 이 시간이면 아침을 먹으러 가지만 오늘은 천천히 해도 괜찮겠지. 어제 일을 빠릿하게 해놓은 것도 오늘을 느긋하게 보내기 위함이었다. 

 그 후에도 업무 시간 짬짬이 그녀는 독서를 즐겼다. 점심 시간이나 휴식 시간에도, 업무 시간이 끝나고 이제 저녁까지 시간이 비게 되었다. 그녀의 독서도 후반부, 이제 몇 페이지 정도밖에 안 남은 것 같다. 



"있잖아, 네가 처음으로 줬던 생일 선물 말야, 이 책이었던 거 기억나?" 


"물론이지, 검 정비 도구 쪽은 반응이 썩 좋지 않았던 걸로 기억해. 그때는 아직 너에 대해서 알아가는 중이었지. 아니, 지금도인가?" 


"나도 꽤나 당황했었어. 내 생일을 축하해주는 녀석이 있을 거라곤 생각 안하고 있었거든." 



 웃으면서 그때 일을 떠올린다. 확실히 그 다음날에는 아침부터 책상을 걷어차는 등 잔뜩 화를 냈었지. 왜 이런 어물쩡한 걸 줬냐면서. 지금은 내 전속 비서로 있어주고 있지만, 그때는 아직 비서를 교대제로 하고 있었던 그녀가 텍사스와 옥신각신하기도 했던 등의 그리운 일들이 기억났다. 

 그러고보니 올해는 아직 말하지 않았구나 생각이 들어 그녀를 향해 돌아선다. 일이 끝나고 전해주려고 했었지만 지금도 아직 괜찮겠지. 



"생일 축하해, 라플란드." 


"후훗. 고마워, 박사" 

 


 수줍은 미소를 띠며 대답하고 페이지를 넘기던 그녀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졌다. 그대로 책의 다음 페이지를 넘겨보고 돌려보고를 반복한다. 



"랩, 이미 선물은 건네줬는데... 마음에 들었을까?" 


"...설마" 


"오래 기다리게 했네. 정말 찾기 힘들어서, 나도 얼마 전에야 간신히 구했어." 



 놀란 얼굴로 나를 멍하니 바라보는 라플란드. 그 정도로 충격이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지금 라플란드가 들고 있는 책은 몇 년 전 그녀에게 줬던 것의 완전판이다. 상상 이상으로 그녀가 화를 낼 줄은 몰랐기에 그 이후 찾아다녔지만 전혀 찾을 수 없었다. 그 책은 아직 지식인들이 수작업으로 책을 제작하던 시기의 것이기 때문에, 남아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라고 불릴 정도로 너무나 희귀한 것이었다. 


 그 희소성과 역사적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게된 나는, 일이나 교류 등으로 알게된 귀족들이나 기업 상층부 인물들에게 협력을 요쳥하며 찾아다니고 있었다. 그 중에서 한 귀족과 관련된 앤티크 콜렉터가 이 책을 갖고있다는 것을 알게되었고, 다행히 그에게서 구매할 수 있었다. 책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거금이 들었지만, 드디어 완전판을 손에 넣을 수 있었던 것이다. 


 라플란드는 그 책을 비서석 서랍에 보관해두고 가끔씩 꺼내 읽는다. 덕분에 그녀가 돌아간 뒤에 몰래 바꿔놓을 수 있었다. 아무리 상태가 좋다고는 해도 워낙 오래된 것이기에 열화된 부분은 있어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하지만 찢어진 페이지는 없고, 그녀가 바랐던 최후의 결말까지 완전히 수록되어있다. 



"......언제 바꿔친거야?" 


"사실 며칠 안 됐어. 어찌어찌 시간에 맞췄네." 


"하핫, 정말로 찾아낼 줄이야." 



 그렇게 말하고 입꼬리를 올리며 최종 파트의 페이지를 펼쳐 읽어보기 시작했다. 다시 고요해진 집무실 안에서 그녀가 책장을 넘기는 소리만이 울렸다. 천천히 음미하듯 읽어나가고, 마침내 다 읽은 책을 덮고는 책상 위에 천천히 올려놓는다. 그 표정에는 만족감과 오랫동안 쌓였던 무언가가 씻겨나간듯 맑은 기운이 흘러넘쳤다. 



"랩, 사실 나도 그걸 아직 안 읽은 상태인데, 결말이 궁금한걸. 하루만 빌려주지 않을래?" 


"안됐지만 싫은걸. 가르쳐주지도 않을 거야." 


"에엣... 어째서?" 


"으음, 글쎄?" 



 빌려줄 거라 생각하고 있었건만 딱 잘라 거절당했다. 혹시 그렇게나 충격적이었던 걸까? 아니면 차라리 안 보는 게 좋을 정도로 형편없었던 걸까? 


 이 책은 필라인 여성과 살카즈 남성의 이야기였다. 필라인의 마을에 흘러들어온 살카즈가 악마라고 차별받고 있었다. 그러나 마을 일을 돕고 조금씩 마을 사람들과 함께해나가며 필라인 여인과 사랑에 빠진다. 허나 그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았던 그녀의 부모의 반대로 인해 남자는 마침내 마을을 떠나버리고 마는 것이다. 

 찢어져 없어졌던 페이지는 그 마을을 나가는 이후 부분이다. 그대로 새로운 땅에서 행복해졌을까, 아니면 마을에 남았을까. 라플란드의 반응을 보고 있으면 배드엔딩은 아닌 것 같은데...... 



"나는 둘이 맺어졌으면 좋겠어." 



 다 읽은 책을 뚫어지게 보고 있던 그녀의 움직임이 멈추고 귀가 쫑긋거렸다. 그러나 여전히 이쪽을 보지 않고 시선은 책에 고정한 채다.



"헤에? 오늘은 꽤나 로맨티스트시네. 어쩐 일이야?"


"나도 참고로 하고 싶으니까. 유감스럽게도 나와 너도 종족이 다르잖아?" 



 라플란드는 일어서서 책을 나에게 던져 준다. 순간적으로 반응해 제대로 받을 수 있었지만 장식 때문인지 은근히 무거워서 휘청거리고 말았다.



"소중한 책이니까, 떨어뜨리지 마?"


"그럼 던지지를 마... 그렇다면 빌려주는 거야?"


"마음이 바뀌었어. 자, 빨리 읽어." 



 곧바로 건네받은 책을 펼쳐 넘기며, 기억하고 있는 최종 페이지에 도달한다. 끝내 읽지 못했던 결말을 읽어나가자 어느새 입가는 느슨해지고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고 있었다. 

 결국 두 사람은 직전에 마을을 떠나는 것을 그만두고, 반대하는 사람들로부터 도망치지 않고 설득하는 것을 택했다. 그렇게 마을에 남아 설득을 계속하기를 수 년. 겨우 이해를 얻은 둘은 부모님의 축복을 받으며 남은 생을 마을에서 보냈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자, 짧은 작가의 말이 적혀있었다.



"종족의 차이로 고민하는 사람에게 부디 용기가 되기를..." 


"참고가 됐을까? 후훗, 기대하고 있을게" 



 그녀가 이 결말을 읽고 '기대하고 있다'는 말을 했다는 것은, 내 마음을 받아주었다는 의미일 것이다. 갑자기 그렇게 중요한 말을 듣게 되니 새삼스레 얼굴이 뜨거워졌다. 



"박사, 이따가 네 방에 놀러 갈게." 



 그렇게 말하고는 기대놓았던 검을 허리에 차고 문으로 향한다. 반사적으로 일어나버렸지만 아무 말도 나오지 않고 입을 뻐끔거리며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는다. 문을 연 그녀는 이쪽을 돌아보더니 씨익 이빨을 드러내며 짓궂은 미소를 지었다. 



"그럼 이따 보자, 박사?" 







※ 일러스트 출처: https://www.pixiv.net/artworks/108432990

※ 이 소설은 원작자 「YS님의 허가를 받고 번역하였습니다. 

※ 원문출처: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21460932 



로스트 미디어에서 나오는 환상적인 분위기는 정말 좋아 

게다가 달달하기도 하니 더욱 좋구만 


오타 오역 의역 어색한 부분 지적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