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링 애호 소설 모음




전편 링크: https://arca.live/b/arknights/103044175?p=1


링 애호 소설임미다. 


개추를 누르고 댓글을 달아 주시면 29포인트가 공짜로 생김. 


불쌍한 글쟁이에게 많관부. 


이 다음, 야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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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천년기, 1102년 봄. 


5월 8일 12:00. 



나는 몹시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원래 같았으면 오전 업무를 대강 마무리짓고, 링과 이야기를 나누며 식당으로 향했을 시간인데. 


아침에 요리하다 주방에 불을 내는 바람에 미처 못 했던 휴가 이야기도 해야 하는, 중요한 타이밍인데. 


모종의 이유로 그 소중한 루틴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다. 


그 모종의 이유란…. 



“후핫, 매워. 이거거든. 너도 먹어 봐, 맛있어.” 



알싸하다 못해 매캐할 정도로 매운 냄새가 흘러나오는 훠궈 냄비. 


그 앞에서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유쾌해 견딜 수가 없다는 듯 신나게 식사를 즐기고 있는 용 아가씨. 


쉐이 남매의 아홉째, 니엔. 


그녀였다. 


몇 분 전. 잠시 켈시에게 결재받을 서류가 있어 사무실 밖으로 나왔는데, 대기를 타고 있던 그녀와 눈이 맞았고-


그대로 납치당했다. 


나는 한숨을 푹 내쉬며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니엔, 갑자기 무슨 일이야?” 


“응? 그냥 밥이나 먹자고. 그 뭐냐, 상견례는 해야지.” 



푸흡. 


상견례라니. 


니엔의 입에서만큼은 듣고 싶지 않았던 단어가 그대로 내 고막을 직격한 통에, 그만 사레가 들리고 말았다. 



“컥, 콜록. 니, 니엔. 그게 도대체 무슨….” 


“아, 나랑만 하는 게 불만이야? 그럼 총웨 오빠랑 시도 불러올까?” 


“그게 문제가 아니잖….” 



상견례. 


혼인을 앞둔 남녀의 일가족들이 서로를 대면하고, 대화를 통해 서로를 알아가며 한 가족이 될 준비를 하는 의식. 


맥락상, 혼인을 앞둔 ‘남’은 나고. 


‘녀’는 말할 것도 없이 링이다. 


일가족은 니엔이겠지. 


나도 상견례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어렴풋이 가지고 있긴 했다. 

 

니엔이나 시는 그렇다 쳐도, 맏이인 총웨에게만큼은 제대로 이야기해 두는 편이 나을 테니까. 


하지만 그 생각은 아직까지 내 머릿속에만 남아 있었고, 나는 링과의 관계에 대해 그 누구에게도 발설한 적이 없는데. 



“...링이, 너한테 말했어?” 


 

간신히 진정하고 입을 열자, 니엔이 혀를 찼다. 



“야, 이 멍청한 인간아. 우리 큰언니가 그렇게 입 싼 여자인 줄 알아?” 


“그럼….” 


“나도 눈치란 게 있어요, 박사님. 응? 내가 링이랑 같이 보낸 시간이 얼만데. 언니의 사소한 변화쯤은 금방금방 알아챈다고.” 


“......” 

 

“산이 깎여나가고 바다가 평지가 되는 걸 봐도 여유롭게 웃고만 있던 링이, 갑자기 남자한테 홀딱 빠진 암컷 같은 얼굴을 하고 있더라니까? 아, 뭐가 있구나 하고 생각하는 게 당연한 거 아냐?”   



천박하게 낄낄거리는 니엔. 


태연자약하면서도 어딘가 기뻐 보이기까지 하는 그녀의 모습 때문일까.  


아니면 훠궈 냄비가 뿜어내는 열기 탓일까. 


입 안이 쩍쩍 말라붙고, 할 말이 잘 떠오르지 않았다. 


냄비 속 청경채와 고기를 한아름 집어 우적우적 씹어 먹는 그녀를 바라보며 생각을 갈무리하고, 조심스레 입을 연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 


“뭘? 너와 링의 관계?” 


“응.” 



니엔이 덤덤하게 중얼거렸다. 



“멍청한 짓이지.” 


“역시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뭐, 어쩔 수 없는 일이지. 


자신과 완전히 다른 존재에게 마음을 품는다는 건 그만큼 어려운 길이니까. 


니엔이 나를 천치라고 까내린대도 딱히 할 말은 없다.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오려던 그때. 


벌어진 턱 사이로 뜨거운 고기 한 움큼이 쑤셔넣어졌다. 



“으으으으으읍!” 



별안간, 눈앞에 불이 번쩍했다. 


매워! 


아니, 뜨거워! 


그냥 아파! 


이건 뭐야, 음식이 아니라 폭력이잖아. 


턱을 움직일 때마다 고기에 배인 양념이 용암처럼 분출되어, 내 입 안을 실시간으로 조져 놓는다. 


눈물이 핑 도는 것을 겨우 참으며 쩔쩔매는 내 어깨를, 니엔이 팡팡 쳤다.  



“야, 그 몇 마디 했다고 축 쳐지면 어떡하냐. 많이 먹고, 기운 내. 좀 멍청하면 어때.” 


“읍, 으으으읍!” 


“낭만 뒤지잖아. 영겁을 사는 쉐이와 필멸자의 덧없는 사랑. 로맨스 장르는 내 취향이 아니지만, 극본으로 쓴다면 천만 관객 돌파는 일도 아닐걸?” 


  

그, 니엔아. 


응원해 주는 건 정말 고마운데 말이다. 


시발, 낭만 찾기 전에 내가 먼저 뒤지겠다! 



“물, 물!” 


“응. 그래. 여기.” 



니엔이 어딘지 떨떠름한 얼굴로 투명한 액체가 담긴 병을 건넸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병을 따고, 목구멍으로 들이붓자…. 



“케에에에엑!” 


“어, 야. 미안. 그거, 물이 아니라 링 언니한테서 긴빠이쳐 온 연태고량주였네.” 


“*심한 단국 부모님 안부 묻기**피아메타식 라테라노 욕설**심한 우르수스 욕설**횡설수설하는 염국 욕설*” 



내 입 안은 그대로 폭발했다. 


아니, 이젠 입이 문제가 아니야. 


목구멍을 타고 액체가 흘러 떨어질 때마다, 화끈하다 못해 끓어오르는 듯한 작열통이 내 위장을 유린한다. 


킬킬대며 중얼거리는 니엔의 말 따위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시야가 부옇게 흐려지고, 어느새 식은땀으로 축축히 젖어든 온 몸에서 힘이 빠졌다. 


어라, 저기 눈 앞에 보이는 건…프로스트노바? 


안녕, 옐레나. 오랜만이야. 그때 너가 줬던 사탕 말인데, 다시 보니 그게 선녀더라. 우리 로도스에 니엔이라는 선머슴이 입사했는데 말야, 걔는 매운 게 아니라 뭔 구강암 유발제를 처먹더라고. 


뭐? 매운 건 네가 처리할 테니 안심하라고? 


안 돼, 너 그러다 죽어. 아니, 두 번 죽어. 


안 된다니까. 이건 사람이 먹을 게 아냐. 야, 야! 옐레나! 안 돼! 정신 차려! 메딕! 메딕!  


옐레나아아아아아아! 



“야, 야. 정신 차려. 그깟 매운 거 좀 먹었기로서니 기절을 하냐. 그렇게 약해빠져서 우리 언니 감당할 수 있겠어?” 


“옐레나? 옐레나! 어? 니엔?” 


“옐레나는 또 누구야. 링이랑 결혼식도 안 했는데 벌써 딴살림 차렸냐?” 



황급히 몸을 일으키자, 내 고통을 거둬 간 대가로 거품을 물며 광석병 말기 발작 증세를 보이던 프로스트노바는 온데간데없고 히죽대는 니엔이 있었다. 



“미안하게 됐다. 진짜 헷갈렸단 말야. 그래도 버둥대는 네 꼬라지 꽤 웃겼는데.” 


“...나, 간다. 잡지 마.” 



힘이 다 빠진 몸을 간신히 일으켜 문간을 향했다. 


상견례고 뭐고, 지금 당장 의료부에 가서 위장약부터 처방받아야겠다. 


아직 링을 남겨두고 먼저 갈 수는 없지. 


무너지려는 의지를 다지며 비틀비틀 힘겹게 걸음을 내딛던 그때.  



“아~아, 지금 가도 괜찮겠어?” 



니엔의 께느른한 중얼거림이 귓가에 스쳤다. 


저 망나니 같은 여자가 뭔가 의미 있는 소리를 할 리가 없을 텐데. 


하지만 어째서일까.


평소와는 묘하게 다른 그녀의 목소리 톤이, 발목을 붙잡는다. 



“뭔 개…아니, 무슨 소리야?” 


“내가 너를 그냥 놀려먹으려고 부른 줄 알아?” 



휙, 니엔이 귀찮다는 듯 허공에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펄펄 끓던 훠궈 냄비와 함께, 방 안을 꽉 채우고 있던 열기가 사라지고. 


오로지 나와 그녀만이 이 방 안에 남았다. 


전혀 니엔답지 않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나를 응시하던 그녀가 이내 말을 이었다. 



“박사, 인간의 몸으로 쉐이를 사랑한 이상 행복한 결말을 기대하지는 않았겠지.” 


“...물론.” 



결말이 행복하지 못할지라도 상관없다. 


그저 서로가 곁에 있을 수 있는 현재를, 즐길 수 있을 때까지 즐기자는 게 우리가 나눈 약속이었으니까.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자, 니엔이 입꼬리를 올렸다. 



“그걸로 만족해?” 


“......” 



당연히 아니지. 


링은 나한테는 과분할 정도로 좋은 사람이고, 이 테라의 그 누구보다도 나를 충만하게 해 주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의 곁에 있다 보면, 욕심이 저절로 생겨나는 건 당연한 수순. 


이 사람과 백년가약을 나누고 싶다. 


둘이서 발길 닿는 대로 온 천하를 유랑하며 오손도손 살고 싶다. 


그녀와 닮은 아들 둘, 나를 닮은 딸 하나를 낳아 단란한 가정도 꾸리고. 


늘그막에는 함께 조용히 지내다, 별이 가득한 밤에 서로 등을 맞댄 채 조용히 눈을 감고 싶다. 


뭐 그런 덧없고 허황된 욕심들 말이다. 


그저 이루어질 수 없다는 걸 알기에 접어두었을 뿐. 


니엔이 쓰게 중얼거렸다. 



“그래. 나도 마찬가지야. 터무니없는 불합리지. 그저 쉐이의 파편으로 태어났다는, 고작 그 이유 하나만으로 엮이는 이를 불행하게 만든다니.” 


“이미 각오는 되어 있어.” 


“그건 칭찬해 줄게. 하지만, 내가 너에게서 보고 싶은 건 조금 다른 종류의 각오야.” 


“...니엔, 너 설마.” 


“그 설마가 맞아. 박사, 나는 우리 쉐이 남매들의 운명을…언젠가 하나로 합쳐져, 베헤모스 쉐이로 돌아간다는 그 속박을 모루 위에 올려놓고 깨부술 생각이야.” 



터무니없는 이야기다. 


베헤모스는 바다의 시테러나, 북방의 데몬에 비견될 정도로 초월적인 존재. 


그런 존재가 정해 둔 운명을, 고작 쉐이의 파편에 불과한 니엔이 바꾼다니. 


즉각 그녀의 말을 부정하려던 나를, 그녀의 눈빛이 멈춰세웠다. 



“허무맹랑한 이야기라고 생각해?” 


“...그래.” 

 

“그렇게 생각해도 어쩔 수 없지. 실제로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기도 하고. 하지만 성공만 한다면….” 



니엔이 송곳니를 드러내며 웃었다. 



“우린 자유를 얻을 거야, 박사. 이 지긋지긋한 영원에서 해방되어 인간으로서 살아갈 수 있게 된다고.”


“......” 


“링을 사랑하잖아. 네가 먼저 죽어 그녀를 상처입히고 싶지도, 그녀가 한순간 네 곁에서 연기처럼 사라지는 걸 바라지도 않잖아.” 


“......” 



니엔이 손을 내밀었다. 



“내 손을 잡아, 박사. 함께 주사위를 던져 보자. 우리의 발버둥이 어디까지 통할지, 힘 닿는 데까지 시험해 보자고.” 



분명히 이성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니엔의 주장을 부정하고 있다. 


하지만 머리보다 훨씬 충동적이고, 격정적이며, 내 본질에 가까운 감정이 그녀의 말을 믿으라고 외치고 있었다. 


한참의 고민 끝에, 나는 갈라진 목소리를 간신히 토해냈다. 



“...정확한 계획은?” 


“때가 되면 알려 줄게.” 


“난 뭘 하면 되지?” 


“지금은 그저 링과의 시간을 즐기면 돼.” 


“성공 확률은 정확히 얼마나 되는데?” 


“으음…몰라. 변수가 너무 많아서, 제대로 계산이 안 돼. 대충 3할?”  

   


엉터리다. 


도산 직전의 회사에 투자하는 것처럼, 그녀의 계획에 편승하는 건 멍청한 짓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링을 마음에 품어 버린 이상. 


그녀와의 순간뿐만 아니라, 결말까지 행복할 수 있을 거라는 자그마한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 버린 이상. 


나는 여기서 물러설 수 없었다. 


천천히 그녀의 손을 맞잡자, 니엔이 활짝 웃었다. 



“좋아! 시원시원한데, 그래야 내 형부답지!” 


“...그래서, 용건은 끝났어?” 


“응? 아니.” 


“?” 


“우린 한 배를 탄 거야. 나는 뱃사공이고, 너는 승객이지. 승객이면 뱃삯을 내야 할 거 아냐?” 


“...단국에서 불꽃 윙비스트 소스라도 구해다 줘?” 


“으음, 그것도 구미가 당기긴 하는데. 내가 받고 싶은 건 좀 다른 거야.” 


“뭐.” 



일말의 불안감을 느끼며 되묻자, 니엔이 세상 천박하게 웃었다. 



“언니랑 떡친 썰 좀 풀어봐.” 


“이 *단국 욕설*년이.” 


“아 왜, 우리 언니는 만 년도 넘게 아다였다고. 그 언니의 첫경험을 딴 후기 듣고 싶단 말야.” 


“차라리 날 죽여라.”  


“아, 뭐. 싫으면 가쇼, 오늘 들었던 얘기는 없던 걸로 하고.”  



뻔뻔하기 그지없는 니엔의 얼굴을 본 순간, 나는 직감했다. 


내게는 선택지가 없다는 것을.  


미안해, 링. 


못난 남자라서 진짜 미안해. 


네가 내 쥬지 작다고 소문내도 뭐라고 안 할게. 


그렇게 마음 속의 링에게 수만 번쯤 석고대죄를 한 뒤. 


나는 보라색 눈동자를 반짝거리는 니엔을 보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링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