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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사미 황무지 재개간 프로젝트 개요] 


[제안자: 슈]


[최종 승인권자 및 현장 책임자: 박사] 


[대상지: 재앙으로 인해 황폐화된 사미 남부 지역, 톨바예르비 계곡] 


[상세: 재앙 이후, 화전민으로 살아가던 해당 지역의 인구 수백 명이 감염자가 됨. 농토를 잃고, 심한 차별까지 받으며 고통받는 중임.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해당 지역은 혹독하고 추운 사미에서도 비옥하기로 유명한 곳이었다고 함. 로도스 아일랜드의 기술력을 동원해 개간한다면, 농산물로 인한 수익은 물론. 감염자의 구호 및 오리지늄의 확산 방지를 비롯한 다수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을 거라 생각됨.]  


[별첨: 사미 정부의 개간 허가서 및 2종.]  



“...예산이 부족해. 인력도 부족하고. 무엇보다 내가 왜 현장 책임자야?” 



박사는 짧고, 형식도 개판인 보고서를 천천히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눈 앞의 여성을 바라보았다. 


빼꼼 튀어나온 한 쌍의 뿔. 


눈이 소복이 쌓인 겨울의 논밭과, 수확철이 되어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들판의 색깔을 예쁘게 잘 섞어 놓은 듯한 머리카락. 


쉐이의 여섯째, 슈였다. 



“...슈? 이 말도 안 되는 계획은 도대체 뭐야?” 


"어머,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 

"당연하지. 안 그래도 요즘 우리 오퍼레이터들 사미 가서 데몬이랑 싸우느라 바쁜 거 알잖아." 


박사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얼마 전.


사미에서 데몬이 기어나오기 시작했다.  


바다의 시테러와 버금가는 이계의 위협에, 컬럼비아와 사미를 비롯한 몇 개의 국가들이 손을 잡았고. 


이 동맹의 주축이 된 세력이 바로 로도스 아일랜드였다. 


따라서 그들은 기용할 수 있는 모든 전력을 쏟아부어 데몬에 오염된 적들과 맞서는 중이었다. 



“나중에 다시 얘기하자, 슈. 지금은 도저히….” 


“속단은 일러, 박사. 그 기획서 아래를 한 번 들춰 볼래?” 



관련 서류 몇 장 붙어 있는 게 다일 텐데, 그 아래가 뭐 어쨌다고. 


박사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슈의 말대로 기획서 아래를 들췄다. 



“...뭐야, 이게.” 



그리고 경악했다. 


거기 써져 있는 건 일종의 롤링페이퍼였다. 


이직이나 퇴사할 때, 회사의 동료들이 떠나는 이에 대한 감정을 담아 써 주는 짧은 편지. 


그런데 서명한 인원들의 목록이 하나같이 흉악했다. 



‘염국의 전 군관, 총웨. 로도스 아일랜드의 일원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사미로 향하겠다. 대신 박사, 친우로서 부탁하네. 내 여동생의 소망을 이루어 주게.’ 


‘오퍼레이터 링, 사미로 갈게. 박사, 내 여동생이랑 좋은 시간 보내길 바래.’ 


‘박사, 나 니엔인데 살고 싶으면 슈 언니가 하란 대로 해. 니 귀찮은 일은 일단 내가 떠맡을 테니까.’ 


‘...이불 밖은 위험한데.’ 



총웨, 링, 니엔, 시. 


로도스에 와 있는 다섯 명의 쉐이 중, 슈를 제외한 모든 이들이 데몬과의 전선에 합류하겠다는 소리였다. 


박사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아니 뭐, 든든하긴 한데. 


제멋대로인 니엔, 자유분방한 링, 히키코모리 시, 스스로의 의지로 데몬과 싸우는 것을 거부하던 총웨. 


로도스의 누구보다 강대하지만, 제각각의 이유로 사미에 가지 않고 있던 네 명의 오퍼레이터들이, 무슨 바람이 불었길래 갑자기 이러는 걸까. 


 

“...다른 인원은 필요없어, 박사. 난 당신만 있으면 되니까. 돈도 딱히 필요없을걸. 어차피 사미 정부에서 지원을 받아서 하는 프로젝트니까.” 



그 바람은 분명히, 박사의 눈 앞에서 밝게 웃는 이 쉐이 소녀겠지. 



“...하.” 

“그럼 잘 부탁해, 박사?” 



늘 그렇듯, 박사에게 거부권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