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에게 



편지 잘 받았다. 

세금인가 뭔가 하는 문제로 꽤 곤란했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괜찮은지 모르겠군. 

사미에서 시작할 새로운 장사가 잘되기를 바란다. 나는 그런 건 잘 모르지만, 너라면 분명 괜찮겠지. 


그러고보니 네가 로도스에 맥주들을 보내줬었지. 멋진 선물이었다. 대원들도, 그라니와 스카디와도 나눠 마셨다. 다들 기뻐했고, 그중에서는 휴가를 내서 컬럼비아로 가고 싶다고 하는 자도 있었다. 나도 같은 생각이다. 

너도 그라니한테 들었겠지만, 지금 내 상사는 박사라는 인물이다. 그는 인덕이 있는 인물이니, 아마 네 거주지 부근을 지날 일이 있다면 우리 머드락 소대를 불러줄 것이다. 그렇게 되면 미리 편지를 보내지. 너도 준비할 시간이 필요할테니까. 


박사에 대해서는 이전에도 편지에 썼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유능한 지휘관이자 상사지만, 때때로 이상한 행동을 할 때가 있다.

저번에는 이런 일이 있었다――




*** 




"뭐? 박사가 싸운다고?" 



 의료부에서 큰 소리로 놀라며 되물은 건 가비알이었다. 

 히비스커스는 갑작스런 음량에 지잉 울리는 귀를 막으며 끄덕였다. 



"갑판 달리기 1/4 지점부터 나가떨어지는 인간이 어떻게 싸운다는 거야? 그리고 그 상대는?" 


"그게, 시데로카 씨라고......" 



 놀라는 소리는 이내 주변에서도 터져나왔다. 



"그 미노스에서 온 트레이너 용병 말인가? 로도스 신입 훈련을 피트니스 클럽 정도로 여기던데......" 



 로도스에 입사한 시데로카는 연례 신입 훈련―― 헬 위크를 가뿐한 얼굴로 통과해 도베르만과 듀나, 위슬래시를 크게 놀래켰다. 오히려 그 이후에도 매 기수마다 실시되는 신입 훈련에 빠짐없이 참가하며 즐기기도 했다. 그 결과, 하드한 훈련를 태연하게 해내는 인간을 보며 자신감을 상실하는 신입들이 속출해 교관들은 극심한 골머리를 앓고 있었다. 



"그 시데로카 씨예요. 너무 맑은 눈으로 헬 위크에 참가하고 싶다고 하니 어떻게든 제외시킬 방법을 마련해야겠다고 교관들이......" 


"그런데 그게 어떻게 박사와 싸운다는 이야기로 이어지는 거야?" 



 히비스커스는 설명했다. 

 즉, 박사의 엉망진창인 스케쥴과 단련 부족을 본다면, 저 순진무구한 용병은 그냥 둘 수 없을 것이라고 교관들이 판단한 것이다. 

 도베르만과 듀나에게서 박사의 일상을 우연히 들은 시데로카는 곧바로 그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건강의 중요성을 간곡히 설파하며 정기적인 운동의 효과와 중요성을 알리고, 박사에게 맞는 근력 트레이닝 메뉴를 즉석에서 고안해 제시하였다. 

 하지만 박사는 그냥 운동을 싫어했다. 또한 피로로 정상적인 사고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요점은 약간 이성이 부족했던 것이다. 

 운동을 시키고 싶은 시데로카와 운동을 하고 싶지 않은 박사는 양쪽에서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집무실에서 눈빛으로 불꽃을 튀기며 서로 노려보았다. 

 그때, 당시 비서였던 토미미가 말을 꺼냈다. 



"싸워서 이기는 쪽을 따르면 되지 않을까요?" 



...... 



 이상이 바로 사건의 전말이다.



"그렇다고 정면으로 싸우겠냐? 박사잖아? 손가락 하나로만 싸우라고 해도 지는 게 더 어렵겠다." 


"박사님이 조건을 걸었어요. 양 어깨가 매트 바닥에 붙은 상태로 3카운트면 패배. 장외여도 패배. 살상력이 있는 무기는 사용 금지." 


"......평범한 규칙이네." 


"네." 


"하지만 뭔가 꿍꿍이가 있는 거겠지" 


"......아마도......"



 가비알은 히죽 웃었다. 



"언제부터지?" 


"경기 말인가요? 어, 오늘 오후부터요." 


"보러 갈래. 몇 초만에 끝날지 내기하자." 


"네? 박사님이 그렇게 강한가요?" 



 의료부 신입 허니베리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물었다. 



"무슨 소리야. 박사가 몇 초나 버틸 수 있을지가 궁금하잖아." 




*** 




 훈련실은 평소보다 북적였다. 

 전투 오퍼레이터도 후방지원부 직원도 뭔가 재미있는 것을 볼 수 있겠다는 소문을 듣고 줄줄이 찾아왔다. 방 한구석에 진을 치고 있는 의료부 직원들은 거의 전원이 모인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성황이었다. 사실 이쪽은 구경심리와 비상사태 대비가 반반 정도이며, 특히 수수로는 아예 간이 수술대까지 가지고 와있었다. 



"괜찮아요."



 살며시 수수로의 어깨에 손을 얹으며 말을 건 것은 아츠 스태프를 들고 있는 샤이닝이었다. 



"즉사만 아니라면 치유할 수 있으니까요." 


"아하하......"



 확실히 즉사 급의 사태는 생각하기 어렵다. 

 시데로카도 고용주에게 진심으로 덤비지는 않을 것이다. 어디까지나 박사를 꺾고, 이야기를 듣게 하기 위해서, 그리고 억지로라도 생활 습관을 가다듬고 운동을 시키기 위해서... 어? 시데로카 씨가 이긴다면 의료부의 고민 중 하나가 바로 해결되는 거 아닌가? 

 그런 사고를 거쳐 수수로가 수술대를 치우고 시데로카 응원용 『박살내버려♡』 라고 쓰인 부채를 들었을 때, 훈련실의 문이 열리고 오늘의 주역 중 한 명이 발을 들어왔다. 


 시데로카다.

 수영복으로도 사용할 수 있을 세퍼레이트 타입 트레이닝복을 입고 있다. 파란색과 흰색의 시원한 옷차림에서 훤히 드러난 복근은 빠릿빠릿하게 긴장되어있고, 한걸음씩 걸을 때마다 핫팬츠 끝자락으로 삐져나온 대둔근이 탱글탱글 융기하는 모습은 구경꾼들의 시선을 고정시키기에 충분했다. 



"좋아 시데로카! 기대하고 있어~!" 


"상사라고 적당히 할 필요 없어!" 


"미노스가 네 어깨에 걸려있다!" 



 일제히 응원이 날아든다. 

 시데로카는 한 손을 들어 환호성에 답하고, 심판 히비스커스로부터 특별 주문한 대검을 받았다. 

 살상력이 있는 무기는 사용이 금지되었기 때문에, 훈련용 대검에 충격 흡수재를 둘둘 감겨 놓은 것이다. 말랑말랑하다. 이걸로는 때려도 때린다기보다 몽둥이로 밀어 날리는 것에 가까울 것이다. 



"푹신푹신하네요." 


"당연하죠! 이래도 위험할 정도라구요." 



 히비스커스는 볼을 부풀리며 대답했다. 



"박사님은 어떤 무기를 사용하시나요?" 


"그... 박사님은 맨손이래요. 사실 무기도 제대로 못 드니까요." 


"......왜 그러면서도 저와 싸우겠다고 했을까요?"



 시데로카는 고개를 갸웃했다. 

 고용주가 건강하지 않으면 자신의 고용 안정도 위태롭다. 잠이 부족하여 정신이 몽롱한 지휘관 밑에서 전투에 투입되고 싶지는 않다. 용병으로서의 책무를 수행하기 위해 시데로카는 물러설 생각이 없는 것 같다. 


 박사를 때려눕히고, 말을 듣게 하고, 건강하게 만든다. 

 근육도 한번 파괴되고 나서야 효율적으로 성장하는 거니까.



"꿍꿍이는 모르겠지만, 박사님은 아주 우수한 전술 지휘관이예요. 분명 뭔가 꾸미고 있을 거예요. 조심하세요." 



 히비스커스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심판이라는 입장이지만 히비스커스도 마음은 시데로카 쪽이다. 시데로카가 이긴다면 손수 조리한 최고의 건강식을 당당히 박사에게 먹일 수 있으니 그 또한 당연한 일이다. 



"방심하지 않겠습니다. 꼭 이겨서 박사님을 건강하게 만들게요." 



 시데로카의 선언에 (주로 의료부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폴리닉 등은 아직 경기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리고 훈련소의 분위기가 최고조로 높아졌을 무렵, 대전 상대가 찾아왔다.

 박사가 들어왔다. 

 여전한 후드, 코트, 흰옷에 바이저. 나이도 성별도 무엇 하나 알 수 없지만,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것만큼은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슬랙스에 싸인 다리는 한 발짝 걸을 때마다 부들부들 떨리고 있어 마치 갓난 짐승과도 같았다.



"박사, 부탁이니까 3초는 버텨!" 


"의료부 일 늘리지 마! 깔끔하게 져라!" 


"일하러 돌아가." 



 역베팅을 한 몇몇 외에는 박사를 응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정숙."



 박사는 주위를 둘러보고 말했다. 



"오늘 너희들의 전술 지휘관이 누구인지를 확실하게 보여주지. 나는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고 시데로카를 이길 것이다." 



 훈련실이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아무리 발버둥쳐도 박사가 일대일 육탄전에서 이길 수 있을 리가 없다. 하물며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겠다니 헛소리에도 정도가 있다. 


 하지만 지금까지 불가능하다고 여겨진 작전들을 가능하게 바꿔온 것이 박사라는 인물임을, 훈련실에 모인 이들 잘 알고 있었다.

 호기심이 서서히 기대로 변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둘은 훈련실 중앙에 마련된 특설 링에서 마주본다.

 사이에 선 히비스커스가 '그럼...'이라며 주위에 신호를 보냈다. 


 조명이 꺼지고 스포트라이트만이 무대를 비춘다.



"양 어깨가 매트에 닿은 시점에서 카운트를 개시해, 3카운트로 끝내겠습니다. 살상력이 있는 무기는 사용 금지입니다. 이상, 규칙을 지켜 공정한 경기를 해주세요." 



 히비스커스가 지켜보는 가운데, 양 선수가 악수를 했다.

 시데로카의 표정이 굳었다.



"이건――" 


"그럼, 경기 시작!" 



 땡땡땡, 징이 울렸다. 

 시데로카는 한 번 거리를 벌렸다. 박사는 유유히 멈춰선 채 도발하듯 손짓했다.


 시데로카는 조금 전 악수의 감촉을 의심하면서도 곧바로 승부를 내려 했다.

 달려드는 동시에 대검으로 박사의 몸통을 후려친다. 훈련용이라고는 하지만 중량이 있는 막대기다. 맞으면 쓰러질 것이고, 최소한 균형을 무너뜨리는 것만으로도 좋다. 

 둔탁한 소리가 울렸다.


 주위에서 경악의 소리가 나왔다. 


 누가 예상할 수 있었을까. 

 박사가 그 자리에서 미동도 하지 않고 그대로 대검을 몸통으로 받아내는 받아내는 것을. 

 손이나 팔도 아니고 몸통. 시데로카가 휘두른 대검은 박사의 옆구리에 맞았고, 그대로 딱 정지해 있었던 것이다. 

 비현실적인 광경에 모두가 할 말을 잃고 있었다.



"놀랐겠지."



 박사는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인공합성 중합젤을 듬뿍 사용한 충격 흡수 보디 아머다. 시데로카, 네가 아무리 힘이 세봤자 그 공격은 내게 통하지 않아." 



 상황을 이해한 관중석에서 야유가 터져나왔다. 



"역시 비겁한 짓거릴 준비해왔잖아!" 


"더럽다 박사!" 


"더럽다고?" 



 박사는 관중석을 돌아보고, 코웃음을 쳤다. 



"난 규칙을 지키며 정정당당하게 싸우고 있는데 뭐가 더럽다는 거지?" 


"방어구를 차는 건 비겁하잖아!" 


"방어구? 이건 내 일상복이다만? 내가 평소에는 안에 이걸 입고 다니지 않는다고 증명할 수 있는 사람 있나? 어엉?" 



 박사는 주눅들지 않고 뻔뻔하게 관객을 도발했다. 

 피로로 인해 입버릇과 정신 상태가 악화된 것 같다. 


 그 사이, 잠시 물러난 시데로카는 두뇌를 고속으로 회전시키고 있었다. 

 몸통... 아니, 옷에 둘러싸인 모든 부분은 특수갑옷으로 덮여있을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박사는 살상용 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아니기에 반칙패를 주장할 수도 없다. 

 시데로카는 대검을 내팽개쳤다. 



"핫!" 



 로우킥을 날린다. 

 무거운 무기를 버리고 몸이 가벼워진 포르테 용병의 일격은, 무기 못지않게 빠르고 날카로웠다. 

 그러나 시데로카의 다리는 박사의 허벅지에 닿자마자 기세가 꺾여 멈추고 말았다. 젤리가 잔뜩 들어간 자루를 차고 있는듯한 감촉. 시데로카는 물러나며 다리를 되돌렸다. 아까 걸어올 때마다 다리가 부들부들 떨렸던 건 이것 때문이었나. 

 계속해서 상단으로 발차기를 날리지만, 박사의 바이저에 때려박힌 다리는 다시 젤리같은 감촉에 막히며 통하지 않았다. 

 여기까지도 철저하군. 


 시데로카는 이윽고 다리를 되돌리고 다른 쪽을 축으로 회전하며, 박사의 오른팔을 잡아챘다. 

 타격이 먹히지 않는다 해도 관절은 커버할 수 없다. 이대로 쓰러뜨려―― 


 뚜둑, 하는 소리가 들렸다. 

 긴 장갑이 씌인 박사의 오른팔이 떨어져나와, 시데로카의 손에 들려있었다. 

 한 발짝 늦게 관중석에서 비명이 터져나왔다. 당황한 수수로가 다시 수술대를 준비하려는 것을 샤이닝이 제지하고 있었다. 



"어이쿠, 실례. 그건 페이크다. 의수지." 



 박사가 코트 사이로 멀쩡한 오른팔을 꺼내 팔랑팔랑 흔들어보였다. 진짜 손은 미리 빼놓고 있었고, 가짜 손을 내놓고 있었던 건가. 

 시데로카는 자신의 손에 떨어진 의수와 박사의 오른팔을 번갈아보았다. 꽤나 정교하다. 악수할 때 느낀 위화감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어째서 의수를? 

 바로 그 순간, 시데로카는 위험을 감지하고 손에 든 의수를 떨구려 했다. 하지만, 이미 늦어버렸다. 



"윽!" 



 시데로카의 몸이 움찔거리며 경직했다. 

 그대로 다리에 힘이 풀리고, 매트 위에 쓰러지고 말았다. 

 움직이지 않는다. 

 움직일 수 없었다. 



"저런, 정말 큰일이야! 뜯겨나간 의수에 들어있던 배터리에서 전류가 새어나온 것 같아! 저주파 전류라서 살상력은 절대로 없지만, 움직이기 힘들지도 모르겠어~~" 



 사지를 쭉 뻗은 채 쓰러지고 만 시데로카의 앞에서 호들갑을 떨며 수상쩍은 설명을 하는 박사. 

 주변에서는 이미 분노의 폭풍이 몰아치고 있다. 야유와 함께 페트병이나 신발, 활성 오리지늄 등등 잡다한 것들이 던져진다. 



"무, 물건을 던지시면 안돼요..." 



 히비스커스가 도망다니며 관중들을 말렸다. 



"졸렬한 짓거리만 해대다니!" 


"당연한 거 아닌가? 난 약하다. 약자가 강자를 상대하기 위해 천 가지 준비, 만 가지 계책을 마련하는 것은 지혜라고 하지 않을 수 없지!" 



 박사는 당당하게 말했다. 



"이치에는 맞네요..." 



 관람하던 와이후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 홍미영춘권도 힘의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박사님의 경우는 이걸 기술이라고 할지, 비겁한 술수라고 할지......" 


"싸움이란 대비의 결실이며, 승패는 싸움의 시작 전에 이미 결정되어있다. 박사를 보고 있자니 어떤 무장이 남긴 말이 떠오르는군." 



 아카후유는 유쾌한 듯 웃었다. 



 시데로카는 쓰러진 채 꿈틀거리고 있었다. 

 저주파 전류는 피부를 통해 근육에 작용한다. 뇌로부터의 전기신호를 덮어씌워 의지대로 움직일 수 없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카, 카운트 시작하겠습니다! 1!" 



 히비스커스가 매트를 두드린다. 



"윽...... 이...... 이런......" 


"하하하, 어떠냐? 나는 시합 시작부터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면서 내게 운동을 시키겠다니 백년은 이르지!" 



 박사는 그렇게 말하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어떻게 봐도 악당이다. 



"2!" 


"힘내라 시데로카!" 


"지면 안돼!" 


"근육을 믿어라!" 



 관중석에서 응원이 날아든다. 

 한심하긴! 시데로카는 자신의 근육을 질타한다. 

 지금까지 함께 살아온, 함께 고난을 거쳐온 근육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움직일 수 없는 것은 근육이 아니라 자신의 나약함 때문일 터. 

 그렇다. 이따위 전류에 뒤덮일 유대감이 아니다! 



"사......" 



 시데로카가 일어났다. 

 히비스커스는 카운트를 멈췄다. 양 어깨가 매트에서 떨어졌기 때문이다. 


 환성이 폭발했다. 

 시데로카는 온몸의 근육을 경직시키면서도 서서히 전류의 결박을 풀고, 천천히 일어나고 있었다. 

 의수를 잡은 채로 쥐어진 손가락을 하나씩 떼어내고, 마침내 의수를 집어던졌다. 

 전류에서 해방된 시데로카는 자유로워진 손을 몇번 쥐었다펴고, 주먹을 치켜올려 환호에 응답했다. 



"말도안돼...!" 



 박사의 여유로웠던 태도가 비로소 초조함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고작 의지만으로 이런 게 가능할 리가......" 


"제 근육을 그저 근육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주시죠." 



 시데로카는 일어서서 두 주먹을 하늘에 드높이 들어올렸다. 이제 방해할 것은 없어졌다. 시데로카와 근육은 일심동체, 시데로카가 움직일 때 근육 또한 움직이는 것이다.

 그리고 가슴을 당당히 펴고, 승모근이, 상완이두근이, 온갖 근육이 솟아올라 생명의 맥동을 과시했다. 

 링에 지금 역삼각형의 미가 현현한다. 

 더블 바이셉스!



"박사님께서 어떤 비열한 수를 쓰시든 저와 제 근육은 그것을 능가합니다. 힘이란 지식도 지혜도 아닌, 근육입니다!" 



 시데로카의 땀으로 젖은 보디가 스포트라이트에 비춰져 요염한 빛을 만들어낸다. 

 마치 고대 미노스의 조각상같은 아름다움이다. 



"뇌는 근육이고 팔도 근육. 즉 나는 온몸이 근육이고, 당신보다 현명한 것입니다!"



 시데로카는 시데로카대로 흥분한 나머지 무슨 말을 하는건지 그녀 스스로도 모를 것이다.



"대체 어떻게 되어먹은 뇌근육이냐... 하지만 내 계책은 아직 남아있다!" 



 박사가 외쳤다. 



"아뇨, 당신의 패배입니다"



 시데로카는 더블 바이셉스를 사이드 체스트로 전환하며 말했다.



"저는 온몸의 뇌로 생각했습니다. 아무리 젤 아머를 두르고 있어도, 충격량은 0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자리에서 일절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만으로도 근육이 필요할 겁니다." 


 

박사는 경기 시작부터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다.



"......그렇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박사가 착용한 젤 아머는 젤로 뒤덮은 돌 갑옷을 내가 아츠로 일일이 움직여주고 있던 것이었다. 그렇게 정밀한 동작은 할 수 없었기에 걸음걸이는 어색했고, 시합이 시작되면 그 자리에 고정해 두는 것 밖에 할 수 없었다.



"미안하군, 박사." 



 이렇게 들켜버린 이상, 계속할 순 없을 것이다.

 나는 아츠를 풀었다. 



 곧바로 제어를 잃은 돌과 젤 아머의 무게를 순식간에 받은 박사가 "으악" 소리를 지르며 그 자리에서 찌그러졌다. 

 무너지는 돌더미에 젤 아머가 터지고 안에서 젤이 새어나왔다. 돌과 모래, 젤로 뒤섞여 범벅이 된 박사가 바닥에 찌부러진 채 움찔움찔 떨고 있다. 

 히비스커스가 쏟아진 젤을 피해 조금 떨어진 곳에서 카운트를 잡았다.



"1...... 2...... 3......! 시합 종료입니다!" 



 한 치의 불호도 없는 대환성 속에서, 승자 시데로카는 망토를 두른 채 주위에 손을 흔들었다. 



"고마워요, 여러분. 고마워, 근육!" 



 어디선가 실려온 벨트를 걸친 시데로카는 스포트라이트 아래 인터뷰를 받는다.



"승리의 비결은?" 


"근육...... 일까요?"



 그 후 찌그러진 원석충처럼 되어있던 박사는 수수로가 가져온 간이 수술대에 실려 일단 샤워실로 끌려갔다.


 이렇게 오후의 결투는 막을 내렸다.




*** 




그렇게 박사는 시데로카의 지도 아래, 규칙적이고 건강한 식사와 수면과 운동 시간을 확보하게 되었다. 분명 잘된 일이겠지. 


시합 얼마 전에 있던 일이다. 

박사에게서 승부조작에 협조를 요청받았을 때, 나는 상당히 망설였다. 나도 박사가 지는 게 모두에게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승낙하고 말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나는 조금 기뻤는지도 모른다. 

내 아츠를 그렇게 쓸데없는 이유로 사용한 적은 지금까지 없었다. 밥, 믿을 수 있겠나? 난 적을 쓰러뜨리기 위해서도 아니고,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도 아닌, 박사의 운동하기 싫다는 생떼를 이뤄주기 위해서 옥토와 바위 친구들의 힘을 빌린 거야. 

우리가 갈 길은 아득히 멀다. 그러나, 만약 생명이 있는 동안에 「평화」라고 하는 것에 도달한다면...... 그것은 분명히 그러한 광경이겠지. 

그렇게 생각하게 해준 로도스와 나는 앞으로도 걸어가려고 한다. 

그 길이 네가 개척한 미래와 잇닿게 될 날을 기대한다. 


좋은 소식이 있기를 기다리고 있다. 

부디 건강하게 지내길 바란다. 



머드락이. 







※ 일러스트 출처: https://www.pixiv.net/artworks/99994602 

※ 이 소설은 원작자 「鯨と柊님의 허가를 받고 번역하였습니다. 

※ 원문출처: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2175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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