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짤 출처는 요기: https://arca.live/b/arknights/94273062?target=all&keyword=%EB%A7%81+18&category=%EC%A7%A4&p=1


벌써 10화째가 된 링 눈나 애호 소설임미다. 


1. 항상 분에 넘치는 관심 보내주셔서 정말 감쟈함. 링 눈나의 예쁜 미소와 명붕이들의 칭찬 한 마디 한 마디가 오늘도 피곤한 몸을 이끌고 글을 쓸 원동력이 됨미다. 늘 읽어주는 명붕이들한테 내가 정말 감사하고 있다는 거, 알아줬으면 좋겠다. 


2. 30~40화쯤 완결치려고 생각 중인데, 그때까지 따라와줄 명붕이들이 있을까 좀 걱정되네. 아마 해피엔딩을 정사로 한 멀티엔딩으로 내지 싶어.  


3. 명붕이들이 써 주는 댓글은 항상 하나하나 읽고 있어. 솔직히 요즘은 댓글 보는 맛에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님. 내가 쓴 글 보고 재밌다고 해 주는 명붕이들 볼 때마다 얼마나 행복한지 몰라. 칭찬만 듣는 건 아니고, 피드백이나 비판도 새겨들으니까 댓글 많이많이 달아줘.  


4. 야설은 분량이나 내가 그 오퍼레이터를 얼마나 알고 있느냐에 따라서 연재 주기가 달라지지만, 이 소설만은 격일연재로 쭉 갈 생각이야. 아마 운 좋으면 내일, 그럭저럭이면 모레, 나쁘면 주말에 울피안-글래디아 야설 올라갈 예정 


5. 이번 글 포함, 앞으로 3화 정도 슈를 주역으로 진행할 생각이야. 내가 링 다음으로 좋아하는 쉐이 오퍼레이터가 슈기도 하고. 회서리 이벤트 스토리가 내 글 전개랑 상당히 깊은 관련이 있거든. 물론 그 떡밥도 천천히 풀어 볼 예정이고. 그러니까 좀 지루해도 참고 따라와 주길 간곡히 부탁할게. 


잡설이 길었네, 그럼 오늘 글도 즐겨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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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천년기, 1102년 봄. 


5월 11일 10:00. 


염국 대황성. 



수 시간에 걸쳐 이어진 추격전 끝에, 나와 링은 결국 슈에게 잡히고 말았다. 


다행히 땅에 심기지는 않았지만….



“...그럼 어디, 형부.” 



아니, 다행은 무슨. 


차라리 논에 거꾸로 처박혀서 우렁이랑 몸의 대화를 나누는 게 더 나을 뻔 했다. 



“한번 말해봐. 도대체 왜 도망친 거야?” 



슈의 집, 거실. 


예스러운 마룻바닥 한복판에서, 앉은뱅이 밥상 하나를 앞에 둔 채. 


가부좌를 틀고 나를 노려보는 처제의 살벌한 눈빛에, 나도 모르게 마른침이 넘어갔다. 


도대체 왜 긴장이 되는 거지. 


주변에 결혼한 친구들 보면 다 처제랑 사이좋게 지내던데. 


처제가 나보다 한 오백 배쯤 더 산 초인이라 그런가.



“대답 안 해? 보리밭에 심어줘? 마침 어제 비 와서 지렁이들이 잔뜩 기어다니고 있을 텐데.” 



어째서일까. 


내용만 뜯어보면 귀여운데, 시라쿠사 마피아의 협박보다 더 무섭다. 


손이 파르르 떨리고. 


내 동요를 느끼기라도 한 건지, 내 무릎 위에 앉아 있던 링 버블이 코트 안으로 파고든다. 


그녀의 따스한 체온에, 조금이나마 떨림이 잦아들었다. 



“...링이 무서워하니까.” 


“아니, 내가 언니를 잡아먹기라도 할까 봐? 


“그건 아닌데.” 


“형부, 언니한테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는 모르겠는데….” 



이마에 손을 짚고 한숨을 푹 내쉬는 슈.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야. 그냥 언니를 좀 갱생시키려고 할 뿐이지. 알잖아. 언니 생활 습관 안 좋은 거. 과음이나 노숙은 기본이고, 가끔 안 씻거나 흙바닥에서 뒹굴거나….”


“알아.” 



링 버블이 항변하듯 코트 아래에서 짧뚱한 발로 나를 툭툭 쳤지만, 이는 부정할 수 없는 부분이다. 


내 대답에, 슈가 방긋 웃었다. 



“응,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했어. 그럼 실례지만, 형부. 언니를 넘겨주겠어? 잠깐 자매끼리 대화 좀 하려고. 식 올리기 전에, 내가 최대한 사람 만들어서 돌려줄-” 


“...하지만 갱생은 안 돼.” 


“...뭐?”   


“갱생한 링은 링이 아니야.” 


“...그대여, 그게 무슨 뜻이야?” 



슈가 조금 전보다 두 배는 더 싸늘해진 시선으로 노려보고. 


코트 아래에서 고개를 빠끔 내민 링 버블까지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올려다본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나도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래, 슈. 네 말대로 링은 방탕하지. 가끔은 방종을 즐기기도 하고. 장소를 가리지 않고 시를 쓰거나, 찬바람 부는 데서 잠들거나. 곁에서 지켜보고 있으면 걱정될 때도 있어.” 


“...그럼.” 


“하지만 난 그런 링이 좋단 말야.” 



멍하니 쳐다보는 링 버블을 꼭 끌어안으며, 슈의 시선을 정면으로 맞받는다. 



“바람 가는 대로, 발 닿는 대로 자유로이 떠돌며 살 때 링은 가장 즐거워해. 그런 초탈한 모습에, 난 반한 거야. 주변에서 링을 어떻게 바라보든, 난 신경 안 쓴다고. 이해해, 슈?”  


“...하.” 



솔직히 무섭다. 


슈가 나쁜 아이가 아니라는 건 잘 알겠지만, 일단 덮어놓고 무서워. 


하지만 아무리 두려워도, 사람에게는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내게 있어서는 링이 바로 그 부분이고. 


처음 그녀와 하룻밤을 보낸 뒤, 개인적으로 다짐한 게 두 가지 있다. 


평생 링만을 바라보기로. 


그리고 그녀를 사랑하는 만큼이나, 그녀가 살아가는 방식을 존중하기로. 



“난 링이 좋아. 다른 사람들이 손가락질하는 링만의 삶의 방식도 정말 좋아해. 그러니까, 이렇게 부탁할게.” 


“......” 



나는 그녀의 어떤 모습이든 좋아할 자신이 있다. 


그렇기에. 


링이 항상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그녀가 가장 자연스럽고 즐거워하는 일을 하며 있어 주었으면 한다. 


슈가 그녀를 갱생시킬 수 있는지의 여부는 둘째치고. 


설령 링이 갱생해 단아한 요조숙녀가 된다고 해도, 분명 그녀는 이전처럼 행복하지는 않을 터다. 


그러니까. 



“내 링을 뺏어가지 말아 줘.” 



그런 마음을 담아, 고개를 푹 숙였다. 


알고 있다. 


이런 태도가 형부로서 불합격점이라는 것 정도는. 


그래도 절대 못 물러나. 


슈가 우리 둘의 관계를 반대하게 되는 한이 있어도. 


그렇게 날 선 침묵이 내려앉은 지 얼마나 되었을까. 



“하, 이럴 줄 알았어. 또 나만 나쁜 사람이지.”  



씁쓸한 한숨과 함께, 나직한 중얼거림이 내 귓가를 두드렸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고개 들어. 정말 링 언니랑 천생연분이네.” 



그 말에, 다급하게 얼굴을 치켜들자.


어이가 없다는 듯. 


그러나 한편으로는 더없이 후련하다는 듯 미소짓고 있는 슈가 있었다.  


그 미소에, 조금이나마 마음이 편해졌다. 



“...고마워, 슈.” 


“나한테 고마울 게 뭐 있어. 형부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나는 존중해야지. 어쨌든 언니랑 같이 살아야 하는 건 내가 아니니까.” 


“...응.” 


“그러니까 어깨 펴. 형부는 잘못한 거 없어. 오히려 그 동안 언니를 저 모양으로 내버려둔 내가 문제지.” 



이건 위로일까, 아니면 링을 돌려까는 걸까. 


해석의 여지가 갈리는 말에, 내가 잠시 짱구를 굴리는 사이. 


슈의 시선이, 내 품에서 축 처져 있는 링 버블을 향했다. 



“더 뭐라 안 할 테니까, 언니도 내숭 그만 부리고 돌아와.” 


“...내숭?” 



이건 또 뭔 소리일까. 


한순간, 내가 어리둥절해진 사이. 


내 가슴께에서 작게 펑 소리가 남과 함께. 


링 버블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헐거워진 내 팔 안쪽에서 큰 링이 뿅 하고 나타났다. 


느닷없이 달라진 무게감에 당황하는 사이, 링이 부끄럽다는 듯 내 시선을 피하고. 


슈가 깔깔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형부, 그래도 아직 언니에 대해 다 알지는 못하는구나. 가끔 저렇게 약한 척을 할 때가 있다니까.” 



아하. 


그런 거였구나. 


대충 상황 맥락이 파악되니, 개구쟁이 같은 미소가 절로 떠오른다. 



“그러니까, 내가 지켜줬으면 했던 거였다?” 


“...으, 부끄러우니까 말하지 마….” 


“그래서 만족했어?” 


“...나 화 낼 거야.” 



말은 그렇게 해도, 몸은 솔직하구만. 


링 버블일 때처럼 얌전히 안겨 있는 것도 그렇고. 


꼬리가 마구 날뛰는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입꼬리가 제멋대로 올라가려고 하고 있다. 


이런 솔직하지 못한 모습도 신선해서 귀여운데. 


그래도 이대로 내버려 두면 진짜로 삐질지도 모르니까. 


조심스레 그녀를 끌어당겨 안고, 최대한 상냥하게 머리를 쓰다듬었다. 



“고마워, 링. 널 지킬 수 있는 기회를 줘서.” 



진심이었다. 


누가 뭐래도, 항상 나는 지켜지는 입장이었으니까. 


한 번쯤은 나도 그녀를 내 뒤에 숨게 해 주고 싶었는데. 


소원성취 한 번 제대로 한 셈이지, 뭐. 


그러자 언제 수줍어했냐는 듯, 헤실헤실 풀어진 표정으로 내 목덜미에 얼굴을 묻는 링. 



“...응. 나도. 슈에게 당당하게 맞서는 그대의 모습, 정말….”  



그때. 



“그래그래. 두 사람 금슬 좋은 건 잘 알겠으니까, 꽁냥거리는 건 좀 미뤄주면 안 될까?” 



망각되기 직전이었던 슈가 손뼉을 짝짝 쳐 자신의 존재감을 상기시켰다. 



“...왜?” 


“음, 언니한테는 부탁할 것도 좀 있고. 무엇보다, 형부랑 단 둘이서 얘기가 좀 하고 싶어서.” 


“...슈야, 아무리 네가 내 소중한 동생이라도 이 사람을 뺏어가는 건….” 


“이 언니가 정말, 누굴 불륜 계획범으로 만들고 있어. 그런 짓 안 하니까 안심해.” 


“......” 


“일단 따라와. 보면 알 테니까.” 



—---



몇 분 뒤. 


나는 꼬리에 보따리를 매달고, 밀짚모자를 눌러쓴 슈와 함께 둑방을 걷고 있었다. 



“...그래서 꼬리에 그건 뭔데?” 


“어구야. 낚시용 도구. 같이 점심거리나 낚으러 가자.” 


“링은?” 


“언니? 언니밖에 못 하는 일이 하나 있어서, 좀 맡기고 왔어.” 


“나도 링이랑 같이 일 하면 안 돼?


“응, 안 돼. 애초에 평범한 인간이 할 수 있는 게 아냐.”  



그런 건가. 


기분이 급격히 침울해진다. 


내가 유유자적 낚시나 할 동안, 링은 고된 노동을 하며 땡볕 아래서 고생해야 한다니. 


이건 뭐, 아내 적금 빼서 빠칭코 하러 다니는 기둥서방도 아니고…. 



“표정 풀어도 돼. 언니한텐 쉬운 일이니까.” 



축 처진 내 등을 팡팡 치며, 슈가 키득거렸다.  



“원래 내가 수백 년 동안 하던 일인데, 최근에 좀 힘에 부쳐서. 맏언니한테 어리광 좀 부렸어. 미안해, 형부.”  

 

“...아냐. 그럴 수 있지.” 



그래. 


가족끼리 부탁 좀 할 수도 있는 거고. 


곁에 링이 없다는 게 많이 허전하긴 하지만, 잠깐 정도라면 어떻게든 되겠지 뭐.



“기운 내. 형부도 언니도 만족할 만큼, 맛있는 한 끼 식사로 보답할 테니까.” 


“응. 린수, 큰 놈으로 잡아야겠네.” 

 

“그래야지. 안 그래도 지금 가는 연못에서 정말 큰 린수가 낚인대.” 



그렇게 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도착한 연못.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 듯, 근처에는 풀이 가득히 우거져 있고. 


개구리밥과 물풀이 군데군데 떠다녔다. 


좀 작기는 하지만,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연못이라기보다는 늪에 가까운 공간이었다. 


내가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는 사이, 슈가 꼬리에 묶어 두었던 짐들을 풀기 시작했다. 



“이건 형부랑 나랑 앉을 간이 의자고, 이건 입 심심할 때 먹을 간식. 그리고 이건 미끼랑 떡밥.” 



이런 식으로 미주알고주알 설명하는 버릇은 링이랑 닮았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슈가 내게 낚싯대를 건넸다. 


내가 상촉에서 링에게 만들어 줬던 것과 비슷한, 대나무 낚싯대였다. 



“자. 이거 형부가 써.” 


“그래. 그냥 하던 대로 하면 되지?” 


“오, 형부 민물 낚시 할 줄 알아?” 


“어렸을 때 많이 했던…것 같아.” 


“같아는 뭐야.” 


“사실 나, 기억을 한 번 잃어버렸거든. 그래서 잘 생각이 안 나.” 


“...아. 미, 미안.” 


“아냐. 이젠 그냥 무덤덤해. 신경쓰지 마.” 



입은 좀 거칠어도, 착한 아이구나. 


나는 피식 웃으며 슈가 펴 준 간이 의자에 앉아 바늘에 미끼를 끼우고, 낚싯대를 던진 뒤. 


바늘이 떨어진 곳 근처에 떡밥을 조금 뿌렸다. 


그리고 몇 초나 지났을까. 


내 낚싯대가 낭창하게 휘어지더니, 손아귀에 강한 힘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오, 히트.” 


“...? 벌써?” 



이런 릴이 없는 낚싯대를 쓸 때는, 힘 조절과 타이밍이 중요하다. 


린수의 힘이 빠질 정도로, 그러나 실이 끊어지지는 않게.


적당히 밀고 당기며 저항을 약화시킨 뒤, 어느 정도 힘이 빠졌다 싶으면….


단번에 낚싯대를 당겨 물 밖으로 끌어올려야 한다. 


팔뚝에 힘을 불어넣고, 있는 힘껏 낚싯대를 젖히자. 


마구 파닥거리는 넓적한 린수 한 마리가 딸려나왔다. 



“월척이요…는 아니네.” 



금빛으로 반짝이는 비늘은 예쁘지만, 사이즈는 평범하다. 


내가 약간 실망하는 사이, 슈가 그 린수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이야. 금린어잖아? 나도 실제로 보는 건 처음인데.” 


“귀한 거야?” 


“응. 옛날에는 이게 잡히면 무조건 황제한테 진상해야 했대.” 


“오.” 


“형부…의외로 재주가 많구나? 언니 굶길 걱정은 안 해도 되겠는데. 좋아. 모처럼 요리할 보람이 있겠어.” 



그렇게 칭찬인지 뭔지 모를 말을 주워섬기며 내 등짝을 팡팡 두드린 슈는, 이내 린수를 바구니에 넣고 다시 낚싯대로 시선을 돌렸다. 


뭐, 좀 심심하긴 하지만….


니엔이나 왕의 상견례에 비하면, 이 정도는 양반이다. 


오랜만에 보는 손맛이 꽤 짜릿하기도 했고. 


그렇게 내가 다시 미끼를 바늘에 끼우고 있을 때. 


슈가 느닷없이 입을 열었다. 



“형부. 마냥 기다리기도 심심한데, 우리 얘기나 좀 할까?” 


“...? 그래.” 



기다린 지 얼마나 됐다고 저러나 싶기도 했지만, 딱히 문제 될 건 없겠지. 


어차피 나도 슈랑 한 번 제대로 이야기해보고 싶던 참이니까.


그런 생각에 고개를 끄덕이자, 슈가 귀를 쫑긋거렸다. 



“혹시 그거 알아? 우리 형제자매들은 대부분 연애 경험이 있어.” 



몰랐다. 



“총웨도?” 


“응. 그 오빠는 두세 번 정도.” 


“시도?”


“애석하게도 시는 없어.” 

“그럼…설마 니엔도?” 


“니엔은 한때 꽤 활발하게 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하도 옛날이라 가물가물하네.” 



니엔 그 정신나간 선머슴한테 애인이 있었다고? 


그것도 꽤 활발하게 연애를 했었다고? 


좀 충격인데. 


그럼 나는 왜 링을 만나기 전까지 곁에 아무도 없었던 거지?  


…아냐, 이런 생각은 그만두자.


어쨌든 지금은 링이 있으니까. 


자꾸만 내 마음을 갉아먹는 불편한 진실을 애써 외면하고 있자니, 슈가 쿡쿡 웃었다. 



“그런데 링 언니만큼은 줄곧 예외였단 말이지. 아무리 잘생긴 남자가 구혼을 해도, 아무리 재물이 많은 사람이 와서 고백을 해도. 그냥 본체만체하고 술이나 마시다 나자빠져 자기 바빴거든.” 


“링답네.” 


“응. 그래서 난 속으로 생각했지. 아, 저 언니는 평생 혼자 살려나 보다. 그런 것도 나름 낭만있고 괜찮네. 최근에는 아예 언니가 연애를 할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잊어버리고 있었고.” 



아하. 


슈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지 알 것 같다. 



“그런데 내가 나타났다 이거지.” 


“바로 그거야. 역시 이해가 빠르구나.” 



짝짝짝, 박수를 치는 슈. 


아까부터 느낀 건데, 리액션이 좋아서 대화할 맛이 난단 말이지. 



“처음 좌락한테 언니가 남자를 데리고 다닌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놀랐어. 그 돌부처 같던 링 언니가? 남자를? 왜?” 


“그럴 만 하지.” 


“응. 그런데 조금 생각해 보니까, 정말 기쁜 거야. 누가 뭐래도, 정말 오랜만에 생긴 가족의 경사인걸. 마침내 그 언니가 사랑에 눈을 떴구나. 이제야 인간 세상의 참 맛을 깨닫겠구나. 안 되겠다, 밥이라도 한 끼 성대하게 대접하면서 축하해 줘야지.” 


“마음만으로도 고마운데.” 


“아하하, 난 빈말은 안 해. 이따 점심때 기대해. 아무튼, 그래서 좌락에게 부탁했지. 형부랑 언니를 초대해 달라고.” 



그런 내 욕심 때문에 두 사람의 여행을 잠깐 방해했어, 미안해. 라며 겸연쩍게 웃는 슈. 


하지만 딱히 불쾌하지는 않았다. 


애초에 나도 링의 가족-왕 같은 또라이만 아니면-을 만나는 건 언제든 환영이고.


무엇보다 순수하게 축하해주고 싶다는 슈의 그 마음이 정말 고마웠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니엔마냥 입으로는 응원한다면서 손으로 방사성 훠궈를 처먹이진 않으니까. 



“그래서? 실제로 보니까 어때?” 



마침 온 입질에, 낚싯대에 힘을 주며 묻자. 


슈가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 난 처음에는 형부가 엄청 대단한 남자겠거니 했어. 언니를 휘어잡을 만큼 강인한 전사거나. 아니면 언니를 매혹시킬 만큼 뛰어난 문장을 쓰는 시인이거나. 아무튼 비범한 인물일 거라 생각했지.” 


“그런데 까 보니 그냥 평범한 인간이었다 이거구나. 헤, 실망시켜서 미안하네.” 


“아냐, 아냐. 말이 좀 엇나갔는데, 내가 형부에게 받은 첫인상은 ‘평범하게 좋은 사람’이라는 거였어.”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잡힌 린수를 바구니 안에 넣으며 의아하게 쳐다보자, 슈가 귀를 쫑긋거리며 설명했다. 



“언니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존중하는 사람이네. 때때로 겁을 집어먹기도 하지만, 그래도 언니를 위해서 당당하게 위협에 맞서는 사람이고. 언니의 행복을 자신의 행복과 동일시할 수 있는 사람이구나. 언니와 같이 있는 형부의 모습을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 


“...이상한 사람이란 생각 안 들든?” 


“물론 처음에야 그렇게 생각했지. 세상에, 어느 형부가 처제 얼굴을 보자마자 냅다 꽁무니를 빼?” 


“야, 그건 아니지. 그런 식으로 치면, 어느 처제가 형부 앞에서 언니를 그렇게 닦달하냐?” 



내 말에 깔깔거리며 낚싯대를 들어올리는 슈. 


힘차게 물에서 끌어올려진 바늘 끝에, 조금 전 내가 잡았던 금린어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오, 나도 잡았다! 봐, 형부! 금린어야! 오늘 어복 터졌는데? 형부 덕분인가?” 



잔뜩 흥분한 슈가 그 바늘 끝의 린수를 잡아채더니, 내게 들이밀며 활짝 웃었다. 


별거 아닌 물고기 한 마리에 소탈하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어쩐지 귀여우면서도….


역시 링의 동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내적 친밀감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아무튼, 난 정말 기뻐. 형부가 좋은 사람이라서. 오히려 언니한테 맡기기엔 아까운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건 아냐, 슈. 링이 나한테 과분하지.”   

 

“글쎄? 옛날에 링 언니가 술 먹고 뭔 짓 하고 다녔는지 들으면 생각이 바뀔걸?” 



얼굴에 장난기를 가득 띄운 채, 짓궃기 그지없는 말투로 링의 이런저런 흑역사를 풀어 놓는 슈. 


뒷담화라고 하기에는 너무 해맑은 그녀의 표정에, 나도 모르게 마음이 한없이 편해진다. 


세상에, 쉐이 형제자매들의 상견례는 다 기괴하고 어려울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마음 편한 형부-처제 대면이라니. 



“음, 그 정도는 익숙해.” 


“...정말? 형부, 인내심 되게 강한 사람이네.” 


“오히려 로도스에서 링이 뭐 했는지 알면 네가 놀라겠는데.” 



그렇게 링을 입방아 위에 올려 놓고, 슈와 이야기꽃을 피우며 시간을 보냈다. 


그녀의 맑은 웃음소리와, 어쩐지 할머니가 연상되는 푸근한 리액션 덕분에 심심할 틈 따윈 없었다. 


좀 한가하다 싶으면 낚여 올라오는 린수도 한 몫 했고. 


그렇게, 해가 중천에 뜨고. 


텅 비어 있던 슈의 낚시 바구니가 린수로 가득 찼다. 



“슬슬 돌아갈까?” 


“응. 먹을 만큼은 잡았으니까. 딱 좋아.” 



다시 짐을 보따리에 싸, 슈의 꼬리에 묶고. 


돌아오는 길. 



“...형부, 혹시 이런 이야기 알아? 바람을 사랑했던 부자 이야기.” 



슈가 뜬금없이 그런 말을 했다. 



“아니. 태양이랑 바람이 나그네 옷 벗기기 내기한 이야기는 아는데.” 


“어유, 참. 그거 말고.” 



잠시 키득거리며 손사래를 친 슈는, 이내 진중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돌아보았다. 



“그럼, 한 번 들어 볼래?” 

“응.” 


“옛날에, 어떤 부자가 바람을 사랑했대. 따스한 봄 바람도, 시원한 여름 바람도. 선선한 가을 바람도. 전부 너무 사랑스러워서, 평생 곁에 두고 싶을 정도로.” 



저런. 


이상성욕에도 정도라는 게 있는데. 


문득 떠오른 그런 생각을 재빨리 지우며, 슈의 이야기에 집중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커다란 대궐을 짓고 바람을 가두려고 했대. 그런데 그게 되냐구.” 


“그렇지.” 


“아무리 노력해도 담벼락만 흝고 빠져나가는 바람을 보면서, 부자는 절망했대.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어. 바람에 진심이었거든.” 


“...응.” 


“그 다음에는, 악단을 불러 잔치를 열고 바람을 유혹하려고 했다는 거야. 악단의 연주를 들은 바람이 곁에 머물기를 기대하면서. 하지만 어림도 없었지. 바람은 그저 노랫소리를 세상에 퍼뜨려 줄 뿐, 여전히 제 갈 길을 재촉할 뿐이었어.” 



듣고 있기만 해도 딴지가 걸고 싶어지는 이야기였지만, 나는 차마 입을 열 수 없었다. 


담담히 이야기를 털어놓는 슈의 표정이 어딘가 서글퍼 보였기 때문이었다. 



“제사도 지내 보고, 바람이 부는 언덕 위에 돈을 싸 들고 가 애걸도 해 봤대. 하지만 그 어느 것도 소용이 없자, 부자는 절망했어. 그리고 마침내 깨달았지.” 


“...뭘?” 


“바람은 무슨 수를 써서도 붙잡을 수 없는 존재라는 걸. 바람의 곁에 있고 싶다면,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는 걸.” 


“......” 


“그래서 부자는 모든 걸 버렸어. 돈도, 집도, 가족도. 그리고 정처없이 걸었지. 바람을 따라서. 바람이 끝나는 곳을 향해.”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그저 귓가를 쓰다듬는 한 줄기 바람에 의지해, 힘겹게 한 걸음씩. 



“그 기약 없는 여행의 종착지에서, 부자였던 남자가 뭘 발견했게?” 


“아무것도 발견 못 했을 것 같은데.” 


“...맞아.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었어.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바람은, 처음부터 그가 사랑해서는 안 되는 존재였던 거야. 돌아가고자 해도, 이미 남자의 몸은 너무나 쇠약해져 있었지.” 



그렇게 남자는, 쓸쓸하게 끝을 맞이했어. 


서글프게 이야기를 끝맺는 슈. 


보통 옛날이야기라 함은, 둘 중 하나다. 


교훈적이거나, 아니면 감동적이거나. 


하지만 어느 쪽이든, 대부분의 옛날이야기는 해피엔딩으로 끝난다. 


대부분의 청자가 어린아이라는 점을 고려해서기도 하지만, 그 편이 작품의 메시지를 강조하기 좋기 때문이다. 


악인은 벌을 받고 선인은 행복하게 사는 권선징악이라던가.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그녀가 들려준 이야기는 옛날이야기로서 낙제점이었다. 

 

교훈도, 감동도, 해피엔딩도 없는. 


하지만. 



“...무슨 뜻인지 알겠어. 너는, 나를 그 부자에. 그리고 링을 바람에 빗대고 있는 거구나.” 



이제 와서 경고라도 할 셈일까. 


너는 링을 사랑해서는 안 되는 존재이며, 아무리 발버둥쳐 봤자 결국 허망한 결말을 맞을 뿐이라고. 


그런 이야기라면 이미 질릴 만큼 들었다. 


내가 딱히 신경쓰지 않는다고 말하려던 찰나. 


슈가 선수를 쳤다.  



“...원래라면, 그랬겠지.” 



원래라면? 


그건 또 무슨 소리지. 


뜻밖의 화두 전환에, 나도 모르게 미간이 찌푸려진다. 


그런 나를 보며, 살풋 웃는 슈.



“원래라면 있지, 이 이야기를 들려주고 넌지시 충고할 생각이었어. 결국 인간이 쉐이를 사랑한다는 건 그런 거니까. 둘 중 한 쪽이 상처입기 전에 좋게 마무리짓는 편이 좋다고.” 



저번에 총웨도 비슷한 소리 했다던데. 


누가 동생 아니랄까 봐. 



“그런데?” 


“오늘 보고 알았어. 형부는, 제 3자인 내가 이래라저래라 하는 게 실례일 정도로 언니에게 진심이구나. 그리고 언니도 마찬가지구나. 하는 걸.” 


“......” 


“알고 있겠지만, 쉬운 사랑은 아닐 거야. 세상이 욕할지도 모르고, 당신의 수명이 발목을 잡을 수도 있지. 둘 모두 무수히 상처입고, 아파하게 될 거야.” 


“각오는 되어 있어.” 


“응. 이제는 나도 알아. 그러니 훈계는 접어둘게. 참견하거나 잔소리하고 싶은 것도, 결국에는 내 욕심에 불과하니까.” 



눈이 부실 정도로 맑은 하늘 아래. 


사방에 펼쳐진 황금빛 보리가 바람에 물결치고. 


싱그러운 초목의 냄새가 코 끝을 장난스레 간질이며. 



“대신 몇 가지 이야기하게 해 줘.”   


“뭔데?” 



밀짚모자를 꾹 눌러쓴 슈가, 생긋 입꼬리를 올리며 나를 돌아본다. 



“먼저, 언니랑 만나 줘서, 정말 고마워. 언니가 사랑한 사람이 형부여서 정말 다행이야.” 


“...슈.” 



그녀의 입에서 새어나온 한 마디는. 


내가 링의 곁에 선 이후 처음 들어 보는 인정이었다. 


왕은 우리의 관계를 이용하려 했고. 


총웨는 불안해했으며. 


니엔은 덤덤하게 넘어갔다. 


그 누구도, 우리를 축복해 주지 않았다. 


예상한 바이기도 했고. 


어차피 링만 옆에 있다면,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하든 딱히 신경이 쓰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언니를 잘 부탁할게. 내가 언니나 형부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언제든 말해줘. 힘 닿는 데까지 열심히 도울 테니까.” 



분명히 그랬는데. 


이제 와서. 


상냥하면서 부드러운, 진심으로 기쁘다는 듯한 슈의 미소에. 


여행을 시작한 후 거의 처음으로, 우리를 적극적으로 응원해 주는 그녀의 동족을 만났다는 사실에. 


말문이 막힐 만큼 가슴이 따스해지는 건. 



“마지막으로, 형부.” 


“응.” 



그리고 나도 모르게.


이런 동생이 곁에 있어서 링이 그렇게 상냥한 사람이 된 건지, 아니면 링의 동생이기에 슈가 이렇게 착한 아이로 자란 걸까 하는. 


쓸데없는 고민을 하게 되는 건. 


도대체 어째서일까. 


어느 쪽이든, 나로서는 답할 수 없는 질문이었다. 


아마 그녀들조차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르지. 


그저 단 하나 확실한 것은. 



“우리 가족이 된 걸, 진심으로 환영해.” 



쏟아지는 햇살처럼 온화하게 미소지으며, 나를 향해 장난스레 고개를 숙이는 너.


너처럼 착하고 사려깊은 아이가 링의 동생이어서. 


그리고 너 같이 말이 잘 통하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내 처제여서.  


정말, 말로는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든든하고 기쁘다는 거. 



“...응원해 줘서 고마워, 슈. 반드시, 링을 행복하게 해 줄게.” 



그런 네 마음에 보답이랍시고 내놓을 수 있는 게 뻔한 멘트뿐인 건 좀 부끄럽지만. 


이런 멘트가 뻔해진 데는 다 이유가 있는 법인걸. 


모든 사람이 이런 상황에서 신박하고 근사한 대답을 하고 싶어하지만. 


정작 이 정도로 가슴 벅찬 순간을 맞이하면, 뇌가 굳어 판에 박힌 대답밖에 내놓을 수 없는 것을. 



“응. 믿고 있어. 그래도 언니만 행복하게 하지 말고, 형부도 같이. 꼭 행복해져, 아니면 많이 슬플 거야.” 


“...응. 약속할게.” 



하지만 마음만은 충분히 전해졌다는 듯, 곁으로 다가온 슈가 내 등을 팡팡 치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래그래, 그 대답이 듣고 싶었어. 이제 가서 밥 먹자. 황제의 점심 못지않은 상을 차려 줄게. 언니도 슬슬 돌아왔을 거야.” 


“...기대되네. 슈 네가 그렇게 요리를 잘한다고, 예전에 링한테 몇 번 들었거든.”   


“에헤, 그 정도는 아니고. 그냥 손이 좀 커서, 많이 만드는 건 잘해. 형부는 많이 먹는 편?” 


“만드는 것도 먹는 것도 좋아해.” 


“오, 요리도 해? 정말 재주 많은 사람이네. 언니는 좋겠어.” 


“대단한 건 아니고. 링 입맛 맞출 정도는 돼. 기회가 있다면, 나도 한 끼 대접할게.” 


“그건 기대되는데. 일단 오늘은 내 요리솜씨부터 좀 보셔.” 



응원해 주는 사람을 만난 감동에 젖어, 슈의 이야기에 열심히 맞장구치며 집으로 향하는 나. 


하지만.


아무리 기뻤어도, 그때 그래서는 안 됐다. 


먹는 걸 좋아한다고 자신있게 대답해서는 안 됐단 말이다. 


많이 못 먹는다고. 


쌀알 한 톨도 겨우 넘기는 극도의 소식가라고 이야기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손이 크다’는 슈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무 생각 없이 대답한 대가로, 몇 시간 뒤의 내게 무슨 재앙이 닥쳐 올지. 



쉐이 합체까지, D-1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