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도 있음






오늘도 테라의 하루는 평화롭다.

새들은 지저귀고, 하늘의 태양은 밝게 빛난다.


그러나 그 태양이 닿지 않는 곳, 로도스 아일랜드 안의 방.

철문과 철창과 함께, 작은 탁자 하나와 의자 두 개만이 놓여있는 아주 작은 방.

그 곳에서 양 손에 수갑이 채워진 채 그저 빙긋 웃고 있는 흑발의 여성 한 명과 냉랭함이 얼굴에 감도는 남성 한 명이 나란히 앉아 대치하듯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주 짧은 침묵을 뒤로 한 채, 은발의 남성이 입을 열었다.


"현재 시간 15시 33분."

"이번 사건의 피해자는 로도스 아일랜드의 박사, 현재 기력 쇠약 및 허리 부상으로 병실에 입원중이므로 증언이 불가능." 

"그러므로 우선 피의자, 로도스 아일랜드의 오퍼레이터 비르투오사. 당신의 심문을 시작하겠다."


남성이 입을 열자마자 무섭게 흑발의 여성, 코드네임 비르투오사.

아르투리아 잘로는 양 손으로 눈물을 훔치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언제부터 우리 페데리코는 누나에게 그렇게 냉랭하게 말하게 되버린 걸까?"

"입 다무십시오."


그렇게 말하는 은발의 남성, 코드네임 이그제큐터.

페데리코 잘로는 저도 모르게 눈가를 꾹 누르며 말했다.


"성도 아르투리아 잘로, 라고 호칭하면 되겠습니까."

"어느쪽이든 괜찮은데, 조금 더 가족의 사랑을 담아서 말해주면 좋겠는걸~."

"애초에 당신은 저와 육촌 관계. 그다지 가까운 혈연 관계도 아닙니다. 그리고 이이상 다른 말을 하는 것은 금지합니다. 성실히 심문을 받으십시오."


냉랭한 말에, 뭐라고 더 말하려다가 빙긋 웃으면서 입을 다문 아르투리아를 페데리코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잡고 싶다는 충동을 잠시 참고 우선 그의 앞에 놓인 사건의 내용이 정리된 종이 뭉치를 들었다.

한 장, 한 장, 넘기며 빠르게 내용을 읽은 페데리코는 저도 모르게 분명 그녀가 놀릴 것이기에 참았던 행동을 실행해버렸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한 손으로 붙잡고 마저 서류를 읽은 그는 눈 앞의 빙글거리며 놀리듯이 웃는 아르투리아를 보자마자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그대로 내뱉어버렸다.


"당신을 그냥 여기에서 처형하는게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맞아. 나의 머리에 총알을 박아넣는 건, 네가 적임자긴 하지."


평소와는 다르게 감정적이고 살벌한 그의 말에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던 그녀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하더니 웃음기를 지워버렸다.


"하지만, 하지만 나는 여기에서 죽을 수 없어."

"너를 바꾸게 만든 이 곳은 마찬가지로 나를 바꿔버렸으니까."

"이제 내 목숨은 나만의 것이 아닌걸."

"많은 걸 알아갔고, 나는 변해갔으니까...나는 죽을 수 없어."


그녀는 감정이 없다. 그런 인식 속에서 계속 시간을 보낸 그녀는 누구보다도 감정적으로 말했다.


"그를 위해서라도, 나는 죽지 않을거야."


그는 감정이란게 입력되지 않은 로봇이다. 그런 인식 속에서 시간을 보낸 그는, 냉랭하게 대답했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시작하겠습니다."

"당신의 모든 진술은 녹음되고 있으며, 이는 불리하게 채택될 수 있습니다."

"피의자 아르투리아. 당신이 이 함선에 오른 순간부터, 진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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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하고, 많고도, 장엄한, 웅장한 화음...그리고 때로는 불협화음.

내가 로도스 아일랜드의 함선에 오른 순간 지금 이 순간 느끼는 모든 것.

정말 훌륭한 악장인걸...나의 조잡한 실력과 잡음이 끼어들 곳은 없을 것 같다.

...어디에서도 내가 끼어들 곳은 없으니까, 이번이라고 해도 이상하진 않겠지.


나를 향한 감정의 느낌은 차가움, 그리고 두려움.

나의 사랑스러운 육촌 동생이 어떤 말을 했던 걸까?


하지만 내게는 익숙한 일이니까.

많은 것을 느끼는 것은 나에게 무척이나 익숙한 감각들이니까.


박사의 집무실로 가자고 말한 채, 내 앞에서 계단을 오르는 페데리코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여전히 재미없는 선율인걸.


"아르투리아 잘로."


"...응?"


갑작스럽게 말을 걸어온 페데리코는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느라 약간 늦은 나의 대답에도 상관없다는 듯 계속 이야기했다.


"지금부터 당신은 이 로도스 아일랜드의 수뇌부를 만날 예정입니다. 부디 어떠한 무례도 범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무례라...페데리코도 참, 누나를 믿지 못하는 거니?"


"당신이기에 믿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당신은 이미 많은 일을 저질렀습니다."


"아아...정말, 또 그런 이야기구나. 페데리코도 참...너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건 어떨까?"


그렇게 말해도 페데리코에게서 더 이상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이미 너 자신도 이 곳에서 조금이나마 많은 게 바뀐 것 같은데 말이야. 언제까지 너 자신을 감추고 있으려고 그러니.


그렇게 몇 개의 계단을 오르고 몇 군데의 복도를 지나간 뒤, 복도의 끝에 위치한 커다란 방.

페데리코는 그 앞에 멈추더니 문을 똑똑똑, 세 번 두들기고는 말했다.


"오퍼레이터 이그제큐터, 약속된 시간으로부터 1분 전입니다만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그 말에 안에서 무언가 소리가 나더니, 허둥지둥 누가 문 앞으로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뒤, 커다란 문이 열리고 나온 헬멧을 쓴 사람...


"아, 때맞춰서 왔군요. 이그제큐터씨. 수고하셨습니다. 이 분이..."


그 사람이 뭐라고 입을 열었지만, 그 말들은 내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를 감싸고 있는 선율은 내가 평생에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선율.

격렬하면서도 잔잔하면서도 빠르고도 느린 그 모든 것을 내포한 아름다움.


그 머릿속에 숨겨진 퍼즐과도 같은 정교한 구상.

금방이라도 화산처럼 솟구칠 것 같은 대단한 의지.

겉으로만 봐도 이정도라면 그 머릿속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어떨까?


이 악장을 보고 싶다. 

이 악장을 듣고 싶다.

하지만 내가 연주해서는 안된다.

내가 손을 대는 것만으로도 기묘한 조각으로 산산조각이 날지도 모른다.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마치 거대한 바다의 앞에 서있는 느낌이다.

...뭐라고 내 어휘로 더 이상 표현할 수가 없다.


이것이 기쁨과 두려움, 그리고 아쉬움...지금의 내가 느끼는 감정.


"...저기."


곤란한 것 같은 한 마디에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이미 그에게 가까이 다가가서 양손을 붙잡고 있었다.

...내가 잠깐 이성을 잃은 모양이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이리된 거 이 사람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더 알아보자.

그렇게 나는 잡고 있던 손을 가볍게 움직였다.

이 박사라는 사람은 손이 제법 여리구나.

장갑 위로도 느껴지는 그 손의 감촉을 자세히 확인하기도 전에, 관자놀이에 무언가 서늘한게 닿았다.


"이그제큐터씨?!"


눈 앞의 남자가 당황하는 모습이 제법 웃겼지만, 일단 이번엔 잠깐 떨어지도록 할까.

손을 다시 한 번 부드럽게 쓰다듬고 놓자, 마찬가지로 내 머리를 겨눈 총구가 떨어져나갔다.


"성도 아르투리아 잘로, 난 분명 당신에게 무례를 범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어머 페데리코도 참...가벼운 인사야, 인사."

"당신의 입장과 위치를 기억하십시오."


그 말을 들으니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지금 네 등에 아무렇게나 매달린 나의 첼로 케이스를 빼앗고 싶은 마음을 알까? 페데리코.

하지만...지금은 그만두도록 할까.

그렇다면 시작은 정중한 인사로 하자.


"안녕, 로도스 아일랜드의 박사. 아르투리아 잘로라고 해."


그렇게 말하며 치맛자락을 약간 들어올린 뒤 허리를 숙였다.

나의 인사에 고개를 가볍게 숙인 그가 대답했다.


"어...반갑습니다. 박사입니다."

"박사라...그것이 당신의 이름이야?"


나의 짖궃을지도 모르는 질문에 곤란한듯 어깨를 으쓱한 눈 앞의 그는 말했다.


"일단은...저희는 여기에선 서로를 코드네임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이래나 저래나 다들 본명을 알게되긴 하지만..."

"아아...그렇구나. 어떤 건지 이해했어. 예전에 들은 적이 있거든. 이렇게 서로를 코드네임으로 부르면서 수평적인 관계를 형성한다던가...그런거야?"

"어...사실 그것까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여튼 아르투리아씨도 여기에선 코드네임을 하나 만드셔야 합니다."


생각외로 솔직하고 재밌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이게 좋을 것 같다.


"그렇구나, 자기소개를 시작하기 전에 우선 서로를 호칭하는 것...그것부터가 중요하지. 그것이 이 곳의 룰이라면 따라야하고 말고."


나의 코드네임은, 나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단어.


"연주로 자기소개를 대신하고 싶지만, 아쉽게도 당신 앞에서의 연주는 당분간 금지되어서 말이지."


옆의 페데리코를 가볍게 흘겨보자, 그도 페데리코 뒤에 매달린 첼로케이스를 눈치챈 모양이다.


"그럼, 코드네임을 정하는 것부터 시작해볼까."

"...'비르투오사' 라고 불러줘."


이것이 그와 나의 첫 만남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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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정하질 못하겠는데 일단 가볍게나마 도입부를 써서 올려봄

아마도 다 쓰면 몇 자 정도 나올까

지금도 이미 4000자는 넘긴 하네


제목 추천받음

피드백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