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어들여서 죄송해요』 



 에이야퍄들라가 화면에 문자를 띄운 것은 그 짐승처럼 난폭한 행위로부터 20분 뒤였다. 시트를 교체하고 그녀의 몸을 깨끗하게 닦아준 뒤부터였다. 그녀의 몸을 뒤덮은 땀과, 강하게 움켜쥐는 바람에 멍이 들어버린 손가락을 타올로 닦아주면서 몇번이고 들리지도 않을 '미안'이라는 사과를 했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처음에 나는 화면에 띄워진 문자가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허나, 그녀가 수줍은 듯 안절부절못하며 적은 다음 문장을 보았을 때, 꿈에서 깨어난 듯 제정신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당신을 끌어들일 생각은 없었어요. 힘들게 해서 정말 죄송해요』 



 나는 그녀의 손을 잡고 손바닥 위에 손가락으로 글씨를 쓴다. 



――알, 고, 있, 었, 어, ? 



 거기까지 쓰고 일단 손가락을 멈췄다. 


 확신이 들더라도 직접 들어가는 것에는 크나큰 용기가 필요했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고 다시 손가락을 움직인다. 



――내, 가, 박, 사, 님, 이, 아, 니, 라, 는, 거



 마지막 한 글자를 다 써넣을 때까지 조용히 기다린 에이야퍄들라는,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다시 키보드로 몸을 돌렸다.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요. 항상 바쁜 선배가 고작 저 한 명의 병문안을 위해 로도스 터미널에 온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요』 


『잠깐, 연극 놀이를 하고있었던 것뿐이에요』 



 화면을 보고, 내 눈을 의심한다. 


 지금까지의 기억을 반추한다. 나의 냄새를 기억하곤 기쁜 듯이 껴안아왔던 에이야퍄들라. 로도스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며, 내가 대충 꾸며낸 이야기들에도 열심히 의식을 기울이며 꽃이 피듯 웃음짓던 그녀. 발음도 성조도 망가진 목소리로 '선배' 라고 불러오던, 사랑하는 소녀의 녹아내리는 듯한 음색. 


 그것들은 정진정명, 모두 진짜였을 것이다. 로도스 터미널의 직원들조차 에이야퍄들라가 양질의 환각을 보고 있다고 판단하며 아무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이, 연기였다고? 



――어, 째, 서, 그, 런, 짓, 을, ? 



 나의 물음에 그녀는 쓸쓸한 미소를 지었다. 


 키보드에 손을 올려, 한 글자씩 조심스럽게, 딸각, 딸각, 문자를 입력한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어요』 



 몸이 얼어붙는 듯한 감각이 일었다. 


 그녀에게 들리지도 않을텐데, 호흡 소리를 내는 것이 망설여져 숨을 멈추었다. 



『아파서, 괴로워서, 이제 목숨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이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이제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해도, 남아있는 시간을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희망이 될 수 있는 것이, 무언가 하나라도 갖고 싶었어요』 



 키보드를 두드리는 그녀의 손가락이 떨리고 있다. 그것은 내게, 둥지에서 떨어져, 맹수에게 노려진 아기 새를 연상케 했다. 



『그래서, 당신을 선배라고 생각하려 한 거예요』 


『저는, 당신이 오늘 이곳에 오는 순간까지, 당신을 계속 선배라고 믿어왔습니다』 



――믿을 수 없다. 


 이 말대로라면 에이야퍄들라는 망상으로 자기 자신조차 속여왔다는 것이 된다. 보고싶은 환각을 자신에게 각인시켜서, 의도적으로 왜곡된 현실 속에서 살아왔다는 것이다. 


 운명에 발악하는, 이탈적 도피. 


 그 때, 나는 처음으로 진정한 에이야퍄들라라는 소녀를 본 것 같았다. 



『당신의 눈물이 느껴졌을 때, 쥐고 있는 메스가 느껴졌을 때, 제가 끔찍한 일을 저질러버렸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당신까지 힘들게 해버렸다는 걸 알고, 미안해져서――』


『그렇게 저는, 꿈에서 깨어나버렸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렇게 치고, 에이야퍄들라는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 


 붕대로 감싸인 눈이었지만 어둡고 무거운 감정은 충분히 전해지고 있었다. 꿈에서 깨어나버렸다. 과연 그것은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그 판단도 내릴 수 없다고 말하는 듯이. 


 병으로 수척해진 에이야퍄들라는, 가만히 멈춰있으면 정말 생명이 없는 인형처럼 보인다. 


 나는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도 정리하지 못한 채, 그녀의 작은 손을 잡고 '사과할 필요 없다' 라고 적어주었다. 


 그렇게 떨어지던 내 손이, 역으로 그녀에게 붙잡혔다. 



"에이야퍄들라......?" 


"읏......" 



 그녀는 입술을 꾹 다문 채, 붕대에 감긴 눈으로 내 얼굴이 있는 위치를 찾아서 올려본다. 


 당황한 내 손가락을 꼬옥 쥔 채, 다른 한 손으로 키보드를 두드린다. 



『제가 당신에게 기대는 게, 싫으셨나요?』 


"......, ............." 



 그녀는, 나를 망가뜨리는 원흉이었다. 


 그녀의 '연극 놀이'에 휘말려버린 탓에, 나는 그녀가 안전하게 최후를 맞이할 때까지 로도스 터미널에 갇힌 채, 마음이 망가져가고 있었다. 그렇게 쌓여온 분노와 비통이 쉽게 사라질 리가 없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녀에게 '선배'라고 오인되어 안겼던 것 자체는, 이 로도스 터미널에서 유일하게, 따뜻하고, 부드럽고, 희망으로 가득차있었기에―― 



"......싫지는 않았어. 아마도, 좋았을 거야" 



 그렇게 말하면서, 그녀의 손바닥에 글씨를 적어준다. 


 그 대답을 알아들은 에이야퍄들라는 무언가 결의를 굳힌 것 같았다. 


 키보드에 올려둔 손이 달각, 달각 글자를 친다. 



『만약』 


『만약, 당신이 괜찮다면, 말인데요』 


『앞으로도, 저를 찾아와주시겠어요?』 



 어떤, 이라고 묻기도 전에, 다시 글자가 입력된다. 



『혼자는 너무 힘들고, 무서워요』 


『저는 얼마 못 가 죽어요』 


『선배는 저를 찾아와주지 않아요』 


『이건 제 운명이란 걸, 괴로울 정도로 잘 알고 있어요』 


『그래도, 그래도 무서워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요』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기대고 싶어요』 


『제 손을 잡고, 안아줬으면 좋겠어요』 



 입술을 꾹 다문 채로, 참을 수 없는 불안에 바들바들 떨리면서, 


 달칵, 달칵, 키보드에 한 자 한 자 간절한 소망이 담긴 에이야퍄들라의 간절한 소망이 화면에 떠오른다. 



『저는 당신의 얼굴도 목소리도 모릅니다』 


『저는 당신이 누구인지 죽을 때까지 모를 것입니다』 


『하지만...... 제 억지를 받아주신 당신은, 분명 선량한 분일 것입니다』 


『그 상냥한 마음에, 부디 저를 기대게 해주시겠어요?』 


『저를, 혼자 두지 말아주시겠어요?』 


『저를 사랑해주시겠어요?』 



 내 손가락을 움켜쥔 그녀의 손에 꾸욱 힘이 들어간다. 


 들숨을 통해, 그녀의 풍성한 옅은 밤색 머리에서 나는, 생생한 여성의 향기가 들어온다. 


 마지막으로 입력된 문장에 시선이 고정된다. 




 저를 사랑해주시겠어요? 




"......" 



 나는 꿀꺽, 마른침을 삼켰다. 


 연기로 뒤덮인 듯 흐릿했던 조금 전에 나눈 성교가, 잔향이 느껴질 정도의 생생한 리얼함으로 되살아난다. 


 사랑한다는 행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이제 물어볼 필요도 없다. 


 그녀의 제안과, 그 후에 이어지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 얼굴이 뜨거워지고 심장 고동이 빨라진다. 


 동시에 무언가가―― 자신이 거대한 개미지옥의 가장자리에 서있는듯한, 두 번 다시 돌아올 수 없는 파멸로의 한 걸음을 내딛는듯한 예감이 덮쳐온다. 


 나는 수없이 심호흡을 하고, 에이야퍄들라의 손바닥에 글자를 적었다. 



"......내 역할은, 너희들에게 편안한 끝을 주는 거야." 



 메마른 입술로 동시에 중얼거리는 그 말은, 과연 본심이었을까, 아니면 변명에 불과했을까. 



"그게 너를 위한 것이라면, 기꺼이" 


"......, ............에, 헤" 



 글자를 이해한 에이야파들라는, 아마도 웃었던 것 같은, 가벼운 신음을 흘렸다. 


 머릿속에서 모종의 선을 넘은 듯한 소리가 들렸다. 그저 마음이 부서져갔던 지금까지의 날들과는 명확하게 다른 시간이 시작될 예감이 들었다. 심장 박동은 더욱 높아지고, 마음은 이미 모종의 흥분감으로 뒤덮여있었다. 


 에이야퍄들라는 쥐고 있던 내 손을 살며시 들어올려, 손등에 입맞춤을 했다. 마치 복종의 맹세와도 같다고 느끼며, 뇌에 찌릿찌릿한 감촉이 인다. 



『성함을 여쭤봐도 괜찮을까요? 이제, 당신을 선배라고 부를 수는 없으니까요』 



 발그레해진 뺨으로, 에이야퍄들라가 그렇게 문자를 입력했다. 


 나는 조금 생각한 뒤, 그녀의 손바닥에 글자를 적어넣었다. 



――닥, 터 



 그것은 우리들의 관계를 새로이 진흙으로 덧칠하는듯한, 어찌보면 비틀린 호칭이었다. 그것을 이해한 에이야퍄들라는 핫, 하며 숨을 삼켰다. 


 로도스를 떠받치는 위대한 인물(Doctor)이 아니다. 


 천재적인 지휘관도, 광석병 연구의 권위자도 아니다. 


 단 한 명의 목숨조차 구원해주지 못한다. 


 그럼에도, 이 로도스 터미널에서는, 



――내가 너의 닥터(주치의)야. 



 에이야퍄들라는 나의 말을 곱씹으며 깊게 고개를 끄덕였다. 



"......d아아아k다아아......" 



 풀려버린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며, 에이야퍄들라는 내 팔을 끌어안으며, 머리를 꼬옥 기대왔다. 


 내 얼굴을 유혹하는 그녀의 연분홍빛 입술. 


 이어진 실이 감기듯, 자연스레 두 입술이 겹쳐졌다. 



"후우...... 츗, 츄우, 츄...... 츄웁, 츄루......" 



 심야의 정적으로 뒤덮인 병실, 서로의 혀가 얽히는 축축한 소리가 울려펴진다. 



"쥬륵, 흐...... 하아...... 츄, 츄읍, 츄...... k타아아......" 



 뒤섞이는 혀 사이로 새로운 호칭이 새어나오고, 쾌감에 의식이 녹아내리면서 나는 조용히 생각한다. 


 그래, 난 너의 닥터면 돼. 


 그 이상으로 날 알 필요 없어. 


 이것은 절망으로부터의 도피, 죽을 때까지 불과 몇 달밖에 지속되지 않을 관계. 


 우리들은 어차피, 비참한 인간 냄새를 풍기며 서로의 상처를 핥아제낄 뿐인 희생자들이니까. 



"츄우...... 츄루, 츄, 츄윽......" 



 녹아드는 서로의 타액 맛은, 마치 피를 요구하는 악마와의 계약을 떠올리게 했다. 


 이렇게 나는 발을 내딛었다. 일그러진 열정, 급조된 사랑, 고통으로 비틀린 검은 성벽을 서로 부딪치는, 더러운 행복으로 문드러진 끝 모를 늪 속으로. 






※ 이 소설은 원작자 「オリスケ」님의 허가를 받고 번역하였습니다. 

※ 작가분 트위터: https://twitter.com/brava_novel

※ 원문출처: https://syosetu.org/novel/332051










문득 헌터헌터 레전드 장면이 떠올랐다 


이번화는 짧아서 빨리 끝났고 다음화는 다시 19금


오타 오역 의역 어색한 표현 지적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