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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3화째가 된 비비아나X독타X니어 소설. 


요새 글 쓰면서 뭔가 잘못됐다는 걸 참 많이 느끼는 듯. 


써야 될 글은 안 써지고, 그냥 대충 끼적이는 거에서 시작한 글은 구상이 참 잘 돼. 


이것도 분명히 5화 안으로 컷내려고 정하고 시작한 글이었는데....후....


아무튼 머릿속에 있는 건 비비아나랑 박사가 같이 성장하는 청?춘 순애 소설이라, 그거 다 묘사하려면 10화는 그냥 넘어갈듯 해. 


오늘도 모자란 글 읽으러 들어와 줘서 고맙고. 


그리고 재밌었으면 댓글 많이 달아조...이 명부이는 관심을 먹고 글 쓰는 생물이랍니다


소재 추천, 아카콘, 피드백도 환영해. 


그럼, 오늘 글도 즐겨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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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도스 육상전함에 승선한 비비아나를 반긴 건 호들갑스러운 쿠란타족 인사부 직원이었다. 



“로도스에 오신 걸 환영해요, 비비아나 드로스테 씨!”   


“감사합니다.” 


“원래 박사님이 직접 나와서 맞이할 예정이었는데, 하필 어제 과로로 쓰러지셔서…제가 대신 나왔어요. 죄송해요.” 



쌉쌀한 커피향이 감도는 로도스의 응접실. 


겸연쩍은 표정으로 고개를 숙이는 직원을 보며, 비비아나는 손사래를 쳤다. 



“아뇨, 사과하실 필요 없습니다. 전 신경 안 써요.” 


“너그럽게 받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역시 보던 대로 상냥하시네요.” 


“보던 대로요?” 



이건 또 무슨 소리일까. 


비비아나와 이 직원은 일면식도 없는 사이인데. 


그녀가 고개를 갸웃하는 사이, 직원의 눈동자에서 송구스러운 기색이 점점 사라져 가고. 



“네. 저, 사실 기사님 데뷔하실 때부터 팬이었거든요. 첫 출전하신 토너먼트에서 4강 진출하시는 거 보고 소리지르면서 로도스 함내를 마구 뛰어다녔답니다!” 


“...아, 네. 응원해주셔서 고마워요.” 


“그런 기사님을 모실 수 있게 되다니, 정말 영광이에요! 혹시 사진 한 장 부탁드려도 될까요?” 



그 감정의 공백을, 반짝이는 선망이 채워 갔다. 


느닷없는 팬심으로 초롱초롱 빛나는 그의 눈동자를 마주하기는 적잖이 부담스러웠지만, 비비아나는 니어를 생각하며 억지로 웃었다. 


동경하는 그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에서도 덤덤했겠지. 


흔들리는 기색 없이 자연스럽게 미소지었을 거고. 


자신을 향해 내뻗어지는 손길을 뿌리치지 않은 채, 그저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았음을 부드럽게 상기시켰을 거다. 



“물론이죠.” 


“정말요?” 


“네. 필요한 절차를 마친 뒤에, 얼마든지 찍어 드릴게요.” 


“아, 참. 실례했습니다.” 



그렇게 니어를 흉내내 말하자, 직원이 겸연쩍게 얼굴을 붉혔다. 



“서류 심사는 이미 통과하셨고, 남은 건…종합검진 및 대련을 통한 실전 능력 테스트, 그리고 인사부 분들과의 심층 면접이네요.” 


“종합검진이요?”


“네. 물리적 강도나 생체 인내도, 오리지늄 아츠 적응성 같은 걸 확인하는 절차입니다.” 


“좋네요. 바로 시작하시죠.”   

 

“피곤하지 않으세요? 조금 쉬었다 하셔도 되는데.” 



직원의 물음에, 비비아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괜찮아요.” 



카시미어에서 여기까지 먼 길을 달려왔으니, 여독이 쌓이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아직 정식으로 로도스에 채용된 것도 아닌 바, 여유 부릴 틈은 없다. 


서둘러 심사를 끝내고 거취를 결정하는 편이 현명할 터. 



“종합검진과 테스트, 그리고 면접이라고 하셨나요? 바로 진행하시죠. 전 준비됐습니다.” 



무엇보다.


하루빨리 박사라는 인물을 만나 보고 싶었다. 


인상착의는 어떻게 되며, 목소리는 얼마나 아름다울까. 


또 얼마나 현명한 사람이기에 빛의 기사 마가렛 니어를 매혹시킨 것일까. 


약간의 치기 어린 마음. 


그리고 그 마음조차 능가하는 지대한 호기심을 담아, 비비아나는 인사부 직원을 바라보았다. 



“...알겠습니다. 훈련실로 가시죠.” 



—---



그 시각. 


로도스의 어느 병실. 



“응아?” 



수액을 꽂은 채 뻗어 있던 박사가 눈을 떴다. 


초점이 잘 잡히지 않는 눈동자로 주변을 살피니, 순백 일색의 방이 흐릿하게 보인다.


감각을 통해 들어온 정보를 뇌가 인식하고 기지개를 폄과 동시에, 수많은 상념들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여긴 어디지. 


지금은 몇 시고. 


아직 어제 할 일 다 못 끝냈는데. 



“박사님, 일어나셨군요!” 



하지만 미처 그 생각을 매조지을 틈도 없이, 옆에 앉아 있던 토끼가 반색을 했다. 



“아미야?” 


“정신이 좀 드세요?” 


“...제가, 얼마나 잠들어 있었던 거죠? 여긴 또 어디고요?” 


“열두 시간이에요. 여긴 로도스의 일반 병실이고요. 사무실에서 코피 흘리면서 쓰러져 있는 걸, 켈시 선생님이 급하게 입원시키셨어요.”  



그런 건가. 


확실히 어제 책상 앞에 앉아서 펜을 잡은 것까지는 기억나는데, 그 이후의 일이 잘 떠오르지 않는 박사였다. 


필름이 끊기기라도 한 거겠지. 


원인은 아마도 과로. 


사태의 전말을 파악한 박사의 입가에 자조의 미소가 떠올랐다. 



“...걱정하게 해서 미안해요, 아미야.” 



어른이 되어 놓고서는, 자기관리 하나를 못 해 주변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다니. 


이 무슨 한심한 짓거리인가. 


마가렛이 곁에 있었으면 스스로를 소중히 하라며 하루 종일 혼났으려나. 


뼈저리게 반성회라도 하고 싶은 기분이었지만….



“아니에요, 박사님. 저야말로…항상 도움이 못 되어 드려서 죄송해요.” 



자신 이상으로 무력감을 느끼는 듯한 토끼를 보니, 그런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는 박사였다. 


귀를 축 늘어뜨리는 그녀를 슥슥 쓰다듬으며, 박사는 짐짓 밝게 웃었다. 



“그렇게 말하지 말아요. 아미야도 켈시 선생님도 최선을 다하고 있잖아요.” 

 

“...박사님….” 


“그보다, 제가 잠든 사이에 뭔가 특별한 일은 없었나요?” 


“네. 별 일은 없었어요. 기반시설 근무도, 항행도, 환자들 진료도 전부 순조로워요.” 



그래, 별 일 없었으니까 다행이지. 


다음부터 이런 일 없도록 하면 된다. 


그렇게 스스로를 다잡으며 힘없이 상반신을 일으키려던 그때. 



“...아, 하나 있어요.” 


“뭔데요?” 


“비비아나 씨가 로도스에 도착-” 



아미야의 한 마디가, 한창 희망회로를 돌리던 박사의 뇌를 그대로 정지시켰다. 



“...뭐라고요?” 


“양초의 기사 비비아나 드로스테 씨가 오늘 오전 08시경에 로도스에 도착하셨어요.” 


“......” 

“아, 인사부 오퍼레이터 한 분이 가서 맞아 주셨으니까 박사님은 신경 안 쓰셔도 돼요. 오전에 종합검진 하고 구내식당에서 식사하신 후, 지금은 실전 능력 테스트를-” 



이런 젠장. 


박사, 이 병신 같은 새끼야. 


퍼질러 자느라 손님 응대를 못 해? 


다른 사람도 아니고, 마가렛이 직접 부탁한 귀객을? 


속으로 욕지거리를 뱉으며, 박사는 그대로 수액 카테터를 멈춘 뒤 옆에 있는 카트에서 알콜솜을 꺼내 들었다. 


느닷없는 돌발행동에, 아미야가 멍한 표정을 짓고. 



“바, 박사님?” 


“알려줘서 고마워요, 아미야. 실전 능력 테스트 중이라고 했죠? 그럼 훈련실에 있겠네요.” 


 

알콜솜으로 꾹 누른 채 팔목에서 수액 바늘을 뽑아내는 박사. 


뒤늦게 그의 의도를 이해한 아미야가 그를 말렸다. 



“안 돼요, 박사님. 좀 더 쉬셔야 해요. 앞으로 이틀간 절대 안정을 취해야 한다고 켈시 선생님도 그러셨단 말이에요.” 


“충분히 잤어요. 전 괜찮아요.” 



하지만 박사는 물러서지 않았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마가렛이 추천한 인재예요. 제가 직접 가서 맞이하지 않으면 그녀한테 실례잖아요.” 


“그래도….” 


“그냥 가서 보고 얘기만 좀 할게요. 무리는 안 할 거니까 안심해도 돼요.” 



박사에게는 책임이 있었다. 


비비아나를 잘 돌봐 달라고 부탁받은 사람으로서의 책임. 


그리고 박사는 이미 그 책임을 초장부터 유기함으로서, 마가렛과 비비아나 둘 모두에게 침을 뱉은 셈이 되었다. 


형언할 수 없는 자괴감이 들었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바. 


지금이라도 수습을 하는 편이 옳았다. 


비틀거리면서도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나는 박사의 모습에, 아미야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럼 갔다 와서 더 주무셔야 해요.” 


“네. 약속해요.” 



박사가 로도스 훈련장의 대기실로 들어서자, 그곳에 있던 켈시가 기함했다.



“...박사, 너.” 


“죄송해요, 켈시 선생님. 폐를 끼쳤네요.” 



멋쩍은 미소를 짓는 박사. 


그런 그를 보며, 켈시는 이를 앙다물었다. 


 

“죄송하다로 끝날 일이 아니다. 너는 네 자신의 가치를 과소평가하는 건가, 아니면 현재에 매몰되어 미래를 잊은 건가.” 


“...모르겠어요.” 


“네 노고에는 항상 감사하고 있지만, 이건 아니다. 너는 네 목에 걸린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그리고 로도스가 가는 길이 얼마나 멀고 험한지 재고할 필요가 있어. 조급하게 내달린다고 한달음에 목적지까지 도착할 수는 없단 말이다.” 


“네.” 


“이틀. 이틀이다. 앞으로 이틀 동안 업무에서 손을 떼고, 안정을 취해라. 이건 로도스 의료부 수장으로서 환자에게 내리는 지시이니, 이견은 받지 않겠다. 네 생체 리듬이 완전히 회복될 때까지, 네가 로도스에서 행사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권한을 정지시키도록 하지.” 



여느 때와 같은 장광설이었지만, 그 속에 담긴 함의는 간단했다. 


무리하지 마라. 


마음은 알겠지만, 네가 쓰러지면 본말전도다. 


하다못해 함께 이 길을 걸어 가는 여행자로서, 최소한의 배려는 하게 해 다오. 


그런 켈시의 걱정을 읽은 박사는 씁쓸하게 웃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앞으로 이런 일 없게 할게요.” 



그 말에, 딱딱하게 굳어 있던 켈시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 



“그래. 이해한 것 같아서 다행이군. 그런데 여긴 뭐하러 왔지?” 


“비비아나 드로스테 양의 실전 능력 테스트를 참관하러 왔어요.” 


“...그런 건가. 지켜보는 정도라면 딱히 문제 없겠지. 마침 시작하려던 참이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훈련실 내부로 시선을 돌리는 켈시. 


대기실과 훈련실 사이에 있는 한 장의 통유리를 통해, 고고하게 서 있는 비비아나의 모습이 비쳤다. 



“종합검진 결과는요?” 


“나쁘지 않다고만 말해두지. 자세한 건 네 권한이 돌아오는 이틀 뒤에 직접 열람하도록.” 



여느 때와 다름없는 화법에 피식 웃으며, 박사는 그녀의 곁에 앉았다. 


그 사이, 비비아나가 검을 뽑아들고. 


양 손에 단도를 꼬나쥔 자라크 여성이 그녀의 맞은편에 섰다. 



“상대는 그라벨 씨인가요?” 


“그래.” 



꽤나 적절한 판단이다. 


그라벨은 처형자 오퍼레이터로서의 능력도 준수하고, 전투 기술력도 상당하다. 


무엇보다 수세에 몰리는 싸움에서 강점을 보이는 인원이니, 비비아나의 고점을 확인하기에는 더없이 적합한 인원이다. 


그렇게 둘의 대련이 시작되고. 


두 자루의 묵색 단검과, 은빛 레이피어가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맞부딪혔다. 


거리를 벌리며 레이피어의 사거리를 최대한 활용하고자 하는 비비아나와. 


재빠른 스텝으로 그런 그녀를 추격하며 초근접전을 유도하는 그라벨. 


둘의 싸움은 언뜻 호각지세처럼 보였다. 


하지만 박사도, 켈시도 알고 있었다. 



“...호오.”


“드로스테 양, 제대로 안 하고 있네요.” 



지금의 비비아나는 전혀 진심이 아니라는 것을. 



“그래. 그녀의 특기는 아츠일 터인데…오롯이 검술만으로 상대하고 있군.”


“검술만으로도 훌륭하긴 한데요.” 


“하지만 그것만으로 로도스의 가드 오퍼레이터가 되기는 부족하지.” 


“가드요? 캐스터가 아니라요?” 



뒤이은 켈시의 말에, 박사는 고개를 갸웃했다. 


저번 카시미어에서 봤을 때, 비비아나는 오리지늄 아츠 방면에서 특출난 강점을 보였다. 


미약한 촛불을 드리워 그림자를 일으키고, 둘 모두를 자유자재로 다루어 상대를 집어삼키던 그녀의 위용을, 박사는 지금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 정도로 아츠에 능숙한 사람이라면 당연히 캐스터가 되기를 희망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왜 가드일까.



“사실 나도 스플래시 캐스터나 미스틱 캐스터 직군을 추천했는데, 그녀 본인이 가드가 되기를 희망하더군.” 


“그런가요.”  


 

그 이유는 본인만 알겠지. 


어쩌면 이 대련을 통해 그 이유를 살짝 보여줄지도 모르고. 


호기심이 몽글몽글 이는 것을 느끼며, 박사는 가일층 격렬해져 가는 두 사람의 대련을 지켜보았다. 



“핫!” 



짧은 기합과 함께 내질러진 비비아나의 검이 그라벨의 뺨을 스쳤다. 


나풀, 잘려나간 분홍색 머리카락 몇 터럭이 허공에 흩날리며. 


그라벨이 눈에 보이지도 않을 정도의 속도로 비비아나에게 쇄도한다. 


아직 검을 회수하지 못한 비비아나의 빈틈이, 그대로 노출되고. 


승기를 잡은 그라벨의 단검이 그녀의 목젖을 노리고 거칠게 휘둘러졌다. 



“...이 정도-” 



이 정도인가. 


켈시의 입에서 그런 말이 흘러나오고.



“...아.” 



박사가 짧은 침음성을 흘리려던 찰나. 


깜빡. 


훈련실 천장에 매달린 전등이, 일순간 빛을 빼앗겼다. 



“창백한 장미.” 



느닷없이 드리운 어둠에, 이 자리의 모두가 평정을 잃었다. 


휙, 그라벨의 칼이 부질없이 허공을 가르며. 


켈시의 표정이 바짝 굳고.


박사가 다급하게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창백한 상상.” 



이 혼란 속에서 담담한 건, 오로지 비비아나뿐. 


그녀의 목소리가 캄캄한 사위를 가르며 날아들어, 박사의 귓가에서 사각거리고. 



“두 다리를 묶고 절벽에서 뛰어내린다 해도 날 수 없다면, 구태여 스스로를 구속할 필요는 없겠죠.” 



암전된 훈련실 안쪽에서.


빛이 피어난다. 


광채라고 칭하기도 저어되는 아주 작은 촛불. 


공기의 흐름에 맞춰 힘없이 한들거리는 그 불빛이, 이 자리에 있는 모두의 눈동자 속에서 일렁거리고. 


전등 빛에 가려져 있던 사물의 그림자가 조심스레 기지개를 켠다. 


그 불빛 속에서, 검을 역수로 쥔 비비아나가 검을 세웠다. 



“동포들이여!” 



위기를 느낀 걸까, 그라벨이 황급히 아츠를 시동했다. 


로도스에서도 손꼽히는 강도를 자랑하는 푸른 보호막이 그녀의 몸을 감싸고, 잠시 거리를 벌렸던 그라벨이 다시금 비비아나를 향해 도약한다. 


비비아나가 어떤 아츠를 시동하더라도, 보호막으로 한 번 버티고 급소를 노리겠다는 심산이겠지. 


하지만 그 순간.


박사는 직감했다. 



“이곳에, 촛불을 켜겠습니다.” 



이 대련은 그라벨의 패배로 끝나리라는 것을. 


담담히 승리를 주장하는 듯한 그녀의 선고와 함께, 자그마하던 촛불이 사방에 깔린 그림자들을 게걸스레 먹어치우고. 


금방이라도 꺼질 듯 미약하던 빛이, 순식간에 덩치를 불려 간다. 


촛불은 광채로. 


그리고 광채가 광휘로. 


광휘는 이윽고 태양의 손길에 견주어도 결코 밀리지 않을, 그 무엇보다 찬란한 광원으로 화하고. 



“큭!”



그라벨의 짧은 신음과 함께, 비비아나의 검이 그 광원을 그대로 갈라찢었다. 



“멈춰라, 비비아나! 여기서 그런 아츠를 썼다간, 훈련실이-” 



다급한 켈시의 외침이 끝날 틈조차 주지 않은 채, 빛이 폭발하고.


눈을 멀게 할 듯 강렬한 빛살이 고요하게 울려퍼지며. 


카챵, 그라벨을 둘러싼 보호막이 힘없이 깨져나갔다. 



“...아.” 



다시 어둠이 드리우는 것도 잠시. 


이내 전등이 빛을 되찾고, 훈련실 내부의 풍경이 다시금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아직도 따끔거리는 눈을 깜빡이며, 박사는 멍하니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소문은 많이 들었지만, 역시 대단하네. 딱 보호막을 깰 정도의 위력만 내도록 아츠를 조정한 거지?” 



힘없이 웃으며 비틀비틀 몸을 일으키는 그라벨. 



“네. 그대로 갔다가는 정말 질 것 같아서요.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과, 단련의 흔적이 엿보이는 검술. 좋은 승부였습니다, 기사님. 나중에 또 대련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얼마든지.” 



그리고 살짝 미소지으며 그녀에게 손을 내미는 비비아나. 


훈훈한 현장을 보며, 켈시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훌륭하군. 광석병에 걸리지 않았는데도 저 정도의 출력이라니. 거기다 침착함과, 아츠의 위력을 자유자재로 조작하는 정밀함까지. 저 아이는 역시 캐스터가 맞아.” 



그런 그녀의 생각 자체에는 박사도 동의했다. 


저 정도로 숙련된 아츠사용자라면, 오리지늄 아츠 적응성은 최소한 월등 등급일 거고. 


아츠 자체의 범용성도 상당히 넓어 보였다. 


아마 어떤 세부 직군을 배정받든 너끈히 일 인분 이상을 해 낼 수 있겠지. 


하지만 순순히 그녀의 말을 거들기에는, 어쩐지 석연치 않은 점이 남아 있었다. 



“켈시 선생님, 저 부탁이 하나 있는데요.” 


“뭐지?” 


“드로스테 양의 면접, 저한테 맡겨 주시면 안 될까요?” 


“흠, 이제 와서 굳이 면접이 필요할까 싶군. 마가렛의 추천서를 가져온 인재인 데다, 실력도 확실하니만큼. 입사 전형만 특별채용으로 변경해서 넣으면, 바로 입사 가능할 텐데.” 


“아뇨, 필요해요.” 



전에 없이 강경한 박사의 말에, 켈시가 눈을 가늘게 떴다.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는 건, 뭔가 생각이 있다는 거겠지.” 


“네.” 



비비아나의 아츠는 아름다웠다. 


사방이 전등 빛에 감싸인 지금도, 그녀가 틔워 낸 촛불이 눈앞에 아른거릴 정도로. 


그 정도의 아츠사용자라면 로도스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꼽히겠지. 


문제는 그녀가 가드 오퍼레이터를 희망한다는 사실이다. 


물론 근접전에서 아츠를 사용하는 아츠 파이터 직군이 있긴 하지만, 비비아나 정도면 그냥 캐스터를 선택하는 게 훨씬 효율적인 바. 


그녀가 굳이 가드를 고집하는 데는 무언가 이유가 있을 터다.  


박사는 그 이유가 궁금했다. 


마가렛에게 받은 부탁 때문이 아니라, 한 명의 사람으로서. 


그리고 그 궁금증을 면접을 빌미로 한 번 풀어 볼 생각이었고.



“...그래, 알겠다. 하지만 말했듯, 외근 부서 수장으로서의 네 권한은 이미 정지되어 있어. 따라서 면접 보고서를 올릴 필요는 없다. 대신 짧게 소견서를 적어 내 앞으로 보내 두도록. 내가 인사부에 전달하지.” 



뭐, 켈시는 이미 면접이고 뭐고 그녀를 채용할 마음을 굳힌 것 같지만. 


오히려 좋다. 


그렇게 생각하며, 박사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럼 드로스테 양에게 말 좀 전해 주시겠어요? 30분 뒤에 제 방으로 좀 와 달라고요. 저도 가서 좀 씻고 올게요.” 


“알았다. 푹 쉬어라, 박사.”  


“감사합니다, 선생님.” 



집무실로 돌아오는 길에도, 박사의 머릿속은 비비아나 생각으로 가득했다. 


기사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검술. 


그보다 압도적으로 뛰어난 아츠. 


짧게 지켜보는 것만으로 알 수 있는 온화한 성품. 


겉으로만 봐서는 흠잡을 데 없는 한 명의 젊은이인데. 



“...하아.” 



마가렛, 왜 비비아나를 부탁한다고 말한 거예요. 


저런 근사한 사람은 조금 흔들리더라도, 결국 자기 갈 길을 알아서 찾아가는 부류잖아요. 


저 같은 게 저런 사람을 어떻게 도와준다고. 


속에서 조소 섞인 자학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이내 단념하고 한숨을 내쉬는 박사였다.


스스로를 깎아내리는 건 잠시 그만두자. 


엉망진창인 기분으로 손님을 맞는 건 여러모로 실례니까. 


그리고 마가렛이 어디 아무 이유 없이 무언가를 부탁할 사람인가. 


그녀가 비비아나를 도와달라고 말한 데는, 아직 수면으로 드러나지 않은 원인이 있음에 틀림없다. 


그냥 지켜보는 것만으로는 절대 알 수 없는. 


일단 천천히 호기심을 풀면서 친해지는 것부터 시작할까. 


그렇게 박사가 조금 가벼워진 마음으로 집무실로 돌아가고.


30분 뒤. 



“박사님, 실례하겠습니다. 비비아나 드로스테입니다. 들어가도 될까요?” 



가볍게 몸단장을 한 비비아나가 박사의 방문을 두드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