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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어디지?!"

"100미터 더 걸어가서 우회전! 그리고 한 블록 지나서 좌회전이야!"


길거리의 잔잔한 발라드곡과 상반되게, 두 용문 여성이 매우 빠른 속도로 거리를 질주했다. 거리에서 연주하는 음악가들과 관중 사이를 지나치고, 짐을 옮기고 있는 인부나 차량을 피하며, 여차할 땐 벽을 박차면서 장애물을 피해 앞으로 향했다. 1초라도 더 빨리, 그들의 동료가 있는 곳으로 닿기 위해서.


"박사 녀석. 아무리 그래도 본인이 미끼가 되겠다니. 무리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그 사람이라면, 자기 자신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도 서슴지 않으니까...!"

"그건 그런 셈 치고..."


조금 전 문자의 내용을 떠올리며, 첸은 옆에 있는 필라인 여성에게 물었다. 웬만하면 넘어가고 싶었지만, 결코 무시할 수가 없는 텍스트가 있었기 때문이다.


[목표를 발견해 추적 중입니다. 두 사람은 제 위치를 추적해서 와주세요. 스와이어의 단말기에 추적 기능이 부착되어 있을 겁니다.]


"...대체 왜, 네 단말기에 박사의 위치 추적기가 달려있는 거지?"

"왜냐니... 아, 전방에 장애물 조심해!" 


눈앞에 있는 노점을 피해, 한 사람은 벽을 박차고 허공을 뛰어올랐고, 다른 한 사람은 크게 원을 그려 노점 근처의 손님들을 피했다. 웅성거리는 시민들을 무시한 채, 두 사람은 합류한 뒤 다시금 뛰기 시작했다.


"박사는 언제, 어디로 갈지도 모르고, 나 모르는 사이에 다칠지도 모르잖아? 아무래도 내버려두면 불안하니까..."

"...그래서, 박사의 단말기에 위치 추적기를 설치했다고?"

"아,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박사한테도 허가 받은 거니까 이상한 생각은 하지 말아줘."

"하... 미쳤군. 단단히 미쳤어."


아무리 사랑하는 사이였더라도 저건 도를 넘은 게 아닌가. 사랑하는 사이면 프라이버시는 없어도 되는 건가? 첸은 눈살을 있는 힘껏 찌푸렸다.


'자기 사생활을 어느 정도 내놓을 정도로, 당시엔 그렇게나 서로를 믿고 있었던 것인가.'


더구나 헤어졌다면 더 이상 그 장치는 필요 없고, 족쇄일 뿐이었을 텐데도. 멋대로 헤어졌으면서도, 일방적으로 이별 통보를 받았음에도.


그 사람도, 눈앞에 있는 이 여자도. 그걸 여전히 가지고 있었다. 


'ㅡ그런데도, 지금까지 서로를 놓지 못하고 있던 거란 말인가?


양자 간의 미련이라는 기이한 존재 덕에 수사에 도움을 받는 꼴이라니. 전직 용문 경찰로서의 양심에, 한편으로는 연적과 짝사랑하는 이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첸은 위가 쓰려오는 걸 느꼈다.


그런 첸의 기분을 모른 채, 스와이어는 앞만을 보고 달렸다. 자신이 추적하고 있는 남성을 머릿속에 가득 채우며.


"무사해야 돼... 박사...!"


-


이제와서 생각하는 건데, 이동도시가 된 시에스타의 변두리는 생각보다 넓다. 인공 바다로 감쌌더라도, 그 위로 수상 가옥을 세워 면적 효율을 최대로 한 설계 때문일 것이다. 다만 그 면적 효율에 집중한 탓인지, 길이 미로처럼 이리저리 얽혀 있다. 덕분에 지금 10분 넘게 이리저리 걷는 상황이다. 


"이야. 설마 고객님께서 절 찾아오려고 시에스타까지 오시다니. 이거 고생하신 걸 생각해도 보너스를 드려야겠는걸요?"

"아뇨, 이 정도는 뭐..."


방금 날 지나갔던 루포 남성이, 싱긋 웃으면서 내 앞을 걷고 있다. 오랜만에 만난 '고객'이라 퍽이나 신났나 보다. 


"그나저나 리유니온이라니. 몇 년 전에 해체된 집단 아닙니까? 아직도 살아있네요."

"말이 리유니온이지, 사실상 잔당이죠. 컬럼비아에서 남은 사람끼리 먹고살고 있으니까."

"호오... 그런 와중에도 이 약을 찾는 상사분이라니. 꽤나 단골이었나 본데요?"

"그건 잘... 광석병 통증을 잡아주는데 이것만 한 게 없다며 갑자기 절 보내버렸으니까요."


'상사의 명령으로 약을 찾아 어렵게 시에스타에 온 리유니온의 잔병'. 눈앞에 있는 남성이 알고 있는 내 신분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지만, 거짓말이다. 


디펜더 오퍼레이터 머드락이 간간이 편지로 주고받고 있던, 컬럼비아에 살고 있는 리유니온 시절 동료들. 


그리고 스와이어가 건넨 마약 성분이 실제로 라인 랩에서 마약성 진통제의 재료로 사용하고 있다는 논문 및 성분 결과. 


이 두 가지 정보를 적당히 버무려 만든 위장 신분이지만, 눈앞에 있는 남성에겐 제대로 먹힌 거 같다. 


"이게 꽤 물건인 게, 각종 지병의 진통제로도 사용할 수 있거든요. 문제는 이 약재가 되는 놈이 염국에서만 사는 놈이라는 거죠."

"염국에서만 산다고요? 그런데 시에스타엔 어떻게...?"

"간단하죠. 약재가 되는 녀석을 데려와서 키우면 되지 않겠습니까."

"한 마리 데려오면 번식을 못 할테니 최소 한 쌍은 데려오셨을텐데... 용케도 안 걸리셨네요."

"하하. 다 방법이 있죠!"


주머니에 넣어둔, 녹음 기능이 켜진 단말기를 무심코 꽉 쥐었다. 물론 눈앞에 있는 사람은 명백히 범죄자고, 용문에 끌려가는 순간 형을 받는 건 확정이다. 하지만, 세간엔 법의 망을 피하는 방법따윈 여러 개 있다. 그걸 감안하면 이렇게 사소한 증거라도 확보해두는 게 좋은 법이다.


"용문에서 한탕 하셨을텐데, 해외에 와서 하느라 고생 많겠네요."

"어휴. 말도 마십시오. 하필이면 절 담당한 용문 경찰 팀장이 얼마나 무서운 놈이었는데요."

"무섭다고요?"

"듣자 하니 빅토리아의 재벌가랑 연줄이 있는 사람이라더라고요. 젠장.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주민까지 매수해서 사람을 잡으려 하다니. 기가 찼죠. *용문 욕설*!"


딱 들어보니, 그 금발 필라인 아가씨군. 본인 사비를 털어서까지 경찰 활동에 몰두했었던 그 모습을 본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국장이 됐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다.


"안 그래도 감염자라 힘든 삶에 겨우 한탕 좀 치겠다 싶었는데, 재수가 더럽게도 없더라고요. 그 빌어처먹을 여자만 없었으면 안 들키고 좀 짭짤하게 만졌을텐데. 나중에 만나면 버든비스트의 먹이로 줘버릴까 보다."


울컥. 잠시 흉근이 뒤틀리면서 뭔가가 입밖으로 튀어나올 뻔했다. 


"아, 하긴 리유니온 분이시라면 용문에서 그 여자에게 당해보셨겠네요."

"...그러게요. 여러 일 당했죠."


이제 와서 아무것도 아닌 관계지만, 역시 지내온 시간이 있다 이건가. 그녀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기를 한 것만으로도, 이렇게 화가 치밀어오를 수 있다니.


하지만 진정해야 한다. 지금은 사사로이 감정에 움직일 때가 아니다. 정보를 캐내고, 시간을 벌어야 한다. 적어도 두 사람이 날 추적할 때까지. 


위치 추적 기능은 상호 간 동의가 있어야 작동하고, 한쪽이 관련 기능을 제거하는 순간 추적도 끊긴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내 단말기에서 작동하고 있는 걸 보면, 분명 그녀도 본인 단말기에 온전히 놔두고 있다는 뜻이겠지.


대체 왜 지우지 않은 걸까? 아직 나를 완전히 버리기엔 아까워서? 아니면, 그럴 일은 없겠지만, 나와 같은 이유로? 


"아. 도착했습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골목에 있는 한 허름한 집에 도착했다. 뒤를 돌아보니 바로 바다가 보이는 것이, 풍경 하나는 쓸데없이 좋다는 감상이 들었다. 


그래. 일단 잡념을 지우자. 지금은 해야 할 일에 집중해야 한다.


"...이 소리는."


남성이 문을 열자, 그 안에서 버든비스트의 소리가 들렸다. 그를 따라 들어가니, 철장 안에 버든비스트 두 쌍이 주인을 맞이하듯이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이 자식들. 간만에 손님 오시는데 조용히 있어야지!"


그런 버든비스트들에게 호통을 치며, 남성은 철장을 발로 후려찼다. 그 행위에 겁을 먹었는지, 철장 속 짐승들은 곧바로 조용해졌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어디 보자..."


남성은 몸을 숙여 바닥을 더듬기 시작했다. 그 틈을 타서, 난 주변을 돌아보았다. 전력이 약해서인지 방안은 꽤 어둡고 을씨년스러웠다.


철장 옆으로 보이는, 작업실로 보이는 테이블. 그 위로 각종 공작 도구. 그리고 저 버든비스트에게서 추출한 것으로 보이는 하얀 가루가 담긴 비닐 팩 여려 개가, 작업실 옆의 진열장에 고스란히 널려 있었다. 내가 돌아보는 방향에 따라서, 들어오기 전 가슴팍의 주머니에 넣어둔 단말기가 현장을 녹화하고 있는 건 덤이었다. 


"아. 여깄다."


무언가를 여는 소리가 들려 다시 시선을 남성으로 돌렸다. 카펫을 들추더니, 그 아래에 있던 비밀 통로로 추정되는 문을 여는 것이었다. 


미약한 전등 아래에, 그것도 남성이 등지고 있어서 그가 무엇을 꺼내는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예측할 수 있었다. 그렇기에, 무심코 뒷걸음질을 칠 뻔했다.


문과 부딪히면서 나는 쇳소리. 저 문과 부딪힐 정도의 면적. 미약하게 나는 쇳내음. 그리고, 희미하게 반짝이는 저 날끝.


ㅡ무기.


눈치챈 그 순간, 살벌한 바람 소리가 내 귓가를 스쳤다. 다행히 몸을 관통하진 않았지만, 덮어쓰고 있던 후드가 살짝 찢겨나갔다.


"아. 빗나가버렸나."


조금 전까지의 서비스 정신 가득해 보이던 목소리는 온데간데없고, 냉정하고 살벌한 저음이 들려왔다.


"뭐, 어찌 됐든 상관없나."


등 뒤에서 달빛이 구름을 벗어나 대지를 비추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달빛은 날 넘어서, 눈앞에 남성까지 비췄다. 인간성이 느껴지지 않은 차갑고 살벌한 눈빛. 무덤덤한 표정으로 남성은 말했다.


"손 들어. 움직이는 순간 쏴버릴 거니까."


ㅡ화살이 장전된, 잘 정돈된 석궁을 내게 겨누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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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휴가가 가득했던 5월이 끝나간다. 잘 지내니 명붕이들아?

난 부모님 모시고 해외에 3박5일 효도관광 시켜드리고 옴. 덕분에 내 생활비 통장이 텅장이 되버림. 효도 ㅁㅌㅊ?


암튼 2번째 클라이맥스에 다가가려고 열심히 글쓰고 있긴 한데... 큰 문제가 생겨버림. 회사에서 6월 1일 승선 공지 나옴. 1달 반이 이렇게 빨리 가버릴 줄 몰랐다.


배 타기 전까지 완결낼 수 있...을 거 같진 않고, 배 타고 빨리 생활 적응해서 돌아오는 게 빠를듯... 미안하다 명붕이들아...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