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도 곧 올릴게.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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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우리는 하나 된 입으로 그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 모습은 마치, 불꽃 속에 피어난 한 줄기의 수선화와도 같았다고.

 

 

작전에 치명적인 착오가 발생해 후퇴를 감행하고, 대원들이랑 같이 적들의 맹렬한 추격을 피하고 있을 때. 절망적인 상황에서 믿지도 않는 신에게 살려달라고 마음속에서 아우성치는 그 순간이었다.

앞에서 보이던 희미한 섬광이 우리의 뒤를 향해 날아갔다. 그 직후 맹렬한 폭발에 놀라서 뒤돌아 보니, 우릴 지독하게 몰아세우던 적들은 사막의 신기루인 것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한 순간의 악몽을 본 듯한 이 상황에, 난 어이없이 멍하니 폭발이 일어난 곳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흠, 이 정도면 됐나.”

 

회색의 연기와 주황색의 불길이 뒤섞여 있는 광경 속에서 보이는 한 그림자가 천천히 우리에게 다가왔다. 희미한 시야 속에서도 확연히 보이는 머리 위 광륜과 등 뒤의 날개는, 실루엣만으로도 산크타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사파이어를 녹여낸 듯한 진한 푸른색의 머리. 깊이를 알 수 없는 하늘색 눈. 은은하고도 아름답게 옅게 띈 미소. 길쭉하고 비율 좋은 몸을 감싸고 있는 두꺼운 검은색 코트. 이렇게만 보면 평범한 산크타 여성이 걸어오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다들 무사해?”

 

하지만, 연기가 완전히 걷히면서 등장한 여성의 모습은 평범한 산크타와는 상당히 차이가 느껴졌다. 먹으로 더럽혀지기라도 한 것처럼 새까맣게 물들여진 광륜과 군데군데 균열이 가 있는 흑색의 날개. 그리고 산크타에게 있을 리가 없는, 정확히는 살카즈가 가지고 있을 법한, 머리 양쪽을 감싸는 크고 각진 뿔. 

 

괴리감이 느껴지는 그 외양으로부터 흘러나오는 기백에 왜인지 모를 불안감과 두려움, 그리고 기괴함이 내 몸 세포 하나하나를 훑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있지도 않은 문학적 소양을 끌어모아서 굳이 표현하자면, 공포라는 개념이 미녀의 모습으로 형태를 가지게 된 것 같은 섬뜩함이었다.

 

“조금은 놓칠 줄 알았는데, 잘 끝낸 거 같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구원의 손길을 내민 건, 신도 아니고, 천사라고 하기에도 애매하며, 하물며 악마도 아니었다. 이상하게 생긴 기다란 스태프 두 자루를 들고 다니는, 신비롭고도 기괴한 검은 존재였다.

 

“아무튼, 전달자 모스티마. 현 시간부로 로도스에 합류하게 됐어.”

 

자기 자신을 모스티마라고 일컫는 여성은 천천히 우리에게 다가왔다. 점점 가까워지는 발소리를 한 번씩 들을 때마다, 심장이 거세게 두근거리며, 몸이 계속 흠칫거리는 것이 느껴져 왔다.

 

“네가 박사지? 엠페러에게 어느 정도 들었어. 잘 부탁해.”

 

나를 보면서 검은 산크타는 싱긋 눈웃음을 지었다. 심장을 짓이기는 것 같은 폭력적인 아름다움에, 무심코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을 뻔했다. 

 

한 단체의 수뇌부라는 보잘것없는 자존심 때문일까. 혼란스러웠던 정신이 곧바로 진정되면서 주변 상황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했다. 추가적으로 추격해 올지도 모르는 이 상황에서 방심은 금물. 일단 대원들의 부상 상태를 확인하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정비를 마치고 귀환하도록 하기로 결정했다.

 

어디 그럼... 한 5분 정도 여유가 있을 것 같으니, 다시 한번 이 푸른 머리의 산크타랑 대화해보도록 할까. 

 

 

어디 보자, 적도 다 쓰러트렸겠다. 나도 너희를 따라가서 로도스로 걸어가면 되려나?

응? 왜 그래, 박사? 그렇게 날 뻔히 쳐다봐도 곤란한데. 

 

내가 누구냐고? 아까 설명했던 거 같은데. 아, 상황이 상황이었으니 제대로 듣지 못했으려나? 그럼 어쩔 수 없지.

 

그럼 다시 한번. 안녕, 박사. 내 이름은 모스티마. 엠페러의 소개를 통해 로도스에 오게 되었어. 종족은 보다시피 산크타. 너희 회사의 병과 분류로 따지면 캐스터려나? 여담이지만 나는 로도스와 펭귄 로지스틱스 사이의 계약 대상이 아니니까, 직접적인 명령 대상이 될 수 없는 건 알아줬으면 좋겠네.

 

장거리 운송하는 일이 많다 보니 자주 볼 수는 없을 거야. 그렇지만 뭐, 한가할 땐 로도스 아일랜드에 있을게. 잘 부탁해... 이 정도면 되려나? 그 외의 건 나중에 차근차근 이야기해보자. 시간은 많으니까.

 

음? 광륜이랑 날개가 검어서 멋있다고? ...하하. 이건 새로운 타입의 감상인걸? 보통 이걸 보면 대부분 무서워하는데 말이지. 펭귄 얘들이 말하는 데로, 꽤 재밌는 사람일지도 모르겠네. 너는.

 

자, 그럼 슬슬 움직여볼까? 로도스가 어떤 곳일지 정말 기대되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