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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달자 모스티마는 신출귀몰한 존재이다.’ 

 

현재 로도스의 대부분의 오퍼레이터들이 일관되게 내놓는 평가다. 만나는 것도 여간 쉽지 않은데 정작 만나도 몇 분 만에 다시 자취를 감춰버려서, 몇몇 사람들에겐 정체가 유령이 아닌가 하는 소문도 돌고 있을 정도다.

실제로 그녀가 입사하게 된 지 4개월이 된 지금, 나 역시 모스티마를 본 게 합해서 고작 3번이다. 그것도 지나가다가 본 거라서 대화한 시간도 길어봤자 합해서 30분도 되지 않을 거다. 그런데 나 정도면 정말 길게 대화한 수준이라고 하니, 이건 대체...

 

“음? 누군가 했더니, 너구나. 박사.”

 

호랑이도 제 말 하면 나온다고 했었나. 여러 생각을 하며 복도를 걷다가 코너에서 푸른 머리의 산크타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오랜만이네. 모스티마. 1달 만인가?”

“정확히는 4주일 정도려나. 거기서 거기지만.”

 

모스티마는 상긋 웃으면서 천천히 걸어왔다. 그녀의 검은 광륜이 창가의 햇살에 비치면서 제련된 흑요석과도 같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나저나 운이 좋네. 박사. 날 이렇게 자주 보는 건 학교 졸업 후 이래로 네가 처음인 거 같은데.”

“1달이 자주 보는 정도야?”

“4년 넘어서 재회한 친구도 있는걸. 4주일이면 양반이지.”

 

스케일 한 번 굉장하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시간 개념이 특이한 게 전달자의 특징인 건가 싶기도 하지만, 안젤리나 같은 얘들을 생각하면 그것도 아닌 거 같다. 그냥 이 여자가 특이한 건가 싶다.

 

“그래서, 어디 갔다 온 거야?”

“언제나처럼 일하고 왔지. 이번엔 시간이 별로 안 걸렸어.”

“왔다 갔다 해서 1달이면, 염국에라도 갔다 온 거야? 아니면 극동?”

“글쎄? 다른 곳일 수도 있지 않을까?”

“다른 데 간 거야? 어디 갔어?”

 

현재 우리 로도스가 멈춰 있는 곳은 용문과 우르수스의 경계선 근처. 걸어서 간다고 가정을 하면 갈 수 있는 장소는 한정되어 있다. 아니다. 가만있자. 우르수스에 있는 테라 횡단열차를 타고 간다면 라이타니아나 림 빌리턴까지도 시간 상 아슬아슬하게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나의 질문에 어떤 생각을 하게 된 건지는 몰라도, 변함없이 미소를 유지한 채 모스티마는 대답했다. 

 

“박사는 사람이랑 대화하는 걸 좋아하나 보네?”

“뭐, 그것도 있지만... 농땡이 피우는 목적도 있어서 말이야. 이렇게라도 해야 좀 쉴 수 있거든.”

 

특히 매일 업무 지옥을 선사하는 녹색 머리의 악마라거나 언제나 옆에서 감시하면서 쉬는 걸 용납 못하는 토깽이라던가. 생각해 볼수록 이놈의 회사는 왜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지 모르겠다.

내 대답이 예상외이기라도 한 건지, 모스티마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 이윽고 한손으로 입가를 살짝 가리더니, 그녀의 웃음소리가 조용히 들려왔다.

 

“박사는 역시 재밌네.”

 

칭찬인지 애매한 말 한마디에 머리를 긁적였다. 그런 내 모습조차 재밌는 것인지는 몰라도, 모스티마는 진짜 즐거운 듯이 다시금 말을 걸어왔다.

 

“쉴 시간이 필요하다고 했던가? 오늘은 급한 일이 없으니까 조금 정도는 같이 어울려줄게.”

“그거 영광인걸.”

 

모스티마는 멈춰 있던 두 발을 다시 움직였다. 몇 지나가더니, 살짝 고개를 돌려 다시금 날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그럼 맛있는 다과를 준비해 줄 수 있으려나? 그저 이야기만 하면 아무리 멋진 추억이라도 재미없을 테니까.”

 

일단 내 사무실에 있는 과자랑 차의 재고부터 확인해 봐야겠군.

 

 

박사의 방도 오랜만이네. 수속 서류 때문에 들어온 것 이후론 처음인가? 그때랑 비교해서 테이블에 있는 서류더미는 줄어들지 않은 거 같은데? 일 열심히 하고 있는 거 맞아? ...하하. 농담이야. 박사도 고생이 많구나.

 

차를 끓일 테니 기다려달라고? 오케이~ 그럼 잠시 느긋하게 소파에 앉아 볼까. 실례할게. 테이블에 있는 과자, 먹어도 되지? 잘 먹을게. 

 

흠... 용문산 가죽 소파에 빅토리아산 유리 테이블, 우르수스산 티 세트라. 박사의 방은 다시 보니 꽤 국제적인데? 어떻게 보자마자 아냐고? 오랫동안 전달자로서 살아온 감 정도라고 해둘게. 아, 차 고마워.

 

그럼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작은 수수께끼 하나. 과연 이번에 난 어딜 갔다 왔을까? 힌트를 주자면 방금 내가 언급한 세 국가 중에 하나가 정답이야. 3분의 1의 확률이니 한 번 맞춰보는 게 어때?

 

오. 정답. 한 번에 맞추다니. 굉장한데? 로도스의 지도자로서 살아온 감 덕분이라고? 하하. 방금 내가 한 말을 되받아 친 거야? 역시 박사는 재밌네.

 

아무튼, 맞아. 이번엔 우르수스의 교외에 있는 작은 마을에 들렀다 왔어. 눈이 소복이 쌓여 있는 평원 위 몇 군데에서 앙증맞게 연기가 솟아오르는 게 인상적이었지. 거기에 물건을 건네주려고 방문했더니, 추운 날씨에도 포근하게 웃으며 맞이한 주민들이, 특히 나이 꽤 있어 보이는 노부부가 인상적이었어. 그들이 대접해 준 순록 고기랑 따뜻한 보르시치도 맛이 좋았지. 

 

폭설이 예상되어서 하루 정도 그들 집에 묵게 되었어. 투박하지만 두껍고 따뜻한 순록 가죽 담요를 덮고 화로 근처에서 잠시 눈을 붙였는데, 정신 차려보니 어느새 아침이 되어버렸지 뭐야? 역시 화로 옆에서 자면 푹 자게 되더라. 간만에 어릴 적 생각도 나고 좋았어.

 

아침으로 나온 건 데워진 술 한 잔과 잼을 곁들인 호밀빵 2개, 그리고 감자 샐러드 한 숟가락이었어. 오두막 앞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찬바람을 받으면서 따뜻한 술 한 잔을 마시니 뭔가 더 특별한 느낌이 나더라. 그러면서 눈앞에서 서서히 떠오르는 해돋이까지. 다른 휴양지가 부럽지가 않은 분위기였지. 

 

그렇게 아침을 먹고 노부부한테 감사 인사를 하고 다시 마을을 나와서 이렇게 로도스로 돌아오게 된 거야. 아, 돌아오는 길에 평원을 달리는 순록 무리들도 봤어. 석양을 향해 달려가는 모습이 정말 장관이었는데, 아쉽게도 사진을 못 찍었네. 

 

아무튼, 우르수스라고 하면 보통 사람들은 수도의 거대한 궁전이나 제국의 통치 아래에 굳고 거센 군인들의 무리가 먼저 생각나잖아? 하지만 수도에서 살짝 벗어나서 보면 예쁜 자연에 녹아드는 사람들의 수수한 매력도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어. 꼭 유명한 장소에서만 좋은 풍경을 볼 수 있는 게 아니야. 이 세상엔 셀 수도 없이 많은 절경이 있는데 그걸 사람들이 못 찾을 뿐이지.

 

음? 내가 말한 걸 들으니 보르시치에 호밀빵을 찍어 먹고 싶어졌다고? ...하핫. 이건 또 전혀 상상 안 해본 감상인걸? 역시 넌 여러모로 특이한 거 같네. 그래서 더 재밌게 느껴지는 거 같아.

 

마침 식당에서 금발의 우르수스 아가씨가 저녁 메뉴로 보르시치를 만들고 있던 거 같은데, 한 번 가보는 게 어때? 아, 일단 저 서류뭉치부터 끝내야 갈 수 있구나. 후후. 빨리 일을 끝내야 할 이유가 생겼네? 응원할게. 박사.

 

그럼 슬슬 일어나 볼게. 급한 일은 없다 하지 않았냐고? 계속 한곳에 있으면 눈치 주는 녀석이 있어서 말이야. 누구냐고? 흠... 내 열렬한 스토커라고 해둘까. 반쯤은 농담이지만. 

 

그럼 잘 있어. 박사. 다음에 또 볼 수 있으면 좋겠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