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늘한 공기가 사무실과 나를 맴돈다. 옆에서 켈시 녀석이랑 첸 팀장이 말싸움을 했다던가 하는 이유가 아니다. 문자 그대로, 쌀쌀한 겨울바람이 내 목을 소름끼치게 핥고 있어서였다.

원래부터 이 방이 히터가 없어서 침낭이랑 버너를 들고 다니긴 하지만, 훤히 열려 있는 창문을 통해 돌진해오고 있는 이 바람을 막기에는 역부족이다. 

 

“언제쯤 빠지려나...”

 

왜 이 추운 날에 창문을 열어놓는가 하면, 몇 시간 전에 있었던 작은 소동 때문이다. 가드 오퍼레이터 무스가 예전에 이어 한 번 더 캣닢을 떨궜는데, 하필이면 그 장소가 내 사무실 바닥이었다. 만약에 고양이의 특징을 가지고 사는 필라인 오퍼레이터들이 그대로 들어오다간 예전처럼 영 좋지 못한 상황이 발생할 것이 안 봐도 비디오. 그래서 잠시 사무실에 출입 금지령을 내리고 창문을 전부 열어 캣닢 향을 빼내고 있는 중이다.

바람 때문에 서류 작업을 하기에도 뭣하고, 그렇다고 쉬기에도 좀 그런 이 상황. 뭐처럼의 상황이니 한동안 더러워진 먼지투성이의 사무실을 치우기로 결심했다. 

 

“허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되나.”

 

종종 비서 오퍼레이터가 해준 걸 감안해도 거의 1달 만에 하는 방 청소. 그만큼 치워야 할 것만큼 버려야할 것도 산더미였다. 냉장고 속의 유통기한이 2주 지난 식빵 정도는 약과일 정도로, 책상 위에 쌓여 있는 서류더미들 하며 이곳저곳 뒹굴고 있는 서적, 테이블 위를 나뒹굴고 있는 맥주캔 무더기까지. 보기만 해도 눈앞이 깜깜해질 것만 같았다.

 

“이제부터 청소를 주기적으로 하든지 해야겠네.”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던가.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은 오늘 안에 할 수 있을 만큼은 해봐야지.

 

“청소하는 걸 핑계로 일 안 하려는 건 아니지?”

“솔직히 말해서 그런 것도 없잖아 있... 어라?”

 

서류뭉치에 손을 대기 직전이었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은 순간이. 

문밖에 출입 금지라고 써져 있는 문패도 걸어놓았고, 하물며 누가 문 열고 들어오는 소리도 없었다. 들어올 수 있는 공간이라면 열려 있는 창문 외엔 있을 리가 없었다. 하물며 내 사무실의 위치는 로도스의 전함에서 최상층. 지상 정박 중인 지금이더라도 그 높이는 10m는 거뜬히 넘길 것이다. 특수 장비를 곁들여 밖에서 올라오는 게 아닌 이상, 지금 내 방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이론상 없다는 것이다.

 

로도스의 적대 세력에서 온 암살자인가? 혹은 오퍼레이터가 치는 장난? 아니면 유령? 당황스러움과 의아함, 그리고 약간의 두려움이 섞이면서, 척추 안에서 전기가 흐르는 것 같은 서늘함과 동시에 내 몸이 나사가 박히듯이 뻣뻣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비상 호출 버튼이 들어있는 주머니에 살며시 손을 뻗었다. 그러고는 침을 꿀꺽 삼키면서 긴장된 몸을 억지로 진정시키고, 조금씩 창문 쪽으로 고개를 틀었다. 

 

“뭐야. 너였구나. 모스티마.”

“그간 건강했어? 박사.”

 

공포를 억누른 끝에 천천히 회전한 시야에 비치는 건, 창문에 기대며 재미있다는 듯이 날 바라보고 있는, 꽤나 오랜만에 보는 것 같은 한 산크타였다. 

 

“놀랐잖아. 난 또 누가 습격이라도 한 줄 알았어.”

“생각보다 겁이 많구나?”

 

내 눈앞에 있는 여성, 모스티마는 바람을 등지며 천천히 다가왔다. 물결과도 같이 허공을 부드럽게 춤추는 푸른 머릿결에 감싸인 그녀의 청순한 미소는, 방금 전이랑은 다른 이유로 무심코 침을 삼키게 만들었다.

 

“어떻게 내 방에 들어온 거야? 문밖은 지금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을 텐데.”

“내가 방금 있었던 곳을 보면 감이 오지 않을까?”

“네가...? 혹시, 날아서 창문으로 들어온 거야?”

“글쎄. 그건 상상에 맡길게.” 

 

산크타의 날개가 비행 기능이 있었던가? 가지고 있던 기본 지식에 갑작스레 혼선이 왔다. 그런 내 모습에 모스티마는 어깨를 잠시 으쓱이더니 앉는 장소를 소파로 옮겼다. 어질러져 있던 내 방을 팔짱을 낀 채로 한 번 쓱 돌아보더니, 흥미로운 듯 몇 번 고개를 끄덕이며 짧은 신음을 내뱉었다.

 

“그나저나 오늘 이내에 이걸 다 치우는 건 무리겠는데? 할 수 있겠어?”

“아니... 솔직히 자신이 없는데. 말 나온 김에 도와주면 안 될까?”

“추가로 수고비를 준다면 해줄 수도 있는데.”

“관두자... 지갑이 너덜너덜하다.”

 

씁쓸함이 가득 담긴 한숨과 함께 방 청소가 시작되었다. 한동안 종이나 비닐봉지가 부스럭거리는 소리, 캔이 통에 부딪히는 소리, 빗자루가 바닥을 훑는 소리, 창문 너머로 들리는 바람 소리 등, 여러 가지 음향의 합주가 사무실을 감쌌다. 

 

처음엔 조금씩 정리되어 가는 것 같아서 빨리 끝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살짝 들었다. 하지만 치울수록 오히려 청소할 게 늘어나고 있는 걸 알아채버림과 동시에, 다시 기분이 침울해졌다. 이프리트 녀석을 불러서 이 등가 교환의 법칙을 무시하는 빌어먹을 방을 소각시켜 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Mon3ter에게 곤죽이 될 용기 따윈 없으므로 이런 건 마음속에만 삭혀둬야지.

 

“박사. 힘들지 않아?”

 

소파에서 얌전히 잡지를 읽고 있던 모스티마는, 꼬고 있던 다리의 방향을 바꾸면서 질문을 던졌다. 평소처럼 곧바로 사라질 줄 알았는데 기다리고 있는 걸 보니, 오늘은 시간 여유가 좀 있는 건가?

 

“몸은 안 힘든데 정신은 힘들어.”

“후후. 청소가 원래 그렇지.”

“부탁인데 진짜 도와주면 안 돼? 정신 나갈 거 같아.”

 

어린아이 같은 투정에 모스티마는 아무 말 없이 날 응시했다. 속으로 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하는 소심한 불안감이 잠시 머릿속을 스쳐지나갔지만, 수정처럼 투명한 그녀의 하늘색 눈빛이 그것을 강렬하게 부정했다. 마치 TV 너머의 관심 없는 연예인을 보는 것과도 같이, 어떠한 의미에선 공허하다고 느껴질 수 있는 내 눈앞의 여성의 시선은 무심코 잡고 있는 서류를 꽉 쥐게 만들었다.

 

“대신이라고 하기엔 뭐하지만 청소하는 동안 말동무는 해줄게. 대화하는 거 좋아하잖아?”

 

방금 전의 이상한 분위기를 무마하기라도 하려는 것일까? 고개를 살짝 튼 채 모스티마는 싱긋 웃으며 내게 제안해왔다. 왜인지 모를 마음 속 이질감으로 인해 말이 선뜻 나오지가 않아서, 난 그저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아, 전처럼 과자도 부탁해. 가능하다면 커피도.”

 

다과라고는 냉장고에 남은 내 비상식량 밖에 없는데... 이를 어쩌나.

 

 

솔티드... 에그... 초콜릿? 이 플레이버가 용케도 아직도 팔고 있구나. 내가 알기론 맛이 이상한 주제에 칼로리는 심각하게 높다는 악평이 많아서 몇 달도 안 지나서 재고 회수했다고 들었는데. 어라, 합성옥 0.2% 첨가...? 뭔가 이상한 재료가 섞인 거 같은데? 네가 직접 상점에서 개인 주문해서 먹고 있는 거라고? 하하. 입맛 취향이 너무 독특한 거 아니야, 박사? 내가 이번에 배달 간 곳 사람들이랑 성향이 잘 맞겠는데. 이번에도 여행담이냐고? 맞아. 애초에 내가 너에게 말해줄 수 있는 건 이것밖에 없거든. 

 

음, 그나저나 역시 맛이 별로네. 이 초콜릿. 차라리 민트초코를 파인애플 피자에 얹는 게 더 맛있겠어. 그나마 커피 향이 좋으니 아슬아슬 세이프라고 쳐둘게.

 

아무튼, 이번에도 맞혀 볼래? 내가 어디를 갔다 왔을지. 힌트는 내가 방금 말한 음식 중 하나의 고향인 곳이야. 

 

셋. 둘. 하나. 땡. 시간 종료~ 이번엔 좀 어려웠나 보네. 정답은 빅토리아야. 민트초코의 원산지가 되는 그곳이지. 런더니움에 갔냐고? 아쉽지만 이번에도 오답. 런더니움으로부터 남서쪽으로 좀 멀리 떨어져 있는 한 작은 도시야.

 

이번에 들른 곳은 빅토리아의 유서 깊은 유적. 정확히는 그곳을 연구하는 한 연구소였어. 우리 사장님이 그쪽 연구소장에게 전달할 물품이 있다고 해서 말이야. 유물 같은 거냐고? 글쎄. 그건 모르겠네. 조심히 운반하라고만 주의를 받았지, 그 외의 사항은 못 들어봤어. 

 

어디부터 설명할까... 그래. 일단 기후부터 간략하게 설명하자면, 빅토리아는 지형 상 안개가 종종 발생하는 곳이야. 고층 빌딩 위에서 바라보면 마을 전체가 안 보일 정도로 시야가 새하얗게 되는 것도 부지기수지. 불행히도 내가 이번에 들렀을 때도 그런 상황이었고, 오랫동안 체류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 관광을 길게 못 했다는 게 아쉬웠어.

 

음? 전달자라면 빅토리아도 여러 번 다녀보지 않았냐고? 당연히 몇 번이고 가봤지. 하지만 같은 장소라도 다시 가게 되면 새로운 감상을 느낄 수 있다는 게 내 개인적인 생각이라서 말이야. ...후후. 이해하기 어려워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네? 그럴 수 있지. 

 

안개가 심했던 탓에 멀리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고, 일단은 식사라도 하자고 생각해서 연구소 옆에 있는 작은 레스토랑에 들러서 피쉬 앤드 칩스를 시켰어. 유명 잡지에서도 추천했던 숨겨진 맛집이라 기대를 했는데, 솔직히 말해 평범했어. 물론, 빅토리아 사람들의 전형적인 식사를 생각하면 그 정도는 양호한 편이었지. 

 

식사를 마치고 후식으로 나온 커피를 마시는 도중에 그곳의 필라인 주인장이 내게 말하더라. 처음 온 사람이라면 평원에 있는 유적은 꼭 보고 가라고 말이야. 아마도 내가 평범한 여행객인 줄 알고 그렇게 말한 거였겠지. 후후. 처음으로 전달자를 시작했을 때의 일이 떠올라서 무심코 웃음이 나왔네.

 

유적과 연구소가 있는 도시의 거리는 대략 3km 정도밖에 안 되기도 했고, 어차피 위치상 로도스로 내려가는 도중에 들를 수 있던 곳이었어. 그래서 근처 여관에서 하루 묵고 새벽 일찍 유적으로 향했지. 다행히 출발할 땐 안개가 별로 심하지 않아서 다행이었어.

 

인적이 거의 없는 드넓은 초원 위를 천천히 걸으면서 주변의 경치를 천천히 둘러보기도 하고, 지도를 꺼내 위치를 확인하기도 하고. 느긋한 마음으로 걸었더니 1시간쯤 됐으려나? 유적이 가까워지는 게 육안으로 보였지. 

 

마침 타이밍 좋게 시작한 일출. 지평선이 훤히 보이는 공간에서 우뚝하니 서서 원을 이룬 여러 개의 돌기둥들. 그리고 햇빛에 비춰져 초원을 가로지르며 내게 다가오는 거대한 그림자들. 마치 뭐라고 해야 될까? 음... 뭔가 더 섬세한 표현을 하고 싶은데, 그때 그 경치를 더 좋게 묘사할 방법이 없는 게 아쉽네. 

 

알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간 유적은 먼 옛날에 한 마법사가 만든 제단이라는 설도 있고, 죽은 자들을 기리기 위한 성역이라는 설, 심지어 외계 행성의 존재가 만든 물체라는 말도 있는 등, 아직도 세계 중에서도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장소 중 하나야. 그런 것들을 알고 있는 채로 그 광경을 보니까, 멋지다거나 아름답다는 생각보다도 이런 생각이 들더라. 마치 돌 안에 잠들어 있던 거인들의 영혼이, 유적을 방문한 자들에게 아침 인사를 해주는 게 아닐까, 하고. 

 

하하... 뭔가 좀 중학생이 말할 법한 상상이었으려나. 다시 말하고 싶은 묘사는 아니네. 방금 한 말은 철회할게. 음? 소설의 문구 같아서 멋있다고? ...하하. 혹시 위로해주려고 그런 거야? 어떤 의도이던 간에... 볼 때마다 점점 재밌는 사람이네. 너는.

 

그나저나, 시간이 얼마 안 지난 거 같은데, 벌써 절반 정도 끝냈네. 박사는 의외로 이런 쪽으로 재능이 있는 거 아닐까? 시간이 어째 느리게 간 것 같다고? 후후. 청소가 힘들어서 체감 상 느리게 간 거 아닐까? 아니면 어딘가의 시간 여행자가 장난으로 이곳의 시간이 흐르는 걸 일시적으로 느리게 만들었을 가능성도 있지. ...농담이야. 설마 진짜 믿은 건 아니지?

 

아무튼 그렇게 유적에 대한 짧은 감상을 끝내고 이렇게 로도스로 막 돌아온 상태라는 거지. 다행히 한동안은 일이 없을 예정이라 하니. 간만에 좀 쉬어볼까 생각 중이야. 청소에도 진척이 많이 보이는 거 같으니, 이만 슬슬 일어나 볼게. 

 

응? 왜 박사? 다음에 또 다른 여행담을 들려달라고? 하하. 넌 진짜 호기심이 많구나. 뭐, 다음번에는 좀 더 괜찮은 과자랑 커피를 준비해 준다고 하면 못 할 것도 없지. 기대하고 있을게.


그럼 안녕. 박사. 다음에 기회 되면 또 놀러 올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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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중에 무스가 캣닙을 떨궜다는 내용은 앤솔로지 1권 3편에서 아이디어를 따와봤음. 


설정오류라던가 문체라던가 온갖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