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동묘지에서 나와서 현재 우리가 있는 곳은 입구 앞의 자판기. 살짝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5 용문폐짜리 캔 커피를 입에 댔다. 꽤나 익숙한 싸구려 단맛이 혀에서 맴도는 것이, 그럭저럭 내 취향이었다.


“공동묘지 앞에서 마시는 커피도 뭔가 운치 있네.”


내 같잖은 농담에 모스티마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관심이 없는 건지, 아니면 재미가 없어서 모른 척하는 거인지는 몰라도, 그녀는 아까부터 자판기에 기댄 채 저 멀리 보이는 도시의 숲을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에 짓던 은은한 미소 따위 없는 아무 표정 없이 덤덤한 모스티마의 얼굴. 인형을 보는 것 같은 섬뜩한 그녀의 모습에 무심코 쥐고 있던 캔커피를 찌그러트려버릴 것만 같았다.


“박사는 서우인의 의미를 알고 있어?”


말 꺼내기 무서워서 아무 말 없이 커피나 홀짝이고 있던 와중, 뜬금없이 모스티마가 질문을 던져왔다.


“고대 살카즈의 제사에서 가져온 거라 들었는데.”

“어느 정도 알고는 있구나.”


모스티마는 한참 손에 쥐고 있던 음료수 캔을 한 모금 들이켜면서 몸을 돌렸다. 이윽고 내가 앉아있는 벤치 옆으로 다가왔다.


“옛 살카즈들은 계절의 변화를 알리는 네 개의 ‘불의 축제'를 열었어.”

“불의 축제...?”


예전에 메딕 오퍼레이터인 샤이닝한테 비슷한 걸 들어본 적이 있는 것 같다. 살카즈는 옛날부터 척박한 환경에 살아온 것으로 인해 불을 숭상하는 토테미즘이 발달해 있었고, 그 ‘불'이라는 개념에 대한 대규모 의식이 있었다고. 아마 ’불의 축제‘라는 게 이걸 말하는 게 아닌가 싶다.


“네 가지 ‘불의 축제’. 서우인, 발타너, 이몰륵 그리고 루너서. 그 중에서 서우인은 여름의 끝과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행사야.”


모스티마는 엄지손가락을 제외한 모든 손가락을 펴며 말했다. 방금 전까지의 싸늘해 보였던 모습은 마치 가면이었다는 듯, 어느새 그녀는 다시 평소처럼 은은한 미소를 지은 채 내게 말을 걸어왔다.


“옛날부터 각종 미신과 신화에서 여름은 생물의 번창을, 겨울은 생물의 죽음을 의미했지. 살카즈라고 다를 바 없었어.”

“그걸 말하고 있다는 건, 혹시...”

“감이 좋네, 박사. 아까 말했듯이 서우인은 여름의 끝이자 겨울의 시작. 즉, 주술적 의미로 보면 생명의 시작과 끝이 공존하면서, 둘 중 그 누구에게도 속하지 않기도 하는 모순적인 시간이지.”


앉아있는 벤치가 불편한 것일까? 모스티마는 잠시 몸을 뒤척이더니 다리를 다른 방향으로 비틀었다. 뭔가 답답한 건지 깊은 한숨을 잠시 내쉬는 것은 덤이다.


“이떄는 이승과 저승 간의 경계가 희미해지고, 신과 악마, 죽은 자와 산 자, 요정과 악령 모두가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게 된다고 해. 이때를 틈타서 종종 현세에 미련을 가진 이들이 난동을 피우기도 한다지.”

“그럼 이날 축제를 지내는 이유가... 그 악령들을 저승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건가?”

“맞아. 네가 예상한 대로야. 원래 서우인은 세상을 떠난 자의 영혼을 맞이하고. 이들이 인간 세상에 남긴 미련을 달래며, 윤회에 들게 하는 날이지.”


남은 음료를 한 번에 들이키고 나서, 모스티마는 캔을 찌그러트린 뒤 반대편에 있는 쓰레기통을 향해 던졌다. 깔끔한 포물선의 끝에 다다른 곳은 정확히 쓰레기통의 정중앙. 훌륭한 클린 슛이었다.


“그런데 저들은 뭘 하는 걸까? 아무리 봐도 그런 행사로 보이진 않는데.”


모스티마는 다시금 도시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분명 평소랑 다를 바 없는 어조였지만, 왜인지 모를,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 것 같은 이질감이 내 귀를 간지럽히는 것 같았다.


“저들이라니... 용문 시민들을 말하는 거야?”


별다른 대답 없이 돌아온 건 옅은 한숨. 그리고 좌우로 약하게 흔들리는 푸른색 머리칼. 명확한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모스티마가 말하고 있는 건 저 형광등의 숲에 사는 사람들만이 아니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산 자들은 춤추고 노래하며 유령 분장이나 할 줄 알지, 묘지에 있는 진짜 망령들에 관심을 갖진 않아. 서우인은 원래 그런 날이 아닌데.”


안타까움, 슬픔, 혹은 야속함. 여러 복잡한 감정이 섞인듯한 기운이 그녀에게서 나오고 있었다. 마치 감정을 표현하듯이, 원래부터 녹이 슨 것처럼 어두운 그녀의 광륜과 날개는 평소보다 더 짙게 물들어 있는 것 같았다.


“음... 시간이 지나면서 그 의미가 바뀐 게 아닐까? 어떤 것이든 가치나 개념이 영원한 건 없으니까, 서우인도 그걸 피하지 못 한거고.”

“시간... 시간이라...”


내가 대충 던진 말에 다시금 모스티마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처럼, 혹은 잊고 있었던 무언가를 떠올린 것처럼. 모스티마의 시선은 구름으로 가득한 밤하늘로 향했다.


“그래도 산 자는 죽은 자를 기억할 의무가 있어. 그 사람들이 세상에 남긴 흔적들이 전부 가루 되어 사라지더라도. 그들이 있었기에 좋든 나쁘든 현재가 만들어진 거니까. 하지만 현세에 사는 자들은 종종 그것을 잊고 살아가지. 자신이 영위하고 있는 일상의 하나하나가 얼마나 의미 있는지를 모른 채하고 말이야.”

“죽은 자를... 기억?”


1초도 되지 않는 매우 한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만큼 선명한 자극이 내 머리를 간지럽혔다.

산 자는 죽은 자를 기억할 의무가 있다. 분명 우연히, 그저 자연스럽게 본인의 의견을 말하는 것일 뿐이었다. 하지만 거짓말같이 그녀가 한 말은, 마치 내가 본 걸 같이 경험한 것처럼 너무나도 정확하게, 내 가슴을 강렬하게 후벼팠다.


체르노보그에서 기억을 잃은 날 살리려고 자신을 희생한 에이스. 비록 적이었지만 우리에게 각자의 의지를 남기고 간 프로스트노바와 패트리어트. 그 외에도 여러 작전에서 안타깝게 목숨을 잃어간 사람들까지. 하나같이 내가 직접 겪으면서 결코 잊지 않겠다고 결의를 다진 하나하나의 순간들이 마치 샌드위치처럼 겹쳐져 내 머릿속을 휘젓는 것만 같았다.


“그럼 모스티마 너는, 누구를 기억해야 하는 거야?”


누군가의, 정확히는 의미 있는 사람의 죽음을 목격했기에. 비슷한 장면을 목격하고, 유사한 고통을 겪은 사람이기에. 저런 말을 던질 수 있는 게 비로소 가능한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궁금해졌다. 내 눈앞에 있는 이 여성의 푸른 눈빛 너머에 누가 있고, 어떤 일이 있었고, 무엇이 존재하는지.


“글쎄. 어떠려나.”


구름에 가려진 별이랑 달의 광채는 천사의 눈동자를 비추지 못했다. 한참 밤하늘을 바라보더니, 모스티마는 아쉬운 듯 한숨을 쉬며 한동안 멈춰있던 발걸음을 다시금 옮겼다.


“슬슬 돌아갈까. 박사. 칙칙한 이야기는 이쯤 하자.”


이 2시간이 안 되는 시간 동안 몇 번이고 바뀌어왔지만, 최종적으로 모스티마의 표정은 언제나처럼 아름다운 미소로 채워져 있었다.


하지만 이쯤 되면 알 수 있었다.


저 천사가 지은 저 웃음은, 나비의 허물과도 같이 텅 비어있고, 심연과도 같이 그 실체를 알 수가 없는 것이라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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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우인은 실제 켈트족이 했던 축제라더라. 소란의 법칙 이벤트 하다가 알게 됨. 


피드백은 언제나 환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