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룡이고 뭐고 떡밥 괜히 풀어놓은거때문에 안그래도 난잡한 스토리가 더 난잡해진거 빼면...


사가가 귀엽다 시가 귀엽다 이런 것도 있지만

이번 스토리 자체가 시가 느끼고 보는 세상의 모습이라는 느낌이 팍 들더라.

특히 전부 그림 속의 사람이라고 말하는게 진짜 뭔가 확왔음.

셀 수 없는 세월을 사는 동안 시는 많은 것을 보고 흥미를 잃었다고 하잖아.

시처럼 수명이 긴 종족에겐 그림 속의 일들처럼 눈을 감았다 뜨면 모든 것이 가면만 바꾼 같은 삼라만상이었을텐데

라이의 말처럼 시는 많은 사람들을 잃어오면서 얼마나 허무했을까 싶음.



또 시가 로도스로 향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사가가 그림과 꿈에서 홀로 빠져나와 니엔과의 내기에서 져서인데

사실 내기에서 져서 보다는 사가가 빠져나온 것 자체와 말했던 주지스님의 말이 가장 영향이 짙었지않나 싶어.



이 주지스님의 말은 꽤 추상적인 해석이 필요하게 된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라는 말은 곧 산=산, 물=물 이라는 불변의 고유성을 지닌다는 말이야.

사실 당연한 말이지. 산은 산이라고 부르고 물은 물이라고 부르는데 뭐가 다를게 있겠어.

백두산 천지 호수라고 해도, 호수는 호수고 백두산은 백두산이잖아.

그렇지만 사회에 나와서 보면, 산을 물이라고 불러야할 때도 있고, 물을 물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때도 있어.

시가 보았던, 주지스님이 소년승일 때, 그 소년승이 부당하게 죽어가던 사람들 사이를 지나던 때처럼 말이야.

굶주리지않는 사람이 있는 세상에서, 굶주려 죽어간다는 부당함.



이 부당함과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가 무슨 관계인지는 우요우와 크루스의 이야기로 표현되.

니엔은 두 사람의 이야기 끝에 동일하게 죽음을 택했다는 것, 좀 더 나은 결말을 택하는건 어때라는 것은,

결국 우요우와 크루스는 자신의 결말을 꿈 속에서 선택할 수 있었다는거야.

우요우는 린의 권유를 받아 부당한 죽음을 맞이한 스승에 대한 복수를 포기하고 살아갈 수 있었어.

크루스는 비글이 죽었더라도 상황을 피하고 살아남을 수 있었어.

하지만 좀 더 나은 결말 대신, 자신이 응당 그랬어야할 결말을 꿈꿨지. 둘 다.



하지만 시는 달랐어. 시는 그림 속 세상의 라이와 이야기꾼을 통해 말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던 다시 돌아온다고.

아내가 남편이 죽는 것을 보고, 지어미가 죽는 모습을 아이가 보게 하는 불합리함이 있어도

세상은 변함없이 돌아가니까 신경쓰지말라고 말해.

세상이 허무한 시에게는 모두 그림 속의 사람들이거든.

산이 산이 아니면 어떠하리, 물이 물이 아니면 어떠하리 라는거지.



그래도 스토리 마지막 라이와의 담화를 봐서는 시도 전부 화중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를 처음부터 이해하고있었던 것 같아.
그러지않았다면 라이의 임종을 지켜보지않았겠지. 알고서도 피하고 은둔했을 뿐..

위에 비유한 백두산 비유를 보면

산 -> 백두산 -> 그림

물 -> 천지 호수 ->사람

이렇게 옮길 수 있어. 그림 안의 사람이더라도 그림은 그림이고 사람은 사람이다라는거지.

사가에게 전해들은 주지스님의 말로 자신의 패배를 인정한 시는 니엔을 따라 로도스로 오게 되.

그리고 엔딩 후일담처럼 로도스 안의 모습들에 흥미를 느끼고 니엔에게 물어봐오는 것으로

시는 자신의 세상(그림)을 넘어서 비로소 바깥 세상(사람)을 보게 되.


이런 세세하고 추상적인 스토리가 너무 맘에 들었다...




덤) 사가는 항상 말마다 자신이 어디를 많이 돌아다녔지만 많이 부족하다~ 라고 하는데

반대로 시는 어디를 많이 다니기보다는 자신이 살아온 세월과 경험으로 그림을 그려가.

스토리 상에서는 니엔에게 내기를 져서 로도스로 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가에 대해서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고 더 많은 것을 보기위해 로도스로 온 게 아닌가 싶음.


돌씹하고 돌다가 졸린 채로 쓴다 비몽사몽하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