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arca.live/b/hypergryph/43513332

-> 지난 화에서 이어집니다. 



용문에 근거지를 둔 물류회사 펭귄 로지스틱스.

'엠퍼러'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용문의 여러 물건을 운반하는 회사. 나 텍사스는 이런 생활을 나름대로 마음에 들어하고 있다.

동료인 엑시아나 소라, 크루아상은 모두 좋은 녀석들이고, 그저 말없이 짐이나 인물을 나르기만 하면 굶을 일은 없는 업무내용도 좋았다.

언제나 똑같은, 그러면서도 단 하루도 똑같았던 날이 없는 매일에 만족하고 있었다.


그래서, 상사인 엠퍼러로부터 '로도스라는 제약회사에서 의뢰를 받았다. 너희들을 파견하는 조건으로 평소의 2배는 받으니 잠깐 다녀오라'고 들었을 때 이 보스, 펭귄 꼬치구이로 만들어버릴까도 생각했다.


이제 와서 다른 회사의, 그것도 제약회사같은 곳에 근무하고 있는 인텔리들과 내가 커뮤니케이션을 취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그렇게 말하니 이 꼬치 재료는 '아, 괜찮아. 너희들이 파견될 곳은 용병부대니까' 라며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뭐라는 거지. 제약회사야, 용병부대야? 어떻게 생각해도 제대로 된 곳일리가 없다. 직원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나나 소라는 물론, 엑시아나 크루아상이 군대의 규율을 따르는 모습이 상상도 가지 않는다. 


내가 북경오리는 펭귄으로도 만들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자 이 재료 녀석은 '쫑알쫑알 시끄러워, 빨리 가기나 해. 너희가 로도스에 간다고 여기 일이 없어지는 건 아니야. 도착하면 연락이나 해' 라며 우리를 내쫓았다.

한창 때의 젊은 여성 사원들을 준비도 해주지 않고 내쫓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머리가 어떻게 된 녀석이다. 

그러니까 날지 못하는 거야, 당신.

그렇지만 뭐 결국은 이 터프하고 쓸데없이 전투력 높은 펭귄을 요리하는 수고와 낯선 제약회사로 가는 수고를 비교해보면 아무리 생각해도 후자가 더 나았으므로, 나와 엑시아, 소라, 크루아상 4인조는 파견임무를 듣자마자 거점을 옮기는 형태가 된 것이다.

떠나려는 순간에 들은 보스의 '뭐, 지금의 박사는 나쁘지 않아. 오히려 재미있을 걸. 그냥 파티처럼 생각하고 다녀오면 돼' 라는 말은 불안하게만 들렸다. 엠퍼러가 재미있다고 했던 일 중에서 제대로 된 게 없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역시, 제대로 된 조직은 아니었다.

취임 첫날 인사차 나타난 새 상사는 코트에 바이저에 후드라는, 제약회사 간부라고 생각하기 힘든 모습을 한, 어딜 봐도 수상해보이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수상함 이외의 요소가 보이지 않는다. 회사원 0 : 수상한 사람 100이다.


이 때까지는 설마 자신이 이렇게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설마, 그에게 반하게 될 줄은.



***



"불만이다. 인원 조정을 요구한다."


"그렇게 말하지 마, 텍사스. 이게 최적의 팀이야. 그리고 이미 작전 허가도 받았어. 이제 와서 바꿀 순 없어."


"맞아, 텍사스. 그러면 안 돼. 주인 말은 잘 들어야지."



라플란드, 너한테만은 그런 말 듣고 싶지 않아. 

박사 이외엔 누구의 명령도 안 듣는건 물론이고, 말을 듣게 하려던 다른 지휘관도 죽일 뻔했잖아, 너.



"...엑시아면 되지 않나. 실력도 충분하잖아. 이 녀석과 2인조라니, 난 싫어."


"엑시아의 총화기랄까, 이번 임무에는 산크타를 투입하는 것 자체가 위험해."


"...크루아상"


"그날은 다른 임무와 시간이 겹쳐서 안되겠어."


"포기해, 텍사스. 괜찮잖아, 나랑 둘이면! 아하하하"



이번 임무 내용은 요인의 배달.

정확히는 박사 배달이다. 목적지는 용문 내 한 기업.

그곳으로 무사히 박사를 전달하고, 협상이 끝나면 무사히 로도스로 데려간다.

이는 펭귄 로지스틱스으로서의 임무 의뢰였다. 

보통이라면 일개 사원인 나에게, 고용주에게 작전 불가를 주장하는 등의 불평을 할 권한은 없다.

하지만, 이번은 다르다. 박사의 호위로 지명된 사람은 라플란드 한 명.

박사, 나, 라플란드 셋이서 다녀오는 것이다.

뭐, 솔직히 말하자면, 너무 싫다.



"...이 녀석은 호위도 제대로 할 것 같지도 않은데. 나와 박사 둘이 가는 게 낫지 않을까."


"그러지 마, 텍사스. 요즘 라플란드는 말을 잘 듣거든"


"맞아, 난 제대로 말 잘 듣는다구? ...박사 말이라면."



그렇게 말하자 이 녀석은 기쁜 표정으로 목의 초커를 어루만졌다.

...일일이 열받게 한다. 

전부 알고서 하는 게 거슬린다.

지금 라플란드의 목에 있는 것은 얼마 전 박사로부터 선물받은 초커다.

뭔가 임무에서 활약한 보상인 것 같다.

박사도 박사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런 가벼운 이유로 루포에게 초커를 주다니...


......짜증나.



하지만 아무래도 이제 이번엔 빠져나갈 곳이 없는 것 같다.

이번 작전의 핵심은 소수정예라는 것.

상대는 뒷세계와 연관된 녀석들이다. 그렇다면 산크타를 싫어하는 것도 수긍이 간다.

유사시에는 호위 한명과 운송인 한명으로 어떻게든 할 필요가 있다.

이 고난도 작전에 박사에게 선택받는 것 자체는 기쁘다.

동행자가 최악일 뿐이지만.



"알겠어. 일이다. 어쩔 수 없지. 출발은 모레였나?"


"납득해줘서 고마워, 텍사스"


"...정말이지 위엄이라곤 없는 고용주군. 라플란드, 내 방해만 하지 마."


"후훗... 알고 있어. 그리고... 박사는 철저하게 지킬 거야. 내가, 반드시."



최근, 이녀석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저런 말을 하다니... 원래 이녀석의 입에서 "지킨다"는 말이 나오는 것 자체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자신 아니면 적. 그 두 가지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녀석 머리 속엔.


...정말, 불쾌하다.



...너에겐, 넘겨주지 않아.



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



잠들지 않는 도시 용문.

시간이 벌써 밤이라고 해도 좋을 시간대인가.


네온사인과 떠들썩한 번화가, 이번 목적지는 거기서 조금 떨어진 빌딩들 속에 있었다.

기업 간의 협상에 적합한 시간이 아니라는 것은 사회 초년생도 안다.

이런 시간대로 약속을 잡는 상대 기업도 상대 기업이지만, 그걸 받아주는 로도스도 로도스다.



"그럼 갔다 올게 텍사스. 돌아갈 때도 부탁할게."


"...조심해, 박사. 빌딩 내부만이 아니야. 주위에도 꽤 있다."


"알았어. 만약에 일이 생기면 부탁하지."



나는 여기까지 이들을 데려다 준, 얼핏 보면 밴처럼 보이는 위장 장갑차에 기대며 주위를 살핀다.

하나, 둘, 셋... 적어도 5곳? 완전히 둘러싸여 있다.

이 정도라면 빌딩 옥상에 저격수도 배치되어있을 것이다.

난이도 높은 작전이라고 생각했지만, 이건 상상 이상이다.

허나, 여기서부터는 박사의 옆에 호위인 라플란드밖에 동행할 수 없다. 나는 빌딩 밖에서 대기할 뿐이다.



"...라플란드. 실수하지 마."


"그래."



평소의 그녀에게 나오지 않을법한, 짧고 진지한 응답.

오늘 작전 중, 나는 라플란드가 괜한 사고를 치지나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을 깨고 라플란드는 이동중인 차 안에서도 담담하게 주변 지도와 목적지의 내부 구조도를 재검토하고 있었다.

정말 일류 호위처럼.

나는 운반책이다. 이번 협상의 자세한 내용은 듣지 못했다.

내가 들은 것은 상대의 규모, 세력, 용문에서의 위치 등이다.

하지만 들은 내용으로 미루어볼 때, 이번 상대는 로도스와 동맹이라고 할 수 있는 용문근위국 특별감찰대와 대립하고 있는 조직.

그리고 그 기업의 주요 뒷거래 수입은... 인신매매.

웬만한 일은 가리지 않는 로도스조차도 금기로 여기는 직업.

출발하는 길에 아미야 CEO가 직접 배웅을 나와 '조심하라'며 당부까지 한 것이다.


오늘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협상. 의논이다.

그러나... 라플란드의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

아마도 시라쿠사에서의 경험이 그렇게 만든 것일 것이다. 이번 상대는 그 무렵 라플란드가 죽이고 다녔던 상대와 비슷한 놈들이다.

그런데... 이녀석, 언제부터 "기다려"를 배운 거지.

이 살기가 충만한 분위기, 라플란드가 광기를 억누르며 냉정하고 서늘한 표정을 짓고 있다.

내가 아는 라플란드에게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럼, 텍사스도 조심해야 해. ...분위기가 심상치 않으니까."



그런 내 걱정을 외면한 채 박사와 라플란드는 건물 내부로 들어갔다.

협상 장소는 빌딩 4층. 총 8층짜리 빌딩이니까 중간 부근에 있는 곳이다.

밖에서 안의 모습을 살피기 힘든 위치다.

이거, 아마 라플란드의 감이 맞았을 것이다. 놈들이 박사를 무사히 돌려보낼 생각은 없을 것이다.

어째서 박사는 이런 함정에 스스로 뛰어드는 짓을...


...응? 함정에 뛰어들어?

그 박사가?

녀석이 적들을 함정에 빠뜨리는 일은 있어도 빠지는 모습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잠시 생각에 잠긴 결과, 나는 하나의 결론에 도달했다. 이거라면 설명이 된다. 

동행하기로 한, 단 한 명의 호위가 라플란드였던 이유.

밖에서 대기하고 있을 운송인으로 나를 선택한 이유...


...


......젠장! 박사! 조금 정도는 말해줘도 되잖아!

나는 황급히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건다.

근처를 둘러싸고 있던 갱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지만 알 바 아니다.

이 생각에 이르기까지 꽤 시간이 걸리고 말았다. 느낌상으로는, 아마 곧...


동시에, 빌딩 3층이 폭발했다.



"그럴 줄 알았어! 이건 의뢰 내용에 없었잖아! 바보 박사!"



나는 위장 장갑차를 돌려, 빌딩 입구를 향해 그대로 들이받았다.



저격수의 공격을 받으며 요란한 소리와 함께 건물에 진입하자, 안은 꽤 넓은 홀로 되어 있었고 그 홀은 천장까지 뚫려 있었다.

그 홀을 중심으로 한 거대한 나선형 계단의 3층 부근에 박사와 라플란드가 보인다.

...엉망진창 쫓기고 있네. 아주 그냥 날아다니고 있다.



"아ー 역시 왔네 텍사스. 역시 텍사스야."


"라피! 역시 무서워! 나 무서워! 너무 무서워!"


"알았어 알았어... 그럼 갈게!"



그렇게 말한 뒤, 박사를 옆구리에 낀 라플란드는 슬그머니 박사를 안은 채 다른 쪽으로 뛰어올랐다.



"텍사스! 뒤처리 좀 부탁할게!"



라플란드에게서 조잡한 지시가 날아온다.

상황 파악을 할 여유도 없다.

박사도 저 녀석을 너무 믿었을 거야. 아무 말도 안 해줬잖아, 나한테는!

어쩔 수 없이 장갑차를 선회시켜 부서진 현관 입구를 막은 뒤, 운전석에서 뛰어내렸다.

이쪽으로 오는, 1층에 대기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적 인원은 10명. 오른쪽 6, 왼쪽 4.

나는 품 속의 오리지늄 검을 뽑아, 살짝 흔들어 검신을 드러냈다.

나를 단순한 배달부라고 생각했던 듯한 적들은 허둥지둥 무기를 들지만 이미 늦었다.



"...철저하게 베어주마."



6명 쪽의 머리 위에서 나의 아츠로 만들어진 검날들이 쏟아진다.

그리고 나 자신은 그 6명 쪽은 무시하고, 반대쪽 4명 쪽으로 달려들었다.



"으악!"


"뭐, 뭐야...! 으아아아!"



내가 처음 녀석을 베어버리는 것과 동시에 등 뒤에서 검의 비에 꿰뚫린 놈들의 비명소리가 들린다.

아마 이것만으로 끝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조금만 발을 묶어두는 정도로 충분하다.

...3층에서 광견이 내려올 테니까.


예상대로, 아츠 충격파를 땅에 내리꽂으며 라플란드가 박사를 안은 채 나와 6인조 사이에 착지했다. 그리고 착지시의 관성을 사용해, 라플란드는 박사를 안은 채 땅바닥을 구르며 그 기세를 몰아 박사를 6인조와 반대 방향으로 집어던진다.



"으오오오오오!! 잠깐 라피, 이거어어어어어!!?"



낮게 뜬 채로 날아가는 박사. 그 반대방향 ー 6명 쪽을 향해 라플란드가 엄청난 속도로 돌진했다.

야야, 라플란드. 그렇게 내던져도 되나? 박사는 무사할까?



"흐오오오오오오오!!!!?"



흘끗 곁눈질로 보니 저공에서 날아가던 박사는 대리석 입구에서 브레이크 댄스를 추며 날아갔다.

...뭐, 저런 여유라면 다치진 않았겠군.

나는 1명 줄어들어 3명이 된 적들을 향해 돌아서며 다시 아츠를 전개. 위쪽으로 검의 비를 사용함과 동시에 아래쪽으로 달려들며 동시 공격을 가한다.


내가 나머지 3명을 처리한 것과 라플란드가 6명을 처리한 것은 거의 동시였다.



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



"설명해줘, 박사. 나는 협상이라고 들었는데? 조직 상대 싸움이라니 들어보지도 못했어"



1층의 적들을 무력화시킨 뒤, 장갑차는 밖에서 들어오려는 적들에 대해서도 벽이 되어줬기 때문에, 그 틈을 타 나와 박사는 적당한 방으로 잠시 피신해 있다.

라플란드는 주위를 살피러 갔다. 여기는 8층짜리 빌딩이다. 적 병력은 더 있을 것이다.



"이야... 그럴 예정이었는데, 방을 착각해서 3층으로 가버렸거든. 문을 열었더니 안에 무장한 녀석들이 우릴 덮치려고 미리 준비하고 있어서, 그만 시작해버린 거야"



방을 착각해...? 그리고 바로 무장집단이 대기하고 있는 방으로 뛰어들었다?

...믿을 거라고 생각해? 그런 헛소리.



"그래서 그 손에 든 건?"


"아, 이거? 이 조직의 주 고객 명단과 후원자들 명부"


"오호... 그런데, 또 뭔가 노리는 게 있나본데?"


"납치된 인신매매 피해자 명단."



나는 조용히 관자놀이를 눌렀다.

처음부터 이럴 목적으로 쳐들어왔구만...



"이 일은 아미야나 켈시도 알고 있나?"


"난 협상하러 왔는데? 갑자기 습격당하니까 대응하는 것 뿐이야. 원래 이럴 생각은 없었다고?"



이녀석... 뻔뻔한 것도 정도가 있지... 

그렇다는 건, 이번 호위자와 운송인. 동행한 두 명이 '실내 난전이 특기'라는 사실도 우연이라고 우길 거냐, 너.


하지만 이제 대략 어떤 일인지는 알았다. 

뒷세계 거래에는 정보와 신용이 필요하다. 

로도스도 이제 제법 세력이 커지며 위험한 일들에 휩쓸리는 회사다. 필요에 따라 뒷세계와 거래할 수도 있다.

그 입장상 상대를 꼬드겨 싸움을 거는 속임수를 쓸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 일이 퍼졌다가는 신용을 잃는다.

어디까지나 상대 쪽에서 일방적으로 싸움을 걸어와야 한다. 게다가 함정에 빠진 상태가 아니라 미리 이쪽에게 유리하게 전개될 수 있는 상태에서.

그래서 박사는 '어쩌다가' 상대가 파놓은 함정에, 작동되기도 전에 뛰어들었다.

박사는 이용할 명분을 찾은 것이다. 협상에 나갔더니 방을 잘못 들어가서 싸움이 시작됐다고.


무모한 것도 정도가 있다. 이런 일은 아미야나 켈시가 승인해줄 리 없다.

무조건 박사가 독자적으로 꾸민 일이다.

심지어 이 남자. 전부 우연 때문에 이렇게 된 거라고 얼버무릴 것이다.



"추가 수당 받아낼 테니 각오해 둬, 박사. ...어째서 이렇게까지 한 거야? 요즘 인신매매는 그리 드문 일도 아닐 텐데."


"그렇지. ...그 상품이 광석병 환자가 아니었다면."



콰직......



박사가 쥐고 있던 리스트 다발에서 비틀리는 소리가 나왔다.

박사의 주변 온도가 섭씨 5도가량 내려간 느낌마저 든다.

이건, 정말로 화났다. 알게 된 지 꽤 오래된 나도 본 것은 손에 꼽을 정도밖에 없지만.

이 상태의 박사는... 솔직히 나도 무섭다.

귀와 꼬리의 털이 곤두서는 것을 느낀다.

나는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소리를 낼 수조차도 없었다, 라고도 말할 수 있으려나.



"이 조직은 말이야. 광석병 환자를… 아무것도 없이, 그날 살아가는 것조차 힘든 감염자를 노리고 유괴해 죽인 후, 오리지늄을 뽑아 아츠 유닛 회사에 팔아넘기는 놈들이야"



주위 온도가 더 내려갔다.

꼼짝도 하지 못하겠다.

박사에게 전투능력은 없다. 하지만 그가 발하고 있는 이것은... 분명히 살기다.

그것도 나름대로 싸움터을 거쳐온 나조차 압도되는 정도였다.

이렇게까지 화가 난 박사는 처음 봤다.



뻐엉!



그런 분위기를 깨며, 방문이 걷어차여 열렸다.

나는 순간 경계자세를 취했지만, 문 너머에 있는 것이 누구인지 확인하고 검을 내린다.



"박사, 여기 5층에 있었어. 당신이 찾던 거."



거기에는 온몸이 피로 젖은 광견이 서 있었다.



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



1층에서 5층까지 이어지는 나선 계단은 엄청난 양의 피로 온통 새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이녀석... 대체 얼마나 죽인거야?


그런 상황에서 박사는 표정(은 보이지 않으니 분위기) 하나 바꾸지 않고 유유히 5층으로 향한다.

라플란드는 그런 박사를 지키듯 그의 앞에 앞장서고, 나는 그의 뒤를 맡는다.


박사가 이 상황을 아예 신경쓰지 않는 건 아니다.

즉, 그에게 있어서 허용 범위란 말인가. 이 정도는. 

...괜찮은 걸까, 박사.


어렴풋이 느끼고 있는 것이 있다.

박사는... 어딘가 망가져가고 있다.

지금 실행 중인, 나와 라플란드를 끌어들인 거의 자폭 테러 수준의 무모한 작전도 그렇다.

그가 내세우는 목표, 유일한 목적.


'광석병을 이 세상에서 없애버리겠다'


너무나 큰 그 목표는 그 자신마저 점점 마모시켜갔다.

원래는... 그는 더 상냥한 성격일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로도스 함내의 수많은 오퍼레이터들의 호의를 받을 리 없다.


...가슴 한 켠이 답답해진다.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왜냐면, 그는 선한 사람이니까.

착해 빠졌으니까, 누구의 탓도 하지 않는다. 스스로 가시밭길을 걸어간다.

이런 세상을 바꾸겠다고, 말도 안 되는 목표에 정면으로 맞선다.

그리고, 그런 행동의 대가를 모두 홀로 떠맡고 있다.


그런 일은... 그저 인간 한 명이 할 수 있을 리가 없는데.

버틸 수 있을 리가, 없는데.


...선두로 가는 은빛 늑대가 눈에 들어온다.

저 녀석은 앞으로 박사가 갈 길의 모든 피를 자신이 뒤집어쓸 작정일 것이다.


그렇지만 라플란드... 넌 안 돼.


넌 분명 박사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는 있을 거야.

함께 광기의 바다에 가라앉을 수도 있을 거야.

그렇지만... 그런 박사는 박사가 아니야.


이프리트나 케오베에게 자상하게 공부를 가르치고, 호시구마와 무모하게 술 내기를 하다 뻗고, 백파이프와 밭일을 하다 평소의 운동부족을 놀림받고 에단과 식당에 몰래 음식을 빼먹으러 갔다가 들켜 혼이 나는.


그런 박사는... 거기에 없어.


지금 이대로라면... 그런 박사는 사라져 버린다. 없어져 버린다.


난... 그걸 견딜 수가 없다.



이번 작전은 거의 박사의 예상대로 마무리되었을 것이다.


5층 서재에 숨어 있던 이 조직의 보스는 라플란드에게 오른팔이 잘려나간 시점에 모든 정보를 박사에게 넘겼다. 그리고 이 대표가 믿고 의지했던 이 빌딩 주위로 몰려든 연관 기업의 증원은 어느새 도착한 용문근위국 특별감찰대에 의해 무력화당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박사의 예측대로였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정보를 확인한 뒤 망설이지 않고 이 대표를 처리한 박사의 눈빛은.


...바이저 너머로 보이는 것 같았던, 그의 눈은.


나에게는, 이미 심각할 정도로 혼탁해져있는 것처럼 보였다.



***



똑, 똑



"박사, 나야. 텍사스다."


"아, 텍사스? 잠깐만 기다려"



지난번 전투가 끝난 뒤, 우리 셋은 로도스로 돌아가지 않고 용문의 호텔 방에서 하룻밤을 보냈다.

오밤중에 시작된 작전이었기 때문에 애시당초 하루는 묵을 예정이었지만, 장갑차까지 고철이 되어버렸기 때문에 2, 3일은 더 발이 묶일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지금 찾은 곳은 박사의 방.

이쪽으로부터의 요청에 회답은 있었지만 아직 문은 열리지 않았다.

아마 벗어놓았던 바이저를 다시 쓰고 있을 것이다.



벌컥



"어쩐 일이야? 텍사스. 일단 들어와."



잠시 후 예상대로 옷을 모두 껴입은 박사가 문을 열어주었다.

역시 개인실 내에서 저 모습을 계속 하고 있었다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역시 지금은 바이저를 다시 쓰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아무 말 없이 서 있음에도 개의치 않고, 박사는 나를 방 안으로 불러들였다.



"아, 추가 수당 건인가? 미안, 그건 내가 사비로 지불할 테니까 먼저 로도스로 돌아가야 해."



그런 능청스러운 이야기를 하고 있는 박사의 뒤를 따라가며, 나는 말없이 품 속의 오리지늄 검 자루에 살며시 손을 뻗는다.

박사에게 전투 능력은 없다.

1초만 있으면, 충분하다.



"응? 텍사스..."



탓!



박사가 돌아보는 순간, 나는 오리지늄 검을 뽑아 그것을 그대로 박사의 목에 들이댔다.

박사는 그런 나를 보는 순간 체념한 듯, 온몸의 힘을 뺐다.

마치 '마음대로 해라' 라고 말하는 듯이.



"...왜 저항하지 않아, 박사."



목에 검을 들이댔지만 그는 전혀 저항하지 않았다.

앞으로 몇 mm만 검을 기울여도 박사의 경동맥은 절단된다.



"...깜짝 놀라서 움직일 수가 없었어."



...그렇구나.

아직도 거짓말을 계속할 셈인가.



"내가 놀라서 움직이지도 못하는 인간과 저항할 마음이 없는 인간도 구별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건가, 박사?"



잠시, 침묵의 시간이 흘렀다.

한 치도 양보할 생각이 없어 보이는 나에게 체념했는지, 박사는 이내 말을 꺼냈다.



"...아, 여기가 그 곳인가 싶었지."


"죽을 곳 말인가?"


"그래, 진작 각오는 해놨다. 그 정도 일은 해 왔다고 생각해. 이제 와서 침대 위에서 편히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아."



나는 천천히 검을 내렸다.

박사에겐, 스스로의 손이 이미 새까맣게 보이는 걸까.

붉게 피로 물든 손이, 건조되고, 변색되고, 덧칠되어, 새까맣게.



"네 책임이... 아니잖아."


"내가 이렇게 하기로 결심했기 때문에 생긴 결과야. 내가 원했던 결과다."


"넌 그러면서도... 괜찮지 않잖아."


"난 아무렇지도 않아. 이미 목숨이란 걸 가볍게 여기고 있게 된 것 같아. 적에 대해서도, 나에 대해서도."



...그런 놈이 광석병 환자를, 생명을 구하기 위해 자기 인생을 내던질 리 있겠냐!

더 이상 참지 못한 나는 박사의 목덜미를 잡아채, 그의 바로 뒷편 침대로 박사를 내던졌다.

딱히 저항할 생각이 없는 박사는 그대로 침대에 털썩 나자빠진다.

나는 그런 박사 위에 올라탔다.



"아무렇지도 않다면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을 지어! 이런... 이런 걸 쓰고 다니니까!!!"



있는 힘을 다해 박사의 바이저를 뜯어낸다.

드러난 맨 얼굴의 박사는... 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이런 걸 쓰고 다니니까 아무도 모르는 거야! 알 수 있을리가 없잖아! 왜 아무도 의지하려 하지 않아! 힘들다고 말하지 않아! 너도... 인간이잖아!!"


"더럽고 추악한 짓거리들을 하고 있으니까!"



그제서야 반박을 시작하는 박사의 생각이 폭발하듯 터져나온다.



"광석병이 있다고 사람이 사람을 쓰레기 취급해?! 어제까지 가족이었던 사람을 죽이려고 해?! 그렇게 되고 싶어서 된 것도 아닌데! 정치꾼들 투성이에, 권력자는 탄압하고, 시민들은 배척당해! 병에 걸렸다고! 그들을 물건처럼 대하고 그들을 보호하려는 이조차도 배척당해! 주변이 모두 적 투성이야!"


"그래서... 전부 혼자서 할 셈이야?"


"이런 건... 나 하나로 충분해"



혼자. 고독하게. 그런 감정들을 안고 있어도, 단 혼자서.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아.



"그러면, 그런 너는... 대체 누가 지켜..."


"다들 나를 지켜주고 있어. 요즘은 라플란드도 옆에 자주 있어주..."


"아니! 마음 이야기다! 그 년은 박사와 함께 부서질 순 있어도 지킬 순 없어! 박사의 길을 연다고 해도 네 마음은 망가진 채야!"


"그녀는, 나의 검이니까... 마음까지 지킨다니, 나에게 그런 가치는..."



제길... 울고 싶은 건 나다.

어째서 그렇게 자기를 학대해? 넌 그렇게 하찮은 존재가 아니잖아!

...나에게 기대줘. 지키게 해줘. 망가지지 말아줘.

비록 그것이 나의 이기심이라고 해도. 너의 이기심보다는 훨씬 낫다.


나는 박사에게 매달렸다.

조금 경직된 박사는 저항하지 않고 그대로 꾹 힘을 준다.

전해졌으면 좋겠다.

...부디 전해지길.



"너의 가치 따윈... 알 바 아냐. 말해. 괴로운 일은... 말해줘. 내가... 내가 듣고 싶어. 박사는 잘하고 있어. 누구보다도. 나에게도... 당신을 지키게 해줘..."



박사가 떨고 있는 게 느껴진다.

나는 박사의 목을 감은 팔에 힘을 조금 푼 다음 그의 머리를 부드럽게 감싸안았다.

나는 말주변이 없다.

태도로, 행동으로, 체온으로, 전하는 수밖에 없다.

넌 혼자가 아니다.

...혼자 있게 두지 않겠다.



***



"·········"



얼마나 지났을까.

박사가 떨리는 손으로 나를 안아왔다.



"...며, 명단에... 10살도 채 안되는 아이 이름이 몇명이나... 있더라..."


"...응"


"크...흐으으으... 아직... 6살짜리 애도 있었어! 로도스가 먼저 발견했다면, 지금쯤 리사가 친절하게 그림책을 읽어 주었을 거야!"


"응"


"내가... 내가 좀 더 일찍 알았더라면! 더 일찍 행동했더라면!!"



울면서 나를 끌어안는 힘이 점점 강해져 온다.

이렇게나... 이 정도까지 끌어안고 있었던 걸까...

단 혼자서.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건 박사 네 탓이 아니야. 넌 최선을 다했다."


"하지만... 이미 사라진 목숨은... 돌아오지 않아."


"그래도 최소한 방금 작전으로 새로운 목숨은 지켰다. 이제 그 조직이 광석병 환자를 새로 잡아들이는 일은 없을 거야."


"적어도 나는 그런 말을 할 수 없어! 결국 늦었잖아! 그리고 난... 보스 녀석을 죽일 때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어. 아무 감정도... 난 결국 녀석들과 똑같아..."


"그건 절대 그렇지 않아, 박사. 그것만은, 절대로 아니다."


"텍사스, 난... 으윽..."



한 사람이 떠안아도 되는 정도가 아니잖아, 이런 건...

그래도 좀 진정됐을까. 잠시 후 아플 정도로 끌어안고 있던 힘이 조금 풀렸다.



"미안하다. 텍사스. 조금만 더 이대로..."


"괜찮아, 박사. 나는... 아무 데도 안 가니까."



...전해졌을까. 조금이라도.



그 녀석은... 라플란드는 박사의 길을 여는 검이라고 했다.

그럼, 난 지팡이가 되겠어.

그가 가는 고난의 길이 조금이라도 편해지도록. 그의 부담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도록.

그에게 회복 아츠를 쓰듯, 그의 마음을 지키는 벽이 되듯.


박사, 난 너를... 망가지게 두지 않아.



***



"으음... 꽤나 민망한 꼴을 보였군..."


"신경 쓰지 마. 내가 보여달라고 한 거다."



그 후 어찌저찌 회복한 박사는 평소와 같은 상태로 돌아와 있었다.

아직 우리들은 침대에서 서로 부둥켜안은 채다.

좀 냉정해지니, 나도 참 터무니없는 짓을 하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껴안은 뒤로 벌써 한 시간이 지났다.

이거, 이미 내 마음이 전부 들통난...



"미안해, 텍사스. 부하 직원한테 이런 짓까지 하고... 난 정신 좀 차려야겠다."



뭐...? 이녀석... 제정신인가?!

부하?! 그냥 부하가 이런 짓까지 해줄 줄 알아?!

난 살짝 몸을 일으키면서, 박사에게 있는 힘껏 경멸의 시선을 던진다.



"박사... 방금 건 좀 심하다고 생각해."


"어? 미안! 이런 어리광쟁이 상사에게 목숨을 맡기다니..."



전혀 전해지지 않았다. 아직도 이 녀석이 라플란드와 부부관계가 아닌 이유를 알겠다.

박사 녀석... 그 쪽으로 이미 망가져 있는 거야?

이 녀석, 조금 벌을 줄 필요가 있겠다.

이쪽은 그대로 안겨도 허락할 생각이었는데.



"박사... 이번 건 네 잘못이 맞아. 이 멍청이."


"어? ...흐읍?!!!"



박사의 입술을 강제로 빼앗았다.

방법같은건 잘 모르지만 뭐, 본능으로 괜찮겠지.

그대로 혀를 그의 입속에 집어넣은 뒤, 내키는 대로 유린한다.



"응... 흐으... 흣... 으응..."


"테, 텍... 으응...?!"



박사는 뭔가 말하고 싶어하는 것 같다.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어차피 나도 들을 생각도 없다.


그대로 듬뿍, 마음 내키는 대로 입에 물고 있다가 얼마 후 그가 숨이 막힌다는 듯 등을 툭툭 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입술을 떼었다.



"푸핫! 테, 텍사스? 저기..."


"...서운한걸. 벌써 산소 부족이야?"


"어, 어, 어..."


"심호흡해. 10초 기다려 줄게"


"아, 네"


"...이제 됐지, 이번엔 너도 응하도록. 여성에게 망신을 줄 셈이야?"


"어? 아, 으응?!!!!"



두 번째 탭이 내 등을 칠 무렵에는 박사는 실신한 듯 축 늘어져 있었다.

뭐, 이번에는 박사도 대답해 주었으니까, 괜찮은 걸로 할까.


그건 그렇고, ...나도 늑대였구나.

이대로 덮쳐도 되지만... 그 전에 잠깐 할 일이 있다.


나는 침대에 누운 박사에게서 몸을 떼고 일어나 옷매무새를 고쳤다.

이대로 떨어지기는 아쉽지만, 지금 박사의 머릿속은 패닉 상태일 것이다.

조금은 네가 알아서 생각해라.

난 이미, 각오했다.



"박사, 잠깐 나갔다 올게. 아침까지는 돌아올 거야. 너는 내 행동의 의미를 좀 생각해라. 다음엔 도중에 그만두지 않을 거야."


"으어, 아, 네에."



자, 그럼... 녀석은, 저기로군.



***



피 냄새로 범벅이 된 나선 계단.

나는 그곳을 낌새를 좇아 위로 올라간다.

여기일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정말로 여기였군.


용문근위국 특별감찰대가 설치한 출입금지 테이프를 몰래 뚫고 들어가 조금 전, 사건이 일어났던 건물에 와 있었다.

대부분의 시체 처리나 현장 검증은 끝났을 것이다.

지금은 조금 전 난동조차도 마치 없었다는 듯이 조용하다.


아무도 없는 것처럼 조용해 보이지만... 있군. 확실히.

아마... 6층... 아니 8층인가.

나선계단을 통해 8층에 이르고, 마지막으로 기척없이 조용한 실내계단을 통해 건물옥상에 도착하자, 달을 등진 채 은빛 늑대 한 마리가 서 있었다.



"...여어. 늦었네, 텍사스."


"기다린다고 들은 적도 초대를 받은 기억도 없지만."



라플란드는 기대고 있던 옥상 난간에서 몸을 떼더니 칼자루를 만지며 천천히 이쪽으로 걸어왔다.

그녀의 백은빛 머리가 밤바람을 맞으며 달빛을 받아 반짝인다.


이 분위기... 아무래도 진지한 것 같다.

바라는 바였다.



"그건 그렇고, 너도 꽤 도전적인데? 온 몸에 그렇게 진하게 박사 냄새를 묻히고 오다니, 벌써 다리라도 벌렸어?"


"...글쎄?"


"하핫! ......너한텐, 안 줄 거야."



라플란드가 검을 뽑아드는 순간과 동시에 충격파가 내가 서있던 곳을 지나간다.

피하지 않았다면 치명상이었다.

단단히 열받았나보군. 성질 급한 녀석.



"네 것도 아니잖아, 아직은"


"아니, 나는 그의 것이야. 박사 이외에 날 쓸 수 있는 녀석따윈 없어. 정 물러나지 않겠다면 설령 너라도 용서하지 않을 거야, 텍사스."



라플란드의 살기가 부풀어오른다.

그렇다고는 해도, 저 미친 개 녀석이 저런 말까지 하게 만들다니... 정말이지 그 남자는.


...그렇지만.



"가끔은 의견이 맞는군, 라플란드. 나도 마찬가지다. ...너한텐 넘기지 않아"



나는 양손의 오리지늄 검을 가볍게 흔들어 도신을 전개시켰다.


너에게 맡기면 박사는 망가져버린다.

그런 일은 허용할 수 없다.

무엇보다, 애초에 반한 남자를 다른 여자에게 넘겨줄 생각은 추호도 없다.


늑대는 무리를 지어 행동한다.

하지만 한 무리에 부부는 오직 한 쌍.

우리는 사자같이 하렘을 형성하지 않는다.

한 우두머리와 그 반려자. 그리고 그 외 여럿이다.

반려 자리는 실력사회. 설령 교체될 수는 있어도 반려자가 동시에 둘일 수는 없다.


즉... 이렇게 된 이상, 나와 저 녀석이 서로를 용납하는 일은 앞으로도 평생 없다는 것이다.


라플란드가 검을 겨눈다.

나도 양손의 오리지늄 검을 쥔 손에서 긴장을 푼 뒤, 다음 움직임에 대비한다.



ーーー너에겐 주지 않는다.


박사 옆에는 내가 앉을 거야!



""네가 사라져!!""



두 마리의 송곳니가 격돌했다.



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ー



"철저하게 베어 주마!"



머리 위로 무수한 검의 비가 쏟아져 라플란드를 덮친다.

나는 그것과 동시에 뛰어나가 그녀와의 거리를 단숨에 좁혔다.


라플란드는 검격을 날릴 수 있어 거리가 멀 수록 녀석이 유리하다.

위로부터 내려오는 검의 비에 의한 연격과 아래로부터의 참격.

알고 있어도 라플란드는 검의 비를 먼저 처리할 수밖에 없다.



"하핫! 그러고 보니 이게 네가 가장 잘 쓰는 수법이었지!"



하지만, 태연하게 순식간에 모든 검의 비를 쳐낸 라플란드는 여유있게 나의 공격을 받아낸다.


빌어먹을, 접근이 목적이었다지만 이렇게 가볍게 막히다니... 


힘으로도 라플란드 쪽이 위다.

정면으로 맞붙는 것은 위험하다고 판단한 나는, 그녀의 오른편으로 뛰어올라 반대쪽 검으로 그녀의 어깨부터 베어내려 했다.



"어이쿠"


"쯧"



그것도 쉽게 피해냈지만, 나는 틈을 놓치지 않고 연격을 날린다.

목, 오른쪽 옆구리, 오른쪽 가슴, 왼쪽 허벅지, 관자놀이, 왼쪽 손목, 몸통.



"아하하하하! ...텍사스, 이게 다야?"



그러나 그 모든 공격은 그녀의 검과, 그 기형적인 모습의 검자루로 모두 막히고 있었다.

거리를 벌리면 불리하다.

그렇다고 지금 이 상태에서 공격을 멈춰도 불리하다.



"검의 비!"



나는 초근거리에서 다시, 검의 비로 위로부터 공격을 가한다.

이 거리라면 어떻게든...



"ーーー늑대의 혼."



챙!!



하지만 라플란드가 전개한 아츠로 인해 나의 검들은 동시에 튕겨나갔다.

크, 이건...



"아하하하하하하!"



연달아 연격을 쏘아대는 라플란드.

그 모든 아츠가 충격파가 되어, 내 뒤에 멀리 떨어진 건축물까지 날아가 베어버린다.

이 위력은, 원거리 참격 정도의 수준이 아니다.

이 녀석, 대체 언제 이 정도까지...



"...텍사스. 간다?"



어쩔 수 없이 거리를 벌려버린 나에게 무수한 참격이 덮친다.

한 방 한 방이 내 오리지늄 검의 칼날에 금이 가게 하는 위력이다.



챙! 챙! 빠직! 챙!



피할 수 있는 건 피하고, 막아낼 수 없는 것은 어떻게든 검으로 받아낸 뒤 곧바로 칼몸을 다시 뽑아낸다.

하지만 끝날 기미가 없이 쏟아지는 충격파.

젠장... 이거... 언제까지...



빠직! 빠직! 빠지직! 콰과곽!!!!



"겨우 이 정도로 나한테서 박사를 빼앗으려고 했어... 텍사스?"



나는 끝내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몇 발 맞는 것을 허용하고 말았다.

오른쪽 어깨와 왼쪽 허벅지.

기동력만이 유일하게 그녀를 능가하는 능력이었던 내게 다리를 다치는 건 치명상이다.



"지금이라면 아직 용서해 줄 수도 있는데? 너를 죽이면 박사도 싫어할 것 같거든."



라플란드는 마치 두 마리의 늑대가 구현된 듯한 오오라를 몸에 두르며 내게 말한다.

방심하는 기색은 전혀 없다.

사냥감을 괴롭히고 있는 기색도 없다.

아마도... 상대가 내가 아니라면 그녀는 이 자리에서 즉시 나를 죽일 것이다.



"꽤나... 강해지셨군"


"그런가? 아마 박사 덕인가 봐"



그래, 강하다. 내가 기억하는 라플란드와는 차원이 다르다.

이녀석은 수련이나 훈련 같은 걸 하는 타입이 아니다.

말 그대로 박사의 검이 된 것이다.

그 마음가짐만으로 그녀의 움직임은 속도도, 위력도 최소 몇 년은 수련한 것처럼 다른 차원으로 진화해 있었다.

시라쿠사에 있을 때와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바뀌었다.

정말로 압도적인 차이...




...그렇지만!!


나에게도 양보하지 못하는 게 있다.


그 박사가, 광석병에게서 모두를 구해주기로 한 박사가!

차마 그걸 전부 감당하지도 못하고 울고 있었어!


절대 그를 혼자 두지 않을 거야!

너 따위는... 박사를 구할 수 없어!!



"...침묵은 부정으로 받아들이지. 아쉽네, 텍사스. 나는 널..." 


"검의 비!"



무수한 참격이 라플란드의 머리 위로 쏟아진다.

하지만, 아까의 충격으로 손이 갈라진 상태에서 사용하는 아츠로는 라플란드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두 방향으로 동시에 연격을 날릴 수 있는 라플란드에는 통하지 않는다.

라플란드는 한숨을 쉬며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자신에게 맞지 않을 정도로만 검들을 쳐낸다.



"텍사스, 작작 좀..."


"검의 비...!"


"쓸데없는 발악..."


"검의 비!"


"텍..."


"검의 비! 검의 비!! 검의 비!!!!!"



이게 아니다. 이 정도 수준으로는 안 된다. 

좀 더 다각도에서, 도망갈 곳 없이.

모든 방향에서! 전부 쳐내지도 못할 정도로!



"아ー 진짜! 적당히 좀..."


"ーーーー검의 폭풍!!!!!!"



내 이미지에 따라, 아츠 유닛인 오리지늄 검이 지금까지 없었던 고열을 뿜어낸다.

그 열기와 함께 구현화된 검들은 라플란드의 머리 위뿐만 아니라, 그 주위를 모두 에워싸고 있었다.

그 수는 검의 비의 5배 이상.

전방위에서 일제히 라플란드를 덮친다.



"뭐, 이건..."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



빠져나갈 곳 없이 모든 각도에서 날아오는 검격 폭풍.

그토록 강한 라플란드도 그 모두를 쳐내지는 못하고, 여러 발의 칼날이 그녀를 관통한다.

폭풍으로 생긴 먼지 때문에 상황 확인은 되지 않지만, 이 정도라면...



"......텍사스으!!!!"



하지만, 잠깐의 정적 후, 먼지가 걷히고 드러난 피투성이 모습의 은랑은 아츠를 전개해 몸에 두른 채로 돌진해 왔다.

전부 쳐내지 못하니 아츠를 방어로 돌려서 부상을 최소화한 것인가!

원거리는 이미 불리하다고 본 듯 그대로 달려와 접근전을 걸어오는 라플란드.


나는 다리를 베여 이미 기동력은 없다.

그렇다면... 정면으로 받을 수밖에 없다!



채앵!



눈앞에서 라플란드의 검과 나의 오리지늄 검이 맞부딛친다.


이제 둘 다 만신창이. 남아있는 것은 오기 뿐이다.



"너는 박사와 함께 헤쳐나갈 자신이 없는 거지?! 그와 함께할 수 있는 건 나뿐이야! 텍사스!!"


"시끄러워! 너 따위가 박사의 상냥한 마음을 어떻게 알아! 그가 광기에 빠지게 하지 않아! 내가 그렇게 두지 않을 거야!"



검의 강도는 내 오리지늄 검이 압도적으로 떨어진다.

나는 격렬하게 검을 맞부딛히면서도 검신이 깨지기 전에 두 번째 검을 재빨리 뽑아 라플란드의 목에 휘두른다.

아까 전 공격에 왼팔을 찔려 쓸 수 없는 라플란드는 머리를 뒤로 젖히며 피했다.



"그런 건 네 멋대로잖아! 난 박사가 어떤 모습이 되든 함께할 거야! 평생! 죽을 때까지! 나는 그의 검으로 죽을 거라고 맹세했어!"


"죽으려면 너 혼자 죽어! 그런 건 아무도 원하지 않아! 박사 자신조차도! 너 따위는 박사를 지킬 수 없어!"



이미 서로 만신창이. 아츠를 쓸 체력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렇다면... 이제 슬슬 끝날 때가 온 걸까.



"박사는... 안 넘겨!"


"나는... 박사와...!"



아침 해가 뜨기 시작한 빌딩 옥상.

거기서 두 늑대가 쏜 혼신의 아츠가 교차했다.



***



ーーー파직, 파직, 파직, 파직...



여러분 안녕~

나는 박사.

이래봬도 로도스라는 제약회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맡고 있어.


그런 나의 오늘의 어시스턴트를 소개할게!

자랑스런 이베리아의 데스트레자, 쏜즈!!



"...가도 되나, 박사?"


"기다려 주세요! 절 버리지 마세요! 데스트레자! 신경독 만세!"



그런 집무실에 있는 나와 쏜즈의 눈앞에는 텍사스(비서 아님)와 라플란드(이쪽도 비서 아님)의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내가 먼저다, 라플란드. 너, 저번에 졌지? 우선권은 내 거야."


"안 졌는데? 진 건 너잖아, 텍사스. 그때 너, 아츠 한 방 쏠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잖아."


"피를 너무 많이 흘려 몽롱했던 너보다 낫다. 그때 널 죽이는 건 일도 아니었어."



라플란드와 함께 지하 유적에 떨어져 그녀에게 첫 키스를 빼앗긴 것이 한 달 전.

그리고 그녀와 제대로 진도도 나가지 못한 사이에 텍사스에 두 번째를 빼앗긴 것이 지난 주이다.

게다가 텍사스로부터는 꽤 진한 것을 받았다.

그리고 둘이서 치열한 싸움을 벌여 사건현장을 폐허로 만들고 만신창이로 아침에 돌아온 것도 지난 주.



ーーー파직, 파직, 파직, 파직...



"아, 저기... 둘 다, 슬슬 그쯤에서..."


""보스는 가만있어!""



으으으으...

무서워...



"애초에 목걸이를 받은 것도 내가 먼저잖아"


"아, 그 허접한 초커? 그래서 넌 그런 걸로 박사의 반려자라고 자칭할 셈인가?"


"이걸 하찮게 말한다면, 너라도 용서하지 않을 거야, 텍사스..."




그런 텍사스의 목에는 얼마 전 부탁으로 선물한 라플란드보다는 좀 더 큰 가죽 초커가 매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의 의미를 텍사스에게 선물함과 동시에 물어봤다.




"박사, 남성이 루포나 페로 여성에게 목에 하는 장식을 주는 것은, 자기 무리의 반려자에게 결혼반지를 주는 것과 거의 같은 의미다. 고마워, 무척 기쁘다."




...동시에 그 자리에 있던 라플란드에게는 엄청난 비난의 눈빛으로 항의받았다.

그리고 그 날 이후부터 이들에겐 '보스'라고 불리고 있다.




"박사, 나 간다? 비서 필요 없잖아. 벌써 여기 2명이나 있잖아."


"잠깐만, 쏜즈! 나로는 이 둘이 싸우는 걸 말릴 수 없어! 날 혼자 두지 마!"


"네가 남편이잖아... 네가 책임지고 알아서 해."




그런 말을 해도 어설프게 어느 한 쪽 편을 들었다간 다시 작정하고 싸우기 시작할 걸?!

내가 명확하게 어느 한 쪽을 선택하면 금방 해결되겠지만, 만약 그런다면 아마 그 순간에 집무실이 날아가 버릴 거다.

그리고 아마 내 목도 함께 날아갈 거다.


그리고...

망가져가는 나를 떠나지 않고 따라주는 라플란드.

내가 망가지지 않도록 다정하게 붙어주는 텍사스.


어느 쪽을 선택하라고 해도, 나는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다.

둘 모두 나에게 필요한 이들이다.

이 정도면 나라도 두 사람이 나를 연애대상으로 봐주고 있다는 건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연애대상으로 그녀들을 동시에 어떻게 봐야 할지 솔직히 나도 모르겠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채로 둘에게 결혼반지를 주는 큰일을 저질러버린 것 같다.




ーーー파직, 파직, 파직, 파직...




"아ー 알았어. 라플란드, 텍사스. 너희들 오늘은 또 무슨 주제로 싸우고 있는 거야? 신경 쓰여서 일이 안 되잖아."


"누가 먼저 박사의 아이를 가질 건지."


"뭐? 나로 그런 얘기를 해?"


"당연하잖아 보스, 무리의 우두머리인 너 이외에 대체 누가 있다는 거지?"


"그래, 보스... 맞아. 박사한테 정해달라고 하면 되겠네. 저기, 박사는 어느 쪽을 먼저 안고 싶어? 당연히 나겠지? 괜찮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야, 함부로 정하지 마. 네가 졌으니 박사와 무리를 짓는 건 나야."


"...진 적 없는데?"


""........""


"그럼 박사, 내일 보도록 하지. 난 간다."


"쏜즈, 기다려... 날 버리지 말아줘..."


"자업자득이야. 네가 알아서 해."




ーーー파직, 파직, 파직, 파직... 쾅!




"이야, 박사! 여기서 재미있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들었는데! 나도 끼워주겠어?"


"야호~ 리더, 나도 자세히는 못 들었지만, 끼워주라!"




갑자기 열린 집무실 입구에 서 있던 것은 푸른 장발의 위험해 보이는 천사와 붉은 숏컷의 위험한 천사.


검자루에 손을 가져가는 루포 2명.


이미 떠나가버린 성게. 




좋아. 도망가자.





※ 이 소설은 원작자 「tada」님의 허가를 받고 번역하였습니다. 

※ 원문출처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16457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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