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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별 굴곡 없이 일이 끝나고, 나는 결심했던 대로 박사에게 야채만 한가득 있는 야식을 만들어줬다면 어땠을까. 보나마나 박사는 혐오스러운 무언가라도 본 듯 오만상을 찌푸렸겠지. 자기가 무슨 염소도 아니고 이렇게 풀만 주냐는 핀잔과 더불어서 말이야.


 하지만 그 또한 좋지 않은가? 그 정도는 일상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모습일 테니 말이다.


 낮에 열심히 일하고, 밤이면 돌아가서 푹 쉰다.


 때로는 짓궂은 장난을 곁들이기도 하지만, 그 또한 가끔 이색적인 맛을 위해 살짝 뿌리는 향신료와 비슷하리라.


 그것은 평화로운 일상. 내가 소망하는 하루하루의 모습. 그저, 박사가 이곳에서 가급적 편안하고 즐겁게 머물다 가길 바라는, 나의 작은 소망.


 하지만 쉐라간드의 신께서는 그마저도 내겐 사치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까까진 좋았던 날씨가 다시금 나빠지고 있었으니까.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하늘은 어둑어둑해지고, 하나둘 떨어지던 눈송이는 점차 거세져 갔다. 거기에 바람이 더해지는 걸로 봐서 이건 어젯밤 눈보라의 재림. 이런, 눈보라는 어젯밤으로 끝이 아니었단 말인가. 과연 겨울철 쉐라그의 날씨는 산양의 변덕보다도 심하단 옛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그러나 옛말 따위를 상기해내며 감상에 젖어 있을 시간은 없다. 어째 통신기에서도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걸 보니, 계곡 아래쪽 상황도 그리 좋지만은 않은 모양이었으니 말이다.


 [계곡 내부 오리지늄 오염 농도 급증!]


 급박하면서도 짤막한 보고.


 불길하게 울리는 경보음.


 “오리지늄 보호 태세 3단계로 올리고, 전원 중화제 투여해. 현장 오퍼레이터들은 즉시 방독면까지 착용하고.”


 그리고 기다렸다는 듯 내려지는 박사의 지시. 그의 목소리는 앞의 두 개와는 사뭇 다르게 침착해서, 문자 그대로 폭풍 속의 고요라는 말을 떠올리게 한다. 이를테면 절대로 흔들리지 않는 바위 같은 느낌이려나. 그의 모습은 마치 노련한 지휘관 같다. 어지간한 일들은 겪을 대로 겪어봐서 무덤덤하기까지 한.


 이런 상황에 떠올릴 만한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멋있게 보인다. 어제의 그 맹하고 둔한 모습과 완전히 정반대라 그러는 걸지도 모르겠다.


 “…….”


 아직 배가 불렀구나, 라타토스. 지금 밖에서 사람들이 목숨 걸고 있는데 한가하게 남이 망상 따위나 하고 앉아 있는 걸 보니. 반성의 의미로 양 뺨을 한번 짝 치고 박사를 바라봤다. 지금, 이 사람에겐 내 조언이 필요하다.


 “박사, 눈보라가 칠 거야. 쉽게 그칠 것 같지 않으니까 뭘 하던 가급적 빨리 끝내는 게 좋을 거야. 정 안 될 것 같으면 내일로 미루든지 하고.”


 “…알겠어. 앞으로 어느 정도 여유가 있을 거 같아?”


 “많아야 2시간이려나. 하지만 눈이 쌓이기 시작하면 그때부턴 안전을 장담할 수 없어. 특히 계곡 아래쪽 오퍼레이터들은 더 위험할 거야. 계곡의 바람은 위쪽보다 몇 배는 더 세게 부는 법이니까.”


 “…….”


 박사는 고민하는 듯했다. 내 말의 진위 여부가 아니라, 작전을 속행할지 여기서 멈출지에 대해. 그가 고뇌하는 모습은 내게도 그리 달갑진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할 말을 안 할 순 없었다.


 “…만약 철수할 생각이라면 지금 하는 게 좋아.”


 “아니, 철수는 안 돼.”


 박사는 분명한 목소리로 그리 말했다. 그건 내게 말한다기보단, 통신기를 통해 그의 말을 듣고 있는 모두에게 하는 말인 듯했다.


 “우린 지금 이번 사태의 원인조차 파악해내지 못했어. 이건 시간을 끌어서 해결될 문제가 아냐. 위험하더라도 지금 해야 해. 그러니 모두 날 믿고 조금만 더 따라와 줘. 부탁할게.”


 찰나의 순간, 통신기며 주변까지 모두 침묵에 빠진 것 같았다. 그러나 무거워지려는 침묵을 깬 건 치익 하고 들려오는 통신기의 음성이었다.


 [여기는 오키드. 박사군, 왜 이리 감상적이야? 우리가 당신을 못 믿을까 봐서 그래? 그런 소리 안 해도 당신을 믿을 만하다는 건 우리 포푸카도 아는 사실이라고.]


 [오키드 팀장 말이 맞아, 박사. 정 미안하면 오늘 저녁에 성대하게 샴페인 타워라도 어때? 물론 박사가 내는 거로 말이야.]


 [잠깐, 미드나이트……! 너 또 전체 통신으로 그런 말 좀 하지 말라고 내가 몇 번이나……!]


 “하하, 좋아! 까짓거 샴페인 타워 세 개건 네 개건 대접할게. 어린애들도 즐길 수 있도록 논 알콜 버전도 포함해서 말야. 그러니 지금 조금 더 무리해보자고, 여러분!”


 기운차게 대답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상황실의 공기는 긴장감으로 팽팽해졌다. 그러나 그 긴장감은 좀 전과는 달라, 무겁다기보다도 묘하게 활기찼다. 이를테면 위험할 수도 있는 모험을 눈앞에 둔 탐험가 같은 느낌으로 말이다.


 아아.


 그래, 그렇구나.


 이래서 모두 이 사람을 따르는 거구나.


 이 사람은 마냥 가볍기만 한 사람이 아니다. 자신의 책임감이 뭔지 알고 있다. 자신의 한마디에 모든 상황이 정해지고, 나아가 사람의 목숨까지 좌지우지할 수 있다는 걸 안다.


 오퍼레이터들 역시 알고 있다. 박사가 그들 모두를 진심으로 아끼고 있다는 것을. 타인인 나조차도 느낄 수 있는 걸 통신기 저편에 있는 사람들이 모를 리 없다. 보이지 않아도, 비록 여기서 멀리 떨어진 채 통신만으로 서로의 존재를 알 수 있다 해도, 박사와 그들은 이어져 있는 듯했다.


 묵직한 쇠 닻줄 같은 신뢰. 박사는 그들을 믿고, 그들은 박사를 믿는다. 이 얼마나 이상적인 관계란 말인가.


 역시 박사는 특별해.


 그런데 왜일까.


 박사가 특별하다는 것 따위 이미 지내보면서 알고 있었던 건데, 새삼 처음 안 사실도 아닌데. 그런데도.


 …그런데도, 이상하게 가슴 한편이 꾸욱 조여오는 듯했다. 고통스러울 정도로 아프게.


 문득 정신을 차리자 박사는 이미 여기저기 지시를 내린 뒤 의료 오퍼레이터들에게까지 지시를 내리고 있었다.


 “수수로, A구역부터 C구역까지의 보호 태세를 감독해줘. 안셀은 보조. D구역부터는 퍼퓨머와 미르가 담당하도록 해. 현장에선 팀장들이 책임지고 감독해주고.”


 [알겠어. 모두 내가 잘 보살필 거니까, 안심해.]


 [기꺼이, 박사 군.]


 “특히 퍼퓨머는 플레임브링어 좀 잘 제어해줘. 그 녀석, 또 시시한 싸움에 방호 장비 따위 필요가 있니 없니 투덜댈 거 같으니까.”


 [어머나, 박사 군. 플레임브링어가 얼마나 말을 잘 듣는데. 이제는 온실 일도 조금씩 거들어준다니까?]


 “그야 인질이 잡혀있으니……. 어쨌든 뭐, 잘 부탁해.”


 인질이라니 말이 심한걸, 통신기에선 듣는 것만으로 편안해지는 웃음소리와 함께 그런 말이 들려왔다. 인질? 내가 빤히 쳐다보자 박사는 시선을 느꼈는지 변명하듯 황급히 입을 열었다.


 “꽃들 말하는 거야, 꽃! 플레임브링어가 기르는 꽃들이 퍼퓨머의 온실에 있어서 그런 거야!”


 “…그 플레임브링어라는 사람. 꽤 험악한 코드네임과는 다르게 마음은 여린가 봐?”


 “여리긴, 꽃이 시드는 순간이 좋아서 기른다던데…….”


 어째 정상적인 놈들이 없어, 라고 투덜거리는 박사. 과연 이 사람이 자기가 제일 정상이란 단어에서 멀찍이 비껴 있다는 걸 알까? 참 우스운 일이었지만, 박사는 입으로는 투덜투덜하면서도 다른 의료 오퍼레이터들의 일을 거들고 있었다. 그렇다고 지휘에 손을 놓고 있지도 않았고 말이다.


 세상에, 내가 지금 사람을 보는 걸까 아니면 기계를 보고 있는 걸까. 그렇게 감탄 아닌 감탄을 하고 있는데 박사는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불쑥 내게 다가왔다. 정말 예상치 못한 기습이었다.


 “왜, 왜?”


 “마셔. 중화제야. 그리고 이건 억제제고. 좀 따끔할 거야.”


 “뭐? 아얏!”


 내 손에 작은 주스 병 같은 걸 쥐여주자마자 박사는 내 반대쪽 팔뚝을 걷더니 무슨 주사를 꾹 놨다. 따끔한 감각이 팔뚝을 찌르르 울렸다.


 “미안, 아팠어?”


 “그걸 굳이 물어봐야 알아?!”


 “미안해. 좀 급해서.”


 “…됐어. 아픈 것보다도 그냥 놀라서 그런 거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쉽게 사과하지 마.”


 볼멘소리를 내뱉고 나서 아차 했다. 그냥 평소처럼 박사가 능글맞게 웃어넘길 줄 알고 그런 건데, 사뭇 진지하게 미안하다고 하니 이쪽이 다 머쓱해진다. 하아, 나는 왜 대체 솔직하게 고생한다고 말하질 못하는 걸까. 정말 이럴 땐 이놈의 자존심이 원망스러울 지경이다.


 슬쩍 박사를 곁눈질로 보니 그는 이미 주사를 뺀 뒤 겸사겸사 소독까지 하고 있었다. 대충대충 하는 거 같으면서도 척척 하는 모양새가 전문가의 느낌이 진득하게 나서 그저 신기할 뿐이었다.


 “잘하네.”


 “…너 가끔 나 은근히 무시하더라.”


 “어머, 들켰어? 그럼 지금 하는 거에 반의 반만이라도 평소 행실 좀 고쳐 보던가.”


 “진짜 이럴 땐 켈시랑 아미야를 반반씩 섞어 놓은 거 같다니까…….”


 그러면서 한숨 한번 푹 쉬는 박사. 뭐야, 지금 한숨 쉬고 싶은 게 누군데……. 참자, 참아. 바쁜 사람한테 괜히 화내 봤자 나만 나쁜 년이지……. 속이 살짝 부글거리는 걸 꾹 참고 있자니 박사가 내 손목에 고리 하날 채워줬다. 이건? 그러고 보니 로도스의 오퍼레이터 모두가 차고 있는 거랑 똑같은 거네.


 “이게 뭐야?”


 “응, 바이탈 체크 모듈. 여기는 계곡 위쪽이긴 하지만 혹시 모르니까. 모듈에 지금 초록불 들어와 있는 거 보이지? 이게 노란불로 바뀌면 바로 마스크 쓰고, 빨간불로 바뀌면 뒤도 돌아보지 말고 달려.”


 “…뭐야, 상황이 그 정도로 심각해? 밑에 내려가 있는 사람들은 그럼 더 위험한 거 아냐?”


 “작전 나가 있는 오퍼레이터들은 전부 장비도 철저히 갖추고 있고, 비상 상황에서 뭘 해야 할지도 아니까 그리 걱정 안 해도 돼. 지금 말해두는 것도 혹시나 싶어서 말해두는 것뿐이야. 어지간하면 초록불에서 바뀌지 않을 테니까 그렇게까지 걱정할 필욘 없어. 아, 그래도 중화제는 마셔둬.”


 박사는 그 말을 끝으로 제 팔에 주사하더니 나와 똑같은 병 하날 단번에 들이켰다. 조금 아쉽다. 나한테도 의료 지식 같은 게 있었다면 이번엔 내가 박사에게 주사 놔줬을 텐데……. 그런 생각을 하며 약을 죽 들이키니 그 미묘한 맛에 저절로 진저리가 났다.


 “으으, 으……. 뭐야 이거, 시고 단데 쓰기까지 하잖아.”


 “왜, 이상해? 너무 쓰다는 의견 있어서 맛 개량한 건데.”


 “아우, 아니……. 두 번은 못 마실 거 같아. 박사는 맨날 이런 걸 마시는 거야?”


 “맨날까진 아니고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내가 몸보단 머리 쓰는 쪽이긴 한데 묘하게 현장에 가봐야 할 때가 많아서 말야.”


 “…힘들었겠다.”


 “뭘 그 정도 갖고 그래, 나 정도면 약과지. 예전에 맛 개량하기 전엔 최전선 오퍼레이터들은 이 쓴 걸 물처럼 들이켜야 했다니까.”


 “말 돌리지 마, 박사. 내가 그걸 말한 게 아니란 것 정돈 알잖아.”


 평소처럼 능글맞게 웃어넘기려는 박사를, 이번엔 그냥 넘어가지 않고 용서 없이 뒷덜미를 낚아챘다. 이래 봬도 표정 하나하나, 슬쩍 흘린 한마디 하나하나만으로 뭇 귀족들을 쥐락펴락했던 나다. 미안하지만 박사가 아무리 머리가 좋다 해도 이쪽으론 아직 내 밑이다.


 “그 사람들의 목숨을 짊어지려고 나간 거잖아, 그렇지? 머리 쓰는 것밖에 재주가 없는 당신이 현장까지 나갔다는 건, 그만큼 심각한 상황이었단 뜻일 테니까.”


 더 많겠지. 지금 지나가듯 말한 한마디보다, 훨씬 더.


 이 사람이 거쳐 온 수라장은, 분명 지금 내가 한두 마디 해준다고 해서 위로될 수 있을 만큼 녹록한 게 아니겠지.


 하지만.


 …그런데도.


 나는 우뚝 서 있는 박사의 팔을 끌어 의자에 앉혔다. 소란스러운 바깥의 소리도, 윙윙거리는 바람 소리도 모두 멈춘 것만 같았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 역시, 그런 그의 앞에 서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알아.


 한두 마디로 그를 위로할 수 없다는 걸. 이제 멈춰 서버린 나 따위가 그를 위로할 자격 같은 건 없다는 걸.


 그래도 말하고 싶어.


 …말해주고 싶어.


 비록 이 사람에게 아무런 힘도 되어줄 순 없지만, 그래도 이 정돈 해줄 수 있으니까.


 손을 뻗었다. 손을 뻗어 그의 후드를 넘긴 뒤 얼굴 전체를 가리고 있던 마스크를 벗겼다. 역시나, 예상대로 박사의 입가엔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 그러나 얼굴엔 식은땀이 가득했다.


 “이거 봐, 이렇게나 긴장한 주제에 아닌 척은. 날 속이려면 백 년은 일러, 박사.”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서 그의 이마며 뺨을 닦아준다. 수통에서 물을 조금 묻혀서 목덜미까지. 박사는 내 손길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말없이 내 손길을 받아들이며 잠깐이나마 낮잠이라도 자듯 편안히 눈을 감을 뿐이었다.


 어쩐지 이런 표정은 처음 보는 거 같아.


 불현듯,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고마워. 훨씬 낫네.”


 “이거 줄 테니까 가지고 다니면서 땀나면 자주 닦아. 대체 이렇게 다 가려지는 마스크는 왜 쓰는 거야? 피부 나빠지게.”


 “체질 때문에 그래, 체질.”


 그는 그렇게 말하며 마스크를 다시 썼다. 으음, 어째 대강 얼버무린 거 같은 느낌이 드는데. 그래도 말하기 싫어하는 눈치라 굳이 더 캐묻진 않았다. 그는 내가 준 손수건을 네모반듯하게 접어 외투 윗주머니에 넣었다.


 “손수건 고마워. 나중에 꼭 돌려줄게.”


 “그냥 가져, 손수건 하나 가지고 뭘.”


 “그래도 이거 비싼 거 아냐? 레이스까지 달려 있고 그런데.”


 “왜, 비싸면 돌려주고 안 비싸면 가지게? 쓸데없는 생각 말고, 여자 거라서 부끄러우면 지금 그냥 줘!”


 “엑, 줬다 뺏는 게 어딨어? 준다곤 안 했다 뭐!”


 “그게 그 말이지! 진짜 뭐야, 기껏 생각해줬더니만!”


 짜증이 나서 도로 가져가려 했더니만 이번엔 무슨 보물이라도 품은 양 몸을 둥글게 말고 저항하는 박사. 아, 이 친숙하면서도 속에서 열불이 솟구치는 감각. 어느새 박사는 여느 때와 똑같은 떼쟁이에 못난이로 돌아가 있었다. 하아, 진짜 엔시오디스의 손님 같은 거만 아니었어도 한 대 쥐어박는 건데…….


 결국 손수건은 못 돌려받았다. 아니, 이쪽은 줄 생각이었는데 받는 쪽이 자꾸 짜증 나게 하잖아!


 그렇게 별것도 아닌 일 가지고 서로 대치하기를 수 분.


 쿠웅!


 “뭐, 뭐야?!”


 [선배, 긴급 상황이에요!]


 계곡을 터뜨릴 듯한 굉음이 울린 것과, 통신기에서 에이야퍄들라가 다급하게 박사를 부르는 것과, 박사가 천막 밖으로 뛰쳐나간 건 거의 동시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 상황에서 난 당황이나 하면서 무의식적으로 박사의 팔에나 매달리려 했고. 당연히 내가 손을 뻗었을 땐 이미 박사는 통신기를 든 채 저 멀리 달려가고 있었다.


 “…….”


 갈 곳 잃은 손이 허공을 저었다. 동시에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깨닫자 수치심과 부끄러움이 물밀듯이 밀려 들어왔다. 꼴사나운 일이다. 머리 빈 귀족 년들처럼 남자 팔뚝에나 매달리려고 하다니. 가주씩이나 돼서, 한 가문의 수장씩이나 돼서.


 대체 어디까지 떨어지려고 그러니, 라타토스. 응? 비련의 여주인공 놀이도 적당히 해야지.


 이죽거리는 그 목소리는 이때다 싶었는지 낄낄거렸다. 그것은 내 목소리와도 비슷했고, 시우르스의 목소리와도 비슷했으며, 할아버님의 목소리와도 비슷했다. 어쩌면 기억 속에 희미하게 남아 있는 어머니의 목소리일 수도 있었다.


 내 의사와는 상관없이 들려오는 악마 같은 속삭임.


 그것은 내 가장 약한 부분을 가장 고통스럽게 찔러 대며 경멸과 증오를 뿜어낸다. 마치 갈빗대 사이로 슥 들어오는 잘 벼린 단검처럼.


 아, 라타토스. 가엾고 앙큼한 계집애. 자존심 세우는 척하더니 결국 할 줄 아는 건 남자 팔뚝에 매달리려는 것뿐이지. 차라리 엔시오디스의 팔뚝에 매달리지 그랬니? 그렇담 모양새라도 번듯했을 텐데 말이야.


 무능한 년.


 넌 가주로서도, 여자로서도 실패작이야. 브라운테일의 이름을 쓸 자격조차 없어.


 “…딱히 그 이름에 미련은 없는데 말이지.”


 문득 그런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그러나 대답은 없었다. 대답이 있을 리가 없었다. 당연하다. 환청 따위에 무슨 대답을 기대했다는 건가. 너무도 당연한 사실인데 그에 대해 생각했다는 것 자체가 웃겨서,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인 건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정말 미친 사람 취급받는 건 넘겼다는 점이었다.


 환청도 두 번이나 들어보면 견딜 만하구나.


 익숙해져야지. 앞으로 자주 들을 거 같으니까. 마음을 다잡는 의미로 양 뺨을 한번 짝 치고선 박사의 뒤를 따라 천막을 나섰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이번엔 그리 오랜 시간 동안 얼이 빠져 있진 않은 듯했다.


 생각보다 금방 박사의 뒤를 잡았다. 내가 발이 빠르다기보단 그가 느린 거겠지. 운동 신경 하나는 절망적일 정도로 끔찍했으니까. 그가 들고 있는 무전기에선 예의 그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에이야퍄들라였다.


 “에이야퍄들라, 보고해.”


 등 너머로 들려오는 박사의 목소리가 제법 딱딱했다. 정확히 코드네임으로 부르고 있다는 게 그의 긴장한 마음을 대변해주는 듯했다.


 [선배, 원석충이에요! 그런데, 그런데 엄청 커요! 지금까지 봤던 거랑 비교도 할 수 없이 커요!]


 “현장은? 엘리시움! 어서 정찰 드론들을 띄워!”


 [무리야, 박사! 여기 오리지늄 농도가 너무 심해서 드론 조종은 꿈도 못 꿔! 지금 통신 유지하고 있는 게 고작이라고!]


 “…일단 거리를 두고 후퇴해! 절대 먼저 공격하지 마!”


 [하지만 선배, 저희가 가져온 기기들이 전부 다 먹통…꺄악!]


 “에이야퍄들라!”


 [괘, 괜찮아요! 아직 저희 팀은 모두 무사해요!]


 박사와 계곡 밑의 오퍼레이터들을 이어주는 건 달랑 무전기 하나뿐이었다. 아까까지만 해도 복잡한 지형 데이터 등등이 가득 떠 있던 모니터들도 전부 잡음을 내며 먹통이 된 상태. 엔지니어들이 복구해보려 어떻게든 애를 쓰는 것 같아 보였지만 쉬이 복구될 것으론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아래쪽 인원들은 지금 한시가 급한 상황이었다.


 “제길……. 하다못해 아래쪽에 오퍼레이터들이 어디 있는지 정도만이라도 알 수 있다면…….”


 아, 그렇구나. 지금 판이 안 보인다는 거네.


 그거라면 박사도 어쩔 수 없어. 아무리 뛰어난 체스 기사라도 판이 어떻게 생겼는지, 자기 말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상황에서 아무 수나 둘 순 없는 법이잖아.


 하지만 그거라면, 그 정도라면…….


 “…그거라면 내가 어떻게 해줄 수 있을 거 같은데, 박사.”


 박사가 내 쪽을 돌아봤다. 어두운 가면 너머로 그의 시선이 느껴졌다. 불행히도 그 시선에 담긴 온도는 어느 정돈지 알 수 없었지만 말이다. 


 “날 통신에 넣어줘. 내가 당신 오퍼레이터들이 어디 있는지 파악해서 알려줄게. 그걸로 지휘할 수 있겠어?”


 “…그 이상도 할 수 있지. 필요한 거 있어, 라타토스?”


 “종이랑 펜, 가능하면 삼각자도 하나.”


 “여기요! 책상은 이거 쓰세요.”


 갑자기 옆에서 불쑥 나온 팔이 내게 제도용 종이며 필기도구를 안겨줬다. 주변을 둘러봤을 땐 후방 업무 담당인 듯한 오퍼레이터들이 나와 박사 곁에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그들의 시선이 내게 닿아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박사의 시선 역시 내게 닿아 있다는 걸, 그 무엇보다도 절절하게 느낄 수 있었다.


 “부탁할게.”


 “맡겨 둬.”


 “후방 지원 오퍼레이터들은 각자 언제든 움직일 수 있도록 장비 차고 대기하고 있어! 그리고 현재 통신망에 있는 전원은 라타토스의 질문에 답해줘!”


 “잠깐만, 1분이면 돼.”


 입술이 바짝 타들어 간다는 게 이런 느낌일까. 책상에 종이를 펼치고 기억에 의존해서 계곡의 지도를 그려냈다. 얼추 모양새를 갖추자 박사는 솜씨 좋게 내 옆에다가 뭔가가 적힌 종이를 놔줬다. 작전에 참여한 오퍼레이터들의 코드네임과 소속된 팀, 그리고 팀장까지 적힌 종이였다. 역시 박사, 필요한 게 뭔지 바로 알아차리네. 지휘뿐만 아니라 보조도 수준급이구나.


 “가장 먼저 계곡에 들어간 팀이 누구야?”


 [여기는 스톰아이. 우리 소대다.]


 “주변에 대해 알려줘. 바위 모양에서부터 피어 있는 들풀 같은 거까지 최대한 자세히.”


 […우리 왼편으로 강줄기가 있다. 물이 그리 많진 않아. 들꽃이 좀 피어 있는데……. 하얗군. 꽃잎은 대략 6개 정도.]


 “애기눈꽃이네. 스톰아이 소대는 계곡 중류 부근이야. 이쪽, 대략 이쯤.”


 정확하게까진 불가능할지 몰라도, 주변 모습만 안다면 위치는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게 이곳은 내가 어릴 적부터 시우르스와 놀던 곳인걸. 브라운테일 가문에게 대대로 내려오는 곳이기도 했고 말야. 이 정도쯤은 나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에이야퍄들라, 그 거대 원석충을 만난 곳 주변은 어땠어?”


 [흐려서 잘은 모르겠지만, 원석충이 나온 곳으로 광산 입구처럼 보이는 곳이 대략 세 개쯤……. 아! 그리고 큼지막한 나무 한 그루가 있었어요!]


 “혹시 그 나무가 어떻게 생겼는지 기억나니?”


 [으음, 가지는 빽빽하고 둥근 나무긴 했는데…….]


 “에이야퍄들라 쪽은 여기. 스톰아이 소대보다 훨씬 더 깊이 들어갔네. 아마 샛길로 잘못 들어서서 그런 걸 거야. 그쪽 샛길에 용혈수 한 그루가 있거든.”


 재빠르게 임시 지도 위에 두 소대의 위치를 체크하자, 박사가 그걸 보고 기다렸다는 듯 지시를 내렸다.


 “에이야퍄들라. 지금 있는 위치에서 곧장 남서쪽으로 직진해. 길이 구불구불하니까 나침반으로 방향 확인해가면서. 스톰아이 소대는 현 위치에서 계속 올라가. 서로 만나면 일단 스톰아이가 현장 지휘를 총괄해 줘.”


 [알겠다, 박사. 움직이지.]


 “나머지도 부탁해, 라타토스.”


 “응.”


 계곡에 들어간 소대는 모두 5개였고, 그중 문제가 될 정도로 깊이 들어간 건 스톰아이 소대를 포함한 3개 소대였다. 나머지 2개 소대는 다행스럽게도 바로 계곡 입구 근처라 위치를 특정할 건 없었다. 다만 후퇴하지 않고 입구 쪽으로 몰려오는 원석충들을 막아내며 방어 작전을 펼치기로 했다. 그편이 안쪽에 있는 팀들이 더 안전할 테니 말이다.


 게다가 원석충들이 계곡 밖으로 나가봤자 좋을 게 없었다. 자칫 원석충들이 민가 근처에 둥지라도 틀었다간 그때야말로 돌이킬 수 없을 터였다.


 [에이야퍄들라 팀과 합류. 전원 무사하다. 지시대로 해당 캐스터 오퍼레이터들을 이쪽의 임시 소대원으로 편입시키겠다.]


 “에이야퍄들라, 스톰아이에게 아까 봤던 거대 원석충에 대해 공유해 줘. 그리고 오키드, 예비 소대를 이끌고 좀 전에 말한 루트로 퇴각한 뒤에 계곡 입구의 방어 작전을 지원해줘.”


 “자, 잠깐. 잠깐만, 박사. 전원 후퇴하는 게 아니었어? 설마 지금 그 원석충을 어떻게 하려는 건 아니지?”


 “몰아낼 거야. 가능하면 해치울 거고.”


 “뭐?!”


 하마터면 지도에 죽 빨간 선을 그을 뻔한 걸 가까스로 참아야 했다. 말도 안 됐다. 눈보라는 거세지고 있었고 계곡의 오리지늄 오염도 심해지고 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작전 속행이라니? 상황이 더 최악으로 치닫는 듯, 손목에 채워져 있던 바이탈 모듈에서도 삐익 하는 소리와 함께 노란 불이 들어왔다.


 “전원 방독면 착용! 에이야퍄들라, 거기 오염도면 얼마나 버틸 수 있지?”


 [대략 10분에서 15분 정도에요.]


 “그 안에 끝낸다. 전원 전투 준비!”


 “잠깐만, 박사……!”


 “라타토스. 방독면 써. 여기서부턴 내게 맡기고.”


 박사의 목소리는 깜짝 놀랄 정도로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건 내가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목소리였다.


 저 사람이 아까까지 에이야퍄들라랑 농담하던 그 사람이 맞아?


 그 아이가 저 계곡 아래에 있잖아. 걱정도 안 되는 거야?


 왜 지금 도망치게 하지 않는 거지? 왜 저들은 도망치지 않는 거야? 왜 싸울 준비를 하는 거야?


 왜?


 통신기에선 준비가 완료됐다는 소리만 들려올 뿐, 그 외의 말은 없었다. 모두의 목소리가 침착했다. 하물며 그 에이야퍄들라의 목소리조차도 침착했다. 박사의 지시를 믿어 의심치 않는다는 의지가 나한테도 전해지는 듯했다.


 신뢰.


 박사를 향한, 그들의.


 그건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견고하고 단단했다.


 이게 일개 제약회사와 그 소속원들의 관계라고?


 아니, 아니다. 그럴 리 없다. 그 충성심 높기로 유명한 페일로쉬 가문의 전사들조차 이런 상황에서라면 두려워할 터.


 나는 박사를 바라봤다. 내 시선이 떨리고 있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박사는 통신기에 대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지시하면서, 내가 대략적으로 그려놓은 지도 위에 몇 번이나 덧대서 뭔가를 그려내고 있었다. 그건 공격 계획이었다. 그것도 각 인원의 배치와 공격 순서, 심지어 인원별 재배치 시점과 기술 사용 시점까지 모두 초 단위로 분석해 놓은.


 세상에.


 그 이상도 할 수 있다는 말이 정말 빈말이 아니었구나.


 [박사, 레인저일세. 자네 예측대로 저 거대 원석충도 특성 자체는 보통 것들과 다를 게 없구먼.]


 “생각보다 물렁하다 이거지?”


 [그래, 하지만 다가가는 건 힘들 것 같으이. 주기적으로 몸속의 체액을 사방으로 뱉어내는 거 같은데, 아주 위험해. 우리 장비로는 뼈도 못 추리겠군.]


 [저건 용암이에요! 말도 안 돼, 저 원석충……. 몸속에 용암이 흐르고 있어요! 이 추운 곳에서 대체 어떻게?!]


 “예전에 여기서 화산 터진 적 있었다며. 그럼 지금도 땅속 어디선가는 용암 같은 게 흐르고 있다는 거겠지. 자, 분석은 이따 하고 우선은 퇴치야. 에이야퍄들라, 녀석이 미끼에 흥미를 보여?”


 [네, 선배! 바깥이 상당히 추워서 그런지 열기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어요! 계획하신 포인트까지 계속 유도할게요!]


 “조심해, 지금 네가 제일 위험한 역할이니까. 스톰아이는 에이야퍄들라의 호위를 부탁해.”


 [알겠다. 그리고 박사, 거대한 녀석이 한 번에 분출하는 용암 줄기는 많지만 연사력은 떨어진다. 그리고 특별히 조준을 노리고 하는 것 같지도 않아.]


 “노리고 쏘는 게 아니라면 그냥 주기적으로 몸에서 분출한다는 건가……. 그래도 아직 정보가 부족하니, 방심하지 마.”


 [그러지. 에이야퍄들라?]


 [갑니다!]


 쿠웅, 하는 소리와 함께 뭐라 형용하기 힘든 괴수의 울음소리 같은 게 계곡을 울렸다.


 크오오오…….


 그것은 마치 동굴 깊은 곳에서부터 울려 퍼지는 것처럼 깊고 낮았다. 앞서 난 소리는 에이야퍄들라가 아츠를 사용한 소리리라. 무슨 아츠를 사용하는진 몰라도 계곡이 울릴 정도의 소리를 낼 수 있는 걸로 봐서 아주 솜씨 좋은 캐스터인 듯했다.


 [착탄 확인! 거대 원석충, 빠르게 접근 중이에요!]


 “스톰아이는 에이야퍄들라를 데리고 즉시 후퇴해. 나머지 인원들은 목표가 지정 포인트에 도달할 때까지 대기. 최종 공격 명령은 레인저가 내려줘.”


 [알겠네, 박사.]


 대장인 스톰아이란 사람을 놔두고 굳이 다른 이에게 명령권을 준다는 것은, 아무래도 그 스톰아이가 후퇴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거겠지. 더불어서 이 레인저라는 사람을 신뢰하는 것이기도 하겠고.


 만약 이런 급박한 상황이 아니었더라면 감탄을 숨기지도 않았을 거다. 공적에 연연하지 않는 대장과 놀라운 판단력의 지휘관, 그리고 제각기 역할에 충실한 대원들까지.


 그건 마치 잘 짜인 한 편의 연극을 보는 거 같아서, 아무리 생각해도 도저히 실패할 것 같질 않았다.


 [지금일세!]


 통신기에서 터져 나오는 공격 명령.


 그와 동시에 계곡을 무너뜨릴 듯한 굉음. 문자 그대로 땅이 울려서, 뭔가가 솟구쳤다. 그것은 계곡 아래서부터 이쪽까지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오고 있었다.


 “박사.”


 몸이 움직였다. 옹알거리듯 내뱉은 말은, 아쉽게도 그에겐 닿지 않은 듯했다.


 뭐랄까,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이미 내 몸은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눈치채지 못한 듯 책상을 붙잡고 간신히 버티고 있을 뿐이었다.


 세상에, 이런 상황에서까지 지도 앞을 떠나지 않는다니.


 참 책임감 하난 알아줘야 해. 평소에도 좀 저러면 얼마나 좋아.


 그런 쓰잘데기없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참 이상하다. 되게 급박한데, 이상하게 그를 보면 자꾸 그런 실없는 생각이 든다.


 뭔가가 포물선을 그리고 날아오고 있다. 뭔진 모르겠다. 하지만 박사가 있는 곳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저게 뭐든 간에 맞으면 성하지 않을 거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저게 설령 부드러운 흙덩이라도, 이 정도 거리를 날아올 수 있다면 그건 대포알에 준하는 파괴력을 지녔을 터.


 그런 걸 박사가 맞게 할 순 없어.


 이 사람 몸이 약한걸. 저런 거 맞았다간 남은 기간 내내 병상 신세일 거야. 어쩌면 그보다 더 나쁠 수도 있고.


 그건 싫어.


 …그건, 싫어.


 “박사.”


 “라타토스……?”


 그가 나를 돌아보는 원심력을 이용해 그의 옷깃을 잡아챘다. 역시나 절망적일 정도의 체력. 정말, 겨우 나 정도나 되는 여자한테 이렇게 쉽게 끌려서야 어쩌겠다는 건지. 그대로 그의 옷깃을 잡아 땅바닥에 넘어뜨렸다.


 그가 나를 올려다본다. 아하, 이거 새로운 느낌이다. 내려다보는 게 이런 느낌이구나. 그러고 보니 키 차이 때문에 매번 내가 올려다만 봤잖아. 후훗, 살짝이지만 중독될 거 같아.


 “라타토스?!”


 아아, 박사. 다치지 말아 줘.


 당신이 다치면 내가 너무 슬플 거 같단 말이야.


 “…정말로, 손이 많이 간다니까.”


 “라타토스으으으!!!”


 속삭임.


 그리고 박사의 외침.


 등 뒤에서부터 내리꽂히는 둔탁함. 그리고 느지막하게 등골을 타고 흐르는 아픔.


 모든 게 느리게 흘러가는 것만 같다. 느리게, 아주 느리게. 심지어 내 몸이 둥실 뜨는 것마저도, 느리게.


 …얼굴이라도 멀쩡했으면 좋겠다.


 그런 실없고도 실없는 생각을 하며, 몸과 함께 떠올랐던 내 의식은 땅바닥에 내리꽂히는 것과 동시에 새까맣게 추락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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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화로 체크포인트 도달하려 했는데 실패


이제 다음화가 체크포인트입니다 이런 말 안 써야겠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다음화는 진짜_최종_마지막_체크포인트.txt입니다.


여기서 그냥 라타토스 죽으면 끝인데 하..


그리고 찬조출연하는 오퍼들은 임의로 어울릴 법한 사람들로만 배정했습니다.


강함은 실 성능과는 무관하며, 설정상의 강함만 토대로 했습니다. 성능 위주로 썼으면 저런 짭 폼페이 같은 건 에이야 3스에 녹아버렸겠죠...


이번 편은 약간의 전투씬...이라는 것도 있고


긴박한 상황과 박사의 판단력 같은 거도 써보고 싶었고


라타토스의 보조와 슈퍼 세이브 같은 느낌도 써보고 싶었는데 잘 됐을지는 모르겠네요.


이번화도 환청 양께서 찬조출연해주셨습니다.


재밌게 봐주시고 감상 달아주심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