뷰카디에 대한 최후의 저항마저 실패하고, 박사를 품에 안으려는 뷰카디와 박사 사이에 그 어떤 장애물도 남지 않게 되는 거임


서서히, 뷰카디가 박사에게 다가오고, 박사의 귓가에 감미로운 속삭임이 들리는 거야


'혈족이 되자.'


박사는 본능적으로 깨닫게 되지.

보카디의 속삭임을 받아들이면 테라가 완전히 멸망할 것임을.

부질없는 저항일지라도, 그녀에게 저항한다면 테라의 멸망을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음을.


얼마 남지 않은 이성을 그러모아 뷰카디의 제안을 거절하자, 뷰카디가 천천히 손을 뻗어오는 거임


반쯤 넝마가 된 겉옷을 벗기고, 벨트를 풀어버리고, 바짓단을 풀어헤치고, 와이셔츠의 단추를 풀어내리고, 천천히, 조심스레, 박사의 맨몸을 공기중에 드러내기 시작해


이런 아무 것도 아닌 손짓에 박사는 엄청난 쾌감을 느끼고 말아

다가올 쾌락과 다가올 파멸을 두려워하며, 기대하며, 박사는 신음을 흘리며 몸을 떨기 시작하지


알몸이 된 박사에게 보카디가 다시금 물어.

'혈족이 되자.'


박사는 이번에도 거절해.

하지만 그 거절은 뭘 위한 거였을까?

박사도 잘 알고 있지.

아무리 애써봐야, 테라의 멸망을 막을 수는 없음을.

그저, 찰나의 시간 동안 늦추는 것밖에 할 수 없음을.

이 저항은 무의미함을.


이번엔 보카디의 손이 박사의 맨몸에 닿지.

팔을, 어깨를, 목덜미를, 귀를, 등을, 옆구리를, 허벅지를 조심스레 쓰다듬는 보카디의 손길이 느껴져.


이런 가벼운 손길에, 박사는 분명한 쾌감을 느껴.

신음하고, 몸부림치고, 버둥대고, 팔다리를 움츠리고, 비명지르고, 온 힘을 다해 저항하지.

하지만 박사는 보카디의 손길에서 벗어나지 못해.


다시금 보카디가 속삭여.

'혈족이 되어줘.'


이번에도 박사는 저항하지.

보카디가, 이샤-믈라가 모습을 드러내.


수많은 촉수가 짓쳐오지만, 박사는 혐오감이 아닌 따스함을 느껴.

수없이 많은 촉수가 박사의 온몸을 어루만지지만, 성기를 만지지는 않아.

수없이 많은 촉수가 박사에게 극상의 쾌감을 가져다주지만, 넘쳐나는 쾌감은 박사에게 절정을 가져다주지 못해.

박사는 깨달아.

보카디의 제안을 받아들이기 전까지, 그녀는 자신에게 달콤한 절정을 가져다주지 않을 것임을.


얼마나 지났을까?

박사는 계속되는 쾌감과 찾아오지 않는 절정 속에서 보카디에게 부질없는 저항을 이어가.

보카디는 계속해서 박사에게 속삭이지.

'혈족이 되자. 하나가 되자. 영원히 같이 있자. ■■■■■■■■■■...'

그 속삭임은 인간의 이해를 벗어나 아무 의미 없는 소리로 화한지 오래지만, 박사는 그 안에 든 보카디의 분명한 의지를 읽을 수 있어.



한참 뒤, 혹은 잠시 뒤, 박사는 결국 한계를 맞이해.

자신에게 속삭이는 보카디에게, 고개를 끄덕이지.

보카디는 그 무엇보다도 아름다운 미소를 지어보여.


보카디는 박사에게 절정을 가져다주고, 박사는 그 지고의 쾌락에 파묻혀 황홀해하지.

그러는 동안, 박사의 몸과 보카디가 얽혀들기 시작해...



박사는 보카디와 완전히 동화되었지만, 그 형태와 의식은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지.


이 멸망한 세계 속에서, 박사는 보카디와 단둘이 남아, 영원히 하나가 되어 끝없는 쾌락 속에 그저 존재할 뿐이야.

영원히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