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독타물임니다※



Post-Traumatic Stress Disorder.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전쟁, 테러, 천재지변 따위에 목숨을 잃을 뻔했을 때 겪게 되는 정신병의 일종.

테라의 사람들은 이 병을 쉽게 앓지 않는다. 그들에게는 이것이 일상이고, 극복하며, 앞으로 나아간다.

나 혼자만이 다른 세계의 사람인 것 같았다. 아니 그런 것이 분명했다.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참혹한 전장에 나가 선혈이 낭자하며 장기가 널브러지고 시체가 나뒹구는 장면을 목격해도 도저히 익숙해지지 않았다. 동료가 다쳤을 때에는 가슴이 찢어진다. 하지만 나는 티를 낼 수가 없었다. 아니, 티를 내서는 안 되었다. 나를 믿고서 전장에 나가 싸우는 그들을 위해서라도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됐다.

일이 끝나면 나는 방에 들어와 혼자 눈물을 흘린다. 며칠은 잠에 이루지도 못한다. 수면제를 몇 알을 먹어도 잠을 잘 수가 없다. 눈앞에서 죽어나간 그들의 비명과 원망이 나를 괴롭게 한다. 내 목을 점점 조여온다.

 


“…미안해, 잘못했어… 흐윽, 으윽….”

 


오늘 밤도 1시간은커녕 30분도 못 잔 것 같았다. 초췌해진 눈으로 모두가 잠든 새벽 옥상에 올라간다.

입에 담배를 물고 불을 붙인다. 차라리 눈을 뜬 채 있는 것이 그나마 속이 편했다. 

그 자리에서 서서 계속해서 줄담배를 피운 것 같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날은 어느새 밝아 졌다. 

비틀 거리는 발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갔다.

 

“박사… 윽, 얼마나 피운 거야?!”

 

“조피아, 놔…”

 

“또 잠 안 잔 거야? 그러다가 진짜…”

 

“놓으라고!”

 

“…미안해.”

 

“비켜...”

 

그녀가 나를 걱정해준 마음은 알고 있다. 하지만 문드러질 때로 문드러진 내 뇌는 공격적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나도 이런 내가 싫었다. 이러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 의사와 상관없이 모든 신경이 날카롭게 서 있었다.

 

집무실에 들어가 보고서들을 받아 검토하기 시작했다.

머리가 찢어질 것만 같았지만, 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켈시는 내 몸 상태를 꿰뚫어 본 듯 집무실에 찾아왔다.

 

“박사, 잠깐 보지.”

 

“할 말 없어. 돌아가.”

 

“…과격한 방법을 사용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아.”

 

“하, 차라리 네 그 괴물로 내 몸을 갈가리 찢는 건 어때?”

 

“박사…”

 

“됐어, 당장 꺼져. 네년 얼굴 꼴도 보기 싫으니까.”

 

이 모든 것의 원인이 나를 이 절벽으로 몰아넣은 켈시와 아미야인 것만 같았다. 

과거에 내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녀들과 어떤 관계였고, 무슨 일을 했는지 나는 전혀 기억하지 못한다. 

허나 내가 눈뜨고서 마주친 광경은 그저 피가 튀는 살육전과 방금 보았던 사람들이 싸늘하게 눈을 감는 것. 

그리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광기 어린 전쟁만이 있을 뿐. 

과거의 나는 대체 어떻게 버텨왔던 것일까… 모르겠다.

 

보고서의 검토를 끝내고서 의자에서 일어났다. 휘청거리며 나는 바닥에 쓰러지고 말았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서랍을 열어 약통을 꺼내 입에 때려 부었다. 약물중독, 폐인, 정신병자. 이것이 내 현재 상태다. 


제대로 된 식사조차 나는 하지 못했다. 조금만 위에 무엇인가 들어가도 토가 쏠렸다. 고기를 씹는 것은 그들의 시체가 떠올랐고, 야채의 아삭함은 전장의 숲이 떠올라 있지도 않은 피 맛이 느껴져 왔다.

그저 소파에 누워 담뱃갑을 흔들었다. 텅 빈 소리만이 들려왔다. 아마 새벽에 다 폈던 것이겠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빈 곽을 바닥에 내던지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집무실은 고요했다. 내 상태가 점점 이상해지자 어시스턴트를 부를 수가 없었다. 이 추태를 보이고 싶지 않았다. 

로도스의 사람들에게는 박사가 점점 미쳐간다고 소문이 퍼졌겠지. 눈을 감았을 때 이대로 눈이 따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영원히 지속되는 고통 속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내게 쉽게 영면을 가져다주지 않았다.

어느덧 또다시 전장으로 나가야 할 시간이 다가왔다. 비틀거리며 집무실을 빠져나와 옥상에 올라갔다. 

 

“어라, 박사님 아니십니까?”

 

“…리씨, 안녕하세요.”

 

“이거 참, 박사님이 담배를 태우시는 건 몰랐네요.”

 

“그런가요… 혹시 한 대만 주시겠어요?”

 

“그러죠.”

 

그는 염국제 담배를 내게 건넸다. 입에 물고서 깊게 마셨다. 조금은 떨리는 손끝이 진정이 된듯했다.

리는 곁눈질로 나를 슬쩍 보고 담뱃불을 끄고 내려갔다.

 

“그럼, 나중에 뵙겠습니다.”

 

“네…”

 

연기를 조금씩 뿜을 때마다 악마에게 수명을 담보로 조금의 활력을 받는 기분이었다.

어차피 오래 살 마음도 없었기에 영혼의 바닥까지 줄 의향으로 연기를 내뿜었다.

.

.

.

.

 

 

“목표는 정했다.” 

 

귀가 찢어질 듯한 바람을 가르는 소리와 함께 그들의 몸이 꿰뚫려 나간다.

저스티나는 백발백중의 솜씨로 다가오는 그들의 몸을 정확히 꿰뚫었다. 

눈뜨고 차마 볼 수 없는 광경이었다. 그녀뿐만 아니다. 니어의 창끝은 적들의 목을 베었으며, 쏜즈의 약재들은 그들의 몸을 녹였다. 참혹한 이 상황을 맨정신으로 도저히 버틸 수가 없었다. 나는 또다시 약물에 의존했다. 재킷에서 약통을 꺼내 입에 털어 넣었다. 아마 다른 이들이 다 지켜봤을 터이다. 박사는 약물중독자라며 또 한 번 이야기가 나돌 것이 분명하다. 

 

상황이 종료되고 그들은 내 쪽으로 복귀하였다. 몇몇 이들은 걱정스럽게 날 바라보았으며 어떤 이들은 내게 들리지 않게 수근 거려왔다. 당장에라도 도망치고 싶었다.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기에 담담한 척 상황종료 브리핑과 함께 복귀 할 것을 알렸다.

 

“…고생했어요. 다드…ㄹ…”

 

“박사!”

 

과다 복용의 탓일까. 온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죽음이 문턱을 밟고서 내게 다가오는 것이 느껴졌다. 

무서웠다. 두려웠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원망스러웠고 분노했다. 

왜 나만 이런 일을 겪어야 하는가, 왜 나만 이런 일을 하며 괴로워하고 슬퍼하며 두려움에 가득 차야만 하는가…

의료반은 서둘러 내게 달려와 조처를 하는 듯했다. 

그때, 재킷에 있던 약통이 바닥에 굴러떨어졌다. 

 

“이거, 아까 박사가 먹던 건데…”

 

“얼마나 먹었지?”

 

“손에 거의 때려 붓고서 그거 다…”

 

켈시는 이를 세게 물고서 나를 살리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했다. 

.

.

.


눈을 떴을 때에는 익숙한 천장이었다. 

로도스 의료부에 격리시설. 스펙터가 있던 곳과 유사한 곳이었다. 비틀거리며 일어나 앉았다. 

팔에는 링거가 꼽혀있었다. 나는 링거를 뽑으려 했다.

 

“Mon3ter.”

 

켈시의 신체에 깃든 괴물이 튀어나와 내 몸을 붙잡았다. 

조금이라도 내 몸을 망가트리지 않으려 조심스럽게 붙잡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이대로 으깨버리지그래?”

 

“그런 말은 그만둬. 네가 죽는 것을 원치 않으니까.”

 

“죽여, 그냥 죽이라고.”

 

“…”

 

창밖으로 아미야로 보이는 토끼 귀가 보였다. 아마 내가 그녀에게 화를 내고 있다는 걸 알고 있어서 들어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겠지.

 

한참을 우리는 묘한 긴장감 속에서 서로를 노려보았다. 아니, 나만이 노려보았다. 그녀의 눈을 슬펐다. 나를 동정하는 눈빛이었다. 

 

“…뭐냐고, 그 눈빛. 내가… 내가 그렇게 불쌍해 보여?!”

 

나는 물병을 잡고 그녀를 향해 던졌으나 빗겨 나가 벽에 맞고 깨졌다.

 

“꺼져. 당장 꺼져!”

 

“…알겠다.”

 

그녀는 내 목에 주사를 꽂아 넣었다. 점차 몸에 힘은 풀리고 눈꺼풀은 내려앉았다.

 

 


 

 

 

또다시 떠진 눈. 이젠 익숙해진 천장.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아마 묶어 놓은 것이겠지.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다. 찾지 않는다. 완벽하게 격리되어있는 방. 그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방. 끔찍할 정도로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방. 

 

“아아…아…아아!!!!!!!!!!”

 

침묵이 싫다. 고요함이 싫다. 정적이 싫다. 이 끔찍한 침묵은 내 몸 가장자리부터 그것들의 비명이 기어 올라온다. 

손끝이 피로 진득해진 느낌이 덮었다. 움직이지 않는 몸 위로 목이 반쯤 잘려 덜렁거리는 감염자가 나를 내려다본다. 

아아… 죽여줘… 제발….

 

그때, 한 검은 고양이가 내 몸에 올라왔다. 이어 감미로운 남성의 노랫소리가 울려 퍼졌다. 전신을 덮고 있던 그것들은 점차 희미해져 갔다. 거친 숨을 몰아 내쉬며 눈물을 흘렸다. 

 

“미스..크리스틴? 네가 어떻게?”

 

“야옹.”

 

작은 고양이는 내 뺨에 얼굴을 비비며 내 몸에 드러누웠다.

굳게 닫힌 격리실 문이 열리고 그녀의 주인이 들어왔다. 

 

“어두운 밤을 걷는 사람은 길을 가리킬 수 없고, 네가 가리키는 방향 또한 그 어둠에 머물러 있구나.”

 

“팬텀…?”

 

“암울한 밤이로구나. 박사.”

 

그는 목에 채워진 잠금장치를 다시 채우며 내 눈물을 닦아주었다. 

아마도 켈시가 보내 들어왔겠지. 썩 달갑지는 않았다. 

 

“괜한 동정이라도 하려고 온 것이라면, 돌아가.” 

 

“동정이라… 너는 동정을 받길 원하는가?”

 

“뭐?”

 

“너는 지금 무엇을 원하는 거지? 네 바람은 무엇이냐? 어째서 그 두꺼운 가면을 더욱 세게 눌러 쓰고서 감추는 거지?”

 

“…이게 내 본모습이야.”

 

“우론이다.”

 

“말장난할 기분 아니야. 돌아가.”

 

“정말 괜찮은가? 어둠 속에 나타난 그림자가, 악몽이 다가오는 것이 더는 두렵지 않은가?”

 

“…그럼 조금만 더 있어줘.”

 

“나는 네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뿐이다. 사양할 것 없어.”

 

그가 노래를 불렀다. 울려 퍼지는 노랫소리에 나는 정말 오랜만에 잠을 잘 수 있었다. 

그저 아무런 생각 없이 깊고 편안한 숙면을 취했다.

 

“편안한 밤이 되기를… 박사.”

 

 

 

 

얼마나 잠이 들었던 것일까, 온통 새하얀 방. 구분되지 않는 시간. 묶여있던 구속장치가 풀려 있었다.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굉장히 오랜만에 다리로 지탱해서 그런 것인지 부들거리며 마치 갓 태어난 새끼 양과 같이 바닥에 주저앉았다. 

 

“바..박사님, 괜찮으세요…?”

 

조심스럽게 카우투스 소녀가 들어왔다. 내가 화를 낼 것으로 생각했는지 눈을 질끈 감고서 들어왔다.

 

“…미안해, 아미야. 조금 도와주겠니?”

 

“아, 네!”

 

그녀는 서둘러 내 몸을 붙잡고 일어서는 것을 도왔다. 

비틀거리며 나간 병실 밖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모여있었다. 슬피 울며 내게 다가온 이들, 그저 담담히 서서 나를 바라보던 이들. 다들 내가 걱정되었던 것이겠지… 

나는 자리에 서서 고개를 푹 숙이고 그들에게 사죄했다.

 

“미안해… 나 때문에 다들… 다시는 이런 일 없도록 할게.”

 

“이 등신아!”

 

쩌렁하게 울려 퍼지는 블레이즈의 목소리. 그녀는 붉은 눈시울로 다가와 나를 안았다. 

 

“제발… 너부터 생각하란 말이야. 왜… 왜 항상 그렇게 약하면서 강한 척을 하는 거야….”

 

“나는 정말 괜찮…”

 

“아니잖아! 괴롭잖아! 힘들었잖아!”

 

그녀가 처절하게 내뱉는 목소리가 가슴에 와 닿았다. 어째서인지 나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도 하나둘 다가와 나를 안아주었다. 처음이었다… 타인의 온기가 느껴지는 것이.

 

‘나… 사랑받고 있었구나, 미움받지 않았어…’

 

그들의 온기를 느끼며, 사랑을 느끼며 나는 펑펑 울었다.

 

 

 


나는 한동안 휴가를 받았다. 집무실에 출근하려 했지만, 잔뜩 화를 내며 나를 돌려보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멍하니 침대에 앉아있었다. 기억이 시작된 체르노보그에서부터 지금까지 ‘휴가’ 라는 것은 처음이었기에 무엇을 하고 쉬어야 할지 모르겠다.

마침 입도 심심하겠다, 담배를 챙겨 옥상에 올라갔다. 

 

“어이쿠, 박사님. 또 뵙네요?”

 

“아, 리씨. 안녕하세요.”

 

“몸은 괜찮으신 겁니까? 담배는 안 피우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아… 가만히 있으려니까 심심해서요.”

 

나는 입에 담배를 물었다. 

그때, 누군가 내 담배를 가로채 갔다.

 

“박사, 담배는 몸에 좋지 않아.”

 

“그러는 너도 피려고 왔잖아. 텍사스.”

 

“나는 아직 건강하니까, 박사는 건강을 조금 챙기는 편이 좋아.”

 

“알았어…”

 

나는 쓸쓸하게 로도스 선내를 배회했다. 

정말 할 것도 없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야옹~”

 

“크리스틴? 혼자 왔니?”

 

“야옹~”

 

크리스틴은 내 무릎에 올라와 재롱을 피우기 시작했다.

그녀가 있다는 것은 근처에 그도 있다는 것이겠지.

 

“거기 있지? 숨어있지 말고 이리와. 나 심심해.”

 

“기꺼이.” 

 

“계속 따라다닌 거야?”

 

“어둠의 발을 들여놓은 너는 언제든 쉽게 유혹에 빨려 들어가기 마련이다.”

 

“고마워…”

 

어째서일까 그의 목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머릿속이 멍해져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항상 복잡한 생각이 뒤엉켜 지끈거려온 머리가 편해졌다.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노래 부탁해도 될까?”

 

“네가 원하는 것이라면.”

 

그는 아름다운 미성으로 노래를 불렀다. 

노랫소리가 귀로 흘러들어와 전신으로 퍼지는 느낌을 받았다. 

몸이 축 늘어지려 할 때쯤 그가 노래를 멈추었다. 

그는 조금 어지러웠는지 머리를 감싸 안았다.

 

“어두운 밤이 아니어도 검은 그림자는 너를 따라다닐 것이다. 그러니 주의를 기울여라, 박사.”

 

“…응?”

 

“그럼 또 만나지.”

 

그는 갑작스럽게 크리스틴과 함께 그림자 속으로 사라졌다.

팬텀의 얼굴에는 낯선 가면이 씌워져 있었다. 처음 보는 가면이었다. 

어째서 그런 가면을 쓰고 있었을까.

 

그래도 그 덕분에 조금의 휴식을 취할 수 있었기에 감사를 하고 싶었다. 

팬텀의 행적을 좇아 선내를 돌아다녔다.

가장 먼저 리의 사무실을 찾았다.

 

“저기, 리씨.”

 

“박사님, 요즘 자주 뵙네요?”

 

“혹시 팬텀 못 보셨나요?”

 

“팬…텀이라면 늘 고양이랑 함께 다니는…?”

 

“네. 맞아요.”

 

“보질 못했네요.”

 

“아… 네. 감사해요.”

 

“박사님?”

 

“…네?”

 

“너무 밤늦게 돌아다니지 마세요. 요즘 실종사건이 일어난다고 하더라고요.”

 

“네… 걱정해주셔서 감사해요.”

 

그의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리는 검은 고양이와 고양이 가면을 쓴 사람들이 걸린 사진을 보며 담배를 입에 물었다.

다시 선내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저기, 레드. 팬텀 못 봤니?”

 

“검은 사람. 못 봤다. 그 사람은 위험하다. 그러니까 가지마.”

 

“걱정해줘서 고마워.”

 

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팬텀의 흔적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시간은 벌써 늦은 밤, 어둡고 차가운 그림자가 세상을 뒤덮은 시간이었다.

나는 그에게 이끌리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팬텀이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되었다.

 

발길이 닿는 곳을 따라 방황하였다. 어느새 한 낡은 극단 앞에 서 있었다. 

무척이나 고요하고 관리를 하지 않아 낡고 닳아있었다.

그 극단에 홀린 듯 들어갔다. 바닥에 익숙한 가면이 굴러다녔다. 

팬텀, 그가 평소에 지니며 끼던 고양이 가면이었다. 

 

나는 더욱 깊숙이 들어갔다. 

 

“저기요, 아무도 없어요…?”

 

‘저기요, 저기요, 아무도, 아무도, 없어요? 없어요?’

 

그저 텅 빈 무대에서는 내 목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무대에 무엇인가 반짝이는 것이 보였다. 

무대 중앙에 핏물이 고여 있었다. 그 혈흔을 보자마자 나는 바닥에 주저앉았다. 

겨우 잊고 있었던 악몽이 점점 대 몸을 좀먹기 시작했다. 

 

“오지 마…오지마…오지마…!!!”

 

‘다, 네가 죽인 거야. 모든 게 네 탓이야. 우리는 그저 살고 싶었어.’

 

‘왜 너는 아직도 살아있어, 왜 죽지 않는 거야, 왜 우리만 고통스러워하는 거야.’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검은 그림자가 서서히 내 몸을 붙잡았다. 그것들의 손길은 마치 지옥 끝자락으로 이끄는 망자의 손길과도 같았다.

발버둥쳤다. 살고 싶었다. 나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가고 싶었다.

 

“야옹.”

 

“…크리스틴!”

 

“자아, 무대의 개막이다!”

 

팬텀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인형들이 걸어 나왔다. 그들은 각기 다른 가면을 쓴 채 서서히 내게 다가왔다. 

검은 그림자를 무자비하게 검으로 찌르자 그들의 고통소리가 내 귓가에 울려 퍼졌다. 나는 두 귀를 틀어막고 웅크렸다. 

그의 노랫소리가 무대를 채웠다. 아름다우며 어딘가 섬뜩한 그의 목소리가 점점 내 목을 옥죄어왔다. 

고통? 아니 오히려 편안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천천히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 내 몸은 점점 공중에 떠올랐다. 

 

팬텀은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그는 떠있는 내 몸을 앉았다.

 

“그 손 놓으시지요!”

 

“검은 사람. 위험하다. 박사 구해야 한다.”

 

레드의 나이프와 팬텀의 검이 맞부딪히며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곧이어 리의 부적이 내 몸에 붙어 팬텀을 밀쳐냈다. 

 

“레드씨 뒷일은 부탁합니다!”

 

“…놔요.”

 

“박사님, 서둘러 도망… 뭐라고요?”

 

“그가 저를 부르고 있어요. 가야 해요.”

 

“아니, 박사님!”

 

나는 그를 밀치고 팬텀이 있는 곳으로 달렸다. 가면을 쓴 배우들이 리를 가로막았다. 

저 멀리서 다른 배우들과 뒤엉켜 싸우고 있는 사무소 아이들이 보였다. 

 

“자아, 박사. 이쪽으로…”

 

그의 목소리가 한층 더 다가왔다. 부드러운 미성에 취해 나는 몸을 그에게 맡겼다. 

부드럽게 어깨를 감싸 안고서 레드를 걷어차고 무대의 그림자로 사라졌다.

 

 

 



 

“블레이즈씨 조금 진정하는 게…”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그녀는 아츠를 불태우며 책상을 내리쳤다. 다들 그녀의 마음을 이해하는 듯 말리지 않았다. 

박사가 실종되었다. 그녀를 데려간 사람은 다름 아닌 로도스의 오퍼레이터 팬텀. 

당연히 로도스에는 비상이 걸렸고 정보 기밀을 위해 소수 인원만이 그 사실을 전달받고서 모였다.

 

“…내 책임이다. 미안하다.”

 

“켈시 선생님…” 

 

“그녀를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약물이 아닌 것의 도움이 필요했어. 어쩔 수 없이 팬텀의 목에 채워진 구속 장치를 풀었던 것이 원인이 될 줄이야…”

 

“박사님은 그에게 홀린 듯 자발적으로 따라 가버리더군요. 이것도 그의 능력인가요?”

 

“…확실치는 않지만 맞을 거다.”

 

다들 고뇌에 빠져 한숨을 내쉬었다.

아미야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이제 어쩌죠… 박사님 단말기도 안 들고 가셔서 위치도 알 수 없는데…”

 

리는 잠시 생각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아마… 아직 로도스에 있을 것 같군요.”

 

 

 

 

 

 

눈을 떴을 때 가면을 쓴 팬텀이 거울에 있는 자신과 대화하는 것이 들려왔다. 

이상한 점은 거울 속의 그는 가면을 쓰고 있지 않았다. 

 

“그녀를 어쩔 셈이지. 그런다고 해서 어둠에서 벗어나지 못할 텐데.”

 

“벗어나? 하, 어리석구나. 그녀의 피는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비출 것이다. 그녀의 비명은 분명 좋은 노래를 흘리겠지. 너는 잠자코 보기나 해라.”

 

 

가면을 쓴 팬텀은 검을 내 허벅지에 찔러 넣었다. 

 

“어….째서 아파, 팬텀… 아파…”

 

다리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너무 아팠다…

거울 속의 팬텀은 부서지지 않는 거울을 손으로 내리쳤다. 

 

흐르는 내 피는 바닥에 스며들어 갔다. 

곧이어 바닥에서 검은 그림자들이 기어 올라왔다. 

그들은 서로 각기 다른 가면을 얼굴에 뒤집어쓴 채로 나타났다.

그림자들은 서서히 내 목을 졸랐다. 나는 그저 죽어가는 소리만 낼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만! 부탁이다. 그만해다오…”

 

“누가 우위에 있는 것인지 명심하도록 해라.”

 

가면을 쓴 팬텀은 작은 방을 빠져나갔다. 

거울속의 팬텀은 흐느끼며 그와 함께 사라졌다.

 

또 적막한 고요함이 흐른다. 피가 흐른다. 잊고 있던 지옥 같은 악몽이 점차 내 몸을 갉아 먹기 시작했다. 

아무리 소리치고 울어보아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다. 나는 어둠에 잡아먹혔다.

 

 

 

 

 

“이 건물에서 비정상적인 아츠의 반응이 감지되었어요. 확실한 것 같네요…”

 

“후우, 여기서부터는 저 혼자서 가겠습니다.”

 

“네? 안돼요! 이렇게나 위험한데…”

 

“제가 들어가고 하루가 넘게 나오지 못하면 그때, 제대로 된 팀을 편성해서 구하러 와주세요.”

 

그는 웃으며 입에 담배를 물고서 불을 붙였다. 탐정 사무소의 아이들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이곳에 온 사실은 그와 아미야, 블레이즈와 켈시 밖에 모른다.

 

“자, 느긋하게 은혜 갚기 시작해볼까요.”

 

낡고 노쇠한 건물에는 삐걱거리는 소리, 그리고…

 

“아…아아…!!! 오지마.. 오지마!!!!”

 

그녀의 처절한 울음소리만이 울려 퍼졌다. 당장에라도 그녀에게 달려가고 싶었으나 무턱대고 가기에는 너무나 큰 위험이었다. 한층 한층 올라가며 조심스럽게 벽에 부적을 붙였다.

 

저벅, 저벅, 저벅.

 

“손님 응접인가요. 하아, 하는 수 없군요.”

 

가면을 쓴 배역들은 일사불란하게 달려들었다. 그들은 기괴한 가면을 뒤집어쓴 평범한 일반인이었기의 죽일 수 없었다. 리는 차례대로 배역들을 쓰러트려 나갔다. 

 

그녀의 흐느끼는 소리가 점차 커져만 갔다. 그녀가 울부짖을수록 공간은 기묘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마치 이곳이 하나의 거대한 공연장과도 같았다. 

점차 늘어나는 배역들, 처절한 노랫소리와도 같은 박사의 울음소리, 그리고 이 웃기지도 않는 무대를 펼치는 극단장. 

 

“공연은 마음에 드십니까?” 

 

“웃기지도 않는군. 그녀를 어쩔 셈이지?!”

 

가면을 쓴 이가 검으로 바닥을 두드리자 벽에서 검은 그림자가, 기괴한 가면을 뒤집어쓴 그림자가 기어나왔다.

 

“아직 밤은 길고 길답니다. 마음껏 즐겨주시길…”

 

“거기서! 큭, 젠장…”

 

그림자들은 거대한 낫을 들고서 일제히 리를 향해 휘둘렀다. 

가까스로 엽전 검으로 튕겨냈으나 혼자서 상대하기는 역부족이었다. 

 

리는 천천히 그림자들을 유인했다. 그림자들이 결계의 내부로 들어온 순간 부적들이 반응하며 그들에게 달라붙었다. 그림자들은 고통스러워하며 비명을 내질렀다.

 

“살려줘… 죽고 싶지 않아…!!!”

 

“이거 참, 악취미군요…”

 

그림자들이 내지르는 비명은 그녀의 목소리였다. 

리는 상당히 불쾌한 표정으로 앞으로 더욱 나아갔다.

점점 그녀에게 다가갈수록 그림자가 나오는 빈도는 잦아졌다. 그들을 물리칠 때마다 그녀의 비명은 더욱 커져만 갔다. 이 지긋지긋한 악몽에서 어서 빠져나가고 싶었다. 

 

“드디어… 내일은 근육통으로 고생 좀 하겠네요.”

 

그녀의 흐느낌이 들려오는 방 문앞, 그 문을 열였을 때, 리는 충격에 휩싸이고 말았다. 

박사의 몸이 마치… 누군가에게 계속해서 해를 입은 것만 같은 상태였다. 

그리고 그 상처들은 리의 부적으로 인한 상처와 같았다.

 

“이게 대체… 박사님, 박사님!”

 

그녀는 정신을 잃고 쓰러져있었다. 숨소리가 미약했다. 

 

“공연은 마음에 드셨습니까?”

 

“너… 대체 그녀에게 무슨 짓을 한 겁니까?!”

 

“저는 그저 그녀의 고통을 아픔을 보여 드렸을 뿐입니다.”

 

가면을 쓴 사내는 기분 나쁘게 웃으며 또다시 검으로 바닥을 두드렸다. 

그러자 박사는 쉰 목으로 또 한 번 비명을 지르며 흐느꼈다.

검은 그림자는 다시 한 번 그녀의 곁에서 기어나와 그녀의 머리채를 붙잡고 사내 쪽으로 끌고 갔다.

리는 그들에게 달려가 검을 휘둘렀으나 그의 앞을 그림자가 막아섰다. 

 

“…젠장.”

 

“그럼 무대의 끝으로 나아가 볼까요.”

 

“야옹.”

 

검은 고양이 한 마리가 리의 곁으로 다가갔다. 

리는 곁눈질로 고양이가 바라본 방향을 봤다.

 

‘거울 속에 사람이…’

 

그는 머리로 이해가 끝나기 전에 몸이 먼저 움직였다. 

가면을 쓴 사내를 향해 달려들어 그를 거울 쪽으로 밀쳤다. 그림자들의 낫이 팔과 다리를 관통했으나 이를 악물고서 버텼다. 

 

“이게 무슨… 네놈…!”

 

“연극은 끝이다. 그림자는 주역이 될 수 없다. 어둠 속으로 돌아가라.”

 

“순순히 돌아갈 것 같으냐? 기껏 얻은 자유란 말이다!”

 

팬텀과 가면을 쓴 사내는 서로의 검을 맞부딪혔다. 가면을 쓴 사내 주위로 검은 그림자들이 몰려들었다.

 

“팬텀 씨! 그 그림자는 박사와 연결되어있습니다! 공격해서는 안 돼요!”

 

“알겠다. 그녀를 부탁하지. 귀를 틀어막아라.”

 

팬텀은 목의 장치를 풀었다.

 

“자, 나를 위해 노래하라! 노래하라! 노래하라!”

 

그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어둠 속에 뒤틀린 공간이 점차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림자들은 그 존재가 흐려지며 점차 사라졌다. 가면을 쓴 사내는 고통에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죄인은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거짓에 비춘 죄인이여.”

 

“나는 너다… 네 그림자는 거짓된 존재라는 것이냐?!”

 

“네가 어찌하여 내가 될 수 있는 것이지. 우리는 저마다 다른 가면을 쓰고, 저마다 다른 대사를 읊는 꼭두각시가 아닌가. 네 존재는 내가 될 수 없어.”

 

빛은 점차 밝아지며 어둠이 흩어져 가고 있었다.

가면을 쓴 사내의 몸이 점점 옅어져 갔다.

 

“큭… 하하하하! 좋다. 이번에는 네 승리다. 나는 다시 어둠으로 돌아가지만, 언젠가 붉은 태양은 꺼지고 어두운 밤이 차오르겠지.”

 

“…사라져라.”

 

가면을 쓴 사내는 점차 옅어지며 기괴한 가면만을 바닥에 남긴 채 사라졌다. 

 

“밤이 가고 또 새로운 아침이 찾아왔구나…” 

 

“리씨! 괜찮으세요?!”

 

저 멀리서 아미야와 블레이즈가 이끄는 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리는 그제야 한숨을 내쉬며 고통을 호소했다.

 

“아야야야, 아미야씨… 빨리 의사를, 의사를…!”

 

“뭐야, 별것도 아니면서 좀 참아.”

 

“아?! 너 말고 다른 사람은 없는 거냐?! 으아아아악!”


아는 그의 상처 부위에 이상한 약물을 들이 부었다.

 

“팬텀, 도망칠 생각 하지 마. 네가 한 짓은 용서하지 못하니까.”

 

“그래.. 죄인은 마땅히 벌을 받아야겠지.”

 

팬텀은 두 손을 들고 가만히 있었다.

반항 따위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블레이즈에게 포박당하였다.

이렇게 사건은 일단락되는 듯했다. 

 

켈시는 서둘러 박사를 의료부로 보냈다. 리는 응급 처치를 받긴 했으나 관통상이 꽤 심각하여 당분간 휠체어 신세를 지게 되었다. 그리고 팬텀은 그저 말없이 조용히 그들에게 연행되었다. 

박사는 벌써 몇 주째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고요한 방이다. 몇 번이고 보았던 방. 나는 욱신거리는 몸을 뒤로 한 채 몸을 일으켰다.

온몸은 수많은 상처가 나 있었다. 조금 고통스러웠지만 참을 만했다.

몇 분이 지나고 문이 열리며 그녀가 들어왔다.

 

“정신이 좀 드나..?”

 

“켈시, 어떻게 된 거야…?”

 

극단에서 팬텀을 보았던 것까지는 기억이 났으나 그 후가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 

 

“…팬텀은?! 그는 어디 갔어!”

 

“…”

 

그녀는 그저 말없이 나를 바라보았다.

 

“설마… 아니지? 그렇지…?”

 

“아직도 그의 아츠의 영향이 남아 있는 건가… 박사, 조금 더 쉬도록 해.”

 

“…비켜. 그에게 가봐야겠어.”

 

나는 비틀거리며 병실 문으로 향했다. 

그때 문이 열리며 한 남자와 부딪히고 말았다.

 

“어이쿠, 박사님. 벌써 무리하시면 안 된다고요?”

 

“리씨, 비켜주세요…”

 

“야옹.”

 

“…크리스틴?”

 

리의 어깨에 그녀가 앉아 있었다. 곧이어 내게 뛰어 안겨들었다. 

 

“팬텀은… 그도 같이 온 건가요?”

 

“그게…”

 

그들과 함께 나는 팬텀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는 작은 방에 의자에 앉아 있었다. 팔다리와 두 눈이 가려진 채로.

 

“문… 열어주세요.”

 

“하지만…!”

 

“괜찮아요. 열어주세요.”

 

켈시는 고개를 끄덕였고 이내 굳게 닫힌 문이 열렸다.

 

“야옹.”

 

“…미스 크리스틴과 함께 온 건가? 별일이 다 있군.”

 

“팬텀…”

 

“…박사인가, 벌써 깨어나다니 회복이 빠르군.”

 

“어떻게 된 거야…”

 

“촌극은 막을 내리고, 거짓된 그림자는 흩어졌으며, 죄인은 마땅히 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니 울지마라…”

 

“미안해… 미안해… 모든 것이 다 나 때문에… 나만 아니었어도…”

 

“…아직도 검은 그림자가 다가오는가?” 

 

그의 말대로 무엇인가 짓누르는 느낌이 없어졌다. 

고요한 방에 있을 때에도 눈을 감았을 때에도 어둠 속에 있어도 아무렇지 않았다. 

 

“…아니.”

 

“그렇다면 다행이다. 자 이제 다음 길을 찾아 나아갈 시간이다, 박사.”

 

“하지만…”

 

“빛의 그늘진 어둠에서는 늘 새로운 그림자가 태어난다. 너는 또 다시 그림자에 잡아먹혀 울고 있을 테냐?”

 

“아니… 꼭, 꼭 돌아와.”

 

“당신이 가리키는 방향이 그렇다면….”

 

그는 조용히 미소를 지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많이 밝아졌다. 

주기적으로 의료부에 들러 상담을 받으며 건강한 삶을 보냈다. 

집무실 서랍에 굴러다니는 약품은 모두 폐기 처분했다. 담배도 끊었다. 

모든 것이 악몽에 빠진 나를 구해준 그 덕분이다. 

그 일 이후로 나는 팬텀을 볼 수 없었다. 그의 행방을 말해주는 이들도 없었다. 켈시도 말해주지 않았다. 

나는 그저 믿고 기다릴 뿐이었다. 

 

“오늘도 달이 밝네요. 술이나 한잔 어떠세요?”

 

“리씨, 저 아직 환자인데요…”

 

“한 잔 정도는 약주 아니겠습니까~” 

 

“하아… 그럴까요?”

 

“무슨 그럴까예요! 안돼요!”

 

“아미야씨 한 잔 정도는…”

 

“안 돼요.”

 

“네…”

 

아미야에게 된통 혼이 난 리는 쓸쓸하게 돌아갔다. 

로도스에 술고래들은 많으니 상관없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푸른색으로 물든 달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야옹~”

 

“…어서 와.”

 

“오늘은 어떤 곡조를 고를 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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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는 ptsd로 피폐해진 사일라흐를 쓸려했는데 

뭔가 박사가 ptsd온게 더 잘 써질 것 같아서 바꿔서 써버렸네요 

팬텀의 이야기도 따로 쓸려 했는데 묘하게 분위기가 겹쳐서 같이 섞어버렸어요 


팬텀의 그림자가 악의적인 자아를 가진다면 어떨까 싶어서 써봤네요 


재밌게 봐주셔서 감사하구 또 다른 재밌는 글로 돌아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