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피소에 남아 있던 방어조치가 울피안의 발걸음을 막지 못한 것은 분명했다. 여러 개의 덫을 제거하고 물건으로 위장한 씨테러들을 제거한 뒤 키케로의 실험실에 도착했다.

며칠 전 울피안은 심해 주교 키케로의 흔적을 추적했다. 이 주교는 힘과 기교에서는 울피안을 이기지 못했지만 생명을 연장하는 재주가 있는 것 같았고 절단된 다리를 남기고 도망쳤다.

평소 울피안의 습관상 그는 이 심해 주교가 죽을 때까지 계속 추적했어야 했지만 한 가지 생각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 일반적으로 심해 주교들은 이베리아 마을 주변에 거주하거나 선교 목적으로 마을 사람들과 함께 산다. 그러나 이곳은 외지고 황폐하며 주교가 습격을 받았을 때 옆에 신자도 없고 시테러 한 마리조차 보이지 않는 것은 예사롭지 않은 일이였다.

의심을 해결하기 위해 울피안은 당분간 키케로를 추적을 중지하고 주변을 찾아 단서가 될만한 것이 있을지 알아보기로 했다.며칠 뒤 그는 키케로의 피난처 겸 실험실을 발견했다.

동굴 실험실은 모든 것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모든 자료와 서신들이 건조된 서가에 가지런히 보관되어 있었다.

울피안은 키케로의 연구에 관심이 없었는데 , 그는 이러한 인간을 모독하고 다양한 방식으로 윤리를 깨뜨리는 실험 프로젝트를 이미 너무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키케로가 다른 심해 주교들과 주고받은 서신에 더 관심이 있었다.

평소대로라면 심해 주교들이 시테러의 모습으로 나타났다면 편지와 자료는 이미 파괴됐어야만 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키케로는 어비셜 헌터에게 기습당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고 아마도 그는 자신의 자료가 울피안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일부러 반대 방향으로 도망쳤을 것이다.

그는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연구목록을 읽어보았지만 지지부진한 연구 내용이 에기르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을 확인하고 개인 메모와 서신에 눈을 돌렸고 편지 봉투에는 그를 놀라게 한 이름들이 나타났다.

이 사람들은 에기르의 기술원·과학원·예술원에 분포해 있었고 그중 일부는 수년 전부터 심해 주교로 지목돼 왔다. 그러나 그들중 대부분은 지금도 에기르에서 상당한 지위와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으며, 이름만 보아도 심해 교단이 에기르 사회 전체에 끼친 피해를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이샤-믈라 사냥이후의 밀접한 교류, 살아남은 에기르 헌터들을 향한 심해 주교들의 감시, 에기르의 동향들이 이 편지를 통해 울피안의 눈앞에 나타났다.

이샤-믈라의 생물학적 성질은 그녀를 사냥한 헌터의 몸에 남아있었고 이 헌터의 행방과 다른 해신들의 움직임이 주교들의 주관심사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최근의 서신에선 주교들은 이샤-믈라가 부활할 수 있도록 이샤-믈라를 사냥한 헌터를 바다로 돌려보내 대침묵을 일으킨 원인을 다시 만날 수 있도록 합의를 이룬 것 같았다.

키케로는 대침묵이 인류와 시테러의 융합을 가속하고 에기르의 어비셜 헌터즈 기술을 상용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에기르는 아마 어비셜 헌터즈의 기술을 상용화할 것이고 인류가 해사에 대항하기 위해서 그 선물을 받는다면 그가 꿈꿔온 이상적인 인간을 탄생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럼으로 그의 사상이 다른 주교들과 맞지 않더라도 그가 그 계획에 동참한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였다.

편지에 적힌 내용은 마치 어비셜 헌터즈와 에기르를 사냥하려는 그물 같았지만 결국 울피안은 음모의 전모를 파악하는데 실패했다. 그는 시간이 없었다.

그가 아직 열람하지 않은 편지에 손을 뻗기 전에 바닷물이 갑자기 실험실로 쏟아졌고 충격으로 키케로의 모든 연구가 파괴됨과 동시에 시테러들이 들이닥쳤다.

거의 모든 피난처를 가득 채운 씨테러들은 울피안의 몸에서 동포를 구출하기 위해 헤엄치고, 물어뜯고 있었다.

울피안은 닻을 들어 올렸다.

살비엔토의 사건에 대해 들은 적이 있는데, 지금도 심해교회는 그를 잡기 위한 사냥꾼을 개발하고 있었나?

그가 내막을 아는 한, 그가 살아 있는 한.

이 일은 절대 발생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