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라 스포 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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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아직 어렸던 나에게 스승님이 이런 질문을 던진 적이 있었다.

ㅡ너의 꿈은 무엇이냐.

어렸던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ㅡ스승님의 뒤를 이어, 훌륭한 재판관이 되는 것이 꿈입니다.

나의 어린 대답에, 스승님은 나에게 어른의 대답을 하셨다.

ㅡ그것은 꿈이 아니다. 너의 꿈을, 가지도록 하여라.

...아직 어렸던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또한 지금까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어째서 이때, 스승님의 말씀이 떠오르는 걸까?』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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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힘껏 찌른 검을 빼자마자, 역겨운 '그것'은 이내 쓰러져서 가볍게 몸을 진동하고는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것은 움직이지 않지만, 나의 지친 몸은, 그래도 여전히 움직인다. 확실히 죽이기 위해 다시 한 번 기계적으로 검을 내려찍는다.

...여태까지 단 한 번도 수련을 게을리 한 적은 없지만, 오늘은 내 손의 검이 너무나도 무겁다.

힘겹게 검을 내려찍자, 버르적거리며 최후의 숨결을 내뱉는 시본을 내려다보며 검을 빼려고 다시 한 번 팔에 힘을 준다.


...너무나도 무겁다. 내가 이것들과 싸운지 얼마나 되었을까?

빠지지 않는 검을 억지로 빼지 않고 나도 자연스럽게 검에 기댄다. 

너도 휴식이 필요하겠지? 그치?

내 입에서는 어느새, 쿡쿡 하고 웃음이 흘러나오고 있다.


바보같은 아이린, 최후의 재판관. 외로운 나머지 이젠 검에게 말을 걸고 있구나. 박사가 너를 보면 뭐라고 할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그'라니.

그와 못 본지 얼마나 되었을까?

계속 흐리기만 하늘을 올려다본다.

나의 이정표였던 스승님의 등불조차도 없는 이 순간은, 나는 장님이구나. 

그래, 나는 눈뜬 장님이구나. 정말 가엾기도 해라. 그렇다면 눈을 감자.

아까부터 계속 이명이 들린다.

점점 더 어지러워지는 머릿속을 정리하며 잠시 눈을 감는다.

...감을 시간도 안 주려고 하는구나. 빠르게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를 느끼며 눈을 뜬다. 왼손 대신, 오른손으로 검을 힘껏 쥔다.

그리고 힘껏...


"아이린!"


'그'가 서있었다. 단 한 번, 마지막으로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얼굴을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박사가 내 눈앞에 서있었다.


"...박사?"


...시본들이 나에게 환상을 보여주는건가? 그런 나의 의문도 잠시, 이내 나를 감싸는 몇 번이고 느꼈던 따스한 온기, 그리고 따뜻한 물방울이 느껴진다.


"그래, 나야! 괜찮아?"


...울보 같으니. 분명 이 온기는 환상이 아닐 것이다. 확실히 나의 온 몸과 머릿속으로 느껴지고 있다.

불쾌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ㅡ그가 왔어.

닥쳐.

ㅡ아아, 그가 왔어.

닥쳐. 닥쳐.

ㅡ드디어...하나가 되는거야.

닥쳐. 닥쳐. 닥쳐.

ㅡ자, 어서 그를 나에게로...


"닥쳐!"


온 힘을 다해서 박사를 밀어낸다. 박사가 나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것이 느껴진다. 애써 웃어 보이며, 박사가 눈치채지 못하게 왼손을 살며시 소매에 넣어서 가린다.


"아이린..."

"...미안해요, 박사. 이제 괜찮아요."

"아니, 내가 미안하지...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


박사의 미안하다는 말, 몇 번이나 듣는 걸까?

로도스 아일랜드 본함의 갑판 위에서도,

박사의 집무실의 쏟아버린 커피가 넘치던 테이블에서도,

함께 간 사격장의 1번 레인에서도,

단 둘이서 있던 박사의 침실에서도,


그렇다면 나도 늘 그랬던 것처럼, 똑같이 대답하자.


"미안하다고 하면 될 일인가요?"


일부러 짖궃게 대답한다. 이것은 우리 둘 만의 약속.

그는 우리가 짖궃게 대답할 때마다, 곤란한 듯 눈썹을 오므린다.

...내가 짖궃게 대답할 때마다.


"그럼 어떻게 변상해야할까?"

"...알잖아요?"


오른손으로 내 얼굴을 가린 가면을 내려서, 이마만을 드러낸다.

박사가 늘 장난치던 이마, 조금 넓어 보여서 난 사실 그다지 내 이마를 좋아하진 않는다.

그가 좋아하니까, 그냥 그런 거겠지. 그치? '자그마한' 새야.

...박사는 내 이마를 좋아하니까.


망설이던 순간도 잠시, 내 이마에 갓 구운 빵처럼 부드럽고, 용암보다 따뜻한 것이 닿았다.

...아아, 그래. 이것으로 충분하구나.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왼 팔이 다시 한 번 꿈틀거린다.

나지만, 내가 아닌 무언가가 나에게 끊임없이 속삭인다.

당장 그를 품으라고. 자신이 머지않아 도착하는 그 순간까지 기다리라고.


ㅡ이제는 괜찮다. 이것으로 나는 나로서...

ㅡ아니, 정말 이대로 충분한가? 이대로 괜찮은 건가? 아직 할 일이 있지 않을까?

ㅡ무언가가, 나에게 속삭이고 있다. 빨리 깨달으라고.


더는, 억누르기가 힘들다. 호흡이 점점 가빠진다. 그가 다시 한 번 나에게 가까이 오는 것이 느껴진다.

나는 힘겹게 점점 내가 아니게 된 왼손을 뻗어서 저지한다.


"나에게 다가오지 마요, 박사. 그리고..."


얼굴을 억지로 움직여서, 박사가 늘 좋아하던 최고의 미소를 지으며, 나의 입은 열렸다.


"가세요. 당신은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잖아요?"


나의 말에 박사가 움찔하는 것이 느껴진다. 박사의 눈에 고여서, 흘러내리는 눈물이 보인다.

...정 많은 남자 같으니라고. 닦아주고 싶어도, 우리의 거리는 멀구나.

왼팔을 억누르는데 힘이 점점 더 많이 든다.

조금씩 가빠오는 숨을 어떻게든 고르며 박사가 무사히 떠나는 것을 내 눈으로 보기 위해 기다린다.

이내, 박사가 가방을 뒤지더니 무언가를 나에게 내민다.


"이건...스승님의 등불...."


내가 잃어버렸던 이정표가, 다시 나의 손에 들어왔다.


문득 스승님의 질문이 다시 떠오른다.

ㅡ너의 꿈은 무엇이냐.

어렸던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ㅡ스승님의 뒤를 이어, 훌륭한 재판관이 되는 것이 꿈입니다.

나의 어린 대답에, 스승님은 나에게 어른의 대답을 하셨다.

ㅡ그것은 꿈이 아니다. 너의 꿈을, 가지도록 하여라.

...아직 어렸던 나는 이해할 수 없었다.

...또한 지금까지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앞으로도.


ㅡ전혀 충분하지 않다.

ㅡ이제 깨달았다, 나의 꿈을.

ㅡ나는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음을.


"당신을 다시 만날 수 있어서...기뻐요."


그렇다면 감사를 표하자. 생애 최고의 감사를.


"여기서 멀어지세요...여긴...여긴 위험해요."


나의 꿈을, 마지막 순간에 찾아낸 것을.


"어서 가세요...마지막으로 제가..."


받아 든 등불을 오른손으로 높이 치켜든다.

조금씩 경련하는 왼손을 소매 속으로 다시 한 번 감춘다.


"당신의 앞길을 밝혀드릴게요..."


마지막까지, 당당하게 서서 길을 밝힐 것이다.

여기서 나의 꿈을 당당히 선언하자.

인간의 감정을 모르는 어리석은 흉물들에게.

'그것'에게.


『나는 미래를 비출 것이다. 내가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너희는 내 손에서 박사의 앞길을 밝히는 등불과, 나의 마음이 담긴 검을 빼앗을 수 없을 것이다.』


박사가 나에게 무어라 말하는 것이 들린다.

아니, 들리지 않는다. 

그것의 목소리가 나의 귀를 막는다.

어둠이 나의 눈을 가린다.

악취가 나의 코를 가린다.

그래도 뜻은 알고 있다. 대답할 힘조차 아끼기 위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가 점점 멀어져 간다. 보내고 싶지 않다.

어서, 미래를 향해 나아가라. 내가 당신의 길을 비출테니까.

이 파도 속에서도, 이 칠흑 같은 밤에서도, 당신의 길은 마지막까지 환하게, 내가 비춰줄테니까. 

아이린은 한 명의 재판관으로서, 이베리아인으로서, 오퍼레이터로서, OO으로서, 마지막에 당신을 만나게 되어 진심으로 기쁘다.

그것이 전해지길 바라며 눈을 감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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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 번 눈을 뜬다.

나의 주변에는 시본들이 가득하다.

어째선지 그것들은 나에게 그를 오래 잡아두지 않았다며 굉장히 화를 내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렇다면 비웃어주자.


"너희 따위는, 나의 의지를 꺾지 못해."


이마에서 여전히 느껴지는 소중한 온기를 되새기며, 오른손으로 검을 있는 힘껏 뽑는다.

더는 떨리지 않는 왼손으로 핸드 캐논을 꺼낸다.

나의 이정표인 등불을 옆구리에 맨다.

어째서 침식되어도 그렇게 멀쩡한거지? 그런 의문이 눈 앞의 적들에게서 느껴진다.

어쩌라고. 바보 같지만,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고. 흉물들아.

자, 나는 준비되었다. 와라.


"나의 스승님께 물려받은 등불이 죄악을 정화한다!"

나의 등불, 이정표가 비추는 미래가 너희가 쌓아온 죄악을 정화한다.


검으로 제일 먼저 달려든 녀석을 찌르고 뒤로 물러난다.


"나의 영원히 꺾이지 않는 검이 파도를 가른다!"

나의 검이 너희라는 밀려오는 파도를 가른다.


핸드 캐논으로 뒤이어 달려드는 녀석에게 구멍을 내준다. 


"나의 가려지지 않는 눈이 진실을 가려낸다!"

나의 눈이 너희의 역겨운 진실을 가려낸다.

그리고,


"나의 사람으로서의 마음이 판결을 내린다!"

재판관으로서도, 이베리아인으로서도 아닌, 나, 아이린의 마음이 너희에게 판결을 내린다.

판결은, 당연히 이거다.


"너희는 사형이다!"




때로는 지친 몸을 가능한 휴식시키며,

때로는 손에서 핸드 캐논을 놓쳐서 검과 다리로,

때로는 손에서 검을 놓쳐서 맨 손으로라도,

그렇게 작은 리베리 소녀는 파도와 끝없이 싸웠다.

기묘하게도 그것은 언젠가 동화 속에서 본 영웅과 비슷했다.

끝없이 파도로 돌진하던 어리석은 영웅.

작은 몸을 이끌고 파도와 맞서는 리베리 소녀.

그래도 한계는 찾아오는 법.

피로가 피폐로 변하고, 피폐가 고통을 만들어낸다.

너무나도 가냘픈 몸에 쏟아지는 한계를 넘는 고통에 소녀가 마침내 뒤로 쓰러진다.

끝까지 등불을 왼손에, 검을 오른손에 쥔 채 

그리고 그 순간ㅡㅡ.

어둡던 세계에 영원히 돌아올 것 같지 않던 빛이 쏟아진다.

별빛이 없던 밤, 마침내 구름이 걷히고 바닥에 누운 소녀가 올려다보는 하늘은 투명한 하늘색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순식간에 주변이 고요해지고, 밝게 빛나는 태양이 다시 한 번 떠오른다.

...설마...아아 그런건가.

이미 몇 번이고 피를 흘린 입술은 말라붙어서 무언가를 중얼거리려고 해도 더는 움직이지 않는다.

아니, 한계를 넘어선 몸 자체가 움직이지 않는다.

그럼에도, 소녀는 안심했다.

익숙한 발자국 소리가 허둥지둥 달려오는 것이 들려왔으니까.

마침내, 소녀는 웃으면서 눈을 감았다.


고생하셨어요. 어서 오세요. 당신.

약속을 지킬 시간이 왔답니다.

이번에야말로, 무도회에 데려가 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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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힘은 시본의 침식도 이길 수 있음 아무튼 그럼

매우 급하게 쓰느라 빈약할 수도 있지만 어쨌든 해피 엔딩이 필수 아닐까?

피드백 환영

제발 해 '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