얀데레 단편집. 

등장 오퍼레이터: 켈시, 텍사스, 라플란드, 엑시아, 니엔, 시




『켈시』



"들어간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평소처럼 켈시가 들어왔다. 

그것에 반응해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무리해서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 지금 넌 몸 상태가 망가져있으니까"



발소리가 천천히 이쪽을 향해 다가온다. 눈알을 움직여 바라본 그녀의 얼굴은 변함없이 무표정하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전혀 알 수가 없다. 



"...아미야가 널 걱정하더군. 네 몸이 그렇게까지 망가진 건 스케쥴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자기 책임이라면서 말야"


"......아......미야......"



아미야의 이름을 들은 순간, 나는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오랜만에 들은 내 목소리는 갈라지고 나약해져 있었다. 

그녀는 그런 나를 바라본 후 침대 옆에 놓인 의자에 앉아 살며시 내 손을 잡아왔다. 



"비단 아미야뿐만 아니라, 다른 오퍼레이터들도 널 걱정하고 있다. 어서 네가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더군. 이건 네가 그동안 오퍼레이터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다는 증거이기도 하겠지." 



켈시는 그렇게 말하며 담담하게 내 몸을 검사하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놀림은 마치 부서지기 쉬운 것을 다루듯 섬세하고 부드러웠다. 



"......안심해라. 네가 맡고 있었던 중요한 일들은 내가 대신 처리하지. 넌 여기서 충분히 쉬고 있도록 해. ......이상은 없는 것 같군." 



그녀는 안도한 듯한 한숨을 내쉰 후 내게서 손을 떼었다. 

그리고 그녀는 가져온 의료용 가방 속에서 주사기와 약물을 꺼냈다. 



"조금 아플거다"


"......!"



바늘 끝이 피부에 꽂히는 감촉과 함께 날카로운 통증이 느껴져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찡그린다. 

하지만 그것도 한순간, 이내 몸속으로 무언가가 흘러드는 것이 느껴졌다. 


멍했던 머리가 갑자기 맑아졌다. 

게다가 몸이 뻑뻑했던 것도 풀리는 것 같다. 

주사를 마친 그녀는 도구 정리를 한 후 다시 내 옆에 앉아 말을 건네온다. 



"기분은 어떻지? 어지럽거나 속이 울렁거리진 않나?" 


"............" 


"......목이 마른가. 잠깐 기다려라." 



내 모습을 보고 알아차린건지 그녀는 침대 옆의 사이드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물병을 집고 컵에 물을 부었다. 



"............"



그리고 그녀는 그것을 자신의 입에 머금고 그대로 내게 입을 맞추었다. 



"응......!" 



조금 따뜻한 물이 바싹 말라있던 내 입속으로 흘러들어간다. 몸이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지금, 그녀에게 당하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다. 



"......이걸로 조금 괜찮아졌겠지" 


"......후, 크흑... 콜록, 콜록......" 



입에 물기가 퍼지고 나는 작은 기침을 한다. 이제야 뭔가 제대로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녀를 노려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켈시......"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군" 


"시치미 떼지 마...... 언제까지 나를 여기에 가둬둘 생각이야......"



며칠 동안 난 그녀에 의해 이곳에 갇혀 있었다. 


그녀가 주는 약을 먹지 않으면 몸이 점점 마비되고, 사고력까지 저하되고 만다. 

그리고 그녀는 언제부턴가 내게 그 약을 최소한으로밖에 투여하지 않았다. 그 결과, 나는 이렇게 움직일 수 없게 되어버렸다. 

다른 오퍼레이터들은 과로라고 생각했겠지만,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은 켈시였다. 



"왜...... 이런 짓을 하는 거야......!" 


"......네가 내게서 떠나려 했기 때문이다." 



여느 때와 같은 무감정한 목소리로 말한 뒤, 그녀는 가만히 이쪽을 바라본다. 



"넌 얼마 전 내게 이렇게 말했지. '헤어지고, 원래 관계로 돌아가고 싶다' 라고." 


"......그래, 그랬지" 


"그렇다면, 두 번 다시 그런 생각을 할 수 없도록 만들 필요가 있다. 넌 내게서 멀어질 수 없어... 절대로." 



그녀는 조용히 그렇게 말한 뒤, 살며시 내 볼에 손을 갖다대며 속삭여왔다. 

그 눈동자에는 강렬한 집착과 독점욕이 비치는 것 같았다. 



"이런 건 이상하잖아......! 켈시, 부탁이야. 어서 날 풀어줘......!"


"안돼. 아직 넌 이해하지 못했다. 우리에겐 서로를 알아갈 시간이 필요해. 그러니 당분간은 얌전히 있어줘야겠어" 



손에 조금 힘이 들어가며, 켈시는 그렇게 말했다. 


그녀가 대체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이해할 수가 없다. 그녀에게 헤어지자고 말한 날부터 켈시라는 인물을 전혀 알 수 없게 되어버렸다. 

내가 알고 있던 그녀는 좀 더 총명하고 냉정침착한 여성이었는데, 지금은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느껴진다. 



"넌 내게 바라는 게 뭐지? 말해다오, 박사. 그게 어떤 것이라도 개선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도록 하지." 



그렇게 말하는 그녀에게 거짓말을 하는 기색은 일절 느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더욱 무서웠다. 그녀의 생각을 전혀 읽을 수도 없고, 이해할 수도 없었다. 



"......부탁한다, 박사. 가르쳐다오"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그날, 켈시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지도 모른다. 

아니, 애초에 그녀와 사귀지 말았어야 했다. 


후회만이 머릿속을 휘젓는 가운데, 단 하나만은 명확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나는 이제 그녀의 '관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박사"



그녀답지 않은 달콤한 목소리. 나를 놓아줄 생각은 전혀 없는 것 같다.


이제 나는 그녀의 광기를 받아들이고 망가져갈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텍사스』 



"다시 한번 말해주겠나"



내가 그 말을 한 순간, 집무실의 분위기가 돌변했다. 평소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그녀가 명확하게 분노 어린 기색을 드러내고 있다. 



"박사, 내 눈을 똑바로 보고, 다시 한 번 말해다오." 



그 위압감에 나도 모르게 눈을 돌리고 말았다. 그러는 와중에도, 나는 명확히 할 말을 한다. 



"텍사스, 너와 헤어지고 싶어"



다시 침묵이 흘렀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그저 나를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아까같은 위압감은 느껴지지 않는다. 

몇 초간의 정적 끝에, 그녀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누군가가 네게 그런 말을 하라고 시켰구나?" 



그녀는 천천히 내게 다가왔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을 치고 있었다. 



"내가 결심한 거야. 다른 사람은 상관없어, 내가 정한 거야." 



내 대답을 들은 순간, 텍사스는 팔을 뻗어 나를 상냥하게, 그리고 강하게 끌어안고 있었다. 



"...누구에게 뭘 들은 거지? 괜찮아, 그런 녀석 따위 내가 곧 처리해줄테니까. 그러니 안심해." 



귓가에 속삭여오는 그녀의 목소리는 무척 부드럽고 따뜻했다. 마치 새끼를 달래는 어미와도 같은. 



"아니, 그런 게 아냐. 텍사스, 이야기를 좀 들어줘." 



나는 그녀의 품 속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그녀는 나를 꼭 끌어안으며 그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그에 나는 더욱 필사적으로 발버둥쳤다. 



"협박당하고 있나? 아니면 세뇌같은 걸 당했나? 걱정하지 않아도 돼. 반드시 구해줄테니까." 



그녀의 목소리는 너무나도 진지한 것이었지만, 그 내용과 전혀 맞물리지 않는다. 

나는 그녀를 어떻게든 조금 밀어낸 뒤, 크게 심호흡을 하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다. 



"너와는 더이상 관계를 이어나갈 자신이 없어. 그러니까 부탁할게" 


"......어떤 의미지?" 



겨우 이야기를 제대로 하나 싶었던 순간, 그녀의 표정은 다시 험악해져 있었다. 그 눈빛에는 분명한 적의가 담겨져 있었다. 



"설마, 다른 여자가 생긴 건가?" 


"아니, 그럴 리가 없잖아" 



망상에 가까운 착각에 무심코 반론해버린다. 텍사스는 그런 내 반응을 살핀 뒤, 안심한 모습으로 다시 나를 끌어안아 왔다. 



"박사, 넌 나와 함께 있어야 해. 나와 함께한다면 넌 반드시 행복해질 수 있어. 그러니 다시 생각해줘." 



텍사스는 나를 끌어안은 채 그렇게 말하며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젠 한계야..." 



그녀에게 내 목덜미에 있는 물린 자국을 보여준다. 

이걸 남긴 건 바로 텍사스였다. 내가 다른 여성 오퍼레이터와 이야기만 해도 질투를 하며, 단 둘만 남을 때마다 몇번이고 깨물어 왔다. 처음엔 애교 수준 정도였지만 점차 그 강도는 커져갔고, 마침내 흔적이 남을 정도로 강하게 깨물어왔다. 

나 또한 그것을 애교같은 것으로 받아주고 있었다. 하지만 최근, 깨달아버렸다. 


이건 뒤틀려있는 관계라고. 

서로 의존하면서도 서로를 망가뜨리는 관계란 어딘가 잘못된 것이다. 그렇기에 끝내려고 했다. 



"이제 끝내자. 텍사스." 


"........."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입을 다물고 있었다. 아무 감정도 읽을 수 없다. 

이윽고 그녀는 작게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알겠다." 



그 대답을 듣고 나는 안심했다. 무사히 해결돼서 다행이다. 


그렇게 생각했지만, 현실은 비정하고, 사태는 상상조차 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텍사스는 갑자기 내 뺨으로 손을 대더니, 이내 입술을 겹쳐왔다. 



"응!?"



갑작스런 사태에 머리가 혼란스럽다. 밀쳐내려고 했지만 그녀의 힘에는 상대조차 되지 않는다. 변변찮은 저항조차 하지 못하고 입 속에 그녀의 혀가 밀어닥쳤다. 

수십 초 후, 드디어 풀려났을 때는 이미 온 몸에 힘이 풀려있었다. 



"박사, 너도 이미 알고 있을 거다. 이게 우리들의 사랑이라고." 


"...으... 무슨 말을..."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해하고 싶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내가 널 깨물 때마다, 넌 항상 만족스런 표정을 하고 있었다" 


"............"



그럴 리가 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어째서인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째서인지 부정할 수 없었다. 

텍사스는 계속 말한다. 



"넌 입으로는 그렇게 말해도, 나와 관계를 계속하는 걸 내심 기뻐하고 있었지?" 


"그, 그럴 리...... 가......" 


"숨기지 않아도 돼. 네가 아무리 거부하려고 해도, 결국 마지막에는 날 받아줄 테니까."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키스를 해온다. 이번 것은 아까보다도 더 격렬하고 오랫동안 계속되었다. 마침내 풀려나자 그녀는 황홀한 표정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 알고 있어, 박사." 


"......" 


"일부러 내 앞에서 다른 여자와 친하게 행동했던 것도, 내가 질투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였겠지?" 


"아, 아냐......" 



나도 모르게 반론하려고 했지만, 그 전에 틀어막히고 말핬다. 



"이렇게 헤어지자고 말한 것도, 사실은 더 강하게 사랑해달라는 사인이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다시 나를 끌어안아왔다. 그리고 내 귓가에 사랑스럽게 속삭였다. 



"안심해줘. 굳이 이런 짓을 하지 않아도 난 너를 계속 사랑할거니까. 그러니까 더 이상 아무 걱정할 필요 없다." 



그리고, 그녀는 나를 더욱 힘껏 끌어안는다. 나는 아무 저항도 할 수 없었다. 전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흔적을 몸에 새기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다. 이제서야 깨달아버린 것이다. 


나는 이미 그녀 없이는 살 수 없는 몸이 되어있었다. 



"텍...... 사스......" 


"괜찮아, 박사." 



그렇게 말하고, 그녀는 나를 쓰다듬어왔다. 그 손길은 너무나도 부드럽고 따뜻한 것이었다. 



"앞으로도 우리는 계속 함께할 거니까." 






『라플란드』



이곳은 내 개인실. 

난 보통 대부분의 시간을 집무실에서 보내기에, 이 방을 사용하는 때는 많지 않다. 


허나, 오늘은 예외다. 한 명의 루포...... 라플란드에게 침대 위로 내던져져 그녀에게 덮쳐지고 있다. 



"크...... 윽......"


"......이봐, 박사. 다시 한번, 내 귓가에 대고 똑바로 말해봐." 


"......너, 와......"



어떻게든 입을 열어 필사적으로 말을 전달하려 한다. 입가로 침까지 흘러내리는 꼴사나운 모습이지만, 그런 것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다. 



"헤어지...... 으윽......!?"



말이 끝나기도 전에 찌걱, 그녀가 내 팔에 찔러넣은 검을 쑤셨다. 차갑고 날카로운 고통에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렀다. 



"아아아아아아아악!!" 


"잘 안 들리는데? 박사, 좀 더 제대로 말해볼래?" 



외부에서 가해지는 통증은 다시 멈췄지만, 그 대신 내부에서의 통증이 새어나오고 있다. 따뜻하고 붉은 액체가 내 팔을 타고 침대 시트를 붉게 물들여간다. 


그녀는 그 피를 손으로 쓰다듬고는, 그것을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작전 시에 보이는, 광기 어린 미소였다. 



"허억...... 허억......" 


"괜찮아. 자, 심호흡 해봐?" 


"흐윽...... 하악......!" 



시키는 대로 숨을 쉬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마치 땅바닥에 올라와버린 물고기처럼, 뻐끔뻐끔 입을 여닫을 뿐이다. 

그런 나를 보며 그녀는 키득 웃고는, 내 귓가에 입술을 갖다댔다. 



"자, 다시 한번 말해볼래?" 


"......윽......" 



그 말을 또다시 하려고 한다면, 그녀는 내게 또다시 폭력을 행사할 것이다. 

무섭다, 는 감정이 있지만, 그 이상으로 그녀에게서 떠나고 싶다. 

이 미쳐버린 사랑에서 벗어나고 싶다. 그걸 위해서라면 그녀에게 전할 수밖에 없다. 


'난, 너와 더이상 함께 할 수 없어.' ......그걸 전하기 위해서, 벌벌 떨면서도 어떻게든 입을 열었다. 



"너와, 관계를 끝내고, 싶어...... 라플란드......" 



그녀는 입을 다물고 있다. 고개를 숙인 채 표정도 보이지 않아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알 수가 없다. 

이윽고, 그녀에게서 돌아온 것은 예상 밖의 대답이었다. 


콰직! 


갑자기 그녀가 내 어깨를 강하게 깨물었고, 또다시 날카로운 통증이 덮쳐왔다. 반사적으로 눈이 크게 떠졌다. 



"아...... 으으윽.........!" 



그 세기는 더욱 강해지며, 아예 뜯겨나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가 되었다. 



"라플...... 란드......! 그만 해......!"



그렇게 말해도 턱의 힘을 풀 기미는 보이지 않고, 오히려 더욱 강해져만 간다. 이대로 정말 뜯어먹히는 걸지도 모른다. 


뿌득, 하며 뼈에까지 새겨지는 듯한 소리가 울린 것 같았다. 



"으아아아아아아아악!!!" 



끔찍한 통증을 이기지 못하고 울부짖고 만다. 눈앞이 깜빡이며 의식이 날아갈 것 같다. 눈물까지 흘러나와 시야가 흐려진다. 

겨우 풀려났음에도, 온몸이 마비된 듯 움직이지 않았다. 



"......후우" 



내 어깨에서 입을 떼어낸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그녀의 입가에는 내 피가 흘러내리고 있다. 


그녀는 그것을 할짝 핥은 뒤, 이번에는 내 볼에 손을 얹었다. 얼음처럼 차가운 손이 닿은 순간, 서늘한 감각에 사로잡혔다. 



"......다시 한 번 말해볼래? 박사." 


"......아...아아............" 



통증 때문에 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쉰소리만이 목구멍에서 나올 뿐이었다. 

그래도 그녀는 이해한다는 듯, 상냥하게 미소지었다. 



"연인이 되기 전에 네가 말했지, 내 집착을 전부 부딪쳐도 된다고 말야. 그래서, 난 네가 말한 그대로 해주고 있는 건데?" 


"......허억......허억......" 


"혹시, 거짓말이었을까나?" 



대답할 기력조차 남아있지 않다. 그저 거칠게 숨을 쉬는 것밖에 할 수 없었다. 

그런 날 어떻게 생각한건지, 그녀는 작게 한숨을 쉬더니 이번에는 내 목덜미로 얼굴을 묻어왔다. 



'또 깨물린다.........!' 



순간 눈을 질끈 감고 다가올 격통에 대비했다. ......허나, 이번에는 그녀의 송곳니가 박히는 일은 없었다. 대신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이 목덜미에 느껴졌다. 



"............으응......"


"......아......" 



마치 애무처럼 부드러운 입놀림. 상처를 위로하듯 혀끝으로 핥고, 그대로 가볍게 빨아올린다.



"많이 아팠어? 미안해, 박사"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내 머리를 살며시 쓰다듬기 시작했다. 조금 전까지의 광기어린 분위기는 일절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도, 박사 잘못이잖아?"


"으아......" 


"저기, 왜 헤어지고 싶다고 말한거야? 누구한테 이상한 얘기를 들은 거야? 저런 미친년이랑 교제하지 말라는 얘기라도 들었어?" 


"아냐......"


"아니라면, 어째서? 박사." 


"......" 



그 물음에 답하기도 전에 목덜미에서 다시 어깨로 얼굴을 옮긴 그녀는 어깨의 상처도 핥기 시작했다. 

통증은 아직도 강하게 남아있지만, 이상하게도 가슴 언저리가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가르쳐줘."


".........그래...... 다른 오퍼레이터가... 너와 헤어지는 게 낫겠다고...... 그렇게 말하더군..." 


"흐ー응...... 누가 그랬어?" 


"...그건......... 말할 수 없어......" 



내가 그 이름을 말했다간 그녀는 반드시 그 오퍼레이터에게 위해를 가할 것이다. 그렇게 확신한 나는 계속 입을 닫았다. 

그런 나를 보며 무엇을 생각했는지, 그녀는 조금 생각하는 듯한 행동을 보인 뒤, 다시 고개를 들었다. 



"......다음은 팔일까나" 



조심스럽게, 내 팔을 들어올리며 찔렀던 상처를 핥는 그녀. 피는 멈춘 모양이지만, 아직도 그 통증은 계속되고 있다. 

그것을 바라보며 그녀는 피 묻은 입술을 열었다. 



"말하지 않으면, 다시 네 몸에 물어볼 수밖에 없어" 


"......으......" 


"말 안할 거야?" 


"......" 


"......그럼 어쩔 수 없네" 



그렇게 말하곤, 그녀는 내 팔의 상처를 깨물었다. 그리고, 마치 고기를 잡아뜯는 듯 그것을 물어뜯었다. 



"으흐윽!? ......으......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그러나, 이번엔 그것을 바로 막아 지혈해주었다. 그녀는 다시 물어뜯었던 곳을 핥으며, 나를 내려다보았다. 



"말해, 박사." 


"흐으......크......으흑......."



절대로 말할 수 없다. 

로도스의 지휘관으로서 오퍼레이터를 지켜야 한다. 그녀가 더이상 문제를 일으키는 것도 막아야 한다. 



"난 박사를 좋아해. 나같은 미친개에게도 상냥하고, 싸울 때도 날 존중해주고 맘껏 날뛰게 해주니까. 그러니까 텍사스만큼 네게도 집착심이 있어. ...헤어지자는 말을 들었을 때는 머리가 이상해지더라고." 


"......윽......" 


"가르쳐줘, 박사. 누가 나와 네 관계를 방해하려 하는 거야? 말해주기만 하면, 바로 입 다물게 해줄게." 



내 피를 핥으며, 황홀한 표정을 띄우고 있는 그녀. 


어리석었다. 그녀를 구해주고 싶다고, 함께해주고 싶다고, 그녀의 집착을 기쁘게 생각해버렸기에 여기까지 오고 말았다. 


그 결과가 이것이다. 


그녀의 기록에 실렸던 내용들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녀의 상처를 치료해보는 건 당신의 자유지만, 기억해둬야 할 것은 그녀의 광기는 영원히 치료될 수 없다는 것이다.』 


어디서부터 착각해버린 걸까. 그녀의 광기는 시간을 들이면 치유할 수 있을 거라고. 

나는 잘못된 선택을 해버렸던 것이다. 

그녀의 광기는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어서 말해줘, 박사."



그 눈동자는 사냥감을 찾는 짐승처럼 섬뜩하게 빛나고 있었다. 






『엑시아』 



"야호ー 리더~" 



깊은 밤, 평소처럼 집무실에 남아 야근을 하고 있던 와중 갑자기 문이 열렸다. 


갑작스런 방문에 놀라 고개를 들자 거기에는 낯익은 인물이 서 있었다.



"엑시아, 또 너야?"


"응, 시간이 생겨서 놀러왔어! 정말, 리더는 또 이런 시간까지 야근하고 있어? 몸 망가질거야?" 



그러면서 그녀는 방안으로 들어온다. 그대로 내 책상 옆에 서더니 자그마한 상자를 이쪽으로 내밀었다.


내용물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솔직히 이젠 지긋지긋했다.



"오늘도 만들어 왔어, 리더가 좋아하는 시나몬 듬뿍 들어간 애플 파이! 머리 쓸 때는 당분을 보충해야 돼!"


"......엑시아"


"아, 오늘은 이것만이 아닌, 품질 좋은 원두도 가져왔다구? 같이 마시려고 가져왔지~ 자, 리더는 커피도 좋아하지?"


"............" 


"조금만 기다려, 곧 준비해 올게."


"엑시아!"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

과연 내 목소리에 놀랐는지 밑준비를 하려던 엑시아의 움직임이 멈춘다.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의 일이었다. 


금방 미소를 지으며 나를 신경쓰듯 말을 건넨다.



"왜 그래?"


".........이제, 그만해."


"어―...... 뭘 말이야?"



그녀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말했다. 정말로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투였다. 


나는 한숨을 쉰 뒤 명확히 그녀에게 말했다. 그녀를 더 이상 잘못된 길로 가게 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나랑 넌 이제 연인이 아니야. 그러니까 이렇게 늦은 밤중에 집무실에 찾아오거나 먹을 걸 가져오는 건 그만두도록 해." 



나와 그녀는 몇 주 전에 헤어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매일 나를 찾아와 직접 만든 애플파이를 전달한다. 하루, 이틀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매일매일 이러는 건 비정상이다.


난 이제 그녀와 그런 관계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분명히 전했을 것이다.



".................."



그 말을 들은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무언가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그리고 잠시 후 천천히 입을 연다.



"정말~ 그런 말을 하다니 진짜 피곤하구나. 자자, 좀 쉬어야 되겠는데?"


"아니, 얘기를 좀 들어―"


"리더" 



내 말은 거기서 막혔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있었던 밝은 분위기는 순식간에 사라지고, 엑시아는 진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말야, 리더를 좋아해."



그건 몇 번이나 들었던 말. 하지만 지금은 왠지 그게 끔찍하고 무섭게 느껴진다. 



"오래 전부터 좋아했었어? 하지만 좀처럼 고백할 용기가 나지 않아서. 그래서 리더가 먼저 고백해줬을 땐 너무 기뻤어. 이제 마음껏 내 마음을 전해도 됐으니까......"



그녀의 손이 살며시 내 뺨에 닿는다. 부드럽게 어루만진 후, 그 손은 그대로 내 목덜미로 서서히 옮겨간다.



"......엑시아?"



손놀림이 묘하게 요염해서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을 것 같다. 간신히 참으면서도 나는 그녀의 이름을 부를 수 밖에 없었다.



"미안, 이렇게 밤늦게 찾아와서. 귀찮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도저히 참을 수 없게 되어 버렸어. 역시 좋아하는 사람이랑 같이 있고 싶잖아?"


"......하지만, 이미 우리는 헤어진 관계잖아. 아무 관계도 없는 남녀가 이런 시간에 단둘이 있는 것은 좋지 않아." 


"그렇다면, 다시 예전처럼 사이좋게 지내면 되지 않을까? 아직은 무리일지 몰라도 언젠가 분명 서로 솔직해질 거야.


"............"


"맞아. 우리 연인 사이였잖아. 서로 사랑했었고, 앞으로도 잘될거라고 생각해. 저기, 리더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녀의 눈을 보고 확신했다.

이건 설득이 아니다. 이미 강박에 가까운 것이다.


엑시아의 눈에서 광기같은 것이 느껴진다. 그녀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난 너와 다시 시작할 생각이 없어. 하지만 친구로서 앞으로도 너와 교류를 가질 수 있을 거야. 그러니――"



그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녀의 검지손가락이 그것을 제지했다. 그리고 그대로 천천히 얼굴을 가까이 다가온다.



"친구로서는 무리야. 당신의 총애를 이 몸으로 받아버렸으니까" 



엑시아의 붉고 촉촉한 눈동자가 내 눈을 들여다본다. 그대로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착각에 빠질 것 같다.



"나는 리더에게 그냥 쓰기 편한 여자여도 괜찮아. 당신의 길을 방해하는 이가 있다면 내가 배제하고, 당신이 원한다면 무슨 일이든 이루어줄게. 설령 다른 애한테 눈길을 준다고 해도 아무 말도 안 할 거야."



그녀는 내 손을 잡고 자신의 가슴으로 갖다대었고, 그런 다음 자신의 손을 포개었다. 그녀의 심장박동이 전해져온다. 평소보다 빠른 리듬을 손에 잡힐 수 있다.



"............"



쿵쿵거리는 소리가 귓속까지 울려 퍼지고 머리가 멍해진다.

그녀의 한숨소리가 얼굴에 걸릴 정도로 가까워진 탓에 제대로 사고할 수도 없다.



"...그러니까 리더……"



그녀는 기도하듯 나를 불렀다.

자애와 애정이 담긴 목소리로.



"...아니......의인이시여. 부디 제가 당신 곁에 있는 걸 허락해 주십시오"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내 손 위로 포갠 손에 힘을 주며 더 세게 밀어붙인다.


천천히 나를 향한 눈에는 조금 전의 빛은 없었고, 깊은 어둠만이 펼쳐져있을 뿐이었다.






『니엔』



"......너, 또 다른 여자랑 얘기하고 있었지?" 


"...일 때문이야. 이건 어쩔 수 없다고 얼마 전에 이야기했잖아." 



나는 한숨을 쉬며 옆에 앉은 니엔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그녀는 늘 이렇다. 나를 감시하고 질투한다. 그녀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나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야, 듣고 있어?"


"어, 듣고 있어. 조금 생각할 게 있어서."


"......또 다른 여자 생각하고 있잖아"



그녀는 그렇게 말하며 내 어깨를 붙잡는다.

붙잡은 힘의 세기로부터 그녀가 얼마나 초조해하는지를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녀는 이윽고 내 멱살을 움켜쥐었다.



"......조심해, 네가 다른 여자에게 눈길이 가서는, 뭘 할지 모르니까."


"........." 



또 이러냐, 하고 나는 생각한다.

그녀와 연인이 된 것은 오래 전부터지만 계속 이런 느낌이었다.

내가 다른 여성 오퍼레이터와 이야기하고 있으면 그녀는 바로 기분이 나빠지고 이렇게 위협을 하는 것이다.


그녀에게서 사귀자고 고백받았을 때는 놀랐다. 설마 그 니엔이 먼저 교제를 신청해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그녀가 말하길, 나와 함께 있으면 지루하지 않고 즐겁기 때문이라고 했다. 


확실히, 나도 그녀와 있으면 지루하지 않았다. 그녀가 추천하는 아주 매운 음식을 먹여주거나 직접 만든 영화를 함께 보는 것은 평소 일만 하는 나에게 좋은 자극이 되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와 더 깊은 사이가 된다는 건 별로 싫지 않았다.



"..............."



하지만, 그렇다고 속박당하고 싶지는 않았다. 지금처럼 내가 다른 오퍼레이터와 이야기한다는 사소한 일로 화를 내는 것은 다반사다.



"이봐, 뭐라고 말 좀 해."



질투에 젖은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니 내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무너져가는 것 같았다.



"......이젠, 한계야......"



지금까지 억눌렀던 감정이 터져나올 것 같다. 이젠 무리였다. 더 이상 견딜 수 없었다.

나는 억누르는 것을 그만두었다.



"적당히 좀 해!!"


"읏!?"


"넌 항상 그래... 내가 다른 오퍼레이터와 조금만 이야기해도 화를 내! 너 이외의 여자와 얘기할 생각조차 제대로 못해! 식사하러갈때도 꼭 따라와서 방해해!! 요전에는 한창 작전 중에 끌어안고 급기야 목덜미에 보란듯이 흔적까지 남기고...... 대체 뭐야!"



한 번 입을 열기 시작하니 멈추지 않았다.

쌓였던 불만을 모두 쏟아내며 나는 그녀에게 부딪쳤다.



"사귀기 전에는 이러지 않았잖아! 좀 더 편했고... 같이 있으면 즐거울 것 같았는데, 지금의 너는 전혀 다르잖아......!


"지, 진정해......"


"이젠 싫어...... 헤어지자."


"......아?"


"그러니까...... 이제 헤어지자고...... 너와는 잘 지낼 수 없겠어......"



나는 일어서서 방에서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니엔은 내 팔을 꽉 붙잡고 놓지 않으려 했다.



"......놔줘"


"............" 



그녀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다. 그저 입을 다물고 있을 뿐이다.

어서 뿌리쳐야 할텐데 도저히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대로 시간이 흘러갔다.

얼마나 지났을까. 그녀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미안......"


"......"


"분명히 네 얘기를 듣지 않았고, 내가 너무 끈질겼을지도 몰라...... 하지만, 이것만은 어쩔 수 없어...…"


"뭐가 어쩔 수 없는데......"


"...좋아하는 녀석이 다른 여자랑 사이좋게 지내면 짜증나버리잖아? 게다가 넌 인기가 많으니까, 언제 누구에게 빼앗길지도 몰라. 불안해져버려." 


"......니엔......?"



그녀답지 않은 나약한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뒤돌아보고 말았다. 그곳에는 여느 때처럼 여유로운 미소를 짓고 있는 그녀가 아닌, 불안감에 가득 찬 표정을 지은 소녀가 있었다.



"그러니까, 헤어지겠다는 말만 하지 마... 박사. 네가 지금의 내가 마음에 안든다면 무슨 짓이든 할게. 나는 다른 녀석들보다 튼튼하니까, 조금 난폭하게 대해도 부서지거나 이상해지지 않는다구? 그러니까......"


"무슨 말을......"



그녀의 몽롱한 눈동자에는 나밖에 비치지 않았다. 그것은 평소 강인하고 자신감 넘치는 모습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여리고 약한 것이었다.



"나를 떠나지 마... 박사"



그렇게 말하는 그녀에게 예전의 패기는 없고 그저 간청하듯 바라볼 뿐이었다.


내가 그녀를 이렇게 만들어 버린 것이라고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리고 동시에 자신이 터무니없는 실수를 저질렀다는 것도.


이미 늦어버린 것이다. 

예전의 기운 넘치고 기분 내키는 대로 하고 싶은 짓을 마음껏 하던 그녀는 이미 없다. 분명 앞으로도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이렇게 된 원인은 바로 내게 있었다. 



"뭐라고 좀 말해줘...... 박사......"


"......알았다, 알았어...... 그러니까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마."



나는 그녀를 꼭 껴안았다. 그러자 그녀는 몸을 움찔 떨더니 이내 내 등으로 손을 둘러온다.


책임을 져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원래대로 돌아갈 일이 없다면, 적어도 곁에 있어주자.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속죄니까.



"......고마워, 박사."



나는 그때, 품 속의 그녀가 미소짓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시』



눈을 떠보니 낯선 장소였다. 난 분명 집무실에서 서류 작업을 하고 있었을텐데... 


상황을 확인하기 위해 주위를 둘러본다.

내가 자고 있던 침대, 그 옆에는 작은 선반, 조금 떨어진 곳에는 냉장고와 간이 부엌. 그리고 방 끝에는 화장실과 욕실이 보였다. 최소한의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시설이 갖추어진 방. 하지만 이 방에는 결정적으로 이상한 점이 있었다.



'......문이......없잖아......?'



그렇다. 이 방으로 이어지는 문이 어디에도 없었다. 

벽이나 천장, 바닥을 봐도 문 같은 것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문득 자신의 몸을 내려다본다. 몸에는 딱히 이상이 없는 것 같다. 복장도 평소와 다르지 않다. 



"..............." 



어찌된 일인지 전혀 파악이 되지 않아 그저 멍하니 있을 뿐이었다. 

식은땀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로도스 함내에서, 이런 이상사태를 맞닥뜨리게 될 줄은 몰랐다. 어쨌든, 우선은 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을 어떻게든 이해해야 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한 걸음 내딛었을 때였다. 



"......어머, 벌써 일어났어?" 


"!?" 



놀라 뒤돌아보니, 거기에는 시가 서있었다. 분명 출입구가 없을텐데 갑자기 나타난 그녀는, 평소와 같은 모습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허리까지 내려온 흑발, 머리에 난 뿔과 푸른 손...... 틀림없는 시였다. 



".........시......?" 


"응, 나야." 



조금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 그녀를 향해 말을 건넨다. 

왜 그녀가 여기있지? 아니, 애초에 여기는 어디지? 의문들이 차례차례 솟아오른다.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하고 있자니 그녀가 먼저 입을 열었다. 



"여기는 내가 그린 방이야. 당신을 여기로 데려온 것도 나야." 


"......뭐......?" 



그녀가 가진 특수능력, '그림의 세계'와 '그림의 구상화'. 

그녀가 붓을 움직이면 세계가 생겨나고, 괴물을 그리면 그것은 실체화되어 움직인다. 

그 힘이라면 이런 방을 만드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녀가 갑자기 나타난 것도 납득할 수 있었고, 실제로 그녀는 로도스의 여러 곳과 자신의 방을 연결하는 출입문을 만들어놓고 있었다. 


허나, 문제는 그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발언에 위화감을 느꼈다. 

마치, 그녀가 나를 가뒀다는 것처럼 들리잖아. 

그런 걸 생각하며 그녀를 보고 있자니, 그 시선의 의미를 이해한 것인지, 그녀는 이어 말하기 시작했다. 



"......어째서 여기에 끌려온건지 이해를 못한 모양이네." 


"...물론이지. 대체 어째서, 이런 곳에 날...... 그리고 여긴 대체 어디야......" 



그녀는 그 말을 듣고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천천히 이쪽으로 다가왔다. 무의식적으로 뒷걸음질이 쳐졌지만, 금새 벽에 부딛혔다. 도망치지도 못하는 난, 최대한의 저항으로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녀 또한 그에 대응하듯 나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당신, 나와 헤어지고 싶다고 말했었지." 


"..............." 



내 뺨을 살짝 쓰다듬으며, 그녀는 말한다. 

차가운 손끝이 닿은 곳부터 오싹한 감각에 사로잡힌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그녀는 교제하고 있었다. 

그러나, 어제까지. 


사귀게 되었으니 그녀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했지만, 그녀는 연인이 되기 전과 변함없이 무뚝뚝할 뿐이었다. 그녀와 더욱 가까워지고 싶었지만 전혀 관계가 진전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이별을 꺼낸 것이다.

이러다가는 언제까지나 평행선일 것 같았고, 그녀는 그저 시간을 때우기 위해 나와 사귀고 있는 것일 거라고 어렴풋이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녀를 좋아했지만 그녀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았다. 그렇다면 무리해서 관계를 계속할 필요는 없다고 본 것이다.

헤어지자는 말을 그녀에게 전하자 그녀는 집무실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나가 버린 것이 어제의 일이다. 왜 오늘에서야 이러는 걸까. 도저히 모르겠다.



"갑자기 그런 말을 한 건 미안해. 하지만 언제까지고 이런 관계를 지속할 수는 없잖아?"


"......" 


"그러니까, 이제 끝내려고 했을 뿐이―"



내 말을 막듯이 그녀는 검지손가락을 내 입술에 대었다. 그리고 얼굴을 가까이 대어 온다. 반사적으로 피하려 하지만 어느새 내 목 뒤로 손이 둘러져있어 움직일 수 없었다. 그녀의 얼굴이 바로 눈앞에 있다. 



"언제, 내가 당신에게 애정이 없다고 한 적 있었나? 별로 싫어하진 않는데."


"......그럼, 어째서..."


"나도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내 가슴에 손을 얹었다. 옷 너머로 느껴지는 체온이 묘하게 생생하다. 심장이 빨리 뛰는 것을 느낀다.



"내가 그림에만 매달려있어서 당신은 외로웠던 거구나. 그래도 안심해줘. 앞으로 쭉 함께 있어줄게." 



그러면서 그녀는 미소를 짓는다. 평소의 무표정한 얼굴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러운 미소다.



"...아니, 난 그런 이유로 너에게 헤어지고 싶다고 말한게 아냐......"


"괜찮아, 좀 더 확실한 걸 원했던 거지? 알고 있어."



그렇지 않다고 되받아치려 했지만 그녀의 말에 의해 가로막힌다.

그리고 그녀는 내 귓전에 대고 속삭였다.



"헤어지고 싶다니, 너무하잖아. 아무리 내 관심을 끌고 싶어도 그렇지."


"그러니까 아니라고! 난 정말로 너와 헤어질 생각으로......!"


"...............적당히 해."



그녀는 내 얼굴을 두 손으로 붙잡고 그대로 끌어당긴다.



".........!!" 



다음 순간 입안에 부드러운 감촉이 느껴졌다. 키스를 받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그 이후였다. 



"으응...... 으으......!"



혀가 스며든다. 입안을 유린당하는 감각에 등골이 떨렸다. 저항할 수도, 도망칠 수도 없었다. 이윽고 숨을 쉬기가 힘들어지자 겨우 풀려났다.

나는 어깨를 크게 들썩이면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정말, 너무 번거롭게 하지 말아줘."


"하아......하아..."


"아직 부족한가 보네"



또다시 입을 틀어막힌다. 이번에는 아까보다 더 격렬하고 깊은 것이 찾아왔다.

틈새로 침방울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끼면서도 나는 필사적으로 그녀를 밀쳐내려 했지만, 힘이 나오지 않았다. 



"그만해, 시! 대체 무슨 생각 하고 있는 거야!" 


"무슨 생각이라니, 뻔하잖아?" 



그녀는 내 팔을 잡으며 말했다.

그 눈빛은 사냥감을 노리는 짐승처럼 번득였고, 본능적인 공포를 느끼게 했다.

내가 아는 그녀가 아니었다.



"당신에게, 내가 얼마나 당신을 생각하는지 가르쳐줄 거야."


"시, 싫어...... 이제 놔줘......!"


"안돼."



저항하려 했지만, 허무하게 제압당해 버린다.

그녀와 나 사이에는 명확한 힘의 차이가 있다.



"당신이 잘못한거야? 나한테서 떠나려는 생각을 하니까."


"나는 그냥... 서로를 생각해서......"


"그러니까 그게 안된다는 거야. 나도 너와 함께하고 싶은걸. 하지만, 말과 행동으로 그것을 보여주지 않았으니 당신은 믿어주지 않은 거잖아?" 



계속 내 가슴을 쓰다듬으며 그녀가 말한다. 소름이 끼쳐온다.



"오늘, 당신의 몸과 마음에 내 마음을 새겨줄게. 여기는 내가 그린 공간…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당신을 사랑할 수 있어."


".................."



나는 완전히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

그녀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도 훨씬 나를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는 게 너무 늦어버렸다. 이젠 되돌릴 수 없는 지경에 오고 만 것이다. 그녀는 나를 뒤덮으며 다시 입을 맞추었다.



"......사랑해, 박사"



그녀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그 눈동자는 평소와 달리 매우 부드러우면서도, 탁했다.







※ 이 소설은 원작자 「age11425」님의 허가를 받고 번역하였습니다.  

※ 원문출처 https://www.pixiv.net/novel/show.php?id=18163835



색다른 걸로 가져와봤는데 옮기면서 반응이 좋을까 긴가민가... 난 이정도까지는 취향이 아니라 ㅎ

오타 오역 의역 어색한 부분 지적 환영


2022. 10. 01. 작가분께서 읽어주신 한국 분들께 모두 감사하다고 전해달라고 하셨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