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타, 오류 지적 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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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오....어, 박사. 퇴근한 거야? 아니면 오늘도 야근이라 사무실에서 먹을 거?"


퇴근시간이 되자마자 오늘 비서 오퍼레이터였던 이스티나를 보내놓고 바로 매점으로 뛰어왔다. 식사가 될 만한 빵이랑, 레나가 그닥 좋아하진 않지만 혹시 몰라서 컵수프, 스포츠드링크 두 개씩.

납품받은 상자를 뜯어서 내용물을 매대에 집어넣던 클로저가 카운터로 오더니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오늘은 퇴근."


"응? 이상한데. 퇴근했는데 빵이랑 컵수프로 저녁을 때운....아, 그런 거구나." 


카운터에 올려놓은 물건을 계산하던 클로저가 악의 없이 씨익 웃으며 이야기했다.

이제 와서는 이 반응도 익숙하다.


"그녀가 기다리고 있는 거야? 저녁도 대충 때우고선 초저녁부터 대체 뭘 하려는 걸까?"


"그러면 좋겠는데, 퍼퓨머가 몸이 안 좋은 모양이라서. 굼한테 따로 죽 같은 걸 만들어 달라고 하곤 싶은데 식당도 지금 바쁜 시간이니까."


갑자기 오전에 서류 검토해 달라고 찾아온 포덴코의 말이니 틀림없을 것이다.

의료부 오퍼레이터들이 있다 하더라도 내가 최대한 빨리 오길 기다리고 있을 거고.


전날 밤에 같이 잠들었는데, 아침에 일어났더니 밤에 자기 방에 오라고, 기대하겠다는 쪽지만 남겨놓고 온데간데 없었다.

늦게까지 온몸을 긴장시키고, 욕망이 풀리지도 않은 채로 자서인지 컨디션이 망가진 모양이다.


"응? 퍼퓨머는....그 페로족 제자 있지 않았나? 포덴코였지? 그 애한테 시켰을 법도 한데. 아직 안 왔지만."


"모르겠어서 일부러 와 본 거야. 포덴코도 바쁠 거고. 혹시라도 이따 포덴코가 오면 내가 저녁 사 갔다고 이야기해 줘."


"죽 필요하면 저기 안쪽 매대에 계란죽 있어. 극동식이라던가? 근데 간도 안 된 거고 안에 맛낼 것도 없어."


"딱 좋다. 그거도 두 개 할게."


빵에 수프를 속에서 못 받을 수도 있으니 그것도 두 개 골랐다.

이 정도면 살 건 다 샀으려나. 


"아무튼 고마워. 먼저 간다."


"아, 박사. 생각났다. *극동 되게 얇은 풍선*이 한 박스 들어왔는데 재고떨이 겸 싸게 줄까?"


뭐라뭐라 말하는 걸 흘려듣고 서둘러 요양 정원이 있는 복도로 왔다. 혹시 몰라 정원 쪽을 살짝 봤더니 포덴코가 필라인족 직원 한 명을 옆에 세워두고 뭔가 설명하고 있다. 나머지 직원들은 각자 흩어져서 꽃을 돌보고 있고.


노크도 없이 집무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가 생각지 못한 모습에 깜짝 놀라 들고 있던 봉투를 떨어뜨릴 뻔했다.

레나가 뭘 가지러 나왔는지 실내복 차림으로 집무실 책상 주변에서 서성거리고 있던 것이었다.


"박사 군....?"


흐릿한 눈으로 이쪽을 보면서 나직이 묻는 걸 보니 정말 몸이 안 좋은 모양이다.

괜시리 어제 고생시킨 게 생각나서 또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레나, 괜찮아요? 몸 안 좋다고 들었는데."


가까이 다가가서 이마에 손을 짚어보았다. 평소에 이마를 맞댈 때와 비교하면 살짝 뜨거운 정도인가.

레나가 내 양쪽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빙긋이 웃었다. 


언제나 보던 밀크커피색 시선과 풀어내린 머리카락. 우아하면서도 소박한 꽃잔디색 미소. 두 뺨에 흐드러지게 피운 벚꽃.

왠지 모를 안타까운 감정에 탄식을 겨우 씹어삼켰다.


"....어서 와. 후후, 오늘 빨리 왔네. 일 수고 많았어."


"약은 먹었어요?"


"약?....약 말이지. 그래. 약은 지금 왔잖니."


"지금....요? 저 약 같은 거 안 사왔...."


헛소리는 듣고 싶지 않다는 듯 입에 꽃잔디색 사탕이 물려진다. 

입에 맞닿은 사탕은 바로 터져서 온 입술에 꿀이 묻어난다.


아무 말도 할 수 없도록.


아아, 속았구나 하는 느긋한 생각이 든 순간.

일과시간 내내 하던 걱정은 잊고 있었던 갈증으로, 내심 들었던 안도감은 추잡하고 끈적한 욕망이 되어 레나의 입가를 더럽힌다.


포덴코랑 정원 직원들이 밖에 있는데, 하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1년이 지나면서 선내에 모르는 사람도 없고. 얼마 전에 말했던 것처럼 개인적인 공간에서라면, 우리 둘이 뭘 하든 아무도 상관할 일이 아니다.


말도 필요없이 열린 입 안으로, 인사도 없이, 준비도 없이.

무언의 대화를 나누며 레나를 열리지 않은 문으로 밀어붙여갔다.


저녁 시간을 전하는 아미야의 목소리가 들리고서야 겨우 떨어졌다. 농염한 빛을 내며 타고 있는 눈길에 빠져들면서, 저녁이 뭔지 재잘거리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그마저도 이끌리는 손길에 금방 멀어져간다.


문이 열리자마자 나를 맞이한 것은 하얀색 사과향에 껴안긴 연노랑색 안개였다. 들이마시는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그 결과가 어찌될지 알고 있다. 그런데도 내가 어쩔 틈도 없이 몸 속 구석구석, 욕망의 향기가 파고들었다. 


레나의 손에 이끌려 들어온 여기는 분명 레나의 방인데도, 이 방에 라벤더향은 온데간데없다. 은은하게 깔린 달콤한 사과향에, 어지러울 정도로 짙게 이 방을 채운 연노랑색 향기는 아마 일랑일랑일 것이다.


나를 방에 밀어넣은 레나가 향기가 빠져나갈새라 방문을 닫고, 곧바로 잠가버렸다.

저녁을 먹으러 갔던 포덴코가 들어오는 것도, 내가 나가는 것은 물론이고 방 안에 꽉 채워진 향기조차도 나가는 것을 거부하는 듯했다.


"이 시간에 왔다면 저녁도 안 먹고 온 거구나."


ㅡ보고 싶었으니까요. 좀 괜찮아요?


형식적으로나마 레나를 걱정하면서 떠올렸던 말들이 전부 나오려다 도로 끌려들어가 버렸다.


이쪽으로 돌아선 레나의 눈에는 이제껏 한 번도 본 적 없을 정도로 짙은 갈망이 새겨져 있다. 열이 올랐는지 얼굴뿐만 아니라 온몸이 발갛게 달아올라 있다. 게다가 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건지 단내나는 숨을 몰아쉬고 있다.

얇은 잠옷 아래로 드러난 두 다리는 가만히 있질 못하고 후들후들 떨면서도 연신 양 허벅지를 비비고 있다. 


악의없이 속았다는 감상과 안도감이 든 것과 동시에 레나의 몸을 부서져라 껴안으면서, 옷 위로 하체를 레나의 몸에 비비기 시작했다.

같이 달라붙어서 샤워를 하면 더 좋겠지만 아쉽게도 나흘 동안 옥죄어져 있던 성욕이라는 맹수는 그 시간조차 기다릴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몸이 안 좋다던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고, 오늘은 몸을 겹치는 것보다도 옆에 붙어서 보살펴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방에 이렇게 일랑일랑 향을 풀어놓았다면 몸이 안 좋다 하더라도, 조금 억지로라도 레나하고 뒤엉키고 싶었다.


레나를 옥죄던 두 팔을 겨우 풀고 잠깐 레나하고 시선을 맞추었다. 두 손이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내 팔 위에서 정신없이 움직인다. 


팔을 잡힌 채로 홀린 듯이 실내복 치마자락을 끌어올리면서 손을 그 안으로 집어넣자, 방 안에 퍼진 일랑일랑 향기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짙고, 달큰한 향기가 한 번에 확 퍼졌다. 방에 일랑일랑 향기를, 그것도 한참 몸 섞고 있을 때 깨달았을 즈음 날 정도로 깔아놨는데도 알 정도였다.


레나하고 수도 없이 껴안으면서도, 몸을 몇 번이고 섞으면서도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체향이다.


안 안을 거야?

덮치라니까?


소리 없는 속삭임에 이끌려 알고 있던 감촉을 상상하면서 더 깊이 손을 넣다가, 알고 있으면서도 생각하지 못했던 감촉에 놀라 마른침을 삼켰다.

레나는 실내복 안에 아무것도 입고 있지 않았다. 살짝 열린 허벅지 사이에 그토록 취하고 싶던 꽃봉오리에서 새어나온 일랑일랑의 꿀이 끈적하게 이어져 있다. 가지런히 정리되어 있던 수풀은 해초마냥 연노랑색 향기에 젖어 있고, 손가락 끝에 더 안쪽의 감촉이 닿자마자 손에 꽃꿀이 질척하게 흘러떨어진다.


조금 더 꽃꿀을 짜내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손가락 끝으로 가볍게 노크하자 대답 대신 달큰한 한숨이, 손끝에는 더 진한 꽃꿀이 끈적하게 묻어난다.

이미 문은 열려 있고, 들어오라는 허락도 받지 않고서 안으로 들어가자 레나의 몸이 크게 떨리며 내게 체중을 실어온다. 그러면서 기대지 않은 어깨 아래 손은 바지 위로 내 심볼을 부드럽게 매만지면서, 신음소리를 막아달라는 듯 혀와 입술을 내 입으로 가져왔다.


뭐 하냐니까?

손으로 만지는 것만 해도 괜찮겠어?


한참을 그렇게 말없는 실랑이를 하다가 겨우 레나가 발을 옮겨서 레나에게, 일랑일랑 향기에 이끌려서 방 깊은 곳 침대에 다다랐다.

나흘째하고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갈증을 호소하듯 꽃잔디색 입술이 벌어져서, 분홍색의 혀가 숨가쁘게 떨린다. 하지만 나는 눈 앞에서 갈증을 호소하는 이쪽 입술 대신, 속옷조차 입지 않은 아래쪽으로 내려앉았다.


금방이라도 균형을 잃을 것 같은 가느다란 두 다리를 양팔로 잡고서 아래쪽 입술에 정중하게 입을 맞추자 흠칫 놀라며 허리가 뒤로 튕겼다. 수풀에 배인 일랑일랑 꽃꿀의 향기, 나흘 동안 기다림과 욕망을 섞어서 만들어진 체향. 도망치지 못하게 단단히 잡고서 차분하게 꿀을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눈앞에는 발갛게 달아오른 피부와 실내복 치마 안감뿐이고, 이 작은 공간은 정신없이 취하고도 남을 정도의 꽃꿀로 채워져 있다. 장막 밖에서는 억눌린 신음소리가 욕망을 부추기듯 불규칙하게 연주되고 있다. 겉부분의 꿀을 남김없이 핥아먹고, 혀를 집어넣어 그 안의 꿀을 탐하기 시작하자 가느다란 동체가 크게 요동친다. 꽃꿀은 마를 생각도 하지 않고, 타액을 마중물로 삼는지 핥아먹을수록 더 흘러나오고 있다.


지금 당신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죠?

목소리만 들어선 좋아하는 것 같은데, 이렇게 핥고 있는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건 아니죠?


향에 취해서 속으로 물으면서, 다른 어디에도 손대지 않고 이 안에 채워진 공기와 꿀을 빨아들인 끝에 몇 번이고 레나의 허리가 크게 떨리고, 양 허벅지가 내 얼굴을 숨막히도록 몇 번이나 눌렀을까. 처음으로 레나가 입을 열어 내게 말했다.


"그, 만....그만...."


그 말에 나도, 입술에 하던 키스에 견줄 정도로 열중했던 이쪽 입맞춤을 멈추고서 치마 밖으로 고개를 들었다.

거의 울 것처럼 감긴 눈은 속눈썹이 떨리고, 입은 여전히 한 손으로 틀어막고 있는 채였다. 얇은 실내복의, 과육이 들어차 부풀어오른 자리의 정점이 눈에 띌 정도로 드러나 있다. 일어나서 몸을 떨고 있는 레나를 껴안아 주자 어리광부리듯 내 옷을 붙잡고선 속 깊은 곳에서 터져나오는 감정을 토해냈다.


"그만....그만 애태워....손가락도, 입으로 해주는 것도 다 좋은데....그건 조금 있다가도 괜찮으니까...."


덮치는 것처럼 레나가 나를 침대에 밀어 앉혔다. 다시 보니 한 번 울었던 건지, 촉촉하게 젖은 속눈썹 아래의 눈이 발갛게 물들어 있다. 그대로 옷 위로, 옷을 벗지도 않고서 할 생각인 것처럼 내 옷 위로 아랫도리를 비비고 있다. 팽팽하게 세워진 텐트 위로 올라온 꽃잎에서 배어나와 바지 속으로, 속옷을 넘어 심볼에까지 스며들어온다.


"이젠 넣어도 괜찮다고 해줘...."


"싫다고 안 해요. 나흘 동안 같이 참았으니까, 저도 하고 싶었어요."


그 말에 레나가 복잡한 미소를 지었다. 바라던 것이 눈앞에 있고, 이제서야 가질 수 있다는 것에 기뻐하는 것인지, 이럴 거면 뭐하러 애태웠냐고 원망하는 건지. 


하지만 그걸 하나하나 생각하기보다도, 나흘 동안 눈앞에 두고서, 손 닿는 곳에 같이 있으면서도 스스로 걸어두엇던 빗장을 풀 수 있다는 기대감이 먼저였다.

같은 생각인지 레나도 손을 바쁘게 놀려 내 셔츠와 바지를 풀려 한다. 자기 옷을 벗을 겨를도 없고, 몇 번이나 헛손질을 할 정도로 급한 건가 하면서도, 이렇게 조바심내는 모습이 그저 귀여워서 귀와 머리를 쓰다듬는다. 껴안고서 해주면 더 좋아하지만 그랬다간 애타는 시간이 더 길어질 뿐이다.


실내복을 벗겨줄까, 하고 잠깐 생각했는데 이대로도 좋을 것 같다. 조금 있다가 상의만 조금 풀어주면 되겠지.

근데 지금 이대로면, 평소 하는 것처럼 레나가 위에 올라앉아서 하는 걸로 시작하려나?


"레나, 괜찮아요?"


"안 괜찮아도 할 거야...."


혹시나 해서 물어봤지만 몸이 안 좋다고 한 건 결국 거짓말이었던 모양이다. 아니면 그냥 한 말이던가.

어느 쪽이든 할 수 있으니 더 토달지 않기로 했다. 보통 레나랑 하면 이런 느낌이고.


레나가 스스로 치마를 들어올리자, 한참을 핥아먹어서 분명 말끔했을 터였던 양 허벅지 안쪽이 다시 꽃꿀로 이어져 있다.

키스하면서 레나에게서 흘러 떨어진 일랑일랑 꽃꿀이 심볼에 닿으면서 수분을 요구하고, 이미 심볼은 주제도 모르고 열을 내며 우뚝 솟아 암꽃에 삼켜지기를 기다리고 있다.


천천히 허리를 내린 끝에 드디어 기다리던 온기와 감촉이 심볼에 맞닿는다. 레나가 안도 어린 간드러진 노래를 귓가에 속삭인 그때, 노래는 정신을 잃을 것 같은 매혹적인 외마디 비명으로 바뀌어 버렸다.


억눌려왔던 모든 것을 한 톨도 남김없이 말려버릴 것 같은 열기가 한순간에 온몸에 퍼졌다.

아무 저항 없이, 삐끗하는 것도 없이 내 아랫도리는 레나의 부끄러운 곳에 완전히 먹혀버렸다.


그토록 원하던 포도를 입안 가득 받아먹은 암여우는 나긋하게 뻗은 팔다리로 내 몸을 휘감아 안았다.

온몸이 밀착하고, 팔다리에 안겨서, 레나의 아래쪽에 휘감겨서....아니, 아예 아랫도리가 레나의 안에서 뿌리내린 것 같다. 온몸이 안팎으로 하나가 된 것 같다.


움직일 수가 없다.

레나에게 껴안겨서가 아니라 움직였다간 쾌락에 온몸을 지배당해 레나에게 무슨 짓을 할지 무섭다. 지금 안에 넣은 것만으로도 4일 동안 쌓여있던 걸 전부 쏟아부을 지경이다.


움직이면 얼마나 좋은지, 지금 레나가 내게 올라탄 자세에서 어떤 일들이 우리에게 생기는지는 이미 수십 번의 정사로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둘이서 시간을 들여서 애정과 약속을, 그리고 욕망을 뒤섞어 농도를 맞추어 놓은 참이다. 이제 채밀만 하며 되는 달콤한 해방감은 어떤 형태로 우리 둘을 집어삼킬지 상상이 되질 않는다.


가만히 있기도 뭣해서, 정신차리지 못한 채 살짝 벌어진 레나의 입 안에 혀를 집어넣었다.

재촉하려는 듯 레나가 약하게 허리를 움직인 탓에 머릿속이고 아래쪽이고 전부 비어버릴 뻔했다.


레나가 허리를 움직이지 못하게 끌어안듯 붙잡은 채로 키스를 몇 번이나 반복했다. 잠깐 숨을 고르려 할 때도 십여 센티미터만 떨어져서 서로 숨을 나누면서, 아무 말 없이 열띤 시선을 엉망진창 섞는다.


그저 사랑스럽다.

침대에서만큼은 나를 자기가 원하는 대로 휘어잡으려 하면서도 달라붙고, 갈증을 호소하고, 속삭이듯 이름을 부르면, 대답하며 더 꼬옥 끌어안는 이 사람이.


시선을 조금 돌려 레나의 얼굴을 내 어깨에 기대게 하면서 더 밀착했다. 아래쪽의 결합감과, 어깨에 닿는 머리카락의 감촉이 소리를 높이는 합창 속에서 점점 작아지는 소리가 들린다. 귓가에서 간드러지게, 들릴 듯 말 듯 나를 부르고 있다.


"레나, 사랑해요."


"바....박사 군? 잠깐만....아, 아니....그게...."


대답하듯 속삭이자, 고장난 라디오처럼 레나가 말을 더듬으며 당황했다.

몇 번은 고사하고 몇백 번이나 이야기하고 들은 말이고, 몸 섞으면서도 주고받았던 감정인데.


한 번 더, 당황한 탓에 레나가 듣지 못했을까 하는 생각에 말했다.


"레나, 사랑해요. 지금 너무 좋아요."


"안 돼....말하지 마....아니, 더 말해줘....아니, 그만...."


면으로 등에 닿던 레나의 손길이 점차 선의 형태를 그리고, 이어 점의 형태가 되어갔다.

알고 있던 쾌락이 익숙하지 않은 감각으로 몸에 뒤집어씌워지는 지금, 움직이지 않는데도 레나의 안이 내게 맞춰지는 게 느껴진다.


그 후로도 몇 번 레나가 붙잡힌 팔 안에서 허리를 움직이려 하기에 또 한 번 힘주어 옥죄었다.

채우지 못하는 아래쪽의 허기와 갈증을 조금이라도 잊게 해주려 한참을 껴안고, 혀를 섞으면서 무르익기를 기다렸다.


매뉴얼에선 30분 정도라고 했지만 아무래도 레나도 나도 그만큼 버티기는 힘들 것 같다.

살짝 허리를 붙잡은 팔에서 힘을 빼자, 레나가 내게 싣던 체중을 조금 풀고서 무릎을 침대에 대고, 이제까지보다 더 진한 입맞춤으로 오늘 밤을 시작했다. 옥죄고 있을 때는 기다리지 못하는 것 같았는데, 오히려 풀어줬더니 여유가 생기기라도 한 걸까.


"좀 괜찮아요?"


"몰라...."


"당신이 좋을 대로 해 주세요. 나흘 동안 우리 둘 다 잘 참았으니까요."


대답 대신 두 팔이, 일랑일랑 향기에 안긴 캐모마일 향기가 온몸을 휘감고, 입에는 다시 한 번 꽃잔디색 사탕이 물려졌다. 

천천히, 음미하는 것처럼 위아래로 레나를 맛보던 중에 레나가 천천히 허리만 움직이기 시작한다.


밀착한 채로 맞닿는 관능적인 감각이, 나흘만에 느껴지는 느긋한 체온이 주변에 깔려 있던 향도, 시간도 잊어버리게 만든다.

나흘 동안 애태운 만큼 애태우려 하는 건지, 레나의 숨소리도, 키스가 달라붙어 흐트러지는 목소리도 애절하면서 여유로웠다. 그러면서도 허리의 움직임은, 위에 손을 얹어놓은 것만으로도 온 힘을 다해 갈증을 채우고 있는 걸 알 정도였다.


몇 번이나 레나하고 섞었던 시간인데, 우리가 선택했다지만 고작 나흘 억눌렀다고 이렇게 목이 말랐단 말인가.

레나가 이렇게 움직이고 있으니 화답하고 싶은 욕망이 들끓는다. 마침 레나가 숨이 찼는지 키스를 한 번 멈추고 나를 바라본다. 


결합한 채로 살짝 레나의 상체를 뒤로 물리고, 떨리는 손을 움직여 실내복 단추를 풀어헤쳤다. 

아래쪽과 마찬가지로 위쪽도 속옷을 입지 않은 채였다. 이 사람, 오늘 하루 종일 이러고 있었을까. 오로지 오늘 이 시간을 기다리면서....나를 기다리면서.


갑자기 레나의 기색이 확 바뀌었다.

그대로 레나가 내 어깨를 손으로 잡고, 마치 보란 듯이 일심불란하게 연결된 하체를 격렬하게 흔들기 시작한다. 실내복 때문에 풀리다 말은 양 가슴이 그 기세에 이끌려서 더 크게 흔들린다. 그에 맞추어 레나의 표정도 갈증을 호소하는 것을 넘어 눈앞에서 나를 밀어내려는 것 같다.


지금 자기가 하는 행동이 평소의 우아함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도 모르는 걸까. 아니면 이런 모습조차도 봐주고, 사랑해주길 바라는 걸지도 모른다.

다른 사람 앞에서도 보여주는 우아하고 여유로운 모습도 좋지만, 이 표정만큼은 나만의 것이니.


향으로 숨막힐 정도로 가득 차서 더 들어올 게 없다고 생각했던 실내에 점점 열기가 더해져서 온몸을 끌어안듯 조여온다. 눈앞에서 점점 더 격렬하게 허리를 흔드는 레나의 모습도, 고장난 축음기처럼 연신 나를 부르는 목소리가 신음소리에 억눌리는 것도 옅어지던 그때 레나가 허리의 움직임을 멈추었다.


숨을 고르는 모양인지 다시 밀착해서는, 키스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내 얼굴 옆에 자기 얼굴을 두고는 단내나는 숨을 천천히 고른다.

레나의 등을 서서히 쓸어주면서, 한 손으로는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레나가 조용히, 알수 없는 말을 되뇌듯 속삭였다.


입으로 대답하지 않고 레나가 숨돌리길 기다리면서, 옅어지려던 의식이 다시 선명해진다. 

손끝에 느껴지는 촉촉한 물기, 틀어올려진 머리카락과 목덜미의 경계. 속삭이듯 간지럽히는 거칠고도 얕은 숨소리.


이 숨 고르는 시간조차도 아깝다고 생각했는지 그대로 레나가 허리를 다시 천천히 들썩거리자 옥죄여져 있던 심볼이 해방을 호소하기 시작한다.

조금 더 이 시간을 즐기고 싶어 의식을 레나에게 집중해 보았지만 이미 온 신경은 레나의 안에 잠겨들어 보이지도 않는 심볼에 쏠려 있다.


비슷한 템포와 깊이로 찔러들어가는데도 그게 누적되니 점점 고삐가 풀릴 것 같은데도 풀리지 않아 답답하다. 

몇 번이고 반복되고 욕망이 터져나올 것 같으면서도 억눌리고 나서야 지금은 레나가 리드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레나에게 절정 직전이라고 이야기하려던 그때, 어떻게 알았는지 레나가 내 목과 등을 양팔로 감고서 허리만 움직이는 속도를 높였다.


물 섞이는 소리, 살 부딪히는 소리, 쾌락에 잠겨 우는 듯한 목소리가 영거리에서 시작되어 묘한 화음을 이루어 방 안에 울린다.

나흘 아니 닷새 동안 못 채운 만큼, 아니 그 이상 쥐어짜서 넘치도록 채울 기세로 허리를 부딪히는 레나에게 달리 해 줄 것은 없다.


좀 더 움직이기 편하도록 한쪽 팔로는 등을 안아주고, 한쪽 손은 앞뒤로 움직이며 욕망을 탐하는 허리를 받쳐줄 뿐이었다.

이 사람이 원하는 대로, 내가 원하던 대로.


알아주었는지 레나가 스퍼트를 높였고, 얼마 안 가서 닷새 하고도 몇 시간만에야 처음으로 나는 레나의 안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버렸다.


레나가 온 힘을 다해서 허리를 부딪히면서,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온몸이 떨리면서, 양 팔이, 두 다리가 어깨와 허리를 옭아맨다. 

눈앞이 새하얗다 못해 시커매질 정도의 쾌락이 레나의 몸 안에서 번져와, 안에 잠겨들은 심볼을 통해 온몸으로 전해졌다.


바로 옆에서 들리는 답답한 숨소리.

덩굴식물이 되어 온몸을 옭아맨 가느다란 두 팔과 다리. 


이내 레나가 얼굴을 가까이해오면서, 해결된 아래쪽의 갈증에 이어 위쪽의 갈증을 호소했다.

아래쪽의 포만감을 채우고, 이제 디저트....아니, 앞으로 코스로 이어질 걸 생각하면 디저트라고 할 수도 없다. 온몸 위를 나긋하게 노니는 손길도, 열기에 밀려났던 일랑일랑과 캐모마일 향기가 열기에 뒤섞여 다시 우리 둘을 끌어안기 시작한다. 두 손을 움직여 흐트러진 레나의 머리카락에 걸린 머리끈을 풀어주고, 반쯤 걸쳐져있다시피 한 실내복을 벗겨주었다.


그러고도 한참이 지나, 레나가 허리를 들어서 물고 있던 내 심볼을 풀어주었다. 

이미 불포족 아가씨는 발정기 온 암컷 여우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다음을 바라는 듯, 그러면서도 뭔가 자신이 하고 싶은 듯, 그러면서도 만족한 것 같은 복잡미묘한 표정이다.


뭘 해도 괜찮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뺨에, 입술에, 이마에 입을 맞추자 레나가 그윽한 미소를 짓더니 후희를 겸해 목덜미부터 입술과 혀로 내 몸을 훑어내려가기 시작했다. 애태우는 듯, 본인 스스로도 애타는 듯 떨리는 달콤한 감촉이 가슴에 맞닿아 꽤 긴 시간 동안 이어졌다. 하지만 그 은은한 쾌락을 즐기는 것도 잠시, 가느다란 손가락이 주인의 체액으로 물든 심볼에 접하는 아찔한 감촉에 멍해진다. 사정하고도 넣은 채로 꽤 긴 시간 후희를 나누며 느껴졌던 잔잔한 황홀감은 좀 더 직접적이고 자극적으로 바뀌어갔다.


손가락 끝과, 혀와 입술이 욕망을 담아 선사하는 소리없는 환희가 살짝 가라앉은 흥분감에 다시 불을 붙이기 시작한다. 손가락 끝으로 연주하는 듯 내 반응을 확인하던 손길은 미약하게나마 다시 욕망을 부르짖는 심볼을 부드럽게 감싸는 모양새로 바뀌었다. 입술과 혀로 애무하던 레나의 표정이 장난스럽게 바뀌었다.


"레나."


내 말에 레나는 말없이 그윽하게 웃으며 애무를 멈추고 바로 아래로 내려갔다.

몇십 분 동안 레나의 안에 들어가 있던 심볼에 애태우는 것도 없이 바로 정중하게 입술을 대어 인사를 하고, 얼마 안 가 레나의 위쪽 입에도 내 심볼이 품어졌다.


서서히 심볼이 잠기는 면적이 넓어지고 레나의 행위도 서서히 격렬해진다.

아까 허리를 움직일 때하고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다.


"레나, 잠깐만요."


"...."


이런. 푹 빠졌다. 아래쪽으로 채운 것만으로는 모자라다는 듯 이쪽을 보지도 않고 행위에 몰두하고 있다.

평소대로면 내 반응을 즐기면서 슬슬 애태우듯이 조절하곤 했는데 오늘은 그런 것도 없이 입으로 온 힘을 다해 탐하니 좋은 걸 넘어서서 조금 아플 정도다.


결국 레나의 어깨를 잡고 뒤로 밀어내서 겨우 떼어냈다. 불만 한 마디 표하지 않고, 그저 손으로 입술을 가볍게 훑어 닦아내며 열망어린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 레나의 이마에 입을 맞춘 다음 침대에 올라오게 했다. 손으로, 입으로 세워준 데다가 이렇게까지 바라는 모습을 보니 또 참기 힘들어졌다. 마침 손과 입으로 애무받아서, 또 딱 좋을 정도로 예열되어 있고.


"이제 제가 해 줄게요."


"....응."


내게 완전히 맡기겠다는 듯, 아니면 부끄러운 듯 얼굴도 보이지 않고선 엉덩이와 비부를 훤히 드러내보인 채로, 양 팔과 다리를 침대에 짚고 엎드려 있다. 그래도 기대하고 있는지 꼬리가 가볍게 흔들리고 있다.


정말 적응되지 않는 모습이다. 어제, 엊그제 봤던 모습이 오늘 이 모습으로 이어진다니.

아까 하면서 아래쪽을 비벼댄 탓인지 새하얗게, 끈적하게 음모에 묻어나 있는 데다가 흘러넘친 혼합물이 허벅지 안쪽을 타고 흘러내린다. 다음을 요구하는 것처럼 소리없이, 조용히 벙긋거리고 있다. 레나가 깨끗하게 해준 심볼과는 대조적이다.


입술 대신 심볼을 그쪽에 키스하듯 가져가서 끝을 맞댔다가 살짝 떼었다. 허벅지에서 흘러내리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될 점도로 끈적하게 딸려와 묻어난다. 몇 번 그렇게 맞댔다 떼고, 넣을 듯 말 듯 입구에 갖다 비볐더니 허리를 이쪽으로 살짝 밀어붙이듯 한다. 또 그게 몇 번 반복되니 레나가 원망스러운 눈으로 이쪽을 돌아본다.


그만큼 애태워놓고 또 애태우고 싶냐고 눈으로 묻는 것 같아서, 대답 대신 심볼을 살짝 열린 꽃술에 밀어넣었다. 또 다시, 생각 이상으로 야성적이면서도 사랑스러운 신음소리가 아까보다는 멀리서 터져나온다. 아까는 몸 안팎으로 느껴지는 감각이 잘 느껴졌는데, 지금은 심볼을 휘감는 체온과 끈적한 혼합물의 감촉에 온 정신이 집중된다. 더구나 안에 들어찬 끈적한 감각 덕분에 아까보다도 더 가볍게 깊은 곳까지 들어갔다.


1분 정도 허리와 허벅지를 쓸듯이 만지면서 레나가 적응하길 기다렸다가, 서서히 속도를 붙여 찔러넣기 시작했다.

천천히 반응을 즐길 생각이었는데, 얼마 안 가 페이스도, 레나가 어느 정도 속도로 하는 걸 좋아했는지도 잊어버리고 말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서로 껴안고, 서로 몸을 비비면서 시선도 섞고, 입술과 혀를 끈적하게 섞으면서 간질간질하게 속삭였지만, 이번에는 그저 본능에 오감을 지배당할 차례인 것 같다. 온 힘을 다해 허리를 부딪히고, 심볼을 레나의 안에 깊숙이 박아넣을 때마다 레나의 몸이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튀어오른다. 차분하고 달콤하던 목소리는 흐트러진 채로 울면서 더한 황홀경을 요구한다.


무아지경에 빠져 찔러대던 중에 살짝 페이스를 낮추자 레나가 시선을 피한 채로 허리를 떨었다. 서서히 숨을 고르면서 속도를 줄였더니 스스로 허리를 움직여 서, 엉덩이를 내 허리에 천천히 부딪힌다. 아예 멈추어 보았더니, 한 손을 뒤로 가져와 내 허리를 끌어당기고, 꼬리를 움직여서 내 반대쪽 허리를 감싸듯 했다.


속도를 내어 깊숙히 거듭 찔러도, 가만히 있어도 어떤 형태로든 요구하는 걸 보고 있으면, 평소엔 레나에게 기분좋게 휘둘리지만 이때만큼은 레나를 지배하는 것 같아서 묘한 기분이다. 가만히 레나가 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몇 번 그렇게 스스로 원하다가 이쪽으로 돌아본다. 심적으로도 신체적으로도 계속하기에는 지친 모양이다.


천박한 대사를 말하게 하는 거라던가 하는 취미는 없기 때문에 조용히 허리만 숙여 레나의 등골을 혀로 훑자 더 애타는 숨소리를 토해내며 엉덩이를 더 밀착해왔다. 다른 어떤 소리도 없이 레나의 신음소리와, 엉덩이를 내 허리에 비비기만 할 뿐인데도 물 뒤섞이는 저속한 소리만 일랑일랑 향으로 가득 찬 방에 들리고 있다. 두 번, 세 번. 혀끝에 소금기와 함께 머릿속을 멍하게 만드는 마약같은 향이 휘감긴다.


눈을 살짝 감아서 남은 감각에 온 정신을 집중하니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허리를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내 허리의 움직임에 맞추어 레나도 쾌락을 찾아 부드럽게 엉덩이를 부딪혔다. 천천히, 말없이 움직임을 맞추어가다 보니 다시 욕망만을 구하는 행위가 되어가기 시작한다. 애정 살짝 섞은 욕망의 맛은 애정을 한가득 담은 행위하고는 또 다른 빠져나오기 힘든 맛이라, 어느 쪽이든 포기하기가 싫다.


그저 발정 온 암수 한쌍의 짐승 둘의 교미가 또 십여분 동안 페이스를 오가면서 이어지고, 충분히 벗어나려고 생각하면 빠져나갈 수 있는데도 그러지 않고서 쾌락의 열매를 레나가 몇 번 맛본 끝에 레나가 한 번 더 내게 황홀경을 선사했다. 침대에 쓰러지듯 엎드린 레나의 위에 나도 쓰러질 뻔할 정도로 온 힘을 다한 것 같다. 1분도 채 안 되는 시간이지만 더 긴 시간 동안 짜내어지는 것처럼, 또 한 번 레나의 안에 욕망을 쏟아붓고서 심볼을 빼지도 않고 레나를 끌어안은 채로 옆으로 쓰러지듯 침대에 누웠다.


우리 둘의 거친 숨소리가 공명하듯 방 안에 퍼지고, 숨을 내뱉은 그대로 일랑일랑 향기와 정사로 뒤섞인 체향이 멀어졌다가 다시 끌어안으러 오는 것처럼 가까워진다. 온몸이 땀에 젖은 채로 달라붙어서는 손을 잡히고, 그런데도 레나의 젖가슴을 가볍게 주무르듯 움켜잡으면서 또 다시 다음을 이끌어올리고 있다. 밀어낼 생각도, 빼낼 생각도 없이 그저 숨을 나눈 끝에 레나가 살짝 고개를 돌려 나를 보았다.


앞머리는 땀에 젖어서 흐트러져 붙어 있고, 밀크커피색 시선에 지펴져 있던 농염한 불꽃은 타다 말라붙은 것처럼, 고개를 돌려서 보기엔 불편한 자세임에도 나만을 비추고 있다.

손을 살짝 옮겨 심장 쪽으로 가져가자 나와 같은 템포로 뛰고 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짐승처럼 이 사람을 범했다는 사실도 까맣게 잊어버리고선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고선 옥죄듯 껴안았다. 살짝 몸을 움직이자 쾌락의 잔향이 남은 심볼에 은은한 자극이 전해져, 그 다음 정사를 소리없이 권하고 있다.


이따금 밤에, 몽마의 모습으로 내 앞에 현신해서.

꿈도 현실도 사로잡아버린 사랑하는 사람.


그렇게 향과 체온을, 숨소리를 말없이 교환하고 있자니 레나의 안에서 준비가 끝나버렸다. 나흘 동안 이 사람을 애태우고, 스스로 애타면서 쌓아온 욕화는 그리 간단하게 풀릴 것 같지가 않다.

살짝 고개를 들자 꽃잔디색 입술이 짤막한 주문 한 마디를 자아냈다.


ㅡ더.


그 들리지도 않는, 짤막한 한 마디면 된다.

당신이 바라는 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향기를 섞고, 색도 섞고.

몸도 마음도 섞어서 경계도 없어지게 되는 신호가 피부에 맞닿았다.


두 번이나 몸을 섞었다지만....오늘 밤은 이제 겨우 시작된 참이다.




날짜가 바뀌고 한참이 지났다.


몰아붙이고, 레나에게 주도권을 넘겨 몰아붙여지기를 쉴새없이 반복하면서.

느긋하게, 애틋하게 서로를 부르면서 몸도 향기도 체액도 마음도 뒤섞으면서, 그저 본능에 모든 걸 맡긴 채로 상대에게 욕망을 맞부딪히기도 하면서.


장소를 옮겨 아로마테라피를 할 때 쓰던 이동식 침대에서 레나에게 덮쳐진 채로 느긋하게 한다던지, 땀을 씻어내려 샤워하러 들어가서는 레나의 뒤에서 거칠게 박는다던지, 샤워한 게 의미없을 정도로 또 땀범벅이 될 정도로 뒤엉킨다던지.


4일 조금 더 된 공백이 다 채워지고도 남을 정도로 해댄 끝에 레나가 먼저 침대에 누워버렸다.


한 번 하고 나면 둘이 나란히 누워서 잡담을 한다거나, 조금 전의 정사에 대해 어떤 게 좋았고 어떤 걸 하면 더 좋겠다던지 저번보다 뭐가 더 괜찮아졌는지 나름 서로 피드백도 하면서 몸을 비비기도 했었는데 오늘은 그런 것도 없었다.


한 번 하기 무섭게 손으로, 입으로 한 번 더 끌어올려줘서 금방 또 한 번 하고. 물 한두 잔으로 목만 축이거나, 서로 입에 머금고선 상대에게 키스로 넘겨주고, 멍하니 대화도 없이 바라만 보다가 다시 달아올라서 키스를 시작으로 또 하고.


거의 쉴새없이 이어져서 나도 기진맥진하다. 좀체 보기 힘든 모습을 더 보고 싶었던 탓인지 내가 지치는 것도 잊어버릴 정도였다. 평소 레나에게 휘둘리던 것에 대한 보복심리 같은 거였을까. 레나도 주도권을 잡았을 때 애정을 한가득 섞는 듯하면서도 묘하게 격렬했었고.


아무튼 내일 아침이 오는 게 조금 두려워진다. 우리 둘 다 제때 일어날 수나 있을까.


새하얀 등에 걸린 다이아몬드가 천천히 계곡 아래로 내려오는, 숨막힐 것 같은 매혹적인 모습과는 반대로 애정과 욕망이 섞여있던 밀크커피색의 시선은 더 짙은 커피색 커튼에 가려져서 나를 피하고 있다.


어....너무 지나쳤나.


"레나."


"....말 걸지 마."


말로는 거절하지만, 팔로 껴안는 건 밀어내지 않는 걸 보니 삐치거나 한 건 아닌 모양이다.

뒤에 누워서 폭 끌어안자 잠깐 망설이더니 손으로 내 손을 가볍게 잡았다.


"나 오늘 좀 억울해."


"이런 날도 있는 거니까요. 저는 오늘 되게 좋았어요."


"평소엔 안 좋았다는 거?"


"그럴 리가 없잖아요. 엄청 귀여웠는데요."


얼굴 앞으로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치워주려 손을 가져가니 가쁜 숨에 손바닥이 물들 것 같다.

레나도, 처음 이틀은 모르겠지만 사나흘째는 계속 하고 싶다고 보챘으니. 정말 보기 드문 어린애같은 모습에 이성이 얼마나 흔들렸는지.


"아....아무리 그래도 내가 연상인데. 당신한테 귀엽다는 소리 듣는 건 좀 많이 부끄러운데."


"한번씩은 이런 모습 보고 싶어요."


"아, 안 돼. 두 번은 안 보여줄 거야."


레나가 살짝 몸부림쳐서 빠져나가려는가 싶더니, 이쪽을 보고 돌아누웠다.

그러면서도 얼굴을 발그랗게 물들이며 품에 고개를 폭 묻는다.


조용히 레나의 등을 도닥여 주며 진정하길 기다렸다. 한참 동안 별 이야기 없이 서로 숨소리만 느끼면서.

어쩌면 나도 오늘 밤 몇 시간, 그리고 그 전 며칠 동안 이어져온 몸의 대화가 이제야 끝나가기에 마음 가라앉힐 시간이 필요한 거겠지.


"....그래도 마음이 놓였어, 박사 군. 당신이 나하고 약속한 걸, 내가 흔들려도 붙잡아주면서 끝까지 지켜 줬으니까." 


이대로 같이 기대 잠들어도 괜찮지 않을까 하던 그때 레나가 나직하게 속삭였다. 조금 평소 말투가 돌아온 것 같다.


"솔직히 말하면....그걸 못 지키면 당신이 실망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어느쪽이든 당신이 하고 싶어하는 거고....저도 요 나흘 동안 미칠 것 같았거든요." 


만약 거기서 나도 욕망에 졌다면 오늘 한 경험은 더 나중의 일이 되었지 않았을까. 


"스스로한테나 당신한테 안 숨기고 싶었으니까. 내가 그래서 약속 안 지켜도 되니까....라고 했는데 생각해 보니 그것 때문에 당신도 많이 힘들었지 않을까 싶었어. 무리한 걸 시켜서 미안해, 박사 군." 


"다음에 또 해볼 건가요?" 


"다음....솔직히 4일 동안 불만 붙이고 참아봤더니 평소랑은 또 많이 다른 느낌이었어. 몸이 달아오른 채로 하루 종일 있으니까 뭔가 일하다 중간중간에 짬내서 만나갖고 몸 섞다 말은 것 같았다고 해야 하나." 


그런 적이 없는데 말만 들어도 무슨 느낌인지 바로 감이 온다. 일상생활 하다가 어딘가 숨어들어서, 예를 들면 키스하면서 손으로 서로 해준다던가, 사무실에 둘이 있으면 문 잠가놓고 급하게 몸을 섞는다던가.

며칠 전에 레나가 사무실에서 할까, 라고 은근히 말했던 게 떠오른다. 만약 이거 하다가 레나가 비서 오퍼레이터로 걸리는 날이 있었으면, 그리고 마지막 날인 오늘이었다면 분명 참지 않았겠지.


"다음에 또 해보고는 싶은데 버릇되면 돌아오기 힘들 것 같아. 계속 그게 생각나서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고. 전에 2주 동안 매일 해댔던 거랑은 비교도 안 될거고. 만약 그렇게 되어도 당신이랑 한다면....견뎌내면서 살 수 있으려나?" 


이번처럼 레나가 흔들려도 내가 붙잡아주는 걸 바라는 모양이다. 또 반대로 내가 욕망을 못 견뎌도, 레나가 느긋하게 나를 달래주는 모습도 나올 수 있겠지. 


"그럼 나중에 한 달 잡아놓고 계속 이번처럼 돌려볼까요. 5일에 한 번이니 여섯 번이겠네요." 


말해놓고도 이게 감당이 되는 건가 생각이 들었다. 레나도 뭔가 상상이 가는지 부끄러워하며 대답했다. 


"....생각만 해도 아랫배가 욱신거리는 것 같아. 좀 더 나중으로 약속해줘....그래도 언제 또 당신이 내키면....또 이렇게 해 보고 싶어."


"저는 좋죠."


"이번처럼 칭얼거릴 수도 있는데?"


"그런 때도 있어도 좋죠. 매번 저 받아주는데, 그 정도는 할 수 있죠."


팔로 옥죄듯 끌어안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자 귀가 쫑긋거린다. 얼굴을 품에 묻고 있어 보이진 않지만 즐거워한다거나, 들떠 있다는 건 바로 알 수 있다. 꼬리도 살랑살랑 흔들리고 있고. 


몸을 섞는 것도 좋지만 이렇게 가만히 껴안고 몸을 비비고 있는 시간도 정말 각별하다. 몸 섞고 나서 달아오른 열기를 서로 가라앉혀주는 것 같다고 해야 하나.


"그러고 보니까요, 레나. 아까 포덴코한테 몸이 안 좋다던가 하는 이야기를 들었는데요. 지금은 좀 괜찮아요?"


"피임도 안 하고선 몇 시간이나 해놓고는, 이제서야 생각났어?"


"정말 몸이 안 좋았으면 하지 말자고 했겠죠."


그보다 방이 일랑일랑 향 때문에 들어오자마자 숨이 탁 막힐 정도였는데.

그렇게 해놓고 덮치지 않길 바랬다면 정말 너무한다 싶었을 거다.


"근데 몸이 좀 답답해서 일하고 싶지 않았던 건 진짜였어. 이틀을 내가 대놓고 유혹했는데도 어떤 융통성없는 사람이 받아주질 않으니 말이지."


"그러면서도 믿고 있는 거 아니었어요? 오늘은 할 수 있을 거라구요."


"포덴코가 나 몸 안 좋다고 말하면 한달음에 뛰어오지 않을까 생각했었는데."


"아무리 그래도 일하는 시간이었으니까요."


만약 레나가 생각한 대로 내가 일하다가 뛰어왔다면 밖에 포덴코가 일하고 있든 말든, 일하는 시간이라는 것도 잊어버리고선 바로 달라붙어서 하루종일 해댔을 거고, 포덴코가 열받아서 켈시를 부르는 결말이 되지 않았을까. 사이좋게 감봉에 더해 나는 몇 주 동안 제 시간에 일이 안 끝나고, 그럼 또 몇 주 동안 못 해서 애타는 중에 시간을 내서 만나면 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몇 번이고 하고.


"....그렇게 될 것 같은데요."


그 이야기를 했더니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리는 게 조금 무섭다.

다음에 한 번 기회가 되면 진짜 그러진 않겠지? 괜한 걸 말한 건 아니겠지?


"아무튼 배고파졌어. 방에 먹을 게 있었던가? 지금은 매점도 닫았을 텐데."


"생각해보니 저녁도 잊어버리고 해댔네요. 혹시나 해서 빵이랑 수프 사 왔는데, 그거라도 먹을까요. 몸 안 좋다고 해서 죽도 사 왔어요."


"어머, 준비성 좋구나. 차 끓일 테니 빵 쪽으로 준비해 줄래?"


대답 대신 꽤 긴 키스를 나누고, 달라붙은 지 몇 시간만에야 처음으로 떨어져 서서 가운을 한 벌씩 걸치고 각자 할 일을 시작했다. 찻주전자가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들으니 요 며칠 간의 갈증이 정말 거짓말처럼 느껴진다. 생각해 보니 같이 차 마시는 것도 며칠만이구나. 매번 레나를 만나면 차를 마시는 게 당연했는데, 다른 욕망이 더 강해서인지 잊어버린 모양이다.


"빵은 단 거랑 안 단 거 둘 다 있는데, 어떤 게 좋아요?"


"오늘은 단 거 먹고 싶어."


"수프는 인스턴트 수프인데 괜찮아요?"


"응. 상관 안 해."


매점에서 사온 건데도 가리지 않네. 웬일일까.

사실 병문안 겸해서 사온 거였는데, 내막이 어떻게 되든 둘이 먹을 수 있다면 괜찮겠지.


"어떤 맛이 좋아요? 버섯 수프랑 크림 수프 있어요."


"그럼 버섯 수프로."


"먹고 나서 디저트는 당신으로 해도 되겠죠?"


거기서 레나가 처음으로 고개를 돌려 이쪽을 보았다. 스윽, 위아래로 재듯이 나를 훑어보고는 장난스럽게 웃었다.


"후후, 아직도 할 생각 가득하구나. 발정기 온 여우는 나만이 아닌 것 같은데."


당황하거나 하지 않고 받아치는 걸 보면 이제 정말 평소 모습이다.

부끄러워하면서도 매달리는 모습도 귀엽고, 보호본능을 자극하면서도 범하고 싶을 정도지만 역시 레나는 이 모습이 가장 마음이 놓인다.


"그럼 어느 쪽이 먹히는 쪽인지 볼까. 후후, 아침에 손가락 까딱 못할 정도로 해버릴 거니까 마음 단단히 먹어야 할 거야."


양껏 포도를 먹고도 부족한지, 정원의 여우가 살짝 입술을 혀로 훑으며 웃고는 다시 찻주전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질릴 정도로 사탕을 몇 번이나 핥아먹고도, 이가 상할 걱정 따위 한구석에 치워둔 아이는 마음이 붕 뜬 채로 다음 사탕을 기대하고 있었다.


평소하고 그다지 다르지 않은 자리에서, 어제보다 한 꺼풀 더 가까워진 거리에서. 

우리 둘만의 시간은 변함없이 흐르면서 또 한 줄 사랑스러운 추억을 만들었다.



내일은 또 어떤 느낌으로 같이 시간을 보내게 될까.

만약 또 같이 오붓한 시간을 보낸다면, 오늘 일을 또 떠올리게 될까. 오늘 함께한 시간이 내일, 어쩌면 좀 더 뒷날에도 이어질까.


작은 변화 하나가 가져다준 사소한 기대 하나하나에 다시금 감사하면서.

정원의 여우는 내 앞에서 사랑스럽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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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타, 오류 지적 환영

글자수 보니까 이번 글은 이제껏 올렸던 거랑 비교하면 무지하게 많네.


9월 초중순쯤 올리고서 온 거니까 거의 3주 걸렸구나

최대한 야겜 스크립트가 아니도록 해봤는데 잘 안하던 거라 그런가 쓰면서도 계속 반복하는 것 같더라

긴 글 싫어하면 좀 많이 지겨웠을 텐데 여기까지 읽어줘서 고맙고. 아랫뇌가 땡기면 이런 글을 다른 방식으로 도전해볼 것 같은데 맞나 싶긴 하다.


아무튼 퍼퓨머눈나 꼴리지않냐 라는 생각으로 시작했고 그래도 막 꼴리기만 한걸 쓰고 싶진 않아서 나름 꽁냥거리는 연애소설로 굴려서 엔딩을 냈는데 후일담 같은 걸 쓰게 될줄은 몰랐음
감당 안되서 이걸 몇개월이나 끌줄도 몰랐지만.

 


안젤리나 글도 다시 정리해서 계속 쓸테니 안젤리나 글이랑 이번 거 기다려준 사람들 너무 고마워

매번 진도가 늦어서 너무 미안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