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개문

해안선을 지키는 사람이 있는 한, 이베리아는 쉽게 죽지 않는다.




기록 1

"병사, 그리고 에기르인. 옛날에는 흔치 않은 조합이었지."

한 사람이 그늘 깊은 곳에서 걸어 나왔다. 그녀의 온몸은 검은 옷으로 덮여 있었지만, 손에 든 레이피어는 오히려 은빛으로 반짝였다.

침입자들은 동굴에 다른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다. 그들은 절벽 위의 초소에서 철수했다. 제 4차 해일은 관조구(观潮区)의 방어시설 대부분을 파괴하고 대부대와의 연락도 차단했다. 무궁무진한 조수와 시테러가 그들의 발목을 붙잡았다. 살아서 동굴에 숨어들은 것은 병사 한 명과 전망탑 근무자 한 명뿐이었다. 두 사람은 상처와 굶주림에 시달렸고, 앞길과 뒤쪽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당신은 재판관인가요?" 에기르인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들을 향한 레이피어는 에기르인의 기억을 쉽게 불러일으킨다.

"내 검과 랜턴은 알아보겠지." 맞은편 사람은 그늘에서 살짝 나왔다. 그녀의 손에는 심판의 불이 없었지만, 그 등불은 그녀 뒤의 바위 위에 놓여 있었다.

병사는 주저하며 무기를 내려놓으려 하지 않았다. "이 근처에 재판관이 있을 리가 있겠어? 그들은 방어선이 무너졌을 때 희생됐거나 내륙으로 철수했을 거야."

"내 사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어. 마지막 전망탑은 아직 가동 중이고 사람들은 아직 절벽을 지키고 있어. 마찬가지로 바다로 돌아간 그녀들도 연락을 포기하지 않을 거야."

검은 옷의 사람은 해안 방향으로 시선을 돌렸다.

"동굴을 지나서 후방으로 도망치려면 불빛 없이는 멀리 갈 수 없어. 에기르인, 등불을 들고 나를 따라와."

랜턴의 불빛이 축축한 돌벽을 비추자 세 사람의 그림자가 길어졌다.

병사가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그 소문 들어봤지. 시본은 인간의 모습으로 위장해. 그들은 처음에는 교회, 나중에는 교회, 심지어 평범한 마을까지 침투했어. 저번 초소는 그렇게 함락된 거야."

그들은 앞에 있는 자가 재판관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 에기르인은 속으로 생각했지만, 그들에게 선택의 여지는 없었다.




기록 2

에기르인은 병사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전쟁이 시작되기 전, 재판소 사람들은 인간의 탈을 쓴 시본을 어떻게 구분하는가 가르쳤다. 그들은 단지 인간의 걸음걸이를 흉내낼 뿐, 실제로는 촉수나 딱딱한 껍질에 의지해 땅을 문지르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갑자기 넘어지거나 빠르게 움직여야 할 경우, 허점이 드러난다.

그러나 이것은 옛날 일이다. 바다의 괴물들이 가장 잘 하는 것은 진화다. 보름 전, 한 전방 기지에서 인근 전장의 구조 요청을 받고 구조대를 파견해 한 무리를 구조해냈다. 그 날 밤, 기지가 함락되었다. 그나마 튼튼했던 기지는 내부에서 함락되었기에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대원들을 삼킨 후 그들의 모습을 흉내낸 것인지, 절망 속에서 그들 스스로 변화를 받아들인 것인지는 아무도 정확히 말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익숙한 얼굴이라도 언제든 적이 될 수 있음을 꺠달았다. 공포와 불신이 확산되어 곳곳의 방어선이 무너지는 속도가 빨라졌다.

연구자들은 시본의 생물학적 특성은 그들의 사고방식이 음모를 이해할 수 없게 만들며, 그들은 단지 군중 속에서 변화하고 있는 "동포"의 냄새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동포가 곁으로 오기를 간절히 바라므로, 동포들이 받아들이기 쉬운 모습으로 교류해 동포들을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주장에 대해 코웃음을 친다. 인류에게 이것은 전쟁이다. 전쟁 중인 사람들은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방식으로만 적을 이해할 수 있다.

"이것도 미끼라면? 우리를 구하러 온 게 아니라 우리를 나락으로 몰아넣고 있는 거야." 병사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지난친 피로에 그의 눈은 충혈되었다. "우리는 가만히 있을 수 없어. 너는 집에 돌아갈 수 없어도 나는 달라. 나는 반드시 빅토리아에 돌아갈 거야."

그는 무기를 다시 들어올리고 앞에 있는 안내자에게 달려들었다.

돌벽의 그림자가 점점 엉키고, 변형되고, 늘어나고, 부풀어 오르고, 잘리고, 터진다. 청록색 액체가 돌에 튀고, 조직의 조각이 에기르인의 얼굴에 달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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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 3

"불쌍한 사람이야." 여전히 서 있는 그 사람이 레이피어를 닦는다, "그는 나를 공격하려는 욕망이 어디서 생겨났는지 오해했어. 죽기 직전까지 자신이 아직 빅토리아의 군인이고 전쟁 후에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지."

"그는 언제부터......"

"지난번 전투, 어쩌면 그보다 훨씬 전부터. 어떤 절망적인 몸싸움을 하다가 실수로 적의 조직을 물어뜯어서 변화의 씨앗이 심겨졌을 지도 몰라." 그녀는 에기르인를 바라보며 말했다, "전장에 있는 사람은 필사적으로 살아남으려 한다는 점에서는 사실 시테러와 비슷해."

후드 아래의 그 눈은 매우 밝다. 상대방은 틀림없이 재판관일 것이다. 에기르인은 본능적으로 움츠러들었고, 병사의 남은 세포가 입에 들어갈까봐 무의식적으로 침을 여러 번 뱉었다.

둘은 계속해서 앞뒤로 걷고 있다. 동굴 깊은 곳으로 갈수록 냄새가 심해진다.

"시테러의 시체들이 이렇게 많이...... 전부 당신이 죽인 건가요?"

"그것들이 전부 절벽을 오르게 할 수는 없어."

"당신은...... 여기서 얼마나 혼자 싸워온 건가요?"

"얼마 안 돼."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선장 한 명을 알고 있는데, 그는 자신의 배를 진정한 이베리아라고 불렀어. 그는 자신의 이베리아를 위해 60년을 버텼지."

"60년......"

"우리에겐 아마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 하지만 해안선을 지키는 사람이 있는 한, 이베리아는 쉽게 죽지 않을 거야."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나도 쉽게 죽지 않아."

그들은 산의 좁은 틈에 이르렀다. 이제 더 이상 시테러의 시체는 없고, 바깥 공기의 냄새를 희미하게 맡을 수 있었다.

"아래쪽 길은 너 혼자 갈 수밖에 없어. 내 랜턴을 가져가."

"당신은 어떻게 하시려고요?"

"나? 아직도 눈치 못 챈 거야? 여기까지 그렇게 바보같이 살아서 오다니, 운이 좋았네." 그녀의 목소리에는 뜻밖에도 웃음이 섞였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너 같은 에기르인이 한 명 있었지. 어쩌면 너희는 끝까지 살아남을 지도 모르겠어."

두 사람은 분명 가만히 있었지만, 돌벽에서 그림자가 갑자기 움직였다. 무엇인가가 로브에서 미끄러져 나와 꿈틀거리다 다시 움츠러들었다.

에기르인은 그제서야 왜 앞에 있는 사람이 길에서 등불을 직접 들지 않았는지 깨달았다.

병사가 틀리지는 않았다. 그러나 에기르인조차 재판관의 랜턴을 들 수 있는 상황에, 신분에 대한 답이 지금 정말로 중요할까?

"그 랜턴은 재판관의 상징이고, 재판관의 의지에 의해 점등돼. 지금, 너한테 그걸 줄게, 에기르인. 너의 앞길...... 이베리아의 앞길에는 더 많은 빛이 필요해."

에기르인은 그 재판관의 등불을 꽉 쥐었다.

"그러면 당신은요? 제가 안전한 구역에 도착하면 더 많은 사람들을 데리고...... " 에기르인은 로브 밑에 숨겨진 손을 기억해냈고, 이 말은 눈앞의 사람에게 무의미함을 깨달았다.

"적어도, 이름만이라도 알려주세요."

"내 이름은 아이린이고, 한 명의 이베리아인이야."

전직 재판관은 말을 마친 뒤, 고개를 들고 어두운 조수를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