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써보니까 어째 지리멸렬한 결과물이 나왔다...
미즈키 록라를 기반으로 쓰긴 했는데, 정사하고는 내용이 다른 식일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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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디는 눈을 떴다.
오랜 잠을 잔 듯한 기분이었지만 개운하지는 않았다. 그저 나른한 느낌이 그녀를 다시 감싸고 있었고 그녀는 다시 잠을 자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무언가 낯설고 불편한 느낌은 스카디로 하여금 억지로 주변을 둘러보게 만들었다.
주위에는 빛이라고는 그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고, 그저 칠흑같은 어둠이 그녀를 감싸고 있었다. 본인의 몸조차 윤곽정도만 겨우 가늠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바람도 불지 않았고, 어떤 냄새조차 나지 않았다. 다만, 무언가가 조용히 웅성거리는 소리와, 홀로 나지막하게 퍼지는 음이 저 멀리서 스카디에게 겨우 닿을 정도로 들려왔다. 소리는 물 속에서 서서히 잠기는 돌멩이처럼 무겁지만, 파문처럼 잔잔하고 균일하게 스카디의 귀에 스며들었다.
스카디는 분명 소리를 듣고 있었지만 주변이 적막하다고 느꼈다. 하지만 사르곤 사막의 건조함이 아니라 오히려 고향의 일부처럼 습하고 무거운 감각이었다. 온 공기가 그녀를 짓누르고 있었다. 이 불편한 감각에서 벗어나고자 스카디는 팔을 움직이고자 하였지만, 팔목에서 느껴지는 저항으로 인하여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다. 당혹감이 그녀의 얼굴에 번지며 다리를 움직이고자 하였지만 팔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녀는 조금도 움직일 수 없었으며 확실한 건 그녀의 팔다리가 무언가에 고정되었다는 점이었다. 그것도 어비셜 헌터의 힘으로 뿌리칠 수 없는 정도로 강한 것으로.
그녀는 미간을 찌푸린 채로 그녀의 발을 쳐다보았으나, 무엇이 그녀를 잡고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었고 오히려 시커먼 동심원이 그녀로부터 퍼져나가는 것만을 볼 수 있었다. 발 아래는 끝을 알 수 없는 어둠이 그녀를 노려보고 있었다. 스카디는 순간 공포를 느꼈다. 해신을 마주할 때도 느끼지 못한, 어비셜 헌터로는 평소 느끼기 힘든 원초적인 공포였다. 닿는 순간 그녀는 저 어둠이 그녀의 머리 끝까지 차오를 것이라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다.
그러는 중 멀리서 들리던 웅성거림과 익숙한 음조가 점차 커지며 그녀에게 다가왔고, 마침내 그녀의 시야에 공포에서 벗어날 최초의 빛이 담겼다. 그것은 본인의 맨발이었으나, 스카디를 마주하고 있었다. 이윽고 노래가 멈추고 말이 들렸다.
"일어났구나? 조금 더 자게 두었으면 좋았으려만 내가 배려가 부족했구나."
스카디는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 곳에는 스카디가 서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살비엔토에서의 붉은 옷을 입고 있었다. 모자는 없었다. 마주한 그녀는 약간은 온화한 얼굴로 서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그 얼굴을 보고서야 스카디는 미몽에서 벗어났다. 그것은 스카디가 숨겨두었던 죄악이자, 스스로 베어버린 것. 그 존재는 이제 본인을 벤 원수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원수를 마주하면서 일말의 원망은 보이지 않았다. 그 평안한 표정이 오히려 이질적이었다. 스카디는 입술을 씹으며 이름을 뱉어냈다.
"이샤-믈라."
이샤-믈라는 표정의 변화 하나 없이 오른손으로 스카디의 턱을 살짝 받쳐들었다. 둘의 붉은 눈이 서로를 마주보았다. 이샤-믈라가 읊조렸다.
"잘 잤니? 밖이 소란스럽지? 하지만 걱정 마. 거대한 고요는 곧 찾아올거고, 우리는 잔잔한 심해에서 모두 함께 영원할거야. 그러니 조금은 더 자도 괜찮아."
스카디는 거칠게 내뱉었다.
"가증스러운 것, 잘도 내 모습을 하고 있구나."
이샤-믈라는 그런 말을 듣고도 살짝 웃기만 했다.
"하지만 나는 너야."
"웃기지마."
"하지만 나는 너의 마음 속 요람에서 너무도 오래 잠들어 있었어. 그간에 너가 느낀 모든 감정과 기억은 내게도 흘러들어왔지. 예를 들어 무엇이 있을까... 그래, 박사가 있지. 우리의 박사, 우리는 그를 연모하고 있어, 그는 곧 우리와 하나가 되어 영원히 살아갈거야."
"너!"
스카디는 소리쳤지만, 소리는 이내 고요함에 묻혔다. 그녀의 말은 듣지 않겠다는 듯이. 이샤-믈라 또한 스카디의 말을 듣지 못한 것처럼, 음률이 섞인 말을 계속 이어갔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아직 되지 못했어. 우린 분명 서로를 알고 있는데."
이 말을 하고나서야 이샤-믈라의 미간에 약간의 주름이 생겼지만, 이내 그 것은 사라지고, 이샤-믈라는 미소를 지었다.
"여기서 조금만 더 자다보면, 우리는 하나가 되어있을거야. 그 때는 박사를 맞이하러 가자. 가장 완벽한 우리가 된 상태로 말이야. 그러니 조금 더 자고 있어."
그 말을 내뱉고 이샤-믈라는 뒤돌아섰다. 그러자 스카디의 뒤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커졌다. 분명 아까는 저 멀리서 들리던 소리였거늘 지금은 스카디의 뒤에서 들리고 있었다. 스카디는 사실 이 소리들이 사방에서 들리던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 이샤-믈라, 어머니, 동족.
- 스카-디, 우리, 동족.
- 박사, 함께, 영원?
이샤-믈라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로 소리를 향해 대답했다.
"그래, 우리는 동족이고, 박사는 우리의 동족이 될거야. 그리고 함께 영원하겠지."
웅성거림은 진정되었으나, 약간의 흥분이 섞였다. 목소리는 이샤-믈라의 한 마디만으로도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한 것처럼 들렸다.
- 우리, 동족, 함께, 영원, 고향.
"그래, 그러려면 고요가 찾아와야하고, 이 밖의 모든 것을 동족으로 맞이해야 해. 할 수 있지?"
- 응, 맞이, 고요.
목소리가 사라졌다. 다시 영원한 침묵이 찾아왔고 이샤-믈라만이 읊조리던 선율이 다시 스카디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스카디는 생각했다. 그 것은 지금 스카디의 몸을 빌려 무언가와 싸우고 있었다. 그리고 분명 그 중에는 로도스 아일랜드도 있겠지. 사건에 얽히는 일 만큼은 그들만큼의 전문가가 없었으니 스카디는 근거가 없음에도 그 것을 당연하다고 대충 얼버무렸다. 그들을 구해야했다. 하지만, 지금의 상태로는 어찌 할 방법이 없었다. 그저 이샤-믈라의 파편으로 그녀의 모든 의식이 잠기는 것이 최후인가, 스카디는 절망적인 결론을 내며 고개를 다시 숙였다. 심연은 아직도 그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것이야말로 영원히 그녀가 발을 담그길 바라고 있다는 듯이 고요하게 있었다. 스카디는 눈을 감았다. 그녀는 다시 지쳤다. 본인이 한 모든 것들을 부정당하고 적의 일부가 되는 것이 최후라니, 씁쓸한 느낌이 그녀의 입 안을 휘감았다. 그리고 모든 생각을 멈추었다. 애매하게 남아 단어만 내뱉는 저런 것이 되느니 아예 사라지는 것이 낫겠다는 체념만이 남았다. 그렇게 심연에 잠기려는 그 때, 익숙한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울렸다.
"그걸 원하는게 아니잖아?"
로도스에서 종종 듣던 낯선 목소리는 단호한 톤으로 스카디의 평온을 방해했다. 그렇기에 스카디는 눈을 떴고, 방금 전과는 다른 것을 보았다.
그 곳에는 옅은 빛줄기가 마치 앙상한 가지처럼 스카디의 발 아래에서 뻗어나가고 있었다. 심연은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그 가지들은 하나 하나가 마치 혈관처럼 맥동하고 있었고, 조심스럽지만 끊임없이 퍼져나갔다. 그리고 그 것들이 스카디를 한번 휘감자, 손과 발을 묶던 것이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스카디는 그대로 무릎을 꿇고 숨을 몰아쉬었다. 목소리가 다시 한 번 말했다.
"이제 꿈에서 깰 시간이야."
스카디는 그녀를 감쌌던 빛줄기가 다시 수면 아래로 내려가 점차 수평선까지 뻗어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어둠과 물기, 침묵만이 있던 공간에 빛과 그 온기가 채워져가고 있었고, 침묵은 당혹스러운 웅얼거림으로 바뀌었다. 소리는 당혹감에 가득 차있었다.
- 동족, 드디어, 하나.
- 우리, 고요, 수면?
"그래, 너희들은 이제 잠에 들면서 영원을 얻게 될거야.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 영원한 고요를 찾을 수 있을거야."
- 하지만, 어머니, 말씀.
- 고요, 모두, 함께.
목소리가 다시 한 번 경쾌하게 울렸다.
"아니, 우리는 우리만의 고요로 영원한 평화를 얻을거야. 이미 우리는 충분해."
- 고요, 완성, 숙원.
- 안녕, 잘 자, 동족.
그렇게 모든 웅성거림이 사라졌다. 스카디는 몸으로는 상황을 이해했지만, 머리는 아직 모든 정보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하나의 이름이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미즈키?"
"맞아. 오랜만이야."
미즈키의 형태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뻗어나가는 가지들이 미즈키였음을 스카디는 알 수 있었다.
스카디는 일어났다. 그리고 처음의 파문을 향해 나아갔다. 아까는 그렇게 멀리서 들리던 음이 지금은 몇 걸음만 다가갔음에도 바로 앞에 있었다. 이샤-믈라는 아까와 동일한 표정으로 서있었다. 하지만 그 것은 어둠과 빛 사이에서 가루처럼 흩어져가고 있었다. 그 것의 주변에는 빛 가지가 마치 새장처럼 이샤-믈라를 가둬두고 있었다. 흩어져가는 와중에 이샤-믈라는 그 눈을 스카디에게 향했다. 그 것은 마치 지금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스카디를 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우리의 영원, 박사는? 이러면 우리와 함께할 수가 없는데..."
스카디는 이샤-믈라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끊었다. 그 것을 말을 끊는 행위이자, 그 것과 자신의 연결을 끊는 의식이었다.
"그건 내 감정이야, 어설픈 흉내로 따라하지마. 괴물."
말을 마치자마자 이샤-믈라였던 것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스카디는 본능적으로 모든 일이 끝났음을 느꼈다. 이제 빛은 온 시야에 다 담겼다. 누구도 설명해주지 않았지만 스카디는 바로 모든 것을 이해했다. 미즈키는 해신이 되어 이샤-믈라를 없앴다. 그리고 모든 시본을 영원의 잠으로 인도했다. 그리고 그 대가는 분명 본인의 의식이었다. 이제 미즈키라는 인격은 없어질 것이었다. 그저 시본이자 해신으로서 미즈키는 그 여정을 마칠 것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스카디는 머리가 아파왔다. 누군가가 또 본인을 위해 희생했다. 그 죄책감이 스카디를 지치게 했다. 차라리 미즈키가 자신보다 나은 형편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미즈키에 대한 올바른 태도가 아니었다. 스카디는 고민 끝에 한 마디를 내뱉었다.
"고마워."
미즈키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빛의 온기가 조금은 더 따듯해진 것 같았다. 빛이 가득찬 이 공간은 이윽고 가루가 되어 흩날리기 시작했다. 스카디는 눈을 감고 조금 뒤 다시 눈을 떴다.
바닷물 사이로 수면을 지난 햇살이 스카디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었다.